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쳤다. 구멍으로 떨어진 아이와 무엇인가 불타는 냄새. 이건 죽음의 수많은 향기 중 하나였다. 그 끔찍한 향에 일그러지는 네 표정은 헬멧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겠지만. 다음 순간 곁에서 어깨에 말뚝이 박혀 고통스러워할 병사의 몸통을 밟고 있는 힘껏 말뚝을 뽑아내는 네 손짓에는 충분히 감정이 담겨 있었다. 여기저기서 계속해느껴지는 비릿한 냄새.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네가 선 곧 옆에 있는 문 너머로부터 그 어느 장소보다도 강하게 풍겨나오는 짙은 혈향에 너는 반사적으로 문에 있을만한 손잡이를 붙잡으려고 했다. 이 안에 아이들이 있는 건가? 지금 서로를 죽여가며 피를 흘리는 아이들이? 떨리는 손이 손잡이를 잡았다면 있는 힘껏 문을 열어젖혔으리라. 손잡이가 없었다면 그대로 문을 박살낼 듯한 기세로 문을 걷어치는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
가쁜 숨소리, 말소리는 섞여있지 않다. 입이 열렸기에 내쉬는 거친 숨은 있지만 그뿐이다. 분명히 이 너머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이 있을텐데, 들어가도 괜찮은 걸까? 이게 일을 어렵게 만드는 건 아닐까? 그런 이성적인 판단이 계속해서 너를 괴롭히지만 언제나 이성이 승리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적어도 지금의 너에게는 그러했다.
훌쩍 나서며 과연 잘 될까 싶긴 했는데 예상보다 제압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그녀는 첫 어그로와 독액 이후로 전투 대신 철창마다 독액의 벽을 적절히 쳐서 혹시 모를 도탄이나 피해가 아이들에게 가지 않게끔 했다. 딱히 애들을 챙긴게 아니다. 구출해야 하는데 다치면 귀찮으니까 그런 거다.
적재적소에서 움직인 덕에 한차례 전투가 지나간 뒤 쥬데카 쪽으로 이동한다. 가디언즈 병사가 아이를 넣던 구멍은... 쯧, 혀만 차고 보진 않는다. 거기서 쥬데카가 뭘 하고 있었을진 모르지만, 그녀도 따라서 구멍 옆의 문으로 향한다. 거기서 극히 분노한 듯이 문을 걷어차는 쥬데카를 보고 한소리 하긴 했지만.
"문 열다가 기운 다 쓰겠다? 정신 차려. 여기서 눈 뒤집히면 답없어."
정신 놓고 거치적거리면 던져버린다. 작은 경고를 남기고 그녀도 문 안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그 안을... 본다.
끔찍하다. 대체 이곳이 지옥이 아니면 어디가 지옥인걸까? 세븐스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이 아이들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겁먹은 얼굴이다. 훈련실에서 튀쳐나온 자살 희망자 3명은 다른 동료들이 하늘나라로 이민을 보내줄 것이라 믿고 일단 이 아이들을 진정시키로 한다.
아공간에서 인형들과 약간의 분장도구를 꺼내어 화장을 한다. 이전에 자주 하던 일이었고 간단한 분장이었기에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우스꽝스러운 분장이 완성되었다.
그는 한손에 인형을 끼우고 연기를 하며 아이들을 달래주기 시작했다.
"안녕? 친구들? 무서워할 필요 없어~!!"
아공간을 열어 사탕과 과자를 꺼내 아이들에게 나누어준다.
"우리들은 너희들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달려온 잘생긴 삼촌, 이모, 형이란다!"
쓰고 있는 뾰족 모자에서 아이들에게 나눠줄 약간의 장난감들을 꺼냈다. 값은 나중에 대장에게 청구하기로 한다.
"자, 너희들끼리 조금만 놀고 있어! 우리는 저 안에서 폭죽놀이를 하고 돌아올게! 궁금해도 절~대 들어오지 말고"
자욱이 깔린 폭연을 헤치고 나아간다. 어수선하게나마 주변 정리는 끝냈으니 이제는 다음 구역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일순 철창 속의 아이들을 향했다. 서로 죽고 죽이게 하는 참상이라는 말에는 사실 그다지 큰 감흥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철창 안에 가둬진 어린애라니, 보고 있으려니 불쾌한 기억이 자극되는 광경이지 뭔가. 그는 짧은 시간 고민했다. 어차피 구해야 한다지만, 내부를 다 정리하기 전까지는 데려가기도 힘든데 그냥 둘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조금 더 생각하자니 앞으로 더 벌어질 난장판을 생각하면 갇힌 채로 휘말려서 죽으면 곤란할 테고……. 적어도 위험할 때 문 열고 나가는 것 정도는 가능하게 해주는 게 더 나은가.
"야, 너네들 씨* 웬만하면 가만히 있어라. 뭐, 말려들어서 뒈지겠다 싶으면 도망가도 뭐라고는 안 할 거지만."
손을 들어 창살을 가볍게 훑자, 손 댄 부분이 서서히 달아오르다 별안간 고열에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려 다른 동료들을 뒤따랐다. 방향은 훈련실이다.
멜피는 막 밖으로 나온 3명을 아주 가볍게 제압하고 처리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승우는 철창의 문을 녹였다. 허나 아이들 중 밖으로 나오는 이들은 없었다. 다들 겁을 먹었는지, 혹은 힘이 빠졌는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아무런 말도 못하는 와중, 선우가 아이들을 달래주긴 했지만 이미 마음이 철저하게 부서지기라도 한 것일까. 아무도 웃는 이가 없었다. 눈에 생기는 없었고, 그야말로 정말로 이 아이들이 살아는 있는 것일까 싶을 정도의 느낌이 났을지도 모른다.
"...죽고 싶지 않아.." "...다른 이와 말하면...죽는댔어요."
그런 작은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나오지 말라고 말할 것도 없이 아무도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겁을 먹은 아이들도 분명히 있었지만 공허하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은 그야말로 혼이 쏙 빠져있는 느낌 그 자체였다.
한편 훈련실 안으로 들어서면 특별히 더 보이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아이들이 그곳에 모여서 칼을 휘두르거나 세븐스를 각자 사용하고 있거나, 혹은 훈련용 인형을 파괴하는 모습이 보였을 것이다. 아무도 감시하는 이가 없었지만 그 아이들은 계속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이는 정말 다양하게 있었다. 많아봐야 13살. 혹은 정말로 어린 5살 정도의 아이의 모습도 있었다. 대부분이 눈에 생기가 없었고, 그저 죽이고자, 싸우고자. 그렇게 훈련된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일단 이쪽 부분에는 특별히 더 보이는 것은 없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수용되어있는 공간이 고작인 모양이었다.
[전투실 방향]
쾅!! 쥬데카로 인해 문은 큰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그야말로 처참한 광경이었다. 강한 스파크가 튀고 있는 여러개의 링 위에 아이들이 한쌍씩 올려져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서 무기를 휘두르고 세븐스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눈앞에서 작은 어린아이가 자신과 싸우고 있는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의 칼을 휘둘렀고 그 때문에 그 남자아이는 뒤로 밀려났다. 모두가 입고 있는 마치 보검용 무장 같은 것 때문인지 죽진 않았지만 강한 스파크가 파지직 튀었고 비명소리가 울렸다. 이내 그 아이는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넘어졌지만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아무도 두 사람을 보지 않았다. 그저 강한 살기를 보이면서,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움직임만을 보이고 있었다.
"이 세상의 가장 확고한 규칙. 그건 약자는 멸시당하고 강자는 대우받는다. 즉, 패배자는 멸시당하고 승리자는 우대받는다라는 이야기지. 패배자들은 아무것도 누릴 자격이 없지만 승리자는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어."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면 저 앞쪽에 글라키에스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앉아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내 그녀는 탁 신호를 줬고 그와 동시에 철창에 있는 모든 전류가 사라졌다. 그러자 마치 그런 명령이 인식이라도 된 것처럼, 아이들은 일제히 밖으로 나왔고 글라키에스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그녀의 앞쪽에 일렬로 섰다.이내 그 모습을 바라보며 글라키에스는 싱긋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서 계단을 내려와 아이들의 앞으로 다가왔다.
"...가장 강한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이곳에 온 것을 환영해. 패배자 테러리스트 여러분." "병력은 굳이 더 부르지 않을테니 안심해. 하지만 몇을 불러와도 너희들을 상대할 수 없을테니까." "그러니까 누군가의 추가적인 개입이 오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것 정도로만 해볼까?"
이어 그녀는 무전기를 꺼낸 후에 그 무전기에 대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훈련실과 전투장을 포함해 혹은 기지 여기저기에 그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침입자가 침투했어. 카시노프가 제공한 '데스트로이어'를 이용해서 정찰해서 발견하는 즉시 막아. 전투장인 여기까지 오지 못하게 해."
완전히 아스텔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해버린 후, 글라키에스는 싱긋 웃으면서 다시 두 사람을 바라봤다. 마치 조금도 강자라고 여기지 않는, 그야말로 너희 따위가 있어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듯이 피식 웃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야기했다.
"로벨리아 아가씨가 보냈어? 정말 위선적이라니까. 그 패배자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너무나 위선적이라서 놀랍지도 않아. 뭐, 좋아. 그래서 일단 요구조건이나 들어볼까? 뭘 원해서 여기까지 왔지? 뭘 노리고 여기까지 왔지? 아니면... 무슨 희망을 가지고 여기까지 들어온거지? 패배자 제군."
/1시 30분까지! 그리고 다음이 마지막 레스! 반응 레스는 여기까지! 덧붙여서 아직 전투가 시작된 것이 아니기에 글라키에스에게 공격을 해도 유효타는 들어가지 않아요.
아이들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적은 처음이다. 뭐가 모자랐던 것일까? 분장이? 연기 실력이? 개그가? 아니, 어쩌면 이 아이들은 내 무슨 짓을 해도 웃지 않을 것이다. 이미 심각하게 마음 속 무엇인가가 무너졌을 테니까. 이 아이들은 그저 시키는 것만 할 수 있는 살아있는 시체와도 같은 상태일 것이다.
선우는 조용히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이전에 멜피가 처리했던 놈들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거울을 꺼내어 자신을 비춰보니 어색하지만 제법 봐줄만한 상태였다.
그리고 다시한번 창살 앞으로 걸어갔다. 이것은 도박이었다.
커다란 아공간을 하나 열고 목소리를 깔고 큰 소리로 외쳤다.
"다들 주목! 모두 일어서라!"
주변을 둘러 본 후 다시 말했다.
"이번 훈련은 이 구멍 안에서 진행한다. 어서 이 곳으로 들어가라! 굼벵이들아!"
훈련실 안쪽 아이들을 구출하기 전 이곳의 아이들을 먼저 빼내는 게 우선이었다. 현재 아이들은 가디언즈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역이용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차피 이런 상태로는 무슨 말을 해도 통하기 힘든 법인데다, 바쁜 와중에 자상하게 설득할 말재주도 시간도 없다. 그러니 친절은 그것으로 끝이다.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려 안으로 향했다. 훈련실의 광경은 예상했던 것보다 평화로웠다. 적어도 당장 눈앞에 시체가 굴러다니지는 않으니 이만하면 참상은 아니다. 이제 이곳의 인원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던 차에 동료들이 먼저 나서주었기에, 그는 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발길을 돌려 전투장으로 달려갔다.
문을 여는 강한 행동 탓에 안쪽의 비릿한 혈향이 확 풍겨와서 미간을 찡그린다. 그러나 코를 찌르는 냄새보다 더 강렬한 진풍경이 안에 펼쳐져 있었다. 아이들. 아무리 봐도 어린 아이들이 무장을 입고 무기를 들고 세븐스를 써서 싸우고 있었다. 스파크가 튀는 링 위에서. 같은 아이들을 상대로.
그리고 그 안쪽에 있었다. 빌어먹을 글라키에스.
"혓바닥 매끄러운 건 여전하네- 정말 다행이다. 그새 쫄아서 말도 못하게 됐으면 어쩌나 걱정했거든-"
냐하하. 레레시아는 가늘게 웃는 얼굴을 하며 감흥 없는 웃음소리를 냈다. 속으로는 분노의 칼을 꺼내 단단히 고쳐쥐면서. 그 와중에 울리는 무전 소리에 보이지 않게 혀끝을 깨물었다. 허나 겉으로는 전혀 티내지 않는다.
"또- 또 위선이니 패배자니- 야. 원래 인간은 모두 위선적이야. 위선적으로 태어났으니 그렇게 살겠다는데, 뭐가 잘못됐지?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가 마음에 안 들어서 한바탕 뒤집어 놓겠다는데 뭔 상관이야. 니들도 똑같이 그러고 있으면서."
빈정대며 떠드는 사이 다른 방향으로 갔던 인원도 슬슬 모이고 있었다. 그녀는 슬쩍 인원들을 보고, 다시 글라키에스를 보았다.
"희망은 됐고. 일단 애들 내놔. 그리고 저번에 했던 약속은 지켜야지? 오면 상대해준다며. 같이 춤이나 한 곡 추자고."
Shall we dance? 빈 손을 내밀어 까딱거린다. 그 뒤로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올린 미소를 짓는다.
정말로요. 네게 경고하듯 말하는 레레시아에게 짧게 대답한다. 어차피 그녀도 대충은 알고 있겠지, 그렇기 때문에 아마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는 않을 터였다. 그 외에 지금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 한가로이 만담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서로를 쓰러트려, 아니... 확실히 숨통을 끊기 위해서 싸우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그 모습을 여유롭게 보고 있던 글라키에스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너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예의 그 오만한 몸짓과 내리까는 듯한 말, 아스텔이 개입할 여지를 차단한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듣던 너는 네 손에 쥐어진 토마호크를 꽉 쥐었다.
"위선자를 나무랄 수 있는 건 완전한 선인뿐이겠죠, 그런데 그런 사람이 누군가를 나무랄 것 같습니까? 그럴 리 없잖습니까. 이미 타인을 위선자라고 부르는 시점에서 당신은 잘 쳐줘야 동급인 겁니다."
이런 이야기도 어차피 패배자들의 말이니 하며 넘기겠죠. 좋겠습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갈라진 세상에서 살아가니.
"부정할 수 없다는 건 이해합니다. 지금 당신이 그 자리에 있는 걸 부정하는 게 되고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게 될 테니까요."
그렇지만 스스로 자신을 부정해보지 않는다면 억지로 부정당하게 될 겁니다. 쩔그렁, 하는 소리와 함께 네 소매를 타고 촤르륵 흘러내린 체인의 끝에 매달린 토마호크가 땅에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아이들은 데려가겠습니다. 이분법이 아니면 알아듣기 어려우십니까? 그렇다면 좀 더 쉽게 말씀드리죠."
순순히 아이들을 내놓든지, 한판 붙은 다음에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내놓든지.
"쉽지 않습니까? 전부 가졌다면서 타인에 대한 이해는 결핍된 승리자여."
이해가 안 됩니까? 벌써부터 당신이 말하는 승리자, 패배자와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만은. 헬멧 너머로 정제된 목소리를 내는 네 호흡은 어느새 깔끔히 정돈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