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가 느껴지긴 했지만 구체적인 것까지는 알지 못한 채로 라라시아의 세븐스를 통해 어깨가 좀 더 편안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자 감사하다는 말을 건넨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죠, 적으로 또 만나고 싶지는 않지만 아마, 어떻게든 다시 마주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게 중얼거리는 레레시아의 말에는 이번엔 네가 위로하듯 말을 꺼냈다.
"그래도 레시 덕분에 큰 피해는 면했잖습니까, 싸움 자체를 회피할 방법은 아마 없었다고 생각해요."
싸움 없이 해결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퇴각이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말하는 레레시아에게 맞습니다. 라고 웃음지었다. 지난번 임무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됐다. 전면전이 아니라 가디언즈의 계획을 어그러뜨리는 것이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팔찌를 만지작거리는 레레시아의 행동을 눈여겨보던 너는, 네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라라시아와 레레시아가 주고받는 말을 듣곤 라라시아가 자신을 붙잡고 있던 팔을 풀 만한 시간을 충분히 주며 침대에서 내려온다.
ㅇㄴ...멀티 정도는 돌릴수 있을것 같아서 잡았는데 혐생 일언다구? 선우주 마리주 미안 답레는 좀 늦을것 같다... 따지고 보면 혐생 탓이 아니라 내가 부주의해서 바빠진 거지만 그래도 남탓 하면 맘이 편해져 제발 내 탓 아니라고 해조 (짤짤) 너무..너무 미안합니다...
카페에서 스마트폰도 태블릿도 노트북도 없이 조용히 커피만 마시며 수상할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사이코패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그는 훌륭한 사이코패스의 자질을 선보이고 있었다. 창가도 아니라 구경거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자리에서, 테이블만 쳐다보며 혼자서 가만히 시간만 죽이고 있는 일이란 중독적인 삶을 사는 여느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광경일 테다. ……그다지 풍족하지 못했을 이곳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놀랍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임무 하나를 무사히 마치고 왔으니 오늘은 휴식이다. 하지만 휴식이라 해도 마땅히 갈 만한 곳도 없고, 쉬면서 할 일거리도 찾을 수 없어서 그는 하루 내내 별 볼 일 없이 방황만 했다. 그러다가 다리가 아파질 무렵 카페를 발견해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할일이 없어도 웅성거리는 소리 들으며 시간 보내려니 지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루를 이대로만 보내게 된다면 무언가 참 아쉬울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시간 낭비라는 느낌이라서 그런가.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우연히 눈에 띈 아는 얼굴─얼굴…이라 하기엔 묘한 모습이지만 아무튼 그렇다─을 보고 유독 반가운 기분이 든 까닭은 그래서일 거다. 의자에 늘어져 대충 앉아 있던 그가 한쪽 손을 들고 휙휙 좌우로 흔들며 아는 체를 했다.
부루퉁한 표정을 짓는 마리를 보고 자기가 무슨 말 실수를 한건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동안 0특수부대 말고도 에델바이스 마을 이곳저곳을 다니고 여러 사람과 만나면서 느낀 것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하나 같이 심상치 않은 과거를 지닌 사람들이 많다. 마리도 그 중 하나일 텐데 자신의 입장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말이 그녀에게는 무엇인가를 건드리지 않았을 까 생각한다.
가장 짜증났던 당혹스러웠던 케이스가 민초와 하와이안 피자 권했다가 버럭 화를 낸 학생이었지...맛알못자식..
"하긴, 냉장고에 넣으면 녹지도 않고 오래가니까."
나눠주다가 남은 것은 자신이 모조리 먹을 것이라 말하는 마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미리미리 사두면 나중에 귀찮게 나갈일이 없으니까 좋을 것이다.
"그래? 아쉽네."
우연히 만난 동료와 헤어진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표한다. 자주 가는 카페가 어디냐는 질문에 이전에 동료와 함께 갔었던 카페를 말해준다.
"이 근처에 있어. 저 쪽 사거리에서 우회전 하면 나와. 예전에 괴물이랑 한바탕 싸우고 전신을 붕대로 감았을 때, 우연히 길에서 만난 남...아니 여성 분이랑 같이 갔었어."
U.P.G 건물의 지하 3층. 기절한 레이버는 바로 그곳에 있는 단상에 눕혀졌다. 그리고 그 주변에 다른 보검 사용 세븐스. 즉 가디언즈의 간부 세븐스들이 서 있었다. 그녀를 데리고 온 엘리나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 생기가 없는 눈빛으로 레이버를 바라봤다. 허나 특별한 일을 하진 않고 바로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바로 옆에 있던 카시노프는 켈켈 웃는 소리를 내면서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다고 쳐도 설마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늘리다니. 골치 좀 아프겠는데? 안 그래? 켈켈켈."
"딱히 예상하지 못한 일도 아닙니다. 사실 그것보다는 이렇게 될 것을 어느 정도 예상했음에도 U.P.G의 앞마당에 덫을 친 보람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만."
카시노프를 바라보고 있던 붉은 머리의 사내는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물었다. 이내 카시노프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면서 오른손 검지를 들어올린 후 살며시 흔들었다. 전혀 당황스러워하는 기색도, 곤란해하는 기색도 없는 그 표정을 얄밉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지? 이미 데이터는 대충 다 뽑았을 거야. 그리고 아주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녀석들의 보검에 있는 존재. 글라키에스의 보고와 일치하는 것 같더군."
"내가 거짓말을 했을리가 없잖아! 난 승리자야! 승리자! 거짓말은 패배자들이나 하는 거야."
카시노프의 발언이 조금 마음에 안 들었는지 글라키에스는 바로 옆에서 그를 노려보면서 따지는 어투를 냈다. 허나 카시노프는 딱히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이어 붉은 머리의 사내 등 뒤에 있었던 은색 머리 사내가 천천히 앞으로 나서면서 이야기했다.
"성전을 치루고 성지를 지켜낸 직후인 지금. 유익한 이야기가 없다면 더럽혀진 이 몸을 깨끗하게 정화하여 기적의 과실로 만든 음료를 먹은 후 명상을 길게 하고 싶다만."
"...아. 그러니까 피곤하니까 빨리 샤워하고 바나나 우유 마시고 자고 싶다 이 이야기지? 지금? 그거 나도 공감하는데? 이렇게까지 다 모은 이유가 뭐야? 레이버 기절한 모습 보여주겠다 뭐 이런거야?"
그리고 그 말에 동의하는지 갈색 머리 사내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 모든 말을 들으면서 붉은 머리 사내는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그리고 뒤돌아서 모두를 바라보면서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그렇게 길진 않을 겁니다. 일단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가 레이버를 쓰러뜨린 지금, 레이버는 차후 교육을 통해 다시 전선에 복귀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보검을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조금 시간이 걸리니 그때까지는 우리들만으로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마냥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테러리스트가 레이버를 무찌른 것이 중계가 된 이상, 공포에 떠는 이도 있겠으나, 테러리스트들 중에선 지금이야말로 기회라고 생각하고 공격을 할 수도 있겠죠."
"훗. 한 번의 빛을 보고 눈이 멀어버린 들개들이 달려든다고 한들, 이 성지를 짓밟을 순 없다. 나와 계약한 신의 이름으로 심판을 행사할 뿐."
"일반적인 테러리스트라면 상관없습니다만,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라면 조금 골치가 아파지지요. 그래서 아버님이 특별히 허락했습니다.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와 교전하게 될 시, 상황에 따라서는..."
"설마 축복의 가희의 가호를 사용해도 좋다는 것인가?"
"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임을 잊지 마십시오. 사용하게 되는 즉시, 머지 않아 오버히트에 걸리게 될테니까요. 강한 힘에는 강한 댓가가 따르는 법이지요. 그 점을 부디 기억해주시기를."
붉은 머리 사내는 그렇게 모두에게 사실을 공지했다. 이어 그는 레이버를 잠시 바라보았고 엘리나를 바라보면서 지시를 내렸다.
"30분 정도 후에 레이버를 지하 4층의 그 방으로 데려가십시오. 그럼 남은 것은 알아서 '그녀'가 해줄 것입니다."
"...네."
"절대로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를 흔한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들과 교전하게 될 시, 반드시 누구라도 한 명은 죽이는 쪽으로 방침을 정하십시오. 이것이 아버님의 명입니다."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그곳에 모여있는 이들은 고개를 일제히 위아래로 끄덕였다. 뒤이어 그들은 한명씩, 한명씩 천천히 해산했다. 레이버를 바라보고 있는 엘리나를 제외하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