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사했을지도 모르는 감전이었지만, 모조 보검의 무장 덕분에 목숨은 건졌다. 하지만 후폭풍으로 밀려오는 마비 증상은 무장으로도 그녀의 세븐스로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을 붙잡고 버티는게 고작이었으나. 적들이 그런 빈틈을 봐줄 리가. 관망하던 카시노프가 촉수를 움직여 이스마엘을 조종하는 것이 보이자 덜덜 떨리는 어금니로부터 이 갈리는 소리가 울린다.
"X친...늙은이... 늙는 것도 곱게.. 늙어야지... 애들, 상대로... 뭐하는 짓거리...!"
아악! 겨우 입을 열어 카시노프를 향해 악담을 퍼붓다가 염력 에너지볼을 맞아 바닥으로 내리꽂힌다. 무력함에 분노가 치밀어 마비와는 별개의 떨림이 전신에 퍼진다. 흐윽. 숨을 들이쉬고 몸을 일으키려 하면서 아스텔을 향해 외친다.
"아스텔! 이스마엘에게 연결된 촉수를 끊어버려! 안 되면 이스마엘을 옮겨서 떨어지게끔 시도해줘!"
물리력이 통할지 모르니 아예 이스마엘의 위치를 옮겨 벗어날 수 있는지 시도를 부탁한다. 그리고 조금씩 몸을 일으켜 재차 공격할 자세를 잡는다.
명중했다. 스파크 튀는 소리와 함께 엘리나의 결계가 흩어지는 것을 보던 너는 하필이면 마비 상태인 이스마엘에게 카시노프의 무장으로부터 등장한 촉수가 날아드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확장되는 동공은 한 겹 짙은 색의 바이저 너머로 모든 상황을 주시했다. 다음 순간 카시노프가 행동하는 대로 움직인 이스마엘의 손 위로부터 생긴 에너지볼이 쏟아져 내려오자 너는 땅을 박차고 마비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인 에스티아의 앞을 막아섰다.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에너지볼, 너를 향한 것 뿐만 아니라 에스티아에게 향하는 에너지볼까지 막아내기 위해 무장을 전개한 너는, 위로부터 강타하는 힘에 몸을 떨었다. 윽. 하는 신음도 잠시, 펼쳐졌던 무장을 회수한 네 손 끝으로부터 체인은 엘리나를 노려 휘둘러지고 있었다. 이미 레레시아가 아스텔에게 상황 타개를 위한 부탁을 해두는 걸 들었기 때문이리라.
"선우 씨, 뭐라도 해보려는 거라면 엄호하겠습니다!"
체인은 엘리나를 휘감아 고정시키려고 하고 있었고, 휘감는 데 성공한다면 그 끝에서부터 마찰과 함께 불길이 일었을 터다.
강한 스파크의 영향인지 몸이 굳어가기 시작하고, 상황은 불리하게 돌아갔다. 이스마엘은 몸을 최대한 움직이고자 했으나 마음대로 되는 일이라곤 하나 없었다. 어서 움직여야 하는데, 이런 상황은 전적으로 불리한데…….
"지금, 뭐 하는─"
카시노프의 촉수가 몸에 닿을 적 이스마엘은 본능적인 불쾌감을 느끼며 몸서리를 쳤다. 통상적인 불쾌감과는 궤를 달리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고, 얘기하는 것도 불안정하다. 몸의 주도권을 잃었다는 걸 명백히 깨닫는 순간 말이 뚝 끊긴다. 저것 또한 이런 감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
비꼬는 건가? 혹여 진심이라 한들 당신에게 들을 말이 아니다. 증오스럽지만 표할 수 없음을 꿰뚫린 듯싶어 노이즈 속 눈동자가 불안정하게 수축한다. 손이 올라설 적 손가락 끝이 가늘게 떨린다. 아니, 내 의지가 아닙니다. 내 의지가…….
"놔."
겨우 떨리는 잇새를 억지로 비집듯 벌려 단어를 뱉어낸다. 처참함에 몸부림 친다. 단 한번. 내가 당신을 용서할 것임을, 그게 얼마나 비참할 일인지 고민해두는 게 좋을 것이다.
"애들? 켈켈켈켈. 자네는 무슨 소릴 하고 있나? 자네들은 테러리스트. 엄연히 대등하게 상대해줘야 할 적이 아닌가. 여기까지 와서 애니 뭐니 하면서 적당히 봐줄 거라고 생각하나?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그리고 놔달라니. 그럴 수는..."
이내 아스텔이 단번에 날아올랐고 촉수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그와 동시에 이스마엘과 연결되어있는 카시노프의 촉수가 끊어졌고 이스마엘은 그제야 다시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저 촉수에 잡히기라도 하면 카시노프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조건이 있는 것일까. 다른 것은 몰라도 조심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편 그러거나 말거나 카시노프는 다른 촉수 하나를 꿈틀거렸고 에스티아를 노렸다. 하지만 에스티아는 아주 가볍게 몸을 뒤로 덤블링하면서 회피했고 카시노프는 작게 혀를 찼다.
한편 쥬데카는 엘리나를 휘감는데 성공했다. 그 와중에 선우는 다시 한 번 코일을 노리고 저격총을 쏘았다. 뜨거운 불길이 코일을 한번 감쌌고 이내 선우가 코일에 공격을 명중시키는데 성공했지만 코일의 스파크가 약해질 뿐. 부서지거나 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보검으로 만들어진 무장이기에 부서진다고 해도 다시 복구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일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스파크가 모이고 있다가 사라졌기 때문에 바로 전자 결계가 다시 펼쳐지진 않았다는 것이었다.
"...당신은 아까부터 제 코일만 노리는 것 같습니다. 허나 이런 것은 복구시켜버리면 그만입니다."
이어 엘리나는 보검의 힘으로 자신의 무장을 다시 복구시켰다. 데미지는 들어가고 있으나 그럼에도 계속해서 무장이 복구되는 것은 지금껏 간부 클래스와 싸우면서 몇 번이나 본 광경이었다. 한편 엘리나는 단번에 보라색 궤적을 남기면서 빠져나온 후 공중으로 떠올랐다. 뒤이어 그녀의 몸에 다시 한 번 보라색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이어 그녀의 등 뒤에서 보라색 빛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쥬데카는 직감적으로 그게 '버스트'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아스텔의 공격으로 촉수가 끊어지자 이셔의 움직임이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다행이다...! 구체적인 것까진 알 수 없어도 촉수를 통해 조종을 시도하는 것 같으니 물리적으로 끊어내는 것이 방법 중 하나였다는 것 정도는 알아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 숨 돌렸다는 듯 팽팽해진 체인을 꽉 쥐던 너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팽팽하던 체인이 힘을 잃고 떨어지는 것을 느끼자마자 공중으로 시선을 올렸다. 떠오른 엘리나, 그리고 보라색의 스파크.
"버스트를 준비중인 것 같습니다! 지금 붙잡지 않으면...!"
너는 다시 한 번 체인을 휘둘러 엘리나를 휘감으려고 했다. 이걸로 막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뭐라도 시도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미 버스트가 발동 되어버리면 그 속도를 따라잡는 건 힘들기 그지없을 터. 시간을 길게 끌리는 것만으로도 지금 상황은 나빠질 뿐이다. 어서 둘 중 한 명을 쓰러트려야 할 텐데. 만약 붙잡는 데 성공한다면 이번엔 불꽃 대신, 다시 한 번 보석이 빛을 내며 물줄기가 체인을 휘감아 올랐을 터다.
카시노프를 향해 일갈하며 몸을 일으킨 그녀는 동시에 아스텔이 이스마엘의 촉수를 끊는 것도 확인했다. 끊을 수 있는 것을 알았으니 대응할 방법 하나는 알아낸 셈이다. 그러나 곧 엘리나가 공중으로 떠오르며 뭔가 쓸 조짐을 보였고. 쥬데카의 외침으로 그것이 버스트란 걸 알자마자 다시금 아스텔에게 외쳤다.
"네 바람으로 엘리나를 눌러 바닥에 처박아버려. 아스텔! 검으로 꽂아버리면 더 좋고!"
그녀는 엘리나를 여기서 묻어버릴 작정이었다. 누가 그것을 반대하든. 무엇을 시도하든.
"잘도 쳐때렸겠다 이 전기뱀X!!!"
고성과 욕설을 내뱉으며 대량의 독액을 방출해낸다. 독액은 순식간에 고여 엘리나가 떨어질 지점에 웅덩이를 만들고, 그녀는 검 대신 무수한 사슬을 생성해 엘리나를 구속하고 시꺼먼 독액에 담궈버리려고 한다.
아스텔은 물론이요. 선우와 쥬데카. 그리고 레레시아까지 엘리나를 공격하려고 했지만 이내 엘리나는 보라색 궤적만 남기고 단번에 버스트를 발동해서 가볍게 회피했다. 그와 동시에 공격을 시도한 이 전원 몸에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고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아무래도 빠른 속도로 공격이 들어오는 순간, 카운터로 대처한 모양이었다. (공격을 시도한 이 전원 확정 300 데미지) 한편 에스티아는 그런 엘리나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모르겠어. ...기계 장치 해킹이라고 해도 닿아야만 가능한데... 일단 내가 들은 정보에 따르면 그 기계장치. 즉 칩이라는 것은 머리 속에 있는 거잖아. 그것을 건드리지 못하는 이상 아무리 내 세븐스로도 무리야."
적어도 자신의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에스티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한편 이스마엘은 카시노프의 촉수를 염력으로 묶어서 벽으로 집어던졌고 그 과정 속에서 촉수 하나가 또 뽑혀나갔다. 남은 촉수는 4개. 이어 카시노프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켈켈켈켈. 언제나 천재가 아닌 이들은 그렇게 천재를 무시하지. 자신에게 해가 된다는 이유로 말이야. 그래. 그래. 이해는 해주도록 하지. 그렇게라도 말을 해야 적성이 풀린다면 말이야. 하지만 내가 노망이 났다고 친다면 자네는 뭐지? 켈켈켈. 내 눈에는 그냥 피가 좋고 전장이 좋아서 어떻게든 피가 튀게 하려는 것으로 밖엔 안 보이는데. 아. 그걸 탓하진 않겠어. 자네들 같은 테러리스트에겐 딱 적합한 행동이 아닌가. 켈켈켈켈. 자네들은 정말로 어떻게 한 팀이 된건가? 동료가 죽던지 말던지 그런 것은 알바도 아니고 하물며 기본적인 동료를 배려하는 마음도 없으며 그냥 자기들 원하는대로 날뛸 뿐이지. 로벨리아 아가씨가 정말로 불쌍하구만. 이거."
"그런 자네들 같은 이들이 있었기에 비능력자 보호법령이라는 것이 생겨난거라네. 켈켈켈켈. 대체 누가 누굴 비난하는건지."
뒤이어 카시노프는 가만히 바라보다 선우를 향해서 촉수를 내뻗었다. 단번에 선우를 붙잡으려는 모양이었다. 그와는 별개로 엘리나는 힘을 모았고 다시 한 번 몸에 전자결계를 펼쳤다.
"...볼틱 체인."
뒤이어 그녀의 주변에서 전기 에너지가 모였고 그것은 체인 형태가 되어 뭉쳐졌다. 그리고 이어 그 체인은 에델바이스 멤버들을 묶기 위해서 빠르게 날아왔다. 아무래도 묶이게 되면 상당히 위험할지도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