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처럼 검고, 지옥과 같이 뜨겁고, 천사와 같이 순수하며 키스처럼 달콤하다는 것이 커피인데, 이젠 그냥 지옥과 같이 뜨겁고 악마도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며 동업을 제안할 입담밖에 남지 않았다……. 다 뒤졌다. 이스마엘은 노이즈 속에서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 다 뒤졌다. 따뜻한 인사를 전하러 가야겠다. 이제 슬럼의 평화 아닌 평화는 다시 박살 날 것이고, 슬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박은 속칭 늙은이들은 미친개를 이은 새로운 미친개가 나타났다며 떠들썩해질 것이다.. 너는 왕녀 나는 하인 우린 쌍둥이.. 누가 이 운명이 갈린 가여운 쌍엿 듀오를 말려주면 좋겠지만 사장님은 그럴 수 없는 것 같다. 자본주의 만세다…….
"응, 그 개*끼들."
입담 현지화를 끝냈는지 이젠 맞장구에도 욕이 자연스럽다. 이스마엘은 초반에 이것저것 이야기를 꺼내는 보검 세븐스에 대해 생각했다. 그 대화 시간에 따뜻하고 친근한 문장으로 맞이해주면 괜찮지 않을까? 이 씨* 새*들, 보검 들고 존* 설치다가 생중계 한 번 *됐다고 우리 탓하는 것 봐. 그런 실버 2 같은 판단력이니까 가디언즈 기강이 그렇게 *됐지. 지나가던 세븐스도 뭐 저런 개*같은 새*들이 다 있냐 하겠네……. 짱이지… 이 야부리를 봐… 아니 잠깐 말투 왜 이래.
"그렇지? 씨* 그 새*들 인사 안 받아주면 대가리에 문제 있는 거지."
사이버펑크 필수 요소는 흰 도시를 스쳐 지나가는 풀악셀 오토바이라고 하였던가… 지금 이스마엘은 당신이 급발진 풀악셀을 밟아 불이 붙은 길가에 풀악셀을 밟고 지나가, 고스트 라이더가 되고 말았다…. 잠깐의 정적을 뒤로 당신이 폭소를 터뜨릴 적, 이스마엘 또한 웃음을 터뜨렸다. 상황이 재밌어서 같은 이유가 있으면 좋을 텐데 본인이 해놓고 이건 좀 아니었나? 싶을 때 들은 극상의 칭찬 때문이다.
"아, *발 개 웃겨, 앞으로 또라이짓 많이 할 테니까 모른 척 하기만 해봐 씨*."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우리 이제 로벨리아 기합도 같이 받는 짱친 각이다 승우야!
// 이거 이거 이거 이 다음에 계속 욕 나오면 어쩌?지? 슬?슬? 막레?할?까? 아니 승우 왤케 ㅋㅋㅋㅋ 왤케 입담이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뇌파 감지 어쩌구 하는 귀와 꼬리를 다는 것만 아니었으면 바깥의 상황을 눈치챘을 지도 모른다. 아니지. 애초에 옷을 입겠다고 안 했으면. 아 그랬어야 했는데! 내가 왜 옷을 입어주겠다고 해서어어... 으아아아...
라는 소리 없는 절규가 레레시아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갔다. 커튼을 걷은 그 모습 그대로 굳어서 말이다. 잠깐 동안 숨 쉬는 것도 눈 깜빡이는 것도 잊었다. 너무 놀라서, 그리고 뒤늦게 찾아오는 부끄러움 때문에.
"와하, 하, 아하하하하!" "아, 앗, 아니 이게 그러니까!"
불안하게 흔들리던 방 안의 공기는 아스텔이 먼저 움직이는 걸로 깨졌다. 라라시아는 더 못 참겠다는 듯이 자리에 주저앉으며 숨 가쁘게 웃고, 레레시아는 뭐라도 말은 해야겠으나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어버버거렸다. 얼굴은 화끈한지 뜨거운건지 모르겠고 머릿속은 아주 그냥 참새 수백마리는 날아다니는 것 같다. 그 와중에 예쁜 옷이라던가 이상하지 않다던가 그런 말을 하니 상태이상이 중첩된다! 2차 부끄러움으로 그나마 트였던 말문까지 막혀버린 레레시아. 삐걱삐걱 움직이는 아스텔이 나가자마자 바닥에 거의 쓰러진 라라시아에게 달려가 붙잡고 흔들며 뒤늦은 난리를 쳤다.
"너 왜 문을 열어준 건데! 왜 말을 안 했냐고오오!" "히익, 흐, 그치, 그치만, 이렇게 될게 보이니까, 어떻게 참아... 히, 히힉..."
탈탈 털려가면서도 웃음을 멈출 기미가 안 보이는 라라시아를 매섭게 노려보자 아이고 그러다 눈 째진다- 라며 무언가 스윽 내민다. 검은색 메리제인 구두 한 켤레다. 이왕 입은 거 이거까지 신고, 커플은 나가서 놀기나 하라며 라라시아가 말했다. 말은 참 좋은데 히죽거리는 얼굴이 참 못 됐다. 째진다는 말에 눈을 더 가늘게 뜬 레레시아는 마지못해 받는 척 구두를 신고 대체 사이즈는 언제 쟀냐며 투덜거렸다.
"싫으면 벗어- 그렇지만 그거보다 잘 어울리는 건 없을 거얼?" "너 진짜, 어휴, 당분간 안 놀아준다. 그런 줄 알아."
에 너무해- 라는 라라시아를 내버려두고 얼른 방 밖으로 나간다. 아스텔은 멀리 갔던가 아니면 아직 그 앞에서 아직 벽에 머리를 박고 있었을까. 어디에 있든 찾아내서 잡았겠지.
"아스텔!"
긴 망토자락이든 셔츠의 소매든 잡아 세우고. 잠시간 뚱한 얼굴과 착 가라앉은 고양이 귀를 하고 바라보다가-
"그, 옷, 만 이쁘다고 하고 가면 다야?! 옷 입은 건 난데..."
대뜸 그런 말을 내뱉고 혼자 툴툴댄다. 뭐 대충 듣자면 들어오라곤 안 했지만 가라고도 안 했는데, 타이밍은 뭐 나쁜 건 아니었는데, 같은 말들이다. 그리고 조금 선명히 들리는 말도 있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때문에 정말로 자신이 안 좋은 타이밍에 왔다는 것을 그는 직감할 수 있었다. 다음부터는 미리 연락을 하고 노크를 하는 쪽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니. 물론 그냥 노크를 해도 상관이 없으나 라라시아의 존재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자신의 실수였다. 최근 조금 느슨해진 것일까. 조금 감각을 날카롭게 갈고 닦는 것이 좋겠다고 아스텔은 생각했다. 내일은 하루종일 훈련장에서 훈련에 집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거니 생각을 했으나 벽에 콩 머리를 부딪혔을 무렵, 자신의 옷자락이 잡히는 것을 느끼며 아스텔은 발걸음을 멈췄다.
"아, 아니. 그게... 뭔가 지금은 조금 타이밍이 이상하지 않았나 싶어서. ...뭔가 할로윈 옷을 입고 있었던 거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보인 거잖아. ...그, 많이 당황한 것 같아서."
적어도 지금은 자신이 슬쩍 사라져주는 것이 정답이었나 했는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왜 그냥 나가냐는 그 말에 나름대로 변명하듯 그렇게 이야기를 하나 자신도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어서 그는 말을 얼버무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까 이럴 땐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나름대로 고민을 한 탓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나가면 그건 아닌 것 같아서. ...진짜로 예뻐. 아주 잠깐, 정말로 잠깐... 생각이 정지해버릴 정도로. ...평소 모습과는 좀 다른 느낌이니까."
아주 살짝 혼란 상태이긴 했는지 그는 그렇게 주절주절 말을 했으나 이내 곧 숨을 내뱉으며 다시 뒤로 돌아 그녀를 제대로 바라봤다. 축 쳐진 고양이 귀가 우선 가장 먼저 들어왔다. 저거 움직이는건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아스텔은 아주 작은 웃음소리를 냈다.
"...풀 죽은거야? ...미안. ...다시 말하지만 지금은 내가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그 고양이 귀하고 밖으로 나가려고? 나는 딱히 상관은 없을 것 같지만 안 부끄럽겠어?"
"전부터 보고 있었어! 첫눈에 반했어! 사귀어 줄래?" 이스마엘: 아, 그게.. 저도 당신을 전부터 보고 있었습니다. 줄곧. 그렇지만.. 본다는 그 시선이 성애적인 의미가 아니며, 저는 그런 의미로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스마엘: 미안합니다. 이스마엘: ..예? 이유라도 듣고 싶다뇨..? 이스마엘: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비롯되어.. 일을 그르치고 싶지 않습니다. 스스로의 판단이 흐려지는 건.. 용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안합니다.
"24시간 후에 죽는다면 뭘 하고 싶어?" 이스마엘: 글쎄요? 편지를 남기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제가 죽은 뒤 남긴 편지를 읽을 수 있겠지요. 감사함과 미안함을 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달리 수명을 늘릴 방법을 찾기 보다는, 예. 그 이후의 세계에서 이상향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아버지도 그곳에 계시겠지요.
"어떤 부분에 성적인 감정을 느껴?" 이스마엘: 예? 그러니까- 그게 무슨..? 이스마엘: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파렴치하군요.. (이스마엘은 노이즈 너머로도 느껴질 정도의 경악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타이밍이라. 분명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게 나쁘다는 의미일 리가 있나. 많이 당황하고 놀라고 부끄러웠지만 준비 자체는 다 된 모습이었으니. 어찌 보면 최적인 때였다고 할 수도 있지. 그리고 원래 치장은 갓 마쳤을 때가 가장 보기 좋은 법이다. 그게 정석이긴 한데, 그래도 역시 부끄러운 건 부끄럽다.
"그건 그런데, 어, 준비는 다 한 건데..."
얼버무리는 아스텔의 말 뒤로 똑같이 어물어물하는 레레시아의 말 이어진다. 뭘까 이 둘. 누가 지나가면서 보면 물음표 서넛은 찍을 상황을 이어가다가, 예쁘다는 말에 레레시아의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너어 진짜.. 깜빡이 좀 키고 들어와아...!"
그 와중에 아스텔이 돌아보기까지 하자 귀가 위로 세워졌다가 다시 팍 쳐진다. 허리 뒤쪽으론 꼬리가 불만인지 뭔지 모를 이유로 허공을 팍팍 휘젓고 있고.
그가 뒤로 돌 적 손을 놓은 그녀는 그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붉어진 얼굴을 감추고 속으로 소리 없는 비명을 한바탕 질러내곤, 손가락 사이로 눈만 빼꼼 내밀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가듯 하얀 고양이 귀도 슬그머니 일어선다. 그제야 아스텔의 차림을 한 번 훑어본 그녀가 불만인지 무언지 모를 목소리를 내었다.
"그런 거 아니거든. 그냥 좀 부끄러웠, 던 거지.. 뭐, 어차피 나가면 다 비슷비슷할 거 아냐."
너도 그런 옷 입고 있구. 라며 아스텔의 망토를 잡아 슬쩍 당겼다가 놓는다. 그런 옷이라기엔 망토 말고 평소랑 크게 다른게 없어보이는데. 아무튼 같이 나가면 다 비슷하지 않겠냐며 종알거렸다. 마을에서도 노는 분위기인 듯 하니까. 그러고 손을 뒤로 모아 쥐고서 입술을 비죽 내밀고 우물쭈물하다가 그런 말을 톡 던져본다.
"그... 너랑 같이 있으면 부끄럽고 그런 거 다 됐고 그냥 좋다구. ...좀 전은 놀라서 그런 거였구."
그렇게 말해놓고 힐끔 눈치 한 번 본다. 그리고 옆으로 가서 머뭇머뭇 팔을 잡으며 같이 나갈거야? 하는 물음을 눈으로 보냈을 것이다.
"평소랑 달라. 평소에는 에델바이스 전용 제복을 입고 다니지. 이런 옷을 입진 않는다고. 제복차림과는 엄연히 다른거야. 이건!"
뭔가 평소에 다른 것이 없어보인다는 말에 그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물론 파격적으로 확 달라진 것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고증을 살려서 차려입은 옷이었다. 이를테면 땅까지 흘러내리는 이 오버핏 망토라던가. 허나 역시 분위기가 덜 사는 것일까. 이빨을 지금이라도 끼워야하나. 그렇게 생각을 하지만 지금 와서 준비를 새로 한다고 할 정도로 그는 무신경한 존재는 아니었다. 아무튼 그녀가 말은 저렇게 해도 일단 상당히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아스텔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나는 살아온 삶이 삶이고, 당장 어떻게든 살아가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산 기간이 많아서 솔직히 말해서 살고 싶다라는 것 외에는 크게 욕심을 부려본 적은 없는데 말이야."
그렇게 뜸을 들인 후, 아스텔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이내 그는 그녀의 옷차림을 가만히 바라봤다. 역시 보통 예쁜 옷이 아니었다. 아마도 이 시기가 아니면 볼 수 없을 옷. 그야말로 우아하면서도 귀엽고 예쁜 고양이 같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던 그는 시선을 살짝 돌린 후에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지금 옷차림. 남들에게 보여주기는 조금 싫어. ...나만 보고 싶어. ...하지만 이건 내 개인 욕심이니까..."
당연하지만 이보다 더 나아가서 뭔가를 표현하는 것은 집착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는 그런 것을 굳이 하고 싶진 않았다. 자신도 그렇지만 그녀에게도 개인 인간관계가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있을테니까. 그렇기에 그는 그녀에게 다가간 후에 살며시 망토를 펼친 후, 그녀의 몸을 감싸듯 그렇게 망토를 둘렀다.
"...아지트 내에서는 이렇게 뱀파이어에게 사로잡힌 이로 해달라고 하면 해줄 수 있을까? 밖에서는... 안 감쌀테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욕심을 강하게 내고 싶진 않아. 너에게도 불편한 일일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