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에- 유우군이 이런 식으로 내 손을 잡아보는 게 목적이었다고 솔직히 대답하면 넘어가 줄 수 있지만?"
킥킥 웃으면서 말하지만 그래도 예언에 대가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던가. 지구에서는 마법도 주술도 모두 공상의 영역으로 퇴보하였기에 사람들이 가벼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미사키도 알고는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쪽도 가볍게 넘어갈 수는 없다. 모든 예언은 대가를 주어야 한다. 아무리 사소한(예를 들면 -미사키의 살갗을 만저본다) 것이라도.
무려 환영 마법의 일종. 이런 식의 응용은 미사키도 처음이었는지라 중간중간 손가락이 아예 안 보인다든지, 두 개가 겹쳐 보인다든지 하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환상도 아주 잠시지만 스쳐 지나간다. 일반인이라면 놀라움 정도로 끝낼 수 있는 영역이었겠지만 유강민이라면 분명 눈치챘을 것이다.
미사키의 대답을 듣자마자 작게 웃으며 대답한 강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이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진심인지 장난인지 모를, 상대방을 헷갈리게 할만한 말만 던져두는 모습은 보는 입장에서는 꽤나 어이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평소 행실을 보면 왠지 장난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미사키가 그릇을 내려놓자 그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향했고, 보여주는 마술에 강민은 놀랍다는듯이 눈이 살짝 커지고 잠시 말이 없어진다.
" ... 놀랍네. "
남이 보기에는 별거 아닌 마술을 보는데도 저렇게 놀랄 일인가 싶겠지만 한번 본 것을 그대로 따라할 수 있는 강민은 그것이 일반적인 마술이 아님을 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웬만한 기술들을 모두 봐온 강민이었지만 그조차 한번도 보지 못한 류의 것이라 풀려있던 경계심이 일순간 조여지는 것이었다.
" 생각보다 더 진짜 같은걸. "
물론 겉으론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채 정말 마술을 즐기는듯 빙그레 웃어보였지만, 그의 머릿속은 이미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자신이, 그리고 유파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힘 혹은 기술의 등장은 상당한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원래라면 바로 유파의 상부에 보고해야했지만 그는 어째서인지 보고를 약간은 미룰 생각이었다.
" 점심 먹고 나는 어디 갈 곳이 있어서 헤어져야할 것 같네. "
어느새 그릇이 거의 다 비워져있었기에 그는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얘기했다. 정말 갈 곳이 있던 것인지 아닌지는 그만 아는 문제겠지만 말이다.
살짝 붉어진 표정으로 득의양양한 미소를 펼쳐보이는 미사키. 이런 이야기, 시켜서 해주는 말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해주었다면 더 좋았을테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
"에- 그 정도야? 유우군 손가락 마술 엄청 좋아하네."
보통은 손가락 마술을 보고는 그게 뭐냐고 시덥지 않은 취급을 하는데. 아니면 유우군 앞이라 힘이 들어갔던게 문제였나? 환영마법까지 같이 쓴건 처음이기도 했고. 깜짝 놀랐다가 다시 빙그레 웃어보이는 모습에 미사키는 안심했다. 그게 아니라면 엄청나게 겁이 많아서 정말로 깜짝 놀란걸지도 몰라. 그런 유우군도 귀여울것 같다고 생각한다.
"아쉽네~ 그럼 월요일날 학교에서 봐야겠다."
미사키는 향후 목적이 없어서 이만 들어갈까 생각했지만, 기왕 나온 김에 장을 보고 들어가자고 생각을 고쳤다. 강민을 따라서 자신의 입가도 냅킨으로 닦았다. 국물 하나 남김 없이 완식한 그릇이었다.
유우나는 아이돌이었다. 즉, 학교에 자주 올 수 없었고 아직 학교의 구조를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허나 언제까지나 학교 구조를 알 수 없어서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순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그녀는 일이 없는 바로 오늘, 그것도 방과후. 제대로 마음 먹고 학교를 둘러보기로 마음 먹었다. 물론 사립 엘부르즈 고등학교는 그렇게 큰 학교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도 익히지 않으면 이곳저곳을 찾아다니기는 매우 힘든 법이었다.
그렇기에 전체적으로 학교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그녀는 우선 방과 후가 되자마자 바로 책가방을 챙겼고 우선 본교 건물 밖으로 나섰다. 운동장 부근에 선 후, 그녀는 우선 천천히 건물을 둘러보려는 듯,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려고? 유우나? "음. 그냥 전체적으로 둘러볼거야. 음악실이라던가, 미술실이라던가, 동아리가 모여있는 곳이라던가, 학생회실이라던가 전체적으로 다 둘러볼까 해서."
귓가에 들려오는 수호천사의 목소리에 유우나는 미소를 짓고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만화나 애니라면 길을 헤메서 벌써부터 바둥바둥거리고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애니나 만화 속의 이야기였다. 고등학교 1학년. 절대로 길을 잃을 정도로 길치는 아니었다. 단순히 아직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고, 무슨 특징이 있는지 잘 모를 뿐이었다.
"그럼 여기로 가면 뭐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우선 본교 건물 뒤쪽으로 천천히 향했다. 특별히 뭐가 있을 것 같진 않지만, 그럼에도 쉴 수 있는 명소나 경치가 좋은 곳이라던가. 그런 곳을 중점적으로 찾아볼 생각이었다.
점점 여름이 다가오지만 아직은 봄기운이 완연한 날씨는 여전히 쾌적했고 여름 특유의 불쾌한 날씨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다. 그렇기에 많은 학생들이 학교가 끝나고 어디론가 놀러갈 약속을 잡고 있었지만 강민은 그러지 않았다.
" 강민! 오후에 시내에 가기로 했는데, 같이 갈래? " " 오늘은 일이 좀 있어서. 다음에 같이 가자. "
친구의 제안을 웃으며 거절한 강민은 가방을 메고서 교실을 나섰다. 복도는 하교를 하려는 학생들로 북적였고 그들의 목적지는 교문이었지만 강민은 학생들이 향하는 방향과는 반대로 몸을 틀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던 그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학교 뒤쪽에 있는 작은 공원 같은 곳이었다.
" 사실 딱히 일이 있는건 아니지만. "
작게 중얼거리며 그는 나란히 놓여있는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그도 놀러다니는걸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그런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피곤해하는 편이었다. 무작정 피하는건 아니지만 오늘은 좀 쉬고싶었달까. 그렇게 앉아있던 그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 안녕. "
그의 기억 속에도 있는 아이였고 최근엔 여러 곳에서 얼굴을 볼 수 있었기에 잊어버리기도 힘들었다. 그녀가 놀라지 않게 적당한 목소리로 작은 손짓과 함께 인사한다.
학교 뒷편은 뭔가 공원 같은 느낌이로구나. 뭔가 신기하네. 그렇게 생각하며 유우나는 가만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역시 작은 학교라고는 해도 나름 특기생들이 오는 곳인만큼 이런 곳에 좀 더 신경을 쓰는 것일까. 신기해. 역시. 그런 감상을 품으며 유우나는 작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 와중에 자신을 향한 인삿말 소리에 그녀는 살짝 놀라 몸을 움찔하더니 목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바로 알아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내 어느 정도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는 아. 소리를 내면서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에요! 그런데 여기엔 어떻게... 아. 선배도 이 학교에요? 특기생?"
이 학교는 특기생이 주로 다니지만 그래도 수험생도 분명히 있었다. 어느 쪽이건 여기서 이 사람을 만날 것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살짝 놀라면서도 당황하고, 그러면서도 괜히 반가운 표정을 지었지만 막상 자신을 기억하는 것이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녀는 순간 움찔했다. 방금 인사도 그냥 사람이 보여서 하는 말이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렇기에 그녀는 민망함을 애써 감추려고 하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저. 기억하세요?"
그 물음은 정말로 조마조마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간절함을 작게 품은 물음이었다. 물론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상 자신과 그가 얼굴을 알게 된 것은 아주 작은 계기일 뿐이었으니까. 물론 자신에게 있어서 그 계기는 절대로 작은 것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 아주 큰 계기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