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전이 오가는 도중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만 같다. 엘리나는 결국 후퇴했다. 그 짧은 새에 자폭의 제한시간이 끝나서인지, 엘리나의 상태가 전투를 지속하기엔 이상이 있어 후퇴한 것인지는 단정하지 못하겠다. 일차적인 생존의 문제가 지나니 이제는 폭발이 그 뒤를 기다리게 되었다. 언제 터질지 모를 급박한 상황이지만 그는 침정만은 잃지 않았다. 팀원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살피다 츠쿠시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수술실 방향에 어디론가 통하는 지하 도로가 있었습니다. 그 끝을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만, 그곳은 어떨지."
핏발이 터져 붉게 물든 눈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본다. 마리는 레레시아의 낮은 목소리에 이내 자신의 말이 심했음을 바로 알아차렸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 말을 꺼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내 들리는 목소리는 레레시아의 것만은 아니었다. 이스마엘, 마리가 네배멍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의 목소리는 꽤나 격해져 있었다.
아, 마리는 방금 전 있었던 가디언즈 시체 세 구와의 짧은 격돌을 떠올렸다. 그 중 한 구를 보고 이스마엘이 아빠라고, 그랬던가. 레지스탕스 출신과 가디언즈 출신을 나누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말이 그렇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상황은 그렇게 두지 않았다.
이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전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몸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눈을 뜨니 녹빛 머리카락이 보이고 그 너머로 동료들의 도움으로 스파크가 사라진 것을 보았다.
"왜...?"
무언가를 대상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이내 정신을 차릴 것처럼 보였던 엘리나가 사라지는 것을 눈동자로 쫓으며 잠시 멍하니 서 있는다. 아스텔의 통신이 들리고 다른 동료들이 탈출할 공간을 찾으려는 동안에도 멍하니 그 붉은 눈동자가 초점을 잃은 채 서 있다.
그러던 중 정신을 차린 건 레레시아의 비명 때문일까. 마리는 입술을 짖씹으며 정신을 차리며 밖으로 나가는 길을 따라 달려나간다.
다행히. 라고 해야 할지, 일단 공격은 막아낼 수 있었다. 분명 필중을 염두에 둔 공격이었을 테지만 너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의 조력으로 공격은 상쇄할 수 있었다. 아마 한 번 막아낸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으리라. 바람이 스치는 듯한 소리와, 무언가 입을 벌려 집어삼키는 소리. 그 뒤에는 그 검격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하아아아...."
그제야 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 무사했다. 정확히는... 몸뿐만이지만. 도망쳐 버린 엘리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전에 주고받았던 감정 섞인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레레시아가 소리지르는 게 선명하게 들려 너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귀가 찌릿해 너는 귀를 손으로 감싼다, 상황이 진정되어 가고 있어서 그랬을까? 지금 네 감각은 싸움 도중처럼 날카로웠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마리, 무사합니까?"
그렇게 물으며 살펴보니 부상은 없어 보였고. 아마 그녀는 대답을 바로바로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닌 듯했다. 초점을 잃은 듯한 그 눈을 바라보던 너는 네가 들었던 레레시아의 비명에 반응하듯 그녀가 달려나가자 격한 감정을 쏟아냈던 두 사람, 이스마엘과 레레시아 쪽에 시선을 주던 너는 하아... 하고 작은 한숨과 함께 뒤따라 움직였다. 일단은 돌아가는 게 급선무니까.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혐오스러웠다. 혐오의 주체가 너무나도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강한 혐오를 느끼는 주체는 본인이었다. 조금만 참을걸,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려버릴걸. 그렇게 이겨낼걸. 차라리 그랬더라면 이런 생각을 품을 일도 없을 텐데. 남을 탓하고 싶지만 이스마엘은 탓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떠넘기는 법을 모르니 자연스럽게 침묵할 뿐이었다. 자신이 지나치게 혐오스럽고 역겨운 사람인 걸 모든 사람이 알아버렸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뻔뻔한 사람도 되지 못햇다. 이스마엘은 가장 마지막 차례로 밖을 나섰다. 남들이 내달려 돌아가는 길, 혼자 몸을 띄워 유령처럼 움직일 적 엄지는 손목의 흉터를 비집고 칩을 기어이 매만져 억지로라도 페이시를 연결시키고 있었다.
수술실 안으로 들어서자 통신을 듣고 달려온 아스텔이 거기에 있었다. 구석에 처박혀있는 사내를 짊어진 후에 모두를 바라본 후, 표정을 살피던 아스텔은 한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던 것은 분명했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묻지 않았다. 이내 검은 연기가 올라올 정도로 여기저기서 폭발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으니까. 이내 아스텔은 가자고 이야기를 하며 지하도로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달렸다.
별다른 일 없이 아스텔의 뒤를 따라왔다면 아마 20분 정도 달린 후에야 겨우겨우 지상으로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도로의 끝은 지상으로 연결되어있었다. 허나 그곳은 처음 보는 장소였다. 그 하얀색 건물과는 꽤 떨어진 어딘가였으니까.
일단 시설에 대한 것을 알아냈고 가디언즈가 뭘 또 행하고 있는지를 알아낼 수 있었으며, 사람들도 구조할 수 있었고 시설도 날려버릴 수 있었으나 그렇다고 마냥 기분이 좋은 느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살아온 환경, 그리고 가치관. 그것이 충동했을 때 벌어지는 생각의 차이는 어쩌면 생각보다 컸을지도 모르나 그렇다고 해도 모두 양보할 수 없는 선이 있었고 그 선 내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것 또한 있었을 것이다.
아직 가야할 일이 멀었다. 제 0 특수부대원들의 이야기는 아직 이어질 예정이었으니까.
붉은색 혁명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
/일단 이렇게 스토리를 마무리짓도록 할게요! 다들 수고했어요! 그런고로 이번 스토리에서 궁금한 점이 있다면 질문을 받도록 할게요!
...사실 너무 많은 떡밥이 한번에 풀리고 뿌려져서..물어볼 것이 많을지도 모르겠다만..(흐릿) 아무튼 다들 수고했어요!
그리고 여담인 정보 하나 더. 카시노프는 그냥 미친 놈이 맞답니다. 그래서 일부러 그 미친 분위기를 좀 어둡게 살리고 싶었어요. 그냥 말 그대로 정말로 자신의 연구나 성과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윤리나 양심 따위는 아무래도 신경 안쓰는 그런 녀석으로 말이에요. 블러디 레드에서 자신의 부하를 모두 잡아서 에너지원으로 삼은 것도 다 그 일환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