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상의 문제일거라고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접어두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때의 일에 대해서 그가 받은 관심은 그와는 거리가 있는 곳에서 이루어진거니까요. 구태여 더 나아갈 필요는 없다는 것 처럼 말끝을 흐린 그녀는 자신의 허벅지 위에 누운 그와 눈을 맞추었습니다. 당장이라도 부끄러움에 얼굴이 터져버릴 것 같았지만 그녀는 꿋꿋하게 아무렇지 않은듯 입술을 깨물고 있었습니다.
"잠정도는 편하게 자게 하고싶다는 거야. 그래도 음, 대담해졌네."
서로의 말이 줄어들고 운동장에서 들리는 다른 학생들의 소리와 묘한 바람소리만이 흘러갈때쯤 그녀는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처음엔 당황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즐길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실제로 해버린다면 어떻게 할지에 대한 생각은 해두지 않았으니까요. 우선은 이 자리를 벗어날 화제전환이 필요했습니다.
"그러고보니 꽃놀이라면 기숙사 뒤쪽에도 벚꽃이 하나 있었지. 확실히 거기라면 아는 사람도 적고 편하게 놀 수 있을거야."
물론 그것이 쉬운일은 아니었습니다. 오랜만에 돌아가는 연애뇌는 오버클럭해서 말을 제멋대로 해석하기 마련이니까요. 거절당하는 것을 전제로 했던일이 현실로 일어난다던가 하는 것. 그녀는 경험하지 못한 감각이었습니다.
어릴적에는 여느 아이들이 그런것처럼 강민 또한 관심을 끌려고 노력했던적이 있다. 그렇기에 한테이가 말하는 예전이라는 것은 어릴적에 둘이서 만났을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허벅지에 누운채로 한테이를 응시하던 강민은 잠시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 이 상태로 잠들면 네가 불편할테니까. 그래도 조금은 이러고 있어도 괜찮지? "
대담해졌을까? 아무렇지도 않다는듯한 그의 표정은 이런 상황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누워있는게 조금은 신경 쓰는 것 같았지만.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그녀가 먼저 꺼낸 화두에 강민은 눈을 뜨고서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 꽃놀이를 즐기기엔 좀 작은게 아닌가 싶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려나. "
막 수많은 사람들이 어울려서 놀 것은 아니니까,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봄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와서 그의 앞머리를 흐트려놓는다. 강민은 바람이 좋은지 앞머리 정돈은 할 생각도 없이 가만히 누워있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고마워. "
앞머리를 대충 훑어내리면서 얘기한 그는 여기에 처음 앉았을때처럼 벤치에 등을 깊게 묻으며 앉았다. 어쩐지 작년, 재작년보다 훨씬 여유를 부리는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아직 머리도 제대로 크지 않은 아이들이 누군가를 쫓아다니는 데에는 이골이 날 정도였던 경호원들을 따돌리고 거의 하루 종일을 도망쳤던 건 괴물을 연구하던 사람들의 눈에는 흥미롭게 보일 수 밖에 없었겠지요. 그녀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깊은 숨을 들이켰습니다. 조금은 진정이 된 걸까요 평소와 비슷한 모습이 된 그녀는 신경 안써도 된다는 것처럼 고개를 저었습니다.
“해주고 싶어서 하는 건데 뭘.”
몸을 일으키는 그를 따라 그녀는 허벅지 위에 펼쳐 둔 손수건을 접어 넣었습니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행위였지만 그녀는 내심 오늘은 조금 많이 나아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입가로 새어나오는 미소를 숨길 수 없었습니다. 이전이었다면 이런 건 생각도 안 했을 텐데. 소녀는 아직도 그와의 첫만남이 퍽 운명적인 모양입니다.
“공원도 나쁘지는 않지만 거기는 사람이 너무 많잖아.”
그녀는 우리끼리 하는 건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며 바보같이 웃었습니다. 어릴 때의 기억이 아직 온전히 남아버려서, 그녀는 아직까지도 사람이 많은 곳을 꺼려했습니다. 소란에 얽히는 것이 귀찮았고 거기에 따라오는 여러 이야기들이 귀찮았습니다.
“우리 사이에 뭘.”
답답할 정도로 짧은 단어였습니다. 그녀가 아는 그는 조금 변해 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싫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습니다. 사람으로서의 삶은 여전히 서투르고, 아는 사이도 그다지 없는 만큼 세월이 흐르면서 바뀌어가는 것이 애틋하게 느껴지는 듯 합니다.
“으이이이이잇.”
찌뿌둥해진 몸을 풀어내니 그녀의 입에서는 이상한 목소리가 새어나왔습니다. 오전 중 계속 돌바닥 위에서 자고 있던 거니 어쩌면 몸이 뻐끈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얼굴에서 힘이 빠졌네. 보기 좋아.”
그녀는 그를 향해서 고개를 돌리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습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이곳에서 만나기 전에 그녀 안에 새겨진 그에 대한 인상은 어딘가 조급해 보였으니까요. 아마 당시의 상황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지금이 훨씬 괜찮아 보이는 건 사실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관심을 끌지 않으며, 동시에 영향을 끼친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해야할까, 사실 애덤 스미스가 유파의 존재를 어렴풋이 깨달았다던 사실은 세상 사람들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가 어떤 집단에 속해있는지 한테이도 알지 못하기에 그는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할 뿐이다.
" 그런 곳도 나름 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테이 말대로 사람이 너무 많은 곳은 좀 그러니까. "
사실 한테이도 그렇고 강민 또한 외모는 어디에 가던 상당히 주목 받을만한 것이라 유파의 가르침을 위해선 사람들이 많은 곳은 당연히 피해야했다. 그래서 이따금 열리는 축제도 아주 가끔씩 가는 신세였다.
" 덕분에 편하게 쉬었으니까. "
이상한 소리를 내며 몸을 푸는 한테이를 보며 그는 재밌는지 웃음소리를 내어버린다. 그러고선 자신도 가볍게 몸을 돌려가며 몸을 풀어주는데, 곳곳에서 우드득하는 소리가 난다. 아무리 그래도 벤치에 그렇게 누워있는건 좋지 않으니까 말이다.
" 오후에도 옥상에 있을꺼야? 오후엔 교실에 들어가는게 어때? "
오전 내내 그녀가 여기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그는 오후엔 교실로 그녀를 데려가려고 했다. 물론 강제상은 없지만 그래도 여기보단 교실이 더 낫지 않은가하는게 그의 생각이었다.
유명한 배우나 아이돌이라면 모를까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그녀에게 있어서 어디를 가도 눈에 띈다는 것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절반 정도는 황제의 유전자이기 때문일까요?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의 대부분은 공포심에서 나온 것이었고 그녀 역시 이제는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를 더욱 빛나는 것으로 바라보았을 겁니다.
“확실히 여기에 다른 사람이 있었으면 아무리 내 무릎을 써도 편하게 있지는 못했겠네? 후후”
다음에는 남들 앞에서 하는게 좋겠다고 그녀는 조용하게 다짐했습니다. 약간은 짐승처럼 마킹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주변의 적을 치울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임은, 부정할 수 없겠지요. 그녀는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누구에게나 상냥하니까요. 속내를 알 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딱히 그런 생각보다는 이 남자, 어디까지 자각이 없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게 전부 계산되었다고 한다면…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경멸할 것 같기는 하네요.
“옥상은 이제 질렸고, 보건실이나 가서 선생님이 숨겨둔 과자나 집어먹을까? 너도 어때?” //슬슬 막레로 할까?
그 과정을 말해준다면 부럽다는 생각은 사라지겠지만 강민은 그저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릴적에 만났던 그녀를 생각하면 분명 자신과는 또 다른 어떤 비밀이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에 와서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구태여 의문을 가지지도 않았다. 이어진 한테이의 말에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랬으면 좀 불편했겠지. "
학교의 소문은 빠르다. 더욱이 엘부르즈 같이 전교생이 적은 학교라면 구설수가 퍼지는 속도는 순식간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한국의 속담처럼 그 소문은 빠르게, 그리고 살에 살이 붙어서 어느샌가 엄청난 소문이 되어있을테다. 그러는 것은 강민쪽에서 사양이었기에 누군가 있었다면 지금보단 행동을 좀 더 조심스럽게 했을 것이다.
" 그러다 선생님 화내신다. "
보건 선생님이 숨겨둔 과자의 양이 많기 때문에 거기서 조금 집어먹는다고 해서 걸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강민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나 같이 가자는 권유에는 아까처럼 다시금 옅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 아까도 말했지만, 부모님이 엄하셔서 말이야. "
어느새 시간이 다되었는지 점심시간을 맞아 운동장으로 나왔던 학생들이 다시금 들어가는 것이 그의 눈에 보였다. 자신도 교실로 돌아가야하니 그는 벤치에서 일어나 한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 심심하면 놀러와. 미츠키도 있으니까 말이야. "
여느때처럼 옅은 미소를 입가에 지은채 그는 몸을 돌려서 가볍게 옥상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 뒷모습은 마치 아무것도 거리낄게 없다는 것처럼 너무나도 가벼워보였지만, 동시에 그 무엇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게. 선관. 선관을 생각해야겠네. 원래라면 그냥 초면 스타트를 하는데 이건 하렘물이니까 남주와 어느 정도 연관성은 있어야 하려나? 강민주는 어떤게 편해?? 아. 그리고 유우나와 선관하고 싶은 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도 괜찮아! 혼자 1학년이라서 같은 반은 불가능하지만 중학생 때 같은 학교 선후배 사이부터 시작해서 콘서트 보러 왔다 혹은 옆집 등등 다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