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달리는 뒤로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니, 함정을 깔아놨는데 거기로 달려들었단 말인가? 어쩜 저렇게 무능하고 멍청할 수가 있나. 힐끔 돌아보고 계속 달렸다. 골목을 벗어날 쯤 속도를 늦춰 걸으며 장치를 주시했으나...
"...그렇게 많다면서, 왜 반응이 하나도 없어?"
이상할 정도로 반응이 없는 장치를 보며 슬슬 의구심이 든다. 설마, 폭탄 따위는 없다던가.
다른 대원들에게도 연락을 돌리기 위해 이어잭을 누르려던 찰나, 저 멀리 격렬한 전투의 현장을 발견한다. 그 현장 가운데에서 유유자적 차를 마시며 체스를 두는 남자 둘도 말이다. 그녀는 피투성이의 그들을 보고 짜증이 팍 솟는지 미간을 찡그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이지."
짧게 중얼거린 후 독액으로 거대한 손을 뽑아낸다. 원래 이렇게 쓰진 않지만 이번은 써야겠다. 그 손은 근처의 잔해 중 거대한 조각을 집어들더니 두 남자를 향해 던졌다. 거대한 돌덩이는 정확히 체스판을 중심으로 떨어지려 했다. 그녀는 멀찍이 그 자리에 서서 불쾌한 얼굴로 응시하고 있었다.
눈 앞에서 거수자를 놓쳐버린 슈에라는 괴성을 지르며 허공에서 커다란 화염구를 소환했다. 수틀리면 지상으로 던져버릴 태세였다. 그 순간, 어디선가 총성소리가 들리더니 슈에라가 소환한 불꽃은 흩어져버리고 그녀는 힘 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콰직-
하늘에서 사람이 떨어지자 시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팔방으로 달려갔다. 이 혼란이야말로 그가 도망치기 절호의 기회였다.
도망치면서 틈틈히 기계를 둘러보았지만 마치 애초에 폭탄이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이 아무것도 탐지되지 않았다. 그가 움직인 거리가 결코 짧지 않음에도 아무것도 탐지되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히 이상했다.
그러던 중 발길이 향하는 대로 길 이곳저곳을 걷는다면 그는 주변에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윽고 매캐한 초연냄새와 비릿한 피냄새가 그의 코를 찔러왔을 것이다. 아마 누군가가 프리덤 대원이나 가디언즈와 교전을 한 흔적이었겠지만 이상하게도 그곳에는 분노나 긴장같은 느낌 따윈 없었다. 그저 친한 친구들이 만난 것과 같은 평화로운 감정 뿐이었다. 육감이 발달한 쥬데카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가야할 곳을 찾아온 것이었다. 이곳에는 이미 또 다른 동료들이 와 있었다.
마지막으로 고개를 들어 커다란 가디언즈 동상이 있었던 자리를 보면 부숴진 가디언즈 동상 위로 차를 마시며 한가롭게 체스를 두고 있는 피투성이의 두 남자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듣고 싶지 않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스마엘은 얼굴을 왜 가렸냐는 질문에 심히 불쾌한 듯싶었다. "무슨 짓이냐고?" 되묻는 어조가 날카롭다.
"어이. 죄송하지만, 아니, 미안하지도 않네. 국가에 소속된 사람이 세븐스와 비능력자를 구분짓는 것을 제쳐두고 지금 차별 발언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맞나?"
이스마엘의 표정이 단박에 일그러졌다. 안그래도 흉흉한 눈매 커피에 집중할 때보다 더 노기서린다. 왜 가렸느냐, 라. 신원 문제도 있지만 재머 칩은..
"지금 내가 뭐.. 트랜스휴먼이라고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이스마엘이 사회에 나서 세븐스라는 이유로 받을 시선을 고려해 남긴 유품이었기 때문에.. 빡치고 만 것이다..
"나는 트랜스휴머니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트랜스휴먼으로 스스로를 정의하고 있고.. 이미 나 같은 사람이 점차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인데. 그런데- 나같은 사람에게 재머를 끄라는 것 자체부터가 대단한 무례를 저지르는 행동임에도, 나는 국가 기관 소속의 요구이기 때문에 들어줬지요. 그렇죠?"
눈 홉뜬 모습 제법 흉흉했다.
"무슨 짓을 하려고 했냐고요? 나는 급한 약속이 있어서 가던 길이었는데,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트랜스휴먼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는 듯한 심히 불쾌하고 차별적 발언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이죠.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이 사안이 굉장히, 불쾌하고, 내게 있어 모독적인 말이었기에 민원을 넣고자 하니 선생님의 성함은 역으로 여쭙고자 한다는 뜻이에요."
재깍재깍 답하던 이스마엘이 질문을 묵살할 정도면 개빡친 게 맞는 듯싶다. 한 걸음 위압적으로 걸어오는 것도 그렇고.
"두 번 말하지 않겠어요. 어디서 왔냐 했지요. 안식에서 왔습니다. 이쯤되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줄 알 텐데요."
적잖은 분노가 느껴지는 괴성을 뒤로 하고 나아가려 했으나, 총성과 함께 땅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말았으니 돌아볼 수밖에. 그러나 오래 바라볼 수는 없어서. 너는 모자를 눌러쓴 채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지. 이 장소는 누구에게도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다. 그렇게 높은 곳에서 자신을 오래 노출했다는 건, 죽여달라는 거나 마찬가지겠지. 작게 한숨을 흘리며 움직였지만 폭탄 같은 건 감지되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할 즈음 너는 한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코를 찌르는 매캐함과 피냄새. 주변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
"......"
네가 고갤 들었을 때 볼 수 있었던 건 피투성이가 된 채 앉아 체스를 두는 두 사람이었다. 익숙한 얼굴 하나, 낯선 얼굴 하나에 너는 상황을 이해하려는 듯 애쓰는 것처럼 눈썹을 찡그렸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말을 걸어볼까 생각하던 차에 돌덩이가 던져지는 걸 보고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금방 날아가 뭐든 박살내려는 듯했던 잔해는 아공간에 먹혀 사라졌는데...
"끝난다라는 게 무슨 말입니까. 이만 물러나겠다, 그런 얘기입니까?"
아니라면 기다릴 가치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너와 같은 장소에 먼저 도착해서 움직였던 레레시아를 살짝 보다가 시선을 돌린다. 도대체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 라고 말하는 듯한 시선을 선우에게 향한 너는 눌러썼던 모자를 벗어 손에 쥐었다. 저 남자는 누구고, 왜 여기서 이러고 있었는지 설명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레레시아의 열받은 목소리에 선우는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래도 이번엔 진짜 혓바닥을 잘 못 놀리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생각해봐. 나 혼자서 못이기니까 이렇게 시간이라도 끈거지! 이래보여도 프리덤 대장이야! 나혼자서 어떻게 이겨!"
특수부대가 장난감이냐는 그녀의 일갈에 손사래를 치며 변명을 했다. 그의 말대로 처음에는 정말로 서로 죽일듯이 싸웠다. 주변의 크레이터들과 탄자국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몇 합 겨루다가 서로 힘이 빠졌고 결국 두명 동시에 공격을 멈추었다. 결국 두 사람은 못해먹겠다며 왜 운명이란 이렇게 장난질을 치는 것인가 푸념을 하며 어린 시절 자주하던 보드게임을 꺼내었다.
"아니, 굳이 기다릴 건 없어."
"..."
"미안하군, 초록머리, 오늘은 내가 물러날 이유 따윈 없어서 말이야."
쥬데카가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자. 태성은 여유로운 미소를 띄며 친절히 답해주었다.
"이 녀석과 나는 같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동네 형동생 사이야. 마을이 가디언즈 때문에 개박살이 난 이후로 서로 헤어져 있다가 이렇게 다시 만났지. 나는 복수심에 무너져버린 바보들을 이끄는 대장이 되었고,"
태성은 선우가 기특한 듯 일어서서 선우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이 기특한 녀석은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네"
태성은 자신의 앞에 향긋한 커피를 마저 입에 털어놓고는 자신의 킹을 스스로 넘어뜨렸다. 체스판을 보면 태성이 다루던 대부분의 기물들이 죽거나 사용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더 이상 킹을 보호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더 이상의 대국은 무의미했다. 태성은 스스로의 패배를 인정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0특수부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선우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정말 네 말대로 되었네.”
“내가 언제 틀린 말 하는 거 봤어?”
“아주 많이”
“인정”
선우는 0특수부대에게 뛰어갔다. 그리고 뒤로 서서 태성에게 총을 겨누었다.
“체크메이트야, 형, 이제 그만 투항해. 부탁이야.”
총을 잡은 선우의 손이 미묘하게 떨렸다. 태성은 웃으며 그의 말에 답했다.
“체크메이트라니? 난 킹이 아니야. 그저 다른 기물과 똑같은 폰일뿐.” “그저 앞으로 나아 갈 수 밖에 없는 약한 폰이야.”
마지막 전투의 막이 올랐다. 모두의 앞에 서 있는 것은 홀로 쓸쓸히 전장에 남아 있는 ‘폰’하나 뿐이었다.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는 폰을 막고 그를 쓰러뜨려야한다. 엔드 게임의 막이 올랐다.
인내해야했다. 이상향을 위해 웃는 세월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런 차별을 이길 수 있음을 알지 않은가. 이 정도는 슬럼에서 몇 번이고 겪었기에 익숙했지만 안타까움을 미처 지울 수는 없었다. 이스마엘은 어깨를 누르며 비웃을 적 잠시 생각했다. 그렇지만, 비단 이스마엘이 아닌 전체를 욕하는 것인데 넘어가도 되는 것인가? 슬럼에서 몇 번이고 겪어 익숙하다지만, 그동안 이 사안에 대해선 참았던가?
"세븐스라서 안 된다라."
기분 나쁜 전류에 재머 칩에 잠깐 오류가 났는지 손목이 시큰거린다. 조롱과 경고를 뒤로 이스마엘은 천천히 눈을 감고 심호흡 하려다 눈을 가늘게 떴다.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지만 이번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할지 쉬이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인내는 이쪽에서 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결정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사랑으로 품고자 나탈리먼이란 성을 온전히 기억했으니. 이스마엘은 앞으로 나아온 당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이내 주머니에서 명함 하나를 꺼냈다. 무광의 검은색과 주황색으로 이루어진 고급 진, 안식의 연락처가 담긴 명함. 그것을 바닥에 던지며 입을 벌렸다.
"신분증이라. 글쎄요. 당신은 이쪽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만약 아무런 대처도 없었더라면 염력을 통해 당신을 강제로 무릎 꿇리려 했을 것이고, 그대로 얼굴을 거세게 걷어차듯 하며 도망치려 들었을 것이다.
선우와 태성의 대화는 그녀에게 촌극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주변 사람들을 휘말리게 해 곤란하게 만드는 불쾌한 부류의 촌극. 태성이 선우에게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었으니 하자, 바닥의 돌맹이 하나를 더 걷어차며 반박한다.
"누가 누구 친구야. 개소리는 꿈에서나 지껄여."
그녀에게 이선우는 같은 저항군의 같은 부대원일 뿐인, 어쩌다 그렇게 만난 사이에 불과했다. 그러니 정면으로 태성의 말을 부정하며 허리장식의 모조 모검을 해방시켰다. 드디어 검은 무장이 풀려나 그녀의 몸을 감싸고, 조각난 검조각이 길게 이어진 채찍이 그녀의 오른손에 들렸다.
"그래. 그렇게 나오는게 깔끔하고 편하지."
무장을 갖추고 선우가 특수부대 쪽으로 오기 무섭게 태성을 향해 달려든다. 지면에서부터 독액을 위로 솟구치며 그 반동을 타고 뛰어올라, 검붉은 독액이 줄줄 흐르는 채찍을 휘둘러 태성의 몸을 구속, 추가로 독을 스며들게 해 타격을 입히려 한다.
"살을 태우고 피를 썩게 하는 독이니. 꽤 따끔할 거야."
따끔이 아니라 산 채로 타들어가는 고통이 느껴지겠지만. 알 바인가. 그녀는 곧장 다른 손으로 독액을 생성해 잇달은 공격을 대비하고 있었다.
이스마엘이 분노를 참는 듯 심호흡을 하자 엘리샤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몸에 강한 전류를 둘러 폭발시켰다. 찬란한 밝은 빛이 그녀를 덮고 전기의 열이 주위에 확산되었다.
"네 놈의 추악한 행패를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
나탈리먼은 자신의 몸에 고압전류를 두르고 이스마엘에게 돌진했다. 이스마엘의 말이나 그녀가 던진 명함 따윈 보지도 않으며 그녀의 명함을 태워버리고는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죽어라 쓰레기!"
그녀의 전기에 주변 전자기기가 완전히 망가졌고 이는 이스마엘의 폭탄 제거장치 또한 마찮가지였을 것이다. 전기가 물질을 관통하면서 생기는 열이 아스팔트를 녹이기 시작했고 바닥의 타르가 발걸음을 떼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때문일까? 타르의 끈적임이 그녀의 이동속도를 일시적으로 늦췄고 그틈에 이스마엘의 염력과 발길질이 그녀를 강타했다.
물론 이스마엘 또한 몸 성치 도망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탈리먼은 분명 고압 전류를 몸에 두르고 있었기에 약간의 저릿함은 남아있었을 것이다. 이대로 다른 동료들과 합류할 지 아니면 다른 이들을 찾을 지 그것은 이스마엘의 선택이었다.
제 주먹을 쥐었다가 풀기를 반복하며, 신디는 그저 지긋이 둘을 건너다본다. 이건 둘의 재회의 순간이다. 타인인 제가 끼어들 이유가 없으니 그저 끝이 어떻게 될지 기다리며 지켜볼 뿐. 그러다 대화가 파국으로 치닫자 그때야 발걸음을 뗀다. 태성의 뒤 쪽으로 포탈을 열어 통과 후, 제 보검으로 그의 다리를 베려 시도 했다. - 모바일 😬
진정 추악함이 무엇인줄 모르는 걸까. 이스마엘은 강한 전류에 명함이 타버리는 것을 보며 안타깝다는 눈길을 보냈다. 제에게 듣기로는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자라 명함 하나에도 가만두지 않는다고 하던데. 추악한 행패, 쓰레기……. 눈에 안타까움 대신 슬픔이 깃든다. 그런 말에 익숙해져버린 자신에게도, 뱉는 것이 익숙해져버린 당신에게도. 역시 이상향이 필요하구나.
"!"
다만 지금은 생존이 우선이다. 이스마엘은 타격할 적 느껴지는 강한 저릿함에 몸을 크게 움찔거렸다. 외마디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몸을 두어 번 꿈틀거리더니 겨우내 제정신을 가눈다. 위험한 능력이다. 차라리 지금 더 따라오지 못하게 하자 판단했는지 염력을 이용해 녹아내린 타르에 고개를 파묻게끔 강하게 짓누르려 시도한 뒤, 비틀거리는 몸을 아예 염력으로 가눠 띄우더니 빠르게 자리를 빠져나가려 시도했다. 소란이 이는 곳으로 가려 했으나 전력 때문에 전자기기는 고사하고 페이시도 먹통인데 이대로 합류는 무리일 터다. 차라리.
제지하자. 차라리, 다른 사람을 제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르나 자리를 빠져나가며 주변을 훑으려 들었다.
태성은 웃으며 하늘 높이 점프했다. 독이나 아공간, 포탈이나 육감 같은 다채로운 능력이 아닌 단순한 '힘' 그자체가 그의 세븐스였다. 그는 품속에서 알약 두 개를 꺼내 삼켰다. 분명 이 약의 복용법은 하루에 한알이지만 이 상황에서 그런 것은 의미가 없었다. 이기지 못한다면 죽고 이기면 사는 상황에서 위험따윈 중요치 않았다.
자, 에델바이스, 너희들의 강함에 경의를 표하며 나도 전력으로 상대해주마!
그와 동시에 바닥을 내려쳐 그 파장으로 주변 바닥을 파괴하고 충격파를 전달했다. 이 공격으로 자신의 다리를 노리던 신디를 피할 수 있었다.
"미안하군, 멜로가 널 특히 조심하라 했거든? 능력보다 주먹이 엄청 센 꼬마라고 했던가?"
태성은 신디에게 멜로가 널 죽이려고 작정을 했으니 조심하라고 언질을 주었다. 아무래도 그에게 있어서 신디는 공포로 각인된 것 같았다.
레레시아가 독액을 위로 솟구치게 하여 반동으로 튀어오르자 태성은 놀란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작 독을 다루는 것이 전부인 그녀가 이정도까지 능력을 잘 활용할 지는 몰랐다는 듯했다. 이윽고 검붉은 독액이 줄줄 흐르는 채찍을 휘둘러 태성의 몸을 구속하려고 하자 그는 주변의 돌덩이를 달려 방어했다.
"미안하군, 원거리 공격은 누구 덕분에 질릴정도로 맞아봐서 말이야. 그래서, 우리 꼬맹이들은 어디로 데려가셨나?"
모두의 공격을 간신히 피한 태성은 자신을 노리고 있는 이들을 보며 물었다.
정말 마지막으로, 안될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해서 묻는 데 말이야.. 우리를 내버려두면 안될까?
분명 먼저 에델바이스에게 선전포고를 한건 그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내버려두라는 것은 어떤 꿍꿍이가 있어서 인걸까? 아니면 진심일까?
"너희들은 아마 너희의 목적을 이룰꺼야. 천하의 레이버를 쓰러뜨리고 온갖 나쁜 가디언즈로부터 세븐스들을 지켜냈으니까."
아마 이곳에 서 있는 이들 중 일부는 이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작은 일탈과 분풀이를 내버려둘 순 없을까? 어자피 가디언즈와 싸우다 소탕될 조직인데 말이야"
태성은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언급하면서 그는 계속해서 테러 행각을 이어나가겠다 말하고 있었다. 그의 광기어린 복수에 대한 집착을 이제는 그만 깨어버릴 시간이 찾아왔다.
"글쎄다. 어디 평화롭고 조용한 곳에 가 있지 않겠어? 더는 목덜미를 가리지 않아도 되는 곳 말야."
그녀가 휘두른 채찍은 그대로 돌덩이를 감싸고 부수었다. 와르르 무너지는 돌덩이 중 일부는 독에 녹아 질척이는 덩어리로 떨어진다. 호락호락 당해주지는 않겠다는 건가. 그녀는 지면으로 착지하며 독 웅덩이를 만들었다. 거기에 반쯤 채찍을 담그고서 태성을 응시했다.
"이게 어딜 봐서 작은 일탈인데? 아무리 세븐스를 제외하고 피해를 냈다고 해도, 너희가 해온 짓은 이미 학살이나 다름없어. 그런 너희가 가디언즈에게 처리당하면 세븐스의 처우만 더 가혹해지겠지. 멍청한 것들. 너희가 진정 원망해야 할 대상은 가디언즈 아냐? 그런 힘을 갖고도 가디언즈에게는 쫄고 덤비지도 못 하면서 대가리 덜 마른 애처럼 징징대기까지 해? 진짜 질린다 질려. 나이를 대체 어디로 처먹었니? 그 나이 먹도록 생각도 제대로 못 해?"
처음엔 차분히 얘기하던 그녀였지만 말 하다보니 서서히 열이 뻗치는지 갈수록 말이 험해졌다. 기어코, 너희 부모님은 그렇게 가르치시던? 그 말까지 내뱉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이지. 그녀도 이들과 똑같아졌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전신에 끼친다. 복귀하면 라라에게 고맙다고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독액에 담구고 있던 채찍을 끄집어낸다. 유연하게 흔들리는 채찍이 단숨에 아홉 갈래로 늘어나며 더욱 흉흉하게 독액을 번들거린다. 다시 한번 솟구치는 독액을 발판 삼아 뛰어오른 그녀는 태성의 머리 위에서부터 아홉 갈래 채찍을 휘둘러, 그의 전신을 갈겨놓으려 한다.
>>939 두번째 일기토! 1부에서는 시간에 쫓겨서 급마무리를 한터라 이번에 상황이 되면 딱 맞게 하려고 했는 데 마침! 운이 좋았어요! >>940 원래 이렇게 약해보이는 꼬마일수록 최강자인 법! >>941 좋은 질문! 왜 선우가 프리덤의 조직 구성이 개판이라고 평가한지 구체적으로 나오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