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서, 우리는 영웅의 존재를 믿는다. 위대한 영웅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당장 우리들의 곁에 있는 영웅들 역시 우리를 바꿀 수 있는 영웅이니까 말이다. 불타는 집에서 아이를 구해온 사람이나 스스로의 몸이 타는 것을 알면서도 타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문을 두드린 이들. 단지 거대한 무언가를 이루어 영웅이라고 불리는 게 아닌 이런 소소한 구원자들이 우리의 사회에 필요한 것이다. - 옥소경, 사회의 미니 히어로 발췌
빈센트는 명진이 쳐내는 것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저거면 됐다. 그 다음에는... 정말로 웃기고 재밌는 일이 일어날 테니까. 빈센트는 불뿐만 아니라 전기도 재밌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전기가 상용화된 이후로는 다들 전기고문을 쓰지 불로 지지는 고문은 안 했다. 물론 흉터가 남는지라 정치적으로 곤란한 것도 있었겠지만... 전기 고문도 나름 재밌어서 그런 것 아닐까?
"끄아아아악!"
"끼야아악!"
"끄르르르릏흥를"
빈센트가 만들어낸 전기 마도가, 물에 흠뻑 젖은 고블린들을 한번에 지졌다. 빈센트는 아주 옛날을 생각했다. 흑인 주지사를 납치해서 총살하고 '좋았던 옛날'의 남부 맹방을 되살리겠다던 머저리 백인우월주의자가 마을에 있었다. 그리고 그놈은 빈센트가 경찰에 신고할 것도 없이, 신비한 마법의 장갑을 끼면 어떤 전기에도 안전하다는 멍청한 선전을 믿고 젖은 손으로 전기가 흐르는 전선 단면을 만졌다가 숯더미가 되었지. 미국의 고질적인 반지성주의가 미국을 살린 몇 안되는 사례였다.
잡념은 거기까지. 빈센트는 다 널브러져서 죽은 마당에, 혼자서 몸을 벌벌 떨면서도 명진과 빈센트를 노려보는 홉고블린을 보며, 허허 웃었다.
"명진 씨의 능력이라면, 저 녀석을 정육점에 걸릴 법한 초록색 고기로 '도축'하는데 5초도 필요하지 않겠죠."
너클에서 일어난 폭발과 함께 홉 고블린의 머리통이 시원하게 날아갔다. 머리통이 터졌다기보다는, '증발'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았다. 머리 잃은 몸통은, 마치 전원이 꺼진 로봇처럼 그대로 넘어져버리고, 빈센트는 명진과 자신이 죽인 것들의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넷, 참으로 무식하게 세는 방법이었지만 워낙에 머리회전이 빨라서 그 정도는 문제 없었다.
"둘이서 도합 고블린 72마리, 홉고블린 3마리, 길들여진 외계 게이트산 늑대 10마리 사망. 수고하셨습니다. 명진 씨."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수고했다는 말에 어울리지 않게 게이트를 노려보며 말한다.
"...그리고 오늘 '수고'는 여기서 끝났으면 좋겠군요. 그러지 않을 수도 있으니 가디언들이 올 때까지 게이트를 감시해야 할 것 같은데, 실례지만 도와주신 김에 같이 있어주시겠습니까?"
당황했나?>딱히? 캡틴이 발언한 영향에 어떤 생각이 들었나?>커뮤니케이션이 많아서 그런 것이었나... 현실성과 비현실성의 간극이 존재하는 것 같다. 시트 교체와 그 이후 행적에 화가 난 건가?>아님. 허탈감?>안 들었음. 캐의 애정?>캐의 캐입을 위해 카페인이나 알콜의 섭취를 해본 결과 꽤 고용량의 카페인과 알콜이 필요했던 걸 보면 캐입상으로는 굉장히 높은 편일 것 같다.이 그러면 대체 뭔 감정이 든 것?>사랑을 해본 적 없는 인간은 소중한 걸 잃어버린 것 같은 존재에 캐입을 하기 어렵군 그래서 어쩌려고?>이런 상황을 경험한 적 거의 없어서 머리는 조금 복잡함. 잠깐 캐입 위해 지금 카페인 좀 먹음.
빈센트는 능청스럽게 감사를 표하며, 옛날 일을 꺼낸다. 옛날이래봤자 특별반 입학 거의 직전이었지만 말이다.
"계약은 여기까지다. 그건 약속에 없다. 이러면서 거부하는 치들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일이 더 커지면... 그거 수습하는 비용은 내가 다 뒤집어쓰고,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 제가 물은 이득은 어떻게든 한입만 베어먹으려 들죠. 그 때는 더러워서 그냥 던졌지만, 특별반 사람들은 뭐랄까..."
빈센트는 말을 고른다.
"...기본적인 인성 자체는 탑재된 이들이라 좋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랑 있으면, 적어도 게이트에서 뒤통수에 구멍 날 걱정은 없어서 좋구요."
그렇게 말하지만, 명진이 게이트가 나타난 경위를 묻자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품에서 안경을 꺼낸다.
"이 안경 설명서에... XVA-2 소재로 된 안경닦이를 문지르면 게이트가 나타난다는 별 괴상한 설명이 있길래, 문질러봤습니다. 그런데... 진짜 나타났더군요."
"맞습니다. 바보 같은 짓이죠. 그런 우화도 있습니다. 값나가는 물건을 빼앗으려고 다른 헌터의 뒤를 덮쳐서 퍽치기를 하고 빠져나오려는데, 거기서 예상하지 못한 보스가 나왔고, 결국 그 헌터는 보스한테 갈가리 찢겨서 죽고, 퍽치기를 당한 헌터는 정신을 차리더니 보스랑 교섭을 해서 혼자서 게이트를 다 먹었다고요. 그런 웃긴 일이 다 있단 말입니다."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어이가 없어하는 명진을 보며 어깨를 으쓱인다. 뭐, 그래도 아예 믿지 못해서 '에이, 농담 재미없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저렇게 입을 벌리고 뭔 그런 안경이 다 있냐고 당황하는 게 차라리 나을까? 빈센트는 안경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안경에 얽힌 내력을 말해준다.
"이거는 전투 상황이 아니면 굳이 착용하지는 않습니다. 진짜 별 이상한 것을 다 보거든요. 예를 들어, 지금 저기서 달려오는 기자의 뒤에는 웬 관심병 걸린 수백의 귀신들이 붙어있고, 지나가던 아이 옆에 할아버지로 추정되는 귀신이 따라다니고, 어떤 사람은 귀신이 어떻게든 죽이려고 용을 쓰고... 뭐 그렇습니다. 그리고 명진 씨 뒤에도 귀신이 여럿 있네요."
그렇게 말하더니, 장난스럽게 취소한다.
"물론 마지막은 장난입니다. 명진 씨는... 이상할 정도로 깨끗하단 말이죠. 그 정도 몸이면, 질투하는 쇠쟁이 귀신 하나쯤은 붙을 법한데 말입니다." //15
빈센트는 양 손을 붙이고, 수갑을 차는 듯한 모습을 흉내낸다. 짤랑, 짤랑, 소리도 함께. 빈센트가 옛날에 많이 들엇던 소리였다. 상해, 절도. 상해의 경우는 마음에 둔 여자아이를 둔기로 때려서 중태에 빠트린 갱단원을 찾아가서 무릎을 그 둔기로 박살냈고, 절도는 친구를 겁박해 돈을 뺏어간 운동부원의 집에 들어가서 훔친 만큼을 뺏어오다가 생긴 것이었지만, 상해는 상해였고 절도는 절도였다.
"지난 번은 몰라도 이번은 못 빠져나왔겠죠. 어쨌든...:"
안경을 사이에 두고 해를 바라보면서, 이것의 가능성을 말한다.
"그렇다면... 제가 수많은 게이트의 최초 발견자가 되고, 특별반과 함께 그 게이트를 원하는 대로 탐사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