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에 부딪혀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철선에 부딪혀 물줄기는 힘을 잃었다. 후두둑, 거리는 것보다도 섬뜩한 짙은 파열음이 잦아들고. 그 너머 들리는 비명소리에 그제야 너는 몸을 돌렸다. 이제 막바지로구나, 대단원이구나 싶어 돌아본 그 자리에는 산산조각난 무장을 회복하지만 또 금방 균열이 가고 있는 레이버의 모습이 있었다. 한계를 모르는 게 아니라, 지금 한계에 다다랐음에도 포기를 모른 채 믿는 정의를 위해. 그 기억을 위해 투기를 불태우는 그녀를 보며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통제받지 않는 힘은 위험하다. 안다, 누구보다 잘 안다. 너는 그녀의 말에 입을 천천히 열었다. 그러나 아마 들리지는 않았을 터, 금방 들어올려진 삼지창이 회전하고 지난번 네게 고통을 선사했던 스페셜 스킬이 다시금 발동된다.
너는 입술을 깨문다, 저 너머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지난번처럼 또 다시 열로 물을 증발시켜버리는 걸로 충분할까? 벌써 한계에 다다랐다는 루시아의 말에 너는 눈을 가늘게 떴다. 어떻게? 그저 찍어누르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다만 네게는 그럴 정도의 힘은 없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 중에는 그 정도의 힘을 가진 사람이 있겠지, 그럼 넌 뭘 해야 하지? 계속해서 증오를 불태웠던 그녀의 얼굴을 떠올린다.
너는 한번 심호흡한 뒤, 바깥으로부터 조여오는 소용돌이로부터 멀어졌다. 그 말인즉슨 레이버를 감싸다가 네 쪽으로 다가오는 소용돌이에 시시각각 가까워지고 있다는 이야기였으니. 너는 뭘 하려고 하는 걸까. 너는 점점 다가오는 소용돌이를 보다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다. - 그 때에 이르러, 닿지 못하는 것에 닿는 것은.
「나의 한 줄기 빛, 희망이어라.」
너는 눈을 떴다. 보이는 것뿐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안다, 들리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안다. 지금 네 손에 닿는 이 차가운 물의 감촉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또한 안다. 너는 네 본능에 몸을 맡긴다,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서라, 넘어서라. 무장과 세차게 부딪히며 마찰음을 내는 조류를 견디기 위해 악문 이에서 빠득,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뻗은 손이 소용돌이치는 물의 벽 너머로 향하고자 한다. 길을 느끼지만 언제나 그건 가시밭길이었다. 길을 알려주더라도 너는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기에 이렇게. 지금처럼 가시덤불 속을 맨손으로 헤치듯, 너는 소용돌이 안으로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레이버"
세차게 부딪히는 물살에 묻혀 들리지 않을까 걱정하지는 않았다. 들리지 않아도 괜찮았으니까.
"-통제받지 못하는 힘은 많은 사상을 냅니다. 그래요, 당신이 눈을 돌려온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그걸 알았습니다." "통제되지 않은, 통제할 필요를 찾지 못해서였을까요- 세븐스가 아닌 사람들에게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누구도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옥에 떨어질 거라고, 너는 다시 되새겼다.
"여기 배신자가 눈앞에 있잖습니까, 왜 제게 묻지 않으십니까? 어째서 여기에 내가 있는지? 왜 내가 당신과 같은 곳에 서 있지 않은지를."
여기서 이렇게 끝나 버리면, 영영 알 수 없잖아요.
"-왜 당신이 지켜야 할 사람들 중에, 당신과 같은 세븐스는 없는 겁니까? 왜? 나도, 당신과 같은 사람인데."
그들도, 당신과 같은 사람인데.
"왜 우리는 서로를 이렇게, 증오해야만 하는 겁니까."
무사히 들어설 수 있을지 없었을지는, 모른다. 들어갈 수 없었다면 너는 소용돌이 앞에 서 있었겠지. 얼굴을 감싸던 무장이 해제되며 내리깔린 네 눈이 모습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