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번개가 잔상이 되어 그녀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였는 지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가 생명체라면 이정도 속도의 움직임을 한번에 크게 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번개처럼 빠른 움직임을 눈으로 쫓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 번개 그 자체를 쫓는다. 번개가 향하는 곳을 보며 그녀가 이동할 다음 위치를 생각한다.
아공간 속으로 숨어든 다음 그녀가 다음으로 올 것이라 예측되는 곳으로 튀어나와 산탄총으로 그녀의 코일을 쐈다.
"있잖아? 그 미친 과학자에게 받은 지시는 최소한 3명의 시체를 가져오는 거지? 그런데 이거 알아? 우리 몸은 우리 몸이 아니야. 우리는 이미 죽은 사람이고 다른 과학자 덕분에 기계 장치에 의식을 이식할 수 있어."
"즉, 네가 그놈의 명령에 따라 우리를 죽인다면, 그것은 네 스스로가 박사의 지시를 어기는 거야. 왜냐고? 네가 이 기계장치를 파괴하는 순간 우리의 의식은 다른 기체로 옮겨가게 되고 그때부턴 이건 그저 고철에 불과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죽이지 않는다면 그것도 네 스스로 지시를 어기는 것이지. 한낱 기계 주제에 박사의 말을 거스르겠다는 거야? 마음에 드네"
아공간과 아공간 사이를 이동해가며 그녀의 피뢰침을 피했다. 그러나 허벅지 부근에 한발을 맞고 말았다. 다행히 살갗에 박히진 않아 크게 아프진 않았지만 쉽게 빠지지도 않고 무엇인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인형 주제에 주절주절 말이 많아. 어? 닥치고 공격이나 해. 이쪽도 전력으로 덤벼줄테니까."
엘리나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짜증 섞인 말을 내뱉던 레레시아는 다시금 인상을 구겼다. 엘리나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 순간이었다. 그 짧은 순간 뒤를 흘겨보며 다 들으란 듯 말했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난 쟤 안 살려보내. 누가 뭘 어떻게 하든."
시체였든 아니든 상관없어. 저 따위 인형은.
그리고 다시 공격을 하려 하는데 엘리나가 빠르게 이동하며 총을 쏘았다. 연속적으로 날아오는 무언가를 피하던 중 상대적으로 무장이 약한 다리에 무언가 꽂혔다. 총알은 아닌 거 같은데. 일단 뽑으려 해봤지만 안 되었고, 그래서 손끝에 작은 갈고리를 만들어 주변 살과 함께 뜯어내려 해본다. 시도해보고 영 안 된다 싶으면 그대로 두었을 것이다.
"하."
짧은 한숨 같은 걸 내쉬고 그녀는 다시 엘리나에게 접근한다. 이번에도 창을 휘둘러 독액을 흩뿌리면서.
시야가 교란되다 못해 무의미해지는 듯한 기분이다. 어느 곳을 보아도 시선이 따라갈 적에는 이미 늦었다. 미처 보지 못한 방향으로부터 닥쳐오는 공격에 연타를 허용하고 만다. 반사적으로 움직여 마지막 하나만은 쳐내는 데 성공했다. 팔 위에 꽂힌 무언가는 탄환이 아닌 피뢰침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쳐 그것을 뽑아내려 했지만 뜻대로 될지.
그렇다면 닥쳐올 공격이 있기 전까지, 최대한의 타격을.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말이 조금쯤은 통하길 바란다. 대검과 장검을 각각 한 손에 쥔 채, 긁어내듯 크게 휘둘렀다. 두 겹의 검격이 엘리나의 허리와 목을 노리고 날아든다.
몸이 움직이질 않아, 아직도 저릿저릿한 감각에 너는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되면 이어지는 공격을 피할 수가 없는데... 아니나다를까 버스트를 발동한 엘리나는 굉장한 속도로 움직이며 공격을 모조리 피한 것도 모자라, 여기저기서 마치 궤적을 남기며 움직였다. 이윽고 들어올려진 권총, 쏘아진 것은 탄환 대신 피뢰침이었다. 이대로라면 몸에 피뢰침이 박히는 걸 두 눈 뜨고 지켜봐야만 했는데 마리의 난입으로 네 몸이 움직였다. 네 의지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그럼에도 피뢰침을 전부 피할 수는 없었던 점일까. 네가 아니었다면 회피에 집중해 피뢰침을 모두 피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건만 너도, 마리도 두 개의 피뢰침이 몸에 박히고 말았다. 무장 덕에 고통은 없었지만 이건 불길해도 너무 불길했다.
"...미안합니다, 마리."
너 때문이라는 생각, 그리고 슬슬 풀리는 마비에 숨을 몰아쉬며 그렇게 속삭인다, 그녀가 이미 엘리나에게 달려들었기에 들리지는 않았겠지만. 아직까지 몸이 자유롭지 않아 너는 그저 상황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래에서 자란 것은 아래가 어울린다는 그 사람들의 말이 맞나 보다. 아공간 너머로 들어갔지만 세븐스이길 포기하던 저들은 멍청한 사람들인 것 같다. 세븐스였던 것이 비능력자가 된다고 해서 그 낙인이 지워질 것 같았습니까? 세븐스에게도 버려지고, 비능력자 틈에도 낄 수 없는 하잘것없는 것들이 될 텐데. 어쩌면 나는 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삿된 것임을 안다…… 혼란스럽다, 아! 울고 싶다. 하지만 전시니까 울 수 없다. 세상이, 자신이 너무나도 혼란스럽다! 어떻게 해아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세상이 가라앉는 기분이다. 스파크를 막아내려 했으나 경황이 없었고 결국 이스마엘은 뒤로 떨쳐졌다. 불가항력이었다.
"리오 씨……?"
뒤로, 비명 같은 목소리에 떨쳐지며 조금 떨어진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버스트를 발동하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이스마엘은 다시금 움직일 수 없었다. 아까는 아버지를, 이번에는 리오 씨를. 끝내 내가 서있는 이 자리까지.. 세상이 이스마엘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가려 하는 것 같았다. 둥글게 홉뜬 눈이 떨려오더니 결국 한줄기 남은 무언가가 부서지는 것 같았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징조는 없었다. 마리가 쥬데카를 잡아채 회피하며, 피뢰침이 날아왔을 때까지, 그걸 곧이곧대로 얌전히 맞아주다 마지막 하나의 피뢰침이 우뚝 멈추더니 이내 의지를 잃고 벽을 뚫듯 처박혔다.
단 하나의 행동을 뒤로 이스마엘의 주변으로 숨을 죽일 고요한 침묵이 일었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모습 뒤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시스템 과부하, 페이시를 종료합니다. 페이시가 허망하게 꺼져버렸다. 얼굴을 전부 덮어가린, 개를 형상화 한 방독면이 드러났다. 새하얀 머리카락이 넘실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열이 올라 재머에 오류가 생길까 싶어 무장에 내장된 냉각장치는 이제 쓸모가 없음에도 입가로 새하얀 연기가 새어나왔다.
"그냥 죽입시다."
이스마엘은 손을 뻗었다. 주변 사람들이 공격을 마쳤을 때, 염력으로 두 번이면 충분하다 판단했다. 첫째는 들어올려 공중에서 그대로 처박으려 하였고, 그 다음엔 그대로 벽에 내던지려 들었던가.
피뢰침을 모두 회피한 이는 없었다. 그것을 떼어내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레이먼드는 엘리나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하지만 엘리나는 주먹에 맞은채로 그대로 서 있었다. 이내 쥬데카를 안고 회피를 하지만 피뢰침을 온전히 다 피할 수 없었던 마리는 맹수의 손톱으로 코일장치를 공격했다. 이내 선우의 산탄총이 또 코일에 제대로 명중했다. 그리고 레레시아의 창이 독액을 흩뿌렸고 그 독액은 기계 장치에 명중했다. 이내 코일에서 하얀색 연기가 사르륵 올라왔고 엘리나는 움찔하면서 회피했다. 허나 코일이 이미 제대로 부식했는지 스파크가 상당히 약하게 튀었다. 그리고 이스마엘의 염력이 엘리나의 몸을 들어올린 후 그대로 벽에 처박아버렸다. 공중에도 처박히고 벽에 처박혔지만 엘리나는 비명소리를 내지 않았다.
보검의 무장 효과 때문에 몸이 보호되고 있었기에 피가 흐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머리 부분에 데미지가 들어갔는지 엘리나는 머리를 쥐어잡았다. 이내 이를 악물고 제 0 특수부대원들을 바라봤다.
"...그러면 일단 당신을 죽여버린 후에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면 되겠지요." "...제가 사랑했던 사람." "...레지스탕스. 에일린. 리버... 읏!" "나는...나는..." (*조건 달성)
이내 엘리나는 다시 한 번 머리를 휘어잡았다. 살짝 몸을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무장에서 검은색 빛이 감돌았다. 이내 그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꽉 잡고 크게 비명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그럴수록 검은색 빛은 더욱 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반응이 나오는 것과 동시에 모두의 귓가로 루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세븐스 반응이 있어. -그런데 이건... 나의 것과 동일한 반응?!
멈춰버린 팔이여 움직여라. 멈춰버린 다리여 움직여라. 지금 여기는 전사를 위한 스테이지.
-Song of angel!!
이내 들려오는 목소리는 '루시아'와 동일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들려오는 것은 '루시아'가 부르는 노랫소리와 동일한 목소리의 노랫소리였다. 그리고 홀로그램처럼 튀어나오는 것은 검은색 옷을 입고 있고 광기어린 미소를 짓고 있는 또 하나의 '루시아'였다.
-당신은 여기서 쓰러지면 안돼. -가디언즈의 책무를 다하도록 해. 엘리나.
"........"
이내 엘리나가 들고 있는 검이 위로 솟구쳤다. 초점이 없는 눈동자가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마리가 있는 방향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망설임없이 검을 있는 힘껏 휘둘렀고 전방을 향해, 정확히는 마리를 향해 날아갔다. 그 검기는 모든 것을 찢어발길 것처럼, 강한 전류를 흘리면서 쭈욱 날아갔다. 그리고 마리에게 꽂혀있는 피뢰침 중 하나가 찌릿거리고 있었다.
-가디언즈는 지지 않아. -그리고 가디언즈의 전사는 그런 말에 흔들리지 않아. 사라지렴.
그 루시아의 적의와 조롱은 명백하게 '마리'를 향해 있었다.
/조건 만족으로 인한 전투 종료. 승리 판정. '축복의 가희'의 스페셜 스킬 발동. Song of angel 발동. 지금 여기는 이벤트 장면이기 때문에 따로 효과는 미기재.
스파크 칼리버 - 데미지 800. 마리의 피뢰침 효과로 회피 불가. 허나 이벤트 장면이기 때문에 특수한 조건을 만족할시 상쇄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