"...다들 조심해. 어지간하면 어떻게 해주고 싶지만 이 사람이 가디언즈의 간부 클래스로 있고 대치하게 된다면... 나도 어떻게 해 줄 자신이 없어." "미안해. 이 사람만큼은 도저히 분석도 뭐도 어떻게 할 수 없어. 하지만 일단 우리들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이 시설의 파괴야. 폭탄은 이미 아스텔과 내가 여기에 오기 전에 설치했어. 그러니까 이제 여기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돼.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돌아가기만 하면 우리들의 승리야."
에스티아는 말을 마치자마자 품 속에서 리모콘을 꺼냈고 버튼을 꾹 눌렀다. 에스티아가 들고 있는 리모콘에서 붉은 빛이 반짝였고 시설 여기저기서 붉은 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폭탄이 작동한 모양이었다. 이어 에스티아는 모두를 향해서 이야기했다.
"카운트 다운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어. 물론 바로 빠져나가도 되지만... 적어도 이 사내만큼은 여기서 최대한 피해를 줘야만 해. 될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조금은 피해를 주고 싶어. 그러니까 모두들... 미안하지만 아슬아슬한 순간까지는 어떻게든 버티고(=4턴) 빠져나가자. 물론 정 안되겠다 싶으면 바로 퇴각해도 괜찮아."
이내 에스티아의 말이 끝나자 플래나는 피식 웃어보였다. 이내 그 웃음소리는 점점 커졌고 시설을 통째로 울렸다. 조용히 웃음소리를 멈춘 플래나는 손에 쥐고 있던 보검을 높게 들어올렸다.
"저에게 피해라.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당신이 잘 알지 않습니까. 에스티아. 그리고... 누가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했습니까? 오히려 당신들이 폭발에 휘말려서 죽지만 않으면 다행이겠지요."
이내 플래나가 들고 있는 보검에서 검은빛이 번쩍였고 이내 플래나는 보검을 해방했다. 검은색 빛은 플래나를 집어삼키는 듯 했으나 이내 그 빛은 모두 플래나의 몸 속으로 흡수되듯 사라졌다. 머지않아 보이는 것은 전신을 검은색 장갑으로 두르고 있는 플래나의 모습이었다. 마치 검은 갑옷을 입고 있는 전사마냥. 아니. 어떻게 보면 사이버그 전사인마냥 그의 몸은 한 군데도 빠짐없이 모두 검은색 장갑으로 둘러쌓여있었다. 이내 눈 부분마저도 마스크가 내려가듯 가려졌고 붉은색 안광이 머리에 쓰고 있는 마스크에서 번쩍였다. 이어 플래나는 살며시 오른팔을 앞으로 뻗었고 손바닥을 쭉 펼쳤다.
"자. 덤벼보십시오.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 누님이 직접 선별하고 기른 전사들의 힘을 보여주십시오."
/플래나 전의 시작이에요! 체력은 어제 그 체력에서 공유되니까 참고해주세요! 버스트도 스페셜 스킬도 모두 원상태로 회복이 되었으니 참고해주시고요! 이번 전투는 4턴만 어떻게든 버티면 되지만.. 한 명이라도 다운하게 될 시 전개가 바뀔 수 있어요! 그 점을 조심하시고 어떻게 잘 협력을 해주세요!! 8시 20분까지!
엘리나의 심장을 뚫었, 으면 좋았겠지만. 손을 통해 전해진 건 심장을 단단히 막은 무언가였다. 순순히 이렇게 둘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니 뭐. 아쉬운대로 독액의 일부를 엘리나의 체내에 남겨두었으나 아마 저것도 별 소용은 없을 것 같다. 그녀는 저항 하지 않고 엘리나의 육신을 블랙 스캐빈저가 가져가게 두었다. 여기서 쉬게 해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뭐. 됐어. 기회는 또 있을 듯 하니."
중얼거리며 일어난 그녀는 이제 공중에서 내려온 플래나를 보았다. 한참 쳐웃다가 보검을 해방한 그 모습을 보는 눈은 귀찮은 것을 보는 눈 그 자체다. 그러니까 이번엔 디펜스전이다 이거지. 아스텔과 에스티아의 전언에 고개를 끄덕이고 일단은 독액으로 검을 만들어 들었다.
"원래 공성전에서는 공격하는 쪽이 월등히 불리한 법이야. 짝눈 X끼야."
조롱하는 말을 던져주곤 검을 휘휘 돌려 어깨에 걸친다. 덤벼보라는데 어떡할까. 엘리나나 카시노프와는 달리 어떤 세븐스를 가졌는지 예상도 되지 않는다. 이럴 때 달려드는 건 좋지 않은데. 찰나의 고민 끝에 그녀는 바닥을 통해 독액을 쏘아보냈다. 뱀처럼 구불구불 나아가던 독액은 플래나의 발끝에라도 닿으면 바로 휘감아 올라가려 들 것이다.
피곤한 목소리로 말하고서 제 보검을 쥔 손에 힘을 더 준다. 휴식도 없이 바로 2차 전이라니. 방금도 위험했는데, 이번의 상대는 더 위험할까. 무장을 장착한 플래나를 보고선 한숨을 내쉰다. 제 생각으로는 바로 도망치는 게 좋다 느끼지만. 그러고 싶다니 어쩌겠어. 발이라도 묶어두다, 폭발에 휘말리게 만들어야지. 생각을 끝내며 플래나의 뒤쪽으로 포탈을 열고서 그의 허리를 제 보검으로 내리 찍으려 했다.
조심하라, 무언가 해줄 자신이 없다, 살아남아서 돌아가기만 하자. 이스마엘은 그 소리에도 계속 집중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플래나를 쳐다보듯 하면서도, 얇게 깔아둔 염력의 장으로 사라져가는 카시노프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헌터, 기억해라. 목표를 한번 찾았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망설여서 싸움이 길어질수록 무고한 사람이 다친단다. 목을 노렸으면 물어야만 하는 세상에서, 그 순리를 네게 가르치는 날 용서하지 않아도 좋다. 노이즈 속의 눈동자가 점차 수축하더니 숨을 고르듯 깊게 심호흡하는 모습이 보인다.
"명령이라면 버티겠습니다."
이스마엘은 웃음에서도 침착했다.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집중하더니 보검을 해방하는 모습에서도 긴장하지 않은 듯 지팡이 쥔 손에서 힘 한번 주지 않는다. 혼란스러움이 일순 멈춘다. 손바닥을 펼치는 모습에 머리카락이 선다. 범상치 않다. 위험하다는 걸 온몸이 비명을 지르며 알린다.
"난 살아."
그리고 그 사실에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스마엘의 주변이 쩍, 소리가 나더니 기이하게 갈라진다. 파편이 떠오르더니 쐐기처럼 뭉쳐 플래나를 향한다.
레레시아의 독액은 어려움 없이 플래나의 발끝에 닿아 휘감아 올라왔다. 분명히 데미지를 주긴 했는지 몸이 움찔하는 것이 보이긴 했지만 이내 독액은 투명해지더니 바닥으로 떨어져서 천천히 흐르는 듯 하다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선우의 총알은 플래나의 왼쪽 눈을 노렸고 마스크에 충돌했으나 이내 물렁물렁해지더니 바닥에 툭 떨어졌다. 신디의 보검 공격은 플래나의 허리에 제대로 명중하긴 했지만 이내 딱딱한 바위라도 내리친 것마냥 보검을 확실하게 팅겨냈다. 그리고 정면으로 날아오는 이스마엘의 파편은 플래나의 손에 닿자마자 이내 가루가 되어 사르륵 바닥에 떨어졌다.
"그건 지금에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요. 압도적인 힘의 차에서는 말이지요. 유리? 불리? 그런 것은 대등한 사이에서나 성립하는 말이이랍니다." "저에게 있어서 누님은 짜증나는 존재가 아니지요. 오히려 당신들이 짜증이 난다면 나고 아스텔과 에스티아가 정말로 거슬리긴 하군요."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것도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정말로 보고 싶은 이는 여기에는 없지 않습니까."
자신에게 말을 한 레레시아와 선우, 그리고 이스마엘의 말에 대답을 하는 와중 플래나의 몸에서 검은빛이 돌았고 약간의 기스나 흠집이 난 장갑은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에스티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정면으로 공격하지 마. 플래나의 세븐스는 '마테리얼 체인저'. 물질의 성분이나 밀도 강도 등등 모든 것을 바꿔버릴 수 있어. 적어도 정면으로 확실하게 날아오는 공격은 전혀 통하지 않을거야."
"어라.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에스티아. 그렇다면... 당신들에게 승산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요."
이내 플래나가 밟고 있는 땅이 살짝 아래로 움푹 들어갔다. 그리고 이어 마치 스프링 위에서 점프라도 하듯 플래나는 높게 뛰어올랐다. 움푹 들어간 땅은 다시 원 상태가 되었고 플래나는 그대로 오른발을 아래로 내려 땅을 내려찍었다. 바닥이 크게 흔들렸고 땅을 따라 충격웨이브가 흐르기 시작했다.
"자. 이어서..."
이내 플래나의 등 뒤에서 검은색 빛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버스트'의 징조였다.
/쇼크 웨이브. 데미지 1000. 명중하게 될 시 다이스를 1~2로 굴린다. 1이 나오게 될 시 아무런 일도 없이 넘어갈 수 있으나 2가 나오게 될 시 지진에 흽쓸려서 1턴간 다운. 다음 턴 반격과 회피 불가.
다시금 중얼거리는 대답. 반복되는 단어, 생존. 이스마엘의 노이즈 속 표정이 보이지 않지만 제법 눈이 돌았음은 알 수 있을 테다. "영원불멸한 것은 없어.." 알 수 없는 한마디.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이 여기에 없다고 해도 살아남아야만 한다. 명령이니까. 명령은 필수불가결이다. 이스마엘은 지금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 살아야만 한다. 살아서.. 살아서─
……정면으로 확실하게 날아오는 공격이 아니라면.
땅을 내려찍어 바닥이 크게 흔들릴 적 이스마엘은 공중에 떠올랐다. 카시노프의 관절은 꺾이지 않았고, 비슷하게 엘리나도 공격을 할 때 죽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언가가 비호하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요, 이스마엘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눌러야 한다 생각했는지 떠오른 상태에서 눈짓했다.
상대의 무장이 너무나도 단단하니 제 보검의 이가 나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들까. 흠집정도 밖에 내지 못했는데 그마저도 금방 원상태로 돌아가버리니, 이어지는 에스티아의 말을 듣고서 어이 없다는듯 한숨을 내쉰다. 이래서야 원.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오고. 생각하다, 채 상대의 공격을 피하지 못한다. 충격 웨이브에 그대로 휩쓸려 바닥을 구른다.
지진에 휘말리면서도 레레시아는 독액을 쏟아부었고 그것은 분명히 플래나에게 명중했다. 무장의 일부가 부식되는 듯 했고 플래나의 입에서 작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허나 이내 독액은 또 다시 투명한 액체가 되어버리더니 증발하듯 사라졌다. 한편 이스마엘의 염력이 플래나를 억누르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 선우는 파편과 불길이 전해지도록 조절해서 수류탄을 던졌다. 이내 쾅!! 하는 소리가 울려왔고 플래나의 장갑이 아주 살짝 금이 갔고 그을리긴 했지만 또 다시 검은 빛이 돌더니 그 장갑은 원상복귀 되었다. 데미지는 들어가지만 장갑은 지속적으로 회복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저것조차도 플래나의 세븐스 능력인 것일까.
"조금 아프긴 하지만 그 정도로군요. 그래도 가디언즈를 꽤 고생시킬 정도는 되는군요. 축하합니다." "왜 살아야하죠? 지금의 당신은 아무리 봐도 살고 싶어서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런가요? 그렇다면 직접 느껴보도록 하십시오. 물론 피할 수도 있을테니, 피한다면 그것도 상관없겠지요."
이내 플래나는 단번에 빠져나가더니 기합을 넣었다. 등 뒤에서 검은색 빛, 정확히는 버스트의 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뒤이어 플래나는 신디와 선우 쪽으로 두 손을 쭈욱 뻗었다. 이내 그의 양 손에서 뭔가 강한 에너지 기운이 멤돌더니 보이지 않는 '풍탄'이 두 사람에게 날아갔다. 그것은 아스텔이 사용하는 능력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보이지 않기에 오로지 감으로만 대처해야만 하는 능력. 그것은 명백하게 두 사람의 명치를 향해서 발사되었다.
"앞으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텨줘!! 다들!"
에스티아는 어떻게든 버틸 것을 요구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것일까. 시간을 계속 체크하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시간을 끄는 것은 일단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성공적인 모양이었다.
/풍탄 발사. 타깃-선우&신디. 데미지 1200. 그러나 버스트 공격형 버프로 인해 X2배. 가드 브레이커 장착. 데미지는 2400.
9시 45분까지!
앞으로 2턴 후. (플래나의 공격이 2번 더 나오는 시점) 전투 종료.
누군가가 움직일 수 없는 신디를 구해줘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아스텔이 기동형이니 버스트를 써서 신디를 데리고 회피할 수도 있지만..일단 그건 공평성을 위해서 오더가 있어야 가능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