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긋하게 속삭이면서도 어조의 말미에서 느긋하게 송곳니를 드러낸다. 부드럽게 말했으나 은연중에 누굴 데려왔는지 몰라도 이쪽도 경계하고 있노라 경고한다. 인간의 모습이었더라면 필히 미소까지 짓고 있을 모양새였다. 상황이 첨예했을 뿐이지, 아직 발톱을 드러낼 시기가 아니다. 드러낸다 한들 싸움을 거절할 이유도 없지만. 다만 제는 느긋하게 눈을 감았다 뜨며 상대를 얕게나마 신뢰하기로 했다. 스스로를 소개하는 말 덕분이다. 적어도 싸울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런 편이지."
변신형 세븐스라, 아직 익숙지 않은 말이다. 제법 껄끄럽게 목을 긁으며 나오는 단어를 뒤로 제는 꼬리의 끝을 살랑인다. 여의치 않으면 인간으로 돌아가면 되는 일이지만 아침 공기가 제법 쌀쌀하다. 이런 차가운 곳에서 돌아가고 싶은 마음 일절 없다.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라면 연약한 두부 같은 인간의 몸뚱이를 추위에 내놓고 싶어 할 리도 없겠지.
"어렴풋이는 알고 있네."
용의 모습이라 한들 눈꺼풀이 포개어지더니 호선을 긋는다. "반동분자의 미숙한 발버둥." 뱉는 언사가 노래하듯 낭랑하다. 레지스탕스에게 뱉기 무례한 발언이나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마 본인도 마저 할 말이 있는 듯싶다.
"여가 있던 곳에서는 그렇게 듣고 살았네. 있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는 자유라는 허상을 들먹이며 세상이 바뀔 것이라 노래하다 끝까지 구제받지 못하고 하찮은 생 마감하는 미물이라고. 어쩌고 싶냐 물었는가?"
제의 시선이 붉은 배지로 간다. 포개진 호선이 천천히 굳는다.
"그 미물이 노래하는 자유가 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뿐일세. 대체 얼마나 귀한 것이길래 그리 노래하다 죽는지."
물론 보검이 100% 안전하냐라고 하면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자신조차도 보검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분석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건 U.P.G에서 만든 것으로서 세븐스를 더욱 강화시키는 힘이 있었다. 허나 적어도 그것을 사용한다고 해서 부작용이 일어난다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은 에스티아도 알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자신이 모조 보검을 만들 때 그런 기능은 만들지 않았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튼 레이먼드의 뜻이 그렇다고 한다면 일단은 알겠다는 듯이 에스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주문한 의뢰는 3일 정도 후에 끝내도록 할게. 일단 지금 하는 것이 있기도 하고, 다시 말하지만 바로 뚝딱 나오는 것은 아니거든. 일단 설계도부터 확실하게 그리고, 이것저것 재료를 구하는데도 시간이 걸리니까."
이럴 때 자신의 세븐스가 기계를 단번에 만드는 것. 이라면 참 편할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븐스는 그런 것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지금의 세븐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에스티아에게 있어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세븐스는 유용하다 못해 정말로 마음에 드는 능력이었으니까.
"그럼 그 외에 필요한 것은? 있다면 지금 다 얘기해줘. 나중에 이거 추가해줘. 저거 추가해줘..라는 것은 내 기준에선 오케이지만 자연스럽게 또 장비를 회수해야하고 또 만들어야 하고, 그러면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
그러니까 요구조건은 한 번에!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에스티아는 오른손 검지를 올려서 숫자 1을 표시했다.
쓴웃음을 지었다. 당연히 동료가 만들어준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면전에서 그러겠다고 말할 양아치 따위는 아니니까.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무언가에 하나만 의존하고 있을 때, 그것을 잃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싶지 않은데도 알게 되었다. 보험 정도는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주의가 생겼다.
그러다가 다음에 이어지는 '한꺼번에 말해달라'는 말에 살짝 움찔했다. 그도 그럴게... 더럽게 많을테니까!
"...너무 많지 않을까? 보검 무장에 추가하고 싶은 장비도 있고, 총기도 좀... 새로 구하고 싶고 하거든. 실탄이든 에너지탄이든."
자신의 총은 이미 꽤나 낡은 편이었다. 스크래치도 많고, 충전 코일도 노후화가 되어가기도 하고. 그리고 어떤 적이 나타날 지 모르는데, 기존의 총으로 적에게 얼마나 피해를 줄 수 있는지도 미지수였다.
"총이 통하지 않는 녀석들에게 유효한 피해를 입힐만한게 필요해. 그래서 보검 무장에 아예 대구경 활강포를 달아놓을까 고민까지 할 정도야."
물론 그러면 당연히 무거워지고, 기동력도 떨어지고, 그걸 개선하기 위해 세븐스를 더 많이 쓰고... 몸뚱아리는 더 망가지겠지만.
"어디에서 왔는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작자들이 할법한 말이로군. 꽤나 직설적이라서 오히려 마음에 들 정도야."
반동분자의 미숙한 발버둥. 그 표현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로벨리아는 껄껄 소리를 내며 웃었다. 오히려 그렇게 봐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얕잡아 볼 때 어느 순간 판은 뒤집어지기 마련이고, 모든 것이 역전하기 마련이었으니까. 자신들을 비웃는 이는 어느 순간부터 두려움에 떨게 될 것이고, 세븐스를 차별하는 지금의 세상은 공존의 세상으로 바뀌리라. 로벨리아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당장 그렇게 되진 않았으며, 자신들이 이루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 뜻을 이어갈 이들은 분명히 나타날 것이라고 그녀는 믿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다음 목소리는 상당히 당당했다.
"자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했나? 네가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자유지. 자유가 없는 이는 그런 말을 할수조차 없어. 이렇게 말을 하라고 강요를 받을 뿐이지. 그래. 네가 행동하고 있는 그 모든 것.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지시받지 않는 지금의 상황이야말로 '자유'라고 부르는 것이야. 지금의 세븐스는 네가 아주 당연하게 하고 있는 그 행위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지."
아주 가볍게 예시를 들어서 로벨리아는 제에게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려줬다. 이어 그녀는 용 모양의 상대를 바라봤다. 그리고 상대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갔다. 그리고 고개를 살며시 들어올려 상대의 눈동자를 바라보려고 했다.
"귀한 것이 아니지. 흔한 거야. 허나 그 흔한 것 조차 많은 이들은 빼앗겼고 박탈당했지. 넌 원하나? 그 자유라는 것을. 네가 지금 당연하게 말을 할 수 있고, 걸어올 수 있고, 나와 접대할 수 있는 것 등을 말이야."
이내 붉은 눈동자에 강렬한 안광이 휘돌았다. 그리고 붉은 빛, 당당한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나왔다.
"여기에 있다고 해서 이 땅에 반드시 자유가 온다는 법은 없고, 솔직히 말해 목숨도 보장할 수 없어. 안전하게 살고 싶다면 여기를 떠나 근처 마을에라도 숨어있는 것이 살아남을 확률이 더 클거야. 단순히 호기심이 아니라 당연하게 느껴보고 싶지 않나? 공기처럼 당연하게 존재해야 했던 것을?"
뒤이어 로벨리아는 숨을 약하게 내쉰 후, 뒤로 세걸음 정도 물러서면서 빠르게 상대와 거리를 띄웠다. 그리고 여전히 제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 과정이 힘들어도 느껴보고 당연히 가져야 할 것을 갖고 싶다면 동료로 들어와라. 허나 어설픈 각오로 문을 두들기겠다면 그 날개로 멀리 떠나라. 내가 필요한 것은 단순히 알고 싶은 자가 아니야. 그것을 가지고 싶고 누리고 싶은 자지."
아까부터 계속 무장을 이야기하는 것에 에스티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세븐스는 사실상 엄청난 무기가 아니던가. 보검으로 더욱 강화된 세븐스라면 당연히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줄텐데. 굳이 쓰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런 의문을 품으면서 에스티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렇게 말했다. 물론 전투를 그렇게 하겠다면 그녀로서는 딱히 말릴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그렇듯, 세븐스마다 각자 잘 맞는 방식이 있을테니까. 아무튼 총도 통하지 않을 이에게 통할만한 무기라고 한다면... 너무나 많지 않나 싶어 에스티아는 그에 대해서는 살짝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구경 활강포. 그건 아무래도 어떻게 해도 무게를 줄이긴 힘들 것 같네. 아무튼 나는 이번에 만드는 것에 대해서 요구사항이 있으면 한 번에 얘기해달라고 한 건데 아예 다른 무장까지 부탁하려고? 음. 그러면 어차피 지금은 방금 의뢰받은 것에 집중할 생각이니까 그 동안에 리스트로 정리해서 대략적인 설명이라도 써서 보여줘. 그러면 만들 수 있는 것은 만들테니까."
어차피 여기서 자신이 이러쿵저러쿵 적는 것보다는 그 물건을 실제로 필요로 하는 그가 리스트를 만들어서 자신에게 보여주는 것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싶어 그녀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당장 급한 것이라면 보검의 힘을 개방해서 무장을 만들어서 쓰는 것도 나쁘진 않아. 그래보여도 출력도 괜찮은 편이고 일단 안전하니 말이야. 급하지 않다면 리스트를 만들어서 보여줘."
"신체능력의 강화라는 것은 말 그대로 각력을 강화시키는 것도 가능해. 즉 운동에너지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킬 수도 있어. 또 근력을 강화시켜서 무거운 것을 들거나 폭발적으로 힘을 낼 수도 있을테고. 해봤자가 아니야. 결국 사용하기 나름이야."
불을 뿜고 벼락을 날리는 세븐스만이 뛰어난 세븐스겠는가. 사용법에 따라서는 신체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것도 상당히 뛰어난 세븐스였다. 결국 자신이 어떻게 사용하기 나름이 아니겠는가. 그런 지론에 대해 확신이 있었는지 에스티아는 굳은 목소리로 그럻게 이야기했다. 자신의 눈동자에 레이먼드를 비추긴 하나 굳이 더 말을 하진 않으면서 그녀는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일단 처음에 의뢰받은 것만 만들게.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3일 후에 찾으러 와."
그 이전에 완성이 되면 자신이 직접 전해주러 갈 생각이지만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에스티아는 딱 잘라서 이야기했다. 기계라는 것이 어디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겠는가. 특히 전투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것은 더더욱. 무게를 맞추는 것부터 시작해서 강도까지 조절해야 하고 수도 없이 많은 테스트를 해야만 했다.
"이 참에 이 에스티아님의 실력을 확실하게 보여줄게. 아까 그것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으로 만들어줄테니 기대나 하고 있어."
자신도 모르게 뿌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리고 내심 기대를 걸어주지 않을까 하ㄴ는 마음에 저도 모르게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에스티아는 가볍게 '엣헴~' 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나름 잘난척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물론이지. 알고 있어. 다만 그저... 총을 다루는게 좀 더 익숙해서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거기다, 내 세븐스는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내 자신을 좀먹어갔다. 어느 정도라면 훈련을 통해 버틸만한 몸이 되었지만, 더더욱 신체를 궁지로 몰아넣으면 몰아넣을수록 그 강도도, 부담도 심해진다. 더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망가져버릴 가능성도 있는, 저주같은 세븐스. 하지만 그 저주 외엔 가디언즈에게 대항할 방법도 없는 우스운 꼴이다.
"생각보다 훨씬 빠른데. 난 몇 주는 걸릴 거 같았어."
3일. 이젠 귀에 '3일'이라는 글자 모양으로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지만, 굳이 말해두진 말자. 다만 그런 기계를 설계부터 시작해서 단 사흘 안에 완성을 시켜보이겠다니... 역시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당연히 좀전의 그 고철-누더기랑은 비교도 안될 물건이 나오겠지. 어찌됐든 잘 부탁할게. 실력 발휘 한번 해달라고."
자신도 괜히 그 말에 들떠서 홀로 팔짱을 낀 채 웃어 보였다. 잘난 사람이 잘난 척을, 그것도 내게 도움이 되는 방면으로 하면 재수 없을 게 다 무어냐.
웃음이 터진다. 제는 느긋하게 당신을 쳐다본다. 당사자에게 무의미한 발버둥이라 하였으니 우스울 법도 하나, 당신에게는 제법 마음에 든 모양이다. 잘 알고 있는 모습이다. 승자가 가질 수 있는 여유에서 나오는 웃음이며 오만한 자가 가질 수 있는 당돌함이다. 적수에게 양껏 두려워하라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라, 그 녀석은 어찌 이런 인간을 찾았을꼬. 제의 눈이 가늘게 휘었다. 흥미가 동하였기 때문이다. 꼬리가 느긋하게 살랑이자 햇빛에 반사된 빛이 가느다랗게 땅을 비춘다. 당신이 말하는 세븐스의 자유처럼.
이것 또한 자유라. 제법 알 법도 하다. 그간 다물라 하면 입 닥치고 있던 것들이 자유를 뺏긴 것이고, 죽을 때가 되어서야 말을 하라 입을 벌리게끔 하는 것 또한 자유를 억압받는 행위였던 것인가. 과거는 과거니 신경 쓸 일은 아니다만. 제법 자유라는 것에도 흥미가 동한다. 세븐스가 허락받지 못한다는 사실도. 눈을 마주하자 날카로운 동공이 당신을 향한다. 한쪽 눈은 공막이 새하얗지만 다른 쪽은 그렇지 못하다. 검은 공막. 그 사이에서 희미한 벽자색에 가까운 눈동자가 당신을 향해 구른다.
"아무렴, 흥미가 동하였어."
흔한 것이라 해도 뺏기고 나면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소중한 것이기에 욕심이 난다. 당연히 말을 하는 것을, 걸어올 수 있는 것을, 아니, 그 이상의 것을 바란다. 묵묵히 하나의 연설을 들으며 안광에도 정자세를 유지한다. 긴 침묵이 이어진다.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 하였으나 되레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는 말에 거센 흥미가 생겼다. 당연하게 느껴볼 수 있는 것을 쥐는 과정에서 튀는 피라. 아득히 좋고도 좋아라. 침묵이 이어지더니 작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위엄 있어야 할 존재의 목에서 간지럽게 흘러나오던 것은 점차 만족스러운 듯 크게 울린다. 낭랑하고 간드러진 웃음을 뒤로 용이 공중에 떠오른다. 당신을 향해 앞발 두 개를 뻗는가 싶더니 비늘이 점차 흩날리던 꽃잎처럼 사라진다. 당신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만져봐야 이것이 꿈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10대 중반, 그 정도 되어 보이는 조그마한 체구의 인간이 되어, 둥실거리는 그 상태로 뺨을 부여잡아보려 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길고 숱 많은 머리카락에 육신이 가려졌지만 웃음은 가릴 수 없었다.
"자네 보기엔 내가 도망칠 사람으로 보이는가? 아니지, 아니야. 고작 한 뼘의 자유로 만족해 꼬리말고 도망치면 군주가 아니지. 내 힘든 것은 아무런 장애물도 되지 않네. 어찌 내가 그런 것으로 힘들다 하겠나. 알고 싶은 것도 사라지는군. 내 쥐고 싶네, 동료가 되겠어. 그리고 손 뻗어 가지고야 말겠네. 내 원체 욕심이 많아서 말이야, 자네 말을 들었으니 거절했다간 잠도 못 이루겠단 말이지."
커다란 눈동자가 긴 호선을 긋는다. 순진무구한 듯 욕심 많은 미소였다. "허락해 줄 거지? 올리에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