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지, 아니 짐작은 가지만 뭔가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느냐며 눈을 깜빡이던 너는, 규칙 따위는 지키지 않겠다는 듯 키득거리며 마체테를 들어올리는 그녀의 모습을 멍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진짜? 장난이라곤 하지만 너는 이걸 어떡하면 좋을까 생각했다, 피해? 아니, 그래도 장난이라고 하는 걸 진심으로 받아버리거나 하면 안 되는 거고.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느라 머리에 마체테가 내려쳐지는 걸 미처 피하지 못하고 움찔한다.
"...흐."
확실히 진짜는 아니었던 모양, 모자의 천을 자르기는 커녕 그대로 구부러지는가 싶더니 그림자로 이뤄진 박쥐들이 날아가는 게 보였다. 장난...
"깜짝 놀랐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너무 무시무시한데!"
있는 힘껏 휘두르면 팔다리 하나쯤은 뚝뚝 썰릴 것 같은 걸 그렇게 위협적으로 들어올리다니, 장난이라는 건 알았지만 등골이 오싹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던지라, 선택지가 없었던 것까지 겹치니 조금 언짢았으나 그녀의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이상한 건 아닌가... 까지 생각이 미치자 일단 고갤 살짝 저었다. 모자의 굴곡에 들어간 사탕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 빛을 받아 사탕의 포장이 반짝이지만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다.
"저 말고도 이렇게 하셨나요?"
정말, 장난 치려고 있는 날이 아닌데. 그렇게 덧붙이면서 바구니를 고쳐 잡은 너는 뭐 어쩌겠는가 싶어 한숨을 살짝 쉬더니 멜피에게 손을 내밀었다.
망토를 잡고 제 팔 안 쪽으로 다가와 들어오는 그녀의 모습을 그는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바라봤다. 고양이 귀 때문인지 묘하게 고양이처럼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그 와중에 욕심을 내도 상관없다는 말을 하니 아스텔은 절로 얼굴을 붉히면서 눈동자를 옆으로 살며시 치웠다. 그야 그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욕심을 낸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그저 지금까지 살고 싶다라는 욕망 이외에는 크게 뭘 품은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이지. 역시 사람과 사람의 교류 사이에선 반드시 뭔가 변한다고 했는데 자신은 그녀에게 이런 변화를 받은 모양이었다. 이대로 남들 못 보게 데려가도 좋다는 그 말에 아스텔은 헛기침 소리를 여러 번 냈다.
"...뱀파이어에게 그런 말 들으면 목덜미 물려. 너."
그렇지 않은가. 그저 옷차림만 따라한 것이긴 하나 일단 그녀는 뱀파이어의 품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만약 진짜 뱀파이어라면 여기서 목덜미를 물려서 또 다른 뱀파이어가 되어도 할 말이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면서 그는 일단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이내 훅 들어오는 그녀의 언동이나 말들. 그리고 표정. 모든 것이 심장을 툭툭 치는 것이 영 익숙치 않은 감정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계속 달리거나 했을 때와 비슷하게 심장이 뛰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무언가. 간질간질함.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그 감각에 아스텔은 다시 한 번 얼굴을 조금 더 붉혔다.
"...그럼 이렇게. ...그러니까 잠시동안만."
그렇게 말을 어떻게든 마무리지으려고 하면서 아스텔은 일단 그녀를 그대로 망토 안에 감싸서, 마치 뱀파이어가 제 여자를 품에 데리고 있는 것마냥 앞으로 천천히 걸었다. 아무튼 오늘은 할로윈이었다. 일단 이런 분장도 중요하지만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Trick or Treat."
할로윈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는 그 말을 하면서 아스텔은 레레시아를 가만히 바라봤다. 어쩔 것이냐는 듯이 입가에 미소를 작게 머금으며. 발걸음 또한 계단 근처에서 멈춰선 상태였다. 다른 이들의 눈에 안 비치게 그녀를 제 망토 속에 살며시 가뒀으니 아마 근처까지 오지 않는한 아스텔의 모습은 보여도 레레시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도 일을 마치고 퇴근하여 답레를 남기고 저녁을 먹고 올게요! 다들 좋은 저녁이에요!! 시트 정리는 밥 다 먹고 온 후에 하는 것으로!
이건 놀리는게 아니라 진담. 그녀는 곰곰히 생각해보니 자기가 붙인것치고 매우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텐션이 높아진듯 했습니다. 아마 여기서 당신이 거부한다면ㅂㅏ로 멜무룩해질겁니다. 그리고는 장난이 끝나자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마체테를 빙글 빙글 돌리며 ㅡ 사탕을 눈치채지 못한듯 했지만 ㅡ 미소지었습니다.
"에이 이것보다 무시무시하게 살고있는 세븐스들인데. 이 정도는 애교지."
뭐어.. 그렇게 말하면 그렇기는 하지만요...? 그녀는 다소 어이없는 논리를 내세우며 웃고는 오늘의 첫장난치곤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물에 당신의 반응을 음미했고. 생각을 읽지는 못하나 속으로 뭔가 갈등한듯한 모습에 작게 웃었습니다.
"오늘 첫 장난!"
그녀는 상당히 신났는지 눈을 >< 모양으로 만들며 ㅡ 능력입니다 ㅡ 웃었습니다. 마치 그러니까 이해하라는듯한 반응. 하지만 곧 당신이 손을 내밀고 '그 대사' 를 말하자 당하는쪽이라 생각되지 않을 섬뜩한 미소를 띄웠ㅈ습니다.
"없어."
그녀는 정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습니다. 당연히 사탕이야 더 있고, 이미 주기까지 했죠. 하지만 애초에 그녀의 목적은 장난을 치고 장난을 받는겁니다. 순순히 사탕을 줄리가 없는걸요.
마냥 담담할 줄 알았는데. 당황해도 조금 말을 어수선하게 하는 정도일 줄 알았는데. 그녀의 회심의 일격에 볼을 붉히고 시선을 피하고 헛기침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왜 그녀의 심장이 더 크게 뛰는 건지! 고장난 발전기마냥 뛰어대는 심장을 애써 티내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써야 했다. 그제야 내가 무슨 소리를 한 거야아아 같은 생각도 들었지만, 이미 말은 해버렸고 아스텔은 저런 말이나 하고 있으니 괜히 더 그런 소리 하고 싶어진다.
"송곳니 없는 뱀파이어는 안 무섭다, 뭐."
사실 무서워해야 할게 송곳니가 있는 것만은 아니었지만. 그가 물린다니 어쩌니 했으니까 그런 식으로 도발하듯이 할 수 밖에 없는 거다. 그녀의 간드러진 발언과 웃는 얼굴 때문인지 얼굴이 더 붉어지는 아스텔을 보고 작게 키득거렸다. 그나 그녀나 이런 면으로는 크게 다를게 없구나 싶어서 속으론 안심되는 부분도 있다. 뭐랄까.. 공통점을 하나 더 찾은 느낌이랄까.
"잠시 말구 계속이어도 좋은데."
간질하게 종알거리고 작은 소리로 쿡쿡 웃던 그녀는 잠시만이라며 감싸지는 망토에 순순히 따랐다. 머리 위까지 덮였으면 아마 망토 위로 귀 모양의 뿔 두 개가 뾰족히 돋았겠지. 망토에 감싸여서 자연스럽게 아스텔에게 더 가까이 간 그녀는 그가 걷기 시작하자 그의 허리께를 살포시 잡고 같이 걸었다. 가려져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밖으로 나가는 길일까. 천천히, 그를 따라 걷던 그녀는 그가 멈추자 주춤 하며 같이 멈춰섰다. 왜 그럴까 싶어 고개를 들자 내려다보는 아스텔과 시선이 또 마주친다. Trick or Treat. 그녀를 바라보며 할로윈 하면 바로 나오는 그 문장을 꺼내길래, 노란 두 눈이 잠시 고민하듯 아래로 향한다. 그리고 잠시 후 반짝 올라와 아스텔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Trick?"
어차피 가진게 없으니 줄 수 있는게 없어서 선택할게 장난 뿐이었지만. 일부러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을 하고서 장난을 골라본다. 뒤로는 그를 붙잡은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가고 있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