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분의 눈동자가 소리없이 따라가고 도망가는 그 장면은, 제 3자가 보았다면 제법 재밌었을 것이다. 한 쪽은 왜 굳이 그렇게 따라가나 싶고. 한 쪽은 왜 피하기만 하고 외면하지 않나 싶으니까. 하다 못 해 그녀의 팔 안에서 빠져나가기만 해도 될 것을. 탄탄히 둘러 안고 있다곤 하나 나가려 하면 순순히 놓아주었을 테니 말이다. 그것도 말해주지 않고 그냥 있는 그녀도 그녀지만.
꿈에 대해서는 이스마엘의 대답 이후로 더 언급하지 않았다. 좋지 않은 건 계속 말해본들 좋을게 없다. 이스마엘 뿐만 아니라 레레시아에게도, 악몽은 가급적 언급하고 싶지 않은 주제였으니.
"응. 초콜릿."
그래서 화두를 바꿨다. 그녀가 설명을 하자 허공을 헤매던 이스마엘의 눈이 잠깐이지만 협탁의 초콜릿 상자를 본다. 좋아하나? 방 안을 구경했다는 건 별로 개의치 않는지 낯빛이 그대로라 다행이었다. 여기서 더 당황하게 했다간 아무리 그래도 양심이 아파질 거다. 그러니까, 이쯤에서 일어난 상황들을 모두 덮어버릴 수 있게끔 그에게 선택지를 주었는데. 뜻밖에도 이스마엘은 질문을 허락했다.
느릿하게 마주친 금색의 눈은 왜? 혹은 어째서? 라는 물음표가 띄워져 있었을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고정된 시선은 곧 좌측 아래로 데구르르 굴러간다. 거기 뭔가 있는 건 아니고, 잠시 생각하기 위해서다. 질문을 할까 말까. 한다면 무슨 질문을 할까. 안 한다면 무슨 말로 분위기를 바꿀까. 잠시간의 생각을 하는 동안 이스마엘의 등 위로 한 손이 가볍게 토닥거린다. 의식하고 한다기보다 이런 상황에 자주 해본 것처럼 자연스럽다. 등과 허리 중간 쯤을 토닥토닥 하다가, 손이 멈추고 시선이 그에게로 돌아간다. 구불지게 곡선을 그린 입술이 그럼- 이라며 말문을 연다.
"나가서 네 얼굴 봤다고 다 얘기하고 다닌다? 자는 얼굴이랑 당황한 얼굴이랑 어땠는지 전부 떠들고 다녀버릴지도 몰라?"
이래도 입막음 안 할래? 라고 하는데 전혀 협박 같지도 않고 오히려 웃음기가 베어있지 않나 싶다. 표정은 웃는 건지 아닌지 미묘했지만. 레레시아는 팔을 풀어 손을 들어올려서 양 손으로 이스마엘의 얼굴을 감싸려 했다. 그냥 두었으면 조금 닳은 듯한 장갑의 감촉이 닿고, 조심스럽게 조물거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스마엘을 보며 그렇게 얘기했다.
"동료인데, 그게 뭐 어때서. 동료라고 전부 다 밝힐 필요는 없어. 동료니까 더더욱 선은 확실히 해야지. 감출 건 감추고, 드러낼 건 골라서 드러내는게, 너를 위한 거고 상대를 위한 거야. 아. 물론 질문은 할 거지만."
기회는 놓치면 아까우니까- 입꼬리가 은근히 올라가며 짖궂은 표정을 만들어내었다. 그 즈음 손은 다시 내려가 가볍게 둘러 안았을지도.
"가지고 있는게 무거워서 털어놓는다면 잠자코 들어줄 수도 있으니까. 뭐, 듣는 중에 심기가 뒤틀리면 참거나 하지 않을테니 그건 염두하고. 그럼 질문할게. 이스마엘. 너는 누구야? 어떤 사람이고, 뭘 감추고 있는 걸까나?"
질문은 떨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을 크게 기대하지 않는 듯 보이니, 적절히 둘러대고 넘어가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도 된다고 이미 그녀가 말했으니.
에봇이라, 자신이 아는 에봇은 크리스트교의 제복 뿐이다. 그는 잠시 말을 끊더니 당신을 돌아본다. 갑작스러웠을 수도 있겠다만, 그는 태평해 보인다.
“하나 나한테 그런 고결한 의미가 담긴 단어를 쓰는 이유를 모르겠는데.”
하나님과 가까운 위치, 사제들이 입는 것 아니었던가. 첫 만남도, 지금도. 그는 자신이 당신을 대하는 태도에 날이 어느 정도는 세워져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칼날은 거뒀다만, 여전히 칼 자체는 존재한다. 빈 말로라도 자신에게 온전히 좋은 취급만을 받지 못하고 있는 당신이 어째서 자신을 이렇게 둥글게 대해주는가?
“난 아직도 널 신뢰 못하고 있어. 딱히 숨기려 든 건 아니니 너도 알아차렸을 수도 있고.”
물론 당신은 딱히 물렁히 대해주려 한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그가 느끼기에 부드러운 것일수도 있다. 에봇이란 단어를 고른 것도 단순히 푸르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도 잘 안다. 그도 이걸 이해한다. 그는 자신이 이런 반응을 하는 이유도 알고 있다.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이상과 동떨어진건 안다. 물 흐르듯 가만 놔두려 했던 의심은 돌연 제 발로 일어선다. 부정적인 감정은 없다, 그는 그저 본능적인 탐구심에 따르고 싶어졌다.
“이상하잖아? 보통 사람은 못되게 대해주는 사람한테 예쁜짓 안 한다고.” “억지로 관계 개선 하려는게 아닌 이상.”
무표정은 어쩐지 맹한 축에 기울어진듯 해 보인다. 말을 건내는 투는 속뜻과는 달리 잔잔하다. 요전에 전투에서 짜집어낸 결론은, 네가 ‘아마’ 가디언즈의 배신자라는 것. 아니면 배신자 역할만 맡고 있을지도 모른다. 객관적으로 문제를 보자면 당신은 아마 무고하고, 진실되었을 것이다. 로벨리아는 현명하니 당신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생각했으면 그 자리에서 치워 버렸을 것이라 믿는다. 설령 당신이 정말로 에델바이스의 뒤통수를 치려 잠입 해온 것이라면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의심을 달리 거둘수 없다는 것도 안다. 이건 생리적인 현상이고, 그가 할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아니, 할수는 있는데, 뒤탈은 남는다. “보다시피, 이렇게 뒤틀린 사람이라. 가식 떠는 거라면 이제 멈춰도 돼.”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시선은 냄비로 향한다.
“글쎄. 누가 받든 똑같은거 아닐까. 만들다 타거나 모양이 이상한게 나오면 예폭남한테 던져줘야지.”
손바닥 뒤집듯 또다시 논점은 바뀐다. 당신이 특별히 주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물어오는 것에 대한 답. 애초에 나눠줄 생각은 했지만, 아직 누구한테 줄진 안 정한 모양. 사과는 달달한 냄새를 내며 물렁해져 가고 있다. 적당히 다 졸아들면 그는 불을 끄고선 냄비 뚜껑을 닫아놓는다.
“누구나 다 그랬을 것 같은데.” “나도 그런 힘이나 지위, 하다못해 비세븐스로 태어날수 있었더라면 남의 고통은 못본체 했을겁니다.”
사회에 불만 품는게 강자일 리가. 언제나 주먹을 드는 것은 약자의 몫. 당신의 말에 그리 반응을 하고선 그는 컵케이크 틀을 들고 당신 옆 카운터에 놓는다. “눈 먼 양심을 그런걸 보고 하는 말 아닐까. 파하하. 눈 *신한테 이런 소리 들으니까 조금 웃기지 않아?” 대놓고 이질적인 거짓웃음이 들려온다. 자신이 쪼아댄 후, 상황을 부드럽게 넘기는 당신을 보고 그는 그저 묻어간다.
당신이 적당히 파이지를 민 걸 보면 이제 그만 밀어도 된다는 듯, 당신의 손등을 톡 치고선 기름칠이 발린 컵케이크 판에 파이지를 조금 떼어 넣는다. 전형적인 파이 크러스트의 모양을 잡아주곤 다른 컵케이크 판 하나를 당신에게 건낸다. “이런 식으로 하는게 전통적이긴 한데, 모양은 네가 하고 싶은대로 잡아도 별 상관 없어.”
초콜릿에 물끄러미 닿는 시선이 거두어진다. 초콜릿을 좋아하지만 지금 당장 좋다고 텐션을 올리기엔 잠깐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당신이 질문하고자 하는 것이 있으니 그게 우선이다. 동료의 질문이라면 무엇이라도 받아줘서 하지 않겠는가. 다시금 생각한다. 영원한 비밀은 없노라고. 이스마엘은 그 비밀이 무너지는 순간이 곧 다가올 것임을 어림짐작하고 있었다.
"……."
침묵. 어째서 그렇게 흔쾌히 응하냐고 눈동자가 물어보는 것 같지만 대답은 없다. 대신 토닥거리는 손길에 맞춰 천천히 자세를 고쳤다. 어색하게 뻗어있어 오금이 저리던 무릎을 굽히고, 긴장했는지 빳빳하게 곧추세우던 허리는 자연스럽게 말았다. 순응한 태도였으나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ㄱ, 그건- 안 됩니다..!"
눈이 둥그렇게 뜨인다. 그건 안 된다! 누군가에게 얼굴을 드러내는 것도 많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지만, 자는 모습이나 당황한 모습이 공개되는 건 마음의 준비보다 더 큰 철판이 필요했다. 이스마엘의 연두색 눈동자는 당황한 듯 홉뜨나, 이내 장난임을 깨닫고 새삼 억울한 표정으로 누그러졌다. 뺨에 닿는 손길은 닳아빠진 장갑 특유의 까슬함이 남아있었다. 인조 가죽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의 질감. 이스마엘은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며 시선을 굴려 눈을 마주했다.
"그렇습니까. 이런 건 배운 적이 없어서 잘 몰랐습니다."
배운 적이 없다. 세상에 비견하면 지나치게 순박해 빠졌음을 이스마엘도 잘 알고 있다. 정확히는 알기만 한다.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으면 좋겠지만 그런 방법은 사람을 대해본 적이 없으니 모르겠고, 모질게 굴기에는 순해 빠져서 그럴 수가 없었다. 빠져나갈까 싶어도 상대가 상처받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앞섰으니 이대로 밖에 내보내면 눈 뜨고 코는 고사하고 장기도 다 털릴 것이 뻔했다. 지금 당신으로 하여금 배우긴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저는.."
모두 불어버리면 당신이 행동으로 나설 것을 안다. 이스마엘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문장을 고르고 단어를 엄선한다. 적절히 둘러 가고자 하는 마음과 양심이 충돌한다. 이스마엘의 눈이 가라앉는다. "서류상으로는 태어나자마자 죽은 세븐스입니다." 무거운 혓바닥을 겨우 움직여 뱉은 서두는 둘러대기 딱 좋은 것이었다.
"죽은 사람이, 하물며 세븐스가 살아있다는 자체로 가디언즈에 쫓겼기 때문에 얼굴을 숨기고 도망쳤습니다. 이후에는 슬럼에서 숨어 지냈습니다. 슬럼도 세븐스를 향한 범죄가 판을 쳤기 때문에.. 지킬 수단이 없으면 편하게 잘 수 없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갈 길이 멀다 하였던가, 가장 중요한 것을 몇가지 빼놓고 인생의 단락을 교묘하게 포장하는 것은 이미 숙달한 듯싶은데도. 이스마엘은 "그뿐입니다. 나머지는 다른 세븐스의 사정과 같습니다." 하고 덧붙인 뒤 어색하게 웃었다.
토닥임을 받으며 자세를 편히 고치다가도 레레시아가 조금 짖궂은 소리를 하자 파드득 놀라며 눈을 크게 뜬다. 놀랐다가도 그녀의 말이 농임을 알자 표정이 금방 누그러지는데, 억울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얼굴이다. 그건 안 된다는 말 외에는 싫은 소리도 안 하고. 얼굴에 손을 대도 피하지 않는다. 눈을 도록도록 굴리다가도 살그머니 시선을 맞춰오는 모습이, 조심히 꺼내는 말 한 마디가 참으로 순하다. 절로 그런 소리가 흘러나올 만큼.
"너 엄청 귀엽다. 와. 갖고 싶을 정도네."
가져도 돼? 라며 분위기를 조금 깨는 소리를 잠깐 한다. 그런데 지그시 응시하며 입꼬리를 한 쪽만 올린 표정이 마냥 농담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잠깐 딴소리로 새었다가도 이스마엘이 생각을 정리하며 말을 고르는 동안을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그 얼마간, 몇 번의 토닥임이 있었을 지도. 겨우 저는- 이라며 운이 뜨이자 그녀는 숨조차 죽이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흠-"
이스마엘의 간결하고도 핵심만 들어있는 듯한 얘기에 레레시아가 의미심장한 소리를 냈다. 고개를 약간 기울여 시선을 아래로 하고 다물린 입술은 안쪽을 깨무는지 작게 움직인다. 언뜻 보기에 그가 한 얘기를 의심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 잠버릇을 가지기엔 서사가 너무 빈약하지 않았을까. 잠깐을 그렇게 혼자 생각에 잠겼던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올려 이스마엘을 바라본다. 한 손을 슥 들어올리는가 싶더니, 이스마엘의 하얀 머리칼 위를 쓰다듬어 주려 하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래. 잘 얘기해줬어. 그래서 그랬구나."
그녀의 말은 들은 그대로를 받아들인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말을 했다.
"그래도 남들과 사정이 비슷하다고 해서 네가 네 인생을 진부하다 하면 못 써. 누군가 네 얘기를 듣고 그렇게 말해도 안 되는 거고. 아무리 대다수와 비슷하다고 해도, 네가 걸어온 길은 너만 걸은 길이고 앞으로도 그럴 길이야. 억지로 좋은 말로 포장할 필요는 없지만 빈 말로라도 진부하다 하지 마."
말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기도 하니까. 알았지? 라며 레레시아는 이스마엘의 볼을 아프지 않게 잡았다 놓으려고 한다. 장난스레 군 뒤에는 다시 바짝 당겨 안곤 너는 어떻게 할래- 라며 덧붙였다.
"나만 물어보면 치사하니까. 너도 뭐 물어볼래? 내가 했던 거 똑같이 물어봐도 되고 따로 궁금한 거 물어봐도 돼. 아무거나 뭐든지 다 오케이야-"
이번에도 그녀는 표정과 낯빛이 가벼웠다. 조금 깊게 파고들어도 불만 없이 받아들여 대답해주지 않을까 싶다.
"고결한 의미라고 생각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그냥, 파란 색이면 아무거나 좋다고 말씀하셔서요."
굳이 의미를 찾는다면야 수도 없이 튀어나올테지만 너는 그다지 그런 부분까지는 이야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가 파란 색이라면 무엇이든 괜찮다고 말했으니 그것 뿐이라고 해도 충분했을 테니까. 물론 상대방이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의심이 될 수도 있겠지.
"누군들 저를 온전히 신뢰해 주겠습니까... 아무런 근거 없는 의심도 아니니까요. 사실이란 건 그런 거죠."
지금 배신자라고 불리든 말든간에, 그가 예전에 가디언즈었다는 것만은 확실하고. 때문에 지금 역시 그가 배신자 역을 연기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혹은 언제든 다시 돌아설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라는 의심 정도야 당연히 사게 될 수밖에 없으니 너는 어쩔 수 없었다. 저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요! 라고 소리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지만 글쎄, 적어도 너는 그런 성격은 아니었던데다가 억울해하기에는 네 과거는 거짓말이 아니었으니. 사실을 가지고 이야기해 오는 것에 무어라 말할 수가 있겠는가.
"지금까지 못되게 대하고 계셨던 건가요? 으음, 그렇다는 생각은 안 들었는데."
조금 농담기 섞인 듯한 웃음과 함께 당신의 말에 반응한 너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가식이라는 말에는 잠시 파이지를 미는 손을 멈춘다. 가식이라...
"확실히...가식이라곤 없는 분 앞에서 가식을 떠는 건 실례겠죠, 고민은 좀 해 보겠습니다."
결국은 행동이 가식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해석되기에 전혀 모자람 없는 답변을 내고서야 다시 밀대로 파이지를 조심스럽게 민다. 또 어느새 바뀐 주제를 따라가기도 바빴으니 더 이상 생각할 만한 부분은 잠시 치워놓자.
"예폭남...? 음, 그 분은 모양이 이상하게 나오더라도 잘 받아줄 만한 사람인 거군요."
그렇군, 망치거나 잘못된 걸 받더라도 어쨌거나 받아들여줄 만한 사람인가. 친하다는 얘기? 구체적으로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너는 적당히 파이지의 두께를 가늠해 보고 있다.
"저도 그랬을 것 같아서요."
너는 네가 특별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모습... 어쩌면 네가 비춰졌을 모습을 생각해 보면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너는 차마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스스로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면서, 아무런 잘못도 없이 피 흘리고 쓰러져 가는 세븐스들을 보며 내가 저 자리에 있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손에 쥐어진 힘에 감사하는. 거기에 더해 영웅 취급까지! 이런 달콤한 삶을 마다하기가 얼마나 어려울까. 아니, 어렵다고 할 수도 없겠지, 누가 마다하겠어?
"그러니까 저는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겁니다, 이 선택은 본래라면 불가능한 거였으니까요."
배반 정도야 충분히 가능성이 있겠지만 몸 담던 곳의 정 반대에서, 한때의 아군과 마주할 결심이란 쉬운 건 아니었다. 그만큼 오래 방황했다. 너는 낡아버린 네 신발로 잠시 시선을 내렸다가 천천히 다시 들었다.
"......"
농담 같지만, 차마 소리를 내서 웃을 수는 없었다. 언젠가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긴 할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기에, 너는 조금 곤란한 듯한 미소를 지어볼 뿐이다. 그리곤 곧 그가 건넨 컵케이크 판을 받아들고 간단한 설명을 들으며 고갤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