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모든 울분과 공격이 이스마엘에게 들어갔다. 그러나 보검의 유무가 모든 것을 갈라놓았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공격이었지만 그녀는 망신창이가 된 채로 멀쩡하게 서 있었다.
"가디언즈였나?"
이스마엘의 품속에 있던 군번줄을 보고 엘레인은 그녀가 가디언즈였으리라 추측했다.
"감히 더러운 앞잡이 주제에 뚫린 입이라고 감히!"
엘레인은 이스마엘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증오와 원망을 짊어지겠다고 했으며 자신을 구원자라 칭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었으면서 이상향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분명 그녀 역시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오지 않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녀는 자신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이스마엘이 남에게서 증오를 강탈하지 않는 이상 엘레인 같이 증오를 버리지 못하는 이들은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엘레인은 자신에게서 증오와 원망을 앗아가지도 못하면서 증오를 발산하는 것을 막는 에델바이스도 원망스러웠다. 아니, 이 세상 살아숨쉬는 모든 존재들이 원망스러웠고 증오스러웠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이야말로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네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구나.."
엘레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이스마엘의 뜻대로 자신의 몸을 그녀에게 내어주었다.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자신의 목을 스스로 졸랐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곧이어 그녀는 안개로 변해 이스마엘의 눈 앞에 서있었다.
전봇대를 집어던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스텔은 다시 한 번 확신할 수 있었다. 본 목적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그 본 목적을 제압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 와중에 들려오는 말. 다른 사람들 입장에선 자신들도 별 차이가 없다라는 말에 아스텔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이 아니겠는가. 허나...
"...말하지 않았나. 인정받으려고 하는 행위가 아니라고 말이야. ...우리들은 영웅이 아니라고. 그런 말은 이미지 창출을 노리는 이들에게나 한 말이야. 아니면 더 이상 도발할 말이 떠오르지 않나?"
일단 여기서는 발목을 조금 더 잡아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하면서 아스텔은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하늘에서 땅으로 착치한 후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죽으면 죽는대로 끝이야. ...지옥도 천국도 아무런 의미도 없어."
"네가 악인이건 뭐건 아무래도 좋은 말이야. 결국 네 녀석이 하고자 하는 것은 복수가 아니라 그냥 날뛰고 싶은 것 뿐이야. ...뭐가 분노와 원망이지? 결국 그들과 같은 이라고 합리화를 하면서 네 녀석이 날뛰고자 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 뿐이잖아. 그러는 네가 그 작자들을 원망하고 분노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스스로 합리화를 하면서 날뛸 뿐. 아무도 인정하지 않아. 그리고 이 세상에 통하지도 않아."
"...결국 복수하고 싶은 게 아니잖아. 그냥 그렇게 행동하기 위한 이유가 필요한 거지."
동료가 아닌 상대에게 따뜻한 말을 해줄 이유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의 목소리는 상당히 차갑고 날카로웠다. 적어도 그들은 에델바이스의 적이었으니까.
"단지 그러고 싶은 것 뿐인 이야기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 마. 넌 죽고 싶은 게 아니야. 단지 나는 이미 죽었으니까 뭘 해도 상관없어. 뭘 해도 아무래도 좋아. 그것조차도 핑계로 대는 것 뿐이지."
"...아니. 정정할까. 죽을까 싶어서 강한 이에게는 정작 손 하나 대지 못하면서 약한 이들을 잡고 와. 나는 오늘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열심히 활동했어. 난 어차피 그때 죽었으니까 뭘 해도 상관없어. 설사 이 몸 어떻게 되어도 좋아. 라고 말하면서 정작 하는 것은 너보다 약한 이들을 죽이고 개인만족을 하고 합리화를 하는 겁쟁이일 뿐이지."
"...정말로 죽고 싶다면 죽이기 위해서 덤벼봐. ...그렇다면 바라는 것이 이뤄질테지."
널 놓치지 않겠다는 듯 던져진 전봇대에 땅을 박차 옆으로 몸을 던져 피하니, 전봇대가 장애물에 부딪혀 박살나는 소리에 귀가 아파 눈을 찡그린다. 좀 더 소음을 제거할 수 있도록 조정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선우에게서 돌아온 답변에 입을 열었다.
"그 반대일지도 모르죠."
모조품이라고는 해도 보검이 지닌 힘의 수준이나 가치는 일반적인 세븐스들과 궤를 달리했다. 보통의 세븐스도 아니고 그 자체로 강자인 간부들과도 다수가 모여야만 하긴 해도 조건에 따라 호각, 더 나아가 제압도 노려볼만 한 수준으로 전력을 강화시켜주는 무장의 존재는 중요했다. 그런 부분이 아니더라도 그가 모종의 이유로 점차 약해지고 있는 것은 명백했기에, 너는 다시 체인을 뽑아냈다. 전봇대를 지나 아스텔의 반대쪽, 그러니까 태성의 뒤로 돌아뛰며 던진 체인은 이번엔 태성의 목을 노렸다. 목을 휘감는 데 성공한다면 그대로 반대쪽 끝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태성의 발목을 노려 던졌을 터다. 방금 전처럼 또 끊어버릴지도 모르지만 잠시 동안의 움직임을 봉쇄할 수는 있겠지.
"선우 씨, 아무런 실마리도 없습니까? 그를 설득하려고 한 것 같은데. 뭘 시도해보려고 했습니까?"
언제든 공격을 이어갈 수 있도록 새로 체인을 뽑아낼 준비를 하며, 목걸이를 손에 쥐었다. 여차하면 레이버의 세븐스라도 써서 관통상이든 자상이든 입힐 수밖에.
침묵. 가디언즈였냐 묻는다면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하기 보다 침묵이 더 낫다 판단했다. 이스마엘은 이 상황에서도 미소만 짓고 있었다. 누군가를 비웃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엾게 여기는 눈빛도 아니었다. 미소만 짓고 있었다. 점차 금이 가고 있었다. 늙은 여우, 당신이 가르쳐준 것도 슬슬 한계입니다. "예. 감히 그랬습니다. 허황된 꿈, 미친 앞잡이, 거짓된 선지자니까요. 감히 제가 당신에게 제안을 하는 겁니다."
이스마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증오하려면 증오하라는 듯. 최대한 이성줄을 붙잡으며 도발에도 순순히 응했다. 눈앞에 선 당신을 보면서도 미소를 유지하고자 했다. 나는 그 사람과 약속했어.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승패를 논하셨으니 정한 것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런데, 내가 인간을 그만두게 되는 순간, 나는 인간이 아니라 무엇으로 불리게 되는 거지? 내가 내 속에 남은 개념을 지우게 된다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건데. 이전의 나로부터 발전을 했다고 볼 수 없지 않나?
"얼마나 더?"
이스마엘이 다시금 해사히 웃었다. 감정 깃들었다. 하대하듯 경멸 어린 시선이었다.
"버스트."
버스트를 발동하기가 무섭게 공격형 버스트를 발동할 적 나타나는 강대한 힘이 옥죄려 든다. 이윽고 염력으로 벽을 뒤틀어 어떻게든 이 공간을 빠져나가려 시도했다. 본디 인간이란 변화를 주고 끌어 올려서 발전을 이룩해야하지 않나.
독액에 걸린 물체들이 힘없이 떨어져나가는 것이 그녀에게도 전해졌으나 그게 무엇인지까지는 알지 못 했다. 아니. 알려 하지 않았음이 정확하다. 그 중 하나만 멀쩡히 끌어왔어도 알았을 것을. 그녀는 그녀대로 눈이 돌아간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방송국... 라디오? 허 참. 기가 막혀서..."
그러니 선우의 말을 듣고도 헛웃음만 내뱉었다. 뭐, 숨겨둔 힘이라도 있었나? 고작 방송으로, 목소리로 뭘 바꾸려고? 어이가 없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의 연속에 속이 끓는지 되려 차게 식는지 모르겠다. 그런 그녀의 심경을 반영하듯, 지면에 고인 새까만 독액이 서서히 붉게 변한다. 붉게, 새빨갛게, 끈적하게 고인 독액은 서서히 형상을 일으켜 다시 한 번 분신들을 일으켰다.
버스트-
"Painfull Desire-"
그녀를 빼닮은 새빨간 분신들이 입을 벌려 웃는다. 그 한 가운데에 주저앉아 바닥을 짚은 그녀는 이제 지긋지긋하단 눈으로 태성을 주시하고, 분신들은 재차 내달려 태성에게 달려들고 터지고 쏟아졌다.
피식 웃으면서 아스텔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결국 그러고 싶어사 날뛰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아스텔은 가만히 그가 하는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였다. 그 와중에 우리보다 약한 이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는 그 말에 아스텔은 약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들이 약한 이를 죽인 것이 아니라 죽는 이들이 약했을 뿐이라는 그 말에 좀처럼 답을 하지 않던 아스텔은 다시 입을 열었다.
"결국 힘없고 약한 이들 이외에는 제대로 뭔가를 하지도 못하는 레지스탕스의 이름만 빌린 집단이라는 거잖아. ...지금은 전멸한 와일드 팡 쪽이 좀 더 낫군. ...그쪽은 가디언즈에게 직접적으로 이빨을 들이밀면서 몇 번이고 실력행사를 하기도 한 곳이니까. ....뭐, 지금은 글라키에스 하나에게 다 전멸당했지만."
한편 들려오는 선우의 통신에 귀를 기울이면서 아스텔은 알만하다는 듯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전파잭이라도 노리는 모양이지? 뭘 꾸미는가 했다만."
과연 가디언즈가 그대로 가만히 있을까. 오히려 그걸 이용해서 역으로 뭔가를 더 행사하지 않으면 다행인 일이었다. 무엇보다 저쪽에는 카시노프도 있지 않던가. 오히려 역으로 이용만 안 당하면 정말로 다행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상대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이어 그는 가만히 등 뒤의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세븐스 에너지가 날개에서 녹색으로 찬란하게 번쩍이기 시작했다. 이어 그는 통신으로 다른 이들에게 에이야기했다.
"상대가 노리는 것은 전파잭이라고 생각돼. 방송을 할 수 있는 곳을 점령하는 것일지도 몰라. ...솔직히 얼마나 효과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전국적으로 비능력자들을 공격하려는 선동적 방송이 되어버리면... 아마 더더욱 분위기는 악화될거야. ...가능한한 막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이 녀석도 여기서 붙잡아두는 수밖에 없겠지."
이어 아스텔은 들고 있는 검을 허공에 휘둘렀다. 이어 날카로운 칼바람이 강하게 상대의 다리를 노려서 날아갔다. 그대로 기동성을 뺏고 뺏는데 성공하면 단번에 제압할 생각이 아니었을까. 빗나간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상대는 죽는 순간까지도 저 입을 다물지 않을 것이다. 추악한 변명을 내뱉는 태성을 질렸다는 눈으로 바라보다, 그의 다리에 체인이 감기자 그의 뒤로 포탈을 이어 이동 후 그의 다리를 베고 다시 포탈로 피하려 시도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선우의 외침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나,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그저 아무 일도 생기지 않기를, 혹은 다른 누가 막아내길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아주 많은 힘이라. 버스트를 발동하기 딱 좋은 요건이었다. 이스마엘 또한 무장이 있다 한들 일반인이었다면 죽고도 남을 공격을 받아들인 탓에 슬 한계였기 때문에 더욱이. 장막이 쉽게도 무너지고 마침내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바닥에 느릿하게 안착했다. 당신 앞에 만신창이로 부들거리긴 해도 서있던 것이다.
마침내 끝나고 말았다. 허무하게도 끝나고 만 것이다. 이스마엘은 천천히 당신을 내려다본다. 승리에 도취될 시간 따위 없음을 안다. 무릎을 꿇고 손으로 땅을 짚는 모습에, 경멸 어리던 시선을 뒤로 천천히 눈을 감는다. 심호흡. 이내 자신의 무장을 해제했다. 그리고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시선을 맞추려 했다.
"나는 가디언즈의 딸입니다. 아버지는 제 선택을 존중해 레지스탕스를 도왔으나 결국 배신자로 몰려 제 눈앞에서 돌아가셨지요. 그 시체는 가디언즈의 간부가 박제로 만들듯 하여 조종하고 있습니다."
온몸이 피에 젖어있었다. 베이고, 물리며, 찢기고, 뜯겨져나간 모습을 뒤로 팔을 뻗었다. 당신을 가만히 안아주려 하며 속삭이듯 입술을 벙긋거렸다.
"나는 누군가의 증오를 함부로 짊어지려는 대가로, 내가 앞으로도 많은 일을 당할 것이라 믿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속죄가 아닌 영원한 형벌이지요. 당신 또한 여전히 나를 증오하겠지요.. 여전히 당신의 증오를 짊어지려 드니."
이스마엘은 눈을 감았다.
"돌아갈 시간입니다."
끝내 당신은 살아가기 보다 죽는 것이 나을 세상을 내가 만들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마엘은 천천히 당신의 목을 향해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쥐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레지스탕스 프리덤의 대장 정태성이라고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 중 대다수는 저를 테러리스트라 비난하시며 돌을 던지고 욕설을 퍼부으시겠죠. 맞습니다. 세븐스라는 이유만으로 임금을 체불하고 산재사고가 발생해도 어떠한 배상도 하지 않으며 노동법 따윈 준수할 생각도 하지 않는 공장들을 파괴하고 세븐스 고아들에게 온갖 추악한 학대를 일삼는 보육원 원장과 직원들을 저잣거리 효수한 놈들입니다. 그리고 이젠 피해자가 세븐스이라는 이유만으로 돌을 던지며 침을 뱉고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을 폭행하여 죽여도 훈방 조치되는 빌어먹을 도시를 파괴했습니다.
이는 부정할 수 없고 부정할 생각도 없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저는 이 방송을 듣고 계신 여러분들께 몇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가디언즈들은 우리가 비 능력자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숫자와 통계를 제시하며 우리를 억압하고 통제하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만약 맞다면 여러분들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일반인들을 해친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자식들이 일반인들을 해치리라 믿으십니까? 여러분들의 이웃들이, 친구들이, 가족들이, 죄 없는 일반인들을 해치는 잔악무도한 범죄자, 또는 장차 범죄자가 될 것이라 믿으십니까?
다른 질문을 하겠습니다. 이것을 듣고 계신 세븐스 여러분, 여러분들은 일반인들에게 욕설을 듣거나 폭력을 당하거나 심하면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적이 있으십니까? 그 일이 여러분들이 무엇인가를 잘못하여 생긴 일입니까? 아니면 그저 평범하게 길을 걷다가, 물건을 사다가, 친구와 대화하다가, 일반인이라면 아무 위협 없이 할 수 있는 평범한 행동을 하다가 벌어진 일이었습니까?
마지막으로 질문하겠습니다. 저들은 우리가 위험하다며 우리의 모든 권리를 빼앗고 자신들에게 무해함을 증명하면 이 권리를 돌려주겠다고 합니다. 누가 그들에게 빼앗을 권리를 주었습니까? 비 능력자를 가장 많이 죽인 자들이 누구입니까? 세븐스요? 아니요. 바로 비 능력자들 스스로가 그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세븐스를 가장 많이 죽인 자들이 누구입니까? 세븐스요? 아니요. 비 능력자들과 그들의 애완견들인 가디언즈입니다. 그런데도 저희가 위험합니까? 저희가 그들에게 무해함을 증명해야합니까? 그들은 저희에게 무엇을 증명했습니까?
그들은 선한 약자이고 우리는 강한 악인인척 프레임을 씌우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놈들이야말로 진정한 악인이라는 것을요.
저들은 세븐스들의 범죄와 악행을 과장하고 부풀려 홍보하며 우리를 위험인자라 칭하고 평화를 위협하는 무뢰한이라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린 알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차별하고 폭력을 휘두를 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고 발뺌하다가 참다못한 우리가 소리칠 땐 위험하다, 끔찍하다며 외치는 저들의 저열한 습성을요. 놈들은 말합니다. 절대 다수인 비 능력자들이 위협에서 벗어난 것은 사실이며 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했으므로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이고 이것이말로 정의라고...여러분, 집단 괴롭힘, 따돌림이 정의라면 전 차라리 악인이 되겠습니다. 아니, 이미 악인이 되었죠.
지금 이 순간, 이 나라는 거대한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평화와 공존을 꿈꾸는 몽상가들, 절차와 질서를 외치는 위선자들, 어쩔 수 없다며 이해하라고 말하는 버러지 쓰레기 빌어먹을 개자식들!...감언이설과 폭력으로 여러분들을 옥죄는 머저리들이 채운 족쇄를 우리는 이제 그만 끊어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가능성과 힘을 믿어야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고 있는 차별과 어려움을 직시해야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음을 알아야합니다.
지금이 바로 어둡고 외진 억압의 사슬을 끊어내고 우리의 가능성과 열망을 채울 때입니다.
저는 여러분께 저희와 함께 행동해달라 말하진 않겠습니다. 이 길은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이니까요. 그러니 여러분들게 이렇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하루에 한번, 일주일에 한번, 아니 한달에 한번이라도 좋습니다. 부당함에 저항하십시오. 남의 것을 빼앗으라는 게 아닙니다. 임금을 체불한 이에게 정당한 임금을 달라 요구하고 욕을 한 이에게 똑같이 욕설로 되갚아 주십시오. 누군가 당신에게 돌을 던진다면 똑같이 돌을 던지고 당신을 해코지 하려거든 맞서 싸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부디, 정의의 탈을 쓴 족제비들이 여러분들의 이웃을 노린다면 그들을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거짓말을 해도 좋습니다.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도 좋습니다. 그들도 여러분들과 같은 세븐스일 뿐,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저는 지금 이 시간부로 선언합니다! 핍박의 시대는 끝났다고! 저항의 시대가 찾아왔다고! 고통받는 이들이여 저항하십시오! 싸우십시오! 당신의 권리를 말하십시오!
레레시아를 빼닮은 새빨간 분신들이 입을 벌려 웃는다. 그녀는 이제 지긋지긋하단 눈으로 태성을 주시하고, 분신들은 재차 내달려 태성에게 달려들고 터지고 쏟아졌다.
"이런 미인들에 둘러싸여 죽는 것도 영광이지"
아스텔의 칼바람과 신디의 공격이 그를 뒤덮으려고 했던 독액을 한번 더 휘져어버렸다. 시간이 흘러 그를 덮으려고 했던 독액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가 있었던 자리는 마치 애초부터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가 사라짐과 동시에 도시 광장에는 그의 얼굴이 나오며 연설이 울려퍼졌다. 가디언즈들과 경찰들이 어서 방송을 멈추려고 해도 이미 기지 방송국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큰 해킹 피해를 입었다.
아스텔이 걱정하는 카시노프는 이 사건에 개입할 필요성을 못느끼는 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개입하지 않았고 태성이 의도했던 연설은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잭과 레레시아의 활약으로 방송이 나라 곳곳으로 퍼지는 것은 막았지만 적어도 이 근방 여러개의 도시들에게 그의 연설은 울려퍼졌을 것이다.
폭탄도 아니고 폭력도 아니었다. 그저 보잘 것 없는 연설 뿐이었다. 논리도 부족했고 단순히 똑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백번 양보해도 잘 썼다 보기는 어려운 연설이었다. 그런데도 시민들은 동요했다. 이것이 프리덤이라는 조직의 이름 값이었으며 대장이라는 직책의 힘이었다.
시민들은 웅성거리고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의 보잘것없는 언변을 비꼬았으며 누군가는 그의 말을 듣고 자신의 분노를 조금씩 일깨워나가기 시작했다.
0특수부대의 지적처럼 그들은 어느 순간 복수를 위해서가 아닌 테러 행각을 하기 위한 행동에 복수라는 이유를 붙이기 시작했다 태성은 이 사실을 자각하자마자 복수를 복수자들에게 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오래된 체념과 억압으로 빚어진 무기력은 그의 연설 한마디로 바뀌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 또한 힘 가진 자의 헛소리로 치부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 누군가는 그의 말을 듣고 변할 것이다. 누군가는 저항할 것이며, 누군가는 소리칠 것이다.
엘레인은 힘겹게 얼굴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동정심이 섞인 눈으로, 안타까움이 묻어나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난..널 증오하지 않아.."
그리고 슬며시 인자한 미소를 띄었다. 이스마엘의 사정을 이해한 엘레인은 그녀의 생각과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스마엘을 조용히 안으며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저항도 고통도 증오도 원망도 아무것도 품을 수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을 토해내어 하얗게 물들었다. 엘레인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스마엘의 자비에 감사하며 조용히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녀가 만들 세상은 엘레인에게 살아가기 보다 죽는 것이 나을 세상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