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산미 있고 부드럽다. 황설탕 스틱 하나를 넣으면 완벽할 것이다. 이스마엘은 잔을 내려두고 슈가 스틱의 종이 포장을 찢다가, 고개를 들었다. 노이즈가 규칙적으로 지직 거렸다. 이스마엘이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노이즈를 가리켰지만, 손가락은 노이즈에 삼켜져 한마디가 뚝 사라지고 말았다.
"아, 이거 말입니까?"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스마엘은 노이즈 너머에서 환히 웃었다. "저는 인간보다는 조금 더 높은 경지를 꿈꾸는 부류기 때문입니다. 개조를 통해 새로운 인류로 거듭난다, 트랜스휴먼이라고 하죠!" 이스마엘도 기술이 발전하며 본인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속칭 트랜스휴먼이라 지칭하는 부류였나 보다. 이내 "비밀이 사람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고 하지요." 같은 농담도 덧붙이는 걸 보니 그저 숨기고 싶어서 숨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황설탕이 에스프레소에 쏟아진다. 적당하게 가라앉은 설탕을 뒤로 에스프레소를 단숨에 들이키자 녹지 않은 설탕 결정이 잔 안에 모래처럼 남아있었다. 뜨거운 에스프레소, 황설탕 한 스푼, 단숨에 들이키고 남는 단맛과 향. 정석적으로 에스프레소를 즐긴 이스마엘은 탄산수로 입가심을 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음.. 친숙한 게 아닌가? 적어도 이스마엘은 그랬기 때문인지 당신의 되물음에 어떻게 답할지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 친숙한 게 맞나 보다! 활짝 펴진 미소를 보며 이스마엘의 노이즈도 다시 표정을 띠었다. ☺. 이스마엘이 반말이라는 말에 노이즈 너머로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건 반영되지 못한 듯싶다. 그러니까……. 아! 그러긴 하겠다. 사람은 공적인 모습보다 사적인 모습에 더 호감을 느끼니까 반말이 더 효과적이겠지! 이스마엘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니.. 알겠..어?"
느린 진도, 편안한 수업환경.. 대학원생 이스마엘은 논문과 ppt를 수월하게 준비할.. 수 없었다. 여승우 교수의 급발진은 인권이 세 배나 없는 대학원생, 이스마엘 H. 케르스트이에게 숟가락을 쥐여주고 저기 산을 파내라 명령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저 산 보여? 지금부터 너는 저걸 파서.. 옮기는 거야. 이건 help가 아니라 do it이란다. 이스마엘의 눈이 동그랗게 뜨이자 그제야 표정이 페이시에 반영이 됐다.
"……그렇, 습.. 그런 거야..?"
교수님, 진도가 너무 빠릅니다……. 나 학점은 받을 수 있겠지? 고민도 잠시, 당신의 입에서 흐른 말과 예시로 들어준 행동이 친숙하다. 슬럼에서 자신을 발견한 사람들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이스마엘은 깨달음을 얻었다. 아, 그 사람들.. 나를 반갑게 대하며 인사까지 해준 거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그 사람들 주머니에서 돈이나 쌔비고.. 다정하게 굴어줬는데!
카푸치노의 휘핑이 사그라들듯이 핫초코의 마시멜로도 녹아들어간다. 그 위로 오가는 대화는 가벼운 목소리에 비해 무거운 내용이다. 갓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할 얘기는 아니었나 싶어 화두를 돌릴까 했지만. 이미 말을 꺼낸 지금이 아니면 나중은 없을 것 같아 대화를 계속하기로 한다. 단지 대화의 끝에 그녀가 그에게, 혹은 그가 그녀에게 넌덜머리 나지 않길 바랄 뿐.
"허. 고민 좀 하려나 싶었는데 꽤 명쾌한 생각을 갖고 있었네? 맞지. 누군가가 너에게 감정을 표해도 그건 너에게 내는게 아니니 솔직히 신경 쓸 이유가 없지. 내 분노도 그런 맥락이었고."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 한 마디로 정리되는 쥬데카의 대답은 레레시아가 정말 의외라는 표정을 짓게 만들었다. 우울한 면상으로 고민하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정신이 단단한 듯 했다. 아니면 그렇게 영향 받을 멘탈이 이미 없던가. 어느 쪽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휘핑 죽은 카푸치노를 마신다. 입술에 가볍게 묻어나는 휘핑의 잔재를 혀로 훑고 잔을 쥔 채로 내려놓으며 말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증오를 감당한다는 생각 자체를 말아야 하지 않나 싶은데. 이제 아닌데 어쩌라고, 배째라는 식으로 일관해. 하라는 대로 해줄 바에는."
미안합니다. 사과하라면 하겠습니다. 였던가. 한때 눈 먼 분노를 그에게 드러냈던 사람으로써 그 말 만큼은 듣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더욱 분노해서가 아니다. 그녀의 분노를 표출할 곳이 옳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우연히 그 방향을 바로잡아 어긋나지 않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모른다. 그러니 어설픈 무언가는 해줄 생각 말라는 말을 하는 목소리가 잠시지만 차가웠을지도 모르겠다.
식은 목소리를 데우듯 카푸치노를 마시던 레레시아에게 느닷없는 질문이 들린 건, 그의 웃는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는 개인적 견해를 내놓은 후였다. 정확히는 쥬데카 나름대로의 말을 한 후여서, 그녀는 하려던 말을 잠시 삼키고 쥬데카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런 걸 묻는 의도가 무엇인지 살피듯. 조금 후에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며 그에 대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잘 모르겠다. 웃어도 울어도 눈물이 나고. 감정의 시작점이 다른가 하면 그건 또 아닌 거 같고. 생각해보니 딱히 차이가 없는 거 같은데."
그러니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라고. 말 대신 고갯짓을 까딱 해보인다. 하얀 머리칼이 살랑 흔들리는 그녀의 얼굴은 무심함 그 자체였겠지.
그렇게 물었지만 정말로 더 깊이 알고자 한 말은 아니었을 거다. 그냥 해본 소린지 솔직하게 말한 건지 모르겠네. 더 캐묻는다면 확실히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 정도의 궁금증까지는 아니라. 적당히 수긍한 그는 이스마엘의 대답에 턱을 짚고 골똘히 무언갈 생각하는 모양새가 됐다. 훌륭한 입담이라…… 의미야 어떻든 좋은 말 듣게 되었으니 이왕 하는 것 제대로 가르쳐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어떻게 해야 최적의 싸가지를 전수해줄 수 있을까. 잠깐의 고민 끝에 내려진 결론은 이것이다.
"반말도 반말 나름인데 넌 씨*, 너무 친절해. 더 예의 없고 공격적으로 해라. 대답은 '알겠어'가 아니라 '오냐', '알았다', '어쩌라고 씨*', 그리고 존* 성의없는 호응, 중지 올려서 보여주기 중 하나다. 알아들었냐, 새*야?"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한껏 낮게 목소리 깐 수련회 교관의 바이브가 느껴진다……. 알아들었습니까? 목소리가 작습니다악! 둘 다 수련회는커녕 학교도 못 가봤다는 건 당장은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갈 사실은, 그는 은근히 정직한 구석이 있으며 저 역시도 모르는 것 많은 사람이라 세상물정 잘 모르는 사람 놀려먹는 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은 무어냐, 그도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스마엘이 제 말투를 두고 친숙하다 한 말이 진심이었을 줄은. 욕을 잘해서 부럽다는 뜻을 적당히 좋게 표현해준 것이겠거니 싶었지, 그는 설마하니 이스마엘이 욕을 정말로 친숙한 말로 받아들일 거라고는 생각 못하고 있었다…….
"맞은 놈이 말로 대답하는 쪽이면 그냥 대화하면 되고, 그 새*도 주먹질을 하려고 하면 뒤지게 싸워야지? 인사를 존* 그렇게 했으니까 답도 그딴 식으로 돌아오는 건 당연한 법칙이지."
오해와 오해가 겹친 착각의 장은 멈출 줄 모르고 열기를 더해가기만 한다. 조심스러운 질문에 그는 어느 때보다도 확신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민할 시간은 충분했으니까요, 그렇다고 지금은 고민이 없냐면 아닙니다만 어느 정도는 정리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녀의 분노도 마찬가지의 맥락이었다. 라는 말에는 말없이 핫초코를 내려다보다가 한 모금 입 안에 머금는다. 따스한 감각이 입 안에 퍼지고, 약간 덩어리져 남은 마시멜로를 느끼면서 넘기니 들려오는 말에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연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게 증오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단순히 화풀이를 하고 싶을지도 모르죠. 말마따나 지금의 저는 에델바이스지 가디언즈가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가디언즈로 일했던 시간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래도 말씀은 감사합니다, 염두에 두도록 하죠."
아무리 이렇게 이야기하겠다, 저렇게 대응하겠다 다짐하더라도 막상 상황이 닥쳐오면 당황하게 되는 게 네 본질이었다. 항상 불안한 생각이 주변에 감도는데 그 안에서 신경쇠약에 걸려 나자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너 자신을 이해하고 붙잡아야만 했으므로... 결론적으로 만약의 상황에 대해 할 수 있는 만큼, 많이, 길게 생각하되 너무 연연하지는 않는다. 라는 게 네 판단이었다.
"순순히 전부 받아들이겠다. 같은 뜻이 아니었으니까요."
멍청이가 아닌 이상, 자신이 저지른 일을 수십 초 안에 잊어버리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자신의 행동이 합리적인지 어떤지 정도는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에, 머리에 열이 올라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는 상대를 부러뜨릴 생각이 아닌 다음에야 강대강으로 맞서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너는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눈물조차도 웃음과 울음을 구분하는 경계가 될 수 없다면... 웃는지 우는지를 어떻게 알까요, 저 스스로도 잘 모르겠습니다."
웃는다. 단순히 눈꼬리를 휘고, 입꼬리를 당겨 올리면 그게 웃음인가? 아하하, 하고 흔히들 생각하는 웃음소리를 낸다면 그게 웃음인가? 반대로 울부짖는 건 반드시 울음이려나, 그게 아니라면 네가 웃는 건 웃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가. 다시 한 모금, 따스한 초코를 입 안에 머금었다가 넘긴 너는, 달콤한 잔향에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적어도 저는 웃는 것처럼 보였나 보군요."
분명 마음에 들지 않아하겠지만, 너는 눈을 내리깔며 옅게 미소를 걸쳤다. 핫초코의 향미에 이끌려서 그러는 것인 양.
언젠가는 뜯어고칠 의향이 있다는 듯한 발언을 뒤로 이스마엘은 괜히 손목 주변을 만지작 대다 웃는 이모티콘을 다시금 그려냈다. 그리고 이 대화는 일단락하기로 했다. 잡담을 더 이어가기엔 여승우 교수의 교양 수업인 사회성과 싸가지, 최적의 욕설과의 상관관계 수업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교수님, 수업이 급발진이라도 저는 열심히 수강해서 논문도 작성하고 자유로워질게요…….
"공격적으로……?"
친절하기 때문에 반감을 살 수 있다는 건가? 이스마엘은 예의 없고 공격적인 언어와 행동을 잠시 곱씹는다. 할 수 있을까? 교관의 말에 대꾸하지 않습니다! 실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 알아들었냐는 대답을 꺼내는 것도 잠시 머뭇거림이 필요했다. 노이즈 너머로 고민하던 이스마엘이 조심스레 입을 벌렸다.
"음.. 그러니까.. 알겠다니까 이 *……?"
이게 맞나? 이스마엘은 혼란스러운 것치고 제법 야부리를 잘 털었다……. 당신이 서로 장난을 친다고, 그리고 적당히 입발린 소리를 한다 착각하는 것과 달리 이 모범적인 사이버무스메는 진심인 것이다.
"아?"
슬럼 사람들은 진짜 내게 친절했던 거구나. 이쪽도 오해와 오해를 겹쳐 쌓아가더니 미래의 업보까지 쌓기 시작했다. 그 열기가 정점이 된 순간은 당신의 목소리였다.
"1회 이상..?"
나……. 이제 멋진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거야! 이스마엘 또한 사뭇 확신 가득한 문장을 뱉었으니..
"인간관계 쌓기 존* 어렵네 *……. 난 그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친해지고 싶단 새끼들 눈치도 못 챈 거 아니야."
장학금까지 야무지게 긁어모았다.
"*됐네."
마지막 발언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현 상황을 보고 빙의하셨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승우 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가_침묵하기로_한_것은 자기 자신의 일에 관해서라면 침묵이랄 게 없어.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 안 하는 것뿐이지 비밀 삼은 것까지는 아니거든. 자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비밀이나 약속 같은 것들에 침묵하는 쪽이야.
자캐가_만약_고양이라면 러시안블루나 젖소무늬 얼룩고양이 정도? 말 많고 순함... 장난 칠 때도 집사 세게 안 물고 별로 안 할큄... 실수로 세게 물어서 인간이 아프다고 엄살 부리면 슬쩍 도망가서 미안해함... 자기가 먼저 앵기지는 않지만 인간이 주물럭거려도 가만히 있어줌... 화나면 말 완전 많아지고 샤우팅캣이 됨 웅와아악냨먁!!!!이럼...
자캐는_플러팅을_알아먹는_눈치가_얼마나_좋은편 ◠‿◠👍🏻 이모티콘만으로도 충분한 답이 되었을 거라 믿습니다...
승우냥이 샤우팅캣인거 넘 귀여워.... 화난 상황에 어이구 화났어요 하고 달래주다가 앞발로 맞아보고 싶다;(어긋난 욕망) 침묵하는 승우 멋진걸~~ 하다가 갑자기 적폐지만 플러팅 눈치 보고 '쟤가 비밀이 있구나..' 보다는 '어 *발 나한테 이런 얘기를 했구나...'로 넘어갈 것 같은 사안도 좀 있는 밍맹몽 느낌도 있는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