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레시아가 언제 넘칠지 모를 만큼 가득 찬 술잔 같다면 쥬데카는 언제 깨질까 위태로운 유리잔 같다고 생각한다. 넘친 건 시간을 들여 다시 채우면 되지만 깨진 건 돌이킬 수 없다. 설령 되돌린다 해도 이음새가 남는다. 스스로가 처음과 같지 않음을 직시했을 때,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 위태로움이 눈 앞의 쥬데카에게서 엿보인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말만 그렇게 하고 막상 현실로 닥치면 마냥 받아들일 거 같으니까 한 소리야.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지만 그 과거에 매달린 사람의 애먼 헛짓거리에 어울려 줄 이유는 되지 않아."
과도한 참견 일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할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했다. 솔직히 그 말이 돌아와 꽂히는게 없지는 않았지만. 내심이 아프긴 하지만 그것이 말을 안 할 이유는 되지 않기에. 많은 생각을 꾹 눌러 담은 듯한 한두 마디만 내놓고 더 말꼬리를 잡진 않았다. 이미 화두는 서서히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그런가."
눈물조차 경계가 될 수 없다면. 웃는 것과 우는 것을 어떻게 구분할까. 그 역시 잘 모르겠다며 이어진 말에 시선을 내리깐 채로 중얼거린다. 보지 않았지만 저 얼굴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알 것 같다. 하지만 그걸 이전처럼 말하기는 어려워졌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시선을 돌려 창 쪽을 보았다. 투명한 유리 너머 어둑한 바깥을 조용히 응시하다가, 입술에 호선을 띄우며 말했다.
"떠오르는 말은 많지만 하진 않겠어. 나는 네가 아니니 네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고 그 부분까지는 내가 손 댈 것이 아닌거 같거든. 솔직히 귀찮아. 스스로 잘 모르겠다면 너를 보는 누군가가 말해주는대로 판단하면 되는 거 아닌가. 네가 어떤 의도를 갖고 그것을 내보이는 거라고 확실히 정한게 아니라면, 누군가 네 표현에 태클을 걸어도 할 말 없지 않나 싶거든. 적어도 나는 그랬으니까."
그녀는 불과 얼마 전까지 라라시아의 가면을 쓰고 생활해왔다. 그렇게 보이기 위해, 라는 명확한 목적을 갖고. 그런 확실함이 보이지 않는 쥬데카의 표현을 그녀는 잘 모르겠기에 그냥 툭 까놓고 얘기했다. 웃는 것과 우는 것의 경계 따위가 중요한게 아니라 스스로가 선을 긋는게 중요한 것 아니냐고. 판단은 알아서 하란 의미로 어깨를 작게 으쓱인다. 그리고 음료 한 모금 마시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쥬데카를 보며 다른 질문을 꺼낸다.
"재미없는 얘기는 이쯤 할까. 음. 최근 팀원들하고는 어땠어? 친구라던가 생겼어?"
한 팔을 테이블에 올려 턱을 괴고 지그시 응시하는 금빛 시선에서 약간의 놀릴 거리를 찾는 기미가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생후 3개월인 파티마는 곧바로 유모에게 맡겨졌으나 유모라는 인간들은 세븐스 아기에게 자기 젖을 먹이는 걸 몹시 탐탁잖아했다. 그들은 아직 옹알이 밖에 하지 못하는 아기가 자기를 죽이기라도 할까봐 겁을 잔뜩 먹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파티마는 모유 대신에 분유를 먹어야 했다. 종종 이복언니 프란시스카가 그 고사리 손으로 아기를 안고 젖병을 들어 분유를 먹이기도 했지만, 그럴때마다 저지 당하거나 어른들의 불안에 가득 찬 눈빛을 받아야했다.
프란시스카는 요람에 누운 여동생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자매의 아버지 펠리페는 맏딸의 행동이 못마땅했으나 프란시스카가 하나뿐인 자식이기에 엄격히 주의를 주지 못했고, 펠리페의 본처이자 겁이 많은 카타리나는 파티마를 두려워해 거의 작은 악마 취급을 하였다. 조금이라도 성질을 건드렸다간 2배, 3배, 아니 100배는 더 크게 앙갚음 하리라 여겨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한 탓에 파티마는 계모의 괴롭힘을 피할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고독 외엔 얻은 것이 없었다. 괴롭힘보다는 무관심이 더 괴롭다고 하지 않는가?
파티마는 얼마 전 요절한 펠리페의 동생 후안 마르코의 양녀로 입적되었다. 팔자에도 없던 세븐스 양녀가 생긴 후안 마르코의 아내 카를라 빅토리아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을 맞은 격이었기에 길길이 날뛰었으나, 그녀가 직접 기르는 것은 아니라는 해명에 그제서야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세븐스를 자기네 호적에 올린 댓가로 많은 돈을 요구해 한바탕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이렇듯 영원히 카시야스 가문의 일원일 양 굴던 카를라는 얼마 안 가 다른 남자와 재혼했다.
파티마의 평온하면서도 평온하지 않은 일상은 앞으로도 문제 없이 이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파티마가 2살 되던 해에 변수가 하나 생겼다. 프란시스카의 동복동생이자 파티마의 이복동생, 펠리페의 후계자인 카를로스 펠리페가 태어난 것이다.
알겠다니까 이 *.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초심자의 시도치고는 나쁘지 않다. 개선점을 말해야 한다면 많을 터이나 그는 첫 시도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래, 지금은 욕의 내용보다는 자신감이 더 중요하다. 용기를 가지고 시도하다 보면 실력은 덩달아 늘기 마련이다. 지금 가르쳐주는 내용이 온갖 비속어와 욕설만 아니었다면 꽤나 훌륭한 교육자의 마음을 가지고, 그는 이스마엘에게 따뜻한 격려의 한 마디를 던져주었다.
"야, 씨* 개** 존* 더 확신을 가지라고. 아까 내가 넌 할 수 있는 새*라고 했잖아, 미**아."
그는 그렇게 말하며 척하고… 중지를 올렸다……. 그러니까 이것도 한 번 해보라고…….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만의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고 완곡한 표현이라 이해했으니 그의 사회성도 꽤나 좋아졌다는 뜻이다. 그것만은 호사였다. 그건 분명히 좋은 징조이긴 한데…., 지금 이 상황을 보면 과연 순수하게 좋아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차라리 문장 그대로 알아들었다면 이런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게다가 그는 이스마엘의 발언에서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했다. 늘 배우는 쪽의 입장에만 있던 그가 자신 있는 분야를 가르치는 이 상황에 재미를 느끼는 바람에, 미묘하게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을 놓쳐버리고 만 것이다.
"나중에 다시 보게 되면 **, 사과하면서 지금까지 했던 거 돌려주면 되지. 존* 다들 이해해줄걸."
케 학부생은 교수의 마음에 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팔짱을 끼고 흡족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의 비장(秘藏)이자 언어습관의 진수가 전수되려는 순간이다.
"개, *(SS-word), *(J-word), 이 정도만 알아도 욕은 다 아는 거지, *."
그의 인연 중에서도 세상 어딘가에서 이 극악무도하고 무참한 참사에 통탄할 소중한 누군가가…… 없었다. 그의 인생에는 상식적인 선의 보호자라는 개념이 전무했다. 젠장, 이 괴상한 짓거리를 하늘에서라도 말려줄 사람이 없다!
>>296 그런거였나요?! 사실은 엔주 저번에 멜피가 뭐라 부르고 있었는지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고 있어서 몰랐네요... ㅋㅋㅋ (멍청) 상황... 으음~ 엔주도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은 아니어서 이렇다 할 상황이 떠오르지 않는데요... 아니면 그냥 다음에 돌리는 걸로 하죠~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로 죽을 뻔한 일이다. 아직도 그때의 감각이 기억난다. 폐가 얼어붙고 얼음 덩이를 기도에 밀어넣는 느낌, 얼굴은 타오를 듯이 화끈거리고 감각이 미쳐 돌아가 참을 수 없는 더위까지 느꼈었다. 옷을 벗으면 정말로 얼어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꾹 참으면서 싸웠다. 이성이라는 것이 남아있지 않고 생존 본능과 총을 쏜다는 반복 행동에 모든 것을 맡겼다.
글라키에스와의 전투를 생각했을 때, 바닥의 물이 발에 튀어 화들짝 놀랐다.
"앗 차가워라"
남들 다칠 만큼 다쳤다는 그의 말에 답한다.
“안 다치는 게 좋은 거야. 그리고 어쨌든 그 괴물, 아니 멍청이한테서 살아남았잖아? 그럼 잘 싸운거지.”
순간적으로 글라키에스를 괴물이라 지칭했다. 곧이어 그는 그녀를 멍청이라 정정하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행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