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관통하는 불쾌한 감각과 함께 자그마한 폭발. 너는 파르르 떨리는 손을 꽉 쥐어 떨림을 멈추고는 체인을 회수했다. 이미 늦었나...! 에스티아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칩에 직접 닿지 않는 한은 불가능하다. 머릿속에 있는 칩에 어떻게 닿는단 말인가, 머리를 쪼개고 꺼내는 건 외과적 수술이겠지만 과연 그럴 수 있도록 가만히 있어줄까? 적어도 제압은 해야 했지만 알다시피 제압은 사살보다 어려우니 너는 고갤 저었다. 지금 신경써야 할 부분은 여기서 어떻게든 살아돌아가는 것,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승리라고 볼 수 있을 상황이었기에 너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대꾸할 필요도 없지만, 참을 필요도 없습니다. 담은 걸 쏟아내도 좋지만 휩쓸리지만 마십시오. 여러분, 중심을 잃지만 않으면 됩니다."
거슬리는 말과 목소리였지만 너는 이를 악물었다. 적에게 지속적으로 교란과 모욕을 시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행동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분하고 기분이 나쁘고, 속에 뭔가 걸린 것 같을 테니 꾹 참는 것만이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쏟아내도 좋아. 그렇지만 그 스스로까지 쏟아내서는 안 된다. 다들 그럴 수 있으리라 믿으며 너는 동료들에게 나지막히 목소리를 전했다. 그런 와중 선우에게 향하는 촉수를 보며 체인을 휘둘러 잡아 뜯으려던 너는 그렇게 두지 않겠다는 듯 전기로 이루어진 체인이 속박시키기 위해 날아들자 바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미처 방어태세를 갖추지 못하거나, 그 속도에 반응하지 못한 이들이 보였기에 너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레레시아에게 몸을 돌려 날아드는 체인을 휘감아 쳐내니 또 저릿, 하고 불쾌한 감각에 몸이 제 말을 듣지 않을 듯 무릎이 떨리자 있는 힘껏 다리를 쥐어짜듯 눌러 풀었다.
"저는 이셔 쪽에 합세하겠습니다. 뒤는 부탁합니다. 레시."
통증에서 끌어낸 낮은 목소리로 레레시아에게 말을 전한 너는 이셔 쪽으로 몸을 돌려 움직이고는 카시노프의 촉수를 향해 체인을 쏘아 날렸다. 그 끝의 뾰족한 말뚝이 촉수를 꿰뚫려는 듯 날아든다. 힘이 떨어져 끊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엘리나를 붙잡아 무력화시키려던 시도는 오히려 그녀와 동료들이 무력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파지직 튀는 스파크에 몸이 떨리며 바닥에 자빠진다. 절로 다물어진 턱에 의도치 않게 혀가 씹히고, 가중된 고통이 심장을 푹 찌른다. 이번엔 비명도 못 내고 전격을 받아낸 그녀는 재차 비틀비틀 일어나며 말했다.
"이렇게, 말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니까, 라고? X친 늙은이야. 노망난 과학자여! 내 뒤집어지는 속도! 에델바이스가 가진 분노도! 전부 너희가 초래하지 않았더냐! 너희가! 쌓은 업보 아니냔 말이다!!!"
아아아악!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악에 받친 고성이 그녀의 목에서 터져나왔다. 그 직후 훅 숨을 들이킨 그녀는 여즉 고여있던 독액을 끌어모으며 소리쳤다.
"주둥이가 뚫렸으면 말은 똑바로 해야지! 범인들이 천재를 왜 무시하는지 알아?! 그들이 내게 티끌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을 때 무시하는 거다! 그래! 너 같은 뇌 뒤틀린 X끼들이 자칭 천재라며 그 옘병을 떠니까! 같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그저 자기 목표를, 목적을 위한 도구로만 삼으니까! 그런 놈들이 스스로를 천재라 일컬으니까! 난!!! 그런 천재라는 X끼들이 미치도록 싫어!!!"
해묵은 분노가 담긴 듯한 외침이었다. 그러나 그 소리를 치느라 경계가 잠시 풀렸는지. 엘리나로부터 쏘아지는 체인을 보고 피하기엔 이미 늦었다. 그래. 차라리 맞고 반격을 하자. 그리 다짐하며 독액으로 거대한 검을 들어올리는데 쥬데카가 그녀에게 향하던 체인을 막아섰다. 그 모습에 그녀는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혀를 차며 말했다.
"어딜 끼어드는 거야. 멍청아! 도와줄 필요 없으니까 네 몸이나 챙겨!"
또 끼어들기만 해 봐! 이스마엘 쪽으로 향하는 쥬데카의 등에 쏘아붙인 그녀는 검을 들고 엘리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스텔! 엘리나의 무장을 뚫어버려!"
그리고 그녀도 검을 휘둘렀으나- 검은 전자 결계에 닿자마자 액체형태로 풀어지며 결계 전체를 감싸고 파괴하려든다.
너무 빠르고 위험해. 그러니 빈틈을 노리기 힘들고. 엘리나를 보며 신디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문다. 포탈로 접근하면 금방 피해버릴 것이요, 잘못했다가는 그렇게 회피한 상대의 역공에 그대로 튀겨져 버릴 것이다. 저 스피드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시끄러운 카시 노프의 말을 무시한 채 생각하다가,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전기 체인을 엘리나의 뒤쪽으로 포탈을 만들어 피한다. 그리고서 공격 한 틈을 노려 엘리나의 머리를 주먹으로 가격하려 한다.
침묵. 벽에 집어던졌을 적 이스마엘은 천천히 고개를 꺾었다. 다른 건 전부 넘길 수 있었으나, 넘긴다는 범위는 오롯이 본인을 향한 질타에 해당되는 일이었다. 들어오는 순간부터 거슬렸고, 짜증이 났던 것이 감정 때문이노라 생각했으나 지금은 철회하고자 한다.
"인간의 유전자는 대단한 법, 다만 본인이 천재임을 과시하는 것은 교배 잘 되었노라 방만히 구는 것이니. 때를 가리는 정도가 있어야지요. 어차피 낳았을 적 세븐스였으니 실패작 소리는 들은 건 같았겠.. 아, 미안합니다. 그 시절에 갇힌 나이 많은 '웃어른'과는 대화해본 적이 손에 꼽습니다."
날아온 체인을 피하지는 못했지만 묶이진 않았다. 저릿한 감각에도 이스마엘은 염력으로 몸을 보조하고 카시노프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비능력자 눈엔 그쪽도 결국 가디언즈의 이름을 썼을 뿐이지 내심 꺼림칙한 사람이며 내키지 않는 존재 중 하나인데. 죽고 싶지 않으니 입 벌리지 아니하는 것임에도 그게 진심이라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촉수를 손으로 직접 쥐어 잡아 뜯을 듯하더니, 이내 고개 불쑥 내민다. 염력으로 다리 관절을 역으로 꺾기 위함이다. 어디 표정이라도 봐야지.
"적어도 우리는 원하는 대로 날뛰기라도 하지, 당신은 뭡니까? 미꾸라지에게 아무리 윗물에서 노는 법을 가르쳐도 물 흐리는 것 천성이라 용 될 수 없는 법이라고들 하는데.. 대장께서 포기한 이유를 스스로 시인하시는군요."
그야말로 난전인 상황 속에서 각각 어떻게든 움직이고 행동하고 있었다. 선우는 촉수가 자신을 잡아내는데 성공하자 빠르게 무장을 아공간 속으로 집어넣었다. 허나 쥬데카의 부탁으로 에스티아가 드론을 조종했고 칼날이 빠르게 돌아가는 드론은 단번에 선우를 붙잡은 촉수를 끊어내는데 성공했다. 어디 그 뿐일까? 쥬데카의 체인은 촉수 하나를 또 끊어내는데 성공했다. 남은 촉수는 총 두 개.
이내 아스텔과 레레시아의 공격이 엘리나에게 향했으나 엘리나의 전자 결계를 뚫지 못했고 엘리나의 몸은 일시적으로 전자 형태가 되어 공격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신디는 단번에 포탈을 이용해서 엘리나의 머리를 주먹으로 가격하는데 성공했다. 이어 엘리나는 힘없이 땅으로 떨어졌으나 비명을 지르는 일 없이 다시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이스마엘은 카시노프의 다리관절을 노렸지만 전혀 꺾이지 않았다. 마치 카시노프의 몸에 베리어라도 쳐져있는 것처럼 세븐스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켈켈켈켈. 그건 맞는 말이야. 세븐스로 태어난 이상 사랑을 못 받고 살기는 했지. 그런데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마치 자네는 연애도 하고 아주 사랑을 듬뿍 받고 살았다는 것 같은데 말이야. 그리고 그게 그렇게 화가 날 일인가? 그 논리를 그대로 돌려서 자네들 같은 존재가 있기에 비능력자들이 속이 뒤집어지고 세븐스를 더욱 무섭게 느끼는 것 아니겠나. 하지만 자네는 그런 것을 알바 아니라고 생각하겠지. 나도 마찬가지야. 자네들이 뭘 느끼건 내가 알바는 아니지 않나. 켈켈켈켈. 아니. 비능력자라고 할 것도 없지 않은가. 내가 보는 자네는 그냥 자네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아무래도 좋은 이로 보는 것 같다만. 그런 자네가 나에게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어쩌고를 말할 자격이 있긴 한가? 켈켈켈켈. 하지만 그게 틀린건 아니야.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지. 양심. 동정. 그런 감정에 휘둘리고 자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들은 결국 아무런 성과도 남길 수 없지. 켈켈켈켈. 그러니까 자네는 스스로르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아."
"내키지 않다고 생각하면 뭐 어쩔참인가? 결국 그들은 우리들의 보호가 있기에 살아갈 수 있는 존재들인데. 켈켈켈. 그런 것까지 일일히 신경 쓰면서 살수는 없지.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굳이 누가 더 꺼림칙하냐고 느끼냐고 묻는다면.. 자네들 아니겠나? 테러리스트 제군들."
"엘리나의 움직임이 평소보다 느리군요. 어떻게 된겁니까?"
그리고 그 싸움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플래나는 이상하다는 듯이 엘리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어 엘리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한편 카시노프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내심 안에서 저항을 하는 모양이다만... 그때 한번 지배에서 풀렸던 것 때문에 다시 지배를 하려고 해도 조금씩 저항을 하는 것 같다만...."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다음 수를 쓰도록 하죠. 깨어나십시오. 루시아."
이어 플래나의 명령이 떨어지자 엘리나가 순간 움찔했다. 이어 그녀는 표정을 찡그렸고 이내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잡았다. 상당히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그리고 그 뒤에서 검은색 빛이 치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에게 루시아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조심해. -나와 같은 세븐스 반응이 엘리나에게서 나오고 있어. 아마도 저건...
멈춰버린 팔이여 움직여라. 멈춰버린 다리여 움직여라. 지금 여기는 전사를 위한 스테이지.
-Song of angel!!
이내 들려오는 것은 이쪽의 루시아가 부르는 곡이 아니라 상대 쪽에서 들려오는 곡이었다. Song of angel. 그것이 엘리나에게서 발동된 모양이었다. 이내 엘리나의 공허한 눈동자에, 그나마 조금은 있었던 생기마저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이른바 '다크 루시아'가 저쪽에서 등장했다.
-당신을 여기서 멈춰서는 안돼. 엘리나. -가디언즈의 책무를 다하도록 해. 엘리나.
"...죽여...줘."
그 작은 목소리는 쥬데카에게 분명하게 들려왔다. 그야말로 완전히 먹혀버린 느낌. 그것을 증명하듯, 엘리나의 움직임은 방금 전과는 다르게 더욱 빨라졌다. 이전보다 훨씬 더. 더욱 더, 더욱 더. 그 가속 속에서 피뢰침이 연쇄적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피뢰침 발사 - 날아오는 것은 전원 다 2체. 명중하게 될시 명중한 횟수의 턴만큼 (노이즈). 피뢰침 자체에는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는다.
Song of angle. 발동. 엘리나 체력의 50% 회복. 1회 한정 공격력 2배. 송 오브 엔젤이 발동하게 될시 100% 스페셜 스킬의 연계가 일어난다. 주의. 3턴 뒤 오버 히트로 엘리나 체력 1 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