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점의 스윙도어를 밀고 들어가자마자 사람들이 떠드는 시끄러운 소리와, 지독한 술냄새가 느껴진다. 묘한 분위기의 드워프와 동행하여 가이아의 성문에 도착한게 오후쯤이었으니, 벌써 저녁때가 다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간대가 되면 주점에는 항상 모험가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한낮의 모험담에 대해 떠들며 술과 음식을 마시고는 한껏 웃어제끼는, 그게 바로 모험가라는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내가 원하던 분위기가 절대 아니었다.
모험가 길드가 아닌 주점으로 바로 들어온 것은 시간이 늦었기 때문도 있었지만, 조금정도는 가이아라는 장소에 대해 정보를 얻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술에 쩔어있는 사람들고 가득찬 상태에서는 정보수집은 더이상 못 해먹는다. 술에 취한 사람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분명 있지만, 내가 얻고싶어하는 것은 적어도 머리가 멀쩡한 사람들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글렀으니 내일 아침쯤에나 다시 시도해야겠네. 체념한 나는 주점에서 빈자리를 찾아다녔다. 모험가로 북적이는 실내라 그런지 좀처럼 자리 찾기가 힘들었지만, 얼마 안가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공교롭게도 그 사람은 앞자리가 비어있었고. 나는 능글맞게 웃으며, 그 사람 앞자리로 가 멋대로 자리에 앉았다.
"거기 누님, 나랑 같이 술 한잔 하지 않을래?"
자연스럽게 아직 술이 남아있는 술병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든다. 주변에서 몇몇이 나를 의아한 눈빛, 혹은 경계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기 시작한다. 분위기를 흐리는 눈치없는 놈이 아닐까 하는 시선, 어떤 이는 이 근방에서 처음 보는 얼굴에 대한 경계. 후자는 몰라도 전자에 대해서는 억울한 것이 이건 딱히 헌팅이라던가 그런게 아니다.
"그게. 지나가다 우연히 봤는데 흥미가 생겼거든. 그래서 같이 술이나 마시면서 어떤 사람인지 알고싶어서."
주변 모험가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피냄새에도 불구하고, 특히나 눈 앞의 여성에게서 나는 피냄새는 진했으니. 어떤 인물인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여자의 테이블에 멋대로 다가와 툭툭 건드는 이가 하나 그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던 코우는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살폈다
"우롱."
그러더니 돌연 말하는 것이다 여자는 상대가 손가락으로 두드린 병의 목을 가볍게 잡아 두어번 흔들어 보였다 안에 든 액체가 찰랑거리며 넘실거린다
"이거 술 아닌데. 우롱차야."
일부러 주점까지 와서 알코올이라고는 조금도 들지 않은 차를 병째로 시켜서 마시고 있는 여자가 여기에 있다 그건 그렇고 무방비한 얼굴이다 어떠한 경계라든가, 위화따위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기색이었다 아마 시리우스가 앉는 건 딱히 상관 없어보이는 것 같다 그저 그렇게 말할 뿐인 여자는, 잔 안에 담긴 우롱차를 기울여 재차 한 모금 더 목에 흘려넣을 뿐이었다
상대의 황당함을 눈치채지 못하고 되려 의문스러운 듯 고개를 기울인다 여자는 상대가 그저 순수하게 차를 모르거나 잘 못 들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우롱차, 동쪽 섬에 성행하는 차를 들여온 잎은 그다지 흔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제국의 수도씩이나 되어서야 볼 수 있는 정도다 여자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응? 거짓말 안 했어. 마셔 보면 아는 걸."
한 잔 줄까? 여자는 그렇게 묻더니 대뜸 상대의 앞에 있던 잔에 우롱차(라고 하는 것)를 조르륵 따라 내어준다 답변 이전에 행동을 했으니 이미 물음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러고는 다시 자신의 잔에 있던 것을 들이킨다
촌구석 도시에서 자란 난 우롱차는 커녕 본토에서 나는 차조차 마실 일이 없었다. 다만, 책이나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거나 닳고 닳은 장부를 보다보면 간혹 먼 이국에서 온 차 이야기를 접할 때가 있었다. 우롱차도 그중 하나였긴 했다. 물론 실물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사실 뭐든, 내겐 처음이나 마찬가지다. 이 먼 가이아라는 도시에서는 더더욱.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잔에 우롱차처럼 보이는 액체를 따르자 의심스런 눈초리로 여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탄건 아니겠지. 직접 마시고 있던걸 따라주었으니. 그럼 다른 의도는 없다는 뜻이다. 잠시 고민하다가, 잔에 있는 액체를 입 안에 모두 털어넣고는 이내 손으로 얼굴을 탁 짚었다.
이건 차다. 진짜로. 이자식은 순도 100%의 광인이었다.
"술을 못 마시기라도 하는거야? 왜 혼자 이런걸 마시고있어?"
이해할 수가 없다. 어째서 술집에서 우롱차를 마시고 있는가. 아니 애초에 이 술집은 왜 우롱차를 팔고있는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있자 아까 전에 시킨 술이 도착해서, 나는 술을 잔에 따라 입을 헹구듯 술을 들이켰다.
"후우. 누님은 그런 이상한 음료수를 잘도 마시는구만."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본다. 값싼 에일과 럼주에 익숙해진 혀에 향긋한 차는 워낙 거부반응이 강했다. 차나 커피같은 사치품은 한번도 먹어본적이 없었으니 당연하지만. 더군다나 눈 앞의 광인을 맨정신으로 대하기는 힘들 것 같아, 일부러 술을 조금 더 들이키기도 했다.
우롱차의 진정한 맛과 향을 설파...까지는 아니지만 테이블에 올려둔 팔로 턱을 괴고 있는 여자는, 우롱차를 마시기 직전의 상대를 조금 기대하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마침내 상대방이 잔을 전부 비우고 탄식하자, 단지 그걸로 만족스러운 얼굴을 지었다
"그야, 우롱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런 여자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또 상당히 묘하면서도 객관적인 것이었다 여자의 말대로 주변을 둘려봐도 우롱을 시켜서 마시고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애초에 그들은 우롱의 존재를 알고 있기나 할까 이 여자도 분명, 주점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다가 대뜸 '우롱 하나 줘'라고 말했을 때 얻어 걸린 곳 아무데나 눌러 앉은 게 틀림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 차가 준비되어 있던 게 바로 이 술집인 거고 또 마침 들어와서 여자에게 말을 건게 시리우스인 거고 분명 그런 것이다 묘하다는 듯한 표정을 한 시리우스의 말에, 여자는 소리내어 웃었다
눈 앞의 여자를 살짝 노려보며 물었다.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는 대답이라니. 그럼 왜 좋은 기회라고 한 것일까. 애초에, 잔을 비우기 전 기대하는 듯한 눈빛은 무엇이었으려나. 좀처럼 알기 힘든 사람이었다. 나는 여자를 빤히 바라보다가 술로 다시금 입안을 적셨다. 주점의 에일은 항상 그렇듯이, 못 마실 정도는 아닌 맛이었다.
"술이 어디가 이상하다는건지. 누님도 술은 마실거 아냐?"
소리내어 웃는 여자를 바라보다 결국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뭐가 그리 웃긴건지. 보는 사람도 그만 따라웃어버린 것이다. 술 탓인지 아니면 다른 탓인진 몰라도. 여자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러고보면 이런 조합은 독특하다시피 했다. 우롱차를 파는 주점에, 주점에서 그걸 당당히 시켜 마시고 있는 여자에, 그런 여자의 앞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이방인이라니.
노려보는 눈빛에 아랑곳 않고 그렇게 대답하며 차를 홀짝인다 그래서 좋은 기회라고 했던 건가 사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시도는 중요하다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니까 그리고 그때 상대방이 술병을 내밀자 마치 고양이가 사람 손을 피하듯이, 다가오는 술병에 반응해 여자 또한 고개를 쭈욱 뒤로 빼었다
"응. 미안. 나, 술은 잘 안 마셔."
혀를 삐쭉 내밀어보이고는 우롱차를 또 한 모금 ...하려다가 잔이 비어있는지 한 번 뒤집어 보고서는 우롱차 병을 기울여 잔에다 졸졸 따랐다
"술을 마셔 줄 여자를 찾고 있는 거야? 그런 거라면 저어기 뒷골목에 많아."
말을 하더니, 뒷골목의 위치를 가늠하듯 고개를 두리번 거려서는 대강 짐작가는 방향에다 팔을 뻗었다
여자의 입에서 다시 한 번 진리가 흩어져 나왔다 그렇다, 말 안하면 모른다 독심술사가 아닌 한 상대방의 진실된 마음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말하기 전까지― 그렇기에 사람들은 진실을 고하는게 두려워 대신 거짓으로 뒤덮어 진실을 빗겨가는 방식을 채용해왔다 그래서 여자는 피가 말해주는 진실 밖에는 듣지 않기로 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녀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일종의 '눈치'라는게 결여되어 있다는 거겠지만
"에. 뭐야아. 나는 별로인 거야?"
대답이 시시해지자 조금 토라진 얼굴로 거친 머릿결의 구렛나루를 빙글빙글 꼬았다 한 밤 중에 주점에 찾아와 칼을 차고서는 술 대신 우롱차를 마시면서 짙은 혈향을 내풍기고있는 까마귀같은 여자를 진실로 좋아해 줄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냐만은
"응. 아무튼, 난 쉬운 여자는 아니야."
결론이 그렇게 되는 건가 공교롭게도 그 대사는 정작 쉬운 여자들이 뱉는 대사 중 순위권을 달리는 대사라는 사실인데 그런데도 왜인지 여자는 뿌듯해보였다
요컨데, 눈치라고 부르는 그것 말이다. 슬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었고, 그게 없는 놈부터 차례대로 죽어나갔다. 눈치없는 놈을 방패로 살아남은적도 몇번 있었다. 사람에겐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게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지만... 눈 앞의 여자는 그런 경험은 없는걸지도 모른다.
...혹은 저것조차 다른 종류의 경험의 결과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을 지금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응. 누님도 엄청 내 취향이긴 한데, 내가 찾는 사람하고는 다른 것 같아서."
토라진 표정으로 구렛나루를 꼬는 모습을 보며 킥킥 웃음을 뱉었다. 솔직히 말하면 여자의 외모는 매력적인 편에 속했기에 거짓말을 한건 아니다. 다만 취향은 취향이고, 찾는 사람은 찾는 사람일 뿐. 물론 눈 앞의 여자가 말하는게 단순히 농담일 뿐이라는 것도 알고는 있지만.
"그런 말을 하는 여자는 보통 쉬운 여자라던데."
뿌듯해보이는 여자를 조금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건지, 아니면 그냥 짓궂은게 원래의 심성인건지. 그는 조금 도발하는 듯한 말투로 농담을 던졌다.
큭큭 웃으며 머리카락에 시선을 고정했다. 만약 저걸 뽑으면... 그대로 죽어버리나? 저게 본체인가? 같은 쓸데없는 생각과 함께 한번쯤은 저 바보털을 잡아당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재미있는 농담이야."
이제껏 들떴던 분위기가 순간 가라앉으며 소매 안의 완드가 자신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당장이라도 완드를 꺼내서 눈 앞의 여자를 죽여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본능이 아우성치고, 이성은 아직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라며 본능을 진정시킨다. 전부 죽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 길은 없다. 하지만 눈 앞의 여자에 대해 한가지 잊고 있던게 있었다.
눈 앞의 여자는 혈향을 짙게 풍기는 광인이라는 사실 말이다.
"누가 죽은건데? 널 쉽다고 여긴 사람들?"
입가에 웃음기를 띄우면서도 손을 테이블 밑으로 내려 안보이게 한다. 허튼짓 하면 안보이는 각도에서 마법을 써서라도 죽여야할 필요성이 있다. 그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내 목숨에 위협을 느낀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