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은 단순히 찌르는 것이 아닌 빠른 속력으로 달려가서 찌르며 적진을 돌파한 뒤에 이에 연계해서 적들의 한 가운데서 창을 좌우,전방,후방으로 크게 휘두르며 벤다. 이런 식으로 공격을 성공하든 말든 적들이 자신이 지키는 자리를 벗어나게 해서 계획했던 움직임이나 대열을 방해함으로써 패닉을 유도한다.
혹은 돌진해서 찌르는 것이 아닌 도약을 해서 적진의 중앙으로 쇄도해서 착지한 뒤에 창을 여러 방향으로 휘둠으로써 적들의 지휘체계를 마비시키는 것이다.
꼭 처음부터 한 방에 죽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죽이기 위해서 이런 빌드업이 필요한 것이다.
성취와 별개로 화염의 부여는 즉각적으로 일어난다. 반면 저주의 부여는 보다 서서히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매번 똑같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부여를 할 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러니 타이밍을 잡는 감을 잡기가 몹시 어렵다. 온전히 부여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지금도 감을 잡기가 이리 어렵다면 격하게 몸을 움직이는 실전 상황에서 활용을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높은 숙련도가 필요할까. 그래도 별 수 없다. 비장의 한 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반복해서 숙달할 뿐이다.
부여. 타격. 부여. 타격. 부여. 타격. 마나와 체력이 허락하는 선에서 반복하고 다시 반복한다. 마나와 체력이 바닥나면 휴식하며 지난 반복을 복기한다. ...지나친 욕심이었나 스스로 의심이 든다. 다만, 아직. 아직은 아니다. 힘을 눈앞에 두고 고작 의심 때문에 물러날 때가 아니다. 다시, 부여. 타격. 부여. 타격.
그러다 운 좋게 얻어걸린 성공. 인정한다. 그저 우연이다. 다시 하라면 할 수 없다. 그러니 이 성공의 감각이 사라지기 전에 다시 반복한다. 이제 기준이 되는 과녁이 생겼다. 최대한 저 기준에 가까워지는 방향으로...방향없던 수련에 방향이 생겼으니 남은 것은 다시 반복의 길을 걷는 것 뿐이다.
후..당장은 이 정도가 최선인 건 같다. 타격 직전에 부여를 시전하는 훈련을 반복하다 결론을 내렸다.
감은 익힐 만큼 익혔기에 이제 훈련의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실전 상황에서 다른 요소들을 신경을 쓰면서 할 수 있는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이 부분은 홀로 반복해서 얻을 수 있는 성취가 아니다. 실전 경험이 필요하다. 실전에서 시도해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유일한 스승이 될 테다.
오늘은 그저 달린다. 숨이 턱에 차도록 계속 달린다. 드워프는 달리기 좋은 체형은 아니다. 짧고 두꺼워 다른 종족과 같은 거리를 이동하려면 배로 다리를 놀려야 한다. 하지만 드워프는 오래간다. 무거움 짐을 가지고도 시간이 걸릴지언정 오래 멀리 움직일 수 있다. 오늘의 달리기 역시 그런 방향이다. 빨리 달리기 위한 훈련이 아니다. 그저 오래 달리며 몸상태를 서서히 끌어올리는 달리기다.
검집 안에 있는 검을 빠르게 뽑으며 휘두른다 뽑아서 휘두르는 게 아니다, 뽑으며 동시에 벤다 발도술 즉 거합베기를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전투에 들어가면 고생이 많아진다 그러니 상대가 태세를 갖추기 전에 무너트리고 하나를 베어내고 시작한다 그것은 피를 간단히 취하는 것만이 목적인 여자에게 필요한 기술이었다 여기서 요령은 뽑아내는 것이 아닌 '벗겨내는 것' 칼집을 뒤로 빠르게 내동댕이치며 상대를 순식간에 베어낸다 ―바로 이렇게
"앗."
...그러나 마음이 급해져 그만 칼날이 걸려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코우는 재빠르게 주워 경망스럽게 후후 불며 흙먼지를 털어낸다 어리석은 여자야, 귀신 들린 칼이 두렵지 않느냐
드워프는 팔과 다리가 짧다. 두껍지만 짧기에 가까이 붙거나 긴 무기를 활용해야 한다. 타모르의 망치는 꽤나 큰 양손 무기이나 창 같은 장병기에 비할 순 없다. 그렇기에 상대에게 바짝 붙는 법 역시 타모르는 갖출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오늘은 거대한 망치를 사선으로 앞세워 방어물로 삼은 채 돌진하는 수련에 임한다. 창과 같은 리치가 길지만 직선적인 공격의 경우 망치를 앞세워 주요 부위를 가리는 것으로 어느 정도 커버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게 돌진을 통해 접근을 이루면, 그다음은 그대로 망치로 힘껏 들이박아 버리는 것이다. 상대가 계속 움직이면 아무래도 맞추기 어렵겠지만 지금은 연습이니 가만히 고정되어 있는 저 나무를 목표로 돌진해 보자.
타모르는 다른 적당한 나무를 찾아 이동하며 생각했다. 자신은 마상 창시합을 출전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뻔히 창을 내밀고 달려와 맞부딪치는 일은 없다.
창이 아무리 직선적이라 한들 고정된 창을 상대하는 것이 아닌 상대가 찌르는 창을 상대하는 것이다. 그러니 타모르가 망치를 앞세워 돌진하면 그 의도는 어렵지 않게 파악될 터다. 그렇다면 갑작스겁게 망치를 들어 올려 불시에 방어하는 식으로 해야 하나? 망치를 아래로 내린 채 달려오다 불시에 들어 올려 방어라..일단 해보자. 마침 저 나무가 적당해 보인다. 가지를 꺾어 창의 형상을 만들고 적당히 거리를 벌린다. 숨을 한번 들이쉬고 그대로 달린다. 망치는 여전히 바닥에 두다 충돌 직전에 휙..!
음..이건 영 아니다. 지금이야 가만히 있는 창을 보면서 한 것이니 얼추 타이밍을 맞춘다만, 타모르의 민첩성으론 상대가 불시에 내지르는 창에 반응하기는 어렵다. 상대가 정직하게 공격을 해준다면 또 몰라도. 망치를 내린 채로 달려오는 상대라니 누가 봐도 뭔가 수가 있어 보이니 원 의도대로 공격을 유도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아래로 내린 망치를 위로 갑작스레 치켜드는 행위는 여러모로 힘이 많이 드는 일이기도 하다.
다른 방안이 있을 것이다. 아래에서 위가 힘들다면, 위에서 아래로. 망치를 아래로 그냥 내린 채로 달려드는 모습이 수상하다면 공격하는 모양새로. 고로 그저 망치를 휘두르고자 무모하게 돌진하는 것으로 보이면 된다. 망치를 휘두를 듯 치켜 올리고 전력으로 달려들다 타이밍 맞게 사선으로 내려 창을 막아내야 한다. 역시 직접 해보면 될 일이다.
타모르는 적당한 나무를 발견하곤 하던 대로 조치했다.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망치를 높게 들어 올리고 달려든다. 빠르게 달려들다 타이밍을 맞춰서 합! 사선으로 전환...
실패다. 가지에 도달하기 직전 전환이 끝나야 함에도 전환되는 망치에 가지가 걸렸다. 조금 늦은 셈이다. 그래도 방향성 자체는 옳다. 행위가 실패했을 뿐 접근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시작일 뿐이다. 타모르는 다른 나무를 찾아 이동한다.
어스름히 새벽빛이 떠오를 무렵. 수풀 속에 몸을 묻었다. 한기가 올라오는 땅 위에 납작 엎드려서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그 자리서, 그 자세로 침묵을 유지한다. 내일의 새벽빛이 떠오를 때까지. 잠들지 않고 멍하니 있지 않으며 눈 앞에 보이는 것, 귓가에 들리는 것, 코끝에 맴도는 것들에 집중한다. 고블린 굴 안에서 나는 인내에 대해서 배웠다. 깨어있되 죽어있어야 한다.
나는 돌이다. 나는 풀이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느껴지지 않는다.
나아갈 방향을 발견했으니 묵묵히 나아갈 뿐이다. 빠르지 않아도 좋다. 멈추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면 결국 도달할 것이고 이것이 드워프다. 타모르 역시 드워프다. 적어도 아직은.
타모르는 그렇게 묵묵하게 탐색한 결과, 다시 적당한 나무를 발견했다. 다행스럽게도 이 숲에는 가지가 낮게 자라나는 나무가 꽤나 많다. 덕분에 자신의 여정을 계속할 수 있다.
이 나무들은 자신의 가지를 함부로 꺾는 타모르가 별로 원망스럽지 않은가 보다. 타모르가 부여한 창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썩 대수롭지 않은지 그들의 부러진 가지가 연기하는 창에는 살기가 없다. 물론 그들을 상대하는 자신의 망치에도 살기가 없음은 마찬가지다. 그래도 또 맞부딪쳐봐야 하지 않겠는가.
타모르는 다시 거리를 벌리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달려든다. 자연스레 위로 치켜올려든 망치는 언제든 강하게 내려쳐질 것처럼 팽팽하게 긴장된 근육에 의해서 들려있고 그렇게 고함을 내지르며 가지를 향해 달려들다 지금. 빠르게 90도 정도 회전하며 내려와 타모르의 안면과 상체를 가리는 위치에 다시 자리 잡는다. 그리고 연결하여 타모르가 몸 쪽으로 바짝 당기는 순간. 가지와 접촉이 이루어지고 가지는 박살 나며 그대로 나무에 망치를 앞세운 돌진을 먹인다.
강한 충격이 타모르에게도 전해지나 손에 힘을 꽉 주며 망치를 끝까지 부여잡는다. 이 충격을 잘 견딜 수 있어야 연달아 상대에게 망치를 휘두를 수 있을 터. 아직 기본이 부족하다.
다만 당장은 눈앞에 놓인 과제에 집중해야겠지. 그저 한 번 성공했다고 익혔다 치부하고 넘어갈 순 없는 법 타모르는 그 후로도 적당한 나무를 찾아 반복하고 다시 반복했다. 일대에 적당한 가지가 모두 부러져 나갈 즈음 이 반복도 멈췄다. 감은 확실하게 잡혔다. 실전 경험으로 확인할 일만 남았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