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 로벨리아는 레이저 포인트를 이용해 '글라키에스'라는 단어를 가리켰다. 이어서 들려오는 물음에는 일단 기다리라는 듯이 그녀는 제스쳐를 취했다.
<쥬데카> "임무에 대한 것은 조금 후에 또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 아무튼 반항하는 경우라. 글쎄. 적어도 내가 아는 바. 그런 이들 중 살아남은 이는 한 명도 없어. 나도 단편적으로밖에 듣지 못했으니까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한 명이 남아있지 못한 경우는... 적어도 이전 사례에선 한 명이 살아남았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일단 중요한 것은 지금, 단 한 명이 살아남았다는 선례가 있다는 것이라고 로벨리아는 이야기했다.
<선우> "문서의 내용에 따르면 가디언즈를 저렇게 뽑는다고 하지만, 저것만으로 가디언즈를 뽑을리가 없지. 저건 그냥 살아남은 이를 자신의 병력으로 쓰겠다는 이야기라고 해석해야 할 거야. 애초에 전부 저렇게 뽑는다면 가디언즈가 모를리가 없지 않겠나."
말의 모순점이 될지도 모르는 점을 콕 집어주면서 로벨리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일단 가디언즈는 저렇게 뽑히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런 방식이 추가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내가 아는 바로는 일반적인 방법은 아니야."
<공통> "아무튼 에스티아는 물론이고 다른 부대의 병력을 이용해서 특정 포인트를 감시한 결과 열차를 이용해... 정확히는 너희들이 한 번 싸운 적이 있는 블러디 레드와 같은 모델의 열차를 이용해 아이들을 실어나르고 있다는 것은 확인했어. 참고로 위치는 여기다."
이어 에스티아가 타이밍을 맞춰서 노트북을 조작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제법 큰 크기의 가디언즈 기지의 모습이었다. 철문으로 문이 막혀있고, 마치 요새처럼 쌓여있는 높은 벽 위에는 가디언즈의 병력들이 전방을 감시하고 있었다. 얼핏 봐도 침투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정면으로 들어가는 것은 보다시피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열차 하나를 탈취해서 그 열차에 탑승하여 들어갈 예정이다. 그리고 저 안에서 아이들을 구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그 미션을 진행하려고 했다만... 또 한 가지 문제가 생겼어."
이어 또 다시 화면이 넘어갔고 스크린에 떠 있는 것은 푸른색 날개 모양의 엠블렘의 모습이었다. 그 아래에는 [푸른 날개]라는 이름이 쓰여있었다. 그 앰블렘을 가리키고 로벨리아는 말을 이었다.
"이건 우리처럼 온건파 레지스탕스인 '푸른 날개'의 엠블렘이다. 일단 우리들과 동맹 및 협력관계에 있고, 너희들이 오기 전 몇번의 임무에서 우릴 지원한 적이 있어. 그런데 최근 이 부대가 정체불명의 누군가에게 공격당하고 있고 사상자가 꽤 나왔다는 모양이야. 그래서 어제 지원 요청이 있었어. 당연하지만 이 레지스탕스 부대가 멸하게 둘 순 없어. 협력관계를 떠나서 우리와 뜻을 같이 하고 있는 동지야. 즉, 어느 쪽도 중요하다는 이야기지. 그래서 생각해봤다만 너희들이 행하고 싶은 미션을 골라라. 다수결로 정해서 가장 많은 쪽으로 너희를 투입하고, 아스텔과 에스티아 중 원하는 이가 있다면 데려가도 좋아. 단 한 명 만이야. 너희가 가지 않는 미션은 나와 너희와 가지 않은 이, 그리고 붉은 저항의 레지스탕스 소속의 다른 부대원가 갈 생각이다."
즉, 잘 생각해서 정하라는 이야기였다. 선택지를 그들에게 온전히 제공하면서 로벨리아는 이야기했다.
"각자 향하고 싶은 미션을 이야기하도록. 그리고 아스텔과 에스티아 중에서 필요한 이가 있으면 말하도록. 기권은 없다. 아무거나도 없다."
/분기점이에요.
1.아이들을 구출하러 기지에 잠입한다. 2.푸른 날개를 구출하기 위해 그곳으로 향한다.
덧붙여서 서포트 효과를 이야기하자면...
1.아스텔 - 미션 진행에 여러 도움을 준다. (이를테면 비밀번호를 알려준다던가 병력을 자신쪽으로 유도해서 경비병의 수를 줄여준다던가.) 2.에스티아 - 전투에서 여러 도움을 준다. (베리어를 쳐준다던가, 매턴 회복을 시켜준다던가, 전투에 끼여드는 지원병을 막아준다던가.)
다수결로 정해지는만큼 자신이 원하지 않는 미션과 서포트가 동행한다고 화내고 삐지고 그러면 안돼요. 9시까지! 어차피 어딜 가나 난이도는 비슷하니 편하게. 편하게.
무엇이든 성공한 사례가 있으면 다음은 생기기 마련이다. 이전 실험에서는 몇 인원이 빠졌어도 결국 글라키에스라는 사례가 생겨버렸다. 그런 이상 저 실험이 마냥 허황되었다고 보긴 어렵지. 그래서 결국 구출하는 쪽으로 임무가 주어지나 했으나, 다른 일이 겹쳐있었다. 동맹인 레지스탕스의 구출이라는 일이.
"흠-"
이런저런 얘기 끝에 갈 임무와 동행할 서포터의 선택지가 주어졌다. 임무는 역시, 아이들의 구출 쪽일까. 동맹 쪽은 적이 누군지 모르지만 로벨리아가 간다면 전력이 부족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서포터를 누구로 하느냐인데.
"나는 아이들 구출 쪽- 서포트는- 아스텔- 일까나."
조금 그런 말이긴 하지만, 실험 대상자였으니 구출 루트에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전투력도 그렇고, 만약의 상황을 생각하면, 음.
대략적인 개요를 전해듣고 나서 그가 제일 먼저 떠올린 생각은, 상상력이 참 더러우면서도 기발하다는 거다. 아무리 참고자료가 있다 해도 그걸 진짜로 해보겠다는 생각은 웬만하면 안 하지 않나. 이런 편견 없는 실행력만큼은 적들을 본받아야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는 팔짱 낀 채 몇 번쯤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설마 이번 열차도 저번처럼 존* 변신하고 그 지* 나는 거 아니겠지?"
떨떠름한 표정이 되어서는 이렇게 묻는 걸 보아하니 생각은 이쪽으로 기운 모양이다. 어차피 처음 진행하려던 계획은 이쪽이라고 하니 계획대로 가는 게 나을 테다. 결과적으론 글라키에스 같은 자식을 하나 더 만드는 게 목적이라니 놔둬서 좋을 것도 없고.
로벨리아의 물음에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아스텔은 에델바이스의 절대적인 무력의 소유자이다. 기지에 투입되면 분명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도 있지만, 그녀는 브리핑을 들은 순간부터 가디언즈에 대한 호기심이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고독 의식이 진행되는 그 현장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이번 임무는 두 가지. 그러나 동시에 둘을 해낼 수는 없다...그도 그럴 것이 네 몸은 하나인걸. 그러나 포기하는 건 아니었으니, 너를 비롯한 특수부대원들 외에 로벨리아가 직접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결정을 하는 데는 심사숙고가 필요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가져야만 했다. 지금 네 상관인 로벨리아를 믿지 않으면 뭘 믿을 수 있을까.
"아이들을 구출하러 가겠습니다."
둘 다 중요한 사안이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저지르는 일은 묵인할 수 없다. 남은 한쪽은 그 쪽으로 향하는 이들이 맡아 잘해주리라 그렇게 믿을 뿐. 그렇지만 누구의 도움이 필요한가에 이르면 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둘 다 큰 도움이 되겠지...그러나. 두 사람을 악몽 속으로 데려가는 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으니.
"다수결로 봤을 때 아이들을 구출하러 가는 미션에 아스텔을 동행시킬 생각인가? 뭐 좋아. 일단 작전지는 가디언즈의 기지 중 하나인만큼 최대한 조심하도록."
"다들 조심해. ...거기는, 거기는... 정말로 위험하니까. 아스텔도 조심해."
"...알고 있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 로벨리아에 통신이 하나 들어왔다. 모두에게도 들릴 수 있도록 스피커로 이어지는 그 통신 내용은 특정 좌표에서 열차를 탈취하는데 성공했다는 다른 부대원의 보고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이미 탈취가 끝이 났기에 그 열차를 타고 바로 철로를 이용해 기지로 잠입하면 되는 모양이었다. 이어 아스텔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대장. ...너희들도 최대한 준비를 하고서 따라와. 워프 장치를 통해서 이동할 거니까. 아마 열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시간이 걸릴테니, 열차 안에서 쉬는 것도 좋을거야. ...물론 완전히 경계를 늦추면 안되겠지만."
이어 아스텔은 먼저 출발하겠다고 이야기를 하고서 회의실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워프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다른 이들도 각자의 준비를 마치고 워프게이트로 들어가면 에스티아가 미리 설정해준 좌표를 이용해 철로 바로 옆 구역에 도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저번에도 한 번 탑승한 적이 있는 블러디 레드가 있었다. 그 근처에는 붉은 에델바이스 마크를 달고 있는 다른 부대원들이 서 있었다.
"제 0 특수부대원입니까? 이번 임무. 상당히 위험할테니 부디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열차 안에 탑승한 후,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자유였다. 특별히 문제가 될법한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아스텔에게 아직 묻지 못한 것이 있다면 물어봐도 좋을테고 혹은 그냥 조용히 쉬는 것도 답일 것이다. 이내 모두가 탑승하면 열차는 출발했을 것이다.
에델바이스의 다른 대원들이 해주는 배웅을 받으며 올라탄 기차에서 주변을 둘러보던 너는 아스텔을 발견하곤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으나.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여러가지 묻는 걸 보곤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와 이야기할 시간은 지금 말고도 있을 테니까. 지금은 조금 쉬어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너는 잠시 눈을 붙였다.
지난날 그렇게나 요란하게 싸웠던 탓인지 열차의 관한 기억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남아 있다. 눈앞에 선 빨간 차체는 그때와 꼭 같은 모습이라 왠지 기분이 나빴지만 쓸데없는 사감은 털어내었다. 떠나기 전이나 지금이나, 극도로 위험하다는 경고를 몇 번이고 들었더라도 상황이 직접 닥치기 전까지는 그 위기감을 실감하기가 어렵다. 태연해서 그렇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상상력과 가정의 빈약함 탓이다. 그는 군말 없이 열차 위에 오르려다 잠시 멈칫했다.
"글라… 그 새*랑 부딪쳤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아는 거 있냐? 그 씨* 뭐냐, 습관이나 주로 쓰는 기술, 대략적인 사고방식 같은 거."
정확히는 그 붉은 열차의 또 다른 모델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눈엔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는 것이다. 과거의 유산의 등장으로 한 순간에 크게 넓어진 동공으로 모습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엔은 블러디 레드를 먹었었다.'
이 열차와는 친구가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야 저번엔 그녀가 블러디 레드의 심장(엔진)을 삼켰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포식자로서 어떤 유대감이라도 발동하고 있는 걸지도. 열차에 들어선 그녀는 창가 근처의 자리로 얼른 뛰어가 자리를 잡는다. 자리에 앉는 일 없이 무릎으로 몸을 세워서 창 밖의 흘러가는 풍경들을 바라본다. 세상이란 그녀에겐 생소한 것이다. 그런 그녀가 문득 떠오른듯이 아스텔에게로 고개를 돌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스텔. 엔네가 이번에 주의해야 할 행동 지침을 말해다오."
이런들 저런들 지금부터 향하는 곳은 적의 거점이다. 단순하게 우르르 들어가서 다 같이 엎어버리는 임무가 되긴 어려울테니, 수월한 작전 수행을 위해서는 미리 아스텔의 판단을 들어두는게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한 것 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