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축복이다. 심지어 그것이 갖고이라면... 가족이라는 축복이 있다면... 축복이 제곱이겠지. 빈센트는 자신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을까, 생각하다가 로뮤나를 떠올리고는 자신의 우행을 탓한다. 어쨌든, 빈센트는 강산의 이야기를 듣는다. 강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빈센트는 강산의 성취를 '우월성'으로 판단했지만, 강산은 '표현 방식의 차이'로 이해한 것 같았다. 빈센트는 강산의 이야기를 듣다가, 누군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금속의 유체동력은 불의 길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마도를 구성해서 액체금속을 다루던 이가 하던 말이었죠..."
빈센트는 옛날을 떠올린다. 빈센트는 스승도, 무엇도 없었다. 그저 '연구'랍시고 모여서 시간을 때우는 이들만 있었지. 그래도 그들 중에서, 빈센트에게 참고가 될만한 무언가를 준 이들은 있었다.
"...저와는 사상이 많이 달랐지만, 그 사람의 접근법은 많이 참고했습니다. 마도를 하나의 회로로 보고, 마도 끝에 구현되는 초상현상을 그 결과물로 보았죠.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일지도 모르겠지만,그러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격정, 분노, 향상심, 그 많은 것들을 회로에 다 담을 수는 없거든요. 그건 오직 강산 씨와 같은... 좀 예술적인 표현법의 담당이죠."
빈센트가 액체금속술사를 언급하자 강산의 눈이 잠시 흥미로 반짝였지만...일단 그는 빈센트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2년간의 배낭여행을 빙자한 가출은, 그에게 모든 사람들이 그와 같은 조건을 가진 것이 아님을 확실히 깨닫게 해 주었었으니. 그리고, 빈센트가 말을 마치자, 이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 듯 옅게 웃는다. 그 외에는 그렇다 아니다, 하는 말 없이.
"형님, 통역 기능(*) 켜놓고 계시죠?"
대뜸 묻는다. 이유없는 질문은 아니다.
"그 날 외숙부께서는 제게 두 가지의 불꽃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는 저희가 흔히 생각하는 평범한 불꽃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그렇게 말하며 강산은 불꽃을 일으켜 보였다. 그리고 그 불꽃을 꺼트리고는 문형이 해냈던 것처럼, 또 다시 불의 꽃잎을 달고 피어나는 꽃을 보여준다.
"...형님도 방금 보셨던 그것이었습니다. 그 분은 이 둘이 본질적으로 같은 마도라 하셨습니다. '불꽃'을 '피워내는' 마도라고요. 말장난 같죠? 한국말로는 같은 말인데, 영어로는 좀 다르게 들리려나요?"
강산은, 나노머신의 온전한 통역 능력 없이는 이 말장난 같은 마술의 비밀을 미국인인 빈센트에게 깔끔하게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이런 말장난 같은 게 정말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마도입니다."
신입을 위한 각주 : *헌팅네트워크 접속을 위해 헌터들이 삽입하는 칩은 나노머신으로 되어 있어 다양한 기능을 지원하며, 그 중에는 고성능의 통번역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 영어를 쓰는 미국인 빈센트가 한국어를 쓰는 신 한국 국적의 강산이와 원활하게 대화할 수 있는 이유.
//10번째. '우월성'이 아니라 '표현 방식'의 차이...맞는 말이지만... 아무래도 빈센트네 기존 방식이? 더? 복잡해보이긴? 하는?
빈센트는 사족을 붙이려다가 관둔다. 빈센트가 한때 외국어를 얼마나 열심히 배웠는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았고, 괜히 말했다가는 분위기나 싸해질 게 뻔했으니까. 빈센트는 불꽃, 본질적으로 같은 두 불꽃을 보고 턱을 쓰다듬는다. 무슨 느낌인지는 알겠다. 꽃을 피워낸다, 그리고 불을 만든다. 그 둘을 동시에 해낸다면, 한국적인 말장난 내지는 정서로 '불꽃'을 피울 수 있다면... 빈센트는 강산을 보다가, 말장난이라는 말에 허허 웃는다.
"무엇이든 가능하니까요. 게이트에서 신비한 동물을 만났을 때 했던 대화가 생각나는군요, 저보고 말했죠. 날파리와 벌레가 자신의 혀를 부르는데, 너의 무엇이 어떤 것을 부르냐고. 저는 그렇게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빈센트는 큼큼, 헛기침을 하고 목소리를 고치더니 그때 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모든 생각이 마도를 부르기에. 어쩌면 강산 씨가 말씀하신 걸 이미 깨우칠 기회가 있었는데, 제 스스로가 걷어찼을지도요."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이들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은 손에 별빛 조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11
역시 명가가 좋긴 좋구나, 라는 말에 강산은 그저 웃는다. 토고가 해준 말이 있어서 조금 더 당당해질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 당당히 가족의 도움을 받고, 그 사실을 말할 수 있지 않았는가.
"마도 자체는 어떤 1세대 각성자분이 쓰셨었던 것으로 악기 연주와 무관하지만, 내가 중첩 캐스팅을 할 수 있게 되면 연주하면서 같이 시전할 수 있겠지."
강산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고 말한다. 애매했다. 시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았더라면 강산은 빵 터지고 말 것이다. 왜냐면 '찬란한 반짝임' 또한 화려하기로는 다른 공격 마도에 꿇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물론, 굳이 화려함 때문에 그 마도를 택한 것은 아니고 다른 이유가 있었긴 했다.
"노래라니, 영월 때(*)의 영상을 본 거야? 하하, 나는 가수가 아니지만....그 비슷한 쪽으로 방향을 잡은 건 맞다. 요즘과 같은 세상에서 몸이 아프거나 다치면 치료를 받으면 된다. 전장에서라면 의료계 각성자의 도움을 받으면 되고. 하지만 마음이 아플 때는? 전장에서 너무나 끔찍한 것을 보아서 서 있기조차 힘들어질 때에는? 그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뜬금없는 걱정이 아니었다. 영월에서 다윈주의자들에게 치고 박으면서, 세상에는 끔찍한 행위를 하는 끔찍한 자들이 실존함을 알기에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런 마도도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아서."
처음 생각했던 것과 방식은 다를지라도 이 마도는 그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또 왠지, 언젠가 이 마도를 써야 할 일이 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올해는 연초부터 시끄러웠으니 그 뒤에도 이런저런 일이 많을 것 같다는 촉이 온 것도 있었고.
* 영월 습격 작전 : 시나리오 1의 최종 무대. 특별반 인원들이 강원도 영월을 점령한 대형 빌런 세력 '다윈주의자'들의 점령지를 습격, 납치된 사람들을 구조하고 빌런들을 소탕한 사건. 강산은 이 때 '히어로 모먼트'를 통해 노래와 연주로 광역 버프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