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피한건 크게 거리낌이 있어서가 아닌 그저 속이 답답해서 한 번 밖을 곁눈질한 것에 가까웠다. 거리낄 양심이 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 이전에 지금까지 살아남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수도 있었다.
"기적을 바라는 것 같사와요."
그들은. 더 이상의 말은 삼키고 주어가 불분명 하지만 맥락상 주체가 무엇인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말을 한다. 타인이 제게 바란다고 곧이 곧대로 듣는건 취향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불쾌하고 한편은 우습기까지 했다. 물론 UHN의 명성이 어디가지는 않는 만큼 반항하는 말을 억지로 끌고 올 방도 정도야 수없이 시뮬레이션 했겠지만, 교묘히 그 틀에 순응하는 것처럼 굴면서 이를 저에게 유리한 식으로 이용하는 것은 그녀의 장기였다. 그들이 바라는 걸 그녀가 존중해야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분명 헨리 파웰은 좋은 본보기이자 존경받아야 마땅한 위인이지만 소녀가 감히 담기에는 큰 분이어요."
바보같이 대의만 쫓다가 이에 매몰되어 정작 소중한 사람은 돌보지 못한 가장이 있었다. 그 가장은 소중한 사람도 지키지 못하고 그토록 머저리 같이 고수하던 대의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그의 어린 딸이 그의 무책임한 죽음으로 어디까지 추락했는지, 하나뿐인 아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영영 알지 못하고 황천비량판을 넘어 요모츠오오카미의 영역으로 가버렸다. 적어도 눈앞의 그는 전 인류에서 눈앞 보이는 사람으로 대의의 대상을 축소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가까운 사람 중 유독 더 바보같은 부류의 가디언이라도 있었나 싶다. 못마땅한 속을 누르고 변함없이 두꺼운 얼굴로 웃으면서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노력 한다면 저도 기꺼이 그리 해보겠다-"의 중립적인 답을 한다.
"헌터는 높은 이상을 바라면서도 인간의 욕망을 헤아리기에 가디언이 아니지 않겠사와요. 여튼 다른 분들과 좋은 친분을 맺는건 소녀에게도 분명 필요한 덕목일테니 조언 감사드려요. 길드장께서도 잘 지내셨으면 한데, 소녀가 도울 부분이 있다면 편하게 불러주시어요."
분명 눈앞의 사람도 자신만의 목표가 있어서 이 환장할 집단에 속하게 된 것일텐데. 사연이 궁금하지만 질문은 속으로 삼키고 일단 적당히 보일 답부터 한다. //12
애초부터 첫 만남부터, 이 곳의 다른 녀석들의 재능이 반짝거려서 부럽다고. 그걸 보기 위해 들어왔다가, 자신도 뭔가 해보고 싶어졌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누군가의 재능을 기분좋게 보고, 힘차게 응원할 수 있는 것. 그 마음이야 말로 서포터라고 할 수 있겠지. 좋은 의미로.
"흠....신청곡이라. 그러고 보면, 첫 만남 때도 이랬던가."
첫 만남을 떠올리니, 그 뒤에 신청곡을 받았던 것도 연달아 떠오른다. 그 땐 분명 옥상에서, 내 전생의 동료들을 위한 장송곡을 요청했었던 것 같다. 나는 손에 든 시원한 음료를 한모금 마시고, 아직 창창한 햇살을 비추는 태양을 올려다본다.
빈센트는 강산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비현실, 초자연, 괴력난신, 괴이, 유사과학적 현상, 그 외 기타등등. 초자연적인 현상, 자신의 후견인 중 하나인 유사과학자 겸 일루미나티+프리메이슨+렙틸리언+666+베리칩+평면지구설+지하세계설+딥스테이트설 등등을 종합세트로 믿는 머저리에게, 빈센트는 걸어다니는 자기 신념의 증명이요, 일루미나티...와 그 외 기타등등 세계를 떡 주무르듯 통제하는 비밀그림자정부로부터 세상을 구원할 이였다. 뭐, 빈센트는 태어나서 한 번도 그의 사상에 동감한 적이 없었지만, 강산의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생각났다.
"자신의 마도가 무엇인가..."
빈센트는 손을 펼쳐, 자신의 마도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무엇이지? 마도, 너는 나에게 무엇이고, 나는 너에게 무엇이지? 넌 무엇이냐? 난 너를 무엇으로 인식했느냐? 빈센트는 잠시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들을 생각한다.
"폐허의 설계자요 건축자, 전위예술을 위한 붓과 물감, 그저 파괴만을 배운 거신,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무기, 그 외 기타등등... 아, 농담입니다."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찾아온 단 하나의 '다들'을 본다.
"음... 다들이라는 말을 쓰기에는 좀 적어보이긴 합니다만."
빈센트는 아이를 보면서 묻는다.
"그래서, 잘 했다. 뭘 해줄까?" //13 늦어서 죄송합니다 ㅜㅜㅜㅜ 혹시 이 다음은 강산이랑 빈센트랑 같이 합동마도로 멋진걸 구현하는걸 할수 있을까요?
아무 조건 없이 사람이 사람을 걱정할 수 있는가. 여전히 답을 모를 질문이지만 지금 린에게 답을 묻는다면 사르트르의 말-타인은 지옥이다-을 타당하다 여기는 입장에서 분명 부정하는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짧은 시간 동안에 3번이나 당황하는 걸로 타인의 존재가 나를 이해하는데 분명할 역할을 한다는 사르트르의 말을 직접 체험하고 싶지는 않았다. 제가 이리도 쉽게 당황하는 사람이었나. 한차례 그 사실에 또 다시 황당해한다.
'이쯤이면 특별반에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고 의심해도 좋지 않을까?'
자신이 친하다고 언급한 두 사람은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그 상태였던듯 하니 다른 사람-예컨대 특히 빈센트-의 변화를 지켜보면 확신을 가질 수 있을것 같았다. 아무튼 여기서 지나치게 훌륭하다. 존경스럽다. 등등의 뻔하디 뻔한 아첨은 안하느니만 못했고 결국 그녀는 가만히 상대를 바라보다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길드장이시니 이미 알고계실거라 생각하지만, 소녀에겐 양친이 계시지 않아 이런 상황이 조금 익숙치 않사와요."
왠지 말만 잘 어울리겠다 하고 혼자 행동하면 또 잘 지내냐며 다른 사람들과 관계가 어떤지 물어볼 것 같아 묘하게 곤란했다. 그냥 이참에 다른 사람들을 소개해 달라고 할까. 특별반 인물은 대부분 그 오토나시라는 사람을 제외하고 알고 있지만 확실히 신 한국에 아는 사람이 없기도 하고. 외부 사람들 중 저에게 도움이 되는 인맥이 있을수도 있고 말이니.
"먼저, 소녀는 다른 분들과 잘 지내고 있사와요. 최근에 토고씨와 다투었지만 이도 잘 해결된듯 하니, 적어도 소녀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렇사와요."
후 조금 숨을 고르고 다시 문장을 잇는다.
"그리고 게이트 공략도 생각하지 않은것은 아니오나 소녀는 아마도 다시 마도로 잠시 돌아가야 할 듯 하여요. 일본의 상황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 있다면 실례되지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사와요."
아, 모르고 있었나. 어차피 조금만 알아봐도 알게될 정보이니 상관은 없지만 그저 이런 시선이 그리 좋지는 않아 굳이 먼저 언급하지 않았건만. 언제청승을 떨며 머뭇거렸냐는 듯이 태연하게 음료를 마시면서 일부러 시선을 잔에 두었다. 누군가의 유혹이라, 타 길드의 영입제안을 말하는 건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답을 하고서 자연스럽게 이 부담스러운 상황을 넘기려한다.
"생각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여요. 그 오토나시라는 분과는 같은 길드이기도 하니 한 번 대화를 해보도록 해야할 것 같고, 교관님이라면."
남에게 의지를 하지 않는 버릇이 이 곳에 와서는 오히려 악수가 되었나. 잠시 고민하다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말씀대로 찾아가 보는게 좋겠사와요. 혹시 교관님을 만나기전에 소녀가 미리 알아야 할 무언가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