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상황상 미처 못 가봤던 곳도 있긴 합니다만. 여기 신 한국이라도 게이트가 생기지 않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도 나름 즐거웠습니다."
강산은 웃으면서 답하고는 빈센트의 이야기를 듣다가, 심각한 표정으로 아이고, 하고 작게 탄식한다.
"그러고보니 형님 영미권 출신이시던가요...? 살벌했군요..."
알고보니 그거...그냥 강도 사건이 아니었던 거 아닐까, 하는 추측이 떠오른다. 일반적인 강도라면 감옥에 갔으면 갔지 그런 식으로 자결하진 않았을 것이니까. 그 사람이 좋지 않은 곳으로 보내질 만큼 죄업이 깊었다든지...혹은 죽음으로써 스스로 입막음을 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기밀사항을 알고 있었다든지? 하지만.
"지금 와서는 마무리된 일이긴 하네요."
추측해봤자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다. 그러니 그는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의 그로서는 숨겨진 앞뒤 사정을 알 수 없는 일이고, 알더라도 당장 그와 무관할 일이었다.
빈센트는 어깨를 으쓱인다. 빈센트의 입장에서 한국은 괜찮은 나라였다. 의념시대의 수많은 혼란상을 겪고도 물가는 어느정도 유지되었고, 치안도 꽤나 괜찮고, 폐허의 비율도 좀 적다.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미국은... 영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각종 폭동, 강도사건, 그 외 기타등등.
"인종폭동 2건, 고물가 항의성 시위 22건, 총기난사 수십건, 그 외 기타등등... 집어치우죠.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한국은 꽤나 좋은 나라란 겁니다."
1. 아메리카는 의념 각성자 외에도 비 각성자를 군대로 이용하는 유일한 국가임. 그를 통해 시민문제는 '경찰'로 통용되는 비 각성자 군인들이 맡고 게이트나 의념 범죄자 문제는 '부대'로 특징되는 가디언들이 맡음. 2. 아메리카의 경우는 길드의 형태가 여타 지역관 달리 중개인의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음. 그래서 헌터들의 신뢰나 성공도 영향이 크며, 신입들의 육성이 힘들지만 성공한 헌터들의 경우 안정적인 수익원이 존재함. 3. 아메리카의 경우는 전투외에 건설 등에 메카닉을 안정적으로 이용 중. 특히 아메리카의 영웅 중 하나인 마스터 마이스터는 로봇으로 이뤄진 부대를 만들려 했으나, 문제 발생으로 인해 청왕의 분노로 연구소가 박살난 적 있다. 왜 메카닉 혁명이 이뤄지지 않는가에 대한 대답
강산은 빈센트가 건배를 받아주자 개구지게 웃으며 좋아하더니, 음식을 조금씩 먹으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예에. 당시 제 레벨이 그렇게 높았던 것도 아니라서요. 죽어서까지 올라가보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고 말입죠. 제가 올해 다시 갔을 때 게이트는 없어졌더군요. 근처에 작은 규모지만 도시도 있고...듣던 대로 경치가 좋더라고요!"
그렇지만 경치에 대해서는 길게 얘기하지 않는다. 빈센트를 배려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그보다 인상깊었던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곳에서 특이한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그 분도 1세대 각성자이신 듯 한데...과거에 지리산으로 피신하셨다가 그대로 그 곳에서 살아오신 것 같더군요. 그 곳에서 생겼던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도 어르신께서 처리하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그 어르신이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음식을 먹느라 움직이던 강산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
"그렇지만 어르신과 대화하다 보니...어쩌면 그 분은 단순히 지리산이 좋아서 그 곳에 남아 계신 게 아니라, 그 곳을 못 떠나고 계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리산의 도인은 주의만 조금 주고 좋게 넘어가려 하긴 했지만... 강산은 결국 반쯤 도망치듯 자리를 떴었지.
빈센트는 수많은 사례를 알고 있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때, 어떤 늙은이들은 평생을 산 여기서 어떻게 도망치냐며, 난 죽어도 이 땅과 함께 죽는다며 버텼다고 했다. 그리고 빈센트도, 고향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노인들은 대피령이 내려져도, 만약에 마을이 영원히 쓸려나갈 것 같으면 남아서 죽음을 택한다던 이야기를 들었다. 빈센트는 그것들을 생각해봤는데, 그건 안 떠나는 거였지 못 떠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 경우는 오히려 사람들이 제발 떠나달라고 빌었으니.
그런데, 못 떠난다고?
빈센트는 강산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인다.
"무언가 지키고 있거나 그런 거려나요. 아니면 지리산의 신비한 무언가에 자신의 영혼이 저당잡혀 있다던지. 거기서 1세대로 살아남았던 분이라면 후자는 아닐 것 같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