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탄을 하며 박수를 쳤다. 이런 낙서수준의 기계를 구체화하며 설계도를 그리고 에너지공급장치를 새롭게 창조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것도 혼자서 한다는 것은. 그런데 이것을 혼자서 다 끝낸다니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녀의 세븐스가 이쪽에 다 투자되어야하는 비효율적인 상황이 벌어지지만 만들어진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정도였다.
"매일매일? 어휴..난 총기 손질도 귀찮아서 게을리 하는 데 매일매일 기름칠을 하라고?"
선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못한 짓이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초 거대 변신 합체 로봇 공룡은 요청자의 귀차니즘으로 인해 백지화가 된 모양이었다.
"이기겠지. 그렇고 말고. 누가 구상하고 누가 만들었는 데?"
에스티아가 처음으로 그의 눈치를 살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선우는 오히려 당당히 말했다. 그도 눈치라는 것은 있는 터라 이 말도안되는 로봇이라도 블랙스케빈저에게는 무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입 밖에 내진 않았다. 그도그럴것이 그 로봇이 발사하는 미사일을 막아내는 데 몇 사람분의 버스트와 스페셜스킬이 소모되었고 그마저도 사실상 실패했으니까.
"카시노프를 납치해서 뇌를 개조하는 게 쉬울 것 같아"
차라리 이게 더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었다. 물론 반쯤 농담으로 하는 말이었지만 그가 보여준 미친 행적들을 보면 그만 있으면 글라키에스든 레이버든 두려울 게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싸움? 별거 없어. 그냥 수단방법 안가리고 이기는 싸움이야."
카시노프의 하수인과 싸우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힌 건 소총과 폭탄이 아닌 고기 구울 때 자주 사용하던 부탄가스였다. 선우의 능력은 편하긴 해도 결국 싸울 땐 남들 보다 더 크고 간편한 주머니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에겐 이렇다할 싸움 방법 따윈 없었으며 그냥 이기기 위해선 온갖 수를 다 사용해야했다.
"뭐든 지 상관없어. 진짜로 드릴 암이라도 괜찮아."
에스티아의 장난끼 있는 목소리에 가볍게 대답했다. 물론 이것은 진담이었다. 누군가의 공격으로 토사물에 휩싸여서 고립되었을 때 쉽게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때 아이들을 막고 있던 얼음벽이라도 깨부술 수 있었겠지.
그녀의 온갖 아이템들 하나하나가 그에겐 꼭 필요했다. 이걸 쓸 날이 올까 싶은 것들도 언젠간 쓰였고 누군가에겐 필요한 물건이었다.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이기는 싸움이라니. 그럼 그것을 어떻게 구현해줘야 한단 말인가. 영 모르겠다는 듯이 그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말 그대로 정말 어떤 무기라도 상관없다는 식이면 그야말로 무플랜이 아니겠는가. 그 무플랜을 매꿔주기에는 아무리 에스티아라도 힘들었다. 그러다가 적과 최대한 거리를 두는 싸움이라는 말에 에스티아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턱을 괴고 잠시 고민을 하다가 살며시 자세를 원래대로 돌리면서 그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적과 최대한 거리를 두는 싸움이라고 한다면 총밖에 없잖아. 아니면 활. 그것도 아니면 투창 정도? 혹은 레이저 장치 같은 것도 있겠지만..."
어느 것이 그에게 잘 맞을지는 역시 에스티아로서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냥 말 그대로 그가 원하는 것은 일단 제일 강한 무기 같은 것을 바라는 것 같았으니까. 이어 그녀는 잠시만 기다리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약 10분 정도 지났을까? 자신의 드론과 함께 돌아온 에스티아는 드론을 손으로 가리켰다. 드론은 자기장을 이용해서 라이플 하나를 띄워올리고 있었다.
"이건 레이저를 쏠 수 있는 라이플이야. 위의 조준경으로 붉은 적외선을 쏘아서 궤도를 맞춘 후에 방아쇠를 당기면 그 궤도를 따라서 레이저가 발사돼. 이런 것이라도 쓸거면 가져갈래?"
적어도 화력은 어느 정도 될 거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에스티아는 다시 근처에 있는 자신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선우에게 한가지를 더 제안했다.
"아니면 어깨에 달 수 있는 간이 부스터 같은 것도 일단은 있어. 그것을 이용하면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겠지만 세븐스 정도는 아니어도 적어도 일반인들보다는 확실히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긴 할 거야. 그것도 괜찮을 것 같고?"
>>314 일단 결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과정의 수단과 방법은 가리지 않는다는 느낌이로군요. 화끈하다! 레레시아! 근데 오래 잔 시간이 4~5시간이요? 역시 아스텔테라피를 사용해야만..(안됨) 으앗. 거울을 보면서 얼굴을... 역시 이 부분은 상당히 심호하군요. 그 와중에 덤...ㅋㅋㅋㅋㅋ 세상에..ㅋㅋㅋㅋㅋㅋ 귀엽다. 진짜 귀엽다.
불꽃은 인류를 동굴 바깥으로 이끌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불꽃을 다룰 수 있게 된 인간은 자연의 어떤 생명체도 대적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것은 불꽃 때문이었을 뿐. 인간은 여전히 연약했다. 불꽃이란 제 의지가 없는 것이어서 인간에게 휘둘렸고 인간은 불꽃을 제 수족처럼 다룰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지닌 힘이라 착각하곤 했다. 그러나 정말 불꽃은 아무런 의지도, 방향성도 없는가? 불꽃에 대한 원초적 공포를 잊는 순간 복종하던 불꽃은 섬기던 자를 집어삼킨다.
"......"
스크린에서는 철없는 아이들의 불장난이 큰 화재로 번졌고, 새카맣게 탄 시체만 대어섯 구가 나왔다는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전소된 건물의 내부가 찍힌 영상이 가감없이 나오는 그 화면을 보던 시선이 내리깔리고, 목 뒤를 매만지는 손길이 떨린다. 이미 흉터만 남은 지 오래건만 여전히 타는 듯한 느낌이 가끔 들 때면 어쩔 줄을 몰랐다. 작열하는 듯한 통증은 가끔 식은땀마저 줄줄 흘리게 만들었다. 어느정도 가라앉는 듯하여 일어선다. 오늘은 중요한 임무가 있는 날이다. 정확히 무슨 임무인지는 모른다. 그저 중요한 임무라는 말만 들었을 뿐. 시간을 보니 조금 촉박했기에 서둘러 제복을 갖춰 입고 군화를 신는다. 조금 뛰어야 늦지 않을 것 같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뒤로하고 지금은 약간 젖은 땅을 밟아 물기가 튀기는 소리만 들린다. 제복 때문인지 가끔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이 쏠린다. 최근 기르기 시작한 머리카락에 거의 다 덮여 가려지긴 하지만 불에 지져진 흉터를 보는 것만 같아 신경이 쓰인다. 목을 매만지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들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기에 이를 지그시 물고 발을 내딛는다.
"후우..."
발걸음이 느려지는 것은 도착점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발을 멈추니 제 상관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제복은 보이지 않아, 뭔가 전달받지 못한 게 있는지 열심히 머리를 굴려본다. 답을 내리기 전에 먼저 상관으로부터의 말이 들려온다.
"역시 제복을 입고 왔군, 어쩔 수 없지. 자, 이걸 받아라." "이건..."
건네받은 옷은 평범하다면 평범한 사복, 그러나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조금 낡은, 기성품이라기보다는 벌써 한두 철은 지난 듯한데다가 품도 잘 맞지 않고, 위 아래 비율도 그닥인, 그저 구색을 맞춘 듯한 옷 한 벌이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가디언즈에게 지급될 만한 복장은 아니었으니 너는 옷을 받아들고 잠시 상관을 쳐다보았다. "갈아입어." 라는 말이 들리자 다시 한 번 옷을 내려다보긴 했지만 명령에 복종해야 했기 때문에 가까운 탈의실을 통해 환복한 다음에야 본격적인 임무가 하달됐다. 애써 기른 머리카락도 틀어올려 묶으라는 명령도 있었다. 손에 들린 것은 기름이 반쯤 담긴 기름통 하나.
"네 임무는 최근 이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레지스탕스에 잠입, 습득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거다. 왜 이런 옷차림인지 이해가 되나?" "예."
연기해야 할 역할은 세븐스 정비공, 한없이 싼 임금을 받고 직접 발품을 팔아 출장을 다니며, 이젠 새롭게 생산되지도 않는 구식 차량을 정비하는 인간, 그리곤 연락책과의 접선 위치, 음어, 발각 시 대응 등등의 부가적인 설명이 있었다.
"발각시 도주하되, 불가능할 경우에는... 알고 있겠지?" "...예."
붙잡혀 역으로 정보를 빼앗기는 일만큼은 없어야 했다. 살아있는 한 그런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으니, 그것은 최후의 수단이었다. 너는 네 어금니에 씌워진 캡슐을 떠올렸다. 의식해서 깨물지 않으면 깨기 어려운. 그렇게 전달이 끝나자 상관은 품이 큰 모자 하나를 머리에 눌러 씌웠다. 시야가 가려져 살짝 올리니 상관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지금부턴 정기적 연락, 긴급한 사항이 아니면 가디언즈에선 널 돕지 않는다. 넌 지금부터 아무것도 아닌 세븐스일 뿐이야. 자, 가봐라. 저쪽 경로로 움직이다 보면 그들과 마주칠 거다."
혹시나 해서 말해두지만, 뭔가 알아챘다고 해도 피할 생각은 마라. 네 모습을 잘 봐.
"이렇게 멀쩡해서야 어지 레지스탕스에 들어갈 이유가 있겠나?"
그 말을 끝으로 상관은 몸을 돌려 시야에서 사라졌다. 몸을 돌려 그 반대쪽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헐렁한 옷차림이 불편하다. 정해진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축축하면서도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새까만 흔적이 바닥에 이지러져 있다. 갑자기 온몸이 오싹한 감각이 들었다. 바람이 차갑긴 했지만 그것 때문이 아닌, 본능적인 감각. 이 쪽으로 가면 안 된다는 외침에도 이를 악문다. 어째서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긴 시간동안 살아오며 그저 위험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감각은 논리적인 설득따위 하지 못했다. 살아온 시간만큼 이유 없는 외침은 없음을 알았지만, 도망은 허가되지 않았다.
"......"
그 감각이 절정에 달했을 때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고개를 든 장소는 익숙했다. 예전에 와본 장소는 아니었다. 고작 한두 시간 전에 눈에 담았던 장소. 어째서 퀴퀴한 냄새가 풍겼는가. 질질 끌린 듯한 검은 흔적은 왜 있었는가.
"...하아."
너는 전소된 건물 앞에 서서 눈총을 받고 있었다. 훤히 드러난, 불에 지져진 선명한 낙인, 그리고 손에 들린 기름통에 꽂히는 시선을 너는 느꼈다. 등골이 오싹하다 못해 반으로 쪼개질 것만 같았다. 뒤를 돌아보기가 두려워 작게 속삭이며 기름통을 쥔 손에 힘을 준다. 헐렁한 옷의 앞섶을 비틀어쥔다.
물론 그 스스로도 자신의 요구가 굉장히 무리한 요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세븐스는 전투에는 그리 도움되지 않기에 일반인이 전투에 참여한다는 느낌으로 가야한다. 아무런 능력 없는 일반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땅에서 뿐 아니라 하늘에서도 싸우고 물 위에서도 싸운다. 그렇기에 어느 한 방법만을 고집해선 안되고 모든 가능성과 생각을 열어두어야한다.
그녀의 투덜거림에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이 모두 옳으니까. 자신이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다. 놀랍게도 그녀는 그의 말에 어느정도의 답을 찾아내었다. 10분만에 저격총 하나를 꺼내 주었으니까.
"고마워"
레이저를 쏠 수 있는 저격총은 확실히 사격능력이 더 향상 될 것이다. 그는 아공간에 넣어버리고는 또 새로운 것은 없는 지 눈을 반짝였다.
"오! 그것도 좋겠네"
일반인들보다 빠른 속도라면 적어도 지금보단 훨씬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좋은 아이템을 마다할 리 없었다. 익숙하지 않다는 문제는 시간이 답이다.
그녀가 아이템을 소개할 때마다 그는 계속해서 신나게 그것도 좋겠다며 즐거워했다. 아공간에 물건을 채워넣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따로 내게 원하는 건 없어? 보급대대 일을 도와주면서 밖에 자주 나가기도 하고 밀수를 하면서 스치는 물건들도 많으니까"
평소 알고 지내던 밀수업자에게 요청하면 어떤 물건이든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선우는 부스터를 어깨에 달았다.
굉장히 좋아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에스티아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만든 물건을 이렇게 좋아해주니 만든 입장에선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를 일이었다. 에헴~ 하는 느낌의 포즈를 취하면서 잔뜩 만족하던 에스티아는 이내 선우의 말. 원하는 것이 없냐는 그 말에 가만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딱히 그런 것은 없는데. 음. 애초에 대가를 바라고 지원하거나 그런 것은 아닌걸! 같은 제 0 특수부대잖아? 동료끼리 이럴 때 돕고 그러는 거지. 무엇보다 지금 이렇게 맛있는 과자도 받았잖아. 그리고 물건 구하기는 내가 더 잘할걸?"
마치 꽤 여러 거래처가 있기라도 한지 그녀는 웃으면서 가만히 오른손을 저으면서 또 다시 초코스틱 과자를 입에 넣은 후에 마치 햄스터가 갉아먹듯이 천천히 입에 쏙 집어넣었고 그대로 꿀꺽 삼켰다. 그러다가 그녀는 그를 바라보면서 싱긋 웃었다.
"그 외에 바라는 거라면... 목숨 귀한 것을 좀 생각하는 것 정도일까? 너 저번 임무에서 퇴각하라고 해도 퇴각을 안하고 그대로 있었잖아. 루시아가 어떻게 도와줘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어쩔 참이었어? 그 미사일의 위력. 모르지 않을 거 아니야. 이미 설명 다 했으니까."
어떤 세븐스인진 알 길이 없으나 가디언즈의 간부 클래스 중에서도 리더의 세븐스 기술이 적용되어있는 강력한 핵병기. 어떻게 막을 수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그대로 그의 몸은 잿더미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숨을 약하게 내쉬면서 에스티아는 선우게 톡 쏘듯이 이야기했다.
"싸움을 하다가 어쩔 수 없이 죽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이 죽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의미하게 개죽음당하는 거잖아. 아스텔이 왜 그렇게 미사일의 속도를 줄였는데. ...하아. 다음에는 그러지 마. 얼마나 놀랐는데. 그때."
일단 합동 스페셜 스킬은 누구와 짜느냐에 따라서 아무래도 그 구도가 확 달라질수밖에 없을 것 같기 때문에.. 저는 크게 막 평소에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물론 NMPC 3인방은 각각 2명씩 해서 합동 스페셜스킬을 쓰기도 하지만.. 그게 작중에 나올지는 잘 모르겠네요. 일단 설정상으로는 있다는 느낌으로!
아무리 그래도 조수까지 둘 생각은 없다는 듯 에스티아는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애초에 이쪽 일은 자신 혼자서 처리하는 것이 좀 더 편하기도 했고. 조수야 어차피 자신의 세븐스를 이용하면 가볍게 여러가지 기기를 한번에 돌릴 수도 있었으며 일을 도와주는 드론이나 작은 로봇들도 있었기에 특히 더. 적어도 당장 이곳에 일손이 더 필요하진 않았기에 그녀는 그 제안은 거절했다.
한편 자신의 말에 대해서 선우가 이야기를 하자 에스티아는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선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자신은 정신적으로 상당히 약하다라는 그 말을 들으면서 에스티아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그의 말이 완전히 끝나자 에스티아는 선우를 바라보면서 조금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네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바꾸라고는 하지 않을게. 로벨리아 언니가 바라는 세계는 세븐스가 정말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그런 세계고 너는 너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이 있을 거 아니야. 안 그래? 하지만 어차피 그 마을은 더 사용할 수 없었어. 이미 재밍장치가 파괴되어서 위치가 발각된 이상 계속 공격받을테고 그때마다 에델바이스가, 우리가 나서서 구해줄 순 없잖아. 우리들은 단순히 마을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있는 조직이 아니니까."
말 그대로 이 세계 그 자체와 싸우고 있는 조직인만큼 마을 하나를 언제까지나 계속 지켜줄 순 없었다. 결국 포기해야 하는 것은 포기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최대한 할 수 있을만큼은 하자. 하지만 그게 안되고 더 이상 힘들겠다고 판단하면 목숨을 부지하라. 그것이 바로 에델바이스의 정신이기도 했고. 그 정신을 속으로 조용히 읊던 에스티아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다가 어쩔 수 없다듯이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약한 이는 여기에 서 있지도 못 해. 매번 그런 위험한 임무를 나갈 수도 없어. 난 선우 네가 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무슨 일을 겪었고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난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래도 약하다고 느낀다면 더욱 강해지면 돼. 확실하게 막을 수 있다고 그 정도의 힘이 있을 때 막으려고 한다면 그건 용기야. 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상당히 위험한데 버티고 있으면 그건 만용이라고 생각해. 더 강해지면 돼. 정신적이건 뭐건. 그러면 그때는 만용이 아니라 용기로서 당당하게 지킬 수 있지 않겠어? 그게 내 생각이야."
요리도 나름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이고 식품에도 여러 기술이 필요하니까. 나름 빈민가에 오래 살면서 자연에서
"도와줄거 있으면 말해줘. 언제들지 갈게"
에스티아가 한숨을 쉬며 하는 말에 정곡이 찔린 듯 그는 윽하는 소리와 함께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말에 틀린 것은 없다. 그 마을은 분명 재밍 장치가 파괴된 순간으로 버려지는 게 확정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에델바이스가 공격 당할 때마다 구해줄 순 없었고 단순한 마을 하나만을 지키는 조직은 더더욱 아니었다.
결국 포기하는 게 당연했다. 아니, 포기해야만했다. 이 부도덕한 세계와 싸우기 위해 작은 마을 하나쯤은 포기해야했다. 오히려 사람들을 대피한 것만해도 잘한 일이고 박수 받고 칭찬받아야 마땅한 일이었다. 오히려 이런 일로 목숨을 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지탄받아야 할 일이겠지.
"더욱 강해지려고 여기 온거 아니겠어? 하하"
멋쩍게 웃으며 진지해진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띄우려고 했으나 이내 포기한다. 도저히 웃지 못하겠다.
"만용이 아니야, 그건 용기도 아니고 만용조차 되지 못해. 그저.."
두려움일 뿐이라는 것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루시아에겐 쉽게 말한 것을 그녀에겐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녀가 직접 자신의 눈 앞에 살아있기 때문이겠지. 자기 스스로에게 지탄받는 것이 두려워서, 스스로를 욕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서 퇴각하라는 지시를 따르지 않았고 항전을 선택했다.
요리도 나름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이고 식품에도 여러 기술이 필요하니까. 나름 빈민가에 오래 살면서 자연에서 먹을 수 있는 나물 같을 것을 채취하기도 하고 한정된 재료로 다양한 요리를 만드는 것엔 도가 텄다.
"도와줄거 있으면 말해줘. 언제들지 갈게"
에스티아가 한숨을 쉬며 하는 말에 정곡이 찔린 듯 그는 윽하는 소리와 함께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말에 틀린 것은 없다. 그 마을은 분명 재밍 장치가 파괴된 순간으로 버려지는 게 확정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에델바이스가 공격 당할 때마다 구해줄 순 없었고 단순한 마을 하나만을 지키는 조직은 더더욱 아니었다.
결국 포기하는 게 당연했다. 아니, 포기해야만했다. 이 부도덕한 세계와 싸우기 위해 작은 마을 하나쯤은 포기해야했다. 오히려 사람들을 대피한 것만해도 잘한 일이고 박수 받고 칭찬받아야 마땅한 일이었다. 오히려 이런 일로 목숨을 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지탄받아야 할 일이겠지.
"더욱 강해지려고 여기 온거 아니겠어? 하하"
멋쩍게 웃으며 진지해진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띄우려고 했으나 이내 포기한다. 도저히 웃지 못하겠다.
"만용이 아니야, 그건 용기도 아니고 만용조차 되지 못해. 그저.."
두려움일 뿐이라는 것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루시아에겐 쉽게 말한 것을 그녀에겐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녀가 직접 자신의 눈 앞에 살아있기 때문이겠지. 자기 스스로에게 지탄받는 것이 두려워서, 스스로를 욕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서 퇴각하라는 지시를 따르지 않았고 항전을 선택했다.
만용도 아니고 용기도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겠는가. 그보다 더 최악의 무언가라는 것이었다. 하물며 만용이라면 차라리 겁이 없구나 정도로 끝날 일이었겠으나 그것조차도 아니라고 한다면 그건 정말로 위험한 것이 아니었을까. 허나 그 이상 뭔가를 더 말하거나 하진 않았다. 더 정확히는 이 이야기는 자신의 선에서 끊겠다는 암묵의 표시이기도 했다. 로벨리아가 알게 되면 그거야말로 정말로 무슨 말이 나올지 알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응? 아냐. 됐어. 됐어. 이것으로 충분한걸."
또 과자를 내미는 모습에 에스티아는 고개를 살짝 갸웃하다가 겨우 상황을 파악하고 두 손을 약하게 휘저었다. 설마 또 과자를 주려고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탓이었다. 일단 하나 받은 것은 먹겠으나 그 이상 받는 것은 조금 부담된다는 듯 에스티아는 살며시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그와는 별개로 아공간 자체는 꽤 신기한지 에스티아는 두 눈을 여러 번 깜빡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다고 쳐도 그 능력은 신기해. 우리는 인지할 수 없는 다른 공간이라. 하지만 엔트로피의 총량을 따져보면... 후훗. 물론 세븐스니까 이런 것을 따져도 의미없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구체적으로 어떤 곳에 위치한 공간인지는 궁금하긴 해."
평행세계? 아니면 아무 것도 없는 무의 공간? 정말 제대로 연구해보고 싶다고 생각은 하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기에 그녀는 일단 깍지를 낀 후에 쭈욱 위로 기지개를 켰다.
"아무튼 일단 내가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은 그 정도니까 나중에 필요하면 제대로 생각한 후에 가지고 와 줘. 네가 정말로 이걸 가지고 싶다한다면 그런 것으로 말이야."
헬무트 케르스트너는 평범한 세븐스였다. 대기와 기류를 다룰 수 있는 세븐스를 타고났긴 했지만 어떠한 사고도 일으키지 않았고, 그나마 세븐스를 쓰는 경우도 자신이 학교에 늦을까 싶으면 빠르게 하늘을 달리기 위한 정도로 쓰였다. 세븐스로 누군가를 해치는 건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비능력자긴 하지만 세븐스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가족 덕분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나이차가 많이 나는 누이는 그가 세븐스를 옳은 길에 쓸 수 있도록 인도했다. 비록 그가 16세일 적 비능력자 보호법령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가 살던 마을에서는 케르스트너 집안사람들의 성품과 헬무트가 올곧은 사람임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많은 차별 없이 밝은 앞날을 바라보고 있는 청년이었다. 그는 그때까진 자신이 이런 길을 걷게 되리라 믿지도 않았고, 단 한 번도 불안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훗날 그가 회고하기를 살면서 가장 잘한 선택은 불안을 받아들이고 조국에 충성을 바칠 수 있는 선택을 한 것이고, 가장 최악이었던 선택은 조국에 충성을 바쳤다는 것이다.
비극은 평범한 날에 갑작스럽게 닥쳐오는 법이다. 비능력자 보호법령이 떨어지고 1년 뒤, 헬무트는 가족을 모조리 잃었기 때문이다. 강경파 레지스탕스의 테러 때문이었다. 그날의 참상을 헬무트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가족이 모두 모여 선물을 사러 가던 참이었다. 누이인 루이제가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임신 3주 차라 고백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신혼이 지나면 손주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잔뜩 들떠있었고, 오랜 군 생활로 감정 표현이 희미하던 어머니도 기쁜 기색을 보였다. 쇼핑센터에서 아기용 신발을 고를 때, 가족 전체가 깊은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건 어때?"
헬무트는 신발 한 쌍을 손에 올렸다. 루이제는 신발을 받아보곤 높은 비명을 지르듯 목소리를 높였다. "맙소사, 너무 귀여워!" 병아리를 연상케 하는 샛노란 신발은 루이제의 손바닥 위에 올려도 공간이 남을 정도로 조그맸다. 행복이 가득 찬 목소리와 함께 행복한 미소가 얼굴에 가득 스몄다.
"엄마, 이것 좀 보세요. 꼭 병아리 같지 않아요?" "예쁘네. 누가 골랐니?" "헬리가요." "잘 골랐구나. 역시 아트스쿨 학생은 미적 감각도 달라." "맞아, 헬리는 뭐든 잘 그리잖아. 그래서인지 색도 예쁜 것만 고르나 봐요."
헬무트는 가족들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였다. 가족을 무엇보다 사랑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도 누이를 닮아 아름다울 것이다. 아니면 매형을 닮았을까? 어느 쪽이든 행복할 것이다. 달콤한 인생이겠지. 아이는 비능력자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내심 생각했다. 루이제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더니, 이내 환하게 웃었다.
"헬리, 또 세븐스 생각이야?"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얼굴에 다 쓰여있는걸." "쇼핑센터 직원 때문에 그러니? 클레임을 넣을까?" "아뇨. 들여보낸 준 걸로 감사하려고요." "정말이지, 괜찮아. 헬리.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마." "아, 1층에 아모리노*가 있던데. 쇼핑이 끝나면 거기서 아이스크림이나 하나씩 먹을까?" "리지, 내 나이가 열일곱인데 무슨 아이스크림이야!" "나보단 한참 어리지. 그래서 안 먹어?" "……먹어." "그럴 줄 알았어!"
헬무트의 얼굴이 새빨개지자 가족 전체가 웃음꽃을 터뜨렸다. "다른 신발 찾아볼게!" 도망치듯 멀찍이 떨어져 아기 신발을 둘러보자 웃음소리는 더 커졌다. 치사한 가족들! 그렇지만 도저히 미워할 수 없었다. 아기 신발을 대충 훑어볼 적, 헬무트는 적당한 신발을 하나 더 찾았다. 연보라색 신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새하얀 피부에 딱 어울릴 것 같다. 신발을 보여주기 위해 손바닥 위에 올렸을 적, 어디선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공포영화에서 들을 법한 소리는 쇼핑센터에서 들려야 것이 절대 아니었다. 불안한 기류가 몸을 훑었다. 그의 세븐스가 요동치고 있었다. 무언가 일이 잘못 됐어! 바람결에 실려오는 커다란 적의를 느낀 헬무트는 본능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도망쳐!"
그리고 폭음이 들렸다. 불길은 삽시간에 치솟았고, 헬무트는 가족을 위해 몸을 던졌다. 공포에 질린 루이제를 뒤로 천장이 쏟아졌다. 거센 진동과 함께 시야가 어두워졌다. 그는 난생처음으로 세븐스를 달리는 용도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사용했다. 거센 막을 만들어 억지로 버텼으나 높던 쇼핑센터는 모조리 바닥에 내려앉은 뒤였다. 가족을 지켰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에 있던 것은 잔해 더미였다. 군화 소리와 함께 가디언즈가 그가 있는 곳으로 뛰어와 세븐스 반응이 있었다며 그를 제압했다. 처음에는 목의 7자를 보며 제각기 떠들어댔으나, 막상 그의 세븐스 덕분에 몸이 멀쩡하게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는 여기에서 쇼핑을 하던 '착한 세븐스'라며 헬무트를 비호했지만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는 짓눌린 머리 너머로 깔려 튀어나온 익숙한 신발, 머리카락, 넥타이와 조그마한 손, 그보다 작은 샛노란 아기 신발을 눈에 담았다.
그 이후 형식적이긴 해도 짧은 조사를 받았다. "그러니까 누가 세븐스로 태어나서 평범하게 살래? 차라리 가디언즈로 들어왔으면 이런 오해도 없었을 거 아냐." 듣고 싶지 않은 핀잔을 뒤로 그는 혐의가 없음을 인정받고 자리를 떠났다. 길거리 새하얀 건물, 대형 스크린에서 흐르는 뉴스는 쇼핑센터 붕괴사고가 반정부 단체, 강경파 레지스탕스의 테러였으며 세븐스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에 대해, 그리고 비능력자 보호법령의 필요성에 대해 열심히 떠들어댔다. 그는 취조 때문에 새벽이 되어 인적 드문 하늘을 올려다 봤다.
"착한 세븐스는 무슨."
선과 악이 정립된 줄 알았는데 직접 마주한 세상은 선악의 개념이 없었다. 이 세상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는 탄압받는 세븐스에 불과했다. 힘도, 가족도, 아무것도 없는 세븐스. 그는 아무도 남지 않은 집에 돌아갔다. 불행은 부르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그는 불행이었고, 마침내 홀로 남아 외면하던 것을 직시하게 됐다. 그는 해가 뜨자마자 학교를 자퇴했다. 세븐스긴 했지만 훌륭한 미적 감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안타깝다는 푸념을 하던 교수는 마지막으로 생각을 다시 할 수 없겠느냐며 헬무트를 잡아보고자 했지만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결국 세븐스에 불과하기 때문에 유명세를 얻어도 조롱을 당할 것이라며. 그가 학교를 자퇴하고 가디언즈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린 건 그로부터 반년 뒤였다.
입단하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이제 훌륭한 가디언즈의 일원이 됐고, 동시에 주변 동료에게 있어 꺼림칙한 존재가 됐다. 주변 사람이 죽어도 눈길 하나 주지 않는 모습 때문이다. 그의 입단 동기는 헬무트가 과거 혹독하던 입단 테스트에도 아무런 불만이 없었으며, 대화를 할 때는 원칙을 고수하기 때문에 사람이 아니라 안드로이드를 마주하는 것 같다며 넌더리를 냈고, 그가 첫 임무부터 망설임 없이 사람을 죽였다며 혹시 이것이 천직이 아니겠느냐며 험담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동조하며 멋들어진 수식어를 붙일만한 사람은 아니라 손가락질했다. 고지식한 독일놈,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슬럼가를 돌아다니는 미친 개새끼, 속내를 알 수 없는 철통같은 놈, 철분이 부족하면 안드로이드도 씹어먹을 녀석…….
그렇지만 헬무트 케르스트너가 조국에서 필요로 하는 이상적인 인재상이라는 사실엔 감히 아무런 토를 달 수 없었다. 그는 대기와 기류를 다룰 수 있는 세븐스를 마치 염력처럼 응용해 적을 망설임 없이 제압했고,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에도 한치의 망설임을 갖지 않았다. 마침내 일과 사적인 감정을 분리하는 것에 성공했고, 더 나아가 이성과 감정을 분리하는 이상적인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사건은 그저 사건으로 보았고, 사람을 동정하지 않았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서사가 필요하지 않다며 단호히 선을 그었다. 그 사람이 어떤 과거를 가졌든, 주변에서 어떤 평가를 들었든 그에게 있어 반동분자는 반동분자였다. 그에게 그나마 말을 붙여주던, 가장 친한 동료가 죽어도 며칠 지나지 않아 출근해 일을 했던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그런 헬무트가 대중에게 있어 가장 비이성적인 장소, 슬럼을 전담으로 맡겠다는 사실은 한줄기 위안이 됐다. 그의 동료들은 조국을 위해 가장 깊은 곳까지 발을 들이는 헬무트를 존경스럽지만 상식 밖의 두려운 사람이라 평했다.
헬무트는 슬럼을 걸었다. 그에게 있어 슬럼은 패배한 세븐스나 인간이 숨어사는 곳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얌전히 찌그러져 있어야 하는 것들 중 시끄러운 세븐스가 있다면 이곳의 작은 여우에게 적당히 넘기면 되는 일이고, 넘길 수 없으면 죽이면 된다. 세븐스는 그런 존재였다. 결국 불행 그 자체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봐야 할 존재. 가디언즈가 되어도 결국 물과 기름, 그 어디에도 섞이지 못한다. 사람들은 가디언즈라 해도 여전히 세븐스이기 때문에 제각기 살을 붙이고 적당하지 못한 이유를 붙이며 손가락질하기 때문이다.
그는 모퉁이를 돌았다. 이 부근에서는 레지스탕스가 접선해 무기를 밀매할 때가 이따금씩 있었기에, 작은 변화 하나도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곳이다. 생활의 흔적이 썩어가는 냄새는 여전히 불쾌했지만 그 사이에서 다른 기류를 느껴졌다. 난생처음 느끼는 감각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희미한 네온 가로등 아래, 쓰레기 더미 가장 높은 곳을 올려다보고 나서야 평소와 다른 느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지나치게 고급 진 상자였다. 이런 슬럼에 대체 누가 선물 상자를 두고 갔는지 의문이 들어 적당한 위치에 상자를 내려두었고, 안을 들여다봤다.
"……애잖아."
상자 안에는 아기가 있었다. 생긴 걸 보니 신생아인 것 같았다. 그는 처음에 대체 누가 유아형 안드로이드를 여기에 버렸는지 생각했지만 실제 아이와 혼동하지 않게끔 이마에 써두는 인식 넘버가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 바로 표정을 구겼다. 인간의 끔찍함을 한차례 속에 눌러둔 그는 아기의 옆에 있는 카드를 꺼내 들어 올렸다.
─ 12월 27일 오전 3시 25분에 세븐스 검사 결과 양성을 통보받았습니다.
그는 짧은 메모가 쓰인 카드를 손안에서 구기고, 주머니에 쑤셔 넣어 멀쩡하지 못한 꼴로 만들었다. 그리고 총을 겨눴다. 이곳에 둔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소유권을 포기했으니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는 뜻이었다. 그는 일차적으로 제법 괜찮은 이유를 떠올렸다. 세븐스라는 이유로 신생아 시절부터 끌려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끔찍하고 역겨운 범죄의 희생양으로 만드느니 차라리 죽이는 것이 낫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아이가 세븐스니 도의적으로 죽이는 것이 옳다.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그는 오늘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가서 늘 그랬듯이, 조국의 위협을 제거했노라 얘기하면 되는 일이다. 그는 심호흡을 했다. 이건 모두 조국을 위한 일이다. 조국을 위한…….
헬무트가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걸쳤을 때, 아무런 움직임이 없던 아기가 손을 뻗었다. 조그마한 손가락이 머리 바로 앞에 있는 총구를 쥐었고, 그는 총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아이 또한 사람이었다. 숨을 쉬었고, 비참하지만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 조그맣고 이제 막 태어난 그 얼굴에서 그는 깊은 회의감을 느꼈다. 그리고 상자를 품에 안았다. 그가 순찰을 마치고 돌아왔을 적 보고한 것은 세븐스 신생아를 발견했으나 발견 당시 이미 죽어있었고, 사체의 훼손 정도가 심했으며, 그 시신을 훼손한 것으로 추정되는 세븐스를 사살했다는 내용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명한 가디언즈 기술 연구 지휘자이자 인체 공학 프로그래머 수잔나 엥엘이 그를 은밀하게 찾아와 아이가 정말 죽었느냐 물었다. 헬무트는 담담히 얘기했다.
"사정은 안타깝지만 국가에 해가 되는 존재를 한순간의 변덕으로 밖에 내놓지 말았어야지요."
결국 사람은 끔찍한 존재였다. 불행은 부르지 않는 이상 오지 않는 법인데도 결국 스스로 불행을 불러와버린다.
수잔나가 비틀거리며 자리를 도망치듯 빠져나간 것에서 아마 2주 정도가 지났던 것 같다. 그는 그동안 아이를 위해 거처를 옮겼다. 그가 제일 처음 임무에 나서 세븐스 레지스탕스를 소탕했던 장소는 세븐스를 위한 은신처가 됐다. 인터넷의 강력한 힘 덕분에 아이를 돌보는 법을 엉성하게나마 배울 수 있었던 탓인지 열약한 곳에서도 아이는 죽지 않고 살아갔다. 헬무트는 은신처에서 자신이 본가에 있는 것처럼 전파를 바꿔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했다. 3시 25분, 헤베 엥엘……. 낡은 가구를 조립해 급조한 아기용 침대에 누운 아이의 이름은 헤베였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름을 붙여주면 언젠가 이 아이에게 새로운 불행이 닥칠 것만 같다고. 차라리 불행이 아예 없도록 네가 살아있었다 얘기를 해야 했을까, 아니, 이미 버렸는데 두 번 버리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너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대체 어떻게. 잠든 아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그는 손을 뻗었다. 반사작용으로 웃는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그 미소가 익숙했다. 천진난만하고 해맑은 미소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이따금 못 견디게 그리웠던 미소를 뒤로하며 헬무트는 천천히 입을 벌렸다.
"이스마엘…… 이스마엘 케르스트너."
결국 우리는 신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주었으나, 어디에도 섞일 수 없는 떠돌이에 불과하구나. * 아모리노: 프랑스 모기업 아이스크림 체인점. 장미꽃 모양 젤라또가 유명하다.
두려움을 만용으로 바꾸라는 말, 허세를 부리면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과거의 친구의 말과 비슷해 쓴 웃음을 지었다.
"나도 몰라? 난 솔직히 내 스페셜 스킬이 더 신기해."
레비아탄은 레비아탄 그 자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레비아탄이 서식하는 차원의 문을 여는 것이다. 지난번 레이버와 싸운 직후 그 공간을 처음으로 발견했고 처절하게 놈과 싸우다가 초주검 상태로 겨우 탈출했다. 아마데우스와 처음 거리에서 만난 날이 아마 병원에서 퇴원 허가를 받은 후 얼마 안되서 였지.
"사실 세븐스에서 물리 법칙을 따르는 게 있기는 할까?"
선우는 과자를 하나 먹으며 우물거리며 말했다.
"아마 평행세계일꺼야. 무의 공간치곤 거기에 공기가 있으니까."
에스티아에 나중에 정말 필요한 게 있으면 오라는 말에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럼 나중에 네가 대충 장비 시제품 만들고 나서 실사용이 필요할 때 나한테 줘. 열심히 실전 테스터 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