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 못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눈썹이 까딱 오른다. 오, 그새 이름도 지어줬나. 유루의 특이한 별칭에 관해서는 그도 알고 있었다. 그는 색채에 관해 박식하지 못해서 그럴듯하게 부를 파랑을 모르기도 하고, 이미 그만의 별칭ー또라이ー이 정착된 탓에 그런 식으로 부르지는 않지만. 그는 아-하는 불퉁한 감탄사를 뱉으며 제 머리를 대충 쓸었다.
"아, 맞다. 그 새*도 그랬었지. 오늘 그 또라이 새*- 아니, 걔 본 적 있냐? 살아는 있나 해서."
말로는 나가 뒤져라, 짜증나는 새*, 미**, 기타 등등의 험한 말을 해대도 걱정되는 게 본심이다. 레레시아에게도 마찬가지고. 올려다보는 시선이 제게 닿자 그는 능청스레 웃기만 했다. 사실 용무 전혀 없지만 심심해서 괜히 놀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러는 거다. 그는 쥬데카와 길게 대화해 본 적 없었지만, 그간의 마주침에서 직감적으로 그가 장난치기에 좋은 상대라는 사실을 자연스레 깨달은 것이다.
"그게 후퇴한 직후에 의무실로 가신 것 같긴 한데... 그 뒤로는 아직 못 만나봤습니다. 물론 살아계시지만요."
이야기 정도는 들었다. 아마 의무실에 가서 여러 이야기를 듣지 않았으려나. 나중에 만날 때 선물을 좀 준비해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승우가 여기서 하려던 일에 대해 듣는다. 그 직후에 되돌아오는 질문에 대해서도 생각을 좀 해봐야 했고.
"버스트 말씀이시죠, 저도 비슷합니다."
위험한 임무였으니 쉬어두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마냥 쉬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몸이 굳지 않도록 움직여주기도 해야 하고 지난번 글라키에스와의 전투에서 근접전으로 해결을 하는 게 굉장히 힘들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다른 무기도 좀 써볼까. 라는 감각으로 온 셈이다.
뭐, 살아 있으면 됐다. 나중에 찾아가서 속이나 긁어 줄까. 시답잖은 생각을 끝으로 머릿속에 떠도는 걱정을 치워버렸다.
"그래? 넌 씨* 어떤 건데? 나는 글라키… 그 ***이랑 같은 거일걸."
어떤 형태의 버스트인지 묻는 말일 것이다. 이야기를 하려니 필연적으로 어제의 상황이 뇌리에 스쳐갔다. 반응할 틈도 없이 들이닥친 일격, 그리고 후퇴하기 전 터뜨렸던 거센 불꽃과 충격. 음, 역시 생각하니까 좀 열받는다. 잠깐 놀리느니 마니 해도 시시껄렁한 소리나 좀 하다 나가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팔짱 낀 채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그가 대뜸 말했다.
"야. 뜨자."
저 혼자 생각하고 저 혼자 결론내는 꼴이 참 제멋대로다. 그렇지만 나름대로는 합리적인 사고를 거쳐 내린 판단이었다. 어차피 혼자서만 줄창 연습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과 붙어가며 배우는 게 더 나을 테고, 상대도 훈련하러 왔다 하니 그렇지 않겠나. 쥬데카의 입장에서는 들어오자마자 봉변 당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그것을 고려할 정도로 섬세하지는 못했다. 다행히도 막무가내로 덤빌 생각까지는 없는지, 말만 떨어진다면 곧바로 검이라도 꺼낼 기세로 대답을 기다리기만 할 뿐이다.
저번 미션 이후 아스텔은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 이전에 약속을 한 것이 있긴 하지만 바로 가는 것보다는 역시 조금은 쉬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었기에 그는 굳이 레레시아를 찾아가진 않았다. 보아하니 그때 꽤 다친 것 같기도 했었으니까. 자고로 다친 상태에선 술을 먹으면 안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일단 그 약속 수행은 조금 미뤄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아스텔은 지금은 휴식을 취하는 것을 선택했다.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기도 하고, 자신의 보검을 바라보기도 하며 그는 조용한 침묵을 지켰다. 듣자하니 버스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던가. 에스티아가 모조용 보검에 심어놓은 세븐스. '사이버 엘프'인 루시아. 꽤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괜히 작게 숨소리를 내던 아스텔은 밖으로 나가서 바람이나 쐴까 싶어 자신의 개인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레지스탕스인 이상 최대한 기지가 눈에 띄면 안되기에 기지를 지하에 만들어둔 것은 납득할 수 있었으나 역시 지상으로 올라가야만 나갈 수 있고,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조금 번거로운 일이긴 했다. 물론 그에 대한 불만은 없었지만.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계단으로 향하는 도중 아스텔은 딱 모퉁이에서 레레시아와 마주칠 수 있었다. 가만히 두 눈을 깜빡이던 그는 그녀를 바라보다 오른손을 살짝 올려 인사했다.
"안녕. ...몸은 괜찮아?"
/약속이 있으니 찾아가긴 했겠지만 부상을 입었으니까 찾아가지 않았을 것 같네요. 그렇다고 합니다. 아무튼 식사 맛있게 하세요!
우연찮게도 딱 맞아떨어지는 공방 형태다. 이쪽은 열심히 버스트로 때리고 저쪽은 버스트로 막으면 되겠네. 그는 가뿐한 기분으로 보검을 꺼내들었다.
"뭐, 개같이 싸우면서 감 잡는 게 빠르지 않겠냐."
장난스레 씩 웃으며 끝낸 말과 함께, 보검이 해방되며 손끝으로부터 견갑과도 같은 무장이 뒤덮이기 시작한다. 드러나는 부분 하나 없이 견고한 무장이 갖춰지자 내내 고수하고 있던 느긋한 기색도 사라진다. 그는 당장이라도 쏘아질 듯 몸을 낮추었다……가,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 짧은 탄성을 뱉고는 자세를 풀어버렸다.
"아, *. 너 씨* 준비운동 안 했지 않냐? 다 하면 말해라."
대뜸 한 판 붙자며 밀어붙인 것치고는 차분하다고 해야 하나. 다음 임무 때까지 몸 보전 잘 해야 하니 발목이라도 삐끗하는 일은 없어야지 않겠나. 그는 기껏 발동한 보검을 다시 돌려놓고서는, 그것이 작대기라도 된다는 양 대충 체중 실어 검에 기대고 있다. 정말로 준비운동 정도는 기다려 줄 요량인가 보다.
퍽 하는 소리가 숲속 깊은 곳에서 울려퍼졌다. 무엇인가가 나무에 찍히는 소리같아 누군가는 어디선가 벌목을 하는 중인가 추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소리는 연이어 계속해서 들려왔고 간간히 남자가 끙끙대는 소리도 들렸을 것이다.
누군가가 수풀을 헤치고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가본다면 나무에 걸어둔 과녁에 손도끼를 던지고 있는 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무과녁에는 이미 숱한 칼질 자국과 화살자국, 간간히 총알의 흔적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끔씩 과녁에 손도끼가 깊게 박힐 때면 이것을 빼기 위해 끙끙대며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훈련을 한 시간이 오래 되었는 지 그의 전신은 온통 땀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때 엘사녀와 싸울 때 총알이 다 떨어져 큰일이 날 뻔한 것을 생각해 보면 총이 아닌 것을 다루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엘사면 노래나 부르지 사람을 잡고 있어"
이내 탈진 했는 지 바닥에 쓰러져 멍하니 하늘을 본다. 선우가 그때 구한 아이들은 다른 부대에 맡겨져 정신 치료를 받고 있고 나중에는 다른 안전한 마을로 보낼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자꾸 구하지 못했던 이미 죽어 시체가 된 아이가 떠올랐다. 가디언즈 여럿을 길동무로 보내주긴 했지만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이라는 후회가 가시질 않는다.
"배고프다."
몸을 일으키고는 호숫가 근처에 가서 장작과 버너를 준비한다. 지난 번엔 훈련장에서 고기를 구워먹었다가 곤욕을 치뤘으니 이번에는 밖에서 먹는다. 두툼한 고기와 함께 각종 향신료를 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