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이야기하지만 저는 이 진행을 여러분들이 이기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거지. 적들을 엄청 어렵게 해서 봐요. 제가 준비한 이 적이 존나 쩔고 강해요. 어떻게 이길래요? ㅎㅎㅎㅎ 이럴려고 하는 것은 아니에요. 물론 너무 쉽게 하면 재미가 없지만 그래도 이길 수 있게 해야 재밌게 즐기는 법이죠. 고통받으려고 여기에 시트를 낸 것은 아닐 거 아니야. (개똥철학)
아. 그리고 이거 전에도 잠깐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특별한 관계를 맺은 두 캐릭터(우플이안 연플)의 경우는 협의 하에 협동스페셜 스킬을 쓸 수 있어요. 연출이나 어떤 기술인지는 뭐, 이제 두 분이 알아서 협의하는 것으로. 개개인의 스페셜 스킬 하나, 그리고 협동 스페셜 스킬 하나. 이렇게 따로 한번씩 발동할 수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단 협동 스페셜스킬은 두 사람이 함께 써야 해요.
얼음이 해채되면 발에 땅을 딛는다. 몸 곳곳을 타고 흐르는 액체가 물인지, 피인지 가늠이 어렵다. 자신을 루시아라 소개한 홀로그램, 그리고 이것이 현실이라는 듯 증명하던 노랫소리와 세븐스가 증폭되어 요동치는 느낌. 상태도 흘린 피의 양 치곤 양호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즉흥적으로 냅다 휘갈기면 증폭된 만큼 피로도도 더 쌓여, 제 몸 못 가누게 될지도 모르니 아스텔의 말을 순순히 듣는다. 순간 동요하는 듯한 글라키에스의 움직임이 눈 끄트머리에 보이면, 고개를 팩 돌려 약하게 웃음을 뱉는다. 결국 당신도 같은 사람이고, 본질은 누구나 비슷하다는 것이 이 상황에선 꽤나 재밌었다.
아이들은 어째야 하나. 이런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생존자의 죄책감을 강하게 느낄 수도 있으니, 어쩌면 억지로 살라고 붙들어 놓는게 더 못할 짓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는 다른 누군가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겠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발을 뒤로 내딛는다. 어짜피 본인이 가도 공격을 잘못 받으면 죽을 수도 있을 부상이니. 그는 후퇴 명령을 듣고, 수행했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 목표는 있지만, 그걸 이룰 힘이 부족하다. 그 현실 앞에 무릎 꿇으려는 찰나. 아주 작은 빛이 켜졌다. 너무나 미약한 희망이란 이름의 빛이었다. 그 작은 빛은 글라키에스조차 주춤거리게 만들고 얼어붙은 몸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온갖 악과 흉이 담긴 상자 밑바닥에 남은 것은 희망이리라..."
얼음이 부서지며 몸을 일으킨 그녀는 어깨에 걸쳤던 천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방어구도 떨어뜨렸다. 거의 무방비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전신에 독액이 흘러내린다. 하얀 피부 위를 흐르는 독액은 붉고도 붉다. 부상에서 흐르는 피를 머금고 붉은 눈물마저 흘리며 그녀를 중심으로 붉은 웅덩이를 만들어내었다.
그 와중에 아스텔로부터 통신이 들려와, 입꼬리를 한쪽만 올려 미소를 지으며 통신에 말을 보탠다.
"버스트로 얼음벽을 부술 수 있는 인원은 벽을 부수고 남은 아이들을 데리고 여길 빠져나가. 전원 나가면 폭발을 일으킬 거야. 휘말리지 않게 서둘러."
그리고 그녀를 감싸주려는 멜피에게도 휘말릴테니 먼저 나가라곤 했겠지만, 강요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행동하는 사이 독액이 생성될 시간 역시 충분했다. 일정 공간을 출렁거릴 만큼 생성된 독액에 손을 담그자 독액이 일제히 출렁거리며 요동친다. 독액은 제각기 모습을 이루어 수많은 나비떼를 만들어내었다. 인분 대신 기화성 독액을 뚝뚝 흘리는 나비들은 소리없이 날개짓을 하며 신호를 기다린다.
"그 얼음 녹아 봄이 오기를. 폴링 커스."
한 손을 치켜드는 것을 신호로 독액의 나비들이 글라키에스와 전투장 안을 채운다. 이제 그 안에 승우가 폭발을 일으키고, 남은 인원들도 빠져나가기만 하면 될 것이었다.
갑작스레 튀어나온 자그마한 인영에 그는 조금쯤 황당해졌다. 작은 크기에 등 뒤에 날개까지 달려 있다니, 이런 난데없는 동화적 광경이라면 예전에도 경험해본 적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좀 아니지 않나. 그렇지만 직감했던 대로 이 존재는 그에게 도움이 되면 되었지 방해가 되진 않을 모양이다.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선 고개를 끄덕인다. 의문점은 많았지만 잠시 미뤄둔다. 뭐가 어떻게 되었든 지금은 이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써야 했다.
시선을 돌려 방금 전까지 부상으로 인해 쓰러져 있던 레레시아를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시도한다면 지금이 적기일 테다. 눈짓으로 신호를 살피고는, 조합된 독이 날아오르는 것을 지켜본다. 일제히 난사된 탄환들이 붉게 물들며 나비들의 비행을 파고들어 스며든다. 이윽고 묵직한 진동이 얼음의 지대를 훑고 내달렸다. 파괴의 반향이 전장의 긴 울음으로 휘몰아쳤다.
냉기는 점점 더 강해진다. 견제가 목적이었든 타격을 입힐 목적이었든 개시된 공격은 전부 막혔다. 역시 지금은 이길 수 없나. 살아 돌아갈 수는 있을까?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할 거라는 다짐이 무색해지려 할 즈음, 보검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낸 자그마한 여자아이의 모습. 그건 마치 요정 같았다. 스스로 루시아라는 이름을 가진 사이버 엔젤이라며 소개하는 그 존재의 모습을 너는 놀라움이 섞인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째서인지 글라키에스의 움직임도 멈췄다. 왜?
"버스트를...?"
방금 전 글라키에스가 보여줬던 무지막지한 힘, 방금 전에도 사용하려고 했던 그 힘을 말하는 거겠지. 오리지날만큼은 못하지만 힘을 다해 돕겠다는 듯한 루시아의 목소리에 너는 품 속의 보검을 꽉 붙잡았다. 아니, 오리지날이든 모조 보검이든 전혀 상관 없었다.
"지금 내 손에 쥐어진 이 보검은 모조품도 뭣도 아니야, 나에게 있어서는 처음으로 다가와 준 힘."
오리지날은 이 보검 뿐이라고 중얼거리며, 귓가에 들려오는 노랫소리와 함께 빛을 내뿜는 보검과 함께 기운이 안에서부터 솟아오르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지금이라면 한 방 먹여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빛나는 보검을 품에 안고, 너는 땅을 박찼다. 좀 더 빠르게, 가볍게 움직이는 몸에 감탄하면서 글라키에스에게 정면으로 달려든 네 손은 아마 글라키에스의 목을 노리고 있지 않았을까, 붙잡아 조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너무 오래 붙어있다간 금방 얼어붙어 버리겠지.
그렇지만 지금은 적어도 순식간에 얼어붙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녀가 움직이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린다. 가벼워진 몸으로 그 읽어낸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 아마 아이들을 구출하는 걸 최우선으로 행동하는 이들이 있을 터다. 그렇다면 글라키에스를 쓰러트리지는 못해도 좋다. 그들이 자유롭게 저 벽을 무너뜨릴 때까지 네가 시간을 끌어줄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