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았지만 무의미하다. 얕지 않은 상처임에도 죽은 몸에는 유의미한 손상은 아니라는 건가. 태연하게 사라지는 카시노프와 시체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죽으면 저렇게 이용될 테니, 살아야 할 구실이 하나 더 늘었다. 시설은 구태여 파괴하지 않아도 알아서 사라질 운명인가 보다. 2순위의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우니 바라지 않아도 가장 우선시해야 할 목표는 생존이 되었다.
츠쿠시는 장검을 꺼내들어 역수로 쥐고, 아래에서 위를 향하여 박아넣듯 허공에 올려쳤다. 검 끝에 집결된 예리함의 기운이 쐐기처럼 쏘아진다. 무형의 살의가 어깨의 장치를 노리고 짓쳐든다.
시체를 되살려? 병사로 써? 상상 이상으로 끔찍한 일에 너는 차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쓸모없던 이들이라고? 순간적으로 소름이 끼쳤다.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는, 혹은 자포자기한 세븐스들을 붙잡아 그렇게 활용하려고 하는 것 같지만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면? 인간은 인간이 아닌 것과 마주할 때 본능적인 공포를 느낀다고들 한다. 그런 면에서 저 셋은 네게 근원적인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죽어서도 편할 수 없다니, 사선을 넘어왔던 네 과거를 되짚자니 저절로 손이 떨려온다. 저들에게는 이제 부재되어 있는 공포가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듯, 전혀 기온이 낮아지거나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늘한 감각이 척추를 따라 올라 머리를 관통하는 감각에 너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저들이 한탄하는 듯한 말에도 나무라는 건 힘들었다. 그런 공포라는 게 지금 저기 저... 죽어서도 편할 수 없는 이들과 아직 살아있는 이들을 구분하는 기준이기도 했으니까. 오히려 지금의 그들은 시체보다도 무기력했다. 공포와 고통을 견디지 못한 채로 짓눌린... 그런 와중 카시노프의 목소리에 너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정신 차리자, 여기서 쉽게 죽어줄까보냐. 보검을 꺼내들고 무장을 전개한 엘리나를 보며 동시에 네 몸에도 검은 빛의 무장이 덧씌워진다. 여기서부턴 다시 한 번, 실력행사만이 남았을 뿐인가.
"시설의 파괴, 알아서 자폭할 테니 상관없겠고, 그럼 기본적인 임무는 완료한 게 됐으니 후퇴해도 괜찮겠습니다만..."
그렇게 쉽게 임무가 끝날 리 없지, 네 손으로부터 촤르륵, 하고 체인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너는 다음 순간 팔을 움직였고, 체인은 엘리나의 어깨를 노렸으나. 무슨 문제였는지 간섭을 받은 듯, 공격은 공중에서 궤도가 뒤틀려 빗나갔다. 이건... 저 막 때문인가, 귀찮게 됐다며 혀를 찬 너는 체인을 회수하며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저 성가신 걸 없애버릴 수 있지? 보검의 출력이 다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유지되는 건가... 아니면 세븐스를 통한 방어일 테니, 그 점을 파고들어야 하나? 너는 그녀의 세븐스가 뭔지 생각해본다, 아마 전류를 다루는 것 같았는데 단순히 그것뿐? 그렇다면 그 전류를 이용해서 모종의 방어막을 펼친 건가... 그걸 흩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체인을 손에 꽉 쥔 채 주변을 둘러본다. 시간을 길게 끌 순 없을 것 같은데...
꽤 날렵한 몸으로 피하는 것에 마리는 이 명령이라는 것이 단순한 공격만 하는 것이 아님을 짐작했다. 아무래도 본래의 몸의 기능을 통해 이전의 경험치까지 모두 가지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소름 돋는 그 모습에 마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카시노프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며 마리는 한탄하는 이들에게 말했다.
"강하니까 그런 말이 가능한 거라고? 우리 부모님은 비능력자임에도 세븐스인권운동을 하다 돌아가셨어. 당신들 비능력자보다 약하다고 할 생각은 아니지? 비능력자이 없는 힘을 가지고 있기에 차별을 받고 있으면서. 힘의 유무는 용기를 내는 것과 관계가 없어. 용기를 내는 이가 강한 거야."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의 말이 닿을지 닿지 않을지는 상관 없었다. 저들 중 한 명의 마음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이런 말 한마디 하는 것 쯤은 어렵지 않으니까. 이전까지 다른 이의 마음을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았던 모습과는 달라진 모습이리라. 아마 레이버와의 전투가 마리에게 영향을 끼친 모양이다. 그리고 그 레이버는, 루시아와 함께 있다고 한다.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해버린다. 분명한 적임에도.
이내 카시노프와 세 구의 시체는 물러가고 엘리나가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사라지는 카시노프를 향해 외치는 소리가 괴로웠다. 이게 바로 세븐스의 현실이다. 절망하고 무기력하고 다른 이에게 의존하려는 그런 모습. 그리고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이었다.
엘리나가 보검을 해방하자 찌릿한 감각이 온 몸에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전기뱀장어로부터 전기능력을 빼내기 위해 수련했던 감각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따갑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마리는 엘리나에게 접근해 공격하려 하였으나 엘리나의 몸에 전자 결계로 인해 공격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나에게 가까이 접근했던 마리는 아직 엘리나가 에일린이라는 가설을 버리지 못했는지 엘리나에게 다시금 말을 걸었다.
수라장 한가운데에서 이스마엘은 홀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돌격 소총을 격발했을 때 누군가 잡아챘기 때문에 다행스럽게 큰 부상은 면했지만 어깻죽지를 관통하는 총알은 막을 수 없었다. 격통이 치밀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세상의 색이 느껴지지 않는다. 땅에 떨어지는 피를 포함해 온통 잿빛인 세상에서 한 가지의 단어만 머리를 맴돈다. 헬무트.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단어인 것 같다. 무슨 단어더라? 아, 그 단어는 바람이다. 이 썩어빠진 대지 위를 자유롭게 유랑하고 흩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상냥한 바람이다. "쓸모없지 않습니다." 바람은 쓸모없지 않다. 곁에 있을 때면 상냥한 봄날을 불러주는 존재다.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이스마엘은 더듬거리며 입을 벌렸다. "공격을 멈춰주십시오, 공격을……." 더 잇지 못하고 가만히 한 사람만 바라본다. 헬멧을 써도 알아볼 수 있었다. 큰 체구에, 헬멧 아래로 빠져나온 하얀 머리카락……. 이스마엘은 스스로 잊고자 하던 단어에 대해 깨닫기를 거부했으나 이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혀가 움직일 때마다 무엇보다 날카로운 검이 되어 세상을 가르는 것 같다. "아니, 아니야. 저 사람들은 선택했어도, 적어도 그는 선택하지 않았어." 이스마엘은 우뚝 선 모습 그대로 눈앞에 뜬 경고문을 바라보았다. 심박수 증가, 흥분상태, 진정이 필요합니다, 격한 감정은 페이시를 종료시킬 수 있습니다. 심호흡을 따라하십시오……. 이스마엘은 심호흡을 하지 않았다. 헬무트가 철장으로 들어서 사라질 때, 더듬더듬 얘기하던 문장이 점차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단말마와 악을 지르는 비명으로 점철되어 종국엔 어떤 것도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다. "가지 마, 가면 안 돼, 가지 마요, 아니야, 아빠, 저 여깄잖아요. 거기로 가면 안 돼…… 카시노프!!! 찢어죽일 자야, 간악하고 교활한 노괴야, 너를 찢을 것이다, 너의 살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고 피로 목을 축일 것이다, 너의 삶의 끝자락에서 영혼을 파고 들며 목을 조르는 그날, 너의 면전 앞에서 웃는 자가 있다면 내가 될 것이며, 네가 살아남는다 한들 내가 너를 거두어 가장 아래에서 지켜보도록 하겠다. 케르스트너의 증오가 네게 닿을 것이다!!" 이스마엘은 바들바들 떨다가 고개를 돌렸다. 만약 네 본성이 추악하다 생각이 들 때면, 그 사람들을 사랑하려 해보려무나. 그러면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지.. 아니오, 나는 달라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니오, 나는 달라질 겁니다. 사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마엘이 비틀거리며 움직였다. 누이고 뭐고 가디언즈다. 이제는 가족으로서 쓸모가 없다. 당신은 쓸모 없는 것이다.
손에 쥔 배트를 뒤로 이스마엘이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엘리나를 배트로 후려치려 하며, 동시에 머리를 붙잡아 염력으로 강하게 짓눌러 땅에 처박으려 시도한 것이다.
레레시아는 철창을 부숴버린 후에 안에 들어있는 세븐스들을 바라보며 빠져나오라는 듯이 이야기했다. 이어 선우는 아공간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으나 좀처럼 세븐스들은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어쩌면 좋을지 망설이는 느낌에 가까워보였을 것이다. 그러는 와중 마리의 말이 들려오자 세븐스들의 시선이 모두 마리에게 향했다. 용기를 내는 이가 강하다. 그 말이 얼마나 와닿았을까? 이내 어린아이 하나가 아공간 안으로 뛰어들었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말 없이 하나둘 아공간 안으로 뛰어들었다. 무기력했던 표정이 크게 바뀌진 않았으나 적어도 움직이려고 하는 것이었을까. 적어도 세븐스들이 인질로 잡히는 일은 없어졌다. (조건 비만족시 경우에 따라 인질화)
한편 레이먼드의 공격과 마리, 그리고 쥬데카의 공격은 엘리나에게 닿는 듯 했으나 치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엘리나의 몸은 그 공격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그 빈틈을 노린 덕일까? 선우의 총 공격은 결계에서 막 돌아오려고 하는 플러그 꼬리에 명중했다. 이내 플러그 꼬리에서 치직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고 엘리나는 살짝 표정을 찡그렸다. 허나 크게 타격은 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와는 별개로 츠쿠시의 공격이 어깨의 두 장치를 노렸다. 코일 같은 장치가 공격당하자 이내 그 코일 장치에서 강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코일의 일부가 살짝 끊어졌고 어깨에서 흐르는 스파크의 정도가 약해졌다. 그와 동시에 전자결계가 끊어졌고 엘리나는 표정을 찡그렸다. 그와 동시에 이스마엘의 염력이 땅으로 그녀의 머리를 박게 만들었으나 이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 살며시 거리를 두었다.
"...전자결계 차단. 리커버 모드로 들어갑니다."
이내 코일 장치에서 다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엘리나의 등 뒤에서 보라색 빛이 강하게 솟구쳤다. 아마 쥬데카는 그것이 뭔지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전 전투. 레이버 전에서도 보았을테니까.
"...그리고 저는 에일린이 아닙니다. 엘리나입니다. ...리버는 누구입니까?"
기계적인 목소리를 내며 엘리나의 등 뒤에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이어 그 스파크는 구체가 되어서 하늘로 강하게 솟구쳤다. 그리고 그 스파크로 이뤄진 구체들은 공중에 떠올랐고 하나로 합쳐졌다.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여기저기로 스파크를 방사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맞으면 몸이 찌릿찌릿거리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손에 쥐고 있는 권총을 살며시 돌리기 시작했다.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
/조건달성으로 전자 결계 해체. 2턴 후에 부활. 스파크 볼 - 데미지 300 명중하게 될 시 .dice 1 3. = 3 으로 하여 1이 걸리게 될 시 마비 판정. 1턴간 행동불가. (공격,회피,방어 모두)
마음에 닿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정말 기대하지 않았나?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했을 때, 그리고 어린 아이 하나가 아공간으로 뛰어들고 그들이 그 걸음을 떼었을 때 마리의 마음 속은 이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뜨겁고 울렁거리고. 그래서 무어라 말하기 어려운 그런 느낌이. 레이버 전에서 집행자 세븐스들을 설득했던 동료들의 모습이, 레이버를 포기하지 않고 설득하고자 했던 동료들의 모습이 마리를 이렇게 바꾸게 된 것이었다.
마리는 다시금 엘리나에게 집중했다. 리커버 모드로 들어간다는 건 다시 전자결계를 킬 수 있다는 것일까. 그리고 엘리나의 등 뒤에서 스파크가 튀며 하늘로 솟구쳤고 그 구체에서 스파크를 방사했다.
마리는 그 전기를 피하려고 했으나 결국 피하지 못하고 전기에 맞고 말았다. 미간을 찌푸리며 고통을 참으며 마리는 엘리나에게 접근했다.
"너는 에일린이야. 리버는 네 남동생이고. 너는 세븐스의 해방을 위해 3년 전 레지스탕스에 들어갔어. 네가 에일린이 아니라면, 네 과거는 어떻지?"
아무래도 강한 공격을 계속해서 흘려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코일처럼 생긴 장치가 파손되며 끊어진 결계. 이어진 공격에 피해를 입는 엘리나를 보던 너는 아마 다시 결계를 전개하려고 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을 보다가 오싹함을 느꼈다. 보라색의 빛. 이건 아마 전부를 노린 공격이리라, 너는 이를 악물었다. 얼른 움직여야 해! 마리가 엘리나에게 건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은 공격을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젠장...!"
안타깝게도 네가 대신 몸을 던져 막아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래도 대부분은 아슬아슬하게나마 공격을 회피하는 듯했으나, 미처 궤도를 파악하지 못했더나 대처할 만큼 냉정하지 못해 공격에 노출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너는 짧은 찰나의 순간 결정을 끝내고 땅을 박찼다, 네가 발을 내딛은 곳은 가장 전방으로 뛰어들었던 사람의 앞, 그러니까 이스마엘의 앞이려나. 이스마엘과 파직거리는 구체 사이를 막아선 너는 예전처럼, 네 팔을 따라 펼쳐지는 철선을 통해 스파크 볼을 막아내려고 했다. 막아낼 수도 있었고.
"막았...으윽...!"
분명 본래 입었어야 할 피해는 무장 덕분인지 충분히 반감되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무장을 타고 스파크는 마치 물을 만난 물고기마냥 날뛰었고, 전기에 노출된 근육이 으레 그렇듯, 네 몸은 경직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맞닿아있다면 맞닿은 상대에게도 전류가 흐르겠지, 너는 삐걱거리는 몸을 움직여 이스마엘을 뒤로 떨쳐내려고 했다. "이스마엘 씨, 뒤로...!" 라는 비명 같은 목소리와 함께.
제 0 특수부대원들이 각자 공격을 가했지만 엘리나의 입에서 조용히 버스트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내 그녀의 모습이 팟하고 사라졌다. 그것은 틀림없는 '기동형' 버스트였다. 아주 가볍게 모두의 공격을 회피한 그녀는 이내 손에 쥐고 있는 권총을 돌리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이내 다시 한 번 팟팟팟 하는 느낌으로 여기저기서 모습을 보였다 감췄다. 지나가는 궤적마다 보라색 번개가 번쩍였다. 마치 번개가 움직이는 것처럼 정말로 빠른 움직임을 눈으로 쫓는 것은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다.
"...소용없습니다." "...네. 제가 6위입니다. 강함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감정적으로 움직이고 행동하는겁니까? ...전에 봤을때는 그 정도는 아니었을텐데." "...제 과거. ...그것은... 그것은... 저는 카시노프 님에게 여기로 왔고.. 그 이전에는...읏.."
모두의 말에 조용히 한 마디를 하던 와중 마리의 말에 엘리나는 움찔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오른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잡았다. 표정을 찡그리던 그녀는 이를 악물고 다시 팟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또 다시 여기저기서 모습을 거의 연속적으로 드러냈다. 얼마나 빠른지 여기저기에 잔상이 마치 실체화가 된것처럼 보였고 그들은 이내 권총을 들어올렸고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안에서 발사되는 것은 총알이 아니었다. 그것은 '피뢰침'이었다.
만약 박힌다고 한다면 쉽게 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가 방어를 해준다고 한다면 그 피뢰침을 모두 몸에 맞게 될 것이다. 딱히 데미지는 들어가지 않았겠지만 그것을 발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코일의 스파크가 더욱 강해졌다. 이제 머지 않아 전자 결계가 다시 복구된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기동형 버스트였기 때문이지. (시선회피) 보라색 빛이 분출되는 것은 버스트 사용의 징조랍니다.
피뢰침 발사 - 날아오는 것은 전원 다 3체. 명중하게 될시 명중한 횟수의 턴만큼 (노이즈). 피뢰침 자체에는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는다.
보라색 번개가 잔상이 되어 그녀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였는 지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가 생명체라면 이정도 속도의 움직임을 한번에 크게 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번개처럼 빠른 움직임을 눈으로 쫓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 번개 그 자체를 쫓는다. 번개가 향하는 곳을 보며 그녀가 이동할 다음 위치를 생각한다.
아공간 속으로 숨어든 다음 그녀가 다음으로 올 것이라 예측되는 곳으로 튀어나와 산탄총으로 그녀의 코일을 쐈다.
"있잖아? 그 미친 과학자에게 받은 지시는 최소한 3명의 시체를 가져오는 거지? 그런데 이거 알아? 우리 몸은 우리 몸이 아니야. 우리는 이미 죽은 사람이고 다른 과학자 덕분에 기계 장치에 의식을 이식할 수 있어."
"즉, 네가 그놈의 명령에 따라 우리를 죽인다면, 그것은 네 스스로가 박사의 지시를 어기는 거야. 왜냐고? 네가 이 기계장치를 파괴하는 순간 우리의 의식은 다른 기체로 옮겨가게 되고 그때부턴 이건 그저 고철에 불과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죽이지 않는다면 그것도 네 스스로 지시를 어기는 것이지. 한낱 기계 주제에 박사의 말을 거스르겠다는 거야? 마음에 드네"
아공간과 아공간 사이를 이동해가며 그녀의 피뢰침을 피했다. 그러나 허벅지 부근에 한발을 맞고 말았다. 다행히 살갗에 박히진 않아 크게 아프진 않았지만 쉽게 빠지지도 않고 무엇인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인형 주제에 주절주절 말이 많아. 어? 닥치고 공격이나 해. 이쪽도 전력으로 덤벼줄테니까."
엘리나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짜증 섞인 말을 내뱉던 레레시아는 다시금 인상을 구겼다. 엘리나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 순간이었다. 그 짧은 순간 뒤를 흘겨보며 다 들으란 듯 말했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난 쟤 안 살려보내. 누가 뭘 어떻게 하든."
시체였든 아니든 상관없어. 저 따위 인형은.
그리고 다시 공격을 하려 하는데 엘리나가 빠르게 이동하며 총을 쏘았다. 연속적으로 날아오는 무언가를 피하던 중 상대적으로 무장이 약한 다리에 무언가 꽂혔다. 총알은 아닌 거 같은데. 일단 뽑으려 해봤지만 안 되었고, 그래서 손끝에 작은 갈고리를 만들어 주변 살과 함께 뜯어내려 해본다. 시도해보고 영 안 된다 싶으면 그대로 두었을 것이다.
"하."
짧은 한숨 같은 걸 내쉬고 그녀는 다시 엘리나에게 접근한다. 이번에도 창을 휘둘러 독액을 흩뿌리면서.
시야가 교란되다 못해 무의미해지는 듯한 기분이다. 어느 곳을 보아도 시선이 따라갈 적에는 이미 늦었다. 미처 보지 못한 방향으로부터 닥쳐오는 공격에 연타를 허용하고 만다. 반사적으로 움직여 마지막 하나만은 쳐내는 데 성공했다. 팔 위에 꽂힌 무언가는 탄환이 아닌 피뢰침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쳐 그것을 뽑아내려 했지만 뜻대로 될지.
그렇다면 닥쳐올 공격이 있기 전까지, 최대한의 타격을.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말이 조금쯤은 통하길 바란다. 대검과 장검을 각각 한 손에 쥔 채, 긁어내듯 크게 휘둘렀다. 두 겹의 검격이 엘리나의 허리와 목을 노리고 날아든다.
몸이 움직이질 않아, 아직도 저릿저릿한 감각에 너는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되면 이어지는 공격을 피할 수가 없는데... 아니나다를까 버스트를 발동한 엘리나는 굉장한 속도로 움직이며 공격을 모조리 피한 것도 모자라, 여기저기서 마치 궤적을 남기며 움직였다. 이윽고 들어올려진 권총, 쏘아진 것은 탄환 대신 피뢰침이었다. 이대로라면 몸에 피뢰침이 박히는 걸 두 눈 뜨고 지켜봐야만 했는데 마리의 난입으로 네 몸이 움직였다. 네 의지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그럼에도 피뢰침을 전부 피할 수는 없었던 점일까. 네가 아니었다면 회피에 집중해 피뢰침을 모두 피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건만 너도, 마리도 두 개의 피뢰침이 몸에 박히고 말았다. 무장 덕에 고통은 없었지만 이건 불길해도 너무 불길했다.
"...미안합니다, 마리."
너 때문이라는 생각, 그리고 슬슬 풀리는 마비에 숨을 몰아쉬며 그렇게 속삭인다, 그녀가 이미 엘리나에게 달려들었기에 들리지는 않았겠지만. 아직까지 몸이 자유롭지 않아 너는 그저 상황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래에서 자란 것은 아래가 어울린다는 그 사람들의 말이 맞나 보다. 아공간 너머로 들어갔지만 세븐스이길 포기하던 저들은 멍청한 사람들인 것 같다. 세븐스였던 것이 비능력자가 된다고 해서 그 낙인이 지워질 것 같았습니까? 세븐스에게도 버려지고, 비능력자 틈에도 낄 수 없는 하잘것없는 것들이 될 텐데. 어쩌면 나는 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삿된 것임을 안다…… 혼란스럽다, 아! 울고 싶다. 하지만 전시니까 울 수 없다. 세상이, 자신이 너무나도 혼란스럽다! 어떻게 해아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세상이 가라앉는 기분이다. 스파크를 막아내려 했으나 경황이 없었고 결국 이스마엘은 뒤로 떨쳐졌다. 불가항력이었다.
"리오 씨……?"
뒤로, 비명 같은 목소리에 떨쳐지며 조금 떨어진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버스트를 발동하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이스마엘은 다시금 움직일 수 없었다. 아까는 아버지를, 이번에는 리오 씨를. 끝내 내가 서있는 이 자리까지.. 세상이 이스마엘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가려 하는 것 같았다. 둥글게 홉뜬 눈이 떨려오더니 결국 한줄기 남은 무언가가 부서지는 것 같았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징조는 없었다. 마리가 쥬데카를 잡아채 회피하며, 피뢰침이 날아왔을 때까지, 그걸 곧이곧대로 얌전히 맞아주다 마지막 하나의 피뢰침이 우뚝 멈추더니 이내 의지를 잃고 벽을 뚫듯 처박혔다.
단 하나의 행동을 뒤로 이스마엘의 주변으로 숨을 죽일 고요한 침묵이 일었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모습 뒤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시스템 과부하, 페이시를 종료합니다. 페이시가 허망하게 꺼져버렸다. 얼굴을 전부 덮어가린, 개를 형상화 한 방독면이 드러났다. 새하얀 머리카락이 넘실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열이 올라 재머에 오류가 생길까 싶어 무장에 내장된 냉각장치는 이제 쓸모가 없음에도 입가로 새하얀 연기가 새어나왔다.
"그냥 죽입시다."
이스마엘은 손을 뻗었다. 주변 사람들이 공격을 마쳤을 때, 염력으로 두 번이면 충분하다 판단했다. 첫째는 들어올려 공중에서 그대로 처박으려 하였고, 그 다음엔 그대로 벽에 내던지려 들었던가.
피뢰침을 모두 회피한 이는 없었다. 그것을 떼어내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레이먼드는 엘리나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하지만 엘리나는 주먹에 맞은채로 그대로 서 있었다. 이내 쥬데카를 안고 회피를 하지만 피뢰침을 온전히 다 피할 수 없었던 마리는 맹수의 손톱으로 코일장치를 공격했다. 이내 선우의 산탄총이 또 코일에 제대로 명중했다. 그리고 레레시아의 창이 독액을 흩뿌렸고 그 독액은 기계 장치에 명중했다. 이내 코일에서 하얀색 연기가 사르륵 올라왔고 엘리나는 움찔하면서 회피했다. 허나 코일이 이미 제대로 부식했는지 스파크가 상당히 약하게 튀었다. 그리고 이스마엘의 염력이 엘리나의 몸을 들어올린 후 그대로 벽에 처박아버렸다. 공중에도 처박히고 벽에 처박혔지만 엘리나는 비명소리를 내지 않았다.
보검의 무장 효과 때문에 몸이 보호되고 있었기에 피가 흐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머리 부분에 데미지가 들어갔는지 엘리나는 머리를 쥐어잡았다. 이내 이를 악물고 제 0 특수부대원들을 바라봤다.
"...그러면 일단 당신을 죽여버린 후에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면 되겠지요." "...제가 사랑했던 사람." "...레지스탕스. 에일린. 리버... 읏!" "나는...나는..." (*조건 달성)
이내 엘리나는 다시 한 번 머리를 휘어잡았다. 살짝 몸을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무장에서 검은색 빛이 감돌았다. 이내 그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꽉 잡고 크게 비명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그럴수록 검은색 빛은 더욱 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반응이 나오는 것과 동시에 모두의 귓가로 루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세븐스 반응이 있어. -그런데 이건... 나의 것과 동일한 반응?!
멈춰버린 팔이여 움직여라. 멈춰버린 다리여 움직여라. 지금 여기는 전사를 위한 스테이지.
-Song of angel!!
이내 들려오는 목소리는 '루시아'와 동일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들려오는 것은 '루시아'가 부르는 노랫소리와 동일한 목소리의 노랫소리였다. 그리고 홀로그램처럼 튀어나오는 것은 검은색 옷을 입고 있고 광기어린 미소를 짓고 있는 또 하나의 '루시아'였다.
-당신은 여기서 쓰러지면 안돼. -가디언즈의 책무를 다하도록 해. 엘리나.
"........"
이내 엘리나가 들고 있는 검이 위로 솟구쳤다. 초점이 없는 눈동자가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마리가 있는 방향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망설임없이 검을 있는 힘껏 휘둘렀고 전방을 향해, 정확히는 마리를 향해 날아갔다. 그 검기는 모든 것을 찢어발길 것처럼, 강한 전류를 흘리면서 쭈욱 날아갔다. 그리고 마리에게 꽂혀있는 피뢰침 중 하나가 찌릿거리고 있었다.
-가디언즈는 지지 않아. -그리고 가디언즈의 전사는 그런 말에 흔들리지 않아. 사라지렴.
그 루시아의 적의와 조롱은 명백하게 '마리'를 향해 있었다.
/조건 만족으로 인한 전투 종료. 승리 판정. '축복의 가희'의 스페셜 스킬 발동. Song of angel 발동. 지금 여기는 이벤트 장면이기 때문에 따로 효과는 미기재.
스파크 칼리버 - 데미지 800. 마리의 피뢰침 효과로 회피 불가. 허나 이벤트 장면이기 때문에 특수한 조건을 만족할시 상쇄 가능.
레레시아의 살려보내지 않겠다는 그 말과 이스마엘의 죽여버리겠다는 그 말은 동일했다. 마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동료들과 다투고 싶지 않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막을 순 없었다.
"레시, 넌 저렇게 조종당하고 있는 이가 라라시아라고 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엘리나가 조종이든 세뇌이든 어떻든 간에, 지금 에일린이 원해서 저기 있는 게 아니잖아. 단지 한 순간의 패배로 의지를 잃은 것 뿐이잖아! 세상을 바꾸려했던 레지스탕스 동료였다잖아! 또, 누군가의 가족이잖아! 가족이 기다리고 있다잖아!"
평소의 마리답지 않은 모습으로 소리지르는 모습에는 아마 과거의 편린이 묻어있을 것이었다. 이 둘이 어떻게 행동하든 마리는 에일린을 꼭 데려가고 싶었다. 그래서 리버에게 에일린이 죽지 않았음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이내 드러나는 모습에 방금의 절규는 어디가고 놀라 눈만 깜빡이며 앞을 바라봤다. 머리를 감싸고 비명을 지르는 엘리나와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또 하나의 '루시아'
그리고 자신에게 향하는 그 적의와 공격에 마리는 어떻게 피할 수 없었다. 결국 마리는 눈을 꽉 감으며 양 팔을 올려 미약한 저항만을 할 뿐이었다.
무방의 일부는 독에 녹고, 여기저기 치이고 던져지는 엘리나였지만 비명이나 신음 하나 나오지 않는 걸 보고 독하다고 중얼거린다. 아니면 저것이 그 칩의 효과이거나.
"그것 참 충실한 사냥개가 따로 없군."
그러니 더더욱 부수고 싶다. 이 자리에서 숨통을 끊고 시체마저 다신 못 쓰게 만들고 싶다.
그녀는 엘리나가 빈틈을 보이는 사이 다시 공격을 가하기 위해 창을 들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꽂히는 외침에 두 눈이 부릅뜨였다. 단번에 핏발이 터져 붉게 물들어가는 눈이 마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마리 그린우드."
서슬 퍼런 목소리가 낮고 섬뜩하게 깔린다.
"아는 거라곤 X도 없는 주제에 되는대로 떠들지 마. 동료고 나발이고 전부 때려치기 전에."
그 뒤에 이어진 말은 엘리나의 비명에 묻혔다. 그녀는 절호의 타이밍을 놓쳤다고 생각하며 창을 잠시 거두고 왼팔을 들어올렸다. 손목에 걸린 팔찌로부터 바람이 새어나오며 엘리나의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구속하려고 한다. 그리고 뒤에서는 그녀가 한껏 생성한 독액으로 거대한 창을 구현화하여, 창 위에 걸어앉아 바람을 타고 날아올랐다.
- 절망의 나락으로부터 올라와 - 한 깊은 원망 이제 성취하리니 - 그 앞 막는 자야말로 어리석으리
"폴링- 에어로."
통상이었다면 드는 것도 불가능했을 거대한 창이 수직으로 솟구쳤다가 공중에서 궤도를 틀어 엘리나를 향해 바로 내리꽂힌다. 노리는 곳은 무장과 무장 사이. 숨이 오가는 그곳. 목이다.
집요하게 코일을 노리는 공격에 엘리나는 그대로 벽에 처박혔다. 적잖은 피해를 입혔지만 그 중에서도 머리에 입힌 피해가 극적이었는지... 아니면 그동안 마리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건넨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엘리나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몸을 비틀거렸다. 단순히 두통인가? 아니면... 이라고 생각할 즈음, 그녀의 무장에 감도는 검은 빛과 함께 들려오는 루시아의 목소리에 너는 마른침을 삼켰다. 루시아와 동일한... 설마?
"이게, 설마...?"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분명히 그건 루시아였다. 그러나 조금... 아니 많이 다른, 너와 동료들에게 보였던 그런 따스한 모습이 아닌 광기 어린 모습의 루시아를 보며 너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치 너에게 다시 한 번 싸울 힘을 줬던 것처럼, 저 루시아는 지금 엘리나에게 적을 섬멸할 힘을 주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솟구치는 검, 휘둘러지는 궤적. 공기를 찢어발기는 듯한 파열음, 너는 망설일 틈도 없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 궤적이 노리는 것은 단 한 명 뿐이었으니까.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지만 바로 땅을 짚는 손목의 무장이 땅과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그대로 용수철처럼,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으며 달려간 너는
"뭐 하는 거야, 마리!!"
그렇게 소리치면서 손을 뻗는다. 손에 그녀의 어깨가 닿는다면 아마 있는 힘껏 잡아당기지 않았을까, 분명 공격은 이 피뢰침을 향하고 있을 터... 또 다른 피뢰침으로 흩뜨리는 것도 시도해 볼 만 했지만 지금은 그런 행동을 할 만큼 네게 여유는 없었다. 안 된다. 여기서 또 한 발 늦을 수는 없잖아. 그런 말이 머릿속에서 울리는 듯 너는 이를 악물고 마리를 감싸려고 했다.
"버스트!!!"
네가 그녀를 감싸는 순간, 너는 그렇게 소리친다. 견뎌낼 수 있을 거야, 두 번은 안 된다! 빠득, 하고 이를 앙다무는 소리가 들리고 무장은 증기를 내뿜는 소리를 내며 네 몸에서 떨어져 나와 펼쳐진다. 전방위를 모두 막아낼 수 있을까? 안 된다면? 그녀의 무장에 박힌 피뢰침을 붙잡는다. 제발 빠져라...! 네가 막아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는 그런 불안감에 손이 떨린다. 감싸긴 했지만 그런 틈을 파고들면 어쩌지? 차라리 네게도 박힌 두 개의 피뢰침이 작동했으면 좋겠다고 소리 없는 외침을 삼킨 너는 시선만을 힘겹게 돌려 네가 막으려 든 검격을 바라보았다.
에일린을 엘리나로 조종하기 위해 설치된 장치는 하나가 아니었나? 불길한 검은 기운이 일렁이더니 나타난 것은…… 이곳의 루시아는 '루시아'의 세븐스로 구현된 존재. 달리 말하면 저편에서도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저 루시아는 그런 존재인 듯했다.
그는 자신이 엘리나를 동정하지는 않는다 생각했다. 사랑했던 사람을 운운했던 것 역시 그것이 엘리나의 주의를 흩어놓기에 좋은 수단이었기에 택한 것이다. 츠쿠시는 오래 전부터 무정을 체득해왔기에 혹 완벽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엘리나를 처리하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혼란을 주고자 스스로 꺼낸 말로 인해 저 자신의 미련을 돌아보게 된다. 엇갈린 운명은 하나로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기가 쏘아지며 마리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간다. 그는 그저 뛰어들어 엘레나의 검에 제 검을 단번에 꽂아넣으려 했다.
그제야 어깨를 한번 본다. 피가 여전히 흐르고 있었음에도 팔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회색 피가 묻어나온다. 세상은 여전히 색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리의 일갈은 레레시아를 향했지만 머리 한 구석에서 네게 말하는 것도 있다며 속삭이는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갈피를 잡기 어렵고 혼란스러웠다. 늘 하고 살았던 생각과 감정이 격해져 그래서는 안 되는데도 억지로 쥐어짜는 듯한 생각이 공존한다. 예, 당신 말이 맞습니다. 레지스탕스 동료지 않습니까. 가족이 기다리고 있으니, 아직 살아있으니 희망은 있습니다.
"아, 레지스탕스 출신은 원하지 않았음에도 가족이 기다리니 꼭 데려다주고, 가디언즈는 원해서 여기 있는 거다?"
이스마엘은 한마디를 던지고 머리를 쓸어넘겼다. "미안합니다, 순간 감정이 격해졌습니다." 짧은 문장을 뒤로 이스마엘은 계속해서 속을 식혀보려 무진 노력했다. 머리가 차갑다. 냉각장치 때문인 것 같다. 차가워서 두통이 일고 살이 에는 것 같다. 그럼에도 속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어쩌면 마그마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나는 차가워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아니라면.. 쥐어짜는 듯한 생각을 막을 수 없었다.
그도 원해서 저기 있는 게 아닐 텐데. 그는 의지를 잃지도 않았는데. 이스마엘은 자신을 품에 안아주던 그 따뜻하던 팔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늘어지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던 순간을, 결국 그 시체를 두고 도망쳐야만 했던 순간을 기억해냈다. 한때 생각만 하면 눈물이 흐르던 것이 이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무뎌짐을 경계함은 이런 연유다. 세상을 바꾸려 했던 동료였으며 가족이 기다렸다지만. 이스마엘은 더는 납득할 여유가 없었다.
"Ms. 그린우드, 저 또한 무례한 말을 했으니 언사를 신경써달라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무조건 비호하지 마십시오. 에일린을 데려간 이후 제정신으로 돌아와 눈물겨운 상봉을 할 것 같냔 말입니다. 만일 저 모습 그대로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면? 상냥했다가 세븐스라며 죽이려 드는 등,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누이를 보고도 기뻐할 것 같습니까? 가끔은 남겨지는 사람들을 생각하십시오. 단지 그것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스마엘은 그 말을 이후로 깍듯하게 "다시금 사죄드립니다." 하고 사과의 뜻을 전하며 루시아와 엘리나, 아니, 에일린을 번갈아 쳐다봤다. 손에 쥔 보검이 나이프가 되어 갈라졌다. 그리고 주변의 잔해가 둥실거리며 떠올랐다.
나는 기르는 개를 안다. 기르는 개는 나를 모르는 듯싶다. 그러니 나에게로 오라. 네 목줄이 누구의 손에 있는지 기억하라.
『전탄발사 - 이데아』
보검을 향한 공격을 뒤로, 이스마엘은 계속해서 머리를 쓸어넘겼다. 피범벅인 손이 부들부들 떨려오며 마스크와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헤집는다. 저건 말도 할 수 있고, 살아있는 것 같으니 돌아갈 수 있는데 나는 죽은 시체를 다시 안아야 하잖아. 불공평하다. 불공평하다, 불공평해. 아니야, 불공평하지 않아.혁명 이후에 전부 똑같이 만들면 돼. 밑바닥은 위로, 위는 밑바닥으로. 그것 또한 이상적이니.
마리가 피하지 못하고 있자 쥬데카는 자신의 버스트를 써서 방어를 시도했다. 스파크 칼리버는 이내 팅겨자나가는 듯 했으나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이어 레이먼드가 가속한 상태로 검기를 스쳐 지나갔고 검기는 그 피뢰침에 반응해서 레이먼드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 순간 선우의 스페셜 스킬이 발동했고 스파크 칼리버를 꿀꺽 삼켰다. 어떻게든 이 공격은 받아친 모양이었다.
한편 레레시아는 스페셜 스킬을 사용했고 그대로 엘리나의 목을 노렸다. 그리고 츠쿠시는 엘레나의 보검에 제 검을 꽂아넣었다. 뒤이어 이스마엘의 스페셜 스킬이 발동했고 보검을 향해 공격을 시도했다. 허나 놀랍게도 보검은 박살나지 않았다. 레레시아의 스페셜 스킬도 데미지를 주긴 했으나 보검은 깨지지 않고 이내 엘리나는 단번에 팟하는 느낌으로 번개의 궤적을 그리면서 거리를 두었다.
"...카시노프님의 귀환 명령 수신." "...미션 실패."
이내 그녀는 고개를 돌린 후에 단번에 팟 하는 소리를 내면서 구멍 속으로 뛰어들어 사라졌다. 한편, 그와 동시에 건물이 더욱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꽤 지난 상태였고 언제 폭발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사태였다. 점점 그 흔들림은 커져만 갔고, 이내 여기저기에서 폭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아스텔의 통신이 들려왔다.
-제 0 특수부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후퇴해. -폭발이 일어나고 있어. 자폭장치가 발동된 것 같은데... 시간이 많지 않아. -다만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아. 다른 곳으로 도망칠 곳을 확보해야하는데. 일단 나는 나대로 찾아보도록 할테니까 너희들도 탈출 루트를 찾아내.
이내 아스텔의 통신이 끊어졌다. 아무래도 그는 그대로 빠르게 여기저기로 찾아다니려는 것 같았다. 그와는 별개로 엘리베이터는 더 이상 쓸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 어디로 탈출을 해야만 할까? 빨리 그 루트를 찾아내야만 했다.
격전이 오가는 도중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만 같다. 엘리나는 결국 후퇴했다. 그 짧은 새에 자폭의 제한시간이 끝나서인지, 엘리나의 상태가 전투를 지속하기엔 이상이 있어 후퇴한 것인지는 단정하지 못하겠다. 일차적인 생존의 문제가 지나니 이제는 폭발이 그 뒤를 기다리게 되었다. 언제 터질지 모를 급박한 상황이지만 그는 침정만은 잃지 않았다. 팀원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살피다 츠쿠시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수술실 방향에 어디론가 통하는 지하 도로가 있었습니다. 그 끝을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만, 그곳은 어떨지."
핏발이 터져 붉게 물든 눈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본다. 마리는 레레시아의 낮은 목소리에 이내 자신의 말이 심했음을 바로 알아차렸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 말을 꺼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내 들리는 목소리는 레레시아의 것만은 아니었다. 이스마엘, 마리가 네배멍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의 목소리는 꽤나 격해져 있었다.
아, 마리는 방금 전 있었던 가디언즈 시체 세 구와의 짧은 격돌을 떠올렸다. 그 중 한 구를 보고 이스마엘이 아빠라고, 그랬던가. 레지스탕스 출신과 가디언즈 출신을 나누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말이 그렇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상황은 그렇게 두지 않았다.
이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전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몸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눈을 뜨니 녹빛 머리카락이 보이고 그 너머로 동료들의 도움으로 스파크가 사라진 것을 보았다.
"왜...?"
무언가를 대상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이내 정신을 차릴 것처럼 보였던 엘리나가 사라지는 것을 눈동자로 쫓으며 잠시 멍하니 서 있는다. 아스텔의 통신이 들리고 다른 동료들이 탈출할 공간을 찾으려는 동안에도 멍하니 그 붉은 눈동자가 초점을 잃은 채 서 있다.
그러던 중 정신을 차린 건 레레시아의 비명 때문일까. 마리는 입술을 짖씹으며 정신을 차리며 밖으로 나가는 길을 따라 달려나간다.
다행히. 라고 해야 할지, 일단 공격은 막아낼 수 있었다. 분명 필중을 염두에 둔 공격이었을 테지만 너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의 조력으로 공격은 상쇄할 수 있었다. 아마 한 번 막아낸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으리라. 바람이 스치는 듯한 소리와, 무언가 입을 벌려 집어삼키는 소리. 그 뒤에는 그 검격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하아아아...."
그제야 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 무사했다. 정확히는... 몸뿐만이지만. 도망쳐 버린 엘리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전에 주고받았던 감정 섞인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레레시아가 소리지르는 게 선명하게 들려 너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귀가 찌릿해 너는 귀를 손으로 감싼다, 상황이 진정되어 가고 있어서 그랬을까? 지금 네 감각은 싸움 도중처럼 날카로웠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마리, 무사합니까?"
그렇게 물으며 살펴보니 부상은 없어 보였고. 아마 그녀는 대답을 바로바로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닌 듯했다. 초점을 잃은 듯한 그 눈을 바라보던 너는 네가 들었던 레레시아의 비명에 반응하듯 그녀가 달려나가자 격한 감정을 쏟아냈던 두 사람, 이스마엘과 레레시아 쪽에 시선을 주던 너는 하아... 하고 작은 한숨과 함께 뒤따라 움직였다. 일단은 돌아가는 게 급선무니까.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혐오스러웠다. 혐오의 주체가 너무나도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강한 혐오를 느끼는 주체는 본인이었다. 조금만 참을걸,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려버릴걸. 그렇게 이겨낼걸. 차라리 그랬더라면 이런 생각을 품을 일도 없을 텐데. 남을 탓하고 싶지만 이스마엘은 탓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떠넘기는 법을 모르니 자연스럽게 침묵할 뿐이었다. 자신이 지나치게 혐오스럽고 역겨운 사람인 걸 모든 사람이 알아버렸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뻔뻔한 사람도 되지 못햇다. 이스마엘은 가장 마지막 차례로 밖을 나섰다. 남들이 내달려 돌아가는 길, 혼자 몸을 띄워 유령처럼 움직일 적 엄지는 손목의 흉터를 비집고 칩을 기어이 매만져 억지로라도 페이시를 연결시키고 있었다.
수술실 안으로 들어서자 통신을 듣고 달려온 아스텔이 거기에 있었다. 구석에 처박혀있는 사내를 짊어진 후에 모두를 바라본 후, 표정을 살피던 아스텔은 한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던 것은 분명했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묻지 않았다. 이내 검은 연기가 올라올 정도로 여기저기서 폭발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으니까. 이내 아스텔은 가자고 이야기를 하며 지하도로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달렸다.
별다른 일 없이 아스텔의 뒤를 따라왔다면 아마 20분 정도 달린 후에야 겨우겨우 지상으로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도로의 끝은 지상으로 연결되어있었다. 허나 그곳은 처음 보는 장소였다. 그 하얀색 건물과는 꽤 떨어진 어딘가였으니까.
일단 시설에 대한 것을 알아냈고 가디언즈가 뭘 또 행하고 있는지를 알아낼 수 있었으며, 사람들도 구조할 수 있었고 시설도 날려버릴 수 있었으나 그렇다고 마냥 기분이 좋은 느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살아온 환경, 그리고 가치관. 그것이 충동했을 때 벌어지는 생각의 차이는 어쩌면 생각보다 컸을지도 모르나 그렇다고 해도 모두 양보할 수 없는 선이 있었고 그 선 내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것 또한 있었을 것이다.
아직 가야할 일이 멀었다. 제 0 특수부대원들의 이야기는 아직 이어질 예정이었으니까.
붉은색 혁명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
/일단 이렇게 스토리를 마무리짓도록 할게요! 다들 수고했어요! 그런고로 이번 스토리에서 궁금한 점이 있다면 질문을 받도록 할게요!
...사실 너무 많은 떡밥이 한번에 풀리고 뿌려져서..물어볼 것이 많을지도 모르겠다만..(흐릿) 아무튼 다들 수고했어요!
그리고 여담인 정보 하나 더. 카시노프는 그냥 미친 놈이 맞답니다. 그래서 일부러 그 미친 분위기를 좀 어둡게 살리고 싶었어요. 그냥 말 그대로 정말로 자신의 연구나 성과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윤리나 양심 따위는 아무래도 신경 안쓰는 그런 녀석으로 말이에요. 블러디 레드에서 자신의 부하를 모두 잡아서 에너지원으로 삼은 것도 다 그 일환이랍니다.
>>245 사실 정확한 조사는 더 이상 힘들었겠지만 이미지를 보고 어? 설마 둘이 동일인 아님?? 하고 생각을 이후에라도 할 수는 있었겠죠? 아마. 다만 이번 전투에서 특수조건 만족 루트가 열리진 않았을테고 엘리나는 적당히 시간을 보다가 퇴각하고 끝나는 전개였을 거예요.
>>249 그냥 엑스트라 가디언즈 배신자 A와 B에요. 물론 이쪽도 레이버에게 살해당했답니다.
사실...아스텔이 아니라 에스티아를 데리고 왔다면 지하로 내려가자마자 일부 그 좀비병(?)들과 싸워야했고 거기서 이전에 레이버에게 호수에서 죽었던 그 USB를 준 병사와 그때 또 레이버에게 죽었던 은밀부대원도 볼 수 있었겠지만 이쪽은 이제 아스텔이 상대를 했기 때문에..
음. >>254 이 부분에 대해서 말을 하자면.. 일단 멜피주는 웹박수로 생각을 해봤지만 요즘 힘든 일이 많고 캐릭터를 굴리기 힘들 것 같아서 저에게 시트를 내리겠다는 의사를 표했답니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츠쿠시주에게 부담이 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물론 웹박수로 들어온 원문은 뭐 어쨌건 자신이 나쁘다는 식으로 쓴 글이긴 한데... 일단 읽어보면 다른 이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한 것이 큰 것 같은지라.
솔직히 좋은 방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일단은 마음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요청한대로 1주일 정도 후에 알려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지요. 네.
일단 >>258 확인했고, 멜피주 뜻이 그렇다면야 더 말 얹지는 않을게. 일단은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고 얘기하고 싶어. 그간 초창기부터 함께 달려줘서 정말 고마웠고, 요즘 현생 힘든 것 같던데 잘 이겨냈음 좋겠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개인적인 감정 담긴 사담이니까 안 읽어도 돼. 나는 적어도 자신이 나쁘다는 식으로 글 썼다는 이 부분에서 이해가 안 간다. 멜피주가 나쁜 것도 아니고, 힘든 일이 있다면 힘든 거고. 그렇다고 츠쿠시주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는 마음도 이해를 하고 있어. 일단 너무 자책감 안 가졌으면 좋겠고 츠쿠시주도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네. 내가 또 뭐 위키 보다가 삭제된 거 보고 급발진 풀악셀 밟아서 이렇게 억지로 오픈 시킨 거 미안하고. 나는 어장 캡틴이 아니라 뭐라고 할 수 없긴 한데, 적어도 나는 나중에 현생이라든지 그런 거 다 추스리고 스리슬쩍 와도 반겨줄 수 있어. 나중에 익명으로 즐겁게 만났음 좋겠네. 현생 힘내길 바라.
>>256 내가 첫 턴에 스루하고 그래서 제대로 표현을 못 해가지고 ㅋㅋ;;; 캡틴이 생각한게 얼추 맞아~ 일단 시작하는 시점에서부터 컨디션이 안 좋았고, 전단지 내용부터 마음에 안 들었고, 수용소에서 철창 안의 세븐스들이 카시노프 보면서 애원하는 모습이랑 엘리나의 죽은 눈과 의지 없는 모습 등등이 다 음 제대로 꽂혀서~~
그리고 저번 아스텔과 일상에서 했던 말과도 쪼금 연관이 있습니다 바깥에서 그대로 자랐으면 가디어즈에 스스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말~
멜피주 의견은 알겠어. 전부터 많이 바쁘고 피곤해 보였는데 그럼에도 시간 내줘서 활동하고, 즐겁게 돌려줘서 고마워. 얼마나 고민했을지는 나도 오래 생각했던 일이었다 보니까 알 것 같아. 그러니까 너무 미안한 마음 가지진 않아줬으면 좋겠어. 가장 중요한 건 멜피주의 생활과 평온한 마음인걸. 여력이 되지 않는다거나, 생각이 예전같지 않아졌다는 이유로 자책하지는 않아도 돼. 좋은 인연으로 끝날 수 있어서 다행이고, 오늘 밤은 푹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정말로 마음 상하거나 부담 가지는 거 아니니까 걱정은 하지 말고! 건강 잘 챙기고 즐거운 일상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 잘 지내야 해!
>>275 호오.... 그렇구나! 아무래도 나는 엘리나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엘리나를 조종한 카시노프가 나쁘다, 라는 느낌이라. 엘리나 분명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자책하고 힘들어 할게 눈에 보이기도 하고. 레시는 엘리나가 몸을 빼앗긴 그 자체부터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걸까?(흠티콘) 아니면 의지력을 발휘해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거려나?
복귀 이후 제가 맞이하였다. 어째서인지 제는 참전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이스마엘을 데리고 가려 들었다. 어깨에 관통상을 입은 이스마엘을 부축하면서도, 혹여 누군가 의무실을 언급하였더라면 가장 먼저 가시를 드러냈다. 명백하게 비웃는 소리를 뒤로 제는 돌아보지 않았다.
"병 주고 약 주는 소리 하기는."
누구의 목소리인지 모를 것이 울렸다.
*
"헬무트의 냄새가 나는구나. 무슨 일이 있었어. 그렇지?" "……." "내게 무엇이든 털어도 좋단다. 사람들이 너를 이해하지 않아도 나는 너의 유일한 이해자지 않니." "……." "그래, 알겠단다. 헬무트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마. 다른 일은 없었니?" "……카시노프를 갖고 싶어." "재밌는 얘기구나. 그건 해줄 수 있지?" "카시노프는, 카시노프는 움직일 수 있어.. 죽여버리면 그 방법을 몰라, 그러니까, 가지고 싶어.. 가지면 다시 웃을 수 있어. 내가 생각하던 가족이, 가족이.. 돌아올 건데, 엘리나는 살아있으니까, 되찾으면 행복하겠지만, 나는 다시 시체를 안고 싶지 않아…… 나는, 내가 잘못했어. 내가, 이, 이기적이라 죄송합니다. 그 사람도 그 사람만의 과거가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는데, 이기적이야, 이기적이라고, 자신만 생각하고 남을 시기하는 이기적인 사람은 이상향에 가지 못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이스마엘은 얼굴을 연신 세수하듯 쓸었다. 손바닥에 흥건한 피를 뒤로 낮게 중얼거렸다.
"역겨워. 토할 것 같아."
허공을 쳐다보는 눈엔 여전히 특유의 반짝임이 남아있었다.
*
당연하다는 듯 갖고 싶어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아버지를 다시 설득하고 싶어'나, '무찌른 뒤 되찾아서 방법을 찾고 싶어' 같은 소망을 얘기할 텐데.
*
수잔나도 만만치 않게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으나, 그녀의 남편 에르베르토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며 가란과 협업할 정도의 비윤리적인 사람이었다.
*
아빠는 내가 손톱 거스러미만 잘못 떼어도 발을 동동 구르면서 걱정했는데.
이스마엘은 붕대를 감은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고개를 숙였다.
*
─ 저는 다른 사람과 달리 무뎌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까 봐,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괴물이 될까 봐…….
─ 이 세상에서 누가 상처받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이 개 같은 세상.. 상처를 가릴 수 있는 사람과 상처를 내보이고도 당당한 사람으로 나뉠 뿐인데..
─ 하루에도 몇 번이고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라졌더라면 아예 시작조차 되지 않을 일이었을 텐데, 순응하는 삶이 나았을 텐데!
─ 갖고 싶습니다, 무한한 기술의 발전을, 그로 인해 비롯되는 인간의 진화를, 그 열쇠를 쥔 자를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싶습니다.
유리 조각을 삼키듯 껄끄러운 말. 누구나 뱉고 나면 피를 토할 걸 알기에 입을 다물 때가 있다. 이스마엘은 침대 구석에서 웅크렸다.
*
"뭐 하니, 아가?" "페이시가 고장났어. 페이시가 고장났어.. 페이시가…… 이게 고장나버리면, 이게, 고장나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무슨 소리니. 잘 되고 있잖니." "아니야, 아니에요, 꺼졌단 말이야.. 그때 날 가려주지 못했어, 다들 날, 날, 사람들이, 내 편이 되어줬던 사람들이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봐서, 나는, 나는……." "얘, 정신 차리렴."
뺨을 쳐올리는 소리가 강했다. 질척이는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제는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이었고, 손목의 옆면을 메스로 후벼대는 이스마엘의 얼굴에 수건을 덮더니 그대로 들어올려 의무실로 향했다.
>>286 오오 그렇구만! 아무래도 레시가 이번 이벤트 전까지 복수를 다시 다짐한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하고 연결될지도 모르겠다~!
마리가 이번 스토리에서 멘탈에 타격을 입은 걸 곰곰히 생각해보면.... 일단 심적인 문제로 정신력이 떨어져 잇었던 점 + 리버에게 감정이입을 해버린 것 + 엘리나가 에일린이라는 걸 너무 빨리 알아버린 것 + 동료들과 충돌을 무릅쓰고 구하려고 했지만 결국 구하지 못한 점 때문이려나.....
>>297 확인했고 근데 이건 비설인 것 같네요. 개인 이벤트는 자신이 직접 진행을 하는 말 그대로 '캐릭터의 이야기를 풀기 위한 진행 이벤트'랍니다. 그에 대한 진행 스토리를 대략적으로라도 저에게 보내주셔야 제가 허가를 해줄 수 있고 검토가 가능해요. 어디까지나 개인 이벤트는 해당 캐릭터의 오너가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점을 꼭 참고해주세요. 그와는 별개로 이런 느낌이면 카시노프와 어떻게 엮일 수도 있겠네요.
>>295 음.... 마리는 딱히 카시노프에 그렇게 감정이 있지는 않을 것 같아. 가디언즈의 인간 하나하나에 대한 원한은 이미 버렸고(혹은 버리려고 노력중이고) 설득해서 같은 편이 될 수 잇는 이는 설득하고(이전에는 그런 것 없었지만 동료들 덕에 변함) 설득할 수 없는 이는 제거한다,에 가까운지라. 감정을 죽이고 체제 전복에 집중한다는 건 아스텔하고 비슷한 부분인 것 같고. 하지만 가족이라는 부분에는 좀 스위치가 눌리는 것에 가까운 것 같아. 마리 부모님의 시체가 나왔다고 해도 그렇게 흔들릴 것 같진 않네.(이부분에서 오히려 오너가 놀라버림)
>>300 도베르만이라. 분위기가 확 느껴지는군요! 말 그대로 도베르만!! 군인견!! 그리고 347은 저는 못 본 것으로 하겠어요. (옆눈) 아무튼 슬픔을 감추는 것이 너무 리얼하잖아요..8ㅁ8 그리고 그 와중에 대충 넘어가지 못하는 츠쿠시가 음. 뭔가 상당히 성실하다는 느낌이에요!
으윽.... 츠쿠시주 진단에서 부모님 부분에 많은 과거사가 있을 것 같은 냄새가 난다...!!! 츠쿠시 슬픔 감추는 모습 뭔가 눈물나 ㅠㅠㅠㅠ 맴찢. 역시 사수관계 아니랄까봐 쥬랑 닮은 부분이 있는 것 같고(적폐임) 향냄새 나는 거 좋아..... 마리라면 맡을 수 있어...!!!(네?)
쥬데카: 354 러닝 시점 캐릭터의 최우선 목표/소망은 - 혁명의 성공 때까지 생존하는 것.
183 카페가면 주로 주문하는 것 - 초코 종류의 음료와 담백한 간식, 좀 달콤한 간식도 주문한다. 쓴건 그다지...
213 손에 음식물이 묻었을 때 빨아먹는다vs닦는다 - 무의식적으로는 빨아먹지만 의식적으로 자제하며 닦는다. 그래서 손에 음식물이 묻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듯.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646172
쥬데카의 오늘 풀 해시는 내일_시험이라는_소식을_들은_자캐반응 - 착실히 준비해왔다면 마지막으로 가볍게 정리한 뒤 일찍 잠자리에 든다. 속으로는 많이 떨리지만 마인드 컨트롤하면서 내일 컨디션이 좋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 그다지 준비하지 않았다면 할 수 있는 부분까지 확인한다. 늦게 잠자리에 들지는 않으며 과거의 자신에게 푸념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며 체념하는 편.
자신이_죽인_이들의_유령이_찾아온다면_자캐는 - 여기가 지옥인가...아닌데, 지옥에 내가 죽인 사람들이 있으면 안 되는데. 그럼 내가 천국에?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천국에 왔을 리가 없는데. 어째서...
아마 비난을 듣는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묵묵하게 있지 않을까 싶고, 그게 아니라면 무서워서 얼어붙어 있지 않을까 싶은데...
휴대폰_액정이_깨진다면_자캐반응 당장 급한 게 아니라면 잠시 방치, 아.. 하면서 좀 스트레스는 받겠지만... 화면이 아예 안 보이면 좀 당황스러워할 것 같다. 바로 수리 맡기러 갈 듯!
>>337 ㅋㅋㅋㅋㅋㅋㅋㅋㅋ쥬는 사소한 데서 은근히 스트레스 많이 받는구나... 어느 쪽이든 컨디션을 더 우선시?하는 것도 쥬 답고. 아 아니... 아니... 이 지옥 두렵다.... 혼란스러운 심정이 눈에 보이는 것 같고... 죄 많은 사람으로서 과오만은 정말로 되돌릴 수 없어서 두렵지...ᵒ̴̶̷̥́ ·̫ ᵒ̴̶̷̣̥̀
>>352 은근히 섬세한 남자였던...(?) 결국 준비가 완벽하다면 갈리는 건 컨디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될 거 같네요! ㅋㅋㅋ쥬 답다니 그런가요! 갑자기 저런 해시가 튀어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하필이면...! 그래도 제가 지금 약간 졸린 상태라 길게 늘어나지는 않아서 다행이네요~ 멀쩡했으면 더 지옥 같았을지도 몰라... 이건 어쩔 수 없는...최소한 가디언즈 출신이라면 가지는 과오니까요...!
>>316 레이 싫다고 말해 뭐야..? 그럴수록 원래 더 레며드는게 클리셰 아냐???🤔 햇살에 내몰아지고 물풍선 던지기 하는 것도 어째 레이다워서 좋다.. 레이 왤케 왤케임... 멋진 남자가 이렇게 에델바이스에 많아도 되나?? 이거 불법이야(?)
>>337 쥬 생존..(오열) 이거 진짜.. 진짜 캐에게 있어선 뭔가.. 뭔가인데 너무 맛있어서 울게된다.. 초코 종류 좋아하는 것도 귀여운데 스트레스 사소한걸로 받잖아..? 쥬는 지금부터 햄스터다(?) 현실적인 시험 반응도 그렇구 폰 액정 깨진 것도 사람다운데 하... 유령.. 할로윈이라고 이런 해시 주는 것좀 봐.. 진단님 맴매할 시간이네;;
>>358 어쩔 수 없이 예민한 체질이라 그런 걸까...🤔 쥬답다는 건 곧 착실하다는 뜻이지... 내가 생각하기엔 억지로 벼락치기/여유 있어도 몸 혹사시켜가면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시간과 건강 지켜가면서 하는 게 더 착실한 것 같아서~◠ ̫◠ 그리고 과오에 관해서는... 응... 과오로부터 도망치지 않지만 두려워하는 그 고통이 정말 맛있어...(냅다 취향고백!)
다들 잘자~~!!! 커어억 ㅇ안되겠다 나도 자러 가봐야지.... 다들 좋은 밤 보내~!!!!
1. 「여행을 떠난다면 유명한 관광지로? 아니면 한적한 곳으로?」 "한적한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한적하고 사람이 없는 곳은 바람이 부니까요." "바람은 길을 이끄곤 합니다."
2. 「인간을 믿는 편인가, 믿지 않는 편인가?」 "당연히 믿고 있습니다! 저는 인간을 믿습니다." "설령 세상의 모든 사람이 저를 믿지 않는다 해도."
3. 「명백한 힘 앞에서 굴복할 길 밖에 없다고 한다면?」 "굴복하지 않습니다. 제겐 가야 할 길이, 도달해야 할 목표가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직면하면 두려울 수 있습니다. 인간이란 본디 그런 존재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명백한 힘을 가진 존재에게 있어, 인간이 아니라 세븐스라 명칭되고 있으니.. 용기를 내볼까 합니다."
>>391 젤 맛있는 맛으로 주다니 괴롭히는데 묘하게 상냥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 그러..게...? 캡틴 일 힘내구~~~~ 얼마나 무시무시한 게.... 기다리는.. 걸까?? 아빠도 다시 돌아가버려서; 아빠 다음엔 말까지 하면서 나오는 거 아닐까 너무 무서움..
이런 젠장, 츠쿠시주. 내가 미치는 꼴이 보고 싶었습니까? 이셔가 그정도로 취할 것 같냔 말입니다.(???)
>>393 아니 잭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단 하나하나가 혼란한데 1번이 너무 강렬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4의 벽 깨는 것도 그렇지만 잭은 잭주를 물어....(끄덕) 귀여워...
>>397 맞아~!!! 요즘엔 안 보여서 애슐리나 그런 곳 가서 먹는걸로 족해...🥺 아빠 말하면 이셔 멘탈 부서지다 못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아..... 회유한다...면 이건 조금 많이 복잡하네..🤔 이스마엘이 머리로는 저게 가짜라는 걸 알고 있어도 시체가 다시 사람처럼 얘기하고 회유하면.. 아마 넘어가기 보다는 그 전에 제발 그만해달라며 무너질 것 같아. 차라리 생사불명 상황이라면 무너지지 않거나 회유를 당하거나 부정하거나 했을 텐데, 정작 이스마엘은 아버지가 죽는 장면을 직접 봤으니까 더는 머리가 받아주지 않으려 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여기서 더 엇나가서 마지막으로 다짐했던 것까지 싸그리 무너지면 (스포일러)가 됨..
조금 말해주자면.. 이셔의 비설 및 캐릭터의 근간은 톰크루즈 맑눈광을 보기 이전의 초기설정을 고친 애라 그 부분의 잔재가 명백하게 섞여있는 애라는 점... 그리고 그 초기설정을 죄다 이어받은 애가 제 설정에 등장하는 가란이라는 점....
😮 아니 컨디션이 멜롱하면 어떡해~ 레시주 오늘 괜찮았어??? 어... 그래도 시간이 순삭되니까 그?건 좋은듯? 🤔
>>405 후... 물을 때마다 좋은 캐썰로 보답해주시는 이스주 언제나 감사합니다.... 으아악 가디언즈 고인모독 진짜 맵다..... 이셔는 정말 그럴 만하지... (스포일러)가 어떤 건지 궁금하고 기대되기도 하는데????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이 너무 괴로울 것 같으니까 안 보고 싶은데 한 번쯤 보고 싶고 내 진짜 마음은 뭘까?(?)
많은걸 놓아버린 이들은 어찌보면 집념이나 근성 같은게 부각되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몸을 갈아버리는 방식에 버릇이 되어버린거 같기도 하다. 내 삶의 방식으로 그저 받아들였을 뿐.
"...반대일수도 있지. 당시 누군가를 해쳐야만 했기에, 손에 든게 날붙이였을 수도."
나 또한 그랬다. 누군가를 해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기에, 손에 든게 총이었지. 그것도 스포츠나 사냥을 위한, 오래되고 기름칠된 목제 총몸 위에 조준경이 달린 그런 우아한게 아니었다. 금속과 폴리머로 시커멓게 만들어진 돌격소총이 내가 가장 처음 쥔 총이었다. 호신용 권총도, 가정을 지키기 위한 산탄총도 아니었다. 명백한 전쟁의 무기. 그게 내 시작이었지.
"미역도 무시하지 말고 챙겨 먹으라고. 철분도 칼슘도 듬뿍 들어있거든, 그래 뵈도. ...근데 미역이 잘 보급이 들어오려나?"
미역을 안정적으로 수확할만한 바다가... 그리고 그걸 운반할 운반책이... 뭐, 되니까 먹을 수 있겠지.
"...아뇨. 전 그 날붙이를 처음 손에 쥐었을때 너무 무서워서 멀리 던져버리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 날붙이를 만들었을땐 크게 넘어져서 피가 철철 나던 때였습니다. 그때 우연히 세븐스가 발동된 것이었죠. 남을 해치는 무기를 만드는 세븐스라니, 전 스스로가 두려웠고 자신을 저주받은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언니에게 안겨 울었을때, 언니는 나를 위로해주며 분명 나에게 무어라 말을 했다. 하지만 너무 많이 울어서 머리가 멍해졌기 때문인지 무슨 말인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언니가 나에게 저주를 퍼부은 것은 아니다.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언니의 손길과 어렴풋이 들렸던 목소리는 정말 따스했으니까. 아마데우스는 이러한 말을 속으로 중얼이며 아련한 눈빛으로 엄지의 아물은 상처를 보았다.
"오오.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섬세한 분이시군요."
그 말을 깊게 새겨 듣겠다는 듯 경청하다가, 레이먼드 쪽으로 슬쩍 고개를 살짝 들이밀고는 속삭이듯 말했다.
"그럼 다정한 레이먼드 씨를 위해 제가 좋은 것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사실 저는 말이죠. 신사가 아니라 숙녀랍니다?"
오... 둘다 먹음직스러운 상황인데... 꺼져서 손목에 집착하는 걸 보고 상태가 안좋다는 걸 파악해서 2인 1조로 가는건 어떨까요(이 시대의 비빔맨 ㅋㅋㅋㅋㅋ아 둘다 너무 하고싶은 상황인데.... 이럴 땐 다갓님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둘 다 되면 상관없지만서도(안됨
다이스 롤! .dice 1 2. = 1 1. 손목집착녀 이셔 2. 갑자기 같이 고향방문하기
이걸 잘 생각해야하는 것이 1~2주 평일을 다 사용해버리면 그만큼 사람들이 일상을 돌릴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진다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무엇보다 선우주가 되게 힘들지 않을까 싶거든요. 아무래도 사람들이 오는 시간이 다 다르고 그게 매일매일 정해진 것도 아니니까요. 어제는 온 사람이 오늘은 안 올 수도 있고 그렇게 해서 1~2주만에 끝나면 차라리 다행인데 그렇지 않아서 연장이 되면 되게 늘어질 수도 있고요.
늘 승리의 깃발을 올리던 특수부대였다. 이번에도 그랬다. 세븐스를 이용한 비윤리적인 행태와 더불어 인질을 구출하는 것에 성공했고, 시설을 파괴하기까지 이르렀다. 대단한 획을 그어낸 것이나 다름없으나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불화의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엘리나의 도주 이후 레레시아의 악에 받친 비명이 이어졌다면, 이스마엘은 기묘한 침묵을 이어나갔다. 평소 같으면 수고했느니, 의무실로 가야 하지 않겠냐느니 타인을 걱정했을 텐데도 아무런 말 없이 마을에서 자신을 맞이해주는, 모종의 이유로 특수부대에서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는 인간 외적의 존재에 가까운 세븐스의 부축을 받고 가장 먼저 돌아갈 뿐이었다. 세븐스는 의무실로 가야 하지 않냐는 누군가의 말에 노골적으로 위아래로 훑는 시선과 비웃는 소리로 화답했고, 이스마엘 또한 제지하지 않고 개인실로 향했다. 흐느적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움직이던 가디언즈 병사의 시체와도 같았다. 칩거하던 이스마엘의 소식은 아무도 알지 못했으나, 마중을 나왔던 그 세븐스가 의무실로 신원불명의 누군가를 안아 올린 채로 뛰어가는 모습을 봤다는 얘기는 퍼졌다. 얼굴에 수건이 덮여있고 늘어진 모습 그대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어서 처음엔 죽은 줄 알았다느니, 뛰어가는 도중에 늘어진 모습을 봤는데 흰머리를 가진 사람이었다느니, 나중에 바닥을 보니 피가 떨어져 있었다느니, 의무실 내부에서도 소란이 있었다느니.. 이야기가 암암리에 돌았으나 크게 퍼지지는 않았다. 신원불명의 사람도 레지스탕스의 일원이거나, 일원이 될 사람인 것이 뻔했고, 이스마엘이 그럴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다. 이스마엘의 소식은 여전히 불명이었다. 평소라면 인적 드물던 공터에 머물렀을 텐데 그런 기색도 없다.
저녁. 이스마엘은 숲길을 지나 깊게 들어서면 드러나는 호수 구석에 있었다. 인적이 드물뿐더러 얼마 없는 자연환경으로만 이루어진 장소였다. 풀벌레 우는 소리가 크다. 며칠 전까지는 칩거했으나 그 사건 이후로 의무실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이스마엘의 개인실을 두드렸기 때문에 도망쳐버렸다. 이스마엘은 왼손 엄지를 기점으로 내려오는, 손목의 옆면을 무언가로 긁어내려 살을 벌려내고 있었다.
페이시가 고장이 났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페이시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지만 이스마엘은 믿지 않았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대체 왜 이스마엘은 그때 얼굴이 드러났을까? 모두 페이시가 고장 난 탓이다. 피 냄새가 났다. 이스마엘의 것이 아니다. 아무래도 그때 아버지의 피가 묻은 것 같다. 이스마엘은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살가죽을 들어내고, 손가락을 헤집어 칩을 빼내려 시도했다. 당연히 긁어내린 살가죽 너머로 손가락이 들어갈 리는 만무했고, 며칠 전 의무실 사람들이 성심성의껏 치료해 준 손목이 다시금 엉망이 될 뿐이었다.
"칩이, 칩이 없는 거야. 칩이 없는 걸지도 몰라. 안에 있는지 찾아야 해.."
누군가 다가오더라도 개의치 않고 홀로 중얼거리며 번들거리는 메스를 고쳐 쥐었다. 날로 안을 헤집어볼 생각인 듯싶었다.
>>465 아니요! 걸리거나 의아한 부분은 없고 단지 평일에 진행하면 조금 힘들지 않을까. 진행에 따라서는 상당히 늘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한 것 뿐이니까요! 제가 이야기할 사안은 그때 이야기한 것 정도랍니다. 그냥 저렇게 시작을 하는구나 정도로 생각을 하긴 했지만 딱히 크게 느끼는 것은 없답니다.
굳이 코맨트를 달자면 아마 현 0 특수부대의 성향을 보면 우라라라라가 되지 않을까 생각은 드는데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재미가 있는 법이죠! 관전하는 입장으로서!
>>469 어. 개인적으로는 그냥 딱 주말에 일정을 잡아서 알맹이만 확실하게 척척 하게 되면 아무래도 딱 그 시간대에 있는 인원들을 모아서 집중을 할 수 있으니 차라리 낫지 않나 이야기를 드려요. 그래서 제가 주말을 권장한거고요. 이벤트 시간을 딱 정해놓으면 그 시간대에 올 사람들은 오게 될테니까요. 허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선우주가 진행을 하는 거니 선우주가 가장 편한 시간대가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해요. 일단 생각해보시고 선우주에게 있어서 가장 편하고 좋은 시간. 그리고 진행 방식이 잘 맞는 경우를 고려했을때 역시 평일이 좋겠다 싶다면 평일로 하셔도 무방해요. 일단 위의 의견들은 캡틴이 봤을 때 이렇게 되지 않을까..라는 조언 정도니까요.
매번 사선을 넘는 것에 가깝고, 그 때마다 살아돌아오며 그렇게 얻어낸 삶에 감사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지만 어디 모든 게 마음먹은 대로 되던가. 죽어서 타의로 움직이는 인간의 모습은 상당히 충격이었다. 어쩌면... 네 손으로 숨을 멎게 만들었던 이들도 그 안에 있지 않을까? 네가 무너뜨린 것들이 잔해로 남아있기는 커녕, 그 형태를 지닌 채 텅 빈 껍데기가 되어 돌아다니는 것은 아닐까? 책상 앞에 앉은 네 손이 가늘게 떨린다. 떨림을 멈추려는 듯 양쪽 손을 마주잡으니 꽈악... 하고 살갗이 문대지는 소리가 들린다, 오히려 손에 준 힘이 강해 더 강하게 떨리고 마는 손에 너는 있는 힘껏 마주잡았다가 힘을 확 풀어버린다. 떨림이 줄었다. 이 정도면 일상생활에서 눈치챌 수 없는 그 정도의 떨림, 정상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울렁이는 심장은 여전하다, 심장을 쥐어짤 수도 없고, 너는 길게 한숨을 내쉬는가 싶더니,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사진을 서랍에 집어넣고 일어섰다. 이럴 땐 잠시 바깥바람을 쐬는 것도 좋겠지.
어디론가 가고 싶을 때가 있다면, 그럴 땐 발 닫는 곳 어디든지. 그러니까 목적지 없이 걷는 날이 있다면, 오늘이 그런 날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터벅터벅, 가볍게 입은 채로 걸음을 걷던 너는 물기 어린 공기를 들이마셨다. 보통은 이런 공기가 좋지는 않다지만, 가끔은 이렇게 축축한 것도 느끼고 싶은걸. 점점 어둠이 내리깔리는 길을 벗어나 풀을 밟으면 물기 때문인지 찌익- 하고 문질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원래라면 이런 장소는 그다지 안 왔겠지만 레레시아와 처음 마주쳤을 때도 있었고... 아무래도 이런 깊은 장소 하나쯤 있으면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
사실 그보다 중요한 건 예상치 못한 마주침이 있었다는 게 아닐까. 슬슬 모습을 드러내는 달빛을 반사하여 반짝이는 은발. 적어도 네가 기억하는 은발머리는 한 명이기에 너는 잠시 미간을 찡그렸다. 잘못 본 건 아닐까 싶어서. 그도 그럴것이 얼굴을 마주한게 벌써 한참 전이다. 지난 번 임무에서 보여줬던 모습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보통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고... 더군다나 소문까지 돌고 있었기에, 너는 조심스럽게 숨을 죽인 채 이스마엘로 추정되는 사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귀를 기울인다면 풀을 밟는 소리가 들릴 수는 있었겠지만... 바람소리와 구분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터.
그렇게 이스마엘의 뒤까지 다가온 너는 손을 뻗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릴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빛을 반사하는 저 날카로운 메스만 아니었다면 말이지. 어깨를 가볍게 건드리려던 손은 메스를 쥐고 있는 손목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사람이 머리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생길 때 보이는 반응은 다양하다. 그리고 절대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감정이 폭발하면 그것으로 끝이지 않다. 반응은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지고, 늘어났다. 갑작스럽게 악몽을 꿀 때도 있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회피하기도 하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받아들이고 합리화하며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기도 했다. 이스마엘은 후자였다.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아버지가 움직였을 리가 없다 생각했고, 대원과의 분쟁은 카시노프 때문이라 생각했다. 카시노프가 삿된 일을 벌였기 때문에, 재머마저 꺼지는 불상사가 벌어졌다고 믿었다.
헬무트는 죽었다. 움직일 리가 없다. 품에서 쓰러지던 그 순간을 기억하는데 어떻게 움직이겠는가, 그 시체는 동명이인이다. 아닐 리가 없다. 지금 이 상황은 카시노프가 재머를 고장 나게 만들어서 벌어진 일이다. 재머가 모종의 이유로 고장이 났다. 에스티아도 모른다. 가본 적은 없지만 고치는 법을 모른다고 할 것이다. 그야 카시노프가 고장을 냈기 때문이다, 그 삿된 것은 세븐스로도 해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재머를 훔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이스마엘은 재밍을 위해 이식한 칩을 찾아보려 했다. 그리고 손목이 붙들렸다. "Wer?" 경계심 어린 목소리가 날카롭게 뻗어나갔다.
익숙한 목소리다. 누구더라? 이스마엘은 고개를 돌리려다 멈췄다. 얼굴이 드러날 것이라 판단했는지 고개를 아예 숙여버렸다. 그리고 의문을 품었다. 왜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 익숙한데 누구더라? 동료인 건 안다. 더듬더듬 기억을 되짚다 눈을 굴린다. 안면에 하얗게 쏟아져 버린 머리카락 사이로 서슬 퍼런 눈동자가 당신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기억났다. 리오 씨다. 이상하다, 그때 리오 씨는 엘리나의 공격으로 굳어버렸는데. 아! 그때 다른 사람이 구해줬다. 그건 기억이 난다. 이스마엘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아, 리오 씨. 재머 칩을 잃어버렸습니다."
왼쪽 손목의 옆면은 너덜너덜했다. 엄지와 검지로 헤집어 살이 짓무르고 찢어진 부분도 있었다. 아프지도 않은 건지 이스마엘은 잠깐 표정을 가다듬다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입술의 양 끝이 바르르 떨리다 호선을 긋는다.
"아무래도, 그러니까, 그게, 카시노프가 훔쳐서 되찾은 칩이라, 다시 이식하는 과정에서 깊숙하게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찾아보려 했습니다."
그러니까 놓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조심스럽게 묻는 목소리를 뒤로 이스마엘이 쥐여진 손목을 뿌리쳐보려 팔을 움직이려 시도했다.
붙잡았다. 네 손은 상대의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메스를 든 채 누가 보더라도 명백히 그 끝을 자신에게 향하던 손목을 말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붙잡히는 것을 상정하지 않았고 여전히 목적을 향해 경주하려고 하는 그 손목에는, 팔에는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너는 네게 향하는 날카로운 시선과 날카로운 목소리에 마른침을 삼켰다. 뿌옇게 보인다거나 하는 모습이 아니라 분명히 전면이 보였다. 물론 이목구비는 머리카락에 덮여있었지만, 그 틈으로 언뜻언뜻 너머 비치는 모습은 평소에 보았던 모습과는 달랐다. 네가 처음으로 마주했던 그 얼굴과도 달랐고... 뭣보다 네가 더 조그마한 탓에 얼굴을 완전히 푹 숙이더라도 그림자 너머는 언뜻 볼 수밖에.
"칩 말입니까? 잃어버렸다면 찾으면 되는..."
도저히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잃어버린 재머 칩, 짓무른 손목, 서슬 퍼런 메스.
"지금, 여기서 말입니까?"
여기서, 아무도 없는 장소에서 메스로 손목을 찢고 그 안을 보겠다고? 그녀의 맨얼굴을 전부 보게 된 것도 대비되지 않은 충격이라면 충격이지만 그보다는 이런 행동이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너는 어쩔 수 없이 되묻고 있었다. 질문의 답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너 스스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네게 스스로 묻는 셈이었다. 심장이 빠르게 뛴다. 어떡하지? 지금 뭔가 말도 안 되는 일에 달려들어 버린 건 아닌가? 네 손을 뿌리치려는 듯한 움직임에 너는 여전히 손목을 붙잡으려고 손에 힘을 줬다. 아무리 그래도 이걸 놔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눈 앞에서 제 손목을 메스로 쑤셔댄다거나, 시선을 돌려 네게 메스를 휘두를지도 모르는 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
"대체 그게 무슨... 의무실에는 가보셨습니까?"
문득 떠오르는 소문. 설마... 그제야 상황이 어떤지 조금 이해가 되는 것도 같아, 너는 이스마엘의 나머지 손목으로 시선을 옮겼다. 짓무르고 찢어진 손목, 메스 같은 날붙이로 깔끔하게 베어낸 게 아니라 신경질적으로 긁고 후벼댄 흔적, 한참을 그 손목을 쳐다보던 너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씻고 왔습니다! 반응이 늦긴 했지만, 레시는 뭔가 조용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네요. 지난번에 말했던 것처럼 본인이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기분도 아니고 그다지 좋은 이야기를 할 것 같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그거랑 별개로 잠옷은 참 귀엽네요, 모에한 소매야...
>>507 검은 루시아에 대해서요! 일단 루시아는 지금 에델바이스의 보검에 에스티아가 넣어두었다고 들었는데, 똑같은 세븐스가 둘 이상 존재할 수도 있는 건가요? 세븐스 숫자라든가 생각하면 겹치는 게 있을 거 같기도 하고? 그게 아니라면 에델바이스랑 부딪히면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일종의 복제품일까요?
>>511 >>514 오 뭔가 이게 그럴듯한 추론 같네요, 일단 부활...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시체 조종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나왔으니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봐요! 그렇담 세븐스 자체도 좀... 몸에 머무르는 건지, 영혼과 같은 부분에 영향을 받는 건지가 궁금해지는데...!
재머가 없었기 때문에 기계음으로 대체된 목소리가 아닌 본연의 것이 흘렀다. 자신의 목소리가 드러나는 것도 모를 정도였는지 더듬거리며 내뱉는 단어의 배열은 규칙적이지 못했다. 올려낸 입꼬리가 바들거렸다. 웃듯이 휘어진 눈에 박힌 연두색 시선은 갈팡질팡 흔들렸다. 혼란스러웠다.
"예. 여기서."
잠깐 갈 곳을 잃었던 시선이 멈춘다. 왜 자신을 멈추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왜 자신을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걸까. 순수한 의문이 담긴 눈동자가 온전하게 당신에게 내리 박혔다. 눈을 뜬 모습 자체는 평범한 사람과도 같았으나 연두색 홍채가 잠에서 막 깬 사람처럼 몽롱했다. 당신의 질문에 기이하게도 입을 열지 않았다. 대답을 고민하고 곱씹기보다는 과거의 흔적을 차근차근 밟아가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기 위함이었다.
"의무실……. 아, 의무실. 예.. 그 이후로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이스마엘은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피가 흘러 떨어진 땅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입술을 달싹이며 조그맣게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문장이다. 주체는 온전하게 당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기억을 곱씹어 보며 스스로 합리화하는 것이 반절이었고, 나머지 반은 대화를 어떻게든 이어가보자 남은 이성이 애를 쓰는 것에 가까웠다.
"계속 문을 두드리며 괜찮냐느니, 제발 문 좀 열어달라느니, 칩은 잃어버리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말라느니 지껄이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그때 날 가려주지 못했는데, 바람이, 내 편이 되어줬던 사람이……."
문장의 배열이 멈췄다. "그건 카시노프가 만든 가짜야…." 허망하게 중얼거리던 이스마엘은 연두색 눈동자를 홉뜬다. 촘촘한 속눈썹의 끝이 위로 향했다. 조그맣게 벌어진 입과 만면에 그려진 표정은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 정확히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파리하게 질려있었다. 손목을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아프지 않냐니. 당신을 마주하던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피었다. 이스마엘은 본래 눈부터 웃음이 피어나곤 했다. 이번엔 달랐다. 부들거리며 떨리는 입가가 한껏 끌어당겨진다. 눈매가 호선을 그어대더니 접혔다. 금방이라도 깨질 듯 불안정한 미소였다.
"……모르겠습니다."
혹시 제가 아파 보입니까? 그럴 리가 없는데. 현실이 아니잖아……. 목소리의 끝이 가늘게 떨렸다.
>>542 우리 언니 아메리카노 맞지~ 아메리카노 달달하게 시럽 추가했는데 가끔 잘 안 섞여서 나는 그 씁쓸한 느낌... 완전 공감되구 캐해 장인이구..(끄덕) 삶 안 바꿔주는 거.. (아스텔 봄)(시선회피) 룰루 나는 암것두 몰?루~~ 누가 우리 언니 울려!! 이셔가 강냉이 털어줄게 울지 마 ;0;... 그런데 나중에 어떻게 되는데??(마이크 들이밀기) 생모..
아직 안 풀린 비설.. 있는 사람의 반응인데 이건...?(팝콘 장전)
아.. 간 보는 거 완전 인정이지.............(공감의 끄덕)
>>54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ㅠㅠ 맞는 말이라서 더 탐나고 킹받아(?) 이셔 다음엔 저러고 있어야지(?) 전공 사실 못 정했어..👀 염력이 전공입니다! < 좀 이상해보임
>>545 언니 무릎에..????? 이셔 종아리 조물거리면 또 파드득 떨면서 도망치려 들 텐데~ >:3 언니는 장난이 지나치십니다! 하면서 호다닥 도망치려는 이뭐시기..😇
>>542 레시는 세븐스로서의 정체성 얘기도 그렇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다 해서 그 삶을 내버리지 않는다는 게 머싯서... 고통 역시 온전한 나의 인생이었다는 태도일까🤔 오잉 그리고 어머니???? 어... 어머니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욥???? 어제 어머니에 관해 복잡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했었구... 아앗 이 떡밥 너무 흥미롭다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대답은 돌아왔다. 이 자리에서 그리하겠다는 대답. 너는 머릿속을 정리한다. 이건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 아닌가? 사실 잘 모르겠다. 비정상인 세상에서 홀로 정상이라면 그 세상에선 비정상인데, 그녀의 행동이 정상이고, 네가 이러는 게 비정상일지도 모르잖느냐. 그렇지만 거기까지 깊이 생각해서는 문제를 풀어나갈 수 없었으므로 너는 일단 직관을 따르기로 했다. 이건 보통의 상황이 아냐.
"...그렇습니까."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질문의 형태였으니 그 답변에 대해서는 그정도 뿐의 답밖에는. 검은 네 눈과 대비될 만한 연두빛의 홍채가 시선을 맞춘다.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사선으로 마주한 시선 너머 대답은 한참이 걸렸다. 대답하기 싫은 것 같지는 않았으니 그저 대답이 나오기까지의 생각이 오래 걸릴 뿐이라 여기며 너는 귀를 기울인다. 의무실,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가려주지 못했다. 내 편이 되어줬던 사람... 가짜. 너는 마른침을 삼켰다. 대체 뭐가 가짜라는 거지? 네 눈은 지금 그녀를 향해 있었지만 초점은 오히려 네 안을 향하고 있었다. 네가 듣고 보았던 것을 재구성하려 애쓰고 있었기에 지금 네가 보는 것은 네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예."
아파 보입니다. 쓰라려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고통이란 끔찍하다. 누군들 안 그러겠느냐만은 너는 유난히 통증을 심하게 느꼈기 때문에 어째서인지 네 손목이 찌릿거리는 듯했다. 실제로는 전혀 그런 흔적 따위는 없었으면서. 스스로 몸을 찢거나 하는 행위에 대해 너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단 한 번도 스스로 상처입히려고 노력한 적이 없었던 너는.
"지금... 여기 있는 저도 가짜라는 말씀이십니까?"
가짜. 멀리 떨어져 희미하게 빛나는 점을 가늘기 그지없는 선으로 이으려고 하니 위태롭다. 뭘 보고 그런 말을 한 걸까. 평정심을 잃은 계기는 뭐지? 네가 막아서기 전부터 이미 스스로의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었던 모습을 떠올리니 네가 원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대체... 너는 다시 짓무른 손목에 시선을 두다가 감았다 뜬 눈을 호선을 그리며 접힌 눈에 맞춘다.
"...뭐로부터 가리려는 겁니까."
아니면, 당신으로부터 다른 것들을 가리려는 겁니까? 나지막한 목소리가 달싹이는 입술 사이로 새어나온다.
>>548 크 역시 맛잘알 이셔주야.. 개떡같은 대답으로 해석을 너무 찰지게 해줬잖아~~ ㅋㅋㅋㅋㅋㅋ 위로가 강냉이 털어주는거야? 너무 좋은데? (?) 어 어 레시는 나중에(스포일러방지협회) 간보는게 뭐 의도가 있고 꿍꿍이가 있고 이러면 역으로 파고들기라도 하겠는데 그런것도 없이 그저 장난이면... 일단 그 건방진 혀부터...(???)
호호호 이셔야 어딜 도망가려구..? 아 무릎에 또 앉고 싶다구? 아이구 그럼 앉혀줘야지 하고 다시 무릎의자행이다~~
>>549 오 그렇지~ 힘듬과 고통 역시 지금의 레시를 만든 기반들이니까~ 그리고 요지경인 세상에 삶을 바꿔봤자 뭐 얼마나 다르겠냐 싶기도 하구~
>>540 이셔 목소리는 의외로 허스키하다...(메모) 뭐야 섹시하잖아? 혼자 있을 때만 책상 위에 발을 올린다... 왜 같이 있을 땐 안해주나요? 그 버르장머리 보고싶은데() 뭔가 거만한 거 같고 막 내가 우위라는 거 과시하는 거 같고(아니다
저 이셔 전공 알아요! 통속의 뇌 만들기(아님
>>542 갑자기 쓰게 변하는 설탕폭탄 아메리카노... 이거 못막습니다... 겉만 봐서는 파악하기 어렵다는 게 더 그런 거 같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가면이라서 그랬다면 지금은 뭐랄까... 텐션 자체가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서 분위기만으로는 딱 어떻다 파악하기 어려운 단계가 된 것 같네요. 마음을 터놓은 사람이 아니라면 잘 모르겠어...
그리고 인생을 바꿀 생각은 없다는 건 어째서일까 생각을 좀 해봤는데. 아픈 기억뿐이라면 솔직히 바꿔서 손해볼 건 없다는 생각을 해봤거든요. 그런데 아마 그것만이 아니기 때문에 이 인생을 바꾸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게 아닐까~싶네요, 아마 이 부분은 아직 밝혀준 게 없는 거 같은데... 궁금하기도 하고?
어머님은 어째서 사랑의 대상인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일지? 단순히 엄한 분이셨다고 보기에는 그 정도로 두려움이 박힌다는 건.... 엄한 게 수준 이상이라는 것 같고 말이죠... 이 부분도 나중에 언젠가 풀리는 거라고 봐도 되겠죠?!
떠보거나 간보는 행동... '의미 없이' 말이죠, 흠. 흐음... 행동에 의미를 두지 않고 툭툭 던지는 것 자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 같네요. 진심이 담기지 않은, 어떠한 의도가 담기지 않은 행동이란 건 없으니까 정확히는 '발뺌하는 것'에 기분이 나쁜 것 같기도 한데... 음 확실히 그 부분은 기분 나쁠 수 있다고 생각해요!
>>560 혹시 쥬주의 전공은 진단으로 캐해하기 그런 거야? 이 해석 볼륨 무엇~~ 일단 잘 먹겠습니다 (깨물기!)
음~ 쥬주 레스 보고 생각한 건데, 레시는 아마 알면 알수록 더 모르게 되는 타입이 아닐까 싶구? 그래서 더 파고들다보니 어느순간 다 알고 있더라는? 그런? 그래서 레시 스스로도 주변과 거리를 두는거고~ 아마? ㅎㅎㅎㅎ 인생 부분은 위에서 추가로 붙인 말들도 있지만~ 더 궁금하면 나중에 일상으로 직접 물어보자~^^ 별거 다 묻는다는 타박과 혹시 모를 등짝스매시는 덤 (찡긋)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기억이 계속해서 비집고 들어오려 시도한다. 끔찍한 기억은 이스마엘의 발목을 쥐고 평생 따라붙을 것이다. 헨젤이 숲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빵조각을 길에 두었으나 새가 그 뒤를 쫓아 모조리 쪼아먹게 되어 결국 마녀가 있는 곳에 발을 들인 것처럼, 끔찍한 기억은 목표를 향할 길을 잃게 만들고, 삶을 집어삼키고, 종국엔 자신을 먹어치울 것이다. 이스마엘은 알고 있었다. 그동안 유지해온 모든 것이 무너질 것임을. 사랑하던 모든 것이 부서지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고 싶지 않았기에 본능은 현실을 도피하며 스스로 조작한 기억 깊은 곳으로 이스마엘을 끌고 갔다.
끝내 본능이 몸부림쳐 결론지은 것은 이 세상이 지금 가짜라는 결론이다. 이스마엘은 지금 끔찍한 악몽을 꾸는 것이다. 가장 두려운 꿈, 눈을 감았더니 떨어져 버린 새로운 세상……. 새카만 눈동자를 마주했지만 가짜 같았다. 아직 남아있는 이성이 이스마엘을 깨우려 무진 노력했으나 이미 깊게 잠긴 듯싶었다. 불현듯 끔찍하고 역겹다는 생각이 치밀었다. 무엇에게서 역겨움을 느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디선가 피비린내가 희미하게 났지만 어차피 가짜지 않은가.
"……."
이스마엘은 손목을 향해 다시금 시선을 던졌다. 너덜너덜한 손목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한 방울씩 불규칙적으로 떨어져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시선을 다시금 당신으로 던진다. 쓰라려서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했지만 여전히 이스마엘은 알 수 없었다. 쓰라린 것 같지만 남이 아프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자신도 거짓된 통증을 느끼곤 하니, 아마 그쪽이 아닐까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여전히 모르겠다. 일단 웃는 것이 좋겠다. 흐린 이성 너머로 이스마엘은 불안정하게 미소 지었다.
"가짜인 것 같습니다. 이게 현실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대답은 가늘게 떨려온다. "추악하다 생각하십니까?" 상황과 맞지 않는 질문을 뒤로 이스마엘이 스스로 답하듯 중얼거렸다. "추악하겠지. 끔찍한 망상에 남을 사정없이 몰아넣고……. 그 사람은 지금 진짜 세상에서 숨을 쉬며 살아갈 텐데." 눈동자 또한 다시금 가늘게 떨려온다. 시선을 다시금 맞췄지만 여전히 당신의 눈동자가 인위적인 무언가로 구성된 기분이 든다. 무엇으로 이루어졌지? 홀로그램인가? 아니면 안드로이드? 아니면…….
"무슨, 뜻, 입니까..? 저는, 저, 저는……."
단어가 더는 나오지 않았다. 이스마엘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아니야." 부정하는 단어는 점차 숨가쁘게 변하더니 이내 탄식과 함께 공용어도 아닌 수준에 이르렀다. Nein, Ich habe mich nicht geirrt. 불현듯 들었던 끔찍하고 역겹다는 생각의 주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자신이다. 홀로 살아남은 자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이스마엘에게 선고했다. 이곳은 현실이노라고. 종국에는 목이 졸린 듯 가느다란 침음이 흘렀다.
앞에 선 너도 가짜인 것 같냐는 물음에 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현재 얼마나 정신적으로 몰려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너는 재촉하거나 하는 대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숙고는 나쁜 게 아니다. 빠른 판단이 필요할 때도 물론 있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급박하게 흘러가는 상황 같은 게 아니지 않은가. 섬세한 일을 할 땐 급하게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문제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너는 가만히 있었던 게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들려온 대답은 가짜라는 말이었다. 너조차도 가짜 같은... 하기사 네게 그런 판단을 거부할 만한 요소가 얼마나 있겠는가. 손목을 헤집는 걸 제지당했고, 지금 계속해서 신경을 긁는 것일지도 모르는 질문을 건네는데도...
"...그렇습니까."
그러나 어쩐지 납득했다. 뒤엣말 때문이었을까, 현실일 리가 없다. 추악하다 생각하느냐. 어느 누가 가짜라고 확신한 세상에서 가짜인 존재에게 이런 푸념 섞인 말을 중얼거린단 말인가. 그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것이 분명한 그 목소리에 너는 어떤 말을 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 스스로도 망상이니 뭐니 하는 말로 미처 전부 게워내지 못한 현실감에 몸부림치고 있다. 네가 뭘 할 수 있지? 널 바라보는 눈에는 감정이 실린 것 같지 않다. 대체 이게 왜 내 앞에 있지 하는 듯한 눈, 너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듯했다... 어쩌면 이게 홀로그램으로 자신을 외부와 차단하며 보아오던 세상의 편린이 아닐까? 홀로그램 너머로 보아 온 모습과 네가 얼마나 다르길래, 아니면 재머 없이 내던져진 세상 따위 존재할 리 없디고 생각했기에 그 세상에서 나타난 너까지도 거짓이라고 여기는 걸까.
아니라며 중얼거리던 목소리에 불규칙척인 들숨 날숨이 뒤섞여 점점 가쁘게 변한다. 상황을 따른다면 얼추 이해할 수 있지만 나중에 확실히 알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말까지 들려온다. 이윽고 스스로 뭔가 죄이는 듯한 가느다란 목소리에 너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그러면... 평생을 가리고 살 생각이었습니까."
감정이 날카로워진 사람에게 논리적인 접근 따위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기에 너는 어쩔 수 없다며 합리화하곤 말을 꺼낸다. 네가 가짜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사람 안에 있는... 반투명한 껍질에 감싸인 존재를 어떻게 하면, 꺼내는 게 옳은 일일까? 그 안이 행복하다면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게 둬야 하는 건 아닐까? 이번에도 너는 직관을 따르고 있었다.
"일단 심호흡을 좀 하시죠, 달콤한 거라도 드시겠습니까?"
이렇게 말한대도, 사람의 눈을 피해 여기까지 나아온 사람이 순순히 따라 움직일 것 같진 않았지만 우려 섞인 말을 건넨 너는, 피가 뚝뚝 흐르는 손목으로 다시금 시선을 옮겼다. 어떡한담. 입술을 잘근 씹던 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자유로운 한쪽 손으로 손수건을 꺼내 그 상처를 감아 누르려고 했다. "미안합니다." 라는 사과와 함께.
서로 기묘하게 맞물리지 않는 부분이 충돌하고 있었다. 재머 칩은 카시노프가 훔쳤다, 칩을 깊숙한 곳에 꽂은 나머지 고장이 났다, 이건 악몽이다, 뇌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나머지 생겨버린 거짓된 세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치 의심을 품지 못한 채 무의식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스마엘은 대답 대신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쪽이라도 지금 상황은 모두 망상이며, 추악하게 망상에 남을 밀어 넣는 자신과 희생양인 당신이 옳은 상황인 것 같다 생각하며.
무엇인지 모를 재질로 이루어진 당신의 새카만 눈을 마주하고 있자니,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 덜컥 두려워졌다. 돌아가서 아버지가 죽은 후에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무의식도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당장 레지스탕스가 자신에게 가진 시선이 어떻게 바뀔지도 두려웠다. 망상에 떠밀었다는 걸 깨닫고 경멸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자신을 알기에 시선이 두렵다. 당신의 말 한마디로 현실이 무의식을 거세게 두드리자 자연스럽게 숨결은 가빠졌다. 이성이 이상향으로 가는 길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속삭이고, 깨달을 것이 있지 않느냐 간절히 빌고 있었으니 그 상황을 회피하는 행동에 가까웠다.
"제게……."
궁지에 몰린 듯, 이스마엘은 거의 울듯이 숨을 삼켰다. 가쁘게 가다듬는 숨을 뒤로 애써 유지하던 표정이 처절하게 일그러졌다.
"제게 대체 무얼 바라십니까……?"
탄식은 속삭임에 가까웠다. 절박함에 가까웠고, 공포에 가까웠다. 평생 가리고 싶냐고? 아니, 아니다. 적어도 이전엔 떳떳하게 드러내고 싶었다. 그렇지만 재머 없이 던져진 세상에서 본 현실은 이스마엘을 한차례 무너뜨렸다. 이상향으로 가고자 하는 전의마저 상실할 정도로. 살아있고, 말을 하며,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지도 모를 엘리나. 죽어있고, 움직이던 모습도 끝내 멈춰 가족의 품에 싸늘하게 돌아오거나 시체조차 찾지 못해 영영 돌아오지 못할 헬무트. 자신은 아버지를 한 번 더, 최악의 경우 스스로의 손으로 잃어야만 하고 누군가는 고작 살아있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아 죄를 저지르고도 행복을 찾는다는 그런 현실로 돌아가길 바라는 건가? 싫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차라리 가리고 갇혀 살고 싶다.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
그런데 당신은 현실이 아닌 곳에 있는, 무기질적인 무언가로 이루어진 존재면서 왜 나를 현실로 내쫓으려 드는가. 뿌리치고 도망치고 싶었으나 당신이 손목을 지혈하듯 손수건으로 감싸자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노라 생각하고 말았다. 손수건은 따뜻했고, 상처가 쓰라렸기 때문이다. 이곳이 현실이라는 감각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고 말았다. 괴롭다. 무언가 더듬거리며 말하고자 하여 자그맣게 입술을 벌렸다. 아무것도 나오지 못했다. 유리 조각이 목에 걸린 것 같다. 말을 뱉어내면 채 못 다해 피를 토할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만약 이곳이 진짜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신은 제게 왜 이렇게 대해주는 겁니까? 어차피 지나가는 사람인데, 팀에 분란을 일으킨 사람인데, 납으로 된 혀로 누군가를 고통받게 만들었는데, 왜 저를─ 다물린 입술이 다시금 벌어졌다.
"왜, 미안하다고.. 하십니까?"
메스를 쥔 손에서 힘이 빠졌다. 피 묻은 메스가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굴렀다. "대체, 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 당신이 미안하다고…." 더듬거리며 뱉던 단어를 뒤로 현실이 아닌 너머의 것을 쳐다보는 듯하던 시야가 흐려졌다. 공막에서는 투명하게 물이 차올랐다.
"왜……."
닿지 않을 소망을 얘기하듯 허망하게 속삭이는 꼴이 여렸다. 눈을 깜빡이지 않아도 묵직한 무게가 실려 중력을 이겨내지 못한 눈물이 흘러 뺨을 적셨다.
물론 이런 대답을 듣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님을 안다. 직전에 네가 뱉었던 말과 연결해서 이해해야만 하는 이야기의 흐름, 너는 여기서 마땅히 그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혹은 그렇게 스스로를 가려도 상관없습니다. 라는 말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미 늦었다. 애초부터 그런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으니 의식적으로든 반사적으로든 튀어나오지 않은 말을 억지로 꺼낼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 되뇌이며 상황을 진정시키려 애쓰는 너는 최대한 감정을 싣지 않고 말을 끝맺는다. 드디어라고 해야 할까, 가빠지는 숨소리에 연상되는 표정으로 변해가는 표정을 보며 너는 잠시 눈을 감는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시선이 머무르는 곳은 손목을 덮은 손수건이다. 붉게 물들어가는 흰 손수건을 내려다보며 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묶어야 할 것 같았으나 한 손으로 손수건을 묶는 기술 같은 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손수건째로 손목을 가볍게 붙잡을 뿐, 그제야 들려오는 목소리와 땅에 떨어지는 메스로부터 반사되는 빛, 너는 대답하기 전에 메스가 떨어진걸 확인하자마자 메스를 발로 걷어차 호수에 빠트려 버리려고 했다. 이제는 손을 놔도 괜찮을까?
"손수건이 닿으면 아플 거라고 생각해서 그랬습니다."
상처에 무엇이든 닿는데 안 아플 리가 없다. 가만히 내버려 두어 무뎌지는 듯한 통각이 지혈제와 약을 마주했을 때 다시 되살아나는 경험 정도는 해봤으니까. 아무리 손수건이 부드러운 재질이라고 해도 본래 그 위를 덮던 한 층의 피부보다는 한도 끝도 없이 거칠게 느껴지는 법이다. 눈물이 흐르는 걸 미처 보지 못하고 너는 손수건에 감싸인 손목을 살짝 돌려 손수건의 양 끝이 위를 향하도록 했다. 어떻게든 묶어놓기 위해서였고 그 위로 고갤 숙여, 어설프게나마 이빨과 한쪽 손을 이용해 손수건을 묶는다. 당연하지만 꽉 묶일 리가 없어서, 조금 헐렁하게 묶이고 말았다. 쯧. 하고 마음에 들지 않게 묶여버린 손수건에 혀를 찬 너는.
"죄송합니다, 익숙지가 않아서..."
그러고 보면 이런 부분은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니었던 것 같다. 지혈법을 배울 때 조금 뒤로 처졌던 걸 생각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던 너는 그제야 고갤 들어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본다.
"잠깐... 잠깐만 손을 놓겠습니다. 역시 아팠겠죠, 헐렁하면 상처에 쓸려서 더 아플 겁니다. 잠시만 손을 놓을 테니 기다려주세요."
아픔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 어느 쪽이든 지금 당장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걸 이해하기에는 단서가 모자랐기에, 너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그러나 사실은 아닌- 선택을 하기로 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메스를 들고 있던 손을 놓은 너는, 헐렁하게 묶인 손수건을 풀고 상처에 닿게 다시금 손목에 얹은 뒤에, 힘주어 묶었다. "아파도 조금만 참아주세요, 이런 건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니라, 미안합니다." 라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지극히 현실적인 대답이 다시금 무의식을 거세게 두드렸다. 구석에 틀어박혀있던 이스마엘을 단단히 붙잡고 끌고 오는 건 대답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현실로 돌아가면 끔찍한 일만 가득할 텐데. 이겨내고 끝내 익숙해질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텐데, 그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도 알고 있는데. 손목에 닿은 손수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 사실이 자못 역겹게 다가왔다. 순간 시야가 아찔하고 어지러운 감이 있었다. 토기가 치미는 느낌이었으나 헛구역질도 나오지 못했다. 어지러운 이유는 피를 흘려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단지 현실이 다가왔기 때문에, 그렇게 믿기로 했다. 덜컥 끌려와 짊어지게 된 현실이 무겁다. 메스를 발로 걷어차는 소리가 들린다. 무의식처럼 호수로 가라앉을 것이다. 그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절망스러움을 표현하기엔 지쳤다.
"제가 아플걸…… 왜 생각하십니까."
여전히 허망했다. 뺨을 타고 눈물이 후드득 쏟아진다. 한 손으로 어떻게든 지혈해 보고자 어설프게 고개를 숙이고, 이까지 사용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손끝이 가늘게 떨린다. 눈을 깜빡이기가 무섭게 다시금 고인 눈물이 쉴새없이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다. 느슨하게 묶였는지, 거세게 묶였는지도 알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했을 때, 입이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다. 왜 당신은 계속 사과하는 겁니까? 얘기하려던 것을 삼키듯 눈을 감았다. 모르겠다. 당신이 사과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는데.
"……아프지 않습니다. 제발…."
제발 그만하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왜? 대체 왜. 차라리 내버려 뒀더라면 최소한의 희망이라도 잡지 않고 온전히 스스로의 세상에 몸을 맡길 수 있었을 텐데, 동료를 잃는다는 불안을 품지 않고, 아버지를 다시 잃어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무뎌질지도 모르는데. 끝내 그것이 자신이 박살나는 길이라 할지언정 차라리 그게 나았을 텐데…… 당연히 당신은 이 사실을, 나아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당신에 대해 이스마엘이 잘 알지 못하듯.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불현듯 당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는 그들이 언제까지나 있는 그대로 느끼기를 바랍니다. 무뎌지는 게 그들처럼 되는 길이라면. 지금 꼴이 딱 그런 것 같다. 있는 그대로 다시금 느끼고 있지 않은가. 잔인한 사람. 이스마엘은 고개를 푹 숙였다. 한때 메스를 쥐었던 손목을 놓아주자 팔에 힘이 풀렸는지 힘없이 내려갔다. 지혈을 하듯 다른 손목에 팽팽한 감각이 느껴졌으나 여전히 아프다는 감각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불덩이를 얹은 듯 화끈거리며 쓰라리지만 이런 건 살던 곳에선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단지 다른 곳이 미칠듯이 아팠다. 폐부다. 상냥하게 괜찮노라 속삭여주던 과거의 목소리가 기억에 맴돌아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눈물과 함께 고통이 폐부를 찔러온다.
"……집에, 다녀오고 싶어."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이스마엘이 끝내 가장 여린 모습을 보였던 이유가. 조그맣게, 입술을 달싹이며 홀로 중얼거린 소리는 여전히 닿지 않을 소망을 속삭이는 듯했다. 가장 단란하고 행복했던 때가 그리웠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전 막연히 기댈 수 있는 것 중 떠오르는 건 그것뿐이었다.
당연하게 생각했기에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에는 말문이 막혔다. 그냥, 네가 그런 상황이라면 아플 것 같았고... 그렇다면 아마 네 행동으로 고통을 느낄 테니까. 당연히 그럴 거라는 생각. 지극히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여겨온 그 생각 때문에 너는 그 질문인 듯, 그러나 질문이 아닐 수도 있는 질문에 차마 무어라 근거를 대며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미안합니다, 제가 섣불리 생각하고 행동한 걸지도 모릅니다. 저는 의사가 아닙니다... 하물며 의무병처럼 관련된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도 없어서, 그래서 제가 하는 행동이 제대로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과하는 겁니다. 제 행동으로 상처가 더 나빠질지도 모르니까요."
지금은 없는 고통이 생겨버릴지도 모르니까, 그저 가만히 둘 수가 없어서 행동한 것 때문에 생기게 될 문제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으니 그게 떠오르는 지금 그 부분에 대해서 너는 사과를 해야만 했다. 혼자 있고 싶어하는 걸 방해했다. 스스로 손목을 찢어내고 그 안을 헤집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막았다. 아프지 않다는 사람에게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픔을 강요하는 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사과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을 멈추지 않을 네 모습에 대해 사과해야만 했다.
"그만하라고 해도, 안 됩니다. 미안합니다. 결국 이야기도 들어주지 않으면서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을 괴롭히는 걸 용서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래도 안 됩니다. 대체 누가 당신을 보고 내버려두겠습니까."
단단히 손수건을 묶고 나서야 고갤 든 너는 이젠 마주쳐주지 않는 눈과 푹 숙인 머리를 본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네가 놓았던 팔은 메스를 찾아 움직이거나, 널 밀쳐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툭, 바닥에 닿을 수 있다면 그러려는 듯 아래로 내려갔을 뿐. 내려앉은 머리칼과 그림자에 가려진 얼굴이지만, 분명 턱을 따라 흐르는 물방울이 보였다. 그리고 귀를 기울여야만 들릴 만한 자그마한 소리, 바람 소리라도 겹쳤다면 듣지 못했을 만한 중얼거림이었지만 너는 그런 소리를 놓치지 않는다. 놓칠 수 없었다. 언제나 곤두세워진 감각이 이런 때라고 무뎌지랴.
"...그렇담, 다녀옵시다."
이럴 때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아무도 가르쳐 준 적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지금까지 계속해서 반드시 이루려고 했던 목적과는 다른 무언가가 그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었을까. 홀로 중얼거리는 말, 혼잣말에는 많은 것이 담긴다. 누군가가 들었으면 하고 중얼거리는 것과는 다르다. 아니, 어쩌면 그것도 마찬가지일 터... 정제하지 못하고, 말하고자 의도하지 않은 것이 튀어나온다는 것은 때로,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본심이 무심코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 너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네 손이 손목 대신 손을 붙잡는다.
"지금 당장."
지체해서는 안 된다. 방향을 틀 수 있다면 지금뿐이다. 본능이 지르는 소리에 너는 귀를 기울인다,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 무엇이든 해야 해, 이 축축한, 점점 옅어가는 쇠 냄새로부터 벗어나자. 스스로를 해하는 소망은 이뤄줄 수 없어도, 다른 거라면 도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너는 연신 힘이 담긴 목소리를 냈다. 이 집이 에델바이스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집. 그 짧디짧은 한 단어에 담긴 것이 얼마나 많은지 세는 건 미련한 짓이다. 본래 그 단어가 가져야 할 의미라는 것은.
아마데우스는 남자 이름이니까요. 그녀는 오해할만 했다며 레이먼드에게 거듭 괜찮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비극의 비극... 아니 오해의 오해가 겹쳐져 발생한 촌극(?)이었다. 아아, 아마데우스의 흉부가 좀 더 발달했더라면, 목소리가 여성스러웠다면, 키가 좀 더 작았더라면...
"서로한테 한 방씩 먹인거네요? 물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해는 레이먼드 씨가 더 크지만요..."
아마데우스는 여전히 면목 없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병원비는 자신이 낼테니 날이 밝는데로 병원에 가볼 것을 권했다. 아마데우스는 자신의 연락처를 마침 바구니에 있던 메모지에 써서 그에게 건넸다.
"혁명을 함께하는 동지이니, 앞으로도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신사분."
무슨 목적으로 모였건, 현 체제에 대항하기 위해 모인 것은 같으니 어찌됐던 같은 동지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레이먼드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당신이 신경 썼던 모든 것이 고통으로 다가온다. 막연하게 다가온 선의가 손목의 상처보다 더 따갑고 쓰라리게 다가온다. 차라리 무시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만들고 희망에서 비롯된 두려움을 품게 만든다. 그럼에도 원망을 퍼부을 수 없었던 이유는 이스마엘이 남을 원망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도 가만히 놔두었을 때의 말로를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꼭, 자신이 뱉은 말이 투정 내지 원망처럼 나왔나 보다. 다시금 사과하는 모습에 이스마엘은 시선을 피해버렸다. 상처가 나빠지든 말든 어차피 내 몸인데.
"……용서할 수밖에 없는 걸 알면서도, 잔인하십니다."
그만해달라고 했는데, 결국 들어주지 않을 거면서. 내버려 두면 그만일 사람일 뿐인데 자신의 꼴을 내버려 두지 않을 거란 얘기를 하고. 잔인한 사람. 당신은 잔인한 사람이다. 이스마엘은 푹 숙인 고개 사이로 입술을 앙다물었다. 더 무어라 말할 수 없다는 듯이. 떠오르는 기억을 누르려 애쓰며 입술을 짓누른 잇새에 꾹 힘을 주었다. 폐부를 찌르는 통증은 이젠 숨을 쉴 때마다 불에 타는 것처럼 아프다. 눈물을 그칠 힘도 없었던 것인지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르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어깨가 희미하게 들썩이는 정도였다.
"다녀, 오자뇨..?"
이스마엘은 고개를 들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너머로 조그맣게 벌어진 입술과 붉어진 눈시울을 뒤로 현실을 어렴풋이 깨달았으나 아직 발을 내딛기 두려운 사람과 같은 눈이 당신을 향했다. 아직 두려운 모양이었다. 무심코 드러난 본심을 들어버렸다는 사실도 잠시, 당신이 손을 붙잡자 몸이 흠칫 떨렸다.
"어떻게……?"
지금 당장? 대체 어떻게? 돌아갈 수 있을까? 절차가 복잡할 텐데, 허락해 주지 않는다면? 수많은 걱정이 뇌리를 스친다. 그렇지만 희미한 흔적에 기대고 싶었다. 잡힌 손이 가늘게 떨렸다. 나의 집으로. 그리운 울림에 눈물에 젖은 눈동자가 희미하게 일렁였다. 기대고자 했던 것이 망가졌기 때문에, 망가졌던 것과 함께 하던 단란하던 기억이 그리웠다. 최소한의 실낱같은 희망을 잡고, 그렇게나마 현실을 깨닫고 싶었다. 이스마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 걸음과 함께 조심스레 내디딘 첫발은 현실 치고 제법 아프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을 들어보자면 이스마엘이 순순히 당신의 발걸음을 따라 발을 맞춰보려 노력했다는 것과, 지금 당장은 현실에서 도망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다행이지 못한 점도 있었다. 이스마엘이 정신적으로 심히 지쳤다는 사실이었다. 집의 좌표가 어디에 있는지 그 좌표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집으로 가는 방향을 기억하는 곳이라면 단 한 곳뿐이었기에.
이스마엘은 한참이고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곳 또한 이스마엘의 고향이긴 하나 과연 같이 가도 괜찮은 곳인지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결정한 것인지 이스마엘은 워프 게이트 앞에서 자신의 점퍼를 벗었다. 늘상 점퍼를 벗지 않더니만, 최근 총상을 입어 어깨를 가로지르는 붕대를 시작으로 자잘자잘한 흉터가 팔 곳곳에 남아있었기 때문인 듯싶었다.
"……제 고향은 거친 곳입니다. 외부인의 신원을 반드시 가려야 할 정도로."
평소처럼 활기차고 긍정적인 모습은 찾을 수 없을 만큼 지쳤던 탓인지 위축된 모습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받든 말든 상관하지는 않겠지만, 만약 점퍼를 받았더라면 후드를 뒤집어 씌웠을 것이다. 그리고 워프 게이트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서기가 무섭게 여과기가 고장 나 혼탁한 공기와 뒷골목이 둘을 반겼다. 빛 한 점 들지 못해 네온에 의지하는 도시의 외곽, 빈민가보다 더 끔찍한 인생을 사는 패배자가 모였는지 절망의 냄새가 음습하게 코를 찌르는 곳. 골목 구석에 누운 사람이 있었으나 숨이 꺼졌는지 미동도 없다. 이스마엘은 익숙하다는 듯 눈을 찌르는 네온사인 아래에서 고개를 돌렸다. 형용하기 어려운 미소가 얼굴에 어렸다. 아까 전과 같이 인위적이기 보다는, 자신의 실체를 밝힌다는 것에 대한 체념이 섞인 미소였다.
이런 걸로 미움받는다면, 기꺼이 미움의 대상이 되겠다. 잔인하다는 말에 그렇게 대답하며 상처입은 손목 대신 손을 붙잡은 너는 상대의 눈을 쳐다보았다. 본심을 읽혔다는 것에 대한 당황이 담긴 목소리에 너는 마른침을 삼킨다. 또, 알아챘다는 걸 그대로 드러내 버렸구나. 라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소름끼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그때 이후로 한 마디라도 조심하면서 말을 골랐는데, 어느 부분에서 실수한 거지? 그러나 아마 그 부분은 큰 문제가 아니었던 듯, 어떻게 돌아가느냐는 듯한 물음이 돌아오자 너는 일단 현재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 무심코 반응해버린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스스로 다그치기로 하자.
"어떻게든."
마을 바깥으로 나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임무도 없이, 어떤 지원도 없이 빠져나갔다가 돌아오는 건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 지금의 네 상관인 로벨리아에게도 만약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해도 질책할 만한 일일 터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잖은가. 보고 후 조치라는 기본적인 룰을 어겨야만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적어도 오늘은 그런 날이라고, 그렇게 속으로 되뇌이며 너는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가자, 어디로든 발을 딛자. 여기에서 침잠하는 인간 따위는 되지 말라고.
…
어떻게든. 네가 말했던 대로 지금은 어떻게든 걷는다. 정확한 위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방향 정도는 기억했으니... 천리만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면 언젠간 도착하리라. 워프게이트 앞에 서서 점퍼를 벗는 모습을 보자니 어깨부터 시작해 팔 곳곳의 흉터가 보인다. 저게 마지막으로 받은 처치인가 싶어 머리가 지끈거리려는 찰나 들려오는 목소리에 너는 살짝 고갤 갸웃한다.
"그건... 조금 희안한 것 같군요, 이스마엘 씨의 모습으로는 연상되지 않습니다만."
그러니까, 거칠다는 말이랑은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분위기 환기를 위한 농담에 가깝기도 했고. 물론 메스로 칩을 찾는다며 손목을 쑤시려고 하는 걸 보면 거친 것도 같지만. 어쨌거나 평소에 보여주던 모습과는 딴판이지 않은가. 지금도 지쳐 있긴 해도 많이 신경쓰려고 하는 것 같았으니. 어쨌건 그 말에 반박하려고 한 건 아닌지 군말없이 점퍼를 건네받았다. 너보다 한 뼘 가까이, 혹은 손가락 한 개 정도 길이의 키가 차이가 나는 만큼 네가 받아 걸친 점퍼는 꽤 컸다. 소매 바깥으로 손가락 두어 개만 보일 정도였으니. 받아 입자마자 씌워지는 후드에 너는 바로 머리끈을 풀었다. 후드를 씌운다는 건 얼굴을 드러내는 게 별로라는 의미라고 생각해 후드가 바람에 들썩이지 않도록 머리가 묶여 닿는 부피를 줄일 셈이었다.
후드 바깥으로 삐져나오는 머리카락까진 정리하지 못한 채, 워프 게이트를 넘어서니 보이는 건. 누군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가디언즈도, 레지스탕스도 손을 자신 있게 뻗지 못하는 곳. 탁한 공기와 번쩍이는 원색의 네온사인.
"...여긴."
그 장소를 입에 담으려다가 네게 향하는 시선과 미소에, 너는 말을 멈추고 올려다본다. 체념한 듯한 미소를 가만히 보던 너는 가볍게 미소지어 화답하곤 앞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디든 무슨 상관이냐. 이미 시작점을 넘어섰는걸.
에델바이스의 사람이라면 각자 소속된 팀이 있다. 나는 그 중 의료반으로 본 아지트의 의무실에서 대원들을 서포트하는게 일이다. 임무 중 부상부터 훈련 도중의 부상까지- 의료에 관한 폭 넓은 대응을 하기에 내 세븐스는 적합했다. 그렇지만 그런 나조차도 고치지 못 하는게 있었다.
있었고, 지금도 있다.
-
이틀이 지났다. 언제로부터 이틀이냐고? 알아서 적당히 생각하길 바란다. 중요한 건 시점이 아니라 흐른 시간이니까. 이틀 지난 오늘도 나는 내 의무에 충실히 의무실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실 의무실의 일은 치료 뿐만 아니라 각종 비품 정리나 그런 잡무도 있어서 자리에 있다 없다 하지만. 뭘 하든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가 어느새 점심 먹을 시간이었다.
"자- 밥 먹고 합시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그르게. 오늘은 유난히 시간이 빠르네." "어, 어어, 오늘 어느 조가 먼저지?"
의무실 인원이 한 번에 자리를 비우면 만약의 상황에 대처할 사람이 없으니까. 자체적으로 조를 구성해 돌아가면서 식사를 하고 오는 구조가 있었다. 오늘은 때마침 내가 속한 조가 제일 먼저 먹는 날이라 다른 조원 넷과 함께 다녀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그 중 둘은 도시락이 있다며 떨어지고, 한 명은 약속이 있다며 종종걸음으로 멀어졌다. 그래서 나도 따로 먹겠다며 가려고 했는데 남은 한 명이 내 팔을 잡았다.
누구더라. 아. 최근 들어온 사람이다. 의학 지식이 있어서 의료반에 배치되었다던.
"저기! 저, 괜찮으시면 같이 먹어요." "그래-"
또래이거나 혹은 서너살은 많아보이는 그가 대뜸 같아 먹자길래 그러자며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면 메뉴 정하기도 귀찮은데 잘 됐다. 그가 동행하기 위해 다가오길래 나는 그 옆에 섰다. 잠깐의 대화 끝에 가까운 샌드위치 가게에 가는 걸로 정하고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얘기를 하긴 했는데. 대부분 나에 대해 묻는 것들이었다. 언제 들어오고 그 사이 뭘 했고 가족관계는 어떻고 등등등. 식사를 고르는 것보다 귀찮을 것 같은 낌새가 느껴졌지만 일단 적당히 대꾸하며 걸었다. 그리고 도착한 가게에 들어갔다. 그가 문을 열어주는 것보다 빠르게 열고서.
"제가 제안했으니까 제가 살게ㅇ" "저거랑 저거,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아니나다를까 식사를 사겠다는 말을 하려고 하길래 먼저 주문과 동시에 계산까지 끝마쳐버렸다. 사실 단골가게 중 하나라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내 빠른 행동에 그가 벙찐 걸 알았지만 못 본 척 주문하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뒤늦게 우왕좌왕 메뉴를 고르고 주문 하는 그를 두고 나는 내 것을 받아 홀 쪽으로 들어갔다. 조금 이른 점심시간이라 빈 테이블이 많아서 가까운 곳에 대충 놓고 앉으니 조금 후에 같은 쟁반을 든 그가 허둥지둥 다가와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잠시 단말기를 보고 있던 나는 왔냐고 말하며 샌드위치를 집어들었다. 그도 숨을 추스르자마자 같이 샌드위치를 집으며 말했다.
"메뉴가 이것저것 많아서 고르는데 좀 힘들었네요. 어. 음. 여기 단골이셨나봐요?" "응- 여기서 지낸 지도 2년 됐고-" "와, 2년이요? 힘드셨겠다..." "집 지키고 서포트만 하는데에 힘들게 뭐가 있어-" "그..렇긴 하지만요. 하하..."
이후 대화도 비슷하게 흘러갔다. 거의 그가 먼저 말을 하고 내가 대답할 때마다 그는 표정이 굳거나 난처해했다. 나는 그의 반응을 보며, 그냥 볼 뿐이었다. 표정 없는 얼굴로 묵묵히 샌드위치를 먹고 커피를 마시며 형식적으로 대화에 응할 뿐.
그러다 대화가 살짝 튀었다. 가족이라는 주제로.
"그러니까.. 저는 부모님이랑 동생이 있는데. 도망치느라 다들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요..." "어딘가에 잘 도망쳤을거야아. 아니면- 외부 구조 나가는 팀에 얘기 해두던지-" "그래야겠네요. 네... 어.. 아, 아까 가족분도 같이 계시다고 했죠? 언니셨나?" "맞아- 쌍둥이 언니가 있어-" "아, 쌍둥이시구나. 그 분은 어느 팀이신ㅈ" "왜?"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튀어나간 반문에 그가 당황했다. 아마 내 표정도 놀랄 만 했겠지. 왜? 짧게 찌르는 메스 같은 말에 그나마 흐르던 분위기도 뚝 잘렸다. 그는 바로 대답을 못 하고 어리버리 하고 있었고, 나는 타이밍 좋게 남은 커피를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 복귀 전에 용무가 있어서- 길은 알지?" "어, 네..." "그래애. 그럼 먼저 갈게에"
구겨진 유산지와 빈 머그컵이 담긴 쟁반을 들고 테이블을 떠났다. 카운터에 쟁반을 반납하고 가게에서 나와 기지로 복귀했다. 그렇지만 가는 곳은 의무실이 아니었다. 내 개인실로 가서 누가 들여다볼라 조심스럽고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나 왔어-"
그렇게 말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지만 그래도 간만이었으니까 한 번 말해보았다. 방 안은 미처 빠지지 못 한 향이 은은하고 달콤하게 감돌고 있었다. 나는 불도 켜지 않고 겉옷도 벗지 않은 채 침대로 곧장 다가갔다. 아무도 없어야 할 침대에 늘어진 하얀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올릴 적에 내 얼굴은 분명
웃고 있었겠지.
"계속 이렇게 잠들어 있으면 좋을 텐데..."
죽은 듯이 하지만 미약하게 숨을 쉬며 자고 있는 내 유일한 혈육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옆에 내려놓은 내 것이 아닌 단말기에는 연락의 알림이 반짝이고 있었던가. 아니던가. 저 연락이 누구의 것일 거라 생각하면 절로 표정이 사라지지만, 아직까지는 내게만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이 그 감정을 참을 수 있게 했다.
"그래. 결국 그도 남일 뿐이야. 너를 이해하는 건 나 뿐이니까."
설명도 납득도 타협도 없이 널 받아줄 수 있는 건 나 뿐이야.
나는 축 늘어진 손을 들어 장갑을 벗기고 그 손바닥에 뺨을 대었다. 이 미지근한 온기가 부디 오래도록- 가능하다면 '영원히' 내 것이었으면.
...그래도 계속 잠들어 있으면 내가 이상해질 테니까. 오늘 끝나면 깨워야겠다. 아쉽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그 손에 장갑을 고이 끼워주고 이불도 고쳐 덮어주고 일어섰다. 남은 오후 근무를 하기 위해 개인실을 나서며 이따 일어나면 야식으로 뭘 먹자고 할까 고민을 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던 듯이 의무실로 돌아갔다. 내 자리로. 내 의무가 있는 곳으로.
아스텔 댕청한 얼굴로 보검 들고 멀뚱히 서 있을거 같잖아 귀여워 진짜 ㅋㅋㅋㅋ 아... 누구 편을 들어주느냐~~ 그야 뭐 전후사정 양쪽에게 들어보면 라라가 날조했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아스텔 편을 들겠지? 근데 그 때 기분 따라서 괜히 라라 편 들어주고 아스텔이 서운해하나 볼 지도 모르겠는걸~
그래도 자기 혈육이라고 무작정적으로 편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로군요. 그것도 여동생인데!! 그리고 아스텔이 서운해하나 보기 위해서..ㅋㅋㅋㅋㅋ 뭔가 살짝 떠보는 것 같잖아요. 그거. 물론 아스텔은 레레시아가 그렇게 말한다면 조금 침묵을 지키다가 일단 납득하고 자리를 뜰 것 같네요. 태연한 척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세븐스를 쓰고 공중 높게 날아오른 후에 팔짱을 끼고 머리를 식히고 있을지도 모른답니다.
당신은 올곧은 사람이다. 지나치게 정석적인 이야기 아니던가. 미움의 대상이 될 리가 없는데도. 눈을 마주쳤을 때 당신은 마른침을 삼켰으나, 이스마엘은 넘어가기로 했다. 맹약처럼 들려오는 당신의 한마디에 이스마엘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손에 힘이 들어갔을 적 느릿하게 꼼질거린 손가락은 호수에 있을 메스를 더 깊은 바닥으로 처박았으나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스마엘의 흉터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까지 다양했다. 어깨와 팔을 드러내고, 목을 덮어가린 타이트한 차림이지만 저 속에도 많은 흉터가 있음은 자명하다는 듯 하나하나 흔적이 남아있었다. 당신이 농담을 던지자 평소엔 말갛고 밝은 웃음소리를 내며 재머로 웃는 표정을 지었겠으나 지금은 작고 희미한 웃음소리를 낼 뿐이다. 그래도 웃는 것이 어디인가.
"그렇습니까? 잘 연상되지 않을 법도 합니다."
밝고 활기찬 사람에게 신원을 가릴 정도로 거친 고향은 어울리지 않는 법이다. 분위기 환기를 위한 농담을 가볍게 맞받아친 뒤 당신이 점퍼를 걸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머리끈을 푸는 모습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듯. 이스마엘은 달리 얼굴을 가리지 않았으나,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듯싶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좋다. 워프 게이트를 넘었을 때 이스마엘은 잠시 전경을 담는다. 여전한 곳이다. 오늘도 누군가 죽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비정한 곳.
"허울 좋은 도축장입니다. 윌리라 불리는 매매업자가 있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만.. 지금은 모르겠군요."
분홍색 네온사인이 두 사람을 역광으로 비췄다. 이스마엘은 말을 멈추고 올려다보는 당신과 시선을 맞췄다. 가볍게 미소 지어 화답하며 시선을 옮길 적, 이스마엘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걸까. 아마 지금쯤 서로 모여 모닥불 앞에서 대체식량을 먹으며 버티고 있겠지. 이스마엘은 이쪽에서 쭉 직진해서 샛길로 빠져야 함을 익히 알고 있었다. 발을 내디디며 걷던 도중, 이스마엘은 발을 쭉 뻗더니 무언가를 툭 쳐내 골목 구석으로 밀어냈다.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밀려난 것은 벽돌이었다.
"그렇게 좋은 기억이 있는 물건은 아닙니다."
이스마엘은 입술을 달싹였다. 조금의 소란이라도 일었다간 금세 전투가 일어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세븐스라는 사실을 들키면, 세븐스가 있는 구역으로 가지 않는 이상 매매업자와의 사투가 벌어짐도 알고 있기 때문인지, 목소리는 속삭이듯 낮게 깔려있었다. 이마저도 회의감이 어려있었다.
"과거에는.. 가디언즈 말단이 이곳을 홀로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세븐스 인신매매 카르텔과 유착관계를 맺고 이곳으로 도망쳐온 레지스탕스나 세븐스 범죄자를 넘기거나 묵인하는, 간혹 뇌물을 받는.. 여타 가디언즈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겉돈다는 점이었을까요."
느릿하게 얘기하며 골목에서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서며 복잡한 길을 머릿속에 지도가 있는 것처럼 쉽게 지나쳤다.
"그렇지만 공과 사는 엄격하게 구분해 슬럼의 균형을 잡았습니다. 전염병이 돌면 약을 보급했고, 외부인이 개입하려 들면 자신과 유착관계가 있든 없든 죽기 직전까지 몰아넣었기에 미친개라 불렸지요. 제가 기억하는 이곳의 관리자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일과 감정을 분리하기 때문에 선과 악이 모호한 사람. 그렇기 때문에 저는 가디언즈라는 존재에 대해 그렇게 큰 감정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셔가 저런 상황이었는데 나는 혼자 삽질이나 하고있었고 어흑흑 나는 언니 자격도 없어~~ ㅠㅠ 하면서 레시 맴이 막 너덜너덜해질거라구~ 임무 나가서 헛손질하고 다치고 막 그럴거라구~ (그리고 귀신같은 올 회피 다이스) ㅋㅋㅋㅋㅋㅋㅋ뭐어 상황상 서로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맛이 없단 말이지... 음...(<< 제일 나쁨)
하지만 힘들때 아무것도 못해주는데 무슨 염치로 자격을 논해~~ (눈물)(안약통 숨김) ㅋㅋㅋㅋ아니 꼭 이건 맞아야지! 하면 다 피하게 하잖어 다갓이 ㅋㅋㅋㅋㅋㅋㅋㅋ 어장 최고 맛잘알은 다갓이여 아주 ㅋㅋㅋㅋㅋ 헐 댕댕이셔 봐야하는데! 흐름상 담 임무 때까지 행방 묘연하게 혹은 보일듯말듯하게 해서 소집 때나 스윽 나타나게 할 건데~ 음~ 어?라? 그거 내 탓인가? 에? 데헷★
으악 안니 아니야 그건 이셔도 마찬가지라구 (오열) ㅋㅋㅋㅋ 맞아 다갓님 완전 말썽쟁이야~~~ 맛잘알이기도 하지..(끄덕) 댕댕이셔..? 보여주도록 하지.. 아스텔아 미안하다.... 다음 소집 때는 이스마엘이 첫 진행부터 레샤한테 꽉 달라붙을 것 같다... 원래 여자끼리는 야 너 괜찮아? 하고 학교에서도 냅다 끌어안고 수업 직전까지 괜찮아? 누가 x같이 굴면 강냉이 졸라쌔벼~ 이런 말 하다가 선생님이 이 자식들 자리로 안 돌아가~ 자리 바꾼 의미가 없어 아주그냥 소리듣는게 국룰이라구...(대체)
갸아아 (짤짤이 당함) 자야하긴 하는데.. 내가 지금 눈을 붙이면 과연 알람을 들을 수 있을까가 의문이라...🥲 일 대충 끝내면 아마 오후에 시간이 텅 비어버릴 것 같긴 한데 그때 쪽잠이라도 잘까 생각중이야.. 흑흑 양심적으로 일하는 시간 8시간 여가시간 24시간 도합 32시간 이렇게 있어야 한다 생각해.....
허울 좋은 도축장이라는 말과 과거의 기억. 너는 주변을 둘러보는 이스마엘의 뒤를 따라 걷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끝으로 밀어낸 벽돌과 그다지 좋은 기억이 있는 건 아니라는 말에 벽돌과 얽힐 만한 나쁜 기억이 대체 뭐가 있을까 싶었다. 벽돌을 누군가 집어던졌다거나. 네게 전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조심스러워서, 아마 이 주변에서 사소한 일에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슬럼 바깥에서도 사람으로 취급받기 어려운 세븐스가 슬럼 안에서 얼마나 안전하겠나. 안전과는 한참 거리가 멀겠지.
"......"
너는 일단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말이 끝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섣부르게 판단하고 말할 만한 내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길이 상당히 복잡한 관계로 길을 잃지 않고 똑바로 따라가야 하기도 했고. 전혀 알 수 없는 장소에서 유일하게 의지하며 방향을 잡는 사람이 있으니 놓쳐서는 안 됐다. 그러던 와중 말이 멈추고, 네게 향하는 시선을 느껴 고갤 들었다. 후드의 그림자로 반쯤 가려져있긴 했지만 너는 시선을 마주했고, 아까보다 훨씬 부드러워진 눈빛을 확인했다.
"...그렇습니까, 확실히, 반으로 가르듯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군요."
슬럼을 없애지 못했고, 슬럼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한 사람. 홀로 관리한다는 시점에서 보통 사람은 아닌 듯했다, 말단이라지만. 뭔가 말단이라니 묘하게 기분이 이상했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천만한 일을 맡긴 것일지도 모르지. 말단이라면 그럴지도. 성공을 전제하기보다는 실패를 본전으로 치부하는 임무, 너는 부드럽게 향하는 눈빛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했다. 가디언즈에 대해 큰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지만 너는 지금 듣고 있는 사람만큼의 역량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아니냐, 슬럼을 없애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란 걸 알기에 균형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것 역시 안다.
"그 가디언즈... 직접 만나보셨습니까?"
그 사람과. 슬럼에 살면서 한번쯤믄 만나본 사람인 걸까, 너는 문득 드는 의문에 조용히 물었다.
하늘에 보름달이 뜨고 별이 반짝이고 있는 늦은 밤 시간. 어둠에 묻힐 정도로 검은 옷을 입고 있는 긴 붉은 머리 여성이 달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오른손에 끼고 있는 렌즈가 달려있는 장치를 손으로 쓸어내릴때마다 렌즈의 색깔이 변했다. 그 렌즈를 가만히 바라보던 여성은 조용히 숨을 내뱉었다.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
U.P.G 본부 앞에서의 활약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그 레지스탕스의 이름을 입에 담고 있던 여성의 눈빛이 날카롭고 차갑게 변했다. 누가 봐도 상당히 적대적으로 생각하거나 정말로 싫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여성의 날카로운 눈빛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밤공기를 품은 차가운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한 번 스쳐지나갈 때 쯤,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희망의 상징인가. 쓸데없는 짓거리를. ...그렇다면 슬슬 그 싹을 잘라버릴 때가 되었어."
바로 앞에 있는 꽃 한송이를 발로 짓밟으며 그녀는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그 아래에는 산속에 숨겨져있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그렇게 크진 않지만 그럭저럭 사람들이, 정확히는 세븐스와 비능력자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마을이었다. 그 마을을 높은 언덕 위에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숨을 작게 죽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늘 위의 보름달이 구름으로 가려지며 자연히 여성의 얼굴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내 씨익 웃는 그 모습이 너무나 차갑고 날카로웠다. 이내 그녀는 어둠 속으로 완전히 몸을 감춰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조용히.
-아. 리버. 오늘도 고생이 많구나. 이거 가져가렴. 내일 아침에 먹으라고 이 아줌마가 서비스로 주는 크로켓이야. -고마워요! 아주머니!!
어둠이 천천히 깔리고 있는 마을은 오늘도 평화로웠다.
/퇴근하고 Pre-story를 올리고 갱신이에요! 그리고 바로 저녁을 먹고 돌아올게요! 다들 맛저하세요!
슬럼은 이따금 네온사인이 합선을 일으키는 소리, 공기 여과기가 고장 나 달그락대는 소리, 두 사람의 발소리를 제외하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인기척은 없었으나 곧 있으면 이곳의 갱이 활동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이스마엘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제법 자연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입을 열어 이곳의 이전 관리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도 그랬다. 발걸음을 내딛다가도 잠시 곁눈질로 당신 쪽을 확인하거나 어둡고 비좁은 골목 쪽으로 잠깐 고개를 돌려보는 등, 안전을 신경 쓰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당신과 이스마엘은 세븐스였기에. 이곳의 치안이 어떤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문득 당신이 길을 잃을까 생각이 들었던 것인지 발걸음이 한 템포 느려진다.
"전반적으로 어울리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이곳을 택했다고는 하지만.. 이곳의 질서가 풀려버리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생긴다는 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슬럼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나갈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남아있는 경우도 많다. 그런 사람들을 차라리 지역에 묶어놓고 관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도. 이스마엘은 한때의 말을 기억했다. 아무리 가치 없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도 그 삶을 유지하도록 하는 게 가디언즈의 임무니까. 그는 임무를 제법 잘 수행했던 모양이다. 지금도 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널려있지 않은 시체, 당장 달려들지 못하고 골목에서 기회만 노리다 도망치는 사람의 발소리, 빤히 쳐다보다 숨어버리는 부랑자……. 이스마엘은 좁고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서기 전, 당신에게 손을 뻗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직접, 말입니까."
순간 입을 다물었다. 한결 유순하던 시선에 짙은 감정이 스미다 가라앉았다. 손목을 긁어내던 당시 보였던 처절함이 어두운 골목 속에 가려져 사라졌다. 쓰라린 미소를 뒤로 시선을 앞으로 던져버렸다. 발걸음은 어두운 샛길 깊숙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제 인생이 뒤바뀐 순간이 있노라 했지요. 여기까지만 얘기하도록 할까요."
이스마엘은 대답을 피하며 천천히 입술 속의 살을 짓씹었다. 직접 만난 적이야 당연히 있다. 있었나? 카시노프가 만든 가짜 아니었나? 여기가 어디였지? 순간 머리가 아찔했다. 아직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아직 제정신이 채 못 돌아온 탓이요, 지금 당장의 목표가 중요한 탓이다. 어둠에서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이 잠시 일렁였다. 이스마엘이 입을 꾹 다물다 건조하게 뱉었다. 골목 끝으로 출입금지 표지판과 철장, 그리고 그 너머로 만들다 중단된 듯한 도시의 전경이 보였다. 과거 신도시를 개발하겠노라 호언장담 했으나 슬럼이 있다는 이유로 무참하게 실패한 잔재. 그 안으로 들어서기 위해 이스마엘은 남은 손을 뻗었다. 세븐스를 통해 담을 넘기 위해.
네 걸음에 맞추듯 느려지는 발걸음에 너는 열심히 발을 놀렸다. 잠깐씩이지만 계속해서 주변을 살피는 걸 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 길잡이가 있다곤 해도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기에 너 때문에 지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걸으며 이어지는 슬럼을 담당하던 가디언즈의 이야기에 너는 귀를 기울인다. 상당히 많은 걸 알고 있구나. 단순히 그가 했던 것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기에 하는 말이 아닌 듯했다. 버릇일지도 모르지만 저 말에는 확신이 있어서, 꼭 직접 이야기를 나눠본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눈 앞에 보이는 어둡고 좁은 골목을 쳐다보고 있자니 내밀어지는 손을 붙잡는다. 어두운 샛길에 들어서며 직접 만나보았냐는 말에 다소 애매한 대답을 전하는 목소리, 온통 캄캄한 샛길은 생각보다 금새 익숙해질 것 같았다. 생각보다 더 캄캄해서였을까. 어쨌건... 지금 당장은 온통 캄캄했기 때문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더욱 청각이 곤두세워진다.
"-알겠습니다. 언젠가 좀 더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죠."
인생을 뒤바꾼 존재라고도 해석되는 그 말에 너는 그 정도의 감상만을 내놓는다. 어두운 골목 너머, 외부인이 들어오는 걸 막겠다는 의지의 발로인 표지판, 그리고 철창. 분명 지어지다가 만 도시이건만 꼭 파손되어 무너진 것처럼 보이는 전경.
"과거에...라,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디언즈였다면, 적어도 네가 가디언즈였을 때와 겹쳤다면 아마 한번쯤은 마주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네 기억 속에 그런... 사람은 없었다. 그저 스쳐지나갔을 뿐일까, 그래서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과거라는 게 고작 며칠 전, 어쩌면 직전의 임무라는 걸 너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연결고리 없이 추측하는 걸 위험하다 여겨 그만뒀을 뿐일지도 모른다. 바깥의 사람인 네가(여러 의미로) 여기까지 따라온 것만 해도 많은 걸 허용한 느낌이 아니던가.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다닐 만큼 너는 용기있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레이주!! 아마 로벨리아는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어디 할만큼 해보라는 입장일 것 같아요. 다만 그 행동으로 인해서 팀에 문제가 생기거나 정말로 무의미하게 목숨을 저버리려고 하는 일이 생기면 그땐 직접 나설 것 같지만요. 이건 사실 다른 캐릭터들에게도 다 해당되는 느낌이에요!
>>786 (카시노프를 바라본다.)(흐릿) ㅋㅋㅋㅋㅋㅋㅋㅋ 3번째는 안돼요!! 15세 이용가에요! 여기!! (도리도리)
>>786 이셔 약점은 스스로 보완하는 건가요 그 선 안에 들어온 사람이 보완해주는 건가요(마이크 단?점이 어딨죠 저는 눈 씻고 찾아봐도 안보이는데 아하 단점 없는게 단점이구ㄴ (재가 되어 사라짐
>>794 레이먼드가 친한 형/오빠면 난 자랑할 거 같아... 우리 형/오빠 멋있지! 같이 다니면 무서울 게 없을 것 같은 그런... ㅋㅋㅋㅋㅋㅋㅋㅋㅋ동그란 선글라스를 씌우면 아마 에델바이스가 무조건 이기지 않을까...? 싶고? 헉 그리고 전 봐버렸어요... 대체...누구의...
어둠 속을 걸었다. 장갑을 낄 여력도 없었던 것인지 장갑을 사이에 둔 것이 아닌 직접 닿는 온기가 생경하다. 안온하던 과거가 다시금 폐부를 찌른다. 따스하던 손은 큼직했고, 간혹 머리로 올라올 때면 장난스럽게 헤집는 손길에 높은 소리를 내며 웃곤 했다. 걷는 걸음은 결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숨을 쉬기 불편한 것 같다. 실제로 숨이 가빠지진 않았지만 그런 기분이 들었다. 아마 어깨에 감은 붕대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언젠가 얘기할 수 있을까? 아마 얘기할 수 있겠지. 표지판을 뒤로 이스마엘은 잠시 복잡한 심경이 담긴 듯 미묘한 눈길로 담장을 훑었다. 지어지다 만 도시. 늘 건물 안에서만 지켜봤지만, 지금은 그 바깥에서 입구를 처음 봤기 때문이다. 표지판 하나에 큼지막하게 그래피티가 그려져있었다. 여우 머리가 그려진 걸 보니 이 지역은 슬럼에서 위험한 인물 중에서도 늙은 여우의 소유니 죽기 싫으면 도망치라는 뜻인 것 같다. 이스마엘은 표지판에서 시선을 떼고 잡은 손에 희미하게 힘을 주었다.
"담을 넘고 계속 공중을 걸을 겁니다. 제 집은 높은 곳에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평상시처럼 걸으면 됩니다. 한 발씩."
둘의 몸이 떠올랐다. 이스마엘은 익숙하다는 듯 발을 내디뎠고, 높다랗던 담 위를 걸어 넘으려 했다. 과거에 정말 만났을까? 머잖은 과거가 아닌, 진짜 과거에. 그렇다고 해도 의미가 있을까. 이미 죽은 사람인데. 이스마엘은 옆을 돌아봤다. 뼈대만 선 건물과 불 꺼진 대형 스크린이 보였다. 혹시 몰라 아래를 내려다봤다.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잘 쓰였던 신소재 보도블록이 갈린 길……. 마침내 보인 것은 구동이 중지되어 덩그러니 놓인 구형 안드로이드였다. 입안이 썼다. 그 참사가 났음에도 여기는 그대로였다.
"아, 저깁니다. 저기 보이ㄴ.."
다시 위를 올려다볼 적, 이스마엘은 그나마 뼈대만 남은 것이 아닌 완공된 건물 하나를 올려다봤다. 오피스텔로 쓰려던 흔적이 역력한 곳, 그중에서도 유달리, 어둠 속에서도 창문이 심각하게 깨진 곳이 보였다. 무언가 더 말하려다 갑작스레 입을 다문다. 두려움의 반증이다. 안온하던 흔적에 기대고 싶지만 동시에 두려움이 앞섰다. 기댄 뒤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아, 이스마엘의 손이 가늘게 떨려왔다.
>>802 하늘을 날 때의 반응을 살펴보면...(납득) 아무튼 좀 고요하고 조용한 곳을 여름휴가지로 선호하는군요. 음. 거점에서 가장 적합한 곳은 호수..? (아님) 아무튼 아침에 베개를 끌어안고 뒹굴거리는 레레시아는 귀엽군요. 압니다. 그리고 이상적인 가족은... 뭔가 살짝 불안함을 가슴에 안고 있는 것 같네요. 어째서일까. (갸웃) 자신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것일까요. 그 와중에 츤데레적 모멘트..ㅋㅋㅋㅋㅋ 귀여워.
>>794 크으으 진단 처음부터 짜릿해~ 레이.. 나는 레이의 이 가끔씩 튀어나오는 매콤한 맛이 좋아~ >:3 레이 선글라스 쓰고 다녔지... 뿔테랑 사각은 험해보인.. 저기요 둥근테 안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발랄한 우리 레이 아저씨...(?) 선글라스 말고 하나 더 있는 것 같은데요(부릅) 우리 레이... 행복할 거 맞지? 숨겨진 거 보고 눈물난다.. 눈물..
>>802 레샤 진단은 언제 봐도 달달하니 귀엽단 말이지~ >:3 놀이기구 혼자 못 타는구나.. 그릇보다 더 많은 감정을 가졌다는 말 정말 예쁘다. 극단적이라고 해도 그게 다 납득되는 말 같아.. :3c 얕은 계곡.. 감성적이야.. 어라, 부친에 대한 생각... 독백 정주행 하러 가야지 룰루~ 가족은.. 마지막까지 같이 살 수 있음 좋을 텐데..(아련) 츤츤대는 모습도 귀엽다... 마지막도 츤츤대~!!! >:3 우리 언니 진단 통통 튀어서 좋다~!!
피부에서 피부로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며 담장 앞에 멈춰서서는, 잠시 잠장에 그려진 그패피티를 눈에 담는다. 그려진 건 여우 머리, 저게 무얼 의미하는지는 모르지만 네 손에 가해지는 압박이 조금 강해지는 걸 봐서 어쨌든 뭔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하고 슬쩍 올려다보지만 후드 때문인지 표정을 보는 건 실패하고 어떻게 집으로 향할지에 대해 듣게 됐다. 그러니까... 공중을 날아서 가는 모양이다. 높은 곳이라곤 해도 건물까지 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아닌 모양이다. 최단거리는 지형 없이 직선이니까, 빠르게 가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면 맞겠지.
"알겠습니다."
발이 땅에서 떨어진다, 며칠 전 아스텔과 한번 공중을 날아본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땐 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공중에 떠서 바람에 몸을 맡겼을 뿐이었지만 적어도 지금 네 시야에서 네가 항상 딛고 있던 땅이 멀어지는 걸 견디는 걸 좀 더 쉽게 해줬으니까. 너는 일단 아래에는 신경쓰지 않으려고 했다. 자꾸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네가 쥐고 있는 손을 믿기로 했다. 떨어지지 않겠지. 평소처럼, 그러나 생각보다는 위태롭게 발을 내딛는다. 익숙해지려면 조금 걸릴 것 같다.
"어디 말입니까?"
저기에 보이는 것 같다는 말이 채 끝나지 않자, 그제야 고갤 들고 시선을 따라가기 위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시선이 향한 대로 너 역시 올려다보니 보이는 건 완성된 건물 한 채, 그리고 깨져버린 창문. 다른 곳도 깨진 곳이 있었지만 유달리 심하게 파손된 창문 덕에, 너는 어쩐지 저 장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나친 비약일까? 말을 미처 끝맺지 못하고 떨리는 손에 시선을 주던 너는 잠시 힘을 느슨하게 했다가 다시금 단단히 힘주어 잡았다.
"이스마엘 씨, 무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정 힘들다면 돌아가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네가 옆에 있어서 불편할지도 모른다. 혼자였다면 신경쓰지 않았을 부분을 신경써야만 하는 건 어쩔 수 없으니 너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슬럼이라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다가오는 위협을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다.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숨어드는 것 정도는 익숙하다.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숨어들어가면 용건을 마치고 나올 때쯤까지는 안전하게 있을 수 있을 터다. 그런 생각이었는지 이스마엘을 다독인다. = "...그렇지만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었죠, 이제 얼마 안 남았잖습니까. 역시 혼자서라도 다녀오는 게 좋겠습니다."
쥬데카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가_죽기_전에_마지막으로_본_것은 ?그런거 몰?루요 어떻게 죽었느냐에 따라 갈릴 것 같은데... 여기선 하나만!
마지막으로 본 건 공중을 바삐 날아다니는 드론이었다. 저 투명한 렌즈, 빛을 받아 번쩍이는 렌즈가 너를 향한다. 죽어가는 모습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아아- 여기서 죽어버리면 안 되는 건데, 스스로 벌인 일에 책임지지 못하는 쓰레기로 남는 거구나. 곤두박질치는 모습이 떠오른다. 결국 벗어나지 못했구나.
자캐의_진심을_감추기_위한_말은 전에 했으니 패스~
자캐는_니삭스파_스타킹파_레깅스파_맨다리파 갑자기 취향공개는 좀;;
굳이 따지자면 니삭스파, 어이... 절대영역이 왜 '절대'인지 아는가? 그것은 '진리'이기 때문이다... 쥬가 입는 것도 아마 니삭스가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 나~(??), 아니지 레깅스도 괜찮겠... 여기까지!
여우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다. 슬럼에서 얘기로만 들었다. 헬무트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그가 유일하게 여우의 세븐스 인신매매를 묵인했다는 정도만. 친구였기 때문에 이 구역을 소유해 뺏기지 않으려 했던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신경 쓸 여유는 없다. 그런 걸 신경 써도 이스마엘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단지 기대고 싶을 뿐인 장소에서 더 큰 분란을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스마엘은 잠시 고개를 돌렸다.
"제가 살았을 때는 이미 전부 가디언즈에 의해 죽었지만.. 이 장소를 레지스탕스가 거점으로 삼은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심어놓은 트랩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공중으로 간다는 듯. 이스마엘은 천천히 걸음을 돕듯 발을 내디뎠다. 자신은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유롭게 허공을 활보할 수 있을 만큼 익숙했지만 당신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근차근 발을 굴러가며, 고개를 돌렸던 것을 후회하느냐 묻는다면 아마 그럴 것이라 답할 테다.
"……."
깨진 창문이, 굳게 닫혔던 그날의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 같았다. 경보 시스템을 켜고, 합금으로 된 문을 걸어 잠그고, 굳건하던 마지막 품을 느끼고, 마침내 비밀스러운 발코니에서 창문을 깨고 도망치듯 건물에서 수직으로 낙하하던 날……. 만약 저 안에 아버지의 시체가 남아있지 않다면 나는 어떻게 해아 할까? 단단히 붙잡힌 손에 이스마엘은 눈을 홉떴다. "아." 짧게나마 정신이 들었는지 놀란 기색이다. 이스마엘은 고개를 돌렸다. 당신을 바라보던 눈길에 두려움이 잠시 일렁였다.
"아니, 아닙니다…."
이미 여기까지 와버렸지 않은가. 이스마엘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목숨줄을 잡은 사람이 곁에 있으니 죽고 싶지 않다면 세븐스를 유지해야 한다며 이성이 발악한 덕분에 겨우 견딜 수는 있었지만 돌이킬 수 없을까 두려움이 앞서는 걸 아예 무시할 수는 없었다. 문득 손이 계속 떨려오는 이유를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독이는 손길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자신의 손이 떨리는 이유를 알았더라면 이런 위로는 하지도 못했을 테니까. 이스마엘은 순간 고개를 저었다. 당신의 말 때문이었다.
"안 됩니다, 두 번은 안 돼……!"
아무리 보검이 있다고 한들 간부직이 오면 끝이다. 이 장소에서 두 번 잃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괴로운 듯한 표정을 짓고 속삭이더니 뜸을 들이듯 가느다랗게 심호흡했다. 생각할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르르 떨리는 숨과 함께 무언가 결심한 듯 말을 뱉었다.
"혼자 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얘기할 것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러니 같이 가주십시오."
>>811 아니 첫 해시부터 왜 쥬를 죽여요 이 나쁜 진단아~!!! 레이버랑 싸울 때냐고 설마... 아아악 안 된다 우리 쥬 죽으면 안 된다아악..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 왤케 안쓰러워... 진심을 감추기 위한 말.. 다시 정주행 하러간다 나..(훌쩍) 그런데.. 쥬 취향 공개 타임이야?? 쥬는... 니삭스파다..(메모) 아니 쥬도 니삭스를 신냐고요 레깅스도 최고다 역시 조그마한 남캐ㄴ 아니 그러니까 그게 아니 큼큼... 바람직하네~~ ^^(?)
한때 레지스탕스가 거점으로 삼았던 장소라. 사람은 죽어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남아 아직도 침입자를 노리고 있다. 공중으로 향하는 이유를 알겠다는 듯 고갤 끄덕인 너는 인도를 따라 걸었다. 공중을 '걷는다'라는 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어쨌든 넌 걷고 있었다.
"......"
네 말에 잠시 떠났던 정신이 돌아오듯 천천히, 하지만 계속해서 새어나오는 목소리에 너는 말없이 귀를 기울였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대답 에 따라서는 네 목적지는 아마 저 그림자들 사이가 될 터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고개를 젓는 당신의 모습이 네 눈에 들어온다. 두 번은 안 된다는 목소리도. 너는 말없이 그런 당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심호흡하는 걸 보았기 때문일까,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어쨌거나 심호흡 뒤에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지는 말을 들어보면 적어도 말이 아직 덜 끝났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으리라.
"...알겠습니다. 그럼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죠."
설령 마음을 읽는 힘을 지녔다고 해도, 직접 그 입을 통해 듣는 것과는 다르다. 여기까지 같이 온 것을 거부하지는 않았다지만, 실마리를 넘긴 것도 당신이라지만 떠민 것은 너였고, 도중에 빠져나오지 않고 꾸역꾸역 여기까지 따라온 것도 너였다. 너는 결정적인 허락을 받지 못한 채 무단으로 동행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암묵이란 그런 면을 항상 지녔다. 가상이란 그러했다. 만약 이러한 상황이라면 이렇게 할 것이다. 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이요 추측인데 어떻게 그걸 바탕으로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지금 네게 절실한 것은 저 목소리였다. 암묵을 넘어 명시로, 지금에 이르러서야 너는 함께 그 집에 발을 들일 자격을 얻은 셈이다. 잠시간 고민 끝에 나온 대답이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이 길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너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당신을 존중해야만 한다.
"고개 드십시오, 자꾸 그러면 제 쪽에 시선을 맞추려고 일부러 시선을 낮추는 것 같잖습니까."
본래 의식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입에 담으면서까지 너는 당신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어주려고 애쓰고 있었다. 어서 갑시다. 슬슬 공기가 차갑군요.
혼자 가지 않겠느냐는 말이 이스마엘을 절박하게 만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스마엘에게 있어 혼자 둔다는 건 잃는다는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시체를 홀로 두었기 때문에 빼앗기고 추억을 잃어버린 것이다, 홀로 우두커니 섰기 때문에 상대를 잃을 뻔한 것이다. 혼자 진실을 마주하면 끝내 모두 잃고 말 것이다……. 복합적인 두려움이 깔린 상황에서 누군가를 잃는다는 두려움이 더 크게 앞서 자꾸만 말을 더듬고 말았다. 두 번은 안 돼, 그렇게 속삭인 뒤에도 떨림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 절박함 너머로 희미하게 생각하던 것을 명료하게 꺼내고자 무진 노력했다. 둘이라면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불확실하다. 이스마엘은 털어놓는다는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늘 홀로 살아왔기 때문에 쌓아두고 사는 것을 당연히 여겼고, 누군가에게 얘기한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만약 당신에게 전부 얘기한다면, 그렇게 조금이나마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다면 현실로 발을 다시 들일 수 있지 않을까? 모른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운에 맡겨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스마엘은 조금이나마 덜 두려울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선택했다. "미안, 미안합니다." 이스마엘은 고개를 황급히 들었다. "갈, 까요." 더듬거리며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했다. 깨진 창문이 아니라, 거기서 조금 아래를 쳐다보기로 했다. 천천히 내딛는 다리가 아까와는 달리 조금 망설이는 면이 있었다. 걷는 속도도 이전보다 조금 느려진 감이 없잖아 있다. 만약 운이 좋지 못해 현실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너질 때, 당신이 내게 최후를 안겨주면 좋겠노라 생각한다면 이건 잔인한 처사일까, 아니면 내 과람한 욕심일까. 혀는 납덩이처럼 무거워 차마 그런 사실까지는 얘기할 수 없었다. 대신 조금이나마 용기를 내기로 했던 것인지, 걷던 도중 침묵 속에서 입을 뗄 뿐이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저를 두고 가셔도 좋습니다." '집'이 점차 가까워졌다. 통유리로 된 발코니는 엉망이다. 어둠 속에서 어스름하게 안이 보이는 것 같았다. 무언가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봤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숨이 턱 막혔지만 겨우 들이킨다. 유리가 깨졌으니 파편에 베일까 조심스럽게 당신이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손을 놓았다. 조그맣게 속삭인다.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아직 하고 싶었다는 얘기는 속에서 정리 중인 것 같다. 당신이 안으로 들어선다면 볼 수 있는 것은 폐허였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명확히 존재하지만, 그 흔적이 있을 때부터 폐허였음은 명실상부했을 곳. 솜이 다 죽어 실용적이지 못한 소파, 그 위의 찢어져 솜이 삐져나온 낡은 인형, 갑작스러운 가디언즈의 난입에 깨져버린 신소재 플라스틱 스크린……. 치열한 전투의 흔적까지. 마치 세계가 멸망한 뒤의 홀로 살아남은 사람이 살아가는 폐허처럼 생긴 장소. 사람은 없었고, 시체도, 그 흔적도 없었다. 이스마엘 또한 그 안으로 발을 디디려 했다.
나름 농담이었지만 전혀 농담같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면 지금 상황이 농담을 받아들일 만한 상황이 아니었거나. 네 말에 미안하다며 고갤 드는 당신의 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편치 않다. 괜한 소리였나 싶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 있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겠는가, 적어도 너는 아니었다. 더듬거리며 갈까요, 라고 말하는 네 시선을 따라 창문 쪽을 쳐다본다. 당신이 깨진 창문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는 거겠지.
"그 반대의 상황에서 이스마엘 씨는 그럴 수 있겠습니까?"
너는 대답 대신 되묻는다. 비겁하기 짝이 없는 대화다. 당신이 대답하는 것에 따라 나 역시 그리하겠다는 말, 그러면서도 내심 너는 그리하겠노라. 라는 말을 듣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적어도 한 사람이라도 살아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모두 사라져버려서야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적어도 기억하는 사람 단 하나라도 남는다면 실패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너는 가까워지는 발코니를 눈에 담았다. 깨진 유리의 파편이 주변에 퍼져 있는 그 바닥이 가까워지자 맞잡았던 손이 떨어진다. 조심해서 들어가라는 목소리에 말없이 고갤 끄덕인 너는 유리 파편을 피해 발을 딛는다. 체중이 실려 밟은 파편에서는 상당히 큰 소리가 나니까.
발코니를 넘어 들어선 방은, 그저 사람이 살았었구나. 라는 것만을 어렴풋이 알 수 있는 폐허였다. 누군가 살아있을 때에서 시간이 흘러 폐허가 된 게 아니다. 원래부터 폐허였던 곳을 터전 삼아 살아가던 이들에게서 벗어나 다시금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간 곳. 애초부터 그러했던 장소를 눈에 담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흔적들도 많았다. 생사를, 혹은 무언가를 위해 필사적으로 부딪혔던 흔적을 너는 눈에 담았다. 어느새 뒤따라 들어온 당신이 방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듣고 너는 말없이 한 발자국, 방 안으로 물러섰다. 그리곤 가만히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네가 아는 것은 없다. 이 장소는 지금 온전히 당신의 기억이고, 당신의 것이었으니. 네가 할 수 있는 말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당신의 얼굴을 보고 이해하려 애쓸 뿐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었었는가, 대체 이런 장소에 무얼 보러 온 것인가, 이 '집'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하고.
멸망_후_세계에_혼자_살아남는다면_자캐는 결국 자신의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거네.. 지금 이셔 상황이 그렇게 좋지 못한데, '내게 소중했던 존재가 사라졌던 것'을 겪었는데 이젠 소중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거잖아. 어차피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텐데 미쳐봐야 잡아줄 사람도 없고, 그렇게 비척비척 길을 떠나고 떠돌겠지. 살아있는 것을 찾아서. 결국 아무것도 없음을 스스로 깨닫고 목숨을 끊을 때까지.
자캐가_두려워하는_상황 '내게 소중한 존재가 사라지는 것'과 '누군가 자신을 꿰뚫어보는 것.' 전자는 그러려니 싶어도 후자는 왜~? 라고 묻는다면 오늘은 새벽이니 답해줄게! >:3 이미 이셔 조각글 모음집에서 풀었지만.. 이스마엘은 생물학적 부모를 닮아 태어났거든. 자세한 건 독백에~
자캐의_독특한_취미 글쎄? 파쿠르? 이건 누구나 납득하니 독특하진 않구나.. 음.. 목탄으로마 그림을 그리는 거? 이것도 취미라기엔 좀 대중적이고... 허공 노려다보며 커피 마시기..?
8ㅁ8 진단 첫 질문부터 너무 짜요... 안대애애 이셔 혼자 남겨두지 않을거야아아악 엉엉엉 이셔만 남겨둘바엔 데려가고 말테다(?) 생물학적 부모를 닮은 것... 음... (끄덕) 허공 노려보기 커피 마시기 ㅋㅋㅋㅋㅋㅋ 역시 에델바이스 제일가는 커피코패스~~ 죽이지 않고 혁명이 성공하는 걸 보게 한다는 거나 가장 증오하는 사람과 대화할 생각을 하는게 참 뭐랄까~~ 이셔답다? 그런데 왠지 좀 쎄한 느낌?
>>857 헉... 안돼...! 멸망한 세상에 남겨져 있으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니ㅠㅠㅠ안돼ㅠㅠㅠ 그치만 나라고 해도 결국 그럴 것 같다는 게 너무 무서운 부분이에요.. 소중한 존재가 사라지는 건 확실히... 후자는 비단 이셔뿐만 아니라도 많은 사람드링 무서워한다고 생각하지만...! 몬가 더 있는 모양이군요... 피곤해서 조각글 같은 걸 제대로 못 본 내 탓이다...언제 한번 싹 읽어봐야겠어요!(아직 선관이나 일상 관련 정리도 안한 사람) ㅋㅋㅋㅋㅋㅋ확실히 허공을 노려보면서 커피를 마시는 건 독특하긴 하죠...?
그리고...이셔는 왼손잡이다...(메모 증오하는 사람과 하루종일 마주보고 있으면 의외로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 확실히 들죠... 어떤 면에서 증오하는지가 좀 중요하긴 하겠지만.
뭔가 전체적으로 해맑은 분위기의 답변이 참 마음에 들어요, 저 뒤에는 침잠하는 듯한 이셔가 있다는 거죠... 아주 멋져()
쥬데카의 오늘 풀 해시는 당황했을_때의_자캐_반응은 일단 시선을 피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손으로 자꾸 입가를 매만지는 버릇이 튀어나옵니다. 입을 가리면서 매만지는 고런 느낌? 저 정도면 그래도 상황파악할 정도의 정신은 있다는 거고 그게 아니라 찐당황이라면 눈이 커지겠죠! 너무 당황하면 고대로 굳어버리는 편~
너_진짜_열받는다_라는_말을_들은_자캐의_반응 "그렇습니까... 어느 부분이 그런 걸까, 잘 모르겠군요. 아마 전부겠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군요, 죄송합니다." 뭐라 말은 하고 싶은데 열받는다니 왜 열받는지 물어보는 것도 열받을거 같고 아무튼 그래서 이런 식으로 직접적인 부정적 감정을 맞닥뜨리면 쓸 수 있는 어휘가 지극히 제한된다...! 단,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반응을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꽤 집요하게 이유를 찾아내려고 할 듯! 이 부분에 질릴 가능성?도 있을 것 같네요.
오홍 당황하는 쥬 귀여운데? 반드시 저 모습 일상에서 끌어내겠어~~ 쥬도 선이 있는 듯 없는 듯 은근히 보인단 말이지? 과연 저런 말을 듣고 싶은 상대는 누구일지~ ㅋㅋㅋ 쥬는 니삭스파다~ (확성기) 쥬는 인간관계에서 전체적으로 체념의 기운이 많이 느껴진단 말이지? 체념? 포기? 씁 잘 모르겠다... 근데 뭔가 강한 의지를 본 적은 드문거 같아. 음. 한번씩 아 나는 이렇지 하면서 선을 씨게 그어놓는거 같은 느낌, 앗 레시도 쥬 눈동자가 독특하다고 생각한대~ 엄청 새까맣잖아~ 다음으로 특이하게 보는 건 긴 머리! 빗질을 해본다던가 묶어본다던가 해보고 싶대~
이스마엘은 차마 당신을 쳐다보지 못했다. 차라리 두고 가겠다고 하지. 그러지 않겠다는 대답보다 더 잔인하다. 잔인한 사람, 다 알고 이러는 걸까. 자신이 무슨 일이 있어도 반대의 상황에서 그럴 수 없음을 아는 걸까? 그러겠다, 그러지 않겠다. 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던 이스마엘은 당신을 책망 보다는 투정에 가깝게끔 잔인하다 표할 뿐이었다. 더 얘기하지는 않았다. 차라리 스스로 죽겠습니다. 같은 얘기는 이제 소용이 없음을 알고 있다.
당신이 발코니에 발을 딛고 들어섰을 때, 이스마엘은 처음에 주변을 둘러보지 않기 위해 애쓰는 듯싶었다. 사뿐히 방 안에 발을 딛고 당신이 물끄러미 쳐다보고 나서야 시선을 피하듯 주변을 둘러볼 뿐이었다. 그리고 시선이 멈춘 곳이 있었다. 발코니 구석이다. 깨진 유리가 흩어진 발코니 바닥에서 누군가 두고 간 술병이 보였다. 조문이라도 온 것인가 싶기엔 대체 누가 왔는지 알 수 없다. 단지 저 장소에 있어야 할 것이 술병이 아님은 알고 있었다. 이스마엘의 표정이 형용하기 어려운 감각에 일그러졌다. 받아들일 수 없는 감정이 들이닥치면 사람은 일단 웃는다더니 지금이 딱 그 꼴이다.
"어째서…."
헛웃음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깨질 듯 불안정하게, 처절하게, 끔찍한 혐오와 만고의 슬픔을 담아. 그리고 천천히 손을 들어 자신의 입가를 덮어 가렸다. 이후 북받치는 감정을 수습하고자 했는지 턱 근육이 팽팽해지고 목에 핏대가 섰다. 그런 일련의 과정은 결코 길지 않았다. 고작 10초 남짓 지난 상황 동안, 이스마엘은 큰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발악하더니 현실에서 발버둥 치고자 입을 열었다. 차라리 되는대로 뱉어버리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 본능에서 기인된 일이었다.
"제 이름은.. 이스마엘 케르스트너라 합니다. 생물학적인 태명은 따로 있지만, 어머니는 세븐스라는 이유로 저를 낳고 슬럼에 버렸고, 세븐스 등록 직후 사망신고 처리가 됐기 때문에 그다지 의미는 없습니다."
헤베 엥엘. 에델바이스에 도착해 자신의 과거를 되짚어보다 발견한, 응당 주어졌어야 할 이름은 참 예뻤구나 싶었다. 가족이 아니기에 자신의 것도 아니고 다른 세상이라 느꼈지만. 더듬더듬 입을 열었던 이스마엘은 울렁거림을 느꼈다.
"그런 저를 거두고 이곳에서.. 성년이 될 때까지 키운 분이 계십니다. 비록 피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저는 그 사람을 아버지로 따랐고, 그 사람도 저를 자식으로 품었지요."
자신이 뱉는 말 하나하나가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았다. 혼란스러움에 감정이 울컥 치솟았는지 잠시 이를 악물었다. 눈시울이 붉어졌을 때 이스마엘은 아예 시선을 피해버리듯 고개를 돌렸다. 그럼에도 입가를 가린 손이 후들후들 떨리는 건 숨길 수 없었다.
"제가 성인이 막 되었을 때, 아빠, 아니, 아버지는…… 반역죄로 이곳에서 처형 당했습니다. 레지스탕스를 몰래 도왔고, 살아있는 세븐스인 저를 태어난 직후 사살했노라 시스템에 허위로 기재했기 때문입니다. 스, 슬럼의 미친개라 불렸던 헬무트 케르스트너는 그렇게 이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눈을 깜빡이지 않아도 후드득 쏟아지는 것이 눈물인지 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떨림은 손이 아닌 온몸으로 이어졌다. 현실이 다가왔고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다. 몸이 천천히 들썩였다. 울음을 삼키고자 발악했다. 현실을 부정하고자 몸부림쳤다. 헬무트 케르스트너가 죽었음을 안다. 그렇지만 단 하나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있었다.
"……그 당시에, 아버지는, 제, 제 품에서 돌, 돌아가셨는데……. 그때 숨이 끊어지는 걸, 직접, 직접 이 손으로, 몸으로, 전부 느꼈는데.. 나, 나 혼자 떠나서, 시체가, 여기, 여기에 남겨졌을 텐데……."
>>860 음~ 새벽의 진단 매우 맛있다~ >:3 쥬 시선 피하면서 입가 매만지는구나.. 찐당황은 굳어버린다니 귀엽잖아~ 당황시켜서 그대로 굳어버리게 하고 싶다.. 그런데 쥬가 그정도로 당황하려면 어느 정도의 이야기가 필요할까..🤔 쥬 자존감이 조금 낮은 느낌인데 넷플릭스 방에 가둬버리고 싶어..🥺 그런데 그런 반응을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생기면 반응 엄청 맛있어지잖아 당신 그런 사람 생기면 내가 팝콘부터 튀기겠어(광기)
쥬는 니삭스파다!!!!!!!!!!!!!!!
쥬 믿지 않는다고 사실대로 얘기했다는 이유로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왤케 자존심 낮아 넷방리턴즈 해야겠어; 눈... 어딜 바라보는지 모를 심연같은 눈을 가졌지만 이셔는 그냥 잘 마주치고 대화할 거래~ :3 근데 특이한 점.. 역시 레샤주 말처럼 긴 머리도 있지 않을까 싶지만..?
부정하지 않는다. 대답 대신 질문을, 얼마나 이기적인 태도냐. 결국 대답을 떠넘긴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자격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잔인하다는 말에 긍정했다. 잔인한 게 맞았으니까. 비겁한 게 맞았으니까.
방 안에 들어서 바라본 얼굴은 창 바깥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을 직접적으로 받지 못해 어둡게 그림자가 졌으면서도 방 안에 닿아 튕겨나온 희미한 빛에 윤곽을 가늠할 수 있었다. 헛웃음, 그리고 곧 가려지는 입가. 입가를 가린 것이 무색하게 핏대가 서는 목. 웃음과 울음을 대체 무엇으로 구분겠느냐, 울음소리가 나야만 울음이고, 웃음소리가 나야만 웃음인가? 다시금 너는 풀 수 없는 문제 앞에 덩그러니 놓인 사람이 되고 있었다. 집중할 땐 무엇보다도 빠르게 흐르는 시간이 지금은 한없이 길다. 고작 몇 초건만 너는 늘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는다. 불안감이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갑작스럽게 터져나오는 듯한 말, 정리된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통해 정리하고자 하는 의도가 느껴지는 그 말소리를 듣기 위해 너는 입을 다문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름부터, 삶의 터전과 이 장소에서 이어진 인연.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구성하고, 부수고, 재구성하기를 수십 수천 번 반복했던 퍼즐이 네가 감당하지 못할 속도로 맞춰지고 있었다. 언제나 똑같았다. 수십, 수백, 수천 가지의 경우를 생각하는 버릇 때문에 느껴지는 기시감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자신과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고자 하는 본성의 발로일까.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는지 눈물이 쏟아진다. 흐르는 게 아니다. 비가 내리듯 그 투명한 액체는 '쏟아지고 있었다.' 손에서 시작했던 떨림은 어느새 온 몸을 지배하고 있다. 너는 마른침을 삼켰다. 갑작스레 살상의 개념이 뒤집어져 버린 사람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래서였구나. 당신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던 이름을, 서류에서 보았던 이름을, 적대자의 입을 통해서 들었던 이름을,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의견도 없이 너와 마주했던 적을 떠올린다. 네 동공이 축소된다. 그래봤자 아무도 알 수 없다. 여전히 눈은 새카맣다, 그 때문인지 그 까만 렌즈와 같은 막에는 눈물 흘리며 떠는 모습이 그대로 맺혔다.
시선이 급하게 돌아간다. 바닥을, 벽을, 유리 조각이 아무렇게나 흩뿌려진 것을, 텅 빈 술병을, 또 다시 당신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너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누구라도 정답을 알려줬으면 한다. 그러나 정답이란 게 없다는 것도 동시에 어렴풋이 깨닫는다. 지금은 뭘 해도 틀렸고, 뭘 하더라도 옳다. 흑과 백으로 모든 것을 구별할 수 없는 것처럼, 선과 악이 공존하는 모든 것처럼, 너는 이번에도 역시 직관에 의존해야만 했다. 옳기 때문에 행동하는 건 불가능하다. 되돌아보고 어째서 그래야만 했는지를 설명해야 했다. 설명은 뒤의 일이다.
"이스마엘 씨."
너는 힘겹게 입을 뗐다. 조금 길게 이어지던 침묵과 훌쩍이던 소리를 깨고 이름을 불렀다. 무슨 말을 더 해야 하지? 너는 네 얼굴을 가리던 후드에 양 손을 올렸고, 천천히 후드를 벗었다. 후드에 닿아 살짝 정전기를 일으켜 공중으로 아무렇게나 떠오른 머리카락 몇 가닥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너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서 당신을 올려다보았다. 긴장감에 자연스럽게 손이 오른다. 습관처럼 입가를 매만지며 자꾸만 틀어지는 시선을 애써 고정한다. 네 부름에 당신은 반응할까?
>>861 헤헤(?) 마음속으로 정해둔 선이라면 분명히 있죠, 아닌가...? 희미한 거 같기도 하고? 근데 어쨌든 항상 언뜻언뜻 보인다면 그건 선이 선명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말이죠~ ㅋㅋㅋㅋ아 취향 까발려져 버렸다고! 괜찮아 아무한테도 말 안했어(? 체념이라고 하는 게 꽤 잘 어울리는 것 같네요, 확실히 체념에 가깝죠 음. 사람을 많이 만나보긴 했지만 굵직한 비밀 없이 관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건 어릴 때랑 가디언즈 입단 초기부터 에델바이스 입단까지의 텀이 좀 크니까요. 에델바이스에 와서도 그다지 순조로운 건 아니었고... 사실상 레이버전 이후로 좀 나아졌다고 봐야겠죠! 뭐 자신을 좀 낮게 본다는 것 자체는 변함없습니다만~ 후후 다행이군... 나는 적어도 내 캐릭터의 특이한 점을 아는 오너였어(??) 오, 머리카락도 꽤 특이하다고 보는군요! 머릿결은 좀 거친 편인데 말이죠, 확실히 음, 긴 머리는 이것저것 해보고 싶고~ 나중에 한번 이것저것 스타일 잡아보는 일상도 해보고 싶네요!
>>864 (쥬: 아무리 평소에 단련해도 당황했을 때 움직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더군요)(아님) 과연 찐당황은 어떻게 나올까... 그건 비밀입니다? 넷플릭스방에서 또 우중충한 걸 보고 눈이 쑥 들어가서 나오고(이거아님 ㅋㅋㅋㅋㅋ이거 참 각별히 조심해야겠어... 다들 매의 눈이라서 두렵네요, 썰포식자의 공포에 떠는 피식자...
그렇지만... 니삭스 참을 수 없는걸!!!(쩌렁쩌렁
솔직함, 정직이란 아주 중요한 덕목이지 말입니다... 사소한 부분에서도 상대를 고려하다 보면 거짓을 섞게 되는 게 사람이다보니- 뭐 그런 흐름에서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하는 거지만요. ㅋㅋㅋㅋㅋ또 넷플릭스 보러 간다... 음음 확실히 이셔는 그럴 것 같죠! 재머 너머로도 서로 눈보고 얘기했고() 생각보다 긴 머리가 특징으로 많이 잡히네요, 그렇게 특이한가...? 좀 긴 편이긴 하지만 긴머리 캐릭터... 어..? 몇 없네...? 묶었는데 엉덩이까지 오는 캐릭터...도 없네? 어..?(이제 깨달음
>>868 네네 천천히 주셔도 괜찮아요! 느낌을 잘 잡고 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피로관리도 하셔야 하구! 다갓님... 도 약간 유열 좋아하시는 거 같은데 한번쯤 돌려보는 것?도 괜찮...지 않은거 같기도 하고?
가장 안락하던 장소에,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그립고 행복하던 추억은 황량하게 남아버렸다. 기대하고 있던 실낱같은 희망이 허망히 끊겨버렸다. 시체가 있어야 할 곳은 피가 말라붙은 자국도 없는 것 같았다. 누군가 팔아치웠을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여우의 구역이 된 이상 이곳에 발 들인 사람도 없을 것이고, 그 이전에 발을 들였을 가능성도 없다.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감각이 여실히 느껴진다. 흘러넘친 감정을 받아내지 못해 몸의 회로가 고장 나버린 것 같다. 이스마엘의 감정 회로는 심각한 오작동을 일으켰다. 프로그래밍 에러를 고쳐야 한다. 그렇지만 어떻게? 이스마엘은 웃었고, 동시에 울었다.
참담했다. 생모의 죽음을 목격하고 어두운 방 안에 홀로 틀어박혀 하염없이 아버지를 기다리던 과거보다 더욱 끔찍했다. 몸이 떨려왔다. 현실을 받아들이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세상은 생각대로 되는 법이 없다. 받아들일 수 있노라, 견딜 수 있노라 생각했던 것이 막상 발을 디뎌보니 지지대조차 없는 얇은 유리 바닥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고 만다. 그 바닥에 발을 디뎠으나 세븐스로 버틸 수도 없다. 아버지는 죽고 나서도 위대한 과학의 발전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리고 마주했다. 앞으로도 마주할 것이다.
"……."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이스마엘은 입술을 꾹 다문다. 대답하고 싶은데 목이 턱 막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신도 힘겹게 입을 떼는 것이 느껴져 배로 괴롭다. 당신에게 이런 감정을 전가하고 싶지 않았는데. 다가오는 듯 유리를 밟는 소리가, 후드가 바스락대는 소리가 난다. 시선을 피하고자 고개를 돌린 그 모습 그대로 겨우내 고개를 끄덕이려던 이스마엘은 당신이 뱉은 말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마치 소금으로 된 기둥이 되어버린 사람처럼. 가늘게 떨리던 몸은 이제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잔인한 사람. 당신은 잔인한 사람이다. 훌쩍이지 않기 위해 잔뜩 깨문 입술에서 까득 소리가 나더니 피가 맺혔다. 이스마엘은 휘청였다. 유리 파편이 이리저리 흩어진 곳에 주저앉듯 했다.
"어떤 시선 말입니까?"
목이 콱 메였다. 감정이 흔들리는 소리가 목소리에 가득 담겨있다. 눈물이 멎지 않았다. 쏟아지는 눈물을 그칠 방도를 찾을 수 없었다. 고장이 난 것 같다. 회의감이 치밀었다. 차라리 이스마엘도 안드로이드처럼 칩셋 초기화를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에러가 생긴 부분을 찾아 정해진 틀에 맞춰 고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현실도, 당신도 어떻게 보겠습니까..?"
더듬더듬, 입가를 가리던 손이 얼굴을 덮는다.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눈물이 한가득 고이는 듯싶다가 후드득 쏟아진다. 휘몰아치는 감정과 고통을 견디지 못해 목소리가 점차 격양됐다.
"가족이 죽어서도 누군가의 손에 움직이는 모습이 현실이라고, 끝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손에 두 번 삶을 마감할 시체를 다시 안아보라고, 누군가는 죄를 지어놓고 레지스탕스였단 이유로, 살아있단 이유로, 가족이 기다린단 이유로 다시금 갱생되어 품에서 사는 꼴을... 저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라서 고개를 돌릴 수도 없습니다. 저는 못 합니다. 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없단 말입니다─!!"
끝내 상처받은 짐승의 포효처럼 갈라지듯 외치더니 그대로 몸을 떨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허탈했다.
그러니까 도발하면 할수록 더 무섭다는 이야기로군요! (아님) 그리고 히어로 or 빌런에서 당당하게 빌런이라고 한다니! (흐릿) 그 와중에 쓰레기통을 뒤진다라. 그렇군요. 귀하게 여기는 것은 다시 되찾는게 맞지요! 그 와중에..ㅋㅋㅋㅋㅋㅋㅋㅋ 꿈팔기..세상에. 장사꾼이야! 저기에 장사꾼이 있어!!
>>922 마음을 닫는 레레시아는 상당히 무섭던데.. 하지만 확실히 비밀이 갑자기 들통이 난다면 어쩔 수 없긴 하겠네요! 그런고로 고백이 실패하고 망쳐진다면의 반응도 궁금해지는 것은 덤이에요. (나쁨) 201번은 현 상황도 언젠간 좋아질거라고 믿고 싶어하는 레레시아의 마음 같은 것일까요? 그 와중에...ㅋㅋㅋㅋㅋㅋ 악역...ㅋㅋㅋㅋ 가디언즈에게 품는 가치관과 마음이 어느 정도 보이고 있네요. 그리고 민트초코파..레레시아 나나리..(메모메모)
사실 제가 물은 것은 아스텔에게 고백을 하려고 할 때 다른 누군가가 의도치 않은 사태 등으로 끼어들여서 뭔가 되게 이상해져버렸고 아스텔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응? 어. 음. ...그래서 무슨 말 하려고 한 거야?" 라는 식의 상황이었지만... 저건 저거대로 맛있으니까 오케이에요!
시선을 돌리지 마라. 당연히 어떤 배려도 없는 그 말에 당신은 주저앉았다. 너는 혹여 다리에 날카로은 유리 파편이 박힐까 염려해 손을 들었으나 들려온 말에 멈칫한다. 펑펑 울면서, 눈물을 부정하듯 꾹 누른 음성이 귓가에 닿는다. 어떤 시선 말이냐, 현실, 당신 앞에 선 너를 대체 어떻게 봐야만 하느냐는 말. 그리고 입가뿐만 아니라 이젠 얼굴 전체를 가리는 손이 덜덜 떨린다. 그런 손이 무색하게 눈물은 그 손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눈물, 점차 격양되는 목소리에 너는 무어라 말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소중한 존재가, 지금까지 지탱해왔던 끈이 전혀 잘못된 장소에 놓여 있었고, 강하게 붙잡았던 동앗줄이 썩어버렸다는 걸 알고도 대체 누가 태연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평생을 보이지 않는 체, 아무것도 못 본 체 살아갈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으나 당신이 현실을 보기 위해서 이 곳까지 온 거라면 이제 와서 시선을 돌리는 건 너무나 늦지 않았을까. 너는 해답을 내려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될 수 있어도 구원자가 될 수는 없는 인간.
"이스마엘 씨."
비명 너머 이어진 잠시의 침묵을 깬 건 이번에도 네 목소리였다. 또 한 번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내며 너는 또 한 걸음 다가선다. 버적거리는 유리조각 소리가 방 안에 퍼진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새삼 너는 참 냉랭한 인간이구나 싶었다. 위로할 말 같은 게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네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위로를 한다는 걸까 싶은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역겹기는. 덩그러니 서서 울음이 멎을 때까지 기다릴까? 그걸로도 충분할까? 너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순응하시겠습니까?"
들었던 손은 당신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일그러진 세상에서, 일그러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게 가능할까? 만약 불가능하다면 일그러지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사람은 의미 있는 삶을 꿈꾼다. 그것은 곧 의미 있는 죽음이기도 하지. 너는 언젠가 네가 맞을 끝이 어떤 의미를 가졌으면 좋을까 생각했다. 힘겹게 닿은 현실을 부정하고 다시 꿈으로 돌아가겠느냐. 그런 의미를 담은 말을 건네면서 너는 살짝 쓰다듬던 손을 내려 당신의 어깨를 토닥였다. 두어 번 토닥인 뒤에는 다시 버적거리는 유리조각의 길을 밟아 당신의 곁을 지나 걷는다. 달빛이 모든 것을 보고 있다는 듯 쏟아지는 발코니로 발걸음을 옮긴다. 고층인 만큼 불어오는 바람은 싸늘하다. 발코니 바깥으로 보이는 까마득한 땅과 짓다 만 건물들, 뒤에는 망가져 버린 삶의 터전. 너는 폐허 속에 끼인 힘 없는 생명이 되어 멍하니 땅을 내려다보았다.
어차피 아무도 못 듣는 곳, 머릿속으로 정리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격양된 목소리로 토해낸 외침에 담긴 것은 진심, 넌 그 말에 공감해줄 수가 없었다. 너는 그런 시간을 보내오지 못했으니까.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그래서 위로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당신은 모든 걸 토해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누구든 목을 가져가면 아마 잘 대해줄 겁니다. 혹시 모르지요. 그 새 뭔가 더 했을지도, 아마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당신을 맞이해줄지도 모릅니다."
대체 무슨 말을. 너는 지금 정리되지 않은 말을 기계처럼 내뱉고 있었다.
"당신의 아버지는 육체가 전부인 존재였습니까?"
떨어지는 찰나의 시간은 실제의 배 이상이라던데, 너는 네 발길에 휩쓸린 유리조각이 빛을 받아 반짝이며 공중으로 뿌려진다. 바람에 방 쪽으로 휘달리는 머리카락을 따라 그림자 역시 일렁인다. 너덜거리는 난간을 붙잡으니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너는 입을 다물었다.
잔인함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때가 있다. 오히려 물리적인 존재가 아닐 때가 더 많은 단어다. 이스마엘은 그 사실을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동료로 하여금 깨달았다. 차라리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깨달았다면 더 나았을까. 아니, 그랬더라면 아예 초반부터 무너져 들을 수 없었겠지. 이스마엘은 자신이 갈기갈기 찢어진다고 생각했다. 발코니의 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나버리지 않은 탓은 서서히 균열이 일어나기 때문이요, 그렇게 떨어지며 비워지는 자신의 조각이 하나하나 느껴지기 때문이다. 끝내 포효했을 때, 이스마엘이 잠깐의 정적을 가진 탓은 비어버린 부분 너머로 가장 중요한 부분마저 깨져가고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언젠가의 대화가 어지럽게 떠오른다. 저는 인간이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아, 차라리 순응했더라면, 내 인생을 부정하지 않았다면. 이상향에 갈 수 있노라는 헛된 망상 따위 품지 않았더라면. 기실 알고 있었다. 눈치가 없는 것 같이 행동했지만 실은 가장 밑바닥에서 모든 걸 봐왔다. 이 세상이 갱생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지 못함도, 상처를 받은 사람과 상처를 드러내고도 당당한 사람으로만 존재하는 것도. 전부 알고 있다. 선을 행하면 위선이라 칭하고 악을 행하면 뻔뻔하다 평하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런 모든 위험을 끌어안는단 망상을 품지 않았더라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이 차별을 이겨낼 수 있다면, 하고 생각했던 순간 느꼈던 위화감을 조금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순응……."
머리 위에 닿는 온기에 이스마엘은 덮어가린 손 너머로 눈을 홉뜬다. 눈물에 일렁이던 눈동자가 녹아내렸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차라리 잘난 주인공이 되어, 구원자를 자처해서 막아줬더라면, 그러지 말라고 했더라면, 울부짖으며 괴로워하는 한이 있더라도 끄집어냈더라면. 그랬더라면 그 순간을 붙잡으면서라도 어떻게든 기어보려 노력은 했을 텐데. 우습게도 세상은 그런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걸 알려주듯 당신은 매정하다. 어깨를 토닥일 적, 이스마엘이 헛웃음처럼 뱉은 순응이라는 단어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지 알기나 했을까. 발코니로 향하듯 파편 밟는 소리가 들린다. 그 뒤로.
"쥬데카."
이스마엘이 손을 떼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단 하나, 달빛에 비친 것이 있다. 연두색의 눈이다. 이 상황 속에서도 전혀 생기를 잃지 않은 눈동자가, 하나의 네온사인처럼 달빛을 받아 홀로 발광하는 그 기괴한 춘유록빛이 사람을 사람답지 않게 만들고 있었다.
"영원불멸한 것은 없어…… 다만 영원불멸한 순간은 기억에 남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목을 가져가면 잘 대해줄 것이라는 말에 빗대면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손의 떨림이 멎었다. 눈물이 달빛에 반사되어 흐르고 있었다.
"육체가 전부인 존재? 아니,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정신이, 그의 삶이 있었습니다. 육체가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멈춰버린 순간의 기억이 나를 살아가게 하지요. 최후의 순간을 상기시키기 때문에 괴롭고도 숭고하지요. 단지 언젠가 누군가는 살아있다는 이유 하나로 모든 죄를 사함받고 가족의 품에 돌아갈 수 있는데, 내 자신은 결국 그때 그 시간에 멈춘 과거를, 그때 제정된 죄를 사함받지 못하고 평생 품어야만 하는 그 순간이 오는 것이 싫을 뿐입니다.. 그 사실 때문에 내가 얼마나 역한 사람인지 깨달을 수 있으니."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왼쪽 손목에 질끈 묶인, 진갈색으로 물든 손수건에 다시금 붉은색이 번져갔다. 수잔나 엥엘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야망이 불타오르는 사람이었고, 그녀의 남편 에르베르토 엥엘은 세븐스 투기장의 오너 가란과 협업하며 비윤리적인 실험을 강행하는 사람이었다. 이스마엘이 속삭였다. "당신 또한 마찬가지야. 결국 내가 역한 사람임을 깨닫게 만드니." 바람은 모든 걸 알고 있다. 바람이 이끄는 대로, 안으로. 이 안으로, 한없이 안으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현실을 붙잡기 위해, 마침내 그 끔찍한 현실을 사랑하기 위해.
"당신의 말은 전부 틀렸어. 본디 박제는.. 목이 없으면 가치는 사라지기 마련이니까.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맞이해? 그렇게 되면 내가 변했음도, 시간이 흘렀음도 실감할 수 있잖아. 차라리 말 없는 박제가 낫지. 평생 내 곁에 남아 그때의 추억만 반복하는 영원불멸한 것이."
눈을 깜빡이자 기이한 시선이 어둠에 묻혀 사라졌다 다시 드러난다. 방 전체를 집어삼킨 어둠이 이스마엘의 몸인 것처럼. 주변이 미세하게 진동한다. 달빛을 받은 유리조각이 덜걱거리다 공중 위로 떠올랐다. 시선이 당신에 고정된 채, 이스마엘이 비틀대며 일어섰다. "어디 가?" 천천히 한 걸음, 두 걸음. 위태롭게 걸어가려 했다. 유리조각 또한 이스마엘을 따라온다. 이윽고 당신의 바로 뒤로 서, 천천히 팔을 뻗으려 했다. 양손으로, 양 팔로 당신을 붙잡기 위해.
술만 나왔어도 그냥 술병 집어던지면서 가지 말라고 두 번은 잃고싶지 않다고 악이라도 질렀을 텐데...
하필이면 명함이 나왔지..?
"헬리, 나는 세븐스도, 비능력자도, U.P.G도 다 싫어하지만 이 일을 하는 이유가 하나 있어. 당신도 알다시피 내 삶이 즐거워서지. 그리고 네 딸에게서 가능성을 봤어. 네 딸은 환경이 준비됐더라면 폐하보다 더 훌륭한 집행인이 됐을 테고, 가디언즈에 들어갔더라면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을 테지. 워낙에 쉽게 물들 수 있는 아이니까."
이내 가란은 품에서 명함을 꺼내더니 술병 밑에 끼워두었다.
"그래서 나는 가능성을 믿어보려 해. 그 아이가 일을 끝마치고 돌아와서 나의 뒤를 이을 제안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새 삶을 살아갈지. 나는 감이 좋은 편이라서.. 네 딸이 이곳에 돌아올 것이라 믿고 있거든. 어리석은 반동분자가 살아 돌아오는 건 드물겠지만 어째 그런 느낌이 있거든. 만약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내가 양녀로 거둬서 키울 테니까. 아, 내 자식은 어쩌고? 글쎄."
이 부분에 나왔듯이... 지금 대가리에 나사 아예 빠진 상태라 뺨 때려도 좋습니다.........
발코니에 서 바라보던 것은 사람이 아니라 텅 빈 하늘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목소리는 네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직접적으로 부르지 않았던 이름. 적어도 지금까지의 대화에서 언급된 적 없는 네 이름에 너는 고갤 천천히 돌렸다. 달빛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듯 새까맣게 변해 버린 방 안에서 단 두 개의 눈만이 번쩍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빛을 내지 못하고 칙칙할 뿐인 네 눈과는 근본적으로 다름을 암시하는 빛깔의 보석이 지금 널 향하고 있었다.
영원불멸한 것이란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기억에 남는다. 그 기억 역시 영원불멸하지 않다지만 무슨 상관인가. 삶의 끝이 곧 영원의 끝이고, 삶의 지속이 곧 영원인 것을.
"......"
너는 대답하지 않는다. 흐르는 눈물로는 울음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다. 어둠 속을 가르는 빛은 달빛을 받아 흩뿌리는 저 눈물. 애초부터 너는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거다. 제 수준 따위 생각하지 않고 달려드니 이런 일이 생기는 거다. 해결할 자신도 뭣도 없으면서 저지른 결과를 이렇게 치루는 것일 터다. 그런데. 꼭 해결해야만 하는 거였나? 하나부터 열까지, 진즉에 포기한 채 최소한의 도리라도 지키기 위해 발악해 온 너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에게 대체 네가 뭘 해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너는 뭐든지 했어야만 했다. 아니, 그래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 터다.
미세한 진동이었지만 네가 느끼지 못할 리 없다. 지진도 뭣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흔드는 걸 느낀 너는 어쩐지 조금 무거워지는 듯한 눈꺼풀에 순응하여 눈을 지그시 감았다. 천천히 눈을 뜰 때마다 들려오는 발소리는 가깝고, 진동은 커지고 있다. 대기를 가르고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 바람에 의해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제가 어딜 가겠습니까. 당신의 인도 없이 대체 어디를."
붙잡으려는 움직임을 모를 리 없다. 너는 잠시 바라보았던 눈의 광채를 기억하며 고갤 돌렸다. 다시 보이는 건 텅 빈 하늘. 밝은 달. 광기는 달에서 온다던가. 달이 원래 저렇게 밝았었나? 저렇게 컸었나? 착각을 일으키는 듯한 하늘의 달에 너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잡힌다. 도망칠 방도 같은 건 없다. 이미 늦었으니까. 네 손이 상처입은 당신의 손목을 붙잡으려고 했다.
"또 피가 나잖아."
잡았다면 그대로 잡아당겼을 테지만. 어쨌든 당신은 아마 너를 붙잡을 수 있었을 터다. 너도 당신을 붙잡을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