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라라와 산책을 나갔습니다. 서로 맞춤으로 산 새 코트를 입고 언제나처럼 손을 잡고 마을을 걷습니다. 마을은 오늘도 평화롭습니다. 모두가 웃으며 인사를 하고 걷고 지나갑니다. 하지만 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알지. 오늘은 날씨가 좋습니다. 조금은 멀리까지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마을을 넘어 숲을 건너갑니다. 어둡지만 혼자가 아니니까 무섭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혼자가 되려고 해?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숲 너머는 넓고 둥근 호수가 있습니다. 아주 아주 깊은 호수는 매우 아름답습니다. 잔잔한 물가에 다가가 들여다보면 새까만 물 속만 어렴풋이 보입니다. 그것만 보일까. 물에서 시선을 돌려 라라를 돌아봅니다. 생긋 웃는 얼굴이 뒤로 물러나며 노래합니다. 오래되고 그리운 노래입니다. 같이 뒤로 물러나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노래는 보이지 않는 실이며 춤은 실의 의도를 대리할 뿐. 노랫소리가 점점 멀어집니다. 풀을 짓밟는 발은 점점 호수에 가까워집니다. 휙 돌아 라라를 바라본 순간 시야가 반전되고 사방은 순식간에 물로 가득찹니다. 새까만 물 속 바닥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호수에 가라앉으며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어둠 속에서 하얀 물살이 올라옵니다. 새하얀 머리카락이 가늘고 긴 두 팔이 가득 찬 달처럼 환히 웃는 그 얼굴이.
[어여쁜 내 별. 귀히 여기는 내 인형아.] [너는 언제까지고 내 것이란다.] [언제나..] [영원히...]
심연을 헤엄치는 거대한 은빛 비늘에 그만 소스라쳐 숨을 내뱉고 그 입으로 들어온 물에 숨이 막혀서
"흐어억!" "워- 잠 한 번 요란하게 깨네. 꿈에서 엄마라도 봤어?" "어? 어, 어...?" "이히히히 얼굴 부은 거 봐라- 잠부터 깨!"
퍽
"엌! 야 나 방금 깼다고!" "그래. 드디어 깼네. 깼으면 씻어. 머리 다 뭉쳤어." "뭐? 아 씨."
후다닥 쏴아아아
차닥
"나 얼마나 잤어?" "한 서른시간?" "약 썼어?" "그러면 꿈 안 꿨겠지." "아. 그렇지." "빈혈이 너무 심했어. 그래서 그런 거야." "아... 피 아닌 줄 알았는데." "섞이긴 했겠지." "아무리 그래도 하루 넘게는 좀 그렇네." "그러면 몸 좀 사려." "약 때문이야. 중화가 덜 됐었어." "핑계 참 잘도 댄다." "핑계가 아니라 팩트거든."
탈탈탈 달칵 위이이잉
"그래서 무슨 꿈 꿨어?" "알잖아." "또 똑같은 말 했어?" "그거 말고 뭐가 있어." "그래. 우리는 평생 그녀에게서 못 벗어날려나보다." "너, 하..." "참 잔인한 사람이네. 이미 없는데도." "XX." "어허. 주둥이 꼬집는다." "야랄한다."
툭툭 스윽스윽
"단말기 확인은 안 해?" "어... 좀 이따." "음- 그러고보니 꽤 다쳤던데." "뭐!?" "아직 다쳤다고만 했는데?" "아." "누구라고 안 했는데에?" "이 씨." "눈 그렇게 뜨지 마- 미간 주름 생겨-" "도발은 지가 해놓고." "낚인 사람도 잘못이야. 그리고 그렇게 안 다쳤더라. 너보다는 경상이었어." "네 눈에 나보다 더 다쳐서 들어오는 사람이 있긴 하고?" "음. 없지?"
살금살금...
"손 안 치워? 어딜 만지려고." "왜- 자매끼리 좀 주무르는게 뭐가 어때서-" "이상하게 만지잖아! 치우라고!" "아. 머리도 말려줬는데 너무하네." "지가 좋아서 해주고 생색은 무슨." "어차피 나 말고 손 댈 사람도 없으면서." "있거든?!" "정말?" "그, 그건." "정말로 허락할 수 있어?" "닥쳐." "그것도 말 못 하면서." "입 다물랬다." "기대하고 있어. 급조한 그릇이 얼마나 버텨줄지."
쾅!
"오. 나갔네."
"충분히 잤으니 상관없겠지."
"알려줄게 있었는데."
"음- 확실해지면 말할까."
"거의 확실하지만. '나나히카리'의 생존자."
"아. 그 전에 내기 하나 할까?"
"여기로 돌아올지. 아닐지."
"히히히..."
타박타박
라라시아의 방을 박차고 나온 레레시아는 무작정 복도를 걸었다. 생각 없이 그냥 걸은 것 같았는데. 멈춰서 옆을 보니 그의 방 앞이다.
"...뭔데."
뭐, 몇 번이나 왔었다고 걸음이 그녀를 이리로 이끌었는지. 아니면 라라시아의 같잖은 도발이 그녀를 여기로 떠밀었는지.
문을 잠시 응시하던 그녀는 돌아서 그녀의 개인실로 가려고 했다. 그래서 돌아서기까지 했으나 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꽤 다쳤던데. 그 말이 못내 마음에 걸려서. 가지 못 하고 느릿느릿 문을 향해 돌아섰다. 또 잠시간을 머뭇거리다가, 슬그머니 손을 들어서 문 위를 똑똑.
야, 라고 부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일단 허락을 받았으니 그렇게 부르기로 결정한 너는 레이먼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예전에는 기본만, 어딘가에 소속된 이후부터 훈련을... 가디언즈에게 쫓겼다는 걸 생각해 보면 어느정도 예상은 됐다. 아마 그가 속했던 곳이라면.
"그럼 그때 배운 걸 잊지 않기 위해서 꾸준히 사격장에 오시는군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소홀해져 가는 게 보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갈고닦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너는 경의를 담아 그렇게 말했다. 그게 설령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다고 해도.
"그냥 취미같은거지 뭘. 내 목숨과도 같으면서도, 남의 목숨을 빼앗는 끔찍한 게 무기지만... 내가 성미가 뒤틀린건지 그런 무기가 멋있고, 재밌더라고."
물론 총에 살고 총에 죽는게... 개인 취향적인 의미에서는 그렇게까진 아니다만, 역시 남자의 감성이란 그런게 아닐까. 가정을 지키기 위한 사냥 도구나 무기, 공구 등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그런 것 말이다.
"세븐스를 이용해서 싸우는게 더 위력적일텐데, 굳이? 글쎄. 배우려고 오는 사람이 없을 거라 봐."
고개를 저었다. 세븐스들은 결국 그들 자신의 힘이 가장 강력한 무기다. 가디언즈의 세븐스들을 상대하면서 뼈에 새겨진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냥 좀 빠르게 날아가는 납덩어리보다 더 강력한 공격을 하거나, 그 납덩어리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강력한 세븐스들은 차고 넘친다.
"솔직히... 귀찮거든 이거. 한명이니까 내가 신경써서 봐줬지, 한번에 열댓명씩 오고 그런다 생각해봐. 어유. 못해. 못해."
독백을 보고 떠오른... 적폐해석이지만 뭔가 나나리 자매 보고 생각난 노래... 는 솔직이 진짜 적폐인게 라라는 레레가 자신을 떠나지 않았으면 해서 아쉬움도 갖는 약간 집착? 같은게 느껴졌지만 이쪽은 '뭘 하든 너 하고 싶은거 다 해 내가 응원해주고 같이 있어줄게' 라는 느낌이라...
음~~ 노래 약간 라라의 표면 같은 느낌이다. 겉으로는 저렇게 내비칠 테니까. 대신에 뒤로는 생각이 다른? '뭘 하든 너 하고 싶은거 다 해'까지는 맞는데 그 뒤가 '대신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다시 가둬버릴거야'...가 되어버리는 음~ 집착 한 스푼 넣은 무언가? 쓰읍 이거 설명을 못 하겠네
>>85 옷장 안에 들어있는 비율이 상당히 황금비율이로군요. (흐릿) 그 와중에 라라시아가 넣은 코스츔...ㅋㅋㅋㅋㅋ 뭐예요. 대체. 어. 그 와중에 지금 레레시아가 완전히 지쳤다라는 의미로군요. 136번. 아스텔에게 보인 행동들이로군요. 아니. 그럼 대체 언제부터 짝사랑을 시작한 것인가. 꽤 이전부터 나온 행동들이었는데?! (갸웃) 사실상 2번째 일상부터 계속 저랬던 것 같은데!
돌아버렸다, 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귓가에다 손가락을 가리키고 빙글, 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맛이 갔다. 미쳤다. 그래. 난 아마 미쳐있는걸수도 있다. 상식이 닿지 않는 그런 상황들에 이미 충격을 먹고 돌아버린걸수도 있지. 누굴 탓해야 할까. 난 가장 먼저 나를 탓했다.
"그렇긴 하지. 그런 사람들을 위해 호신용 총기라도 좀 지급했으면 하는데... 보급이 문제지, 보급. 특히 총탄은 늘 끊기지 말아야 하니까. 핏줄처럼."
총이 있어도, 쏠 총알이 없으면 그저 좀 불편한 몽둥이에 불과하다. 그것을 자체적으로 생산할만한 설비와 자원이 에델바이스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럴 확률은 낮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물론 혁명을 준비중이다. 하지만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는 못한다. 그 차이는 분명하다.
"뭐야 형씨. 이제부터 맨날 와서 공짜로 교습 받겠다, 그런건 아니지? 엉?"
삥 뜯는 양아치st한 바이브로 주머니에 손을 꽂고 말하다가, 농담이라며 피식 웃었다. 그런 장난을 치고 난 다음, 이번엔 권총이라는 듯 폴리머제 자동권총 한 자루를 쥬데카에게 건네며 물었다.
맛이 갔다. 라... 그의 말과, 그에 맞는 제스쳐를 눈에 담던 너는, 호신용 총기와 총탄 보급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고갤 끄덕였다. 총기는 있지만 총탄의 지속적인 보급이 문제다. 보급이 있다고 해도 개인이 소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원거리 견제 수단이 생기는 것 자체는 좋았으나 신경쓸 것도 그만큼 생기는 모양.
"교습비가 필요하다면 드리겠습니다."
농담이라는 말에는 살짝 웃는다. 진짜 받는다고 해도 교습을 받는데 그 정도 대가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그 직후 건네지는 권총을 받아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들려오는 물음에, 무슨 말이냐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