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럼 마시멜로 핫 코코아 하나, 기본 크로플 하나, 초코바나나 쉐이크와 캐러멜 크로플 주문하겠습니다."
주문이 끝나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은 아마데우스는 그쪽으로 쥬데카를 불렀다.(당연히 계산은 했다) 의자에 앉은 아마데우스는 쥬데카에게 말했다.
"휴일에 동료들과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네요."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아마데우스였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녀는 쥬데카와 여럿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그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했다. 취미는 무엇이며, 고양이와 개 중엔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는지, 나이는 몇살이며 찐빵 중엔 무슨 맛이 가장 좋냐는 등등. 물론 아마데우스가 먼저 자신은 사람 만나기와 음악 감상이 취미이고, 개를 더 좋아하며, 올해로 29살, 찐빵 중엔 단팥맛이 가장 좋다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낙일. 태양이 떨어진 자리를 달이 꿰찼을 적 제는 승천했다. 고성이 들렸으나 무시했다. 어차피 들어봤자 영양가도 없을 뿐더러 이미 승천한지 오래기 때문이다. 지금 고성을 지른다 해서 돌아갔으면 이렇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총성이 울렸으나 총탄은 닿지 않는다. 이쪽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쏜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렇지만 왜 쐈을까? 화가 난 건가? 저렇게 어리석을 수 있나. 그렇게 혀를 굴려대더니 막상 쫓아갈 단서를 쥘 머리는 없는 것 같다. 비웃음이 목을 쿡 치고 혀를 타 밖으로 나올뻔했으나 웃을 수도, 멈춰 지켜볼 수도 없었다. 바람은 제의 편이었고,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는 없을 것임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날았을까, 제는 도심을 스쳤다. 거대한 몸신이 꿈틀거리며 무기질적인 건물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하게 빛나는 네온사인이 빠른 속도로 스치고 아찔한 색을 자아낸다. 뺨에 와닿는 바람은 차갑지만 아직까지는 역풍이 아니라 속도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좋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민담과 설화에서만 입방아를 찧던 무언가가 허공과 건물 사이를 활보했기 때문인지 경악의 손가락질과 시끄러운 소리, 그리고 뒤에서 추격하는 가디언즈가 당장 멈추라 외치는 요란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저 멍청이들은 멈추라고 외치면 멈춘다 생각하는 건가? 저들의 군주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참 안타깝다. 누군가 추격의 모습을 담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을 적, 제는 몸을 크게 뒤틀더니 위로 더 거세게 꼬리를 박차더니 하늘 위로 사라져버렸다. 바람을 타고 더 높은 곳으로 오르고, 제는 그렇게 온전히 도심을 빠져나가는 것에 성공했다.
그렇게 계속 날았던 것 같다. 날밤을 새웠는지 해가 따스하게 내리쬘 적 제는 기감을 세웠다. 고개를 흘끔 뒤로 돌리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가디언즈의 추격을 따돌린 것이 확실했다. 한결 편안한 공기가 뺨을 스친다. 분명 그렇게 말했지, 약속된 장소에 가서 붉은 머리의 여성에게 증표를 보여주면 될 것이라고. 제의 한쪽 눈이 데룩 구른다. 저기인가. 제는 몸을 한 번 크게 뒤틀듯 꼬며 하강했다.
"……."
한적한 숲에 발을 내딛는다. 제는 호수를 뒤로하고 희게 빛나는 몸신을 가볍게 꿈틀거렸다. 이 여성인가? 용의 몸으로 지켜보던 제가 목 너머로 소리를 냈다. 아직 입은 벌리지 못했으나 잇새로 다행스럽게 소리가 흐른다.
주문을 마치고 너를 부르는 목소리를 따라 자리에 앉으니, 그녀는 너를 보면서 지금 상황이 굉장히 좋다는 말을 했다. 확실히 좋은 건 맞다.
"네, 이런 사소한 것 같은 일들에서 느끼는 좋은 감정이 쌓여서 더 큰 감정이 되는 거겠죠, 좋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화를 통해 많은 걸 알아가기도 하고, 내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고. 혼자 자문자답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던 일들을 해결할 실마리를 붙잡기도 하고... 그동안 네게 전해지는 질문들을 하나하나 경청하고 정성을 들여 하나씩 대답하기 시작했다. 취미는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이라고 말하긴 좀 그렇고 책을 읽는 것과 조용한 곳을 찾아 거니는 것, 좀 더 좋아하는 쪽은 고양이, 나이는 스물 넷, 찐빵은 다 좋지만 굳이 따지자면 야채 찐빵이 좋다고 대답한다.
약속된 시간. 약속된 장소. 일단 부탁은 있긴 했으나 상대를 그렇게 호락호락 마을로 들여보낼 순 없었다. 그렇기에 직접 만나보겠다고 판단한 로벨리아는 아스텔을 대동한 후, 아스텔을 근처에서 대기시키고 약속장소에 발을 딛었다. 참으로 조용하기 그지 없는 한적한 숲속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용의 몸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었다. 남성인지, 여성인지. 아니면 세븐스인지, 어디서 탈출한 실험동물인지. 아무튼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습이 자신을 바라보며 묻는 물음에 로벨리아는 피식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자네인가? 라. 어떤 의미로 하는 말인지 물음을 먼저 던져보도록 하지. 우린 초면이지 않나?"
상당히 여유로운 목소리톤이었으나 그렇다고 방심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일단 의사소통은 가능한 이라고 판단하며 로벨리아는 오른쪽 손을 자신의 허리춤에 올리고 제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우선 자신의 소개를 해줬으면 하는데. 그래야 우리가 서로 만나기로 한 이인지, 아니면 우연히 여기서 마주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첫마디가 자네인가. 라는 말로 보아 꽤 거만한 성격이 아닐까. 라고 로벨리아는 판단했다. 하지만 상관없는 일이었다. 거만하면 자신도 지지 않을 정도로 떨 수 있었으니까.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은채 로벨리아는 상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렇게 말해주니 부끄럽다. 너는 부끄러운 듯 입가를 가리다가 네 답변과 그녀의 말을 통해 알아본 취향이 거의 정 반대라는 걸 알 수 있게 되자 조금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 역시도 마찬가지인 모양.
"그러게요, 많은 부분이 다르네요. 우리 둘은."
이렇게까지 많은 부분이 다르기도 쉽지 않은...가? 어쨌건 이건 이거 나름대로 특별하다고 생각하면서 호칭은 그대로가 괜찮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그럼 다행입니다. 라면서 웃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주문했던 음료와 크로플이 테이블에 올려진다. 앞에 놓인 코코아를 보며 흐뭇한 듯한 표정을 짓는 그녀의 모습에 달콤한 걸 정말 좋아하는구나 싶어 살짝 미소를 짓곤 네 앞에 놓인 쉐이크와 크로플로 시선을 돌렸다. 금방 들려온 목소리에 다시 시선을 옮기기는 했지만.
"하하... 저도 마찬가지에요, 타루 양."
외롭지 않다...라, 평소에는 외로움이라도 느꼈다는 이야기일까? 하긴 사람과 만나는 걸 좋아하고 취미라고까지 했으니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잘 주고받지 못하는 날이라던가 하면 외로울 수도. 그게 아니라면... 이 부분은 일단 넘기자.
외로울때가 있냐는 말에 눈을 가늘게 뜨며 낮은 목소리로 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한때 외롭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외로워지게 되었다. 무슨 말이냐고? 그녀를 사랑해주는 아군이 있었으나 아마데우스가 그 사람 곁을 떠났거나 그 사람을 잃었다는 뜻이다.
지금은 뜻이 맞는 동료들이 있어 외로운 나날은 적어졌지만 집에 혼자 있을땐 가끔 죽도록 외로워졌다. 오늘 그녀가 밖에 나온 이유 중엔 심심함도 있었지만 외로움도 있었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 어울리며 그들의 밝은 에너지를 받아들이는게 그녀의 주된 취미지만 그럴수록 더 지독히 외로워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전투를 나갈때,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 출동 명령을 기다린 적도 있습니다. 싸움은 좋아하지 않으면서... 아, 죄송합니다. 이런 어두운 이야기를... 이만 끝내고 음료나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하죠!"
인간인 이상...이라. 외로움은 특별한 감정은 아니다. 많은 이유로 외로움은 찾아오고 또 많은 이유로 외로움이 떠나가지. 어쨌건 적어도 지금 그녀는 너와의 대화에서 외로움을 걷어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말이 진심을 표현한 거라면 그렇겠지. 아마 진심이리라.
"그렇군요, 그럼 언젠가 한번 피크닉이라도 갈까요? 싸우러 갈 때가 아니더라도 같이 뭔가 할 수는 있으니까요."
어두운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누구나 내면에 어둠은 간직하고 있으며 그 어둠을 꺼내놓지 않는다면 영영 어두운 채로 있게 된다. 물론 네가 그녀에게 그 정도의 위치를 차지한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편안하게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없는 건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네가 해줄 수 있는 건 뭘까 싶어 소박한 답을 내놓아 본다.
"네, 그럼 가볍게 단 음식을 즐길까요."
말이 끝나고 쉐이크를 한 모금 넘긴다. 시원하고 달콤한 느낌이 입 안을 지나 목을 타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