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억지를 부려서 돕게 만드는 건데, 진심으로 임하는 당신의 태도를 보곤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로. 눈동자는 머리를 묶어올리는 당신에게 머물다가도 곧내 불 위에 올려진 냄비에 집중한다.
“매사에 진심인 편?”
본인은 요리할때 손만 씻고 시작하는 편이라 묻는 것이다. “사과는 큼직하게 깍둑썰어 줘. 얇게 자르면.” 애매한 곳에서 갈무리 지어진 문장. 하고 싶었던 말은 ‘얇게 자르면 과즙이 빠져서 맛 없어진다’ 였다만, 곱씹어 생각해보니 이건 누구나 다 알 만한 상식인것 같아 뒤늦게 말을 아끼는 것이다.
“사과파이 필링은 사과가 씹히는걸 좋아하나? 아니면 애플소스 비슷한 식감?”
그리고 다시 시작된 질문. 하지만 당신이 답을 뭐라 하든 이 분은 냄비 뚜껑을 닫아버린걸 보아하니 답은 정해져 있던 모양이다… 조금 의외라는 듯한 표정의 당신을 보면 “뭐, 왜.”라며 퉁명스러운 말로 넘겨버린다.
“몇개 정도 더 구울까.” 크러스트에 쓸 반죽이 충분한가, 냉장고를 열어 확인해 본다. 적당히 있다는 것을 확인해 보면 몸을 틀고 고개를 돌려 당신을 가만 쳐다보다 입을 연다.
“질문을 바꾸지, 넌 몇명한테 신세졌어?”
답이 들려오기도 전에 자신은 요전 임무에서 신세 진게 좀 많았다고 짧은 우스갯 소리를 한다. 냉장고에서 꺼낸 레몬 즙 보틀을 들고선 냄비 뚜껑을 연다. 파이는 달콤하니 좋아한다, 그런 답을 들었으니 필링이 든 냄비에 설탕을 네 스푼 정도 더 넣고선, 레몬 즙도 적당히 넣는다. 나오다가 막혔는지 보틀을 흔들어 보다가도, 아무겄도 나오지 않자 그 통은 대충 옆에다 세워 놓는다.
“임무에서 크게 와닿은 건 없었나?” “예의상 묻는 거니까, 답하기 싫으면 말고.”
거짓말이다. 이 인간이 예의를 그렇게 중요시 할 리 없다. 그저 순전히, 이 질문에 따른 당신의 반응이 자신이 당신이란 인물에 내린 결론과 얼마나 맞아 떨어질지 보고 싶은 것이다. 만난 시간도 굉장히 짧으니 오차는 당연시 하고 있다만, 그래도 그걸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싶은 마음이다.
맛있는거 많이 먹이고 애지중지할거라며, 나는 너를 향해 웃어보였다. 너는 아직, 아마도 부끄러워 하는듯 했지만. 그것이 또 귀여워 보였고. 나도 말이 경험은 많긴해도. 실제로는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적도 없기에 상관없었다. 굳이 여기서 전 남친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으니 더 말하진 않겠지만. 아마 네가 뭘 해도 그 놈들보단 나을거라.. 하지만 경각심을 (?) 위해 알려주진 않을 셈이었다.
"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으니까.. 나도 천천히 기다릴게."
무엇보다.. 나도 아직 마음의 준비가 다 된게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서로서로 잘 어울리는게 이런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자신도 모르게 작게 웃어버린 뒤 너를 바라봤다. 쓰다듬을 받고 있으면서 쎈 말을 하고 있는 네가 보인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또 사랑스러워서. 조금 장난스럽게 너를 바라보며 말했다.
"울거야."
나는 아주 당당하고도, 진지하게 말했다. "네 앞에서 엄청 서럽게 울거야" 안봐주면 어쩔거냐는 물음의 대답. 내가 네 앞에서 아주 서럽게 울면 네가 참을 수 있을까! 라며 말하는 투가 협박인지 애매할 수준이긴 하지만. 아마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기면 진짜 그러지 않을까? 싶기는 한다. 그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얼굴의 열은 가라앉았고. 대신에 팔의 통증은 강해지는 시기. 나는 맺힌 눈물을 닦으며 너의 손을 잡고서 기댔다.
"....... 아니;"
다만 네가 엄장하기까지 한 태도로 말한 대사에. 나는 정색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나를 아이로 보는걸까. 그냥 단순히 같이 가서 옆에 있어주기만 하면 괜찮다고. 그렇게 말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상당히 아프긴 하지만. 그렇다고 죽을 정도는 또 아니었기에 세균 같은걸 염두해 그림자로 다친 팔을 덮어둔다.
"가면 엄청 혼나겠지.."
그야 혼자서 얼음을 녹이고 방치해뒀으니 ㅡ 물론 고백하다가 이렇게 된거지만 ㅡ 아마도.. 혼날거 같았다.
낚시대를 드리우면 그게 낚시를 하는게 아닌가 싶지만. 하는 사람에겐 잡고 안 잡고의 차이가 있나보다. 어쨌든 방해가 아니었던 듯 하니 그녀도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라면 됐지 뭐. 호수에 대해서도 방금 한 대답이면 되는거 같으니 더 말을 얹지 않는다. 더 말할 구석도 없고.
"아 깜빡할 수도 있지."
레레시아가 먼저 불러놓고서 바람을 핑계로 말을 얼버무린 걸 아스텔이 모를 거 같진 않았다. 만약 뭐였냐고 한 마디라도 물었다면 오늘이 날인가보다 하고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싱겁다 말하고 덧붙인 말도 생각나면, 이었다. 생각나면- 이라. 애초에 까먹은게 아니니 생각해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지만. 괜히 툭 내뱉는다.
"뭐어 그게 꼭 너한테 할 말은 아니었을 수도 있으니까. 생각나면 고민 좀 해보고."
이름이야 불렀다 안 불렀다 하는거고. 약간 툴툴대는 말투지만 딱히 감정이 실리지는 않았다. 옆으로 힐끗 스치는 눈초리도 감정적인 건 아니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입가에서 멈춘 손 너머로 먹먹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진짜의 힘이라. 그 때 내가 보고 느낀게 전부일까 싶기도 해. 확실히 처치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은 있었지만. 그 순간을 방해받지 않았어도 아마 무리였을 거란 생각이 자꾸 들더라구. 숨겨둔 수가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정보의 격차도 분명히 보이고. 그런 마당에 경계까지 하면, 진짜 매 임무마다 목숨이 아홉개여도 모자라겠다. 갑자기 눈 앞이 캄캄하네."
으아악 어둡다- 라고 하는데. 그야 다시 손으로 얼굴을 가렸으니 물리적으로 눈 앞이 캄캄해지겠지. 재차 쓸어내리듯 느릿느릿 손을 내린 레레시아는 고개를 비뚝 기울여 아스텔을 보았다. 처음과 비슷하지만 맹한 금빛 눈이 깜빡거린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문제가 있어."
뭘 그리 빤히 보나 싶더니, 하는 말이 그렇다.
"슬슬 돌아가긴 가야겠는데. 가기가 싫네. 일어나기 귀찮아. 이거 어쩌지."
하는 말이 무슨 어린애 땡깡도 아니고. 듣는 사람의 어이를 흔쾌히 저세상으로 보낼 법한 말을 서슴없이 하곤 어떡하지이. 그러고 있는다. 슬그머니 늘어지려는 걸 보면 뭔 헛소리냐며 두고 가도 전혀 미안한 마음은 안 들 지도.
"정말로 해야 할 말이었다면 반드시 말했을 거 아니야. ...너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 회식 때 밖에서 잠깐 이야기를 한 것을 보면 그녀는 다른 이에게 꼭 해야 하는 말이라면 말하는 성격일 것이라고 아스텔은 판단했다. 즉,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굳이 말하지 않았따는 것은 지금 당장 꼭 해야 하는 말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언젠가 말할 것이 있으면 자신에게 말을 하겠지. 물론 궁금한 것은 있었으나 어차피 지금 묻는다고 해도 답하지 않을 것은 어느 정도 그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 정도로 말을 끝내기로 하며 아스텔은 곧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 위험한 일을 하라고 만든 것이 제 0 특수부대야. ...같이 임무를 나가게 된다면 서포트 정도는 해줄게."
허나 죽지 않게 모든 것을 다 한다는 보장은 못해준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아스텔은 가만히 호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다른 문제가 있다는 그 말에 그는 뭐냐는 듯이 레레시아를 바라봤다. 이내 가기가 싫다. 일어나기가 귀찮다. 어쩌면 좋냐라는 그 말에 아스텔은 가만히 고개를 갸웃했다. 딱히 문제는 없다는 듯이 그는 숨을 약하게 내뱉은 후에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걷지 않아도 상관없는데. ...내 세븐스를 이용해서 날아가면 그만이니까. 바람으로 사람을 띄우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나에겐."
자신의 세븐스. 에어로는 공기의 흐름을 지배하는 세븐스. 말 그대로 사람을 날려버리는 바람 정도야 아주 손쉽게 만들어버릴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아스텔은 레레시아를 바라봤다. 하지만 일어나기가 귀찮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잠시 생각을 하던 그는 실례한다는 말을 하면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선 후에 그녀를 안아들듯이 들어올리려고 했다.
"...일어나긴 귀찮고, 돌아가기는 해야겠다면 이 방법밖에는 없어. 싫으면 그 귀찮음을 이겨내고 일어나는 수밖엔 없고."
어려울 것이 뭐 있을까. 움직이지 못하는 동료를 챙겨서 데려가는 것은 엄연히 작전에서 몇 번이고 일어나는 일이었다. 아무튼 그녀가 거부한다면 하진 않겠지만 거부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녀를 안아올리면서 자신의 세븐스를 써서 공중으로 떠오르려고 했을 것이다.
>>375 가디언즈의 보검 세븐스 7명이야 이미 다 짜여있어요. 스킬도 대략적으로는 말이에요. 물론 해당 능력과 같은 능력이 나온다고 한다면 다른 후보군으로 교체하면 되는 일이고.. 만약 교체가 힘든 시점까지 오면 어쩔 수 없이 두 능력이 비슷한 계열인 것으로 치고 내보낼 생각이에요.
"죄송할 필요는 없어요. 전 이걸 즐기고 있으니까요. 재밌지 않나요? 아, 저만 칠 수 있는 장난이니 선우씨는 재밌지 않겠군요..."
어쨌든 이런 상황을 즐긴다는건 사실이었다. 실제로 아마데우스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자신을 남성이라고 착각하면 그 착각을 즐겼다. 어찌보면 농락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녀는 농락보다는 하나의 장난으로 여겼다. 다정한 것과는 별개로 장난기 넘쳤던 아마데우스는 장난치는 것을 자신의 의무마냥 생각하는듯 했다.
얼버무린 건 넘어갔으면서 왜 그 부분은 콕 집어내는 걸까. 잠시지만 그녀의 눈이 도끼 모양이 되고, 비죽 튀어나온 입이 중얼거린다.
"그걸 눈치채다니. 이래서 눈치 빠른 사람은..."
투덜투덜. 궁시렁궁시렁. 알아듣기 어려운 중얼거림 뒤로 팩 하니 덧붙인다. 아무튼 나중이라고.
"...그래. 뭐. 없는 것보단 낫겠다."
추후에 대한 얘기에서 앞으로 있을 적 간부와의 접전이 막막하다며 솔직하게 우는 소리를 하니, 아스텔은 그런 일을 하라고 만든게 특수부대라고 한다. 으이이. 그녀의 눈이 또 도끼가 되려다가 풀린다. 같이 나가게 되면 서포트는 해주겠다는 말 덕분이다. 서포트 정도지만, 그게 어디야. 전력적으로 아슬아슬한 지금에 조금이라도 승산이 생기는 쪽이 좋은 거지.
가기 싫다. 일어나기 귀찮다. 라는 그녀의 땡깡은 사실 그냥 한 번 해본 거라서, 됐으니까 일어나라고 하면 순순히 일어날 생각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다 큰 몸뚱이를 어떻게 해달라는 소리는 안 할 거였는데.
"어... 어?"
아스텔이 그녀를 보는 눈이 무슨 문제가 있냐는 눈빛이라 뭐지 싶었다. 그의 세븐스로 날아가면 된다고, 바람으로 사람 띄우는게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는 말에 머릿속에 경종이 울린다. 이, 이대로 띄워서 데려가려는 건가! 그건 아까보다 무서울 거 같은, 아 아니 무섭지는 않지만 현기증이 아무튼 그게 그럴 거 같은데! 그녀의 머리 안에서만 말이 왱알왱알 도는 사이 옆에서는 아스텔이 일어나서 그녀를 들어올렸다. 세븐스가 아니라 안아들듯이, 였다.
"그, 어, 어... 그럼 부탁 좀 할게."
몸이 훅 들리자 머릿속이 순식간에 조용해지며 이 상황을 거부할 틈이 없- 지는 않았지만. 굳이 이렇게 해주겠다는데 거부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레레시아는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태연한 척 부탁 좀 하겠다고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알아올려진 채로 있다가 아스텔이 공중으로 떠오르면 힉. 소리를 내며 붙잡았을 것이다. 붙잡으면서 기댄 것 같다면 기분 탓이다. 아마도.
딱 거기까지만이라는 조건을 이야기하며 아스텔은 자신의 낚시대까지 확실하게 챙기고서 자신의 세븐스를 사용했다. 몸이 붕 떠오르는가 싶더니, 바람이 크게 불어 상승기류가 생성되자 그는 단번에 뛰어올라 자신의 몸을 확실하게 공중 위로 띄웠다. 그 상태에서 바람을 컨트롤 하니, 그야말로 아무 것도 밟히지 않는 공기 위를 바람으로 날아가는 모습이었다. 너무 빠르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 않게 어느 정도 조절하다 그녀가 소리를 내면서 붙잡자 아스텔은 두 눈을 멀뚱거리면서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역시 무서워하는 것이 맞는 것 같은데. ...이해해. 익숙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그게 일반적일테니까."
자신이야 이 세븐스를 태어날 때부터 쭉 가지고 있었고, 계속 사용을 했기에 익숙했으나 다른 이들은 그런 것이 아닐테니 당연하다고 아스텔은 생각했다. 자신은 굳이 말하면 바람에 날려가는 거지. 자신이 직접 나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발 밑의 허공이 그대로 느껴지고 있었고, 쭉 이어지는 숲길을 보면서 아찔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허나 조금의 미스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는 세븐스를 계속해서 조정하여 바람의 흐름을 조정했다. 레레시아의 머리카락을 아주 살짝 스쳐지나갔을지도 모르고, 옷깃을 살며시 간지럽히듯 날아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제법 근육이 있었던만큼 아스텔은 레레시아를 힘들지 않게 안은 상태로 비행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찔한 높이. 뭔가 안정적이라기보다는 그야말로 바람에 휘말려 날아간다는 아슬아슬함이 쭉 이어졌고 이내 아스텔은 목적지에 도착하자 조심스럽게 하강기류를 만들어서 천천히 자신의 몸을 아래로 착지시켰다. 땅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땅으로 내려줬다. 맨 처음 출발했던 바로 그 슈퍼마켓. 정확히는 지하 아지트로 들어가기 위한 통로의 입구에 도착한 후, 아스텔은 두 팔을 쭉 뻗은 후에 작게 하품을 내뱉었다.
"...도착했어. ...여기서부터는 네 발로 들어가. ...오늘 하루 뭐했는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수고했고. ...고민이건 다른 무엇이건 말이야."
"네? 아, 진심...이랄까,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닌 걸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집중해야 하거든요."
뛰어난 자질을 지녔거나 아예 습관이 되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집중해야만 한다. 일을 잘못했다가는 무슨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모르는 노릇이니. 최대한 할 수 있는 전부를 하기 위해서는 진심을 다하는 게 필수겠지. 너는 뭔가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겠구나 싶어 조금 부끄러운 듯 웃었다. 너무 열심히 하는 사람처럼 보이려나.
"네, 너무 잘게 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뒤엣말이 궁금하긴 했지만, 뭔가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겠지. 파이를 구워본 적은 없었기에 적어도 너보다는 그 쪽이 전문가에 가까울 테니 아마 그 말은 옳으리라 생각하며 너는 사과를 큼직하게 썰었다. 그러다가 이어서 들려오는 질문에는 칼질을 하는 동안 시선을 돌릴 수는 없었으므로, 잠시 칼질을 멈춘다.
"굳이 따지자면... 애플소스 쪽이겠네요. 사실 사과가 온전히 씹히는 파이는 먹어본 적이 없어서요."
살짝 웃으며 그렇게 대답한 뒤, 이미 닫힌 냄비 뚜껑을 보고는 딱히 이번에 반영되는 건 아니려나. 생각하며 다시금 손에 쥔 칼로 시선을 옮겼다. 그 와중에 자신의 시선에 신경이 쓰인 건지, 아니면 그냥... 대화를 잇는 나름의 방식인지는 모르지만 퉁명스럽게 넘겨버리는 그의 모습에 너는 뭐랄까, 인간성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신세 진 사람들... 전부 말씀드리기에는 파이를 만들 반죽의 양이 모자랄 것 같은데요."
직접적으로 신세를 진 사람! 이라고 덧붙인다면야 하나하나 셀 수는 있겠지만, 이미 에델바에스에 머무르는 시점에서 네가 신세지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라고 적어도 너는 생각하는 모양새다. 그가 이런 부분까지 짐작할지는 모르겠지마는.
"임무 말씀이신가요, 글쎄요. 와닿는 거라... 적어도 지금의 나는, 에델바이스를 찾아온 걸 후회하지는 않는구나. 싶었네요."
그리고 너무 막 달려들면 안 될 것 같다는 것도요. 마지막에 물줄기에 휩쓸려서 몸이 찢기는 줄 알았다고 덧붙이며, 너는 곧 사과를 전부 썰어냈다. 그리곤 도마 째로 들고 어느새 열려서 달콤한 향기를 마구 흩뿌리는 냄비에 사과를 쏟는다.
"향기가 좋네요, 달콤한 향기..."
사과를 쏟아낸 도마를 든 채 뒤로 물러서면서, 코를 간질이는 달콤한 향을 실컷 맡는다. 자연스럽게 지어지는 미소는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