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은 어디까지나 세븐스. 그리고 그것을 구현한 홀로그램 비슷한 무언가일 뿐이었다. 정확히는 '사이버 엔젤'. 즉 세븐스 능력으로 구현되는 존재일 뿐이었기에 아마 사진은 안 찍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루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굳이 찍겠다고 시도를 한다면 루시아는 찍게 해줬을 것이다. 정말로 카메라에는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겠지만.
아무튼 볼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에 루시아는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이라고 해도 결국 뭔가를 해낸 것은 다른 제 0 특수부대원이지. 자신은 아니었으니까. 자신이 한 것은 그저 조금의 힘을 부여한 것 뿐이었다. 결국 그 힘을 활용한 것은 제 0 특수부대원들이었기 때문에 루시아는 으음- 소리를 내다가 이야기했다.
-알고 있어. 보검을 제공받을 때 대충 소개하는 것은 들었거든!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버스트를 사용할 수 있게 도와준 것 뿐이지. 그 힘으로 뭔가를 이룬 것은 제 0 특수부대원이니까 내가 결정적인 뭔가를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인터뷰는 제 0 특수부대원에게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며 루시아는 날개짓을 하면서 좀 더 높게 떠올랐다가 다시 급강하하면서 다시 한 번 메사이아와 정면으로 섰다. 물론 그 크기가 상당히 작기 때문에 완전히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힘들었다. 그 와중에 자신에게 명함을 내밀자 루시아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이렇게 줘도 받질 못 해. 그러니까 내 원래 몸. 정확히는 나를 사용하는 세븐스는 이미 죽었으니까. 나는 어디까지나 그녀의 세븐스가 실체화되어서 구현된 것 뿐이야. 그러니까 명함은 사양할게! 잡을 수 없거든. 아무튼 그래도 나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어도 괜찮아. 뭘 알고 싶어?
릴리, 릴리 내일도 옆에 있어주겠니 설령 내가 밤에 빠져버린다고 해도 릴리, 릴리 너는 한낮처럼 맑은 목소리로 희망을 노래해주겠니
나고 자란 빈민가에서 도망쳐 만난게 레지스탕스가 아니었다면 분명 추격에 잡혀 죽었을 것이다. 나 혼자 의식이 흐려지는 레레를 데리고 멀리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을테니까.
정말 운이 좋게 만난 레지스탕스에게 신변을 맡기고 레레도 늦지 않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때에는 나도 정신을 차리고 세븐스를 썼지만, 어째서인지 레레의 옆구리만은 치유되지 않았다. 아무리 낫게 해도 계속 벌어지고 피가 흘러서- 그 틈으로 레레가 다 흘러가 버릴 것만 같았다. 안 돼. 이미 엄마를 잃었는데 레레까지 잃을 수는 없었다. 날이 바뀌는 것도 모르고 내가 쓰러지겠다며 휴식을 권하는 말도 못 들은 채 하며 사흘을 꼬박 레레의 치유 하나에만 매달렸다. 그리고 겨우 의식이 돌아온 레레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에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엄마는... 이제, 없지...?'
그 순간 내가 느낀 건 두려움이었다.
레레는 그 말 이후로는 입을 열지 않았다. 다시 의식을 놓지는 않았지만 말을 걸어도 말로 대답해주는 일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던 옆구리의 부상이 서서히 낫고 있었다.
그거면 돼. 지금은 그거면 다행이라며 레레의 회복을 돕던 중, 레지스탕스로부터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를 들었다. 원한다면 안전한 마을로 보내 거기서 지내게 해줄 수 있다고. 마음 같아선 바로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살아가라는 걸 납득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서 레지스탕스에 합류할 수 있는지를 물었고 대장이 허락한다면 가능하다는 말에 나는 곧장 레레에게 얘기했다. 우리 같이 이 레지스탕스에서 뜻을 함께 하자.
그 때의 네 끄덕임 한 번이 내 역겨운 위선을 모른 채 할 수 있을 만큼 큰 반응이었다는 걸 너는 알까.
부서진 것은 이 세상뿐만이 아니라서 틀렸던 건 너였지만 거짓으로 다져진 세상이라도 미안해, 네가 계속 살아있어주면 좋겠어
몽롱한 정신 속에서 줄곧 느꼈던 건, 몸을 재로 만들지 않을까 싶을 만큼 강렬한 고통의 열이었다. 몸의 어딘가에 커다란 구멍이 있어 거기로 나라는 내용물이 전부 빠져나가는 것 같은 감각도 있었다. 차라리 다 내보내면 더는 뜨겁지도 아프지도 않지 않을까. 그렇게 느끼면서도 결코 놓지 못 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때 내가 눈을 뜬 건 사흘 만이라고 했다. 하루가 세 번. 72시간이 꼬박 지났다고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 의식은 정신을 놓기 직전에서부터 이어져서 눈을 뜨자마자 잔인한 현실을 스스로 확인했다. 엄마는, 태어나 지금껏 살았던 세계는 이제 없음을.
전부 한 줌 재가 되어버렸음을.
그리고 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분명한 건, 살았지만 산 것 같지 않은 시간이었다. 레지스탕스의 거점에서 몸을 회복하고. 라라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여 우리를 구해준 레지스탕스-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의 일원이 되고. 아무 것도 몰랐으니 말단으로 구르며 몸으로 머리로 어떻게든 배워나가는 모든 시간이.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전투를 위한 훈련을 할 때였다. 일시적으로 세븐스를 쓰는 것에 거부반응을 일으켜서 얼마간은 기초를 배웠다. 기초. 사람을 해치는 전투기술을 위한 기초는 세븐스보다 더한 거부가 몸 속 깊이부터 올라왔다. 자세를 잡는 것 만으로 오한이 들고 모조 무기를 손에 쥐기라도 하면 구역질이 올라왔다. 잘 먹지도 않아 위액이 대부분인 토악질을 하고 개인실로 보내지면 그 날은 온종일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자꾸만 그 날이 머릿속에서 되풀이되어 벽에 머리를 박았고 요란한 총성이 내 귀에서만 반복되어 비명으로 그 소리를 덮어야만 했다. 그러다보면 나는 어느샌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하고 있었고, 그러면 라라가 와서 진정시켜주는,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시간을 그저 흘려보냈다.
그러던 중에 들었다. 내 상태가 앞으로도 이대로라면 제대로 활동은 커녕 쓸데없이 시체 나오는 거 아니냐는. 나로 인해 유능한 라라가 발목을 잡히는게 안쓰럽다는.
어느 부분이 불씨였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단지 그 말들이 내 안에 불을 튀겼고 그로 인해 눈이 뜨이다 못 해 뒤집혔다.
라라시아에게서 에델바이스를 나가 둘만 살자는 말이 나오고 입원실 안은 더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말을 꺼낸 장본인은 그 무게를 버티지 못 한 듯이 고개를 떨구고 대답을 해야 할 이는 느릿느릿 눈을 깜빡이고만 있다. 숨 막히는 침묵을 깨는 것은 누가 될 것이었을까. 이어지는 그 시간이 괴로웠던 라라시아가 작게 숨을 들이쉬며 입을 연 순간, 레레시아의 나즈막한 목소리가 앞서 흘렀다.
예상을 한참 벗어난 차분한 목소리에 라라시아는 긴장감도 잊고 눈을 크게 뜬 채 레레시아를 바라보았다. 꼭 닮았지만 금빛 눈을 한 그 얼굴은 그저 했던 말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나가고 싶냐는 물음의 대답을. 라라시아가 쉽사리 하지 못 하고 있자 다 안다는 듯이 그 얼굴이 미소짓는다. 그리고 말했다.
"라라. 정말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을 거, 다 알아... 내가 모르면 누가 알겠어... 얼마나 힘들게 한 말이었을지, 알지만 말야..." "레레...?" "알지만, 나는 나가지 않을 거야... 아니. 나가면 안 돼. 내 복수를 이룰 때까진..." "복, 수? 복수라니. 포기한 거 아니었어? 그 때 포기하겠다고 그랬잖아. 그만 둔 거 아니었어? 아니었던 거야?"
이제와서 다시 복수라니! 히스테릭한 외침과 함께 떨리는 두 손이 레레시아의 어깨를 움켜쥔다. 부상이 거의 그대로였기에 상당한 고통이 어깨부터 뻗치지만 레레시아는 신음 한 가닥 흘리지 않았다. 단지 낯빛 만이 창백히 식고. 떨림 없는 금빛 눈이 어깨를 움켜쥔 라라시아를 바라보았다.
어...라? 어라?????? 저는 적잖이 희한한 일을 목격했습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목적한 바의 피사체를 비췄을 터인데, 배경 말고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현상입니다!!!! 지금껏 수없는 취재 대상을 만나고 겪었습니다만, 이러한 경우는 실로 처음이군요! 당황은 금시에 호기심으로 바뀌었습니다. "정말... 그렇네요." 하며 얼떨떨한 듯이 멍한 낯으로 카메라를 내린 저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가 아닌 육안으로 정상적으로 루시아 씨를 보았습니다. ...만지고.. 만지- ........만지고 싶다.보통 홀로그램과도 다르게 찍히지 않는다니! 만져지지 않을망정 직접 손으로 만져보며 그 정체를 씹뜯맛즐하며 정확히 확인하고 싶다!!!!! 저는 욕구를 인내심 있게 눌러두었습니다. 무례한 일이기도 한걸요. 참는 자에게 기회는 얼마든지 찾아올 것입니다...........
"물론 버스트의 힘을 쓴 것은 당시 제0특수부대에 계셨던 분들이겠죠, 하지만 그 힘을 개방한 것은 다름 아닌 루시아 씨 당신이라고 아는데 혹시 제가 틀렸습니까? 그것만으로도 저는 이것을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되는 대단한 공적이라 생각합니다! 기자라는 족속들이란 한 가지 사건이 있을 시 만 가지의 시점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를 지기 때문입니다. 설령 정말로 그것이- '결정적'인 역할은 아니었을지언정 말이지요."
진실이란 꿈과 같은 것. 편협한 시각은 쉽사리 꿈을 일그러지게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는 자를 무턱대고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공명정대한 시각으로 사건을 관찰하고 올바른 풍경을 안내할 저희 기자들은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존재합니다. 잘못 보는 것은 잘못이 아니나, 안내할 길잡이조차 없으면 저 가는 길이 천국인지 지옥인지 그조차 알지 못하는 자들이 인류의 태반을 이룰 테니까요. 그것만은 매우 서글픈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희 기자들도 결국 인간이기에, 자신이 가진 치우친 시각에 휩쓸리지 않은 채 가능한 한 가장 올바른 길을 안내하기 위하여 육신과 영혼을 바칠 기세로 모을 수 있는 가장 다양한 정보를 모읍니다. 그러므로 저는 당신을 취재해야겠습니다, 의 뜻으로 저는 한없이 올곧은 눈빛으로 루시아 씨를 응시하였습니다. 혼탁한 눈동자는 무시해주십시오, 어쩔 수 없는 선천적 특성이기에........
"명함을 받지 못하시는 것은, 인지도가 있어야지 벌어먹는 직업인으로선 정말이지 아까운 일이군요. 그렇지만 흔쾌히 허락하셨으니, 그 대신으로 이 몸 바쳐 열심히! 한껏! 인터뷰해보고 가겠습니다! 그러니 드디어 첫 번째 질문입니다. 본인을 어쩐지 완전히 독립된 객체가 아닌 '그녀'라 지칭하신 세븐스의 실체화라 이르시는데, 그 '그녀'에 대해 더 자세히 여쭤볼 수 있을까요? 이름부터 가지고 있던 특성까지- 기억나는 대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부디, 편하게 말이죠."
인지도 타령 하며 적당한 농담으로 분위기를 푼 다음 수첩을 들며 자연스레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한두 번 해본 모양새가 아닙니다. 당연합니다, 정말 한두 번 반복한 게 아니니까요...!!!!!!! 쉽게 미소를 잃지 않는 것도 오랜 짬의 결과물이냐고요?! 음, 글쎄요!!! 저는 원래 잘 웃었습니다!!!!!!!
-사실 보검의 힘을 '사이버 엔젤'의 힘으로 증폭시킨 거라서 내가 개방했다고 하기도 조금 민망한걸. 그렇게 따지자면 오리지날 보검을 가지고 있는 아스텔이 자신의 보검을 복제해서 양산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가장 큰 공이라고 생각해. 나는 에스티아가 보검의 부족한 점을 보강하기 위해서 심어놓은 세븐스에 불과하니까.
일단 자신에 대해서 높게 평가하는 것에 대해 루시아는 기분이 좋은지 헤실거렸으나 그럼에도 자신이 뭔가 크게 한 것은 아니라고 부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단순히 부끄러워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뿐인지. 아무튼 확실한 것은 루시아는 조금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자신을 향한 질문이 날아오자 루시아는 가만히 고개를 갸웃하면서 메사이아를 바라봤다. '그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루시아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원래 자신을 가지고 있었던 세븐스. 즉 '루시아'를 말하는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루시아는 말을 이어나갔다.
-루시아. 나이는.. 죽을 때 기준으로 14살이었어. 나하고 똑같은 얼굴과 목소리를 지녔어. 그야 나는 사이버 엔젤. 그 아이의 세븐스였으니까. 아무튼 특성..이라고 해도 뭘 맒하면 좋을까. 이번에 제 0 특수부대원들이 출동했던 그 '고독 의식' 시설에 있었고 그곳에 있던 아이들의 '리더'격인 인물이라고 봐도 좋을지도 몰라. 가장 나이가 많았으니까.
그 존재의 세븐스여서 그런 것일까. 그때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듯, 루시아는 이야기하면서 조금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허나 그래도 말할 것은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루시아의 주절거림은 조금도 끝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죽음을 당한 이이기도 해. 아이들에게 싸우는 것을 가르치고 죽이는 것을 가르친 그 존재들은 조를 나눠서 서로 싸우게 했거든. 거기서 루시아는 싸움을 하지 않았어. 오히려 '글라키에스'를 감쌌었어. 그리고 결국 글라키에스를 감싸다가 죽어버렸어. 그리고 루시아를 죽게 한 그 남자아이는 이내 글라키에스에게 죽었지만 말이야.
그때의 기억을 단편적으로 이야기를 하던 루시아는 쓴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