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옷자락을 잡아오려는걸 그냥 멀뚱히 응시하다가도 다시 시선을 호수로 돌린다. 옷이 잡히면 딱히 다른 반응은 없지만, 당신이 몸을 기울여 오는것이 은은히 느껴지면 눈동자만 당신 쪽으로 굴린다. 당신이 냄새 운운하는걸 들으면 그의 시선이 당신의 코로 향하는게 보일 테다. 능력을 쓴 것인지 궁금했을 뿐이였으니, 코가 인간 코였든 강아지의 코였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것이다.
“어, 맞아. 이제 한 5 시간 있었나.”
그래도 낚시를 시작한지는 이제 겨우 한 시간 정도밖에 안 되었을 것이다. 여전히 그득한 미끼 통이 그것을 증명하려는 듯, 지렁이들은 여전히 생기 넘치는 채로 꾸물텅 거린다. 당신이 낚시대를 받으며 미간을 찌푸리면 그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도. 말이 좋아서 인내의 스포츠지, 그냥 운빨 도박 비슷한거 아니야?”
낚시를 진심으로 즐거워 하던 이들은 인생이 불행으로 가득한 인물들 뿐이라고 반쯤 농담삼아 말한다. 공통점 찾아서 즐겁다는 것일까? 눈이 접혀 미소짓고 있다가도 당신이 질문을 해 오는 것이 들리면 다시금 눈을 뜬다.
"으윽, 윽.. 흑.. 난, 난 살아.. 어떻게든 살아.. 살 거야.. 살아남아서, 이어야 해,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이.. 어떡하지, 어떡해야.. 나.. 난.."
나뒹구는 총, 비명, 그 뒤로 둔탁한 소리는 몇 번이고 이어졌다. 피로 떡진 머리를 뒤로하며 불안정한 숨을 뱉더니 흉하게 살갗이 까진 손을 기도하듯 모으며 부르르 떨었다. 손에 쥐인 벽돌이 새빨갰다. 미동도 없는 매매업자를 뒤로, 이스마엘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눈물을 떨궜다.
"미안, 미안해요.. 미안.."
난 살아. 가슴팍을 타고 흐르는 피와 눈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도 눈은 서슬 퍼렇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남성이 조심스럽게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얘."
*
"왜 웃지?"
훈련장. 제는 미쳤냐는 듯 이스마엘을 쳐다봤다. 머리가 깨졌음에도 시시덕대는 모습이 징그러운지 눈살을 찌푸렸다.
"흥분돼서……." "뭐?" "되묻지 마십시오."
이스마엘은 머리를 쓸어넘겼다. 거칠게 피를 뱉으며 비틀대더니 손 하나를 들어 까딱였다. 마저 덤비라는 듯.
뭐가 문제일까. 되묻는 말은 들었지만 레레시아는 잠시 대답을 미뤘다. 그 전에 쥬데카의 다른 질문이 들리기도 해서 말이다. 커피 좋아하냐는 물음에 그다지라고 대답을 해주자 혼자 나름 추측한 듯이 중얼거리는데.
"향보다는 맛이지. 나는 맛에 여운이 남는 걸 좋아하는데 커피는 너무 깔끔하게 씻어버리니까. 그래야 할 때는 마시는 거고."
듣고선 그건 아니라고 정정해주었다. 사실 뭘 먹을 때 따지지 않는다는게 그녀의 방식이긴 했지만. 이제와 말하기는 귀찮으니 넘어가자.
지난 번 전투에서 그가 전직 가디언즈였던 걸 공개적으로 밝힌 소감 그 비슷한 걸 물으니 여러 시야로 생각한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중간에 또 웃는 얼굴이 보인다. 곤란한 듯한 미소를 보는 그녀의 눈이 불만스럽게 가늘어진다. 그대로 흘기듯 응시하다가, 쟁반을 든 점원이 테이블로 다가오자 엎드린 상체를 일으킨다. 약간의 휘핑과 하얀 마시멜로 동동 띄워진 핫초코는 쥬데카의 앞에, 부드러운 갈색 시나몬 듬뿍 뿌려진 카푸치노는 머들러와 함께 그녀의 앞으로. 뜨거우니 조심하라고 해주곤 머들러로 휘핑을 살살 무너뜨리며 말한다.
"뭐, 네가 저항군에 있다는게 세간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칠 건 분명하지. 아마 생중계였던거 같은데. 그걸로 아직 바깥에 있을 세븐스들이 조금이나마 버텨준다면 그보다 좋을 건 없을 거라고 생각해."
포기하고 생을 놓아버리기보다는 조금만 더, 라는 마음으로 버텨준다면 그 안에 어떻게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처형장에서 구했던 아이들과 그 세븐스들처럼.
"내보내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을 거야. 널 받아들인게 로벨리아인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 게다가 실적도 제법 올리고 있는 편이고. 불만이 있어도 대놓고 말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뒤에서 말 나오는 건 염두해두는게 좋을 걸."
한마음 한뜻으로 모였어도 결국 개개인의 사람일 뿐이다. 그녀는 과거 그녀의 내심을 건드렸던 뒷담화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기껏 나온 음료를 마시진 않고 계속 휘핑만 녹여가며 조금 더 말했다.
"좀 전에 네 웃는 얼굴이 뭐가 문제냐고 했었나. 음. 뭐라고 할까. 왜 이 상황에서 웃는 거지? 같은 생각이 든달까. 저번에도 그래. 순간순간 웃어서 상황을 흘려보내려는 거 같아서 마음에 안 들어. 처음엔 감정 표현 할 줄 모르나 했는데 제대로 화는 내니까 그건 아닌 거 같고. 뭐- 네 나름의 처세술 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미워서 볼 땡기고 싶은 그런 얼굴이었다 이거야."
별로 담아두진 말어. 간단한 말 뒤엔 어깨를 작게 으쓱이고 그제야 휘핑 다 죽은 카푸치노를 홀짝였다.
얼굴을 덮은 화면 너머로 잔이 들락거리는 모습을 새삼 낯선 눈으로 바라본다. 저거 볼 때마다 신기하네. 대화할 때의 표정, 그러니까 감정 표현 신호까지는 슬슬 적응했지만 그 안으로 무언가가 드나드는 건 좀 기분이 묘하다. 남의 얼굴을 두고 참견할 마음은 없으니 군소리는 안 했지만.
"근데 씨* 그건 왜 하고 다니는 거냐?"
그렇다고 그게 안 물어보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잖아도 은근히 궁금했는데 이참에 물어보면 딱이겠다, 그는 제 얼굴 언저리를 손가락으로 휙 가리켰다. 그렇게 한 번 묻고는 여태 방치되다시피 했던 잔에 손을 가져갔다.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아메리카노의 씁쓸한 향이 코앞을 얼쩡거릴 무렵, 들려오는 말에 그는 잔을 도로 떼어내고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친숙? 내가 잘못 들었나. 눈썹 한쪽이 비뚜름하게 오르며 눈살이 미미하게 찌푸러든다. 그만큼 황당하다는 뜻이다.
"이걸 친숙하다고 하는 새*는 처음인데."
욕을 잘한다느니 싸가지 없는 게 마음에 든다니 하는 소리를 들은 경험이야 있지만 그것도 다 부정성으로 찬사를 받은 것 아닌가. 친숙하다니, 의미 자체를 좋게 받아들이기는 처음이다. 그 역시 상식에 관해서는 다소 채워가야 할 부분 많은 사람이지만 적어도 제 말버릇이 사근사근하고 살갑지 않다는 것만은 알았다. 기본적으로 퉁명스러우니 오해 사기에 좋고, 말투를 구사하는 장본인 역시 발끈하는 성질머리니 최고의 조합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스마엘의 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음, 오히려 좀 재밌을지도. 심심하기도 한데 마침 좋은 대화 주제가 나왔다. 습관에 힘입어 뚱하게만 있던 얼굴이 활짝 펴진 것은 순식간이다. 소리내어 짧게 웃고는 눈웃음 한껏 짓는다. 모두가 익히 알, 소위 실실거리는 그 미소가 자연히 떠오른다. 그가 다시금 자세를 고쳐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래 *, 해보자고. 일단 넌 그 개같이 깍듯한 존댓말부터 치우고 반말부터 *나게 갈겨."
어? 그런데 의외로 진도가 느릴지도? 커피로 천천히 목다심을 한 후 그는 손가락을 하나 척 들고 말을 이어갔다.
"일단 인사부터. 사람을 부를 때 이렇게 말하면 씨*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뒤통수에 대고 '이 씨** *새* 잘 만났다, 뒤지고 싶냐?'라고 말하면 누구든지 반갑게 대답해 줘. 말하는 김에 대가리도 냅다 때려주면 개** 더 다정해지고."
……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급발진해 버린다. 개념 한 번 휙 읽어주고는 곧바로 심화로 넘어가자 하는 이 교수, 가만히 둬야 할까?
네 답을 정정해주는 듯한 말에 고갤 끄덕인 너는,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로 가져와진 핫초코를 보고 점원에게 감사합니다. 라고 짤막하게 인사를 건넨다. 핫초코가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레레시아의 말에는, 네. 하고 대답하며 마시멜로가 초코에 천천히 가라앉는 모습을 본다. 가라앉는게 맞나? 싶을 정도로 천천히 가라앉는 마시멜로를 쳐다보고 있자니 가디언즈였다는 걸 밝힌 소감을 들은 레레시아의 말이 들려와 시선을 옮겼다.
"언제나...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부르는 법이니까요. 언제가 됐든 우린 마주치게 되겠죠. 절망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사람들을요."
이번 일로 새롭게 생각을 바꾼 사람들을 마주친다면 또 느낌이 색다르긴 하겠네요. 이번 일로 그런 사람이 더 늘었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어쩔 수는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것 역시 스스로가 취해야 하는 모습이었으니까. 억지로 손에 끈을 쥐어준다고 해서 끝까지 붙잡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까 쥐어주는 것까지만, 그 뒤에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생각하면서 말을 멈췄다. 벌써 반 정도 잠겼다.
"그런 부분들까지 전부 신경 쓸 겨를도 없고, 사실은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해명해야 할 것도, 그들이 제게 불만을 가지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요. 아마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꽤 되겠죠, 그건 딱히 저라서가 아닐 겁니다. 지금의 제가 누구인지는 그들에게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테니까요."
죽이려 들지만 않는다면야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의 증오를 감당할 수 있을지는... 네, 잘 모르겠네요."
가디언즈의 만행에 대해 사과하라고 이야기한다면야 되는 대로, 몇 번이고, 그 이상이라도 하겠지만 말입니다. 라고 말을 끝맺는다. 네가 에델바이스에 도착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을 떠올리면 더욱 그러했다. 그 당시의 네 모습은 전혀 상관이 없었지, 그들에게도, 또 저들에게도.
"그럼 웃을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 말씀이군요, 글쎄요... 사실 그렇게까지 거슬릴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헤프게 웃는 편인가 생각하면 아무래도 조심해야 할 것 같긴 합니다."
물론...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그런 고민이 들 때 불편한 미소가 떠오르는 건 사실입니다. 그걸로 상황이 해결된다면야 몇 번이고 웃겠습니다마는 아마 그건 아닌 것 같네요.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 확실히 그런 상황에 웃는 건 문제겠죠, 제 딴에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아닌 모양입니다."
상황을 부드럽게 넘기는 게 능숙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누군가의 눈치를 본다는 건 어지간히도 둔하지 않은 다음에야 다 느낄 만한 부분이니 그걸 신경쓰는 상대방에겐 적잖히 불편하겠지, 그렇다고 해서 매양 머리를 차갑게 식힌 듯 무뚝뚝하게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뭣보다도...
"웃는 것과, 우는 것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레시?"
어느새 다 녹아버린 마시멜로가 담긴 핫초코를 내려다보던 네 입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말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