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무너진 이후로는 규율과 질서는 피와 폭력으로 얼룩져서 변질되어버렸다. 피와 폭력, 수많은 죽음들로 쌓아올려진 도시에서 질서라는 것이 존재하는 곳은 저 높디 높은 탑이 위치하고 있는 중앙뿐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중앙을 틀어쥐고 있는 하멜 가문이 무기들을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장 먼저, 동부의 수인들과 부딪힌 호위는 수적으로 불리하다는 디메리트에도 한발도 물러섬 없이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동부의 수인들을 막아냈다. 다만 수인들끼리 뒤엉켜서 싸우는 것치고는 점잖고 젠틀한 반응이었는데, 하멜 가문에서 받은 ' 탄야 하멜의 비즈니스에 동행하여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습격에 대비, 보호하는 걸 우선으로 할 것. ' 라는 명령에 충실한 모습이었다. 당신이 발길질을 날려서 싸움에 섞여들었을 때 호위는 동부 수인 중 한명을 들어올려 바닥으로 내리꽂아 제압하는 순간이었고 당신이 불평을 늘어놓는 순간에도 동떨어진 것 마냥 선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탄야 하멜은 담배를 꺼내 물어서 불을 붙혔다.
특유의 바닐라향이 섞인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방금의 그 웃음과 눈빛은 어디로 갔는지, 흥미가 사라져버린 무심하기 짝이 없는 은청의 시선이 당신과 호위를 제치고 접근해 온 동부의 수인을 응시하는 것도 잠깐一 ,
" 난 분명, 말했어. "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은 무감한 목소리다. 당신의 불평에 대한 대답일지도 모르고, 그저 혼잣말일지도 모른다. 어느쪽이든 그는 말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가까이 접근한 동부 수인의 무릎을 걷어찬 그가 무기력하게 바닥을 향해 늘어트리고 있던 손을 들어서 주저앉으려는 수인의 턱을 후려쳤다.
" 도망가도 된다고 말이야. "
달디단 바닐라향을 두른 눈표범 수인은 무감한 목소리로 중얼이던 말을 끝맺으며 억하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쓰러지려는 수인을 다리로 짓밟는다. 무력하게 당신이 휘두르는대로 거부감 없이 휘둘렸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수인을 짓밟으며 태연히 답하는 탄야를 보며 카리나는 기가 차다는 듯 혀를 차며 중얼거리다, 문득 떠올랐는지 깊은 한숨을 푸욱 내쉬며 중얼거린다. 사실 어쩌면 지금 탄야가 바라는대로 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더 기분이 나빴다. 이건 그러니까, 어, 괜히 일을 키우는 탄야 떄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카리나는 입술을 깨물곤 주변을 둘러본다. 분명 한녀석은 소식을 전하러 가고 있을거란 생각이었다.
" 오케이 ,찾았다. "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아니 지금 당장은 덜 커지도록 하기 위해서 카리나는 눈을 굴리다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쥐 수인으로 보이는 짧은 수인이 뒤를 돌아보며 달려가는 것을 발견한 카리나는 일단 이쪽은 위험하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는지 그 뒤를 쫒아 달리기 시작한다. 카리나는 살다살다 자기가 일이 덜 커지게 만드려고 달린다는 생각을 하며 인파 속을 요리조리 피해 달리는 쥐 수인을 따라잡았다.
" 야야,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 " " 이.. 빌어먹을 인간계집이..! "
잽싸게 따라잡은 카리나를 보며 당황한 쥐 수인이 내뱉는 말에, 카리나는 그런 말 정도는 하도 들어서 아무런 감흥도 없다는 듯 손을 뻗어 옷을 잡아챌 뿐이었다. 그리곤 옷을 잡아챈 손의 손목을 반대편 손으로 잡고는 몸을 휙 돌려선 쥐 수인을 바닥에 내리꽂아버린다. 수인의 신음소리에도 아랑곳않고 넘어트린 여자는 그대로 머리를 걷어차서 기절시킨다.
" 하아.. 그래도 한녀석 밖에 없나보네. "
번거로움이 개미만큼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며 카리나는 혀를 차곤 쥐 수인을 끌고 도로 탄야가 있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별일 없겠지 하는 이유 모를 안심을 품은 체로.
어디까지나 수인의 범위 내에서만 국한되는 이야기지만 탄야 하멜은 그 범위에서는 결코 우수한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한 열성 인자다보니 동부의 수인들의 눈에는 '보호' 와 '제압' 에 중점을 두고 자신들을 휘젖고 다니는 호위보다야 상대하기 쉬울거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효율을 노리고 있는 그를 노리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그것은 자신들의 눈 앞에 있는 열성 눈표범 수인이 하멜 가문의 탄야라는 것을 알더라도 열성 一 그러니까 약자를 노리는 건 수인들 핏줄에 흐르는 본능에 따른 결과였다.
그런 수인들의 본능이야말로 그가 바라던 바였다.
스스로 숨을 끊어낼 용기도 없는 주제에, 죽기를 바란다. 사실은 그날 , 자신은 그 장소에서 죽었어야 했던 것이다. 욕설과 고함의 소음 속에서도 당신의 타박에 가까운 하소연 一불평一을 캐치해낸 건지, 탄야 하멜은 건조하기 짝이 없는 무심한 얼굴을 부드럽게 풀어내며 한숨을 쉬듯 짧은 웃음을 흘렸다. 갈망하고 열망하던 것이 기꺼이 다가왔는데 피해야할 이유는 없다. 오늘이야말로 이 숨만 쉬며 살아가는 시체와 같은 몸뚱이를 뉘일 수 있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당신이 쥐수인의 뒤를 쫒아 달려나갈 때 그를 돌아봤다면 은청의 시선이 아주 잠깐 당신을 바라봤다가 떨어진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은청의 시선에 드러났다가 잠겨버린 것은 무엇일까.
탄야 하멜은 당신에게 잠시 한눈을 팔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남아있는 또다른 수인의 접근을 쉽게 허용했다. 드디어 끝인가, 싶었던 건조하고 담백한 감상은 자신과 동행했던 호위가 옆구리를 감싸쥐며 비틀거리는 모습을 본 순간 , 사라졌다.
一 자신은, 역시 오늘도 죽지 못하겠구나 하는 문장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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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쥐수인을 끌고 돌아온 장소는 방금 전까지의 소음이 거짓말인 것 마냥 , 차디찬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최소한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수인들에게서 고통스러운 신음이라도 들려야 옳을텐데 이상할 정도의 침묵이다.
불빛인가, 그도 아니면 겨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희미한 달빚인가. 어느쪽이든 차디찬 침묵에서 드러난 것은 정체모를 무언가가 잔뜩 껴있는 은청의 시선이이었다. 평소 보이던 무심하게 빛나던 것과 사뭇 다른 一 명백히 먹이를 목전에 둔 짐승의 시선이 발소리에 반응한 건지 똑바로 당신과 당신이 끌고 온 쥐수인을 향해 움직인다. 만약 당신이 그에게 몇발짝 접근한다면 당신은 후각을 마비시킬 정도의 쇠비린내를 맡을 수 있을 것이고 , 그 냄새를 이겨내고 조금 더 접근하면 눈표범 수인의 발치에 널부러져 있는 이들의 모습과 발 밑에 고여있는 것의 감각 , 더 나아가 당신이 아는 ' 탄야 하멜 ' 이 당신이 끌고 온 쥐수인에게 고개를 기울이고 붉게 젖은 손으로 쥐수인의 어깨를 움켜쥐려하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카리나는 자신이 하는대로 거부없이 받아주고 휘둘리던 눈표범의 이면에 무슨 반응을 보일 것인가(?) 내일 준다면 감사히 받겠지만 천천히 줘도 좋으니까 편하게 주도록 해. 참고로 쥐수인 어깨를 그냥 손힘으로 움켜쥐는 게 아니라, 여타 수인들이 등장하는 만화 및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것처럼 손톱을 세워 움켜쥐는 거라고 생각해줘. 일부러 돌려서 표현한거긴 한데🤔
쥐 수인을 움켜쥐려는 탄야를 내버려둔 체 바라보며 피식 웃은 카리나가 말한다. 웃긴 상황은 아닌데, 주변을 보아하니 웃음이 터져나왔다. 저 멀리까지 열심히 뛰어가서 낚아채온 수고가 물거품이 되서 그런게 아니었다. 그냥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 머릿속에 있던 말과는 잘 매치가 안됐으니까.
" 탄야, 죽고 싶단 말이랑 다르게 열심히도 해줬네? "
쥐수인이 기절한 와중에도 내는 신음소리 따위는 무시한 체, 비린내 가득한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쉰다. 다들 도망가기 바쁜 거리 한가운데에서 거친 눈을 한 체로 자신을 응시하는 탄야에에 카리나는 물었다.
" 이게 어딜 봐서 뒤지고 싶다는 사람이 벌일 일이야. 그치? "
어깨를 으쓱이곤 고개를 저은 카리나는 쥐수인을 움켜쥔 네 손목을 덥썩 잡았다. 그리곤 자기에게로 널 끌어당기며 네 눈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절대로 지금의 탄야를 피하지 않겠다는 듯, 망설임 따윈 없는 눈으로 힘을 주어 널 당긴다.
" 일단 피를 보고 싶은 건 알겠는데. 다른데로 가자. 더 몰려올거야. 둘로는 힘들어. "
손톱을 세워 쥐수인의 어깨를 움켜쥐고 짓누르듯 잡고 있던 손바닥 아래로 근육과 혈관이 찢어지는 감각을 적나라하게 느끼고 있던 그가 날카롭게 존재감을 드러낸 엄니를 드러내며 위협하듯 으르렁대며 , 당신의 말끝을 붙잡아 반복한다. 쥐수인에게로 고정되어 있던 먹이를 목전에 둔 짐승처럼 번들거리는 은청의 시선이 당신에게로 고정됐고 " 내가 너한테 그런식의 칭찬을 들을 이유는 없는데. " 하며, 낮고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이며 다시 은청의 시선이 쥐수인에게로 향한다.
당신에게 건조하고 단조롭게 대꾸하는 목소리와 번들거리는 은청의 시선이 대조적이다. 얇고 가느다란 체형에서 나오기 힘든 그의 힘에 기절한 상태인 쥐수인은 고통스러운 신음만 흘릴 뿐, 발버둥도 치지 않았지만 그는 그것에 큰 의의를 두지 않았다.
당신의 말은 옳은 지적이었다. 죽고자 하는 주제에, 쉬이 그 목숨을 내어주지 않는 그의 모순점을 당신은 제대로 지적한 것이라 해도 좋았다. 허나, 당신의 그런 말에 차분히 반응해줄 평소의 탄야 하멜은 지금 반응할 이유가 없었다. 죽는 것은 자신만이면 족하다. 자신으로 인해 제 3자가 목숨을 위협받을 이유는 없는데, 이름의 무게라는 건 종종 눈치채기도 전에 자신을 붙잡아 당겨내기 일쑤였다.
마치 그래 一. 그 이름을 짊어지고 있는 이상 네 의지는 없다는 듯.
탄야 하멜은 자신의 손을 떼어내는 당신의 손에 어깨를 들썩이며 반응했다. 미약하고 잔잔한 반응이었지만, 당신이 그 은청의 시선을 돌리는 것에는 성공했다는 건 알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서로 의견을 집어넣은 적이라곤 단 한번도 없는데. 카리나는 어꺠를 들썩이는 탄야의 반응에 피식 웃으며 탄야의 은청색 시선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피할 이유따위 없다는 듯. 어차피 무엇을 하든 이렇게 됐을거라고 말하려는 듯, 망설이지 않고 그 시선을 맞이한다.
" 마음 같아선 지금 그 자존심을 온몸으로 꺾어주고 싶은데... 일단 저거부터 챙겨야 하지 않겠어? 너나 나나 괜찮지만, 잰 안 괜찮아보이는데? "
한켠에 나뒹구는 체로 힘겨운 숨을 내뱉고 있는 탄야의 보디가드를 하던 수인을 가리키며 한숨을 내쉰다. 이러나 저러나 인파들이 도망간 지금, 탁 트인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봐야 좋을 것은 없었다. 한가하게 둘이서 여기서 투닥질을 하기엔 금방 다른 수인들이 몰려올테니까. 그래서 카리나는 쥐수인은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곤 보디가드의 팔을 어깨에 둘러 일으켜세운다.
" 일단 내가 아는 곳으로 튀자고. 거기서 이것부터 어떻게 치료라도 하고 나서 그 다음일은 생각하자. 이미 일은 벌어졌으니까. "
카리나는 그정도는 따라줄 수 있지 않냐는 듯 은청의 시선을 올곧게 마주하며 태연히 입꼬리를 올려보인다.
" 중앙의 지배자 나으리가 그정도도 생각을 못 해주진 않겠지. 밑바닥의 사냥개도 이런 건 생각할 줄 아는데. "
당신의 정면에 서있는 이 새하얀 눈표범 수인은 은청의 시선을 한번도 깜빡인다던가, 피한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당신의 말이 끝날 때까지, 아니 끝난 뒤에도 무관심하며 무기력한 태도와는 영 매치가 되지 않는 은청의 시선이 그저 새파랗게 번들거리듯 빛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분노와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것이 탄야 하멜의 은청의 시선에 오래도록 머무른다.
탄야 하멜은 제 몸에 갓 묻은 비릿한 혈향을 고스란히 맡았다. 마르지 않은 피비린내는 머리 한구석이 어지럽게 느껴질 정도로 지독하다. 굳이 살펴보지 않더라도 쥐수인의 어깨를 뜯어버리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쥐어낸 손끝을 타고 송글거리며 새어나오는 피가 제 몸에 흥건할 것이다. 당신이 쥐수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팽개칠 때, 그는 어깨를 쥐고 있던 손을 떼어내더니 그대로 쥐수인의 목으로 옮겨 그대로 틀어쥔다. 그 태도는 당신의 말은 단 한음절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 내버려둬. "
수행원의, 맹수 특유의 눈동자와 그의 은청의 시선이 허공에 얽혔으나 수행원이 고개를 떨궈내는 것으로 그 얽혔던 시선은 떨어진다. 낮게, 수행원은 고통스러워했지만 온기 한점 없이 냉정하게 떨어지는 그의 한마디를 들었음에도 수행원은 어떠한 반박의 말도 꺼내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당신의 시선에는 탄야 하멜이라는 이름의 눈표범 수인도, 그의 냉정하기 짝이 없는 말에 반박 하나 하지 않는 수행원의 태도가 답답하고 짜증스럽게 다가갔을까. " ... 저것 또한 예상했던 것일테니. " 하고, 그가 담담하게 읊조리며 붙들고 있던 쥐수인의 몸뚱이를 바닥에 내버리듯 놓아버리고 자신의 앞머리를 가벼이 흐트러트리듯 쓸어올린 뒤 잠시 은청의 시선을 질끈 감는다.
" 비아냥거리는 건 관두지. "
당신에게 부축되어 있던 수행원의 팔을 붙잡아 끌어서 어깨에 걸치는 그의 은청의 시선은 불과 몇분 전에 보였던 번들거림은 사라진지 오래였으나 그 무감하고 무뚝뚝하게 표정이 적은 얼굴에 떠오른 것은 당신이 아는 것보다 더 짙은 무기력함이다. 그가 자세를 고치자, 당신에게 부축되어 있던 수행원의 단단하고 다부진 몸뚱이가 그에게로 이끌렸다.
비아냥거리는 건 관두지, 탄야의 말투를 따라하듯 중얼거린 카리나가 한숨을 푹 내쉰다. 정말이지, 이래서 수인들과 어울리는 건 피곤하다니까. 카리나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말이었다. '평범한' 수인이었다면 그냥 이젠 니 알아서 하라고 던져두고 제 몸을 내뺐을텐데. 눈 앞의 새하얀 눈표범 수인은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죽고 싶다면서 그냥 죽지도 못하는 아슬아슬한 저 수인을 두고가는게 힘들었다.
" 저걸 그걸 짊어지고 뚫고 어떻게든 가보겠다고? "
다부진 수행원을 끌어당기는 카리나에게 뒤를 힐끗 본 카리나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아마도, 금방 소식이 퍼져나간 것인지. 쥐수인을 잡아온 것이 무색하게 꽤나 많은 수의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분명 심상치 않다는 말을 듣고 수를 늘려 세사람을 잡으러 오는 듯 했다.
자신의 말을 따라하는 당신을 바라보는 그는 은청의 시선을 가늘게 접어뜨며 물끄러미 응시한다. 그 시선에는 어떠한 불만도, 불평도 떠오르지 않은 채로 그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무던히 빛나고 있었다. 얼결에 그에게 부축된 수행원이 무게를 줄이기 위해 자세를 고치다가 낮게 고통스러워하는 소리에 그는 당신을 응시하던 은청의 시선을 돌려냈다.
" 一두고 가시죠. 이 상태로는 짐만 될 뿐입니다. " " 네 시체라도 끌고가야만 납득할 상대니까 , 불평은 접어두도록 해. "
멀리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아니었더라면 , 아마 그는 수행원의 의견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것처럼 부상을 당한 수행원을 끌고 본래 볼일이 있던 장소까지 갈거라는 건 당연한 노릇일지도 모른다. 수행원에게 붙박혔던 은청의 시선이 다시금 가늘어지고 멀리서 들리는 발소리로 인원수를 가늠이라도 하는 것마냥 , 그의 둥그스름한 눈표범 특유의 귀와 끝이 뭉툭하고 긴 꼬리가 까딱이며 움직였다. 나 하나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받는 건 싫어하는 주제에 이렇게턱없이 불리해진 상황을 피하는 게 이득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내가 지독히도 모순적이라서 냉소조차 지을 수 없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건지. 탄야 하멜은 무뚝뚝하고 무감한 얼굴을 한 상태로 한쪽 눈썹을 느릿하게 찡그려보였다.
스스로가 혐오스러워서 참을 수 없다. 스스로 숨을 끊어낼 용기가 없어서 누군가가 이 숨을 끊어주길 바라면서도 우습게도 쉬이 숨통을 내어주지도 않는다.
수행원은 자신을 붙들어 부축하고 있던 그의 손과 팔에서 힘이 풀어지는 걸 느꼈는지 비틀거리면서도 자세를 바로 잡아 그의 앞을 보호하듯 막아선다. 괜찮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는 수행원의 모습에 탄야 하멜은 찡그리고 있던 눈썹을 펴며 메마른 한숨을 길게 내쉬고 몸을 돌렸다.
죽지말라는 한문장을 죽고 싶어하는 자신의 입으로 내뱉는 건 말도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그 한마디를 물어 삼켜죽였다.
일단 세사람이 나아가야할 길은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 적어도 카리나가 알고 있는 뒷골목의 길을, 추격자들이 카리나보다잘 알 일은 없었으니까 그부분은 확실했다. 뒷골목이 속해있는 지역의 지배자들이라고 하더라도, 밑바닥의 세세한 부분까진 알지 못하니까. 그래서 먼저 달려나가던 카리나는 이내 뒤쫒아올지도 모르는 일행을 기다리기 위해 잠시 멈춰선다.
" 푸흐, 뭐야. 결국 오.... "
익숙한 형체가 자신이 걸어온 길에서 다가오는 것을 느끼곤 장난스럽게 웃어보이던 카리나는 무언가 허전함을 느낀다. 그리곤 눈을 굴리더니 싱글거리던 미소를 지우곤 성큼성큼 다가가 탄야의 어깨를 강하게 치려고 했다.
" 야! 니 수행원은 어디갔는데?! 니가 챙기려고 나한테서 떼어놓은거 아냐?! "
씩씩, 카리나도 자신이 고작해야 수행원, 그것도 자신의 수행원이 아닌 탄야의 수행원 때문에 한순간 화가 치솟을 줄 몰랐다. 뭐가 화나는 걸까. 수행원을 버렸다는거? 아니면 그래도 자신이 아는 지배자랑은 다를지도 모른다는 탄야에 대한 생각이 깨져버린 것? 카리나도 한순간 솟아오른 감정에 종잡을 수 없었다. 대신 자신을 뒤따라온 탄야를 옆의 낡고 더러운 벽에 탄야를 밀치려고 할 뿐이었다.
" 그냥 버리고 올거면 나한테 맡기기라도 하지! 살릴 수 있는데! 저기 두고 오면 진짜 뒤진다고! "
붉은 피가 말라붙어 있는 새하얀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둥그런 귀는 뒤편에서 들리는 소음을 잡아낼 만큼 뛰어났다. 반은 짐승이라고, 평소 무기력하게 굴고 있다고 한들 뒤엉키는 소음 속에서도 자신의 수행원의 소리 정도는 들을 수 있다는 뜻과 같다. 몇분, 혹은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포악하게 굴던 이 눈표범 수인은 당신이 자신에게 다가와서 하는 행동을 내버려둘 뿐이었다.
늘 그랬듯, 어떤 대꾸도 말도 없다.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은청의 시선에도 어떠한 반응도 깃들어있지 않았다. 딩신의 분노가 정당하다고 받아들인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 또한 당신이 알고 있는 지배자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일까.
" 살려? 누구를? 나와 함께 왔던 그를? "
뒷골목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더러운 벽에 몸이 부딪혔음에도 탄야 하멜의 무감하고 조용한 무표정은 변치 않는다. 그는 당신에게 물었다. 아니다. 질문이 아니라, 그의 혼잣말일지도 모른다. 평소와 같은 얼굴로, 평소와 다르게 검붉게 변색된 피가 말라붙은 손을 그는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는 당신의 손 위에 올리고 떼어내려했다.
" 그의 임무는 ' 내가 약속 장소까지 가는 동안 신변을 지키는 것' 이었어. 하지만 너와 이곳에서 마주친 이상 그가 맡은 임무는 이미 틀어져버렸지. 그렇다면 一 "
내게 있어서 너는 불청객이다. 허락도 구하지 않고 멋대로 내 영역에 침범하여 뻔뻔하게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는 불청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째서 너를 내치지 못하는지. 탄야는 떼어낸 당신의 손을 놓지 않고 도리어 당신을 향해 고개를 기울여서 눈을 맞추기 이르렀다. 그 거리감은, 그가 무감한 낯으로 당신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댔을 때와 같다.
" 그가 맡은 임무를 망치지 않으려면 그는 어떻게 해야했을까? "
가늘게 접어뜨고 있는 은청의 시선은 여전히 형형하게 빛났으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높낮이가 일정했다.
가까이로 다가와 입술이 닿을 듯한 거리가 된 카리나는 한순간 마음 한켠이 떨려오는 것을 느낀다. 피가 흩뿌리는 비릿한 향 너머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탄야의 향기에 이상하리만큼 낯선 기분이 들었다. 왜일까, 지금 당장 가까워진 탄야와 입을 맞추고 싶단 생각이 드는것은. 하지만 카리나는 애써 그 생각을 뒤로 하고 비아냥거리듯 탄야애게 말한다.
" 뭐, 이제 와서 네탓내탓 할 시간은 아니니까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고. "
가까워진 탄야의 뺨을 두드려주며 픽 웃어보인 카리나는 천천히 물러난다. 더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시간을 끌어주는 것도 그리 오래 못 갈 것은 분명했으니 뒷골목 깊숙이 파고들어야 할 시간이었다. 추격자들도 꺼리는 뒷골목 그 안으로 깊숙하게.
" 지금부턴 발소리 죽이고 잘 따라와. 우리 아가씨도 도둑고양이처럼 움직일 줄 알잖아. ".
잘 하자는 듯 탄야의 어깨를 두드린 카리나는 돌아선다. 이상한 기분이 드는 마음을 자꾸만 외면하면서 발소리를 죽여 점점 어두워지는 뒷골목의 고약한 길을 앞장서서 나아간다. 앞으로 나아가는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도 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