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5Patima Maria Casillas García 8 [새로운 세상]
(Poa4BkjmGY)
2022-11-20 (내일 월요일) 15:18:14
레지스탕스 '옴브라'(Ombra)는 라틴어로 '그림자'를 뜻하는 이름대로 음지에서 은밀히 활동하는 것을 지양하는 조적이었다. 그들이 주된 활동은 학대당하는 세븐스를 구출하거나 폐기 위기의 어린 세븐스를 거두어 보육하는 일이었으며, 그들은 조직의 우두머리들, 공간을 복제하는 세븐스를 가진 '리샤르 로베스피에르'와, 거울을 입구 삼아 특수한 이공간을 구현하는 세븐스를 가진 '자넷 클라리스'가 구현한 세계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성향 자체는 온건하지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음지에서의 은밀한 활동을 지양한다는 조직이 비능력자 요인 암살과 테러 전문 특수부대인 '벤데타'(Vendetta)를 두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 부대는 신설된지 얼마 안 된 부대로, 전투부대 대장이었던 '에스메랄다'의 강력한 추진으로 만들어졌다.
에스메랄다는 평화적인 비둘기파인 상관들과 조직의 분위기와는 달리 강경한 성향의 매파였다. 본래 떠돌이 세븐스였던 그녀는 여러 레지스탕스를 전전하던 중 옴브라에 입단했고, 실력을 키워 입지를 넓혀나갔다. 폭력과 가디언즈와의 접전을 최대한 피하려던 수뇌부를 못마땅해하던 에스메랄다는 수도 없이 많은 설전을 통해 대(對) 가디언즈 전투부대 '살바토르'(Salvator)를 만드는데 성공했고, 가디언즈와의 전투를 통해 더 많은 세븐스를 구출할 수 있었다. 이로인해 옴브라 내부로 파벌이 나뉘어 에스메랄다를 따르는 무리가 생겨났고, 수뇌부는 전과 다른 위상과 세력을 얻게 된 에스메랄다의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그녀가 공을 쌓일수록 에스메랄다의 지위는 더더욱 공고해져갔다.
여기서 잠시 에스메랄다의 이야기를 하자면, 그녀는 매파라는 언급답게 극단적인 사상의 소유자였다. 에스메랄다는 세븐스 우월주의자였고, 늘 세븐스는 신에게 선택받은 종족으로서 비능력자보다 더 우월한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렇기에 비능력자들을 발 밑에 두고 지배해야만 하지만 쪽수에 밀려 하등한 종족에게 박해당하는 수모를 겪고 있으니 이는 백배천배의 값으로 앙갚음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있어 반항하거나 말을 듣지 않는 비능력자는 죽어 마땅한 놈들이었고, 강함이야말로 세븐스의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에스메랄다는 가디언즈 또한 극렬히 증오했는데, 그들이 U.P.G의 충견으로서 비능력자에게 복종하고, 같은 세븐스를 탄압하는데 앞장선다는 이유였다. 그녀는 가디언즈를 동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에스메랄다에게 있어서 세븐스는 정점 위에 군림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오히려 비능력자의 지배를 받고 있으니 매우 굴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가디언즈를 배신자로 규정해 가차없이 처단할 대상으로 보았다.
이뿐만이 아니라 사실 그녀의 본명은 에스메랄다가 아니었다. 사실 '비토리아 에스텔'이라는 본명이 따로 있었는데, 비능력자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거부하고 세븐스로서의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스스로 지은 이름이 지금의 '에스메랄다'였다. 스페인어로 '에메랄드'를 뜻하는 에스메랄다는 그녀의 세븐스에서 비롯된 이름이었는데, 그녀는 에메랄드빛 액체를 생성해 그것을 굳히거나 조작할 수 있는 세븐스를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에메랄드빛 탄환을 사방팔방 발사하는 것부터 사람의 몸 속에 액체를 주입해 터뜨리는 과격한 방식까지 그녀가 세븐스를 다루는 방법은 다양했다. 진짜 에메랄드가 아닌 미지의 물체였기에 단단함과 공격력도 뛰어났고, 이것으로 방어도 할 수 있었다. 거기다 온갖 무술을 섭렵한 달인이었기에 에스메랄다는 전투마다 눈부신 활약을 했다. 에스메랄다만의 신념은 이름을 바꾸는 것 만으로 그치지 않았는데, 그것은 비능력자가 세븐스의 뒷목에 새긴 숫자 '7'을 가리기 위해 목에 초커를 찬 것이었다. 그녀는 이를 노예의 낙인으로 규정해 자신의 휘하에 있는 부대원들에게 자신처럼 초커를 착용할 것을 명령했고, 이는 나아가 에스메랄다 파벌의 상징이 되어 전투부대원이 아니어도 착용하는 이가 늘어났다.
에스메랄다에 대한 설명은 이쯤에서 그만 하고, 이제 파티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시간이다. 파티마는 타고나길 강골인 신체와 피를 무기로 만들 수 있는 세븐스를 가진 덕(?)에 에스메랄다의 눈에 띄어 그녀가 직접 무술을 가르치게 되었다. 에스메랄다는 파티마의 전투력이 쓸만해지면 자신의 특수부대에 배치시켜 암살이나 요인 납치에 쓰러고 했다. 그러나 에스메랄다에겐 안타깝게도 파티마는 그녀와 정반대의 신념을 가진 인물이었다. 프란시스카의 이상향과 가치관을 물려받은 파티마는 언니의 말대로 무기를 잘 다루거나 싸움을 잘 하는 사람보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더 강하다고 믿었고, 폭력은 아무것도 지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탓에 에스메랄다가 자신의 사상을 설파할때 따박따박 말대답을 했고, 그럴때마다 두들겨 맞았지만 폭력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 말을 고분고분 듣는 법이 없었다.
거기다 처음엔 폭력을 쓰지 않겠다며 에스메랄다의 무술 교육을 거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스스로와 남을 지킬 힘 정도는 기르라는 충고를 받아들여 자신의 힘을 타인을 위해 쓰겠다고 다짐하고는 마음을 바꿔 열심히 훈련했다. 그렇다고 에스메랄다의 가치관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어서 파티마의 몸엔 훈련으로 생긴 상처보다 에스메랄다에게 두들겨 맞아서 생긴 상처가 더 많이 늘어갔다. 그렇게 오늘도 훈련 중 분노한 에스메랄다에게 얻어터져 생긴 상처를 달고 숙소로 돌아가던 파티마의 옆으로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야, 꼴통!"
그때 파티마는 그것이 자신을 부르는 것이라곤 생각하지도 못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채 계속 걸어나갔다. 파티마는 그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고 나서야 그것이 자신을 부르는 것임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자기 또래의 소녀가 있었다.
"네가 소문의 그 꼴통이구나? 에스메랄다한테 맨날 개긴다며?"
그 소녀는 건강하고 활달한 인상에 살짝 그을린 피부와 카키색에 가까운 녹색 머리, 해질녘 노을처럼 진한 주황색 홍채를 가진 아이였다. 장난스럽게 미소 짓던 소녀는 파티마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나는 샤를로테. 물론 여기서 불리는 이름이지만. 진짜 이름은 유스티나. 부르고 싶은대로 불러. 아, 에스메랄다 앞에선 샤를로테라고 불러야 해. 안그러면 너나 나나 얻어터지니깐..." "...앰버." "앰버?" "눈이 호박(琥珀)같아서. 그래서... 앰버..."
자신을 샤를로테와 유스티나라고 소개한 소녀는(이하 유스티나), 파티마가 자신을 앰버라고 부르자 잠시 벙찌더니 곧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파티마는 영문을 몰랐지만, 유스티나가 숨이 넘어갈듯 웃자 자신도 따라 웃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보았지만 소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고 큰 소리로 웃었다.
무시하고 도망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거늘. 이스마엘은 강한 전력에 머리카락이 서는 것이 느껴지자 급히 뒤를 돌았다. 아, 늦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안돼."
이스마엘은 이 검은 기운에 대해 알고 있었다.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능력이었고, 여기 있어서도 안 됐다. 나탈리먼의 몸이 산산조각나며 부서질 적, 이스마엘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안타까운 사람. 살생을 벌이고 싶지 않았는데,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고, 최대한 피 보는 일 없이 도망쳐 이상향을 보게끔 하고 싶었는데…….
"어째서, 어째서입니까."
시체를 향해 걸어가는 당신을 한 번, 그리고 민간인이 있을 주변을 둘러보며 이스마엘은 허망하기 속삭였다. 제발 도망쳐. 그리고 당신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결국, 결국 이 길을 선택하고자 한 겁니까..? 절망스러워 이 방법밖에 없냔 말입니다.."
상대의 다리를 노리려던 공격은 실패로 돌아간다. 높이 점프한 그를 놀랜 얼굴로 올려다보다, 충격파를 피하려 몸을 움직이지만 채 피하지 못하고 밀려 바닥을 구른다. 입안으로 들어온 모래를 뱉어내고서,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괴물이네 정말. 저래가지곤 잘 못 접근했다가는 뼈도 못 추릴 거 같고 정말. 생각하며 있다가는 절 꼬마라 부르는 말에 눈가를 구긴다.
"뭐 꼬마요?"
하.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선 제 보검을 강하게 잡는다. 침착하게 공격할 타이밍을 기다리다, 태성이 채찍을 피하려고 하면 그 때의 빈틈을 노려, 다시 그에게 달려들어 다리를 베려 시도한다.
태성은 레레시아의 말을 듣고 폭소를 터뜨리며 농담 수준이 제법이라며 칭찬을했다. 뒤이어 왜 가디언즈를 피하면서 징징대냐는 그녀의 말을 듣고 어깨를 으쓱올리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래? 그런 대원이 있다면 솔직히 실망이긴 한데, 뭐 어쩔 수 없지. 각 대원들의 행동을 내가 다 통제할 수는 없으니까. 네 말대로 가디언즈를 피하고 테러 행위만 집중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고 물론 나처럼 가디언즈들을 골라 쳐죽이는 이들도 있어. 사실 뭐가 맞고 뭐가 틀리다고 할 수 있겠어? 둘 다 복수에 미쳐서 깽판치는 거지."
이내 가정교육을 언급하는 그녀의 말에 에델바이스는 아무나 받아주는 조직이냐면서 조직 운영은 자신들과 별 다를 바 없다며 에델바이스의 큰 성과는 조직 운영력보다는 각 대원들의 역량에 달려있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으로 말하는 것인지 그저 레레시아를 조롱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둘 다인 지는 알수 없었다.
"멜로가 그러던데? 생긴 건 밉살스럽게 생겨서 온 몸에 링 같을 걸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애를 특히 조심하라고"
아무래도 자신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팬 신디가 그에게 큰 트라우마가 된 모양이었다.
"주먹 한방 맞았는 데 뼈에 금이 갔다고 했나? 다친 걸 치료까지 해줬는 데 너무한 거 아니냐며 투덜거리던데?"
태성은 멜로가 평가한 그녀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고는 뭐가 그리 즐거운 지 혼자 웃었다.
그 직후 레레시아의 채찍이 태성에게 날아들었다. 그는 공격이 단조롭다며 비웃은 뒤 옆으로 몸을 피했으나 그틈을 노리고 신디가 태성의 다리를 베었다. 그와 동시에 레레시아의 아홉갈래의 채찍이 날아들자 그는 짧은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틀어 간신히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리 부분이 채찍에 스친듯 독이 스며들고 말았다.
"크윽.."
0특수부대의 맹공에 당황한듯 보였지만 이내 침착하게 발을 세게 굴러 자신의 주위에 큰 충격을 준 후 그 부산물로 나온 커다란 돌덩이를 하늘로 향해 던졌다.
아직 완전히 죽지 못한 나탈리먼이 희미한 정전기를 내며 저항하자 엘레인의 검은 가시가 그녀의 머리를 완전히 으스러뜨렸다.
그녀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이미 여러번의 전투를 치뤘는 지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있었고 몸 곳곳에 정체 불명의 작은 살점들이 붙어있었다. 엘레인은 왼 손에서 검은 기운을 생성하더니 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녀의 손에 모인 기운은 점점 커지더니 농구공 정도의 크기에서 짐볼 수준의 크기로, 이내 사람 한명은 우습게 들어갈 크기로 커졌다.
"어째서냐고? 지난번에 말했잖아. 너희들의 이상향은 내겐 지옥일 뿐이라고."
이내 에너지가 발사되는 소리가 들리며 거대한 에너지 탄이 이스마엘을 향해 날아갔다. 만약 받아낸다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피한다면 뒤에 있는 도시가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너의 같잖은 동정심과 이해심은 나를 짜증나게 만들 뿐이야"
이스마엘의 간절한 희망과는 달리 엘레인은 이상향을 보길 원치 않았다. 그녀에게 이스마엘의 이상향은 고통이었으며 지옥과도 같았다.
너무나 태연하게 말하는 태성을 보면서 그녀는 더이상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인가? 제대로 사고를 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맞나? 그런 무례한 생각이 아무렇지 않게 머릿속을 지나가고. 그 생각은 말로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정말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주옥 같다. 제대로 알지도 못 하면서 혓바닥 놀리는 꼴이 아주 가상하다 가상해! 에델바이스의 성과가 조직이 아니라 대원들의 역량 덕분이라고? 그런 생각머리로 조직을 만들어 이 깽판을 쳐? 네가 사람이냐? 머릿속에 우동사리 밖에 안 들었지?!"
이후 신디와의 접전으로 틈이 생겨 태성의 다리에 채찍이 스치자, 놀라운 순발력으로 몸을 틀어 채찍으로 추격하듯 태성을 공격한다. 독액으로 만들어지고 독액을 철철 두른 채찍은 더욱 날카롭고 길게 늘어나 태성의 전신 어디라도 파고들 듯이 움직였다.
"너희 같은 버러지들과 에델바이스를 같은 급으로 취급하지 마! 그저 눈 앞의 복수에 눈이 멀어 사방천지 구분도 못 하는 버러지 떨거지들 주제에, 분노를 삭이며 무기를 드는 레지스탕스가 같은 줄 아냐! 너희는 그저 뺏긴 것에만 질질 짜는 머저리들이다. 개만도 못한 인간 이하라고!"
태성이 주위에 충격을 주자 잠시 비틀거리지만 뒤로 뛰어 거리를 약간 벌린다. 동시에 공중으로 떠오르는 돌덩이를 보고 쳇, 혀를 찬다. 곧장 바닥에 손을 짚어 독액의 가시를 태성에서 쏘아내면서 동시에 고성을 내지른다.
"이선우!!! 뒤에서 뭐 해! 너도 명색이 에델바이스면 뭐라도 하라고! 아니면 너도 같은 꼴로 취급받고 싶은 거냐?!"
으스러진 머리와 피로 범벅진 도심. 역겨운 광경보다 더 괴로운 것은 결국 싸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을 터다. 이스마엘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재머로 감출 수 없다는 사실에 통탄했다. 결국 지옥일 뿐이라고. 심호흡.
"같잖은 동정심이라 생각해서 다행입니다."
그대로 이스마엘의 무장이 전개됐다. 얼굴의 상반부를 덮는, 개를 형상화한 가면과 정장에 가까운, 검은 제복차림. 이스마엘은 에너지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어깨의 망토를 휘두르듯 일차적으로 막아세우고, 염력으로 된 장을 펼치려 들며 최대한 충격과 피해를 줄여보고자 했다.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표정은 반절밖에 보이지 않지만 차라리 이게 나았노라 스스로 생각했다.
"마지막 경고였음에도……."
결국 우리는 섞일 수 없구나. 물과 기름이로구나. 이스마엘은 탄식하듯 속삭이다 충격에도 꿋꿋하게 유리조각을 띄웠다.
한다는 말이 다 한심스러울 뿐이다. 이어지는 말에는 "누가 적인데 치료하래?" 하며 짜증 난 듯 불퉁스러운 어조로 말한다. 다음번엔 그 뼈를 가루로 만들어버려야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상대를 노려본다. 계속 사람의 신경을 긁어대니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어떻게 저 혀를 먼저 잘라버리든지 해야지. 타이밍을 노렸던 제 공격이 먹혀들면 이어진 충격파에 뒤로 밀려나고, 돌덩이를 던지는 것을 보고선 포탈을 만들어 피하려 시도한다.
그녀의 생각처럼 프리덤의 대원들과 태성은 분노로 제대로된 사고를 잃어버리고 그저 분노에 몸을 맡기고 몸이 가는 대로 행동하는 이들에 불과했다. 세븐스 중에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가 있다면 전후관계 상관하지 않고 쳐들어가 파괴행각을 저질렀다. 그들의 행동에 어떠한 정의나 목적의식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참기 어려워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행동으로 옮기는 누구보다도 약한 이들이었다.
"누군 공격 안하는 줄 알아!"
뒤에 있지만 말고 뭐라도 해보라는 레레시아의 말에 선우는 계속해서 부스터 시동을 걸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무래도 처음 태성과 교전하면서 고장난 모양이었다. 결국 그는 부스터를 아공간에 넣어버리고는 권총을 난사했다.
태성이 공격을 허용하자 레레시아의 맹공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놀라운 순발력은 채찍을 자유재로 움직일 수 있게 해주었다. 마치 살아있는 뱀이 먹잇감을 노리는 듯 태성을 추격하자 그는 채찍을 피하기에 바빴다. 독액으로 만들어진 채찍은 더욱 날카롭고 길게 늘어나 태성의 전신 어디라도 파고들 듯이 움직였다. 그는 선우의 손을 보고는 권총이 탄환이 향할 것으로 추측되는 위치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선우가 방아쇠를 당기는 타이밍을 소리를 들어 추측하고는 타이밍에 맞게 그의 궤적 안을 지나쳤다. 때늦은 총알은 그대로 채찍을 쏘아버렸고 그를 쫓던 채찍의 방향이 크게 틀어졌다. 그러나 독액이 튀어 태성의 어깨죽지에 스며들었다.
"누가 아니래? 처음에 우리 조직명은 [바보 동맹]이었는 데, 정부에서 멋대로 [프리덤]이라는 폼나는 이름으로 바꾸더라고? 아무래도 바보 동맹에게 도시가 파괴되고 도시 주요 권력자가 살해되었다는 뉴스를 내보내긴 창피했나봐?"
태성은 옛날 생각이 난 듯 레레시아의 채찍을 피하는 와중에도 웃음을 터뜨렸다. 분명히 상황은 그에게 더욱 안좋게 흘러가고 있었지만 그는 여유로운 태도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마치 숨겨둔 한수가 있는 것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막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이스마엘은 만족한 얼굴을 보며 가면 너머의 눈을 좁혔다. 망가짐의 말로는 비참함임을 익히 아는 사람이 어째서 파멸을 추구하는가. 이것 또한 저 사람의 선택이노라 몇 번이고 되뇌이고 뇌까린다 한들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끝났지요. 일방적인 질문이 남았을 뿐."
비참함 억누른다. 검은 기운에 막혀 흩어지는 유리 보며 이스마엘은 결국 싸울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만다. 절대 대화로 풀 수 없다. Schadenfreude, 양손 고이 모아 입술 달싹여 보검의 이름을 부르자 무장만 하고 보검만 없는 줄 알았더니만, 골반에 얼추 닿을 듯한 길이의 지팡이 하나가 이스마엘의 손에 쥐여졌다. 당신을 내가 어떻게 해야할까. 가면에 가려진 눈이 침잠한다.
"강하지 않기에, 이렇게 발악하는 겁니까?"
그렇다면 발악에 어울려야 하겠지. 결국엔 누군가를 해치는 것을 망설여서 안 됨을 다시금 깨닫게 되겠지. 칼날을 마주한 이스마엘이 지팡이를 한뼘 들어올렸다 땅에 다시 내릴 적, 짓누르는 힘에 의해 땅이 거센 반동과 함께 갈라지더니 잔해가 위로 떠오르고 굳어져, 마치 굳건한 벽처럼 앞을 막아섰다. 반동은 각오한 바였다. 이상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못할까. 지금은 사적인 감정을 누를 때였다. 이스마엘이 좌중을 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