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확실히 그럴 때도 사용하지. 특히 머리 위에 돌 떨어뜨리는 건 내 목숨을 한번 구해주기도 했으니까."
선우는 에델바이스에 들어오기 전 가디언즈 기지를 털다가 한 가디언즈와 싸우고 목숨을 잃을 뻔한 기억을 떠올렸다. 건축 자재를 놈에게 던져 1초 정도의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그 1초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곤충은 어때? 개미의 힘은 몸에 20배까지 들 수 있고 나비의 날개는 하늘을 날 수 있으며 장수말벌은 인간까지도 죽일 수 있잖아"
그는 온갖 독있는 동물들과 강력한 곤충과 육해공 동물들을 떠올렸다.
"음...그냥 평범한 공간이야. 지금 이곳처럼."
선우는 땅을 밟으며 말했다.
"어쩌면...여기도 누군가 만든 아공간일 수도 있지?"
혼잣말을 하며 낄낄거린다. 사실 가끔씩 생각은 해보지만 답이 나오지 않아 포기한 질문이다.
"연구를 열심히했구나! 스페셜 스킬을 써서 용으로 변신할 수 있다면 그와 비슷한 수준의 버스트를 사용한다면 공룡으로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아까 말했던 키메라로 변신하던가."
해파리처럼 피부에 독을 가지고 있고 뱀처럼 독을 쏠 수 있으며 아르마딜로처럼 단단한 갑옷을 입고 개미처럼 힘이 세면서 갯가재의 펀치력과 딱정벌레의 속도를 가지고 하늘까지 날 수 있다면 그건 진짜 강력하지 않을까?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건 언제나 즐겁다 2n년 동안 팔다리처럼 사용했다고 해도 끝을 모르는 미지의 힘이니까.
어느 저녁. 느닷없는 노크소리가 현관에서 들려온다. 택배가 오기에는 늦은 시간이라 무슨 일인가 싶어 문 앞을 잠시 기웃거린다. 노크 소리 이후 다른 소리도, 인기척도 없기에 살며시 문을 열어보면, 큼직한 상자가 문 앞에 있다. 흔한 골판지 상자의 표면엔 [Magic doll Maker] 라는 로고와 당신의 집 주소가 적힌 송장 하나.
이런 걸 시킨 적이 있었나? 하기엔 송장의 주소도 이름도 당신의 것이 맞기에 일단 상자를 안으로 들인다. 단단히 봉해진 테이프를 뜯고 상자를 열자 충격방지용 뽁뽁이로 감싸인 상자와 그 위에 편지봉투가 있다. 대체 뭐지? 의문과 호기심 사이에서 잠시 주저하다가 편지봉투를 집어 연다. 그러자 손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은제 열쇠. 박쥐 날개 같은 모양의 열쇠를 이리저리 보다가, 봉투 안에 남은 편지지를 꺼내 내용을 읽기 시작한다.
[ 축하합니다! 귀하께서는 본 사에서 주최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신제품 [Magic doll]의 오너가 되셨습니다. 먼저 이하의 규칙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R.1 [Magic doll] 자동 수리 인형 NO. 22는 '레레시아 나나리'라는 이름의 새하얀 은발과 금빛 눈동자가 아름다운, 약간 결벽적인 성향을 가진 여자 아이입니다. 애칭은 레레, 레시, 레샤, 셋 중에 하나를 고르셔서 불러주시면 됩니다. (애칭은 꼭 하나만 정해서 부르시길 바랍니다. 너무 변덕진 부름은 결벽적 성향을 자극할 지도 모릅니다.)
R.2 구성품은 본품 상자와 열쇠, '레레시아 나나리' 본 1체, 심장용 보석 1정과 각인용 카드 1장입니다. 상자 개봉 시 구성품의 유무를 확인 후 '레레시아 나나리'의 등 부분을 열어 안에 심장을 넣어주십시오. 눈동자에 생기가 돌고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눈을 한 번 깜빡이면 정상 작동입니다. 이 후 각인용 카드에 당신의 이름을 적어 상자 안에 같이 두시면 됩니다. (심장을 넣는 것 외에는 과도한 접촉을 삼가하십시오. '그녀'의 성향이 아직은 당신을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R.3 본품 상자는 동봉된 열쇠로만 엳닫을 수 있으며. '레레시아 나나리'의 개인실입니다. 절대 버리지 말고 항상 이 상자와 함께 보관하십시오. (열쇠는 항상 가지고 다니도록 하십시오. 당신이 언제 상자를 잠궈야 할지 모릅니다.) (숨기더라도 집 안에 숨기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열쇠는 당신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 임을 명심하십시오.)
R.4 '레레시아 나나리'는 작동 직후부터 당신의 생활 전반에 걸쳐 '수리'를 행할 것입니다. 가사부터 시작해 직장 및 인간 관계까지 폭넓은 구간의 문제를 '수리' 가능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다만 '그녀'는 질투심도 강합니다. 이성에 대한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거처에 이성을 들이지 마십시오.) (수리는 대체적으로 당신의 의식 밖에서 행해질 것이나, 혹시나 보더라도 모른 척 하시기 바랍니다.)
R.5 주에 최소 1회는 '레레시아 나나리'를 위한 간식을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간식의 종류는 일반적으로 당신이 먹을 수 있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자세한 것은 아래의 취향을 참고하십시오. '레레시아 나나리'의 취향 : 쿠키, 초콜릿, 케익 등등 달콤하고 쌉쌀한 것. 음료는 따뜻한 우유 혹은 블랙 커피, 과일 주스. (횟수를 꼭 지키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제때 받지 못 한다면 분노할 것입니다.) (취향에서 어긋난, 실험적 요소가 들어간 간식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
위의 내용에 모두 동의하며 '각오'가 되셨다면 상자를 개봉하고 '그녀'를 맞이해 주십시오. 부디 규칙을 준수하여 부디 오래도록 아껴주시길 바랍니다. ]
편지는 총 두 장으로 한 장은 규칙이 적혀있고 다른 한 장은 인형의 반품법이 있다. 반품 시 절대 개봉 전에 반품하라는 문구가 크고 붉은 글씨로 적혀 있다. 귀찮아 보이는 규칙들을 지키며 인형을 꺼내볼 것인가. 이대로 돌려보낼 것인가. 고민 끝에 당신은 편지를 내려놓고 상자를 꺼낸다. 엔틱풍 나무 상자는 단단히 잠겨 있었고, 당신의 손이 은백색 열쇠를 든다.
철컥. 끼익...
새 것 특유의 경첩 소리가 나며 열린 상자 안으로 흰 빛이 실처럼 반짝이고, 곧 들어찬 조명빛 아래 인형의 금빛 눈이 생기 없이 반짝인다...
그냥 네가 마음에 안 든다던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슬플지도. 하긴 그녀가 가디언즈에게 보였던 증오를 떠올려 보면 그럴 만한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같이 다니는 것도 많이 양보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어쨌든 소심하게 되묻고는 테이블에 앉은 채로 카페 안을 둘러보는 레레시아의 시선을 따라 너 역시도 카페를 한번 훑어본다.
"흐음, 향이 강한 걸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닌 건가요."
그런거 치고는 와인이나, 풍미가 강한 음식을 잔뜩 먹었던 것 같은데. 음료라면 또 다른가 싶어 더 덧붙이지는 않은 채로, 그녀가 이어서 꺼내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언젠가 말할 기회를 찾고 있었으니까요, 정확히 이번에 말해야겠다! 생각했던 건 아니지만요."
좋은 기회를 찾고 있던 건 사실이지만, 지난 임무가 그런 때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결과적으로는 괜찮았던 것 같긴 한데...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어지는 레레시아의 말에는 아하하... 하고 조금 곤란한 듯 미소를 짓는다.
"새삼스럽게 무섭다거나 하지는 않네요. 이미 전 에델바이스에 몸담고 있으니까... 알려지기 전에도 전 그들 입장에선 테러리스트였을 테니까요, 뭐어 이번 일로 가디언즈에도 탈주자가 존재하고, 멀쩡하게 살아서 오히려 반대쪽에 몸담고 섰다는 게 알려지면 나쁘진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왜곡을 하려곤 하겠지만... 그대로 중계된 화면 자체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꽤 있을 테고 말이죠. 거기까지 이야기한 너는 잠시 곰곰히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제 출신을 알아챈 사람들이 절 해코지하려고 한다는 건... 지금까지 계속 있었던 일하곤 다르지 않으니까요. 에델바이스 내에서 저를 내보내달라는 말이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일단은 로벨리아 대장님의 명령이 없으면 떠날 수도 없는 몸이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