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부터 계속 무장을 이야기하는 것에 에스티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세븐스는 사실상 엄청난 무기가 아니던가. 보검으로 더욱 강화된 세븐스라면 당연히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줄텐데. 굳이 쓰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런 의문을 품으면서 에스티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렇게 말했다. 물론 전투를 그렇게 하겠다면 그녀로서는 딱히 말릴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그렇듯, 세븐스마다 각자 잘 맞는 방식이 있을테니까. 아무튼 총도 통하지 않을 이에게 통할만한 무기라고 한다면... 너무나 많지 않나 싶어 에스티아는 그에 대해서는 살짝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구경 활강포. 그건 아무래도 어떻게 해도 무게를 줄이긴 힘들 것 같네. 아무튼 나는 이번에 만드는 것에 대해서 요구사항이 있으면 한 번에 얘기해달라고 한 건데 아예 다른 무장까지 부탁하려고? 음. 그러면 어차피 지금은 방금 의뢰받은 것에 집중할 생각이니까 그 동안에 리스트로 정리해서 대략적인 설명이라도 써서 보여줘. 그러면 만들 수 있는 것은 만들테니까."
어차피 여기서 자신이 이러쿵저러쿵 적는 것보다는 그 물건을 실제로 필요로 하는 그가 리스트를 만들어서 자신에게 보여주는 것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싶어 그녀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당장 급한 것이라면 보검의 힘을 개방해서 무장을 만들어서 쓰는 것도 나쁘진 않아. 그래보여도 출력도 괜찮은 편이고 일단 안전하니 말이야. 급하지 않다면 리스트를 만들어서 보여줘."
"신체능력의 강화라는 것은 말 그대로 각력을 강화시키는 것도 가능해. 즉 운동에너지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킬 수도 있어. 또 근력을 강화시켜서 무거운 것을 들거나 폭발적으로 힘을 낼 수도 있을테고. 해봤자가 아니야. 결국 사용하기 나름이야."
불을 뿜고 벼락을 날리는 세븐스만이 뛰어난 세븐스겠는가. 사용법에 따라서는 신체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것도 상당히 뛰어난 세븐스였다. 결국 자신이 어떻게 사용하기 나름이 아니겠는가. 그런 지론에 대해 확신이 있었는지 에스티아는 굳은 목소리로 그럻게 이야기했다. 자신의 눈동자에 레이먼드를 비추긴 하나 굳이 더 말을 하진 않으면서 그녀는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일단 처음에 의뢰받은 것만 만들게.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3일 후에 찾으러 와."
그 이전에 완성이 되면 자신이 직접 전해주러 갈 생각이지만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에스티아는 딱 잘라서 이야기했다. 기계라는 것이 어디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겠는가. 특히 전투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것은 더더욱. 무게를 맞추는 것부터 시작해서 강도까지 조절해야 하고 수도 없이 많은 테스트를 해야만 했다.
"이 참에 이 에스티아님의 실력을 확실하게 보여줄게. 아까 그것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으로 만들어줄테니 기대나 하고 있어."
자신도 모르게 뿌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리고 내심 기대를 걸어주지 않을까 하ㄴ는 마음에 저도 모르게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에스티아는 가볍게 '엣헴~' 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나름 잘난척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물론이지. 알고 있어. 다만 그저... 총을 다루는게 좀 더 익숙해서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거기다, 내 세븐스는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내 자신을 좀먹어갔다. 어느 정도라면 훈련을 통해 버틸만한 몸이 되었지만, 더더욱 신체를 궁지로 몰아넣으면 몰아넣을수록 그 강도도, 부담도 심해진다. 더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망가져버릴 가능성도 있는, 저주같은 세븐스. 하지만 그 저주 외엔 가디언즈에게 대항할 방법도 없는 우스운 꼴이다.
"생각보다 훨씬 빠른데. 난 몇 주는 걸릴 거 같았어."
3일. 이젠 귀에 '3일'이라는 글자 모양으로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지만, 굳이 말해두진 말자. 다만 그런 기계를 설계부터 시작해서 단 사흘 안에 완성을 시켜보이겠다니... 역시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당연히 좀전의 그 고철-누더기랑은 비교도 안될 물건이 나오겠지. 어찌됐든 잘 부탁할게. 실력 발휘 한번 해달라고."
자신도 괜히 그 말에 들떠서 홀로 팔짱을 낀 채 웃어 보였다. 잘난 사람이 잘난 척을, 그것도 내게 도움이 되는 방면으로 하면 재수 없을 게 다 무어냐.
웃음이 터진다. 제는 느긋하게 당신을 쳐다본다. 당사자에게 무의미한 발버둥이라 하였으니 우스울 법도 하나, 당신에게는 제법 마음에 든 모양이다. 잘 알고 있는 모습이다. 승자가 가질 수 있는 여유에서 나오는 웃음이며 오만한 자가 가질 수 있는 당돌함이다. 적수에게 양껏 두려워하라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라, 그 녀석은 어찌 이런 인간을 찾았을꼬. 제의 눈이 가늘게 휘었다. 흥미가 동하였기 때문이다. 꼬리가 느긋하게 살랑이자 햇빛에 반사된 빛이 가느다랗게 땅을 비춘다. 당신이 말하는 세븐스의 자유처럼.
이것 또한 자유라. 제법 알 법도 하다. 그간 다물라 하면 입 닥치고 있던 것들이 자유를 뺏긴 것이고, 죽을 때가 되어서야 말을 하라 입을 벌리게끔 하는 것 또한 자유를 억압받는 행위였던 것인가. 과거는 과거니 신경 쓸 일은 아니다만. 제법 자유라는 것에도 흥미가 동한다. 세븐스가 허락받지 못한다는 사실도. 눈을 마주하자 날카로운 동공이 당신을 향한다. 한쪽 눈은 공막이 새하얗지만 다른 쪽은 그렇지 못하다. 검은 공막. 그 사이에서 희미한 벽자색에 가까운 눈동자가 당신을 향해 구른다.
"아무렴, 흥미가 동하였어."
흔한 것이라 해도 뺏기고 나면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소중한 것이기에 욕심이 난다. 당연히 말을 하는 것을, 걸어올 수 있는 것을, 아니, 그 이상의 것을 바란다. 묵묵히 하나의 연설을 들으며 안광에도 정자세를 유지한다. 긴 침묵이 이어진다.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 하였으나 되레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는 말에 거센 흥미가 생겼다. 당연하게 느껴볼 수 있는 것을 쥐는 과정에서 튀는 피라. 아득히 좋고도 좋아라. 침묵이 이어지더니 작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위엄 있어야 할 존재의 목에서 간지럽게 흘러나오던 것은 점차 만족스러운 듯 크게 울린다. 낭랑하고 간드러진 웃음을 뒤로 용이 공중에 떠오른다. 당신을 향해 앞발 두 개를 뻗는가 싶더니 비늘이 점차 흩날리던 꽃잎처럼 사라진다. 당신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만져봐야 이것이 꿈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10대 중반, 그 정도 되어 보이는 조그마한 체구의 인간이 되어, 둥실거리는 그 상태로 뺨을 부여잡아보려 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길고 숱 많은 머리카락에 육신이 가려졌지만 웃음은 가릴 수 없었다.
"자네 보기엔 내가 도망칠 사람으로 보이는가? 아니지, 아니야. 고작 한 뼘의 자유로 만족해 꼬리말고 도망치면 군주가 아니지. 내 힘든 것은 아무런 장애물도 되지 않네. 어찌 내가 그런 것으로 힘들다 하겠나. 알고 싶은 것도 사라지는군. 내 쥐고 싶네, 동료가 되겠어. 그리고 손 뻗어 가지고야 말겠네. 내 원체 욕심이 많아서 말이야, 자네 말을 들었으니 거절했다간 잠도 못 이루겠단 말이지."
커다란 눈동자가 긴 호선을 긋는다. 순진무구한 듯 욕심 많은 미소였다. "허락해 줄 거지? 올리에트."
"전 무장을 다 만들어야 한다면 그 정도는 걸리겠지만 이 에스티아 님의 손에 들어오면 고작 그거 하나 정도야 뭐."
스스로가 생각해도 참 자랑스러운지 그녀는 뿌듯한 듯, 엣헴. 하는 느낌으로 포즈를 취하면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스스로 취한 그 행동이 조금 무안하긴 했는지 그녀는 쿡쿡 웃으면서 바로 포즈를 풀었고 자신의 왼손을 올린 후, 엄지와 검지, 그리고 중지를 살며시 붙인 후 엄지를 빠르게 움직이며 탁 소리를 냈다. 이내 저 편에 놓여있던 기기 하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세븐스 컨트롤러였다. 바로 아래에 있는 커다란 종이 아래에 레이저를 이용해 도면을 그리는 그 기기를 바라보던 에스티아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무엇보다 이 능력. 컨트롤러를 이용하면 굳이 내가 앞에 서지 않아도 내 머리만으로 기기를 조종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움직임을 동시에 취할 수 있거든. 물론 정밀하게 하려면 조금 집중을 해야하지만 대충 머릿속에 있는 구도를 설계도로 그리는 것 정도야 뭐. 훨씬 좋고 가벼운 것으로 만들어줄게. 기대해도 좋아. 아니. 기대해줘."
자신에게 기대를 하는 것을 은근히 기대하며 그렇게 이야기하던 에스티아는 작게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그리고 잠시 다른 곳을 바라보다가 근처에 있던 미니 냉장고로 향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닥터 페퍼를 꺼내서 내밀었다.
"마실래?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맨 손으로 보내긴 좀 그래서 뭐라도 줄까 했는데 당장을 내줄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 아무튼 잘 싸울 수 있겠어? 앞으로의 전투. 어쩌면 경우에 따라서는 보검을 쓰는 가디언즈의 세븐스와도 충돌을 또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상대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인간의 형태로 돌아와 자신의 뺨을 만지려고 하자 로벨리아는 오른손을 들어올려 뭔가를 제지하는 행동을 취했다. 허나 상대에게 보내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어딘가에 숨어있을 아스텔에게 행한 것이 아니었을까. 적어도 상대가 자신을 만지려고 해도 그녀는 딱히 거부반응을 보이거나 하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무례한 곳에 닿으려고 하지 않는한.
"유감스럽게도 난 상대를 단순히 첫인상만으로 믿진 않아. 단순히 이럴 것 같다. 저럴 것 같다는 결국 빗나갈 때가 많아서 말이야. 용기있는 척 나서나 결국 전장에 가면 도망치는 이들이 있고, 의외로 겁이 많아보이지만 누구보다 잘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도 있지. 네가 스스로 말하는 군주인지, 아니면 그저 입만 산 도마뱀인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알 수 있겠지."
말 그대로 지금의 그 모습으로 판단을 하지 않겠다는 발언이었다. 즉 로벨리아는 아직 상대를 온전히 믿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경계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레지스탕스를 이끌면서 입만 번지르르 한 이들은 수도 없이 봤고 결국 도망치거나 목숨을 잃는 이들도 여럿 봤기에 더더욱.
"허나 갖고 싶은 것은 가져야지. 그게 넘봐서는 안될 것이 아니라 부당하게 뺏기고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했던 것이라고 하면 더더욱. 모두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져야 했던 당연한 것이라고 한다면 다시 되찾아야 하는 법이야."
세븐스의 자유와 권리. 원래는 모두에게 주어져야 했던 것이었으나 '누군가'의 어리석은 말 한마디를 시작으로 뺏겨야만 했던 것. 로벨리아는 절로 쓴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나도 약속하지.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는 반드시 그 모든 것을 모두에게, 그리고 너에게도 돌려주겠다고. 도망치거나 쫓기거나 숨어서 살아야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다른 이들과 어울려서 함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허나..."
한가지 마음에 걸린다는 듯, 그녀는 가만히 자신의 턱을 만졌다. 그리고 피식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우리도 일단은 거점을 숨기고 있는 레지스탕스야. 바로 우리의 거점으로 들여보낼 순 없고 며칠 정도 그쪽의 안전 여부를 조사해보도록 하겠어. 그쪽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야. 네 의도와는 상관없이 너를 이용하려고 하는 쥐새끼들이 있을 수 있으니 말이야. 쥐가 한 마리 들어와버리면 순식간에 엉망이 되기 마련이거든."
대신 그 기간동안 있을 수 있는 장소와 식품과 물 정도는 제공하도록 하지. 그렇게 다른 이들에게도 했을 조건을 내걸면서 로벨리아는 어쩔 것이냐는 듯이 상대를 바라봤다.
세븐스를 이용해 설계를 하는 모습을 잠깐 바라봤다. 확실히 편리한 능력이군. 어쩌면, 나는 내 세븐스에 대해 다른 이들에 비해 열등감을 가진걸수도 있겠다. 나쁜 능력은 아니다.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의 부담은 여전히 내 발목을 잡는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할 때 마다, 내 몸이 죽어간다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손 하나 움직이지 않고 머리 속에 있는걸 정확하게 현실로 끄집어 낼 수 있다, 라... 결과물이 기대되는데."
에스티아가 건네 준 음료수를 감사, 하고 인사하며 받아들었다. 마침 목을 좀 축이고 싶었던 와중인데, 잘 됐군. 이어지는 말은 내 각오에 대한 것이었다. 앞으로 잘 싸울 수 있겠느냐는 말...
"잘 싸울 수 없을지도 몰라. 다음 임무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그래도 싸워야 해. 싸워서 이기면 살고, 지면 죽고. 그게 다야."
자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냥 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기다리는 건 죽음 뿐이다. 도망칠 여유따윈 없다. 임무라는게, 다 그렇지.
"싸우긴 하겠지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현실적인 대답이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답은 아니야."
물론 그가 자신의 마음에 맞는 답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다. 마치 죽어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냐..라고 하는 것 같았기에. 자신의 생명의 무게를 그다지 높게 보지 않는 것 같았기에. 오지랖은 좋지 않았기에 그녀는 입술을 살짝 우물거리면서 뭔가 말을 할까 하다가 굳이 더 말을 하진 않았다.
이어 그녀는 다른 닥터 페퍼를 꺼낸 후에 캔을 따고 그 음료수를 천천히 마셨다. 톡 쏘는 탄산 맛이 상쾌한지 그녀는 기분 좋게 웃었다. 달콤한 것도 적당하고. 물론 너무 많이 먹으면 안되긴 하지만. 나중에 신체 검사기나 돌려볼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녀는 근처에 있는 자신의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라면 싸워서 이기면 살고, 지면 진흙탕을 굴러서라도 도망쳐서 살아남을거야.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난 졌다고 죽고 싶진 않으니까. 비겁이고 뭐고 죽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잖아. 그리고 언니도 그걸 바랄거고."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으나 그녀는 레이먼드에게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죽지 말고 진흙탕을 굴러서라도 살아남으라고. 그건 마냥 비겁한 것은 아니라고. 물론 레이먼드가 어떻게 들을진 자신도 알 길이 없었지만.
"딱히 우리 레지스탕스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임무를 달성해라..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