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강한 공격을 계속해서 흘려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코일처럼 생긴 장치가 파손되며 끊어진 결계. 이어진 공격에 피해를 입는 엘리나를 보던 너는 아마 다시 결계를 전개하려고 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을 보다가 오싹함을 느꼈다. 보라색의 빛. 이건 아마 전부를 노린 공격이리라, 너는 이를 악물었다. 얼른 움직여야 해! 마리가 엘리나에게 건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은 공격을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젠장...!"
안타깝게도 네가 대신 몸을 던져 막아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래도 대부분은 아슬아슬하게나마 공격을 회피하는 듯했으나, 미처 궤도를 파악하지 못했더나 대처할 만큼 냉정하지 못해 공격에 노출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너는 짧은 찰나의 순간 결정을 끝내고 땅을 박찼다, 네가 발을 내딛은 곳은 가장 전방으로 뛰어들었던 사람의 앞, 그러니까 이스마엘의 앞이려나. 이스마엘과 파직거리는 구체 사이를 막아선 너는 예전처럼, 네 팔을 따라 펼쳐지는 철선을 통해 스파크 볼을 막아내려고 했다. 막아낼 수도 있었고.
"막았...으윽...!"
분명 본래 입었어야 할 피해는 무장 덕분인지 충분히 반감되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무장을 타고 스파크는 마치 물을 만난 물고기마냥 날뛰었고, 전기에 노출된 근육이 으레 그렇듯, 네 몸은 경직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맞닿아있다면 맞닿은 상대에게도 전류가 흐르겠지, 너는 삐걱거리는 몸을 움직여 이스마엘을 뒤로 떨쳐내려고 했다. "이스마엘 씨, 뒤로...!" 라는 비명 같은 목소리와 함께.
제 0 특수부대원들이 각자 공격을 가했지만 엘리나의 입에서 조용히 버스트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내 그녀의 모습이 팟하고 사라졌다. 그것은 틀림없는 '기동형' 버스트였다. 아주 가볍게 모두의 공격을 회피한 그녀는 이내 손에 쥐고 있는 권총을 돌리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이내 다시 한 번 팟팟팟 하는 느낌으로 여기저기서 모습을 보였다 감췄다. 지나가는 궤적마다 보라색 번개가 번쩍였다. 마치 번개가 움직이는 것처럼 정말로 빠른 움직임을 눈으로 쫓는 것은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다.
"...소용없습니다." "...네. 제가 6위입니다. 강함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감정적으로 움직이고 행동하는겁니까? ...전에 봤을때는 그 정도는 아니었을텐데." "...제 과거. ...그것은... 그것은... 저는 카시노프 님에게 여기로 왔고.. 그 이전에는...읏.."
모두의 말에 조용히 한 마디를 하던 와중 마리의 말에 엘리나는 움찔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오른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잡았다. 표정을 찡그리던 그녀는 이를 악물고 다시 팟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또 다시 여기저기서 모습을 거의 연속적으로 드러냈다. 얼마나 빠른지 여기저기에 잔상이 마치 실체화가 된것처럼 보였고 그들은 이내 권총을 들어올렸고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안에서 발사되는 것은 총알이 아니었다. 그것은 '피뢰침'이었다.
만약 박힌다고 한다면 쉽게 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가 방어를 해준다고 한다면 그 피뢰침을 모두 몸에 맞게 될 것이다. 딱히 데미지는 들어가지 않았겠지만 그것을 발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코일의 스파크가 더욱 강해졌다. 이제 머지 않아 전자 결계가 다시 복구된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기동형 버스트였기 때문이지. (시선회피) 보라색 빛이 분출되는 것은 버스트 사용의 징조랍니다.
피뢰침 발사 - 날아오는 것은 전원 다 3체. 명중하게 될시 명중한 횟수의 턴만큼 (노이즈). 피뢰침 자체에는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는다.
보라색 번개가 잔상이 되어 그녀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였는 지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가 생명체라면 이정도 속도의 움직임을 한번에 크게 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번개처럼 빠른 움직임을 눈으로 쫓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 번개 그 자체를 쫓는다. 번개가 향하는 곳을 보며 그녀가 이동할 다음 위치를 생각한다.
아공간 속으로 숨어든 다음 그녀가 다음으로 올 것이라 예측되는 곳으로 튀어나와 산탄총으로 그녀의 코일을 쐈다.
"있잖아? 그 미친 과학자에게 받은 지시는 최소한 3명의 시체를 가져오는 거지? 그런데 이거 알아? 우리 몸은 우리 몸이 아니야. 우리는 이미 죽은 사람이고 다른 과학자 덕분에 기계 장치에 의식을 이식할 수 있어."
"즉, 네가 그놈의 명령에 따라 우리를 죽인다면, 그것은 네 스스로가 박사의 지시를 어기는 거야. 왜냐고? 네가 이 기계장치를 파괴하는 순간 우리의 의식은 다른 기체로 옮겨가게 되고 그때부턴 이건 그저 고철에 불과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죽이지 않는다면 그것도 네 스스로 지시를 어기는 것이지. 한낱 기계 주제에 박사의 말을 거스르겠다는 거야? 마음에 드네"
아공간과 아공간 사이를 이동해가며 그녀의 피뢰침을 피했다. 그러나 허벅지 부근에 한발을 맞고 말았다. 다행히 살갗에 박히진 않아 크게 아프진 않았지만 쉽게 빠지지도 않고 무엇인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인형 주제에 주절주절 말이 많아. 어? 닥치고 공격이나 해. 이쪽도 전력으로 덤벼줄테니까."
엘리나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짜증 섞인 말을 내뱉던 레레시아는 다시금 인상을 구겼다. 엘리나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 순간이었다. 그 짧은 순간 뒤를 흘겨보며 다 들으란 듯 말했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난 쟤 안 살려보내. 누가 뭘 어떻게 하든."
시체였든 아니든 상관없어. 저 따위 인형은.
그리고 다시 공격을 하려 하는데 엘리나가 빠르게 이동하며 총을 쏘았다. 연속적으로 날아오는 무언가를 피하던 중 상대적으로 무장이 약한 다리에 무언가 꽂혔다. 총알은 아닌 거 같은데. 일단 뽑으려 해봤지만 안 되었고, 그래서 손끝에 작은 갈고리를 만들어 주변 살과 함께 뜯어내려 해본다. 시도해보고 영 안 된다 싶으면 그대로 두었을 것이다.
"하."
짧은 한숨 같은 걸 내쉬고 그녀는 다시 엘리나에게 접근한다. 이번에도 창을 휘둘러 독액을 흩뿌리면서.
시야가 교란되다 못해 무의미해지는 듯한 기분이다. 어느 곳을 보아도 시선이 따라갈 적에는 이미 늦었다. 미처 보지 못한 방향으로부터 닥쳐오는 공격에 연타를 허용하고 만다. 반사적으로 움직여 마지막 하나만은 쳐내는 데 성공했다. 팔 위에 꽂힌 무언가는 탄환이 아닌 피뢰침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쳐 그것을 뽑아내려 했지만 뜻대로 될지.
그렇다면 닥쳐올 공격이 있기 전까지, 최대한의 타격을.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말이 조금쯤은 통하길 바란다. 대검과 장검을 각각 한 손에 쥔 채, 긁어내듯 크게 휘둘렀다. 두 겹의 검격이 엘리나의 허리와 목을 노리고 날아든다.
몸이 움직이질 않아, 아직도 저릿저릿한 감각에 너는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되면 이어지는 공격을 피할 수가 없는데... 아니나다를까 버스트를 발동한 엘리나는 굉장한 속도로 움직이며 공격을 모조리 피한 것도 모자라, 여기저기서 마치 궤적을 남기며 움직였다. 이윽고 들어올려진 권총, 쏘아진 것은 탄환 대신 피뢰침이었다. 이대로라면 몸에 피뢰침이 박히는 걸 두 눈 뜨고 지켜봐야만 했는데 마리의 난입으로 네 몸이 움직였다. 네 의지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그럼에도 피뢰침을 전부 피할 수는 없었던 점일까. 네가 아니었다면 회피에 집중해 피뢰침을 모두 피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건만 너도, 마리도 두 개의 피뢰침이 몸에 박히고 말았다. 무장 덕에 고통은 없었지만 이건 불길해도 너무 불길했다.
"...미안합니다, 마리."
너 때문이라는 생각, 그리고 슬슬 풀리는 마비에 숨을 몰아쉬며 그렇게 속삭인다, 그녀가 이미 엘리나에게 달려들었기에 들리지는 않았겠지만. 아직까지 몸이 자유롭지 않아 너는 그저 상황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래에서 자란 것은 아래가 어울린다는 그 사람들의 말이 맞나 보다. 아공간 너머로 들어갔지만 세븐스이길 포기하던 저들은 멍청한 사람들인 것 같다. 세븐스였던 것이 비능력자가 된다고 해서 그 낙인이 지워질 것 같았습니까? 세븐스에게도 버려지고, 비능력자 틈에도 낄 수 없는 하잘것없는 것들이 될 텐데. 어쩌면 나는 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삿된 것임을 안다…… 혼란스럽다, 아! 울고 싶다. 하지만 전시니까 울 수 없다. 세상이, 자신이 너무나도 혼란스럽다! 어떻게 해아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세상이 가라앉는 기분이다. 스파크를 막아내려 했으나 경황이 없었고 결국 이스마엘은 뒤로 떨쳐졌다. 불가항력이었다.
"리오 씨……?"
뒤로, 비명 같은 목소리에 떨쳐지며 조금 떨어진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버스트를 발동하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이스마엘은 다시금 움직일 수 없었다. 아까는 아버지를, 이번에는 리오 씨를. 끝내 내가 서있는 이 자리까지.. 세상이 이스마엘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가려 하는 것 같았다. 둥글게 홉뜬 눈이 떨려오더니 결국 한줄기 남은 무언가가 부서지는 것 같았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징조는 없었다. 마리가 쥬데카를 잡아채 회피하며, 피뢰침이 날아왔을 때까지, 그걸 곧이곧대로 얌전히 맞아주다 마지막 하나의 피뢰침이 우뚝 멈추더니 이내 의지를 잃고 벽을 뚫듯 처박혔다.
단 하나의 행동을 뒤로 이스마엘의 주변으로 숨을 죽일 고요한 침묵이 일었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모습 뒤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시스템 과부하, 페이시를 종료합니다. 페이시가 허망하게 꺼져버렸다. 얼굴을 전부 덮어가린, 개를 형상화 한 방독면이 드러났다. 새하얀 머리카락이 넘실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열이 올라 재머에 오류가 생길까 싶어 무장에 내장된 냉각장치는 이제 쓸모가 없음에도 입가로 새하얀 연기가 새어나왔다.
"그냥 죽입시다."
이스마엘은 손을 뻗었다. 주변 사람들이 공격을 마쳤을 때, 염력으로 두 번이면 충분하다 판단했다. 첫째는 들어올려 공중에서 그대로 처박으려 하였고, 그 다음엔 그대로 벽에 내던지려 들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