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속도를 멈추게 했을 뿐 약점 까지는 아니었던 걸까. 사실 약점이라는 것이 따로 있을까 싶기는 했지만서도. 같은 팀원끼리 꽤나 공세를 퍼부었다고 생각했음에도 글라키에스를 무찌를 정도의 힘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마리는 이 앞의 적을 무찌를 생각을 끊임없이 이어서 할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글라키에스의 말은 마리에게 전혀 닿지 않는다. 생각하고 또 생각할 뿐이다.
그러던 중 마리에게 닿는 목소리가 있었다. 왜 싸우냐는 그 목소리. 마리는 그것이 자신의 보검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눈이 휘둥그래진 채 마리는 저에게 힘을 주는 그 존재에 귀를 기울였다.
왜 싸우냐는 그 말.
“이길 수 있어. 끝까지 부딪히고 부딪히는 건 죽을 지언정 지는 건 아니니까. 나는 내 신념이 옳다고 생각하니까. 그 신념을 위해 이길 때까지 부딪히는 걸 포기하지 않을 거니까.”
마리는 작은 미소를 띄웠다.
“세븐스와 비세븐스 구분 없이 서로 함께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그런 세계를 만드는 것이 마리의 꿈이고, 목표이고, 신념이었다. 절대 굽힐 수 없는, 절대 설득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유품이었다.
계속되는 화기의 반동과 폭발로 전신이 웅웅거렸다. 동료들 중 일부는 얼어붙었고 피하고 도망치느라 전신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아직까지 그녀의 공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피하는 것에 급급했다.
"넌 아직 내 머리털 하나 건드리지 못했거든?"
보검을 사용하는 자의 세븐스를 증폭시켜주는 버스트, 글라키에스는 한번 더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 선언했다. 그녀 말이 맞다. 지금까진 어떻게든 피했다 하더라도 더 이상 공격이 나아든다면 이길 수 있을 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숨을 쉴때마다 얼음조각들이 기도와 폐에 박히는 것만 같았다. 놈의 공격을 피하느라 숨이 거칠어져 고통은 더욱 극심했다.
"뭐야? 자기 객관화가 아주 잘되는 친구였잖아? 그럼 네 최후도 알고 있겠네?"
이제 산탄총의 총알도 얼마 남지 않고 폭탄도 거의 다 떨어졌다. 총알과 폭탄이 다 떨어지면 남은 것은 화살이나 투석같은 옛 무기일 뿐이다. 서열 3위는 역시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넌 얼굴은 예쁜데 성격이 너무 전형적이어서 재미가 없어. 미안해 자기, 우린 여기까진가봐"
다시한번 글라키에스의 목을 향해 폭탄을 던지며 산탄총을 난사했다.
-왜 그렇게 싸우려고 하는 거야? [복수, 그것뿐이야]
-무섭지 않아? 힘의 차이는 확연하게 다른데 어째서 싸우려고 하는거야? [말했잖아. 복수라고.]
-이번 싸움은 이기지 못해. 그건 스스로도 알 수 있을거야. [난 지금까지 한번도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한 적이 없어]
-...그런데 어째서 이 싸움을, 세계와 싸움을 하려는거야? 이런 이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해? [왜냐고? 이 빌어먹을 세계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모두 파괴했으니까. 싸워서 이기느냐가 아니야. 복수하지 않으면 이 망할 세상에 한방 먹이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싸우는 거야.]
차갑다. 그녀의 몸은 바닥을 짚고 엎어진 그대로 얼어붙었다. 방금 공격은 위력 뿐만 아니라 맞은 상대의 움직임을 봉할 수도 있었나보다.
아아. 이건, 억지로 움직이면 어딘가 부서지거나 부러질 것 같다. 그렇다면 이대로 다시 공격을 맞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머릿속으로 와일드 팽의 사진이 떠오른다. 눈 앞에서 산산히 부서진 사람이 떠오른다. 겨우 눈을 깜빡이고 숨을 쉬는게 고작인 상태로는 다음을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녀도 그렇게 되는 걸까. 그렇게 부서져서, 돌아가지 못 하는.
흐릿해지는 시야가 어떤 목소리로 인해 확 밝아졌다.
"뭐...?"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울린다. 뭐지. 환청? 아니. 그녀를 두르고 있는 모조 보검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소리다. 이길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왜 싸우느냐고 물어온다. 지금 당장을 나아가서 세계와의 무모한 싸움을 왜 하려느냐고 묻는다. 그녀는 눈을 뜬 채로 입술을 달싹였다. 왜. 왜냐고? 왜?
"..그야 무섭지. 단체로 덤벼도 저 한 명을 못 이겨. 이거 어떻게 무섭지 않겠어. 그렇지만,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있어. 물러서면 안 되는 목표가 있어."
추워서 턱이 떨리지만 턱에 힘을 주어 또박또박 내뱉는다.
"세상에 이기기 위해서가 아냐. 잃어버리고 빼앗긴 것을 되찾아, 내일을, 미래를 살기 위해서 싸우는 거야. 나는 살아야 하고, 살고 싶으니까!"
그러기 위한 힘이 너무나도 절실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무력하고 가혹해, 다시금 깨문 입술에서 피가 방울졌다.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진 덕택에 자신은 무사하게 되었지만 그리 달갑지는 않은 결과다. 그는 팍 찌푸린 얼굴로 레레시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 나섰다. 요힝히 피했다지만 상대에게는 아직 많은 수가 남아 있었다. 필살기라 해도 한 번 쓰고 치워버리는 것에 불과한 이쪽과는 달리. 불길한 직감이 닥쳐온다. 이대로라면 끝이라는 생각이 들어오지만 상황을 타개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세워진 검 끝을 응시하는 눈의 동공이 확장되며 이어질 사태에 대비하고자 했다. 감각이 날카롭게 곤두서간다. 아찔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그때, 빠르게 끓어오르던 투지를 멈추게 한 것은 어디선가 뜬금없이 들려온 말소리였다.
유감스럽게도 호소하듯 말하는 목소리에 제대로 귀 기울여줄 정도로 그는 감상적이지 않았다. 집중이 삐끗하게 생겼으니 당연한 일이다. 다 뒤지게 생겼는데 정신 사납게 뭐야, 씨*.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자연스레 들려온 말의 대답을 떠올려 보았다. 이 정체 모를 기현상으로부터 느껴지는 감각이 불길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난 씨* 살면서 뭘 가져 본 적이 없거든. 이제야 뭐가 좀 생겼는데, 겨우 가진 걸 저 ***들이 처 뺏어가려고 지*이잖아. 내 거 안 뺏기게 지키려고 그런다."
존* 뭐 해줄 거 아니면 집중 안 되니까 닥치고. 그렇게 중얼거리고선 격발한다. 조준은 글라키에스의 복부를 향해 있었다.
뜬금없이 이름은 왜, 그런 말을 하려 했다가도 그저 몸이 얼어붙는 것만 느껴본다. 말 해서 뭐 하랴, 알아서 정신 차리고 공격 해주는것 같으니 침묵해도 좋을 것만 같다. 맥락없는 행동은 에너지 낭비, 끝까지 도움이라도 되려면 정신을 붙들어놓을 여력 정도는 남겨야 한다. 방금 전의 공격은 운 좋게도 치명적이진 않았다만, 중상은 입은것 같다. 피격 부위는 등이였던가? 아니, 갈비뼈 라인을 타고 갈랐던가? 얼어붙은 감각만이 느껴져서 어느 정도로 다쳤는지 가늠도, 죽어간다면 그 증세나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진정을 하려 눈을 감고선 가만히 숨을 고른다. 통증을 느껴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글라키에스가 뭐라 말하는것에 습관적으로 집중이 가해졌다가 억지로 무시한다. 자신의 부상을 확인하려는 그는 이내 심장이 원 박자를 찾아가는 것을 짐작하듯 느낀다. 살이 에는듯한 추위와 벌어진 상처 부위가 얼어 문드러지는 감각이 반갑다.
그리고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모두의 보검에서 나는듯한 물음. "왜 싸워?"라며 묻는 말에 정곡이 찔려야 한다, 그도 지금 베이고 찢긴 상처나, 눈사람 꼴이 아니였다면 동공이 흔들렸을 것이다. 그는 이기적이다, 그러니 적성에도 맞지 않는 싸움이나 훈련을 하면서 목숨을 내놓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인권을 위해? 아니, 그보다 더 무언가가 있다. 세븐스 전 인구를 모아도 불태운다 협박해도 그걸 버리고 선택할 누군가.
그는 아무 말 없이 홀로 생각을 정리한다. 본래 말을 아끼고 들려오는 말을 무시하려 했다만, 부대원들이 답하는 소리를 듣고 눈을 느리게 깜박이더니 작게 입을 달싹인다.
다행히 체인을 다리에 휘감을 수 있었다. 그것뿐이라면 그대로 끌려가 버리거나 체인이 얼어붙어 끊어져 버렸거나 했겠지만 공격을 간신히 피한 이들의 반격 덕분에 글라키에스는 약간이지만 피를 흘리며 멈췄다. 더군다나 이어진 스페셜 스킬의 연계에 글라키에스는 뒤로 물러선다, 이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산이 보이지 않는다. 이게 본격적인 강함이란 건가? 너는 뒤로 물러선 글라키에스 쪽으로 두어 발자국 내딛는다. 그녀에게 등을 보이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중요한 건 이미 얼어붙어 움직일 수 없는 유루를 무방비 상태로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저 말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방금의 공격으로 사경을 헤매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유루가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너도 그 중 하나였을 터였기에 너는 반박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긍정하지도 않았으니 적어도 지금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제 슬슬 끝내려는 듯 검을 겨누는 모습을 보며 너는 이를 악물었다. 다음 순간 몸이 꿰뚫렸을까? 아니면 변덕이라도 일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을까?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그 누군가는 멀리 있지 않았으니 네가 품고 있는 보검으로부터 나는 소리임에 틀림없었다. 어떻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조금 흔들리던 눈동자는 목소리가 전해 주는 이야기에 점점 평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어째서 싸우려고 하는가? 두렵지 않은가? 힘의 차이를 깨닫지 않았는가?
도대체 왜.
싸우려고 하는가?
두렵고 두렵지만. 죽음 너머의 세상이 헛되고 헛되지만.
"내가 지금 여기서 살아 숨 쉬는 한, 전력으로 살아가겠다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한 걸까?"
그 끝이 지옥이라도 상관없다. 언젠가 떨어질 지옥이라도 기꺼이 뛰어들리라,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숨이 붙어있지 않느냐, 지금 네 앞에 네 삶을 짓밟으려는 존재가 있지 않느냐. 최후의 최후까지 너는 네 의지를 놓지 않으리라.
-모두의 답. 잘 들었어. -그것이 올바른 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그게 싸워야 할 일이라면.. -약속해줘. 지금 가지고 있는 그 마음은 절대 포기하지 마라고.
목소리가 점점 사그라들었고 그러거나 말거나 글라키에스는 피식 웃으면서 모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부 공격을 한 이도 있었을지도 모르나 강력해진 냉기 탓일까. 그 공격은 제대로 닿지 못하고 얼어붙거나 깨지거나 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어 그녀는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며 이도류를 제대로 잡았다.
"그렇다면 슬슬 끝을 내볼까. 아하하. 잘 가. 패배자 제군!!"
-그렇게는 못 해!
또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이내 어딘가에서였을까. 누군가의 보검 속에서였을까. 아무튼 정말로 작은 크기. 마치 동화에 나올법한 요정 크기의 작은 여성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마치 홀로그램인 것처럼, 혹은 정말로 살아있는 이처럼. 하지만 만지려고 하면 아마 만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정말로 연한 분홍색 긴 머리카락은 등을 덮고 있었고 천진난만하면서도 순진해보이는 동그란 보라색 두 눈은 마냥 순진하진 않다는 듯, 강한 힘이 녹아있었다. 등 뒤에 붙어있는 것은 하얀색. 마치 천사가 가지고 있을 법한 날개였다.
-나는 루시아.
"......!"
이내 그 모습에 글라키에스는 순간 당황했다. 그리고 공격을 멈칫하면서 움직이지 않고 살짝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이유일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글라키에스의 움직임이 잠시 멈춰섰다는 것이었다.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 제 0 특수부대에게 이야기할게. -나는 에스티아가 너희들이 만든 보검에 심어놓은 또 하나의 세븐스. '사이버 엔젤'. -이 지옥에서 목숨을 잃어야만 했던 아이의 세븐스. -아스텔이 가지고 있는 오리지날 보검을 토대로 만들어냈으나 오리지날 보검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모조 보검에 에스티아가 심어놓은 희망. -오리지날만큼은 못하지만 지금 여기서 개방할게. -버스트를.
이내 조용히 들려오는 것은 여성의 노랫소리였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보검은 화려하게 빛을 뿜고 있을 것이고, 얼어붙은 이들은 해체되었을 것이고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몸 속에 있는 세븐스가 용솟음치는 느낌. 그것은 세븐스가 한폭 더 강화되는 느낌이었다.
-들리나? 제 0 특수부대. -아직 살아있다면 전원 후퇴해. 밖의 탱크.. 데스트로이어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처단해놓았으니까.
이내 모두에게 아스텔의 통신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밖은 어떻게든 정리가 된 모양이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 그건 이제 각자의 선택이었다.
/NPC 서포트. 루시아의 등장으로 인해 앞으로 전투에 딱 두 번. 버스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단 버스튼 세 종류가 있고 한번 선택한 버스트가 계속 적용되는 거예요.
공격형 - 평소에 공격을 2번 가능, 버스트 발동시 상대의 방어를 무너뜨리는 가드 브레이커 장착과 공격력 2배의 효과. 단 자신의 스페셜 스킬에는 적용 불가.
기동형 - 평소에 회피를 할 때 회피력이 60%로 상승. (다이스 1~3으로 돌려 1,2은 회피, 3은 실패), 버스트 발동시 100% 회피를 하는 절대회피 발동 가능 혹은 상대를 데리고 회피를 같이 하는 것이 가능. 단 적의 스페셜 스킬에는 적용 불가.
방어형 - 평소에 전체 공격이 날아올 때 상대의 공격을 방어해줘도 2번의 데미지를 입는 것이 아니라 1번만 입는 것이 가능. 상태이상이 걸리는 공격의 경우 다이스가 수치가 하나 더 추가. (이를테면 1~3을 돌려서 1이 빙결 상태이상일때, 방어형은 1~4로 돌리는게 가능), 버스트 공격형의 데미지를 일반 1배로 방어 가능. 버스트 발동시 자신과 다른 한 명 한정으로 데미지를 입지 않는 절대 방어 가능. 단 적의 스페셜 스킬에는 사용 불가.
여러분들의 캐릭터에 맞게 하나 고르시고 버스트를 사용하셔서 해결하면 됩니다. 전투는 종료되었고 이벤트성이니 알아서 사용하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