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는 무지의 공포를 잊고 속 편히 지내는 것만이 장점이지. 바보가 되고 싶다면야 자네 마음대로 해. ...그리고 그런 말은 한 적 없어."
두근두근이라니. 얼토당토않은 말을 들어버렸다는 얼굴 빛을 하며 마녀는 조용히 반응했다. 그래놓고서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걱정 한 점 없어 보인다. 상대방이 공언했듯이 그 모습은 말 그대로 바보다. 마녀는 이런 바보들을 수도 없이 봐왔다.
"그럼 앞으로 자네에 대한 건 미사키군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어. 그리고 그건 타차원의 사념 결집에 의한 소환 의식인가. 그럼 내가 자네의 존재 자체에 줄곧 위화감을 느끼고 있던 것도 설명이 되는군... 결국 내 차원 이동 가설이 들어맞았던 거야."
이차원에 특정한 트리거로 강제적으로 소환 된 이는 보통 그 세계의 필요나 목적에 의해 소환되는게 보통이다. 그렇다면 이 아이의 경우는 그쪽 악마를 몰살하는게 귀환 조건이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어쩌면 악마는...
"...그나저나 '유우군'이라. 흐응."
골똘히 생각에 잠기나 싶던 마녀가 문득 그렇게 중얼거렸다. 퍽 의미심장한 목소리가 아닌가. 흥미로워 하는듯도, 비꼬는 듯도,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영혼없는 호응인듯도 싶은 반응이다. 가라앉은 눈동자가 미사키를 바라보고 있었다는것 밖에는 정말이지 추상적인 반응이었던 것이다.
"그래. 셋의 질문을 모두 마쳤으니 즐거운 질의응답 시간은 여기서 끝. 내 역할은 완수했다고 봐도 되겠지. 난 이만 돌아가 보겠어."
그랬던 마녀가 의자를 끌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행색이 당장이라도 카페를 뜰 느낌이다. 뭐, 그야 저렇게 말하니 당연한 거겠지만.
마녀는 물론, '츤데레'라는 뭘 의미하는지 알고있다. 이 용사를 자칭하는 무식하기 그지없는 여자아이가 자신의 반응을 살피며 즐거워 하는 것도 말이다. 그러니 눈썹을 꿈틀거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일부러 더 말을 얹지는 않는다. 그랬다가는 분명 이 아이에게 바보가 옮게 될테니... 바보에 동조하는 것만큼 바보짓도 없지 않은가.
"소용 없어. 자네는 미사키군이니까. 나는 지금의 육체로 현재 시간선에서 마주친 모든 이의 호칭을 객관적인 시점으로 통일하고 있지. 자네도 분명 이 룰에서 예외는 아니라는 소리다, 미사키군."
호칭을 무를 생각은 없다. 하물며 귀엽느니 귀엽지 않느니 하는 시덥잖은 이유라면 더더욱. 이것은 마녀만의, 인간관계를 최대한 객관화 하기 위한 방도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두 번씩이나 그 이름을 부르며 강조한 것은... '그녀가 질색하는게 보기 좋았으니까' 라는 이유라면 너무 악질인 것인지. 자신의 행동을 제멋대로 해석하며 사랑의 라이벌이니 어쩌니 하는 말에도 특별히 눈에 띄는 반응은 보이지 않고 그저 숨만을 삼켰다. 이유는 당연히 상기했듯 '바보가 옮는다'.
"그래. 애석하게도 그렇게 되겠지... 하아, 어쩔 수 없지. 이 학원에서 지낼 수 있는 댓가라고 생각하는 수 밖에. 하지만 이 내게 호기심이 생겼다고 카페로 불러내 칼들고 협박하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었으면 좋겠네. 적어도 그런 건 조용한 장소로 해주길 바래. 내가 자네같은 바보에게 정당방위로 마술식을 발휘해도 시공을 물릴 수 있는 곳으로 말이지."
이번 대화에서 나온 말 중에서는 가장 대놓고 위협적인 말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이건 협박인가? 아니, 권유다. 마녀는 야만인이 아니니까 수플레를 뜨던 나이프로 상대의 목을 겨누고 위협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것은 권유이다.
"너희 인간들이 조용하고 얌전하게 지내고 있는 나를, 귀찮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그럼―"
다만, 보다 명확한 메세지. 마녀는 그것만을 남기고 책을 품에 안고는 신경질적으로 몸을 획 돌려 카페를 유유히 빠져나가버렸다.
자신이 한 말이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나 영향을 끼칠 줄 알았다면 그날 좀 더 좋은 말을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물론 그가 그녀의 고민을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한건 아니었지만 강민도 유우나도 어렸기에 그녀의 고민을 자기 멋대로 생각해버린게 아닐까하는 걱정도 앞섰다.
" 학교가 끝나면 다들 학교에서 나가고 싶어하니까 말이야. 학교는 생각보다 지루한 공간이잖아? "
마치 회사원들이 퇴근시간에 정확히 회사를 나가고 싶은 것처럼 학생들에게도 비슷한 심리가 있다. 그건 강민도 마찬가지였지만 혼자서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그런 학생들의 심리를 역이용하여 가끔 이곳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거나 하는 것이다.
" 나도 자주 오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자와가 불러준다면 꼭 나오도록 할께. "
물론 서로의 번호를 안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학교니까 지나가다가 마주칠수도 있고 서로의 반에 찾아갈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학교에 또다른 구설수가 도는 것을 각오해야겠지만 말이다.
" 오랜만에 보기 위해서라고 해도 맞겠지만~, 오늘도 아이자와의 고민을 들어주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던거지. 말할게 없더라도 언젠간 생길테니까 말이야. 지금의 아이자와에겐 그때와는 다른 고민이 있을지 모르니까. "
키도 조금 커지고 외모도 조금은 바뀌었겠지만 아이자와의 고민을 들어주던 그날의 표정은 바뀌지 않아 예전처럼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애초에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도 최대한 학교를 오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학창생활을 즐기기 위함이었다. 청춘은 오직 한번밖에 오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물론 자신에게 그런 청춘이 허락될지는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사랑이라는 것만 해도 딱히 소속사에서 막는 것은 아니지만 절대로 사고치면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하기도 했고... 자신은 누군가와 공개적으로 막 연애를 하기는 힘든 입장이기도 했으니까. 아주 조금 쓴 표정을 짓긴 했지만 이내 그녀는 다시 밝은 표정을 짓다 그의 대답에 두 눈을 깜빡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이내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그녀는 두 손을 모았다.
"후훗. 제가 고민거리가 없으면 어쩌려고요. 선배. 그거 누가 들으면 그냥 적당히 대는 핑계라고 듣기 딱 좋을걸요. 그러니까 인기 아이돌 유우나를 단 둘이서 만나기 위한 수단이라는 느낌으로요. 그런 오해가 생기는 거 원하지 않으면 그런 이유는 막 대는 거 아니에요."
딱히 선을 긋거나 벽을 세우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장난스럽게 말하는 것에 가까웠으니까. 일단 자신에겐 지금 당장 고민거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굳이 고민거리를 대자면 아직 학교 건물 구조를 다 익히지 못했다는 것 정도일까. 하지만 그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직접 해결하는 것이 나은 문제였다. 어차피 오늘은 시간이 많으니까 돌아다니다보면 어떻게든 다 익힐 수 있을테니까. 아닌 것 같아도 나름 암기력은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고민 상담 해줄 것은 없어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만났으니... 바로 헤어지긴 조금 아쉽고."
잠시 생각을 하려는 듯, 그녀는 고개를 살며시 갸웃했다. 그리고 뜸을 들이다가 뭔가를 떠올렸는지 싱긋 웃으면서 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면 선배만이 아는 아주 쉬기 좋은 장소라던가 알려주세요! 아이돌도 가끔은 휴식이 필요하거든요. 아주 가끔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쉬고 싶기도 하고요. 선배에게 이득도 있다구요. 음. 그러니까 그곳으로 오면 운이 좋으면 저하고 둘이서만 볼 수 있다? 막 이래요. 후훗. 농담이니까 이 부분은 NG처리해주세요. 그래도... 좋은 장소는 알고 싶어요."
알고 싶은 것은 사실이었는지 그녀는 싱긋 웃으면서 그를 빤히 바라봤다. 물론 알려주지 않아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딱히 큰 기대를 걸고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