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해주니 부끄럽다. 너는 부끄러운 듯 입가를 가리다가 네 답변과 그녀의 말을 통해 알아본 취향이 거의 정 반대라는 걸 알 수 있게 되자 조금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 역시도 마찬가지인 모양.
"그러게요, 많은 부분이 다르네요. 우리 둘은."
이렇게까지 많은 부분이 다르기도 쉽지 않은...가? 어쨌건 이건 이거 나름대로 특별하다고 생각하면서 호칭은 그대로가 괜찮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그럼 다행입니다. 라면서 웃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주문했던 음료와 크로플이 테이블에 올려진다. 앞에 놓인 코코아를 보며 흐뭇한 듯한 표정을 짓는 그녀의 모습에 달콤한 걸 정말 좋아하는구나 싶어 살짝 미소를 짓곤 네 앞에 놓인 쉐이크와 크로플로 시선을 돌렸다. 금방 들려온 목소리에 다시 시선을 옮기기는 했지만.
"하하... 저도 마찬가지에요, 타루 양."
외롭지 않다...라, 평소에는 외로움이라도 느꼈다는 이야기일까? 하긴 사람과 만나는 걸 좋아하고 취미라고까지 했으니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잘 주고받지 못하는 날이라던가 하면 외로울 수도. 그게 아니라면... 이 부분은 일단 넘기자.
외로울때가 있냐는 말에 눈을 가늘게 뜨며 낮은 목소리로 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한때 외롭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외로워지게 되었다. 무슨 말이냐고? 그녀를 사랑해주는 아군이 있었으나 아마데우스가 그 사람 곁을 떠났거나 그 사람을 잃었다는 뜻이다.
지금은 뜻이 맞는 동료들이 있어 외로운 나날은 적어졌지만 집에 혼자 있을땐 가끔 죽도록 외로워졌다. 오늘 그녀가 밖에 나온 이유 중엔 심심함도 있었지만 외로움도 있었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 어울리며 그들의 밝은 에너지를 받아들이는게 그녀의 주된 취미지만 그럴수록 더 지독히 외로워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전투를 나갈때,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 출동 명령을 기다린 적도 있습니다. 싸움은 좋아하지 않으면서... 아, 죄송합니다. 이런 어두운 이야기를... 이만 끝내고 음료나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하죠!"
인간인 이상...이라. 외로움은 특별한 감정은 아니다. 많은 이유로 외로움은 찾아오고 또 많은 이유로 외로움이 떠나가지. 어쨌건 적어도 지금 그녀는 너와의 대화에서 외로움을 걷어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말이 진심을 표현한 거라면 그렇겠지. 아마 진심이리라.
"그렇군요, 그럼 언젠가 한번 피크닉이라도 갈까요? 싸우러 갈 때가 아니더라도 같이 뭔가 할 수는 있으니까요."
어두운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누구나 내면에 어둠은 간직하고 있으며 그 어둠을 꺼내놓지 않는다면 영영 어두운 채로 있게 된다. 물론 네가 그녀에게 그 정도의 위치를 차지한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편안하게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없는 건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네가 해줄 수 있는 건 뭘까 싶어 소박한 답을 내놓아 본다.
"네, 그럼 가볍게 단 음식을 즐길까요."
말이 끝나고 쉐이크를 한 모금 넘긴다. 시원하고 달콤한 느낌이 입 안을 지나 목을 타넘는다.
연구실 안에 있는 에스티아는 잠시 앉아서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었다. 정확히는 USB의 내용을 확인한 후로는 그런 날이 많았다. 그 장소는 자신에게 있어서도 나름 의미가 있는 장소였다. 물론 좋은 의미가 아니라 최악의 의미로써. 허나 그 사실을 굳이 지금 당장 공표할 생각은 없었기에 그녀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무튼 조만간에 그곳으로 작전을 나가게 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 레이먼드였다. 무슨 일로? 그렇게 생각을 하며 에스티아는 자리에서 일어선 후, 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면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무슨 볼일이라도 있어?"
자연히 에스티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찌그러져있는 무언가였다. 줄과 끈을 매어서 만든 그 무언가는 적어도 에스티아의 눈으로는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두 눈을 멀뚱멀뚱 깜빡이던 에스티아는 레이먼드를 바라보면서 다시 입을 열어 이야기했다.
"그 쓰레기는 뭐야? 아. 혹시 뭐 만드는데 쓰라고 재료로 가지고 온 거야? 음. 어느 정도는 재료로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과연 강도라던가 괜찮을까? 찌그러진 것을 보면 그다지 센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에스티아는 괜히 고개를 갸웃했다.
호수를 등지자 흰 비늘이 햇빛에 반사된 물 때문인지 반짝인다. 피식 웃는 모습 뒤로 초면이지 않냐는 지적에 눈을 좁힐 적, 반짝이는 면적이 조금 더 넓어진다. 제는 가볍게 그르륵대며 고개를 털었다. 당신의 모습에 잠시 의심을 했으나 금세 거둔 모양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가짜라면 죽여버리면 되는 일이지 않은가. 그리고 진짜에겐 기다리게 한 값을 톡톡히 치르게 하는 수밖에. 시체를 던져주면 알아서 미안해라도 하겠지. 괜찮은 방법이다.
"붉은 여자를 만나라 했기에 확인하고자 했네만.. 이 방법은 아니었나 보군 그래."
짧았던 언사에 대한 이유를 댄 뒤로 제는 가만히 여성을 훑듯 쳐다봤다. 예민한 코가 한 명의 사람을 더 느꼈으나 지금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소개라." 짧은 되물음을 뒤로 제는 느긋하게 몸을 움직였다.
"여에 대해 소개해 보라 하나 자네가 바라는 방식의 소개는 어려웁네만.. 여가 안식의 황제, 영원한 밤을 호령하는 신수. 그렇게 불리긴 했다마는 그것이 자네가 바라는 답이 아닌 것 같으니 말입세."
앞발을 내디뎌 미끄러지듯 당신의 앞에 섰다. 크기가 조금 작아진 느낌이다.
"하여 지금부터 제帝라고 불러주면 좋겠네만.. 보다시피 인간이 아닌 모습이나 인간의 모습으로도 변할 수 있네. 다만 내 지금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지라 양해해 주면 참 좋겠어."
이걸 보여주면 된다던데. 라고 덧붙인 제는 이내 툭, 하고 코로 당신의 팔 한 쪽을 두어 번 건드려보려 하더니 주둥이를 벌린다. 다행스럽게도 잇새에 물어 젖지 않은 무언가를 손바닥 위에 내려주기 위함이었다. 붉은 에델바이스를 상징화한 배지 하나.
줄을 다시 크랭크로 감아넣고, 끈을 이용해 왼쪽 팔에 매어둔다. 고물의 찌그러진 부분을 툭툭 치고선 밸브를 돌려서 열자 기체가 새 나오는 소리가 잠깐 들린다. 이제 왼팔을 들어 연구실의 한쪽, 비어있는 벽에 향한 다음엔 다 녹슨 오토바이 브레이크를 방아쇠 삼아 달아놓은 것을 누른다.
가스가 퍽 하는 소리를 내며 발사되고, 그 힘으로 줄의 끝 부분이 벽을 향해 날아간다.
"대충 어떤 물건이냐면, 새롭게 달고 싶은 장비의... 시제품이라기보단 컨셉 참고용 목업 같은거랄까. 이 줄 끝에 갈고리를 달아서, 와이어처럼 쓰려고."
크랭크를 다시 손으로 감아서 줄을 되감지만 가끔씩 턱턱 걸리는 등 난황을 겪자, 난처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붙잡으려고 하는 이일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로벨리아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다. 모습은 보이지 않겠지만 어딘가에 아스텔이 숨어있을테고, 만일의 경우에는 움직일테니 그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안심할 수 있었다. 물론 상대가 자신이 모르는 보검을 사용하는 세븐스 중 하나라고 한다면 조금 힘들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제라고 불러달라고 하는 그 말에 로벨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본명이라기보단 자신이 따로 칭하는 호칭 같지만 사실 본명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내 붉은 에델바이스를 상징화한 뱃지를 받아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머리의 여성이 자신이냐는 물음에 이어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를 이끌고 있는 대장인 로벨리아 올리에트. 로벨리아라건, 올리에트건 편하게 부르도록 해. 그건 그렇다고 쳐도 설마 부탁으로 만나게 된 이가 이런 이일 줄이야. 변신형 세븐스인가?"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은 즉, 저 자의 세븐스는 변신형 세븐스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로벨리아는 이어서 말을 이었다.
"내가 부탁받은 것은 세븐스 하나를 탈출시킬테니 받아달라는 것이었다만. 너는 어쩌고 싶지? 아니. 애초에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를 들은 바가 있나?"
일단 상대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서 로벨리아는 굳이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에 대한 깊은 설명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부탁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무조건적으로 저 자를 동료로 받아줄 순 없는 일이었다. 일단 여러모로 이야기를 나눠볼 필요가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