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음... 글쎄요... 인류애 가득한 성격이 좀 이상하게 바뀌어서 평화에 위협이 되는 세븐스들을 앞장서서 학살했을거예요 힘없는 비능력자들이 보호받고 위험분자인 세븐스가 탄압받는 지금 이 체계를 유지시키는데 많은 공을 들일것 같습니다 위험한 세븐스를 처리하는 것만이 평화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굳게 믿겠네요
어... 얘가 간부라면....? 어... 일단 성장 배경부터 달라서 성격도 가치관도 다름... 말투만 놓고 보면 나긋나긋 예의바른데 대놓고 성격 나쁘고 자기중심적... 그리고 시키는 일은 잘 하지만 근무태도 나쁜 일하기 싫은 퇴근맨? 가디언즈에 있는 것도 세븐스라서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적성에 맞아서 할 뿐이지 딱히 사명감 같은 건 없음... 여건만 된다면 가디언즈도 뒤통수 치고 여기저기 배신하고 다닐 이광수임...
쥬데카가 가디언즈 간부라면, 아마 서열은 맨 뒤일거라고 생각해 놨어요, 전투능력이든, 인기든, 조직 내 위치든간에 간부 중 제일 마지막에 있는 사람일 건데. 다른 간부들에게 '얘는 약해.'라든가, '놈은 우리들 중 최약체지.' 등의 말을 듣는 위치일 것 같네요. 대신 아마... 가장 많은 레지스탕스를 박살낼 것 같아요, 임무는 확실하게 처리하는 편이고... 위장이나 잠입에 능하므로.
세간의 평가는 '가디언즈 간부의 말석, 존재감이 희미하고, 묘하게 꺼림칙한 사람' 이겠네요. 간부들을 제외한 말단 병사들 사이에서도 사정은 비슷할 것 같고. 다만 간부들처럼 구체적으로 쥬가 어떤 임무를 주로 하는지, 전투력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등을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놈은 약해, 보검이 없었다면 말단 중에서도 말단에 머물렀겠지, 언젠가 죽었을지도 모르는 놈이다." "그렇지만 아마... 우리 중 가장 위험한 놈일 걸." 이유는 별거 없어요, 그냥 본인이 상대를 압살할 정도로 강하지 않기 때문에, '제압'이라는 선택지가 없거든요. 손속을 두는 건 어디까지나 실력에 자신이 있거나, 확연한 차이가 있을 때나 가능하지만 쥬는 불가능해요, 내가 상대보다 분명히 강하다는 인식이 없어요. 항상 불안해하죠. 그렇기 때문에 쥬와 만났다면, 네. 죽거나 죽이거나입니다. 그 외에는 없어요.
>>83 일상 돌리는 것은 있긴 한데 멀티 하나 정도면 상관없지만... 돌리실 분이 없는가? 없다면 제가 돌릴 수도 있기는 해요!
>>85 전에도 그 관련으로 선우주에게 대답을 한 기억이 있는데 밀매업자와 거래를 하는 것도 있고 가끔 털어오는 것도 있고 협력자들에게 얻어오는 것도 있고 그래요. 그런데 이건 확실하게 알아둬야하는 것이 그래봐야 레지스탕스라서 막 정규군처럼 정예 군수품을 다룬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여긴 레지스탕스이기 때문에 막 군수물품이 풍족하다거나 그렇진 않아요.
>>92 그것에 대해서는 제가 일일히 정해줄 수 없으니 그냥 레이주가 편한대로 설정하면 된답니다.
>>93 네온사인...ㅋㅋㅋㅋㅋㅋㅋ 아앗. 귀여워! 하지만 잡히는군요. 그 와중에 사랑해줘라는 표현. 왜 이리 달달하죠? 너무 달달하다!
>>94 개인에게 보급이 되는거야 당연히 위에서 보급이 되는 방식이죠? (갸웃) 질문의 의도를 잘 모르겠어요. (흐릿) 보급이 되니까 보급품이라고 하지 않을까요? 혹은 뭐 캐릭터에 따라서는 따로 밀매업자와 거래해서 얻어서 오는 것일수도 있겠고.. 정식 군대도 아니니까 그 부분은 뭐 캐릭터마다 다르다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이 참에 확실하게 이야기를 하는 거지만 개개인의 무장이나 보급품에 대해서는 위에서 보급받을 수도 있고 개인이 따로 만들었다거나 에스티아가 만들어줬다거나 아무튼 기타 등등 제가 다 정해줄 수는 없기 때문에 그냥 캐릭터들의 자율 설정으로 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당장 아스텔의 경우는 딱히 군용 보급품은 사용하지 않고 있기도 하고요. 보검을 해방해서 나오는 무장으로 다 해결중이랍니다.
그렇듯이 그 부분은 여러분들의 캐릭터 설정으로 자유롭게 해주세요.
104사이보그 전사 실버 봄버! 제 2화 - 물리쳐라! 사악한 악의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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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8 (水) 21:31:13
[싸워라! 이겨내라! 사랑을 되찾아라! 사이보그 전사- 실버 봄버-♪]
[지난 이야기, 차량 정비점 "타츠마키"를 운영하던 청년 제이슨, 그는 자신의 누이가 사악한 악의 조직의 과학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면 안 되는 사실을 눈치챈 대가로 납치되어 개조 병사가 되게 된 제이슨... 그러나 마지막에 누이는 자신의 동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누구보다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던 그 얼굴... 결국 누이는 동생이 세뇌되기 직전에 그를 풀어주고 사망하고 말았다.]
[풀려난 제이슨은 자신의 누이의 시체를 품에 안고 절규했다! 개조의 영향으로 기억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성이 자신에게 따뜻함을 주었단 것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도, 꿈도 잊어버린 제이슨은 조직을 향한 분노만을 불태우며, 자신을 실버 봄버라 자칭한 것이다!]
[이곳은 네오폴리스 시티. 밤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불빛들이 꺼지지 않고 빛난다. 그 가운데 제이슨은 서 있다. 차가운 보디를 코트로 감싸고, 개조된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 문득, 제이슨의 뇌리에 번개가 스친다. "나타났구나! 타앗!" (점프하는 효과음) 코트를 벗고 하늘 높이 뛰어오르는 제이슨! 그 몸은 달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잠시 후, 제이슨은 땅에 착지해서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오폴리스 시티의 도개교, (부숴지는 효과음) 그 앞에 괴인은 자동차를 박살내고 안의 사람을 잡아먹고 있었다! 제이슨은 앞으로 달려나가 괴인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봄버 크래셔!" "크아아악!" (퍼억!) 괴인은 발차기에 맞고 나가떨어진다! "제길, 뭐하는 놈이냐!" "나로 말할것 같으면, 복수에 불타는 분노의 사나이! 은빛의 복수자, 실버 봄버!" "실버 봄버라고? 네놈, 그 변졀자로군!" (바람 소리) 두 사람은 대치한다...]
[...]
[...]
라디오에선 더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불이 전부 꺼진 연구실 안은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관 안쪽을 바라본다. 배양액 속에 담긴 그것은 거의 완성되어, 마지막으로 프로그램만 설치하면 이제 끝이었다. 그것의 뚜껑을, 손에 쥔 쇠지렛대를 힘껏 휘둘러 깨버린다. 빨갛게 경보가 울리며 안경에 빛이 비친다. 안에 담긴 그와 눈이 마주친다.
"나도 참 변덕이 심하구나."
뒤통수를 긁적이며 연구실을 나간다. 조금 걷자 바쁘게 움직이는 연구원들이 보였다. 나에게 신경도 안 쓰는구나. 아, 생각해보면 오늘 새로 잡지가 나왔었지. 사러 가야겠다.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긴다.
계속되는 전투로 몸이 망신창이가 된 선우, 병원에 입원해야한다는 의사의 만류를 뒤로 하고 억지로 통원을 한 그는 몸 이곳저곳에 붕대를 하고 목발을 짚고 있다. 계속되는 총기 사용으로 일시적인 이명이 왔으며 최근에는 무슨 괴물과 싸웠는 지 몸 이곳저곳이 찢겨진 상태로 병원에 왔다.
[병원은 죽었다가 부활하는 곳이 아닙니다. 계속 이러면 죽어요.]
의사의 걱정은 그에겐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다. 애초에 여기서 목숨 걸고 싸우지 않는 이는 없으니까. 그저 웃어 넘기고는 밖으로 나간다.
에델바이스의 길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세븐스와 비 세븐스가 함께 모여 산다. 서로 미워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간다.
선우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숙소로 향한다. 무엇인가 좋은 추억이 생각난 것만 같았다. 달콤한 설탕냄새와 자극적인 향신료 향이 코 끝을 간지럽힌다.
맛있는 냄새를 맡아서 그런지 아니면 밥 시간이 되었는 지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난다.
"뭐라도 먹어야겠지? 그래야 빨리 낫지"
근처에 있는 식당을 향해 천천히 목발을 짚어나갈때, 그의 뒤에서 쿵 소리가 들렸다. 놀라 뒤를 돌아보니 무엇인가 커다란 보라색이 땅에 널부러져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그에게 다가가니 보라색의 긴 머리카락을 묶는 덩치 큰 남자였다. 딱히 누군가가 달려가는 소리도 안들렸는 데 왜 넘어진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일으켜주기로 한다.
아마데우스는 여성 기준으론 장신이었다. 긴 팔다리를 갖고 있었으나 그 팔다리를 주체하지 못하는지 툭하면 넘어지고 부딪히곤 했다. 전투를 할땐 팔다리를 포함한 온몸에 힘을 줘서인지 넘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그녀는 숙소에 가서 먹을 라면을 사가는 길이었다. 같이 먹을 냉동고기만두 봉지도 손에 들려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스텝이 꼬여 대자로 넘어졌다. 그녀는 중력에 저항하지 않았다. 라면이 컵라면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물을 붓지 않은게 다행이다... 아마데우스는 본인이 넘어진 것에 별 감흥이 없는듯 했다.
"오. 친절하신 신사분..."
그녀는 자신을 일으켜준 신사분께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갑자기 발이 꼬여서 그만..."
아마데우스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니 도와준 사람에겐 은혜를 갚아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신사분께 다시 말을 걸었다.
"신사분의 성함은 무엇입니까? 괜찮으시다면 제 숙소에서 같이 식사하시겠습니까? 아, 제 이름부터 말씀 드려야죠. 저는 아마데우스 타루입니다. 아마데나 타루라고 불러주십시오."
그렇게나 대였는데, 결국 또 다시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나를 보며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수준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를 바라보고 있는 너를 보자면. 결국은 이렇게 될걸.. 알고 있었던걸지도 모른다. 너는 지금 나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아마,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까지 많이 이해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을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애매한 거리감이었기에 나는 너에게 끌렸을지도 모른다. 너도, 그랬으면 좋을거라고 생각하는 만큼.
"그럼 내 남자친구는 나한정 최고의 호구네~."
비교적 밝게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아직 목소리가 돌아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구태여 '남자친구'라는 부분에서는 힘을 줬다. 아까 말했던것처럼 지금 당장 결혼을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나는 단순히 애인으로 안심하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이제 너 말고 누구랑도 안 사귈거니까 호구답게 책임지고 결혼해줘야해."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미소지었다. 약속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겁쟁이니까, 나는 너에게 약속이라는 이름의 보증을 원하는것이다. 그것이 속박이 된다고해도. 그렇기에 나는 다짐하고 있는 너의 찌푸러진 얼굴을 매만졌습니다. 응, 믿을게. 그렇게 말하듯이.
"너야말로 이제 반품은 불가능하니까. 후회해도 안 봐줄거야."
먼저 고백한것도 이쪽이지만 이렇게나 이기적인 소리가 있을까. 나는 작게 웃으며 농담아닌 농담을 마쳤다, 그리고 벽에 기대어 안는 너의 옆에 살포시 앉으며 미소지었고. 너의 감미로운 사랑고백을- 을-?
"읏-"
기껏해야 한두마디로 끝날거라 생각한것이. 생각 이상으로 길어지는 모양새에 나는 다시 얼굴을 붉힐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의 '그래서 사랑해. 존*, 하, 씨*. …많이.' 부분에서는 정말이지 얼굴이 터져나갈거 같았다. 어쩌지 나 이런게 취향이었던걸까? 화끈 화끈한 얼굴을 손부채질하고. 나는 부끄러움을 감추고자 너의 어깨에 부비적 거렸지만. 아마 그것도 잠시. 너의 시선과 말이 눈과 귀에 들어오자 나는.
"..........."
그제서야 다쳤던걸 생각해내고 정신이 그쪽에 닿았고. 그제서야 통증을 다시 느끼며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말았다. 사랑이 무섭다는게 이런걸까. 아까까지만 해도 하나도 안 아팠는데 긴장이 풀리자마자 이 모양이다.
라라 : 얘. 레레. 요전에 너희 팀원 둘이 같이 의무실 왔던데. 분위기가 되게 묘하더라. 레레 : 응? 누구? 무슨 분위기? 라라 : 그 키 크고 검은 머리 여성분이랑 얼굴에 흉터 있는 긴 머리 남자분인데. 연인 같은? 그런 분위기였어. 레레 : 흐응. (히죽) 그렇구나아. 그으렇구나아.
임무에서 돌아오고 벌써 시간이 꽤 지났다. 그때 입은 부상도 거의 다 나았고... 그러니까 지금은 평소 일상으로 돌아오면 된다, 그런 이야기다. 그렇지만 너는 평소와 같은 일상에, 작은 비일상을 한 스푼 얹은 채로 있었다. 지난 번에 배신자라고 불렸던 걸 떠올리면, 아마 다른 사람들이 너에 대해서 어느정도는 짐작을 하고 있으리라. 그럼 한 명 한 명 만나서 직접 이야기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물론 가디언즈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알 수 없었기에 신중해야 할 문제기는 했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휴게실에 앉아, 아이스티를 한 잔 마시며 너는 네 소지품을 정리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서로 부딪혀 짤랑이는 소리를 내는 군번줄이려나. 네 과거를 이보다 정확하게 드러내는 게 어디 있을까. 군번줄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번에 살짝 보았던 다른 군번줄도 생각하게 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면 마냥 이게 물증이 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우려나. 어쨌든 너는 찰랑이는 군번줄을 고이 접어 헝겊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뿐만 아니라 가디언즈임을 증명해 줬던 신분증. 너를 수배했던 전단 등을 헝겊 주머니에 집어넣은 뒤에, 텅 빈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걸 어디다가 두면 좋을까, 역시 몸에 지니는 게 제일이려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휴게실 문을 열어 복도로 나선다, 곰곰히 생각하며 걷는 너는 정작 숨길까 말까 고민하던 것을 두고 나온 것도 까맣게 잊었더랬다. 그런 와중 누군가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인사는 했을 것이다. 무의식간이었겠지만.
라며 내가 새벽에 주방에 들어간지도 8시간 정도, 냄비 3개에 보글보글 끓고 있는 육수를 보면서 나는 고민하고 있었다... [맛을 모르겠어.] 왜 이런걸 생각 못 한걸까... 개조된 후로, 나는 딱히 냄새를 맡을수도 맛을 볼 수도 없는 모습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라멘은 향이랑 맛이 중요한 음식... 지금까지 요리한 경험으로 봤을 때, 최대한 보통 사람 기준에서 맛있도록 만들긴 했지만...
[애초에 만화만 보고 만드는게 잘못이었나?]
머리를 긁적긁적거리며, 앞치마에 넣어뒀던 만화책을 꺼냈다. "사이보그 전사 실버 봄버". 내가 가장 아끼는 작품... 여기에 왠지는 모르겠지만 한 권을 통째로 쓰는 라멘 에피소드가 있었다. 엄청 상세한 내용 덕분에 보고 바로 라멘 만들기를 시도해도 좋을 정도로... 지금 팬들 사이에선 작가가 좀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그린게 아니냔 말도 있었다.
그래도 이거 덕분에 저번에 한정으로 나온 라멘 요리사 실버 봄버 피규어도 살 수 있었으니까 뭐. 끓어대는 냄비를 휘휘 젓다가 조금 먹어본다. 역시 아무 맛도 안 나는데... 오히려 내가 맛이 나면 안 좋은거니까 괜찮나? 누구 한명 잡아다 먹여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머엉- 하게, 호수를 바라보면서, 저 수면처럼 잔잔한 아스텔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머릿속은 복잡다망하나 귀로 들어오는 소리를 차곡차곡 정리해 놓을 틈은 있더란다. 한마디 한마디 들어오는 말을 곱씹으며 다시금 생각을 정리해본다.
복수. 과거 레레시아의 복수심은 그저 폭력적이었고 무차별적이었다. 이 세상이 저주스러웠고 어머니를 죽인 그들과 누명을 씌운 그들과 아무튼 모든게 원망스러웠다. 원망스럽고 원망스러워 피를 끓게 하는 그 감정에 몸을 내던지고 싶었다. 살점 하나에서 뼈 한조각까지 전부 분노의 불길에 불살라버리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 했다. 어머니는 구하지 못 했어도, 남은 가족이 있었으니까. 분노로 눈이 붉어진 그녀에게 매달리던 라라시아를 떨쳐내기엔 미안함과 죄책감이 그러지 못 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그녀가 없었다면 어쩌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않았을까. 과연.
"...우리는 영웅이 아니라..."
아스텔의 얘기 중 나온 그 말을 작게 중얼거렸다. 우리는 영웅이 아니다. 영웅도 아닌데 복수심을 갖는게 잘못인가. 그렇게 묻는다면 단박에 대답할 수 있다. 아니. 당한 것이 있으니 돌려주는 건 당연한거다. 복수심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것을 향할 대상을 똑바로 보는 것이 중요하지.
"오."
미끼도 걸지 않은 낚시바늘에 물고기가 걸려오자 레레시아도 가까이 가서 물고기를 보았다. 헤. 못 생겼어. 주둥이를 뻐끔대는 물고기를 보며 중얼거리고 그가 물고기를 호수로 돌려보내는 것도 지켜본다. 그렇게 가까이 온 김에 옆에 자리를 잡는다. 한결 착잡함이 가신 눈동자가 엷은 파문이 번지는 호수를 바라본다.
"네 얘기를 들으니까 조금은 정리가 되네. 음. 옛날이라면 그냥 다 없애고 싶어했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렇지만 아예 복수를 포기하고 싶지도 않고. 마침 대상은 확실하니 그 쪽으로 향하면 되겠지. 에델바이스의 방침이라면 어긋날 일도 없을거야. 당장은 그 정도로만 생각해야겠다. 응. 이렇게 간단한 걸 괜히 며칠이나 시간 버렸어."
시간낭비 오지게 했네- 자조적이던 좀 전과는 달리 개운한 목소리였다. 반듯하게 앉아서 호수를 구경하던 그녀는 고개를 돌려 아스텔을 보았다. 노란 눈이 깜빡깜빡하더니 그런 질문을 던졌다.
오늘따라 왜 이리 배가 고픈 것인지. 에스티아는 투정 부리는 목소리를 내면서 식당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근데 이건 또 무슨 냄새인건지. 뭔가 맛있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에스티아는 괜히 냄새를 맡으면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주방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싶어 에스티아는 이내 호기심을 가지고 주방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늘 밥을 만드는 이가 오늘은 또 뭘 만들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주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순간...
"......"
순간적으로 에스티아는 문을 다시 쿵 닫았다. 자신은 지금 뭘 본 것일까. 상의를 벗고 있고 앞치마를 하고 있는 제이슨을 본 것 같은데. 내가 너무 피곤한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에스티아는 두 눈을 조용히 비볐다. 응. 그래. 내가 잘못 본 것이 분명해. 그렇게 생각하며 에스티아는 다시 조심스럽게 주방의 문을 열고 그 안을 바라봤다.
"....."
다시 한 번 순간적으로 에스티아는 문을 쿵 닫았다. 뭔가를, 뭔가를 잘못 본 것인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진짜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은 뭘 해야 좋을까. 침을 꿀꺽 삼키면서 에스티아는 침착하게 주방의 밖으로 나서려고 했다. 물론 잡으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 정도의 움직임이었다.
네가 뭔가 잊고 있다는 걸 깨닫는 데까지는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숨길 만한 장소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숨길 물건이 없다는 사실, 너는 식은땀이 흐르는 듯,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에 시선이 마구 흔들린다. 어디에 떨어트렸지? 누군가 찾았을까? 뒤져보지는 않았으려나? 주인을 찾아주려면 안에 담긴 걸 확인하고자 하겠지? 이건... 큰일이 난 건 아닐까? 너는 급하게 몸을 돌려 네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복도 이곳저곳을 눈으로 훑으며 헝겊 주머니를 찾지만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있는 거지? 그렇게 걸어 걸어 도착한 곳은 휴게실, 여기에마저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속이 쓰렸다.
"......"
천천히 문을 여니, 다행스럽게도 헝겊 주머니는 탁자 위에 올라가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소파에 앉은 레이먼드와 눈이 마주치자 너는 순간적으로 숨을 참았다. ...본 건가? 너는 침착하게 휴게실 안으로 들어가, 헝겊 주머니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대로 그만 가지고 나가자. 괜한 말은 하지 말고.
그녀의 말에 아스텔은 그렇게 짧게 대꾸했다. 에델바이스의 방침에 어긋날 일도 없고 충돌할 일도 없다. 복수를 포기하지 않되 대상은 확실하게 할 것이다. 몇 번을 곱씹어도 에델바이스의 방침과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누군가는 좀 더 영웅적인 뭔가를 바랄지도 모르나 이 에델바이스를 만든 로벨리아는 자신들은 영웅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아스텔은 그 말의 의미를 대충은 알고 있었다. 자신들은 역사에 기록될 일도 없고 금전적인 뭔가를 바라고 이런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에델바이스 멤버 중에는 그런 것을 바라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나 그 누구도 그것을 보장해줄 수 없었다. 그저 세븐스의 권리와 자유를 찾기 위한 집단. 단지 그 뿐인 집단이었고 엄연히 세상을 뒤집어 엎어버리려고 하며 U.P.G를 엎어버리려고 하는 집단이었다. 말이 좋아 레지스탕스지. 누군가의 눈엔 테러리스트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다면 좀 더 복수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일이라고 아스텔은 생각했다. 물론 레레시아가 어떻게 생각할진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이내 아스텔은 다시 한 번 낚시줄을 호수로 힘껏 던졌다. 퐁당. 또 다시 찌가 물 속에 가라앉는 것을 확인한 후, 아스텔은 조금 더 낚시바늘을 호수 깊은 곳으로 살며시 밀어넣은 후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내 들려오는 물음.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느꼈으나 낚시를 하고 있기도 했기에 시선을 다른 곳에 주진 못하며 아스텔은 입을 열었다.
"...묻지 말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없다면 말이야. ...도저히 물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라면 나도 굳이 묻진 않지만."
어쨌건 너무나 심각하고 위험해보이는 분위기가 아니면 어지간하면 묻는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아스텔은 반대편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이어 그는 눈동자만 살짝 옆으로 돌려 레레시아를 바라보면서 되물었다.
"...이상해? ...적어도 내 기준에선 교류를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만. ...뭐랄까. 이런 것은 서툴러. ...삶이 삶이라 딱히 동료라던가 그런 것을 깊게 가져본 적이 없다보니."
배~고~파! 라며 소리 지르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벌컥 문을 연 누군가. 아, 저 녀석인가. 인사하려는 차에 문을 닫고 가버린다. ...뭐지? 라고 생각한 차에 다시 열리는 문. 그리고 이어서 그 문이 쾅 닫히기 전에-
[개조인간의 슬픔 로켓 펀치-!!]
재빨리 팔을 발사시켜서 문 사이에 끼워버린다. 그 결과 문 틈 사이에 토막난 기계 팔뚝이 그대로 끼어 있는 기괴한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성큼성큼 다가가서- 그대로 팔을 파악! 끼우고 그녀의 머리를 탁! 잡았다.
[왔구나! 꼬마 대장!]
그리고 얼굴을 들이밀며 크게 웃었다. 그대로 양 겨드랑이에 손을 끼우고, 고양이를 들어올리는것 마냥 들어버린 다음- 주방 안쪽에 의자를 놓고 거기에 앉혔다. 상반신 탈의 상태인 근육질 앞치마 사이보그는 보면 볼수록 말로 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마침 잘 왔구만.] 이라고 말한 나는 작은 맛보기용 접시에 냄비 3개에서 육수를 조금씩 담아서 줬다.
문 사이에 로켓 펀치를 끼우고 팔을 다시 끼운 후에 제 머리를 턱 잡는 그 모습에 에스티아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물론 그녀는 기계나 로봇을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상의를 벗고 앞치마를 입고 있는 제이슨이 자신의 머리를 잡고 있고 자신을 들어올리는 모습에 그녀는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두 눈을 깜빡였다. 어느 순간 의자에 안졓진 후에 육수를 담아서 주는 그 모습에 에스티아는 순간적으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좀 더 두 눈을 깜빡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제이슨. 지금 이거 무슨 상황이야?"
배고파서 식당에 왔더니 얼떨결에 앉혀져서는 뭔지도 모를 국물을 떠서 자신에게 먹으라고 하니 이것이 설마 책에서 본 음식에 독이 들어있는지 확인하는 뭐 그런 것인가 싶어 그녀는 괜히 더 당황하면서 국물을 가만히 바라봤다. 허나 냄새는 꽤 좋은 편이었다. 어라. 이거 생각보다 맛있나?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우선 오른쪽부터 차례대로 돼지, 닭, 어패류 국물을 조금씩 맛봤다. 진하기도 하고, 구수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맑은 맛이 각각 다 달랐다.
"와. 이거 무슨 국물이야? 제이슨. 뭐 만드는 중이야?"
호기심이 조금 강하게 들었는지 그녀는 제이슨을 바라보면서 무슨 요리를 만드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잠시 두 눈을 깜빡이다가 다시 그에게 이야기했다.
"그도 그런데 갑자기 왠 요리야? 지금까지 만드는 모습 못 본 것 같은데. 아닌가? 미처 내가 못 본건가?"
그렇게 말하며 나는 앞치마에서 낡은 만화책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사이보그 전사 실버 봄버 17권"... 팬들이 말하길 "라멘 편". 작가가 미치광이가 되어 버린건지 한권을 통째로 라멘 관련으로 그려 버렸고, 그리고 그게 퀄리티가 아주 좋아서 왠지는 모르겠지만 인기가 많았던... 그런 마의 작품이다.
[이걸 보고 갑자기 땡겨서 해 본거야. 그리고, 난 자주 요리하는 편인데? 너 말야. 가끔 크림새우나 동파육 같은거 나오면 맛있게 먹잖아. 그거 내가 한거다만.]
그 말 대로, 식당에서 "이거 중국식이네" 싶은 음식이 나온 게 있었다면, 대부분은 내가 만든 것이었다. 우육면같은건 반응이 아주 좋았지. 평소엔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간 보기를 부탁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혼자였으니까...
뭐 지금이라도 누가 와준게 다행인가. [그런데 무슨 일이야. 배고파서 밥먹으러 온거냐?] 대충 거칠게 머리를 만져주면서, 나는 국자로 냄비를 휘휘 저었다.
라멘. 아마 동양의 음식이었지? 그다지 먹어본 기억은 없었다. 그냥 지식 정도만 알고 있었지. 그도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세븐스인 이상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아무래도 동양의 음식을 체험하기는 조금 힘든 법이었으니까. 아무튼 낡은 만화책을 제이슨이 보여주자 에스티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사이보그 전사 실버 봄버 17권을 가만히 바라봤다. 와. 나. 이거 아는데! 흥미가 가득한 표정으로 에스티아는 눈을 반짝였다.
"제이슨도 이거 좋아해?! 나도 이거 좋아하는데! 그러고 보니 여기서 아마 라멘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그랬지? 그래서 나도 라멘은 어떤 음식일까. 막 궁금하고 그랬는데!"
괜히 기분좋게 웃으면서 그녀는 두 손을 모아 환한 미소를 보였다. 그러다가 자주 요리를 한다는 말에 그녀는 와. 소리를 내면서 두 눈을 깜빡였다.
"동양류 음식을 자주 만드는구나. 제이슨은 동양에서 온 사람이야?"
여긴 아무래도 서양에 가까웠기에 동양에서 온 사람이 그렇게 흔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에델바이스에도 동양에서 온 이들이 좀 있긴 하지만. 그것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이도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역시 조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어 에스티아는 눈을 반짝였다. 아무튼 거칠게 자신의 머리를 만지자 그녀는 불평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다시 손으로 정리했다.
"머리카락은 함부로 건드는 거 금지야. 엉망이 되어버린단 말이야. 아무튼 배고파서 온 거긴 한데. 이 요리 얼마나 걸려?"
여기까지 왔으니 좀 더 먹는 것이 좋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에스티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답을 기다렸다.
아무 일 없이 가져갈 수는... 없었다. 마치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처럼 있었던 그는, 네가 주머니에 손을 대자마자 말을 걸어왔다. 과거라.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 거라는 약간의 소망이 좌절된 부분에 너는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네 얼굴을 보는 대신 음료를 마셨고, 네 이름을 부르며 텅 빈 깡통을 주머니 옆에 올려놓았다.
"......전부, 보셨습니까?"
배신자라는 말은 이미 지난 번 임무에서 들었으리라, 그러나 그게 너라는 확실한 증거는 이것 뿐. 뭔가 심증을 굳게 붙잡은 듯한 그의 행동에 너는 너에게 향하는 시선을 마주보았다.
"나도 이거 좋아하는데!" 라며 눈을 빛내는 그녀를 보며,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그 만화책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내 방에 전권 놓고 있다구. 피규어랑 애니메이션 비디오도!] 라고. 그걸 준 후에 허리춤에 손을 얹고 자랑하듯 말했다. 뭐 솔직히 말해서 이런 건 딱히 자랑할 건 아니었지만.
[글쎄, 내가 어디서 왔는지 같은건 잘 모르는데... 뭐어 아마 그렇지 않을까.]
고향이라. 딱히 생각나진 않지만 그래도 뭐... 나쁜 곳은 아니었겠지. 일부러 헝크러뜨린 머리카락을 열심히 다시 손질하는 그녀를 보고 속으로 살짝 웃은 뒤, 언제 나와? 라는 말에 흐음. 하며 턱을 매만졌다.
[차슈나 다른 재료는 다 이미 해뒀으니 면만 삶고 내면 되긴 할텐데... 이거 세개중에 뭘로 먹을래?]
아까의 육수가 담겨 있던 냄비를 가리키며 말했다. [간장 소금 된장중에 뭐가 좋아?] 라고도. 솔직히 말하자면 만화에 나온건 야채랑 마늘이랑 차슈를 수북하게 쌓고 돼지비계를 뿌린 지로계라는 녀석이지만... 그건 아무래도 먹기 힘들겠지. 냄비를 휘휘 저으며 생각했다.
좋습니다. 그럼 가시죠! 그녀는 무슨 라면을 끓여줄거냐는 말에 자신이 계획했던 레시피를 읊었다. 음... 국물라면에 계란도 넣고 파도 넣고 냉동만두도 넣어서 든든히 먹을 생각입니다. 아아, 그러고보니 비엔나 소시지가 좀 남았는데 그것도 좀 볶아먹을 생각이고... 한참 생각에 빠져있다보니 주변을 신경 쓸 겨를은 없어보였지만 선우의 질문에 정신을 차린듯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음... 글쎄요. 어떻게 보이시나요? 라고 묻는다면 곤란해지시겠죠?"
아마데우스는 왠지 장난을 치고 싶었지만 그에겐 장난을 치면 안될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29살입니다. 참고로 키는 182cm. 체중은 정상체중! 기타 프로필은 서비스였다.
이야기하다보니 어느새 아마데우스의 집에 도착했다. 그녀는 그를 집으로 들이며 손짓했다. 들어오시지요.
이 마을에 있는 서점에 다 있는 것일까? 일단 여기도 작긴 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긴 하니까 어떻게든 못 구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쳐도 전권을 다? 조금 놀랍다고 생각을 하며 다음에 구경을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에스티아는 초롱초롱 눈을 빛낸 후에 제이슨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다음에 가슴에 호랑이 파츠를 달아줄테니까 보여주면 안돼? 피규어와 비디오!"
정말로 흥미가 있었는지, 어쩌면 제이슨 정도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흥미가 있긴 했는지 그녀는 다시 한 번 눈을 초롱초롱 반짝였다. 만약 그가 허락해준다면 다음에 정말로 호랑이 파츠를 달아줬을테고, 거절한다면 아마 더 물진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세개중에서 뭘로 먹을 거냐고 묻는 그 물음에 에스티아는 잠시 고민했다.
"아까 내가 맨 처음에 먹었던 거. 그리고 간장과 소금 된장? 그 부분은 잘 모르겠는데. 라멘을 그다지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대로 간장이 조금 더 나을 것 같아! 느낌으로는!"
어디까지나 감으로만 골라보겠다는 듯이 에스티아는 제이슨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조금 자신의 판단이 불안해졌는지 그녀는 조심스럽게 제이슨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녀가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말하자, 나도 똑같이 눈을 엄청 빛내며 대답했다. 가슴에 호랑이 얼굴이라니, 좋잖아. 완전 최고라고. 사이보그 전사 실버 봄버에도, 가슴에 호랑이 머리를 단 괴인인 "화이트 타이거"가 나와서 총 12화에 걸친 남자다운 1대1 싸움 끝에 서로를 인정하는 장면이 있었다. 진짜 짱 좋아. 호랑이.
[뭐어 딱히 안 해줘도 너라면 언제든 좋지만. 돈코츠 소유인가...]
손이 능숙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숙성해뒀던 면을 꺼내서-원래는 우육면을 만드려 했지만, 라멘용으로 개조해버렸다.- 가볍게 삶고, 미리 만들어둔 차슈를 잘라내고, 파를 송송송 썬다. 양념해서 삶은 달걀은 반으로 자르고, 그릇에 육수를 가득 담는다. 그 위에 면을 넣고 차슈, 파, 달걀과 멘마랑 숙주나물을 가득 올린다.
"광선포는... 조금 더 기술적인 문제로 일단은 장식으로만 다는 것으로 하면 안될까? 아하하."
그런 광선포보다 그가 사용하는 세븐스가 더 강할 것 같은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에스티아는 살며시 시선을 회피했다. 설마 거기서 광선포가 나올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그래도 조금 기술을 개발해서 만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일단 배터리나 에너지 출력 문제 등을 조금 생각해봐야겠지만 못 만들 것은 없다고 그녀는 스스로 생각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은 기계 하나만큼은 정말로 잘 만들 자신이 있었으니까.
아무튼 그가 요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괜히 휘파람을 살살 불었다. 꽤 전문적으로 잘 만드는구나. 나중에 만드는 법 알려달라고 해볼까. 로벨리아에게도 먹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는 괜히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뭔가 이것저것 조리를 하다가 그릇과 함께 젓가락을 그가 주자 그녀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젓가락을 잡았다.
"......"
당연하지만 서양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녀에게 있어서 젓가락은 조금 서투른 느낌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을 꽉 주게 되고 그렇게 균형을 맞추면서 어떻게든 면발을 집은 후에 그녀는 천천히 한 입 먹었다.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손이 약하게 떨리는 정도였으나 애써 그녀는 그 사실에서 눈을 돌리고 모르는 척 했다.
아무튼 면을 우물우물 먹던 그녀는 작게 감탄을 내뱉으면서 제이슨을 바라보면서 함박미소를 지었다.
"음. 맛있어! 배가 고파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맛있어! 오늘은 이거 낼 생각이야?"
그릇을 건네주고 열심히 젓가락질을 하는 그녀를 보고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물론 짓는 생각만 했지, 딱히 실제로 얼굴 표정이 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느낌이란게 있으니까. 이럴거면 포크를 주는게 나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보았다. 오늘은 이거 낼 생각이야? 라는 말에 문득 생각했다. 그렇구만... 3종류만 내도 애법 잘 나갈테니까...
[취미로 한거긴 했지만, 내볼까. 점심이나 저녁 즈음에?]
의외로 다들 잘 먹어줄수도 있지 않을까. 면이랑 부재료만 하면 되니 만들기도 간단할거고. 음, 좋은가. 대신 젓가락 말고 포크를 내놔야겠지만... 그래도 잘 나가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설: 아무튼 뭔가 쓰긴 했는데 마지막에 꼭 흐지부지하고 그마저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털림 일상: 하려고 하면 현생이 부름 (캡틴일 경우)이벤트 스토리: 열심히 짜긴 하지만 늘 캐들이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에 대충 중요한 애만 ~~한 뒤에 ~는 ~했다 같이 휘갈김 캐: 삐그덕대는데 아무튼 비둘기 모가지 붕붕 날아가는 프로그래머 짤처럼 잘 굴러가는 것 같음. 가끔 의심하면 증거있어? 하고 되묻는 뇌 때문에 반박을 못함 진단: 뇌빼고 돌리면 진단이 뼈 개쎄게 패면서 정신 차리라고 뇌 장착시켜줌
"아니. 아니야.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 에스티아 올리에트. 젓가락도 하나 못 쓰는 그런 여자는 아니야!"
아주 살짝 오기가 생기긴 했는지 그녀는 포크를 이야기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어 그녀는 다시 한 번 젓가락을 조금 어설프게 지은 후에 가만히 그릇을 바라봤다. 이렇게 된 이상... 잠시 생각을 하던 그녀는 젓가락을 딱 붙여서 잡은 후에 마치 포크로 스파게티 면을 돌돌 말듯이 젓가락으로 돌돌 마는 것을 시도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젓가락에 면발은 잘 감기지 않았고 그녀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릇을 바라보다가 제이슨의 눈치를 살짝 살피다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었다.
"국물을 이렇게 뱅글뱅글 돌리면 은근히 재밌는 것도 있는 것 같아!"
물론 어림도 없는 변명이었지만 일단 그런 것이라고 치고 싶었는지 그녀는 다시 젓가락을 어설프게 잡으면서 조금 힘겹게 면발을 입에 넣을 수 있었다. 역시 자신이 살던 곳에서는 이런 젓가락은 잘 없었기에 조금 힘들긴 하다고 생각하며 그냥 자신의 손에 정말로 잘 맞는 젓가락을 하나 만들어서 사용해볼까 고민했다. 물론 그것은 너무 반칙같으니 그녀는 그 생각은 이내 기각시켰다.
"아무튼 로벨리아 언니도 이런 음식이라면 상당히 좋아할거야. 그..나나 로벨리아 언니나 아스텔은 이런 동양 음식은 잘 못 먹는 편에 속했으니까. 아무래도 이 근처에서 동양요리를 취급하는 곳은 잘 없기도 하고. 반대로 동양에서는 여기서 먹는 음식을 잘 취급하지 않겠지? 아마?"
햄버거나 피자나 그런 것은 있겠지만 그 이상의 전문요리는 아무래도 잘 파는 곳이 없지 않을까. 에스티아는 그렇게 예상하며 안 그렇냐는 듯이 제이슨의 생각을 물었다.
[아아- 확실히. 오렌지 치킨이나 몽골리안 비프를 파는 곳은 봤는데. 그런 서양식 동양 요리가 아니라 진짜 동양 요리는 파는 곳은 딱히 본게 없구만. 그리고 젓가락으론 포크처럼 면을 뱅글뱅글하기 힘들어. 포크 줄게.]
쿡쿡 웃으면서 포크를 꺼내 건네주었다. [네가 에스티아 올리에트인게 뭐 어때서. 사람은 잘 하는게 있고 못 하는게 있다고. 잘 하는걸 하면 되는거야.] 라는 왠지 멋진 말도 함께. 뭐 [젓가락 못쓰잖아 포크 써.]란 뜻이지만... 그래도 좋은 말이니까. 포크를 쥐어주고 다시 국자를 잡은 채로 냄비를 휘휘 저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자판기같은건 자주 봤는데 제대로 음식을 내는 가게 자체를 별로 본 기억이 없구만.]
지금 와서 신선한 재료를 구하는게 힘들어서 그런걸까? 뭐 나도 어둠의 루트로 어찌어찌 좋은 돼지뼈나 어패류를 구한거니 말이다. 요즘은 혼합 대체육같은것도 나오고 있고. 톱밥으로 고기를 만든단 소리도 들었고. ...나도 따져보면 그런건가? 문득 생각이 들었지만 금세 고개를 저어서 생각을 내몰았다.
기어이 포크를 잡게 되자 에스티아는 조금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제이슨을 바라봤다. 하지만 자신을 생각해서 해준 행동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포크로 돌돌 마니까 상당히 잘 말린다는 것이 묘하게 더 분하다고 생각을 하면서 그녀는 괜히 말 없이 국물만 후루룩 마셨다. 진한 것이 상당히 좋다고 생각하면서 시무룩한 표정은 다시 원래의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만들고 싶다면 만들어도 되지 않아? 제이슨이 요리를 하면서 살고 싶다면 말이야. 가디언즈를 물리치고 U.P.G의 사상을 바꿔버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서 세븐스에게도 자유와 권리가 돌아온다면 그땐 정말로 뭘해도 상관없을테니까. 물론 범죄나 그런 것은 하면 안되겠지만, 어쨌건 그런 것을 할 수도 있는 자유로운 세상이 온다면 말이야."
그때는 굳이 물건을 사는 것을 허락받지 않아도 되고 비능력자들에게 탄압을 받지 않아도 될 것이고, 적어도 지금의 세븐스들이 살아가는 세상보다는 훨씬 좋은 세상이 될 거라고 에스티아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그 일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설사 가디언즈를 엎어버리고 이 세상을 한 번 엎어버리는데 성공한다고 해도 사람들의 사상이나 서로간에 쌓여있는 감정골은 절대로 작은 것이 아닐테니까.
"어쩌면 10년 이상은 걸릴지도 몰라. 설사 가디언즈를 모두 무찌른다고 해도, 에델바이스가 추구하는 세븐스와 비능력자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세상이 바로 찾아오진 않을테니까."
어쩌면 이 혁명에 성공한 뒤야말로 진정한 싸움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을 하며 에스티아는 한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서서 계속 걸어가야만 하는 현실이 조금은 막막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그녀로서는 아직 확실히 굳어진 건 아니었지만. 그건 시간과 실전이 해결해줄 것이다. 확실한 갈피를 잡았으니 시간을 들여 나아가고 전장에서 투기를 부딪히다보면 목표는 더 단단해질 것이다. 그리고 에벨바이스는 영웅이 되려는 곳이 아니다. 억울히 빼앗긴 것을 되찾으려는 자들이 모인 곳이다. 단지 서로의 이해관계가, 목적의 일부가 상응하기에 한 자리에 모였을 뿐. 그 중 누군가는 영웅을 원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녀는 되어줄 수 없다. 레지스탕스라는 허울 좋은 이름을 쓴 복수귀는 영웅이 될 수 없으니까. 그럴 생각도 없고.
빈 낚시줄이 다시 호수에 드리워지고 레레시아가 질문을 던졌다. 원래 그러냐는 물음에 아스텔은 나름의 대답을 해주었다. 뭐야. 그냥 보통이잖아. 그대로 빤히 응시하던 그녀였기에 아스텔이 눈을 돌리자 시선이 마주친다. 가볍게 입을 다물고 있던 그녀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전-혀. 그게 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이상할거 없지."
간단하게 말하지만 허투로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레레시아는 몸을 슬쩍 기울여 아스텔의 팔에 기대려 한다. 피하거나 막지 않았으면 푹신한 머리카락과 함께 툭 기대었겠지. 그러면서 또 쟁알쟁알 떠들었다.
"너는 뭐 서투르다니 어색하다느니, 전부터 그러는데 그냥 평범해. 보통이라구. 내가 아직 네 다른 무언가를 본 적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너무 의식하지 마- 안 이상해."
네가 이상하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 놈이 이상한 거야. 라고 말하며 그녀는 잠깐이지만 쓴웃음을 지었다. 정작 그녀 자신은 제대로 하고 있지 않으면서 뭘 이렇게 잘난 듯이 떠드는 걸까. 하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는 걸. 조금은 뻔뻔한 기분을 내세워 표정을 정리한다.
"서투르고 그런 것도 여러 사람 만나다보면 익숙해질 테니까- 아. 그러면 지금처럼 머쓱해하는 건 못 보겠네. 그건 좀 아쉽다. 뭐랄까. 나-중의 아스텔은 빈틈이라곤 바늘구멍만큼도 없이 철저할 거 같거든. 로벨리아처럼. 힘이나 그런 걸 떠나서 인간적으로? 그런 느낌?"
그 전에 무슨 일이 생겨 어떤 분기점에서 뭐가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지금 같은 서투름도 어색함도 없는 엄청난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조금은 시덥잖은 소리를 하며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꼬았다.
자신의 팔에 느껴지는 무게감을 느끼면서 아스텔은 몸에 힘을 살짝 주었다. 그야 지금은 낚시대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힘을 적당히 주면 낚시대를 놓치거나 그녀가 넘어지거나 둘 중 하나였다. 힘이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낚시대를 잡고 그녀를 지탱하는 것을 선택하며 아스텔은 다시 낚시대의 움직임을 살폈다.
"...안 불편해? 딱히 내 팔이 푹신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냥 말 그대로 순수한 걱정이었다. 제 몸은 아무래도 근육이 붙어있는 체형이었기에 딱딱했으면 딱딱했지. 기댈 정도로 푹신한 편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며 그렇게 물으며 이내 아스텔은 그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상하지 않고 평범하다는 그 말에 아스텔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이어지는 말에 아스텔은 살며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적어도 그건 아닐 것 같다는 말이었다.
"...싸우는 거나 죽이는 거라면 모를까. 그 이외에는 철저해지진 못할걸. ...굳이 말하면 난 임무나 그런 쪽이 아니면 철저해지고 싶지 않아."
싸우는 것과 죽이는 것. 이 두 개라면 모를까. 자신은 역시 스스로 생각했을 때 아직 미숙한 점이 많은 이였다. 요리도 굽는 것이 아니면 잘 못하는 편이고 그렇다고 뭔가 말을 엄청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붙임성이 좋으냐. 당연히 아니었고, 솔직히 이야기를 하자면 기기를 잘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 생각하니, 이거 인간적으로 괜찮은 것인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아스텔은 저도 모르게 살짝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허나 곧 원래 표정으로 돌리면서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마 지금과 비슷할 거야. 앞으로도. ...물론 숙련도는 조금 나아질지도 모르지만, 나라는 인물은 원래 이런 이라서 말이야. ...싸우는 거와 죽이는 것에 강해진 것은 그걸 모르면 내가 죽어서 필사적인 것 뿐이었으니까."
머쓱한 웃음소리와 함께 목소리를 내면서 낚시대가 흔들리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 아스텔은 살며시 낚시줄을 당기면서 천천히 물고기를 끌어냈다. 이번엔 좀 작은 것이 그다지 먹을 것이 없어보이는 류였다. 색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아스텔은 낚시바늘에서 물고기를 빼낸 후에 있는 힘껏 호수를 향해 던지면서 말했다.
팔짱을 낀 채로 생각했다. 내가 먼 미래에 요리점을 연다... 사람들이 들르고, 옛 동료들도 찾아온다. 웃으면서 식칼을 놀리고 윅을 움직인다.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데 얼마나 많은 일이 있을지도 생각했다. 당장 가디언즈라는 기둥을 잃은 도시는 무너질게 뻔했다. 다시 사회를 세우고 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모두가 함께한단 보장도 없었다.
[그래도 이몸은 불로란 말씀. 네가 아줌마가 될 때까지 이대로 살아있으면, 잘 되지 않겠어?]
농담 섞인 말을 하며 후후 웃었다. 뭐, 안된다는 보장도 없는 일이다. 어떻게든 부닥쳐보고, 힘내서 해결한다. 그 정도로도 충분하겠지. 그렇게 되면 이런 꼬맹이들도 길가에 많이 나오고, 세상도 좀더 밝아지지 않을까. 열심히 포크로 면을 먹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문득 생각나서, 책을 다시 펼쳐본다. 앞치마를 입은 실버 봄버가 국자를 든 채로 말했다. "얼마나 오래 걸리든 상관없어. 모든 라멘이 동등하고 평등해지는 날이 오기까지 힘내면 되는거다!" 뭔 대사인가 싶었지만. 지금이라면 조금 이해가 가는 말이었다.
그대로 [너도 열심히 해서 이몸에게 미각을 느낄 수 있는 머리를 달아달라고.] 라며, 웃으며 말했다.
아주 오래 걸린다고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겠다는 대사를 들으면서 에스티아는 순수하게 멋지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지 않은가. 실제로 지금 완전 낭만적이라고 그녀는 생각했고 절로 두 눈을 초롱초롱 반짝였다. 이어 포크로 면을 다시 돌돌 말아서 먹은 후, 육수를 마시면서 에스티아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 우리는 라멘이 아니라 세븐스지만 말이야. 그리고 미각을 느낄 수 있는 머리? 지금도 가능하긴 하지만, 사실 너무 위험부담이 커서 말이야. 네 뇌를 직접 건드려야 하거든."
그러니까 말 그대로 뇌와 연결을 해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전기 신호를 줘서 맛을 느끼고 있다고 착각하게 하는 방식이라면 지금도 만들 수 있었다. 단 어디까지나 뇌를 직접 건드려야 하니, 자칫 잘못하면 그가 영영 못 깨어날수도 있기에 그녀는 그 방식을 시도할 수 없었다. 혹여나 만약에라도 잘못되면 자신의 손으로 동료를 하나 죽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안전한 방법까지는 10년만 기다려줘. 최대한 안전한 쪽으로 생각해볼테니까! 나는 에스티아 올리에트. 못 만드는 것은 없어! 아자!"
괜히 파이팅 포즈를 취하면서 그녀는 접시에 담겨있는 마지막 면발을 후루룩 먹으면서 티슈를 꺼낸 후에 자신의 입가를 천천히 닦아냈다. 물론 기품있고 예쁘게 닦기보다는 그냥 입가에 묻어있을 국물과 건더기를 치우기 위해 빠르게 닦아낸 느낌에 가까웠다. 이내 그는 티슈를 다시 주머니 속에 집어넣은 후에 그를 바라보면서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259-260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 정도로 아스텔은 좀 많이 어설프고 미숙한 면이 있답니다. 죽이는 것과 싸우는 것을 제외하면 그렇게 막 능력치가 엄청 높고 그러진 않아요. 그래도 기본적인 생활은 할 수 있고 사회를 살아갈 때 필요한 지식은 충분히 있긴 하지만요.
[...갑자기 뇌를 건드린다는 말이 나오니까 느낌이 굉장히 묘한데. 뭐 그래- 10년 정도라면야.]
아자! 하며 파이팅 포즈를 잡는 그녀를 보며 덩달아 나도 오우! 하며 주먹을 쥐는 자세를 취하고, 그대로 서로 주먹을 꽁 부딫혔다. 뭐 가끔은 이런것도 괜찮은가.
...그리고 그릇을 받아준 다음, [아 그래.] 라는 말과 함께 그쪽을 뒤돌아봤다.
[얼마 전에 "사이보그 전사 실버 봄버 ~인베이더의 습격~"을 구했거든. 같이 볼꺼?]
여기서 잠깐! 사이보그 전사 실버 봄버 ~인베이더의 습격~이란!? 사이보그 전사 실버 봄버의 TV판 외전으로, 실버 봄버가 우주에서 온 악의 군단 인베이더즈를 상대로 혈혈단신으로 싸워나가는 이야기다!
화이트 타이거와의 공투나, 실버 봄버의 누이에 관한 이야기 등 팬을 위한 볼거리가 가득하지만 TV에 나왔을 때 이후로 따로 영상매체로 발매되지 않다가... 최근 블루레이로 발매된 것이다! 당연히 팬들에 의한 매진 행진! 그러나 제이슨은 힘으로 구한 것이다... 여기서 힘이란 완력이다.
그녀가 기대자 아스텔이 힘을 주어 버틴다. 덕분에 넘어지지 않고 느슨히 기대었다. 상체만 기울이려니 불편해서 다리도 슬쩍 자세를 바꿔놓자 제법 편안해졌다. 그 와중에 팔이 푹신하지 않아 안 불편하냐는 물음에 프흐. 가늘은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네가 쿠션도 아닌데 푹신할 거라고 생각이나 하겠어? 안 불편해- 든든하니 편하구만."
아. 그렇지만 넘어지게 두면 화낼 거야. 짧게 덧붙인 말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그 뒤에 레레시아가 이런 저런 말을 해주자, 가만히 듣고 있던 아스텔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기댄 그대로 고개를 들어 아스텔을 보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뜨며 그의 얼굴과 스쳐가는 표정을 지켜보았다. 저런 표정도 할 줄 아는구나. 웃을 땐 저렇구나. 줄곧 지켜보던 시선은 물고기 끌어오는 소리에 아래로 향하고, 물 튀기는 소리를 따라 호수로 향했다. 저멀리 퐁당- 하고 수면 위로 자잘하게 파문이 번진다. 잠시 호수를 바라보다가 흐응. 목을 울렸다.
"고맙긴. 별 말도 안 했는데. 일일이 대답해주니까 내가 다 고맙다."
귀찮을 법도 한데 대답을, 그것도 묻지 않은 것까지 술술 해주니 듣는 입장으로는 귀가 호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까는 고민을 들어주고 나름 생각이 정리될 만한 얘기도 해줬으니. 이거 과분해서 밥이라도 한 끼 사야겠다고 반은 진심 담긴 너스레를 떤다.
"그건 그렇고- 너는 지금이나 나중이나 비슷할 거라 했지만, 난 네가 변할 수도 있을거라 생각해. 사람 앞날은 당장 한 걸음 앞도 모르는 거라잖아. 네가, 원해서 그런 실력을 갖게 된게 아닌 것처럼. 내일, 당장 오늘 밤에라도 무슨 일이 생겨서 그 일이 너한테 어떤 영향을 줄 지 어떨지는 모르는 일이야. 언젠가는 너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게 될 수도 있지. 옛날의 나는 그랬는데 하고. 그렇게 생각하면 좀 기대되지 않아? 과연 뭐가 자신을 변하게 할지?"
물론 앞으로 좋은 일만 있진 않겠지만. 일어날 일들 중에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앞을 바라보게 할 수 있는, 힘들어도 다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게 만드는, 자신의 안에 작은 변화의 싹 정도는 틔울 만한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변하는게 두려울 것도 없어. 어디가 어떻게 변하든 내가 나인 건 절대 변하지 않을 테니까 말야."
아, 그렇지만 라라는 좀 변해줬으면 좋겠어. 시스콘 너무 심해. 라며 잠시 툴툴거리나 싶더니 고개를 들어 아스텔을 보곤, 싱긋- 하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꽤 빠르게 매진되는 그런 물건일텐데. 그것을 떠나서 세븐스인 자신들이 구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일텐데. 우연히 여기에 그 상품이 들어왔나? 아니면 다른 곳에 있었나? 혹은 약탈? 어느 쪽이건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에스티아는 크게 흥미를 보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한가지 궁금증이 살짝 떠올랐고 에스티아는 그 궁금증을 입에 담았다.
"제이슨은 그런 작품들을 좋아하는구나. 자신이 로봇이 되어서? 아니면 원래부터 그랬던거야? 아. 이전의 기억은 조금 애매하려나. 그래도 뭔가 성향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로봇이라서 그런 것인지 조금 궁금하긴 해서. 참고로 난 원래 그런 거 좋아했어!"
그런 작품 좋아하는 것이 이상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대꾸하면서 에스티아는 기대감 넘치는 눈빛을 보였다. 그렇다면 언제쯤 가면 좋을까? 잠시 생각을 하다 에스티아는 제이슨에게 다시 이야기했다.
"제이슨은 라멘 만든다고 바쁠테니까 나중에 시간되면 내 연구실로 와서 얘기해줘. 아마 어지간하면 거기에 있을테니까. 없으면... 내가 다른 볼일 보는 중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고."
자신도 개인 시간 정도는 다 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장난스럽게 쿡쿡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그녀의 말에 틀림은 없었다. 자신이라고 좋아서 싸우는 기술이나 죽이는 것에 강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죽고 싶지 않아서 이리저리 계속 이 악물고 익히다보니 이렇게 된 것 뿐이지. 아마 평범한 삶을 살았다면, 하물며 세븐스로 태어나지만 않았다면 자신이 누군가와 싸우거나, 누군가를 죽이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스텔은 생각했다. 필요하다면 망설이지 않고 싸우거나 죽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목숨을 끊는 것이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런 것에 무덤덤해지는 자신이 참으로 낯설었고, 여전히 꺼려지는 행동 중 하나이긴 했다. 단지, 필요하다면 망설이지 않을 뿐.
"...시스콘? ...그래? 그냥 잘 챙겨주는 그런 타입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모르는 것도 있을테니까."
라라시아. 의료진에 속해있는 그녀에 대해서는 아스텔도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스콘이라고 불릴 정도인가? 라고 하면 조금 애매한 느낌이었으나 그렇게 깊게 파고들진 않았다. 그냥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혈육을 잘 챙겨주는 것이겠거니 생각하면서 그는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뭐가 어떻게 변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역시 나보다는 세상이 더 변했으면 좋을 것 같아. ...세상이 정말로 안정되고, 세븐스와 비능력자가 화합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대장에게 이야기해서 장기 휴가라도 받은 후에, 여행이나 떠날까 싶기도 하고."
물론 그런 날이 언제 찾아올진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언젠간 오지 않을까.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하면서 아스텔은 이번에는 낚시대를 굳이 던지진 않았다. 낚시보다는 그녀와 대화하는 것을 택한 모양이었다.
"...너는 어쩌고 싶어? ...정말로 세상이 안정되어서 자유와 권리를 얻게 된다면 말이야. 뭐든지 가능하고,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된다면 말이야."
"그렇구나. 그럼 앞으로는 가끔 해 봐. 생각하는데는 시간만 있으면 되니까 어렵지도 않구."
앞날에 대한 기대는 여럿일수록 좋은거 아니겠냐며. 너무 깊이 파고들지 않게 말한다. 쉬이 건드리면 안될 부분이란 건 어느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법이었다. 다만 손을 대어도 좋을 때가 온다 해도, 그녀가 손을 뻗을지는 미지수지만.
"지금은 각자 위치가 있으니까 티가 안 나서 그래. 여태까지는 나도 그러려니 했는데. 이제는 안 될 것 같아. ...이건 조만간 대화를 좀 해야 할지도."
라라의 시스콘 기질에 대해 그저 지금은 티가 안 날 뿐이라고 레레시아는 얘기해주었다. 얘기라고 해도 한두마디에 끝말은 거의 혼잣말이었지만 말투상 그냥 중얼거린 것 같기도 하다. 그런가보다 하고 넘길 수 있을 만하게, 가벼운 분위기로 대화를 이어간다. 아스텔의 미소를 보곤 이미 미소를 지은 그녀의 표정이 살짝 진해진다. 그대로 눈을 깜빡이며 시선을 호수로 돌리고 그녀가 말했다.
"사람이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변하려 하면 세상도 변한댔어. 세상이란 건 결국 사람이 만드는 거고. 세븐스도 비능력자도 같은 사람이니까. 지금 세상에 저항하고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언젠가는 지금과 다른 세상이 오겠지."
그 다른 세상이 지금보다 나을지 나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더 나은 쪽으로 바뀌길 원하는 사람은 분명 있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에델바이스가 있다. 그 의지가 꺾이지만 않는다면 머지 않은 미래에 더 나은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막연한 나중이 조금은 윤곽이 잡히는 듯 하지 않냐고 말하고, 다리를 모아 팔로 감싸안는다. 조금 더 편하게 아스텔에게 기대어 나중을 묻는 그의 말에 대답한다.
"그런 세상이 와서 다시 내 자유와 권리가 주어진다면- 이라. 글쎄. 뭐하지? 뭐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상상하기가 어렵다. 일단은 그동안 못 하던 걸 하고 싶을 거 같아. 지금보다 더 많은 걸 보고 경험하고, 보통의 여자애처럼 사는- 건 좀 무리일까나. 응. 나도 여행이 좋을 지도. 한 번 세상을 돌아보고나면 왠만큼 하고 싶은 건 다 해볼 거고, 그러면서 이후를 찾을 수 있을 거 같아."
어쩌면 여행이 안 끝날 지도 모르지만? 또다시 농담 같은 어조로 말하고 작은 웃음소리를 낸다. 옆에서나 겨우 들릴만한 작은 소리였다.
그는 씩 웃으며 농담 섞인 소리를 했다. 실없는 말로라도 위로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진심 담긴 말이기도 했다. 남자친구라는 말은 생경하다. 듣고서 조금, 미묘한 기분이 들어서 두 손으로 제 얼굴을 문질러 댔다. 평생 생각도 해본 적 없고 달리 바란 적 역시 없었던 일인데, 사람이 너무 당황하거나 현실성 없는 일을 경험하면 차분해진다고 했던가. 쑥스럽기보다는 오히려 침착해지는 기분이었다. 들뜨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이미 여러 차례 크게 놀란 덕분인지 울렁이는 격동도 참을 만큼은 가라앉았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세세하게 표현할 겨를 없이 그저 편안한 기분으로, 제 두 손을 마주 잡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었다.
"……네 마음 다 받아줄 수 있을 때가 되면, **. 그래야지."
고작해야 사귀자는 말에도 불에 덴 고양이처럼 화드득 도망쳐 버리니 그런 날이 오려면 한참은 멀었고, 그때까지 서로 무사하리란 보장도 없지만, 그는 그렇게 확답했다. 제 스스로 무엇이든 할 자격은 없다고 자학하면서도 내심마저 그렇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들에게도 앞날을 꿈꿀 자격이 있다. 선택할 수 없는 운명으로 인해 고통받았으나 그렇기에 불확실한 미래나마 온전히 갖고자 나아가는 것이다. 험지를 구를지언정 그것은 제 손으로 헤쳐나가길 택한 고난이기에. 설혹 더한 절망이 닥치더라도 후회는 없으리라 확신했다.
"안 봐주면 존* 어쩔 건데." ……쓰다듬 받는 주제에 당당하게 대꾸한 데는 연원이 있었다는 뜻이다.
간질거리는 소리를 한 장본인은 진지하기만 했다. 그저 좋고, 좋아서, 좋아하는 이유를 풀어놓는 데 열중한 나머지 말 한 마디마다 빨개지는 멜피의 얼굴을 다 지나서야 보게 된 것이다. 뒤늦게 얼굴 붉어진 모습을 보고 그는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참 짓궂게도 웃었다. 아무런 걱정 없이 웃던 때는 짧았다. 다시금 통증에 시달리는 멜피를 보자 다시 표정이 굳었다. 그는 우선 멜피를 천천히 일으켜 세워주고선 잠시 머뭇거렸다. 단순히 아픈 사람을 들쳐 메거나 싫다고 고집부리는 걸 윽박질러서 끌고 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는데, 아파서 우는 여자친구는 어떻게 조심스럽게 달래줄지…… 어떻게 해야 좋은지 몰라 속으로 안절부절 못 하다가 결국 결정을 내렸다. 그는 척, 사뭇 엄장한 태도로 손을 내밀었다.
"그, 같이 가서…… 손 잡아줄까. ……아님 *, 안아 줘?"
무슨 병원 가기 싫은 어린애 사탕 주겠다는 소리도 아니고. 그렇지만 그는 진지했다. 제 쪽에서 이런 제안을 했다는 것도 나름 용기 낸 거다.
"어차피 모두에게 말할거라면, 이렇게 흘려도 상관은 없을거라 봐. 아님 일부러 흘려보거나."
어차피 모두에게 알릴 거라면 조금 부주의해도 용서가 될 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결과는 같으니까. 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철저히 자기 자신에 대해서 숨겨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드러나더라도 대충 둘러댈 뻔뻔함도 있어야 하고.
"나? 내가 뭘 숨기는 게 있겠어. 그냥 부주의한게 좀 비슷한거지. 이런거 저런거 까먹고 다니고, 흘리고 다니고 뭐 그런거."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나는 숨기는 것이 없다. 그보단 굳이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지만.
"별 것도 아닌 녀석이 별 것도 아닌 삶을 살아오다가, 그런 변변찮은 삶이 지루해져서 그걸 집어던지려 하는 중일 뿐이지."
그렇기에 만사에 부주의하고, 그냥 지 생각하는 대로만 움직이는 단순무식한 녀석이 이 자리에 앉아있는거다. 헝겊 주머니 앞에 두었던 캔을 들고, 찌그러트린 다음에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경쾌한 금속 소리를 내며 가볍게 들어가자, 오예 하고 김빠지는 환호를 하며 그저 장난을 치고만 있다.
"애초에 보통이라는 것을 우리 세븐스들은 어지간하면 모르지 않을까? 25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그 법 이후로 태어난 이들이라면 더더욱 말이야. 태어날 때부터 이게 당연한 시대였으니까."
자신이 태어나던 해에 만들어진 비능력자 보호 법령. 자신이 아는바 그녀는 자신보다 연하였다. 당연히 그녀 역시 법안이 나온 이후에 태어난 사람이고 자연히 그 보통이라는 것을 체험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이 마을에서야 이것저것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는 하나 역시 그조차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아니며 제한된 장소에서의 자유인 셈이었으니까. 아무튼 결론은 그녀도 여행을 하고 싶다는 모양이었다. 이어 아스텔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자매끼리 같이 가는 거야? 아니면 혼자서 가는 거야? ...어느 쪽이건 운이 좋다면 어딘가에서는 마주칠 수도 있겠네. ...아무튼 그런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라도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야지. 무슨 일이 있어도."
딱히 자신은 목숨을 버리거나 하면서 임무를 수행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을 걸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일은 가급적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아스텔은 그녀가 무게를 실고 있는만큼 몸에 조금 더 힘을 주어서 지탱했다. 그러다가 그는 고개를 살짝 갸웃하면서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나보다는 네가 더 피곤해보이는데. 돌아갈 거면 언제든지 얘기해. 아지트까지는 데려다줄테니까."
다시 하늘을 날아서 가겠지만. 그렇게 말을 하면서 그는 낚시대를 괜히 두 손으로 잡다가 살며시 바늘을 분해했고 낚시대를 땅에 내려놓았다. 이어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을 다시 제대로 찬 후에 호수를 바라보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이 장소는 딱히 비밀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많이 퍼뜨리진 말아줘. ...낚시할때 시끄러우면 잘 안 잡히거든."
그건 그거 나름대로 의심을 사기 좋지 않을까. 아니, 레이먼드의 반응을 생각해 보면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지만서도. 어쨌건, 사실을 전부 이야기할 생각이니 이렇게 흘리게 되더라도 큰 문제는 아니지 않겠느냐- 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인 너는, 딱히 숨기는 건 없다며 대답하는 그를 보다가 멋쩍게 웃는다.
"하하... 그래도 중요한 건 까먹지 않으셨겠죠, 이건 사실 부주의...라고 하기에는 조금 큰 일일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그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만 적어도 자신의 신변에 위험이 될지도 모르는 것들을 잊거나 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하던 너는 이어지는 그의 말에 의아하다는 듯 올려다본다.
"그건... 어째서입니까? 레이먼드 씨."
삶에 의미가 없다고 느낀 건 왜인가, 싶어 묻는 너는 질문을 해놓고서 너무 오지랖인가. 하고 생각해 본다. 이미 늦었지만.
20살 같다는 말에 아무래도 기쁨을 감추긴 힘들었는지 자신도 모르게 픽 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서른을 목전에 둔 나이, 어려보인다고 하면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것이 세성의 법칙이다. 그녀는 선우에게 싱긋 웃으며 말했다. "사회생활 능력, 합격입니다?" 아마데우스는 선우가 키에 대해 말하자 입을 살짝 삐죽였다.
"어렸을땐 이 키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죠. 전봇대다, 기린이다, 팔척귀신이다 등등... 그러는 선우씨도 저랑 비슷해보이는걸 보니 큰 편이신걸요?"
프로필상 아마데우스가 2cm 크지만 밀도(?)만 따지면 선우가 더 건장해보일 것이다. 아마데우스는 신발을 벗느냐는 선우의 물음에 신발을 벗는 대신 슬리퍼를 신는다고 답하며 신발장의 슬리퍼를 건넸다. 음, 이제 장난은 칠만큼 쳤으니까 비밀(?)을 밝혀볼까.
어지간한 세븐스들은 보통이라는 걸 걸 모른다. 아스텔의 말대로였다. 레레시아가 태어났을 땐 이미 지긋지긋한 법령이 만연하는 시기였기에 제대로 밖에서 무언가 해본 적이 없었다. 과거를 생각해보면 언제나 작은 방에 하늘이 보이는 창문 하나가 전부였다. 혼자가 아니었던게 그나마 위안이었지. 그리고 어머니의 존재도.
"보통이라는 거. 해본 건 없어도, 들은 건 많은데. 들은 것도 해볼 수 있을까 모르겠다."
조금 멍하게 중얼거리고 호수인지 그 너머인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곧 아스텔의 목소리가 들리자 도로록 굴러와 그를 보았지만.
"간다면 혼자일 거야. 흐. 운이 좋으면이라. 당장에만 해도 나중에 있을 운까지 다 끌어다가 살아남는데 써야 할 판인데."
그녀도 허투로 목숨을 내던지거나 할 건 아니지만, 당장 최근의 임무만 생각해도 나중의 운 같은 건 사치스러운 가정이다. 살아남을려면 나중이고 뭐고 매번 운과 요행을 다 끌어다 써야 할 거라며 생각만으로도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작게 가로젓는다. 그렇게 쓰고도 달리 쓸 수 있는 운이 남는다면, 나중이 아니라-
"안 피곤해- 그냥 좀 느긋한거지. 그보다 너는 낚시 더 안 하게? 내가 방해였나?"
낚시대를 내려놓길래 그녀가 방해여서 더 안 하는가 싶어 물어본다. 방해였다면 먼저 말을 그렇게 했을 거 같지만. 허리의 검을 갈무리하는 걸 보고 괜히 자켓의 허리 부근을 쓸어내려본다. 작게 잘그락대는 허리장식 너머로 가볍게 눌리는 느낌이 장갑 너머로 희미하게 스쳐간다.
"어어. 어차피 기지에서 대화하는 사람도 거의 없어."
호수의 위치를 많이 퍼뜨리지 말란 말에 알겠다며 대답을 하고. 팔로 감싼 무릎을 좀 더 가까이 당긴다. 그대로 조용히 호수를 바라보다가 툭 하니 말을 꺼낸다.
"저기. 아스텔."
너는- 이라고 운을 떼는데 그 순간 낮은 바람이 불어온다. 레레시아는 말을 멈추고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아스텔을 휘감지 않게 고개를 돌리고 한 손으로 모아 붙잡았다. 잠시 동안, 주변 나무들로부터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퍼진다. 호수의 수면에도 물결이 슬그머니 일었다가 서서히 사라져간다. 겨우 잠잠해지자 다시 앞을 향해 고개를 돌린 레레시아가 그렇게 말했다.
"방금 바람 때문에 무슨 말 하려고 했는지 까먹었어. 뭐 별거 아니었겠지."
머리만 산발이 됐네. 작게 중얼거리며 손으로 빗질을 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애초에 낚시하러 나온 게 아니야. 그냥 나온 김에 던져본거지. ...정말로 낚시를 할 것 같으면 아이스박스도 하나 들고 나왔을걸."
방해가 아니라는 의미로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냥 호수에 나왔으니까 별 생각없이 가지고 온 거지. 딱히 물고기를 잡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 뿐이라고 선을 그어버리면서 이야기를 하는 그 목소리는 일부러 지어내는 것도 아니었고 지금 이 상황을 귀찮게 여기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굳이 알려주지 않겠다는 의미의 말을 듣자 아스텔은 안심했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물론 다른 이들에게 이 장소가 비밀인 것은 아니었으나 낚시를 하러 나왔을 때 너무 많은 사람이 나와서 시끌벅적하게 떠들면 물고기가 도망치기 때문에 여러모로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하늘을 날아서 다른 장소를 찾으면 그만이지만, 가능하면 그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이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아스텔의 눈동자가 잠시 레레시아를 향했다. 바람 소리가 조용히 울리는 것을 바라보며 아스텔은 살며시 손을 옆으로 가볍게 휘둘렀다. 바람의 방향을 살짝 조절한 것이었다. 너무 강하게 지나치지 않게. 하지만 적당한 시원함을 유지하게. 이내 돌리는 그녀의 말에 그는 눈을 감고 잠시 생각을 하다 짧게 한마디를 남겼다.
"...싱겁긴."
하긴 그녀의 말대로 바람 조금 불었다가 말을 하려다가 만 것이라면 중요한 것은 아니겠고, 설사 중요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것은 아무리 그래도 그녀가 일부러 끊은 것이었다. 그 정도 눈치는 없는 것이 아니었으나 그는 굳이 입을 열어 말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그렇다면 생각나면 얘기해줘. 굳이 내 이름을 부를 정도였다면, 나에게 뭔가를 말하고 싶었거나 묻고 싶었거나 둘 중 하나겠지."
물론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 답을 할지, 하지 않을지는 알 수 없었다. 일단 들어봐야 알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다 그는 한가지 사실은 공감을 표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모든 운을 다 쏟아부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수준인긴 하지. ...너도 느껴봤을테지? 진짜 보검의 힘이라는 것을 말이야. ...못 이길 정도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압승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야. ...아마 저들도 이제 본격적으로 우릴 경계시하게 되겠지."
상대가 그런 아픈 추억을 가지고 있고 선우는 그걸 건드렸다. 그러니 정중하게 사과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의문이 들었다. 남자 키 182는 물론 큰 키다. 그러나 이상한만큼의 큰 키는 아니다. 모델이나 운동 선수 중에서 이정도 키는 평균이거나 그보다 아래니까.
"저는 평균 키에요."
175cm니 한 뼘 정도 작은 키다.
다행히 신발 신고 들어가는 집은 아닌 것 같았다. 아마데가 건네 준 슬리퍼를 신고 집으로 들어간다.
생 억지를 부려서 돕게 만드는 건데, 진심으로 임하는 당신의 태도를 보곤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로. 눈동자는 머리를 묶어올리는 당신에게 머물다가도 곧내 불 위에 올려진 냄비에 집중한다.
“매사에 진심인 편?”
본인은 요리할때 손만 씻고 시작하는 편이라 묻는 것이다. “사과는 큼직하게 깍둑썰어 줘. 얇게 자르면.” 애매한 곳에서 갈무리 지어진 문장. 하고 싶었던 말은 ‘얇게 자르면 과즙이 빠져서 맛 없어진다’ 였다만, 곱씹어 생각해보니 이건 누구나 다 알 만한 상식인것 같아 뒤늦게 말을 아끼는 것이다.
“사과파이 필링은 사과가 씹히는걸 좋아하나? 아니면 애플소스 비슷한 식감?”
그리고 다시 시작된 질문. 하지만 당신이 답을 뭐라 하든 이 분은 냄비 뚜껑을 닫아버린걸 보아하니 답은 정해져 있던 모양이다… 조금 의외라는 듯한 표정의 당신을 보면 “뭐, 왜.”라며 퉁명스러운 말로 넘겨버린다.
“몇개 정도 더 구울까.” 크러스트에 쓸 반죽이 충분한가, 냉장고를 열어 확인해 본다. 적당히 있다는 것을 확인해 보면 몸을 틀고 고개를 돌려 당신을 가만 쳐다보다 입을 연다.
“질문을 바꾸지, 넌 몇명한테 신세졌어?”
답이 들려오기도 전에 자신은 요전 임무에서 신세 진게 좀 많았다고 짧은 우스갯 소리를 한다. 냉장고에서 꺼낸 레몬 즙 보틀을 들고선 냄비 뚜껑을 연다. 파이는 달콤하니 좋아한다, 그런 답을 들었으니 필링이 든 냄비에 설탕을 네 스푼 정도 더 넣고선, 레몬 즙도 적당히 넣는다. 나오다가 막혔는지 보틀을 흔들어 보다가도, 아무겄도 나오지 않자 그 통은 대충 옆에다 세워 놓는다.
“임무에서 크게 와닿은 건 없었나?” “예의상 묻는 거니까, 답하기 싫으면 말고.”
거짓말이다. 이 인간이 예의를 그렇게 중요시 할 리 없다. 그저 순전히, 이 질문에 따른 당신의 반응이 자신이 당신이란 인물에 내린 결론과 얼마나 맞아 떨어질지 보고 싶은 것이다. 만난 시간도 굉장히 짧으니 오차는 당연시 하고 있다만, 그래도 그걸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싶은 마음이다.
맛있는거 많이 먹이고 애지중지할거라며, 나는 너를 향해 웃어보였다. 너는 아직, 아마도 부끄러워 하는듯 했지만. 그것이 또 귀여워 보였고. 나도 말이 경험은 많긴해도. 실제로는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적도 없기에 상관없었다. 굳이 여기서 전 남친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으니 더 말하진 않겠지만. 아마 네가 뭘 해도 그 놈들보단 나을거라.. 하지만 경각심을 (?) 위해 알려주진 않을 셈이었다.
"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으니까.. 나도 천천히 기다릴게."
무엇보다.. 나도 아직 마음의 준비가 다 된게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서로서로 잘 어울리는게 이런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자신도 모르게 작게 웃어버린 뒤 너를 바라봤다. 쓰다듬을 받고 있으면서 쎈 말을 하고 있는 네가 보인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또 사랑스러워서. 조금 장난스럽게 너를 바라보며 말했다.
"울거야."
나는 아주 당당하고도, 진지하게 말했다. "네 앞에서 엄청 서럽게 울거야" 안봐주면 어쩔거냐는 물음의 대답. 내가 네 앞에서 아주 서럽게 울면 네가 참을 수 있을까! 라며 말하는 투가 협박인지 애매할 수준이긴 하지만. 아마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기면 진짜 그러지 않을까? 싶기는 한다. 그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얼굴의 열은 가라앉았고. 대신에 팔의 통증은 강해지는 시기. 나는 맺힌 눈물을 닦으며 너의 손을 잡고서 기댔다.
"....... 아니;"
다만 네가 엄장하기까지 한 태도로 말한 대사에. 나는 정색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나를 아이로 보는걸까. 그냥 단순히 같이 가서 옆에 있어주기만 하면 괜찮다고. 그렇게 말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상당히 아프긴 하지만. 그렇다고 죽을 정도는 또 아니었기에 세균 같은걸 염두해 그림자로 다친 팔을 덮어둔다.
"가면 엄청 혼나겠지.."
그야 혼자서 얼음을 녹이고 방치해뒀으니 ㅡ 물론 고백하다가 이렇게 된거지만 ㅡ 아마도.. 혼날거 같았다.
낚시대를 드리우면 그게 낚시를 하는게 아닌가 싶지만. 하는 사람에겐 잡고 안 잡고의 차이가 있나보다. 어쨌든 방해가 아니었던 듯 하니 그녀도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라면 됐지 뭐. 호수에 대해서도 방금 한 대답이면 되는거 같으니 더 말을 얹지 않는다. 더 말할 구석도 없고.
"아 깜빡할 수도 있지."
레레시아가 먼저 불러놓고서 바람을 핑계로 말을 얼버무린 걸 아스텔이 모를 거 같진 않았다. 만약 뭐였냐고 한 마디라도 물었다면 오늘이 날인가보다 하고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싱겁다 말하고 덧붙인 말도 생각나면, 이었다. 생각나면- 이라. 애초에 까먹은게 아니니 생각해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지만. 괜히 툭 내뱉는다.
"뭐어 그게 꼭 너한테 할 말은 아니었을 수도 있으니까. 생각나면 고민 좀 해보고."
이름이야 불렀다 안 불렀다 하는거고. 약간 툴툴대는 말투지만 딱히 감정이 실리지는 않았다. 옆으로 힐끗 스치는 눈초리도 감정적인 건 아니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입가에서 멈춘 손 너머로 먹먹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진짜의 힘이라. 그 때 내가 보고 느낀게 전부일까 싶기도 해. 확실히 처치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은 있었지만. 그 순간을 방해받지 않았어도 아마 무리였을 거란 생각이 자꾸 들더라구. 숨겨둔 수가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정보의 격차도 분명히 보이고. 그런 마당에 경계까지 하면, 진짜 매 임무마다 목숨이 아홉개여도 모자라겠다. 갑자기 눈 앞이 캄캄하네."
으아악 어둡다- 라고 하는데. 그야 다시 손으로 얼굴을 가렸으니 물리적으로 눈 앞이 캄캄해지겠지. 재차 쓸어내리듯 느릿느릿 손을 내린 레레시아는 고개를 비뚝 기울여 아스텔을 보았다. 처음과 비슷하지만 맹한 금빛 눈이 깜빡거린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문제가 있어."
뭘 그리 빤히 보나 싶더니, 하는 말이 그렇다.
"슬슬 돌아가긴 가야겠는데. 가기가 싫네. 일어나기 귀찮아. 이거 어쩌지."
하는 말이 무슨 어린애 땡깡도 아니고. 듣는 사람의 어이를 흔쾌히 저세상으로 보낼 법한 말을 서슴없이 하곤 어떡하지이. 그러고 있는다. 슬그머니 늘어지려는 걸 보면 뭔 헛소리냐며 두고 가도 전혀 미안한 마음은 안 들 지도.
"정말로 해야 할 말이었다면 반드시 말했을 거 아니야. ...너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 회식 때 밖에서 잠깐 이야기를 한 것을 보면 그녀는 다른 이에게 꼭 해야 하는 말이라면 말하는 성격일 것이라고 아스텔은 판단했다. 즉,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굳이 말하지 않았따는 것은 지금 당장 꼭 해야 하는 말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언젠가 말할 것이 있으면 자신에게 말을 하겠지. 물론 궁금한 것은 있었으나 어차피 지금 묻는다고 해도 답하지 않을 것은 어느 정도 그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 정도로 말을 끝내기로 하며 아스텔은 곧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 위험한 일을 하라고 만든 것이 제 0 특수부대야. ...같이 임무를 나가게 된다면 서포트 정도는 해줄게."
허나 죽지 않게 모든 것을 다 한다는 보장은 못해준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아스텔은 가만히 호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다른 문제가 있다는 그 말에 그는 뭐냐는 듯이 레레시아를 바라봤다. 이내 가기가 싫다. 일어나기가 귀찮다. 어쩌면 좋냐라는 그 말에 아스텔은 가만히 고개를 갸웃했다. 딱히 문제는 없다는 듯이 그는 숨을 약하게 내뱉은 후에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걷지 않아도 상관없는데. ...내 세븐스를 이용해서 날아가면 그만이니까. 바람으로 사람을 띄우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나에겐."
자신의 세븐스. 에어로는 공기의 흐름을 지배하는 세븐스. 말 그대로 사람을 날려버리는 바람 정도야 아주 손쉽게 만들어버릴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아스텔은 레레시아를 바라봤다. 하지만 일어나기가 귀찮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잠시 생각을 하던 그는 실례한다는 말을 하면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선 후에 그녀를 안아들듯이 들어올리려고 했다.
"...일어나긴 귀찮고, 돌아가기는 해야겠다면 이 방법밖에는 없어. 싫으면 그 귀찮음을 이겨내고 일어나는 수밖엔 없고."
어려울 것이 뭐 있을까. 움직이지 못하는 동료를 챙겨서 데려가는 것은 엄연히 작전에서 몇 번이고 일어나는 일이었다. 아무튼 그녀가 거부한다면 하진 않겠지만 거부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녀를 안아올리면서 자신의 세븐스를 써서 공중으로 떠오르려고 했을 것이다.
>>375 가디언즈의 보검 세븐스 7명이야 이미 다 짜여있어요. 스킬도 대략적으로는 말이에요. 물론 해당 능력과 같은 능력이 나온다고 한다면 다른 후보군으로 교체하면 되는 일이고.. 만약 교체가 힘든 시점까지 오면 어쩔 수 없이 두 능력이 비슷한 계열인 것으로 치고 내보낼 생각이에요.
"죄송할 필요는 없어요. 전 이걸 즐기고 있으니까요. 재밌지 않나요? 아, 저만 칠 수 있는 장난이니 선우씨는 재밌지 않겠군요..."
어쨌든 이런 상황을 즐긴다는건 사실이었다. 실제로 아마데우스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자신을 남성이라고 착각하면 그 착각을 즐겼다. 어찌보면 농락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녀는 농락보다는 하나의 장난으로 여겼다. 다정한 것과는 별개로 장난기 넘쳤던 아마데우스는 장난치는 것을 자신의 의무마냥 생각하는듯 했다.
얼버무린 건 넘어갔으면서 왜 그 부분은 콕 집어내는 걸까. 잠시지만 그녀의 눈이 도끼 모양이 되고, 비죽 튀어나온 입이 중얼거린다.
"그걸 눈치채다니. 이래서 눈치 빠른 사람은..."
투덜투덜. 궁시렁궁시렁. 알아듣기 어려운 중얼거림 뒤로 팩 하니 덧붙인다. 아무튼 나중이라고.
"...그래. 뭐. 없는 것보단 낫겠다."
추후에 대한 얘기에서 앞으로 있을 적 간부와의 접전이 막막하다며 솔직하게 우는 소리를 하니, 아스텔은 그런 일을 하라고 만든게 특수부대라고 한다. 으이이. 그녀의 눈이 또 도끼가 되려다가 풀린다. 같이 나가게 되면 서포트는 해주겠다는 말 덕분이다. 서포트 정도지만, 그게 어디야. 전력적으로 아슬아슬한 지금에 조금이라도 승산이 생기는 쪽이 좋은 거지.
가기 싫다. 일어나기 귀찮다. 라는 그녀의 땡깡은 사실 그냥 한 번 해본 거라서, 됐으니까 일어나라고 하면 순순히 일어날 생각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다 큰 몸뚱이를 어떻게 해달라는 소리는 안 할 거였는데.
"어... 어?"
아스텔이 그녀를 보는 눈이 무슨 문제가 있냐는 눈빛이라 뭐지 싶었다. 그의 세븐스로 날아가면 된다고, 바람으로 사람 띄우는게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는 말에 머릿속에 경종이 울린다. 이, 이대로 띄워서 데려가려는 건가! 그건 아까보다 무서울 거 같은, 아 아니 무섭지는 않지만 현기증이 아무튼 그게 그럴 거 같은데! 그녀의 머리 안에서만 말이 왱알왱알 도는 사이 옆에서는 아스텔이 일어나서 그녀를 들어올렸다. 세븐스가 아니라 안아들듯이, 였다.
"그, 어, 어... 그럼 부탁 좀 할게."
몸이 훅 들리자 머릿속이 순식간에 조용해지며 이 상황을 거부할 틈이 없- 지는 않았지만. 굳이 이렇게 해주겠다는데 거부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레레시아는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태연한 척 부탁 좀 하겠다고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알아올려진 채로 있다가 아스텔이 공중으로 떠오르면 힉. 소리를 내며 붙잡았을 것이다. 붙잡으면서 기댄 것 같다면 기분 탓이다. 아마도.
딱 거기까지만이라는 조건을 이야기하며 아스텔은 자신의 낚시대까지 확실하게 챙기고서 자신의 세븐스를 사용했다. 몸이 붕 떠오르는가 싶더니, 바람이 크게 불어 상승기류가 생성되자 그는 단번에 뛰어올라 자신의 몸을 확실하게 공중 위로 띄웠다. 그 상태에서 바람을 컨트롤 하니, 그야말로 아무 것도 밟히지 않는 공기 위를 바람으로 날아가는 모습이었다. 너무 빠르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 않게 어느 정도 조절하다 그녀가 소리를 내면서 붙잡자 아스텔은 두 눈을 멀뚱거리면서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역시 무서워하는 것이 맞는 것 같은데. ...이해해. 익숙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그게 일반적일테니까."
자신이야 이 세븐스를 태어날 때부터 쭉 가지고 있었고, 계속 사용을 했기에 익숙했으나 다른 이들은 그런 것이 아닐테니 당연하다고 아스텔은 생각했다. 자신은 굳이 말하면 바람에 날려가는 거지. 자신이 직접 나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발 밑의 허공이 그대로 느껴지고 있었고, 쭉 이어지는 숲길을 보면서 아찔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허나 조금의 미스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는 세븐스를 계속해서 조정하여 바람의 흐름을 조정했다. 레레시아의 머리카락을 아주 살짝 스쳐지나갔을지도 모르고, 옷깃을 살며시 간지럽히듯 날아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제법 근육이 있었던만큼 아스텔은 레레시아를 힘들지 않게 안은 상태로 비행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찔한 높이. 뭔가 안정적이라기보다는 그야말로 바람에 휘말려 날아간다는 아슬아슬함이 쭉 이어졌고 이내 아스텔은 목적지에 도착하자 조심스럽게 하강기류를 만들어서 천천히 자신의 몸을 아래로 착지시켰다. 땅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땅으로 내려줬다. 맨 처음 출발했던 바로 그 슈퍼마켓. 정확히는 지하 아지트로 들어가기 위한 통로의 입구에 도착한 후, 아스텔은 두 팔을 쭉 뻗은 후에 작게 하품을 내뱉었다.
"...도착했어. ...여기서부터는 네 발로 들어가. ...오늘 하루 뭐했는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수고했고. ...고민이건 다른 무엇이건 말이야."
"네? 아, 진심...이랄까,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닌 걸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집중해야 하거든요."
뛰어난 자질을 지녔거나 아예 습관이 되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집중해야만 한다. 일을 잘못했다가는 무슨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모르는 노릇이니. 최대한 할 수 있는 전부를 하기 위해서는 진심을 다하는 게 필수겠지. 너는 뭔가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겠구나 싶어 조금 부끄러운 듯 웃었다. 너무 열심히 하는 사람처럼 보이려나.
"네, 너무 잘게 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뒤엣말이 궁금하긴 했지만, 뭔가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겠지. 파이를 구워본 적은 없었기에 적어도 너보다는 그 쪽이 전문가에 가까울 테니 아마 그 말은 옳으리라 생각하며 너는 사과를 큼직하게 썰었다. 그러다가 이어서 들려오는 질문에는 칼질을 하는 동안 시선을 돌릴 수는 없었으므로, 잠시 칼질을 멈춘다.
"굳이 따지자면... 애플소스 쪽이겠네요. 사실 사과가 온전히 씹히는 파이는 먹어본 적이 없어서요."
살짝 웃으며 그렇게 대답한 뒤, 이미 닫힌 냄비 뚜껑을 보고는 딱히 이번에 반영되는 건 아니려나. 생각하며 다시금 손에 쥔 칼로 시선을 옮겼다. 그 와중에 자신의 시선에 신경이 쓰인 건지, 아니면 그냥... 대화를 잇는 나름의 방식인지는 모르지만 퉁명스럽게 넘겨버리는 그의 모습에 너는 뭐랄까, 인간성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신세 진 사람들... 전부 말씀드리기에는 파이를 만들 반죽의 양이 모자랄 것 같은데요."
직접적으로 신세를 진 사람! 이라고 덧붙인다면야 하나하나 셀 수는 있겠지만, 이미 에델바에스에 머무르는 시점에서 네가 신세지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라고 적어도 너는 생각하는 모양새다. 그가 이런 부분까지 짐작할지는 모르겠지마는.
"임무 말씀이신가요, 글쎄요. 와닿는 거라... 적어도 지금의 나는, 에델바이스를 찾아온 걸 후회하지는 않는구나. 싶었네요."
그리고 너무 막 달려들면 안 될 것 같다는 것도요. 마지막에 물줄기에 휩쓸려서 몸이 찢기는 줄 알았다고 덧붙이며, 너는 곧 사과를 전부 썰어냈다. 그리곤 도마 째로 들고 어느새 열려서 달콤한 향기를 마구 흩뿌리는 냄비에 사과를 쏟는다.
"향기가 좋네요, 달콤한 향기..."
사과를 쏟아낸 도마를 든 채 뒤로 물러서면서, 코를 간질이는 달콤한 향을 실컷 맡는다. 자연스럽게 지어지는 미소는 덤이다.
승우: 029 단 것을 잘 먹나요? 그냥저냥 보통 정도? 누가 주면 먹는데 딱히 찾아서 먹지는 않는... 단 것보단 담백한 걸 조금 더 좋아하긴 해~
043 이벤트(파티, 기념일 등)에 대한 생각 하면 재밌긴 한데 내가 챙겨가면서까지 열심히 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사람이 너무 많고 왁자지껄하면 좀 불편하다! 그치만 누가 같이 하자고 하면 쉬운남자라서 맞춰줌!
정도?
245 질투심은 어느정도? 그... 없다... 너무 심각하게 없다... 자기가 좋아하거나 의지하는 상대가 뭘 하든간에 그건 상대 자유고... 이런 쪽으로 둔해서 만약 질투심이 든다고 해도 그게 질투인 걸 모름
뭐가 좀 언짢은데... 뭐지? 흠...🤔 짜증나는 김에 훈련이나 해야지 ←이러고 (의도치 않지만)건전하게 해소해 버리거나 아니면 질투를 유발한 대상한테 '저 새* 하는 꼬라지를 보니까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쁘다... 저 *** 나한테 잘못한 거 있나?'하고 의심을 품음...🤦🏻♀️
질문을 연애 측면에 한정하더라도... 일단 제일 큰 이유로 멜피를 믿기도 하고? 다른 이유로는 애인이 다른 사람 깻잎을 떼주거나 지퍼를 올려주거나 신발끈을 묶어준다 쳐도 애초에 이쪽으로는 너무 무지하기 때문에() 질투심이 들 만한 상황이라는 개념이 없음.... '이열 역시 존* 친절해👍🏻'정도 생각밖에 안할듯 아이고 이자식아🤦🏻♀️🤦🏻♀️🤦🏻♀️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646172
어제자 진단이랑 같이 갱신~!!!! 답레는 곧 자러 갈 예정이라 내일 줄 수 있을 것 같아 :3 다들 좋은 새벽이라구~!!!
>>392 단 것보다는 담백한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누가 같이 가자고 하면 파티에도 잘 참여한다. 그 와중에 승우는 질투심이 거의 없군요. 마음이 상당히 넓어!! 에스티아는 지퍼를 올려주거나 신발끈을 묶어주는 것을 보는 순간, 바로 싸하게 도끼눈으로 바라볼텐데. (옆눈)
Q.그럼 로벨리아와 아스텔은요? A.로벨리아 - 아예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자신이 먼저 해버린다. A.아스텔 - 뭔가 모르겠는데 묘하게 기분이 좋진 않음. 그래서 결국 자신이 셀프로 자신의 신발끈을 풀어버림 -> 결국 뻘짓이었기에 다시 묶기 루트
칼같이 아지트 앞까지만 이라는 조건을 다는 아스텔에게 괜히 투덜대었다. 지금 이것도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구만. 괜시리 억울하다. 흥이다. 흥이야. 그런 뚱함도 아스텔이 바람을 타고 떠오르자 사라진다. 반사적으로 붙잡는 그녀를 보고 그가 한 말에 작게 칫. 혀를 찼다.
"그런 거 일일히 말하는 거 참 얄밉네. 서툴다면서 할 말은 다 한다니까."
하긴, 스스로가 뭐에 어색하다느니 서툴다느니 말하기도 하는데 보이는 걸 그냥 말하는 건 또 뭐가 어려울까 싶다. 그래도 얄미운 건 얄미운 거니까. 가는 내내 제법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저 아래로 또다시 숲과 민가는 지나가는 사이. 슬쩍 시선을 위로 해서 아스텔의 얼굴을 보고, 들킬새라 재빨리 눈을 내리깐다. 아래를 보기엔 그녀의 간은 매우 싱싱했기에 엄두도 내지 않았다. 간간히 가늘게 흔들리는 연보라색 머리칼을 보며 오는 내내 얌전했다. 그래. 이제는 인정 해야겠다. 솔직히 무서웠다. 아무리 아스텔이 바람의 조정을 잘 해주고 그의 팔이 잘 받쳐주고 있어도 몸이 허공에 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지 않나. 그런데 키 차이도 크게 안 나는 그녀를 잘도 안고 간다. 딱히 바람으로 무게를 더는 것 같지도 않은데. 아까 기댈 때도 그렇고. 생각보다 더 다부진 체형인가보다. 한 번쯤은 잘 꾸민 모습이 보고 싶을 지도- 라고 들던 생각은 가늘게 스치는 바람이 스르륵 쓸어가버린다. 이, 일단 내리면 다시 생각하자...
상승할 때도 그랬지만 하강할 때도 그 몸이 푸욱 꺼지는 감각이 생소하고 낯설어서 잠시 굳어있었다. 멍하던 몸의 감각은 신발 바닥이 땅에 닿자 비로소 정상으로 돌아온다. 아스텔이 그녀를 내려주고, 정신을 차리기까지 짧은 시간이 지난 후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긴장이 풀렸다. 긴장과 함께 다리도 풀릴- 뻔 했으나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고. 몇 번 발을 굴러 지상에 섰음을 완전히 체감하고나서 아스텔을 돌아보았다.
"안 그래도 내 발로 갈 거거든. 능청스러운 건지 맹한 건지 모르겠어. 아무튼."
바로 들어가지 않고 발끝으로 애꿎은 바닥을 두드리며 궁시렁거린다. 딱 봐도 할 말이 있는데 머뭇대는 것 같더니, 손을 뻗어 아스텔의 소매 한 쪽을 잡는다. 잡고도 가만히 있다가 불쑥 말을 꺼내었다.
챙기고 나왔던 낚시대가 담겨있는 가방을 등에 확실하게 붙이면서 아스텔은 이후에 뭘 할지를 잠시 생각했다. 제 방의 침대로 가서 드러누운 후에 휴식을 취하면서 내일을 준비하는 것도 있을테고, 아니면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던지, 다른 음료를 마시는 것도 좋을 것 같으며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갈 수도 있었다. 그러는 와중 레레시아가 궁시렁거리는 목소리를 내자 아스텔의 시선이 다시 그녀에게 향했다. 그러다 제 한 쪽 소매를 잡는 모습에 그는 말없이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아까 하려다가 만 말이 그거야? 혹시?"
밥 한 번 같이 먹자. 술 한 잔 하자. 어느 쪽도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 와중에 임무를 다녀오면이라. 당장 자신도 다음 임무를 수행하다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판국에 꽤나 불확실한 약속을 잡는다고 그는 생각했다. 아니면 자신이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 와중에 또 상당히 시선이나 목소리가 조심스러운 것 같아 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나도 살아있고 너도 살아있다면 얼마든지."
그러니까 밥을 먹던지 술을 먹던지. 어느 쪽이라도 죽지 말고 살라는 말을 하면서 아스텔은 대답을 마쳤다. 확실하게 먹자라고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조차 다음 임무를 마치고 나서 둘 다 살아있을지에 대한 확신을 하지 못하는 탓이었다. 약속을 해놓고서 어느 한 쪽이 죽어버리면 뭔가 기분이 조금 좋지 않을 것 같았기에. 자신이나 레레시아나.
"그리고 기왕이면 술이 있는 것이 좋아. ...딱히 취할 정도로 마실 생각은 없지만, 대장이나 에스티아나 술을 그다지 먹진 않는 편이라서. ...가끔은 누군가와 술을 하고 싶을 때도 있거든."
네가 되었건, 다른 이가 되었건. 혹은 동료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술을 제대로 마시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아스텔은 쭈욱 기지개를 켰다. 뒤이어 그는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듯 먼저 발걸음을 입구 쪽으로 향했다.
"...안 들어갈거면 먼저 들어갈게. 낚시대 가방을 좀 정리하고 낚시대를 닦아야 해서 말이야."
그렇게 말을 마치면서 아스텔은 먼저 안으로 들으서려고 했다. 그녀가 비슷하게 들어선다면 아마 비슷하게 지하로 내려가지 않았을까.
/이것을 막레로 해도 되고 막레를 쓰고 싶다면 남기셔도 상관은 없어요! 그리고 저는 이만 사르륵 들어가서 자러 갈게요! 다들 안녕히 주무세요!
기껏 잡으면서 한다는 말이 그러하니, 상황적으로 충분히 아까 하려다 말았던 말이였나 싶을 수 있다. 아니나다를까 아스텔이 그렇게 묻길래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으니까. 연관이 있냐 하면 뭐 머리카락 한 가닥 정도의 연관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아무튼 아니니까 고개를 젓곤 아스텔을 빤히 바라본다. 얼른 대답이나 하라는 시선을 줄곧 보내다가 죽지 말고 살아있다면- 이란 말에 입술이 댓발 튀어나왔다.
"먼저 약속 잡아놓고 홀랑 죽진 않을 거거든. 너도 어떻게든 안 죽고 돌아오면 되잖아. 무리하지 말고."
어느 쪽이든 녹록치 않은 임무를 하게 되겠지만 어느 쪽이나 무사히 돌아올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니 아스텔이야말로 약속 잡아놓고 무리하지 말라고 투덜대며 잡았던 소매를 놓아준다. 내린 손은 한 번 꾹 쥐었다가 얼른 자켓의 주머니에 넣고, 술이 있는게 좋다는 말에 그럼 술로 하던가, 라고 중얼거린다.
"...다같이 마시고 싶다는게 아닌데."
고개를 슬쩍 돌리고 흘린 말은 들렸을 수도, 못 들었을 수도 있겠지. 하얀 머리카락 사이로 가늘게 흘겨보는 금빛 시선은 모르기 힘들었겠지만.
"아. 나도 들어갈 거야. 누가 안 들어간데."
할 말 하고 대답도 다 했으니 이제 들어갈 일만 남았다. 먼저 들어가겠다는 아스텔의 뒤를 레레시아가 잰걸음으로 따라잡았다.
지하로 내려가 각자의 개인실로 가기까지 짧은 거리 동안, 어떤 대화를 더 했을지 아니면 그저 인사 만을 남기고 헤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후로 그녀가 넋 놓은 모습을 보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은 표정이 달라진 것을, 누군가는 눈치챘을 지도 모르지.
그 짧은 회답을 끝으로 녹은 버터만 휘젓고 있다. 아까 썰어 넣은 소량의 사과는 천천히 캐러멜화 되어가고 있다. 그러다가도 돌연 버터 녹은 것을 털어내려는 듯, 숟가락을 냄비 가장자리에 대고 툭 쳐보인다.
“직접 뭔갈 해보는게 처음이라 더 신중해 지더라고.” 의미없는 사족을 붙이고선 부끄러운듯 웃던 당신이 웃을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눈을 내리깔고 있다가 숟가락을 대충 내려놓는다. 애플소스 식감을 더 좋아한다는 당신의 말에 눈을 접어 미소짓는다. “나도.”
“어차피 아까 사과를 조금 넣었어서, 식감을 고르게 하려면 프로세서에 돌려야 해.” 불을 조금 줄이고선 찬장을 뒤져본다. 가장 높은 선반에 놓여있던 프로세서를 들어 자신의 근처에 내려놓는다. 당신이 자신의 말에 응답을 해 오면, 팔짱을 낀 채 한쪽 팔을 손가락으로 가벼이 두들기고 있다. 그저 당신이 자신을 대하는 부드러운 태도에 약간의 의문을 품는 것 뿐, 다른 건 없다. 딱히 숨기려 들려고 하진 않고 있으니, 얼굴에 살짝 그 의문심이 감돈다.
“그럼 특별히 주고 싶은 사람만 추려.”
그리고 의문은 거기서 끝을 맺은듯 해 보였다. 보통 크기의 파이는 2개, 컵케이크 크기의 파이는 약 12개 구울수 있는 분량의 반죽이 있다고 말하며 그는 냄비의 내용물만 내려다보고 있다.
“푸흐..”
웃음기가 터져 나오려는듯 하다가도,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 그의 손은 빨랐다. ‘후회하지 않는다’라. 다중적인 의미가 그려지는 듯 해서 저도 모르게 웃을 뻔 했었다. 당신의 답은 애매해서 듣는 이의 관점에 따라 그 뜻이 갈라질것 같아, 마치 의도한 것도 같다고 그는 생각한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건 동료애를 돈독하게 하게끔 한 말일까, 아니면 자신은 모르는 당신의 진심일까.
“후회하지 않는다니, 어느 부분에서 그런 결론을 내렸을까.”
그의 관점은 올곧다가도 빙 돌아 안에서부터 뒤집힌 정도기에, 마냥 긍정적으로만 당신의 답을 들었다고 판정 짓기는 글렀다. 뭐, 어떻게 받아들였던 간에 그가 당신의 답을 마음에 들어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러게 왜 뛰어 들어갔어.” 라며 당신에게 무덤덤히 핀잔 비스무리 한걸 준다.
“막 달려들면 안 될거란걸 이제야 깨달아?” 어이가 없어진 듯한 웃음기가 감돈다. 아주 미세하다만.
“내가 그때 투척 후 연계공격이라도 하려고 했으면 어쨌을 거야? 너랑 나 체격 차이가 얼만데, 내가 휘두르는 날붙이 막아낼 자신은 있고?” 아… 이미 지나간 블러디 레드 전투를 다시금 불러오는 그. “추후에 같은 일이 일어나서 네가 나한테 찢기게 되어도, 난 조금도 미안한 마음 없을 예정이야.” 그런 말을 하면서도, 그닥 화를 내는 투는 아닌게 조금 이질적이다. 핀잔보다도 그냥 평범한 대화에 가까운 듯한, 그런 어조. 당신이 냄비에 사과를 쏟아주면 그는 다시 불을 올리고선 사과를 졸인다.
“파이지는 냉장고에 있으니까 꺼내서 대충 밀대로 밀어줘. 너무 얇게도, 굵게도 말게. 네가 파이를 잘랐을때 보고 싶은 표면의 굵기 정도로 밀면 돼.”
밀대가 있을 서랍을 대충 가르키고선, 졸고 있는 사과와 설탕 버터물을 휘젓는다. “귀여운걸 좋아하면 쿠키 커터도 꺼내오고.”
/미안합니다. 쓰다 보니 무슨 계약서 수준의 길이. 부담갖지 말고 답레는 쥬주가 쓰시고 싶은 만큼만 써주시길..
농담 섞인 말에도 돌아오는 대답도, 천천히 기다리겠다는 말도. 불안정한 점 투성이에 아직껏 많은 것들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그가 애정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기까지 걸릴 여정은 그리 짧지 않을 테다. 최선을 다한다면 언젠가는 함께 걷는 때가 불안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올까? 그를 낳은 고향, 암울한 그곳을 빠져 나온 이래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자신해왔음에도 이럴 때만은 자신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손가락을 꿈질거리며 골몰하던 그의 생각이 끊어진 것은 그때였다. 이어지는 멜피의 대답에 그는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젠장, 너무 치명적인 수법이다. 이미 멜피는 그를 너무 잘 알았다. 그동안 그가 그만큼 투명하게 굴었다는 사실의 방증일 뿐이지만, 아무튼. 당당하게 덤벼봤자 아직 까불려면 한참 멀었다.
"……대가리를 깨서라도 안 그런다. 못난 새*는 되지 말아야지."
가정만으로도 쩔쩔매니 그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하다. 그렇게 되도록 할 생각도 없고. 빠르게 꼬리를 내리고서는 그는 슬그머니 멜피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바닥까지 내려간 꼬리를 한 번 더 꺾어서 내렸다.
"어, 미안하다."
어린애 취급 해줘도 상관 없는, 오히려 그럴수록 좀 더 약해지는 그와는 달리 멜피는 쓰다듬어 준다고 물렁해지는 동급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미묘하게 시무룩해졌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옆에 있어주면 된다고 하니까 그게 또 좋아서다. 멜피가 준비를 끝내는 동안 그도 물통의 물을 버리고 잡다한 뒷정리를 마쳤다. 휴게실을 빠져나와 복도를 걸어가는 길은 한산했지만 바로 앞에 큰일이 닥칠 거라 생각하니 조금 긴장이 된다. 그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는 팔짱을 낀 채로 고민을 거듭했다. 그도 따끔하게 혼나기는 싫었던 것이다.
"벌써 혼났다고 해?"
이미 혼나고 왔으니까 더 안 혼내도 된다고…… 말하면 통할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왜 이제야 데려왔냐거나 응급처치 함부로 했다면서 같이 두 배로 혼날지도.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지만 그럴싸한 계책이 더 떠오르지는 않았다. 사지로 걸어들어가는 기분이 이런 건가 싶지만,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꾸준히 걸으니 어느새 의무실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는 천천히 문을 열고 의무실 안으로 들었다.
네가 고맙다고 하자 또 기분이 좋아져버려서. 나는 속으로 이게 계속 된다면 웬만한 부상은 잊고 싸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이상한 상상도 해보았다. 그걸 말했다가는 너한테 혼날게 뻔하니 말하지 않겠지만.
그리고 울겠다는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듯한 너의 모습에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물론 진짜로 그런 상황이 되면 상대방이 자신이 우는것 정도에 타격을 받지 않는다는것은 질리도록 잘 알고있으나. 눈 앞에 있는 네가. 그럴리 없다고 생각하며 괜한 걱정을 덜어버리고 너의 뺨에 부비적댔다.
"그러면 대가리 안 깨지게 열심히 유혹해야겠네."
그리고나서 나는 꼬리를 내리는듯한 환영이 보이는 너를 눈을 희며 바라보라다가 미안하다고 말하자 그럴거 없다며 미소지었다. 아이 취급이 싫다는건 아니었으니까. 다만 아무리 그래도 의무실에선 쫌.. 이란 마음이었다.
"으음~ 괜히 둘 다 혼나지 않을까."
뒷정리가 끝나고. 너와 함께 떠나는 길이었지만 솔직히 발걸음은 무거웠다. 내가 잘못한거야 알고 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데리고 와준 네가 혼나는건 더 싫었기에.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가짐이 더 크기도 했고... 어느새 의무실에 도착해버린것도 있어서, 나는 그림자를 풀고 너를 따라서 의무실에 들어섰다.
"..........."
치료 자체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던거 같다. 의외로 혼나는거 자체는 그냥 의무실 자체에 긴장해서 잘 안들렸던거 같기도 하다. 긴장을 억누르고자 어느새 너의 소매를 잡아버렸기에, 아까 말한대로 되버린건 슬펐지만..
그는 얌전히 부비적당했다. 하필 지금 한 말이 유혹하겠다는 소리라서, 이건 유혹의 일환인가─이게 본격적인 유혹으로 통한다는 게 우습다마는─아니면 이제까지와 같은 애정표현인가 헷갈린다. 하지만 둘 중 어느 쪽이건 그에게 탁월하게 먹혀들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내색은 안 하려고 했지만 뭐, 겉과 속이 일치하는 그가 속마음을 숨길 수 있을 리 있나. 히쭉 입 끝이 움찔거리는 게 빤히 보인다.
"그래도 *, 두 번 혼나는 건 싫은데."
그간의 사정을 들었고, 여기까지 오는 데만 해도 멜피에게는 큰 결심이 필요했다는 걸 아니 그것으로 꾸지람 듣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걸 어떡하나. 문을 열고 들어간 의무실은 막 임무를 끝내고 사람들이 밀어닥치던 때에 비하면 한산해진 상태였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간 어떤 말이 돌아올지 무서워 부상에 관해서만 간략하게 줄여 말하긴 했지만, 결국은 야단을 맞게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것 또한 의료진들의 업무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서도. 그는 치료가 끝날 때까지 곁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던 때에, 제 옷소매를 잡아 오는 손길이 느껴져 그는 멜피를 바라보았다. 긴장감이 역력한 모습에 손끝이라도 닿아볼까 생각하기도 했으나 잔뜩 예민해졌을 상태에 더 자극을 주면 안 될 듯해 묵묵히 기다리기만 했다.
몇몇 과정을 거친 후에야 마침내 치료가 모두 끝났다. 그는 드디어 자유로워진 멜피에게 다가가 한쪽 손을 슬쩍 내밀었다.
"존* 잘 참았다.……그리고, 아까 못 잡아줬던 거."
치료 중에 방해 될까 가만히 있었던 그때를 말하는 거다. 그렇게 말하는 태도는 이제는 조금쯤 자연스럽게 보였다. 맨 처음 악수 운운할 때에 비하면 그사이 장족의 발전을 이룬 셈이다. 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며 물었다.
딱히 유혹을 하려는 생각없이 부비적거리고 있자니. 너의 입 끝이 경련하듯 움찔거리는것이 보였다. 그 모습에 기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서, 놀려볼까 생각이 들었던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뭐, 오늘은 봐주도록 할까~.
"아하하."
두번 혼나는건 싫다는 이야기에, 네가 나를 걱정해주는걸 알았지만. 나는 구태여 웃어 넘겼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의무실에 가서 내 사정을 설명할리도 만무하고. 그럴 필요성도 없으니까. 뭐 그냥 잠깐 혼나고 말면 되는것이었다. 다만 정작 의무실에 가니 안 좋은 기억들이 떠올라서 긴장해버렸으니. 이것이 좋은건지 나쁜건진 모르겠다. 그저 무의식중에 너의 소매를 잡아버린것은 눈치를 챘지만 그것을 놓은 용기는 없었다.
치료가 끝나서야 의무실에서 나갈 수 있었으므로, 실제로는 짧았지만 체감상 길었던 시간을 뒤로하고 나는 너를 바라봤다. 아까 못 잡아줬던거라니. 너의 말에 작게 웃음을 흘린 나는 멀쩡한 손으로 너의 손을 잡았다. 딱히 지금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아픈건 아니지만 신경 쓰는것도 미안하니까.
"그래야지, 시간도 시간이고."
사실 조금 잊고 있었지만 우리는 전투가 다 끝나고나서 또 약간 시간이 지난뒤 만난거였으니. 창밖을 보니 그야말로 한밤중이었다. 이건 다른 의미로도 의료진한테 미안해야 할지도..
"그.. 자기전까지 따뜻한거라도 마시면서 옆에 있어줄 수 있..을까?"
아마 지금 몸의 피로로 봐서 잠자는데 오래 걸리진 않을거 같지만. 그래도 뭔가 너와 바로 떨어지기 싫어서 나는 너에게 내 방에 와줄 수 있냐는 뜻으로 말을 걸었다.
>>493 물론 찍힌답니다. 굳이 말하자면 SNS를 하는 세븐스 자체가 적은 편이에요. 다시 말하지만 세븐스에게 자유로움은 거의 존재하지 않아요. SNS라고 예외는 아니에요. 아마 선우주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세븐스의 인권은 바닥이라고 봐도 좋아요. 물건 하나 사는데도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 사회란 생각보다 훨씬 가혹한 무언가랍니다.
>>484 오. 그럼 점점 넓어진다는 의미로군요? 그 와중에..ㅋㅋㅋㅋㅋㅋㅋㅋ 정비실...ㅋㅋㅋㅋㅋㅋㅋㅋ
>>512 나도 이셔도 끌어안으면 안돼?(레샤주: 웩) 상황... 원하는 상황 있냐고 역으로 묻고 싶은데 어떡하지..? ㅋㅋㅋㅋㅋ 음~~ 모르겠당 지금 상황이면 이셔 손목 절개쇼(무해하고 자해 아님 설정 때문에 주기적으로 해야하는 일임)랑 저번에 레샤주가 해보고 싶다던 자던 이셔 깨우면 제압 서비스 해준다는 것밖에 안 떠올라서...ㅋㅋㅋ
>>510 ㅋㅋㅋㅋㅋ그렇죠... 그런것도 있지만 사실 제가 포니테일에 뒤따르는... 그...뒷목의 매력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합니다...(부끄 머리가 긴 만큼 요리할 때 각별히 신경쓰는 건 맞지만요! 기동성...그럴지도...? 정확히는 남이 골라준 걸 오래 신는거지만요! 불편한거 사줘도 열심히 신긴 할 거에요!
다 짜고 몇 번 굴리니까 (그 사상이 뒤틀려진건 둘째치고) 캐릭터가 어느정도 굳혀졌는데 이게 너무… 타무라 카프카 비슷해 졌습니다. 카프카와 비슷한 점은 사실 자기 자신을 묶어두는 무언가와 일부러 부딪쳐 가며 스스로 앞으로 나아갔다<- 이거 뿐이지만 제일 큰 틀이 비슷하니까 매우 비슷한 거에요 그죠? 그래요() 그 부딪힌다는 행동이 카프카 정도로…이상하진…않았다만… 다 쓰고 나니 그 부딪힌다는 무언가도 카프카와 닮았네요..? 카프카는 아버지가 말해준 저주, 크게 보자면 자신의 과거에 얽매여 있었고. 유루도 대충 과거에 얽매여 있다가 혼자 어떻게든 털고 일어난 캐릭터. 더 뇌절하자면 두명 다 조력자 포지션 캐릭터에 어느 정도 도움을 받았네요. 큿… 무라카미씨 책 읽고 “??뭐야이거??” 이러고 덮어버렸는데 이런 식으로 제 무의식의 한 켠에 방세도 안 내고 살고 계시네요
그래서 첫 문장은 대충 해변의 카프카 5?6페이지 쯤에 있던 그 모래폭풍 메타포의 일부분이 될것 같습니다. 그 메타포가 뭐였냐고 추려서 얘기 해보자면 대충 인생은 은유적인 모래폭풍일 때가 있어. 이 모래폭풍은 어디서 불어온 것도, 어딘가로 향하는 것도 아니야. 이 폭풍은 너야. 넌 그 안에 들어가야만해, 그리고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할때 쯤 다시 눈을 뜨면 넌 처음의 네가 아니게 될거야.<<였던것 같은데? 읽은지 좀 되어서 틀릴 수도 있음..
하 다시 생각난게 있는데 유루씨 아줌마들 맨날천날 꼬시고 다닌다는 농담 하던것도 이 소설 영향 받은거 아닐가요???? 젠장 내 뇌에서 나가 타무라 카프카
151 소중한 사람이 갑자기 죽는다면?
영원한건 존재하지 않고 자신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지라 곁에 가까이 하던 것도 없어지면 그려려니 한다…물론 가치관 대로라면 그렇겠지만 이 분은 가치관이랑 실제 마음가짐이랑 조금 어긋나 있어서 편히 장례 치러 주고 식 내내 무덤덤히 있다가도 혼자 있게 되면 그때 움. 우는것도 통곡 하는건 아닌데, 눈물만 가만히 떨구다가 곧 평소 모습대로 돌아간다.
그렇다고 그 사람을 잊는건 아님. 일상생활 하다가도 간간히 떠올린다. 지금도 옛 친구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라서 간간히 꽃 따다가 호수에다 던져넣고 (아스텔: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요;), 그분 먹고 싶었다고 했었던 레시피도 이따금씩 만들어 먹는데 뭐..
191 지금의 성격에 가장 근본적인 영향을 준 것은?
성격 자체는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어서() 유루가 비세븐스였어도 지금 모습과 비슷했을걸? 다른 부분이 있더라면 뭐… 세븐스 혐오 했을걸? 사람은 권위를 받으면 바뀐다고()
변덕이 심한 이유는 자기 문제는 혼자 해결해야만 하는 강박이 있는지라 사람이 조금 이상해짐… 아무리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나 자기 자신의 심리상담을 몇번이나 해도 계속 혼자면 좀 우울하잖아..? 본인도 혼자서 내면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는걸 잘 아는데 굳이 남한테 털어놓지 않고 대신 무념무상하게 살려고 하고 있음…노력만…. 마음이 휙휙 바뀌는것도 본인이 본인의 유일하다시피 한 정신적 지주인데… 본인이 뭐 그따위니…심적으로 문제 있어 보여도 본인이 본인에게 생기는 번뇌를 잘 알고 있어서 때에 맞는 응급처치가 가능함. 변덕은 이제 그냥 자신이 어쩔수 없는 부분이라 품고 살고 있다.
남한테 의지하기 이토록 싫어하는 사람이 왜 감정 바뀌는건 잘만 표출하냐고요? 속으로 지 혼자 앓고만 있으면 상태 더 나빠질걸 본인이 잘 알고 있어서. 그래서 이분 언젠가는 남한테 의지하는 법 배우냐고요? 아쉽게도 아직 자급자족을 멈출 마음이 없다네요()
>>516 그만큼 쓸 것이 많았다는 반증이겠지요! 아무튼 소설의 문장이 뭔가, 뭔가 깊은 느낌이네요. 그와 동시에 캐릭터에 대해서 뭔가 되게 많이 고민을 한 것이 보이기도 하고요. 아무튼 아예 슬퍼하지 않는 것도 아니나 크게 눈물을 보이는 것도 아니군요. 아니. 그런데 호수에다가..ㅋㅋㅋㅋㅋㅋㅋ (시선회피) 어. 결론만 말하자면 언젠가 마음을 열 존재를 만나게 되면 바뀔 수도 있다. 뭐 대충 이런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그거.
>>513 앗 그렇다면 둘 다 안아줄테다~~ (이셔주 무릎에 레시 앉힘)(백허그 꼬옥) 손목 절개..쇼? 아니 깜짝이야 내가 뭘 잘못봤나 했네... 음.. 이것도 흥미롭지만 역시 제압 서비스 쪽이 좀 더 끌린다! (흉계를 꾸미는 미소)(?) 내가 선레 걸렸으니까~ 이셔 방으로 찾아가면 되나? 아니면 다른 장소?
>>517 아니면 유루주의 의식이 멀리멀리 흘러갔다는 거시고요 (끄덕) 캐릭터에 대해서 고민한게 많아보였다니 다행이네요! 애가 왜 이따윈지 정해보느라 두뇌 좀 썼습니다 헤헤. 처음에 유루 낼땐 전형적인 미치광이 예술인 (기분 안 좋아지면 이젤로 상대방 후려갈김) 으로 생각했다가 무의식이 이끌어주는대로 오다보니 무라카미 엔딩이에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스텔이 보면 혼낼까요 (시선회피2) 예 마음 열게 되면 바뀔 수도 있는데 안 열어도 뭐 (굴리는 사람은) 재밌으니까~~
오... 유루 진단 너무 맛있어..! 흑흑 내 기력이 좀만 쌩쌩했다면 주접 한탱크 떨었을텐데 (눈물 홍수) 유루 첫문장도 너무 좋구 간간히 먼저 간 사람 생각하는 모습도 아련미 넘치구 감정 처리 나름 객관적으로 하는 것도 멋져~~ 그러니까 그 변덕으로 레시 한번 골려줬으면(?)
>>516 볼수록 느끼는 거지만 인간적인 게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캐릭터네요 유루는. 겉만 보면 꼭 공감이라곤 밥말아먹은 것 같지만 정작 속은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뭔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존재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다지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 같네요. 유루에게는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이겠지만.(흠티콘) 그리고 여지는 언제나 환영이에요 사람이 성장하는 걸 보는 건 언제나 즐거우니...
>>524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스텔 낚시에 진심인 거냐고ㅋㅋㅋㅋㅋㅋ 앗 꽃은 괜찮다면 계속 던져야지여 (그렇게 근방의 꽃은 씨가 말라버리고)
>>525 아이고 저는 주접이라면 다 좋아요 양은 돈워리 (정보: 워리하신적 없음) 감정 처리 (객관적이려 하지만 혼파망) 멋있어 해줘서 고맙읍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레시도 만나면 혼을 쏙 빼놓게 골려주는 건데... 만나면...! (오열) 춤도 예술이고 그림도 예술이니까 예술인들 만나면 재밌을거 같은데 (유루 급발진?만 빼면)
>>528 쥬주는...볼때마다 철학적인 생물이셔요...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은 사고라고 증명하는 무언의 테제.. 오..오오 쥬주 왜 저보다 유루를 잘 아시죠?? 내 캐가 아니라 님 캐였나() 유루한테 소중한 사람이 생겨도 다른 사람들 대하는 만큼만 대해줍니다... 일정 선을 넘어서 아껴주는 행동은 본인이 스스로 벽을 쌓아서(끄덕티콘) 맞아요 사람 성장하는건 늘 즐겁습니다... 저도 언젠가 쥬데카가 자신감을 찾았으면 좋겠고 도망자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게 될 걸 고대하고 잇습니다...적폐미안
>>546 ㅋㅋㅋㅋ아닙니다... 철학하기엔 누추한 사람이라구요! 그저 조금 주접을 뿌리는 사람일 뿐... ㅋㅋㅋㅋ그럼 정작 소중한 사람은 유루가 자신을 그정도로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모를 가능성도 있겠네요. 물론! 유루의 속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전혀 아랑곳하지 않겠지만요. 언젠가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요! 언젠가는...
"엔은 계속해서 먹을 수 있다. 엔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엔은 계속 계속 먹으려 한다. 그러니 엔에게는 이정도로 만족시키는 것이 좋다." 더 많은 것을 원하기 전에. 그렇게 말하고는 마저 나머지 육회들도 쓸어담는 것이다. 당신은 착하다며 그녀를 쓰다듬고 있었지만 그녀는 사실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육회들은 전부 당신이 사는 것이니까. 그러니 말하자면 착한 것은 당신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고있기 때문이었다. 대신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에델바이스가 고기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됐으면 좋겠다."
다소 상식이 모자라고 무식하다고는 하지만, 그녀라고 해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아마도 고기를 포장해가자고 발상한 것은 분명 그런 이유가 있기 때문은 아닐지.
앗... 순간 너무 흥분해서 다짜고짜 취향을 외치면서 등장학버렸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안대에 흉터... 필요악을 운운하며 혹여라도 느낄지도 모를 죄악을 정당화해주는 공손한 언변을 갖춤... 이런 사람은 대체로 엄청난 또라이력을 갖추고 있을 확률이 높지... 얼마나 광인일지 궁금하고 기대되고... 그러면서 최강자라는 조합... 플러스 정장... 진짜 짱이라고 생각해(따봉)
내민 손이 붙잡혀 서로 맞잡게 되자 그가 빙긋이 웃었다. 미약하게 남아 있던 걱정도 덜어지고, 오늘 하루 긴장이 끝을 보는 듯해서이기도 하고, 그냥 손 잡아서 좋기도 하다. 문을 열고 나서자 느껴지는 공기가 제법 시원하다. 점점 날씨가 서늘해지니 트인 공간은 실내라도 제법 선선하게 느껴졌다. 그는 문득 고개를 돌리고는.
"좀 낫냐?"
치료 받은 쪽 팔을 흘끗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치료는 끝났지만 다친 부위는 한동안은 주의 깊게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몸을 자주 따뜻하게 해주고 염증에 유의해야 하는데…… 그러고 보니. "너 씨*, 다 나을 때까지 담배 피우지 말라던데." 눈초리가 은근히 가늘어질락 말락 한다. 그 짧은 새에 완전히 잔소리쟁이 다 됐다. 그렇지만 나무랄 생각으로 그런 것은 아닌지 그는 금세 눈 돌리며 다른 곳을 보았다.
"뭐 마시게? 그 씨*, 차랑 음료. 그거 중에서."
고민의 여지도 없이 곧바로 승낙이다. 음료수라면 자판기에 가서 뽑아도 될 테고……. 그는 괜스레 제 머리카락 끝을 매만지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마터면 물비린내 밴 상태로 갈 뻔했는데 미리 씻고 나와서 다행이다. 둔감하기 짝이 없는 그도 이 정도의 신경은 있다는 건지.
정신을 차려 보니 시간은 어느새 깊은 밤이다. 레이버와의 격전, 그리고 그 이후의 현재. 오늘에 있었던 그 사건들이 모두 한순간의 꿈결이었기라도 한 것처럼, 하늘은 언제나 그래왔듯 보이는 그대로 고요하게 검기만 하다. 과연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변한 것은 없었다. 단지 서로가 조금쯤, 앞으로 발 딛을 용기를 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마음만으로도 사람은 능히 만변하는 법이니. 대답을 듣고 마실 것을 준비한 다음에는 함께 방으로 향했을 것이다. 나란히 걷는 적막한 길, 밤 늦어 어둑한 빛을 띈 전등이 침침한 빛을 흩뿌렸다. 방문 앞에 다다라 문득 그는 고개를 들었다. 별다른 말 없이 멜피를 가만히 올려다 보는 눈길에, 어느 순간 슬며시 웃음기가 서리는 듯했다.
"잘 자라. *, 미리 말하고 싶어져서."
// 여기서 더 이어도 되고~ 막레도 가능하게 했어!! 마음 가는대로 결정해줘~ ⸜( ◜࿁◝ )⸝
운이라면 시간을 잘 맞춰 온 것을 말하는 건가? 마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긴 도전을 하러 왔는데 관장이 없으면 그것 만큼 허무한 것이 어디있겠는가. 아직 배틀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손끝까지 짜릿함이 남아있는 지금 계속 배틀을 하고 싶다.
관장의 이름은 유루, 그의 이름은 익히 들었다. 이 사회에서 체육관 관장만큼 유명한 이들은 없다. 타입이 없는 건 깜빡 속았지만 그럼에도 다행인 점은 마리가 다타입 트레이너인데다가 체육관에 따라 타입 상성을 맞춰오기 보다는 우연히 만나 정이든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점일까.
"........"
하지만 재미있었냐는 말에는 눈쌀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깔짝팟 너무 상대하기 어려워. 늪에 빠지듯 뭉근한 느낌으로 조금씩 조금씩 피가 빨리는 느낌, 그럼에도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것은 꽤 곤란하다.
"에.... 영웅이라니....."
마리는 유루의 말에 눈을 깜빡였다가 이내 팟, 하고 켜지는 조명에 눈을 꾹 감아버렸다. 눈을 찡그리며 뜨려고 노력하는 마리는 결국 작은 손을 들어 눈가에 그늘을 만들어보인다.
모험가의 상징처럼 자리잡은 캡모자는 아이보리 색에 연분홍색 챙, 그리고 연분홍색 별과 연하늘색 별이 하나씩 장식되어있다. 그 아래에는 크림색 머리카락이 양갈래로 낮게 묶여져 있고. 까만 티를 받쳐입은 흰 셔츠에 하이웨스트의 진한 청바지와 운동화는 활동성을 강조하는 것 같다. 명순응을 마친 마리는 자그마한 손을 내리며 눈동자를 다시금 보인다. 붉은 벽돌색의 눈동자가 유루를 향한다.
깜빡이는 눈동자 아래에는 조금 부루퉁한 표정이 담긴다. 아무래도 유루의 말이 놀리는 것처럼 느껴진 모양이다. 가디언즈를 박살내면서 이곳까지 오기는 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복수, 사상이 달랐던 것이었고 문제가 해결된 건 부수적인 것이었다.
"트레이너 대 트레이너.... 좋아."
유루의 말은 마리에게 퍽 좋은 울림을 준 모양이었다. 훈잣말하듯 말하면서 마리는 살짝 눈을 접어 웃음기를 띄웠다가 이내 지웠다. 긴장되는 와중 마리는 유루의 어깨 근처에서 살랑거리는 푸른 뒷머리를 바라본다. 그리고 돌아보는 금빛 눈동자는 차분하다.
겸양 떠는 목소리를 한귀로 듣고 흘리며 첫번째 포켓몬을 살핀다. 레파르다스. 트레이너 대 트레이너로 싸우자고 했으면서 먼저 포켓몬을 꺼낸다는 건.... 봐준다 이거지? 그럼 나는 안 봐줄거야. 봐줄 여력도 없고.
"마네, 부탁해."
마리는 몬스터볼에 속삭이더니 이내 그것을 던졌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나온 것은 꽤 귀여운 이름과 달리 흉흉한 외모의 포켓몬이었을까. 펜드라가 마리의 속삭이듯한 "독찌르기"라는 지시에 검보라빛 독을 뿜어내며 머리의 뿔로 레파르다스를 찌르려고 했다.
/너무 늦은 것 같지만..... 포켓몬 AU라니..... 관장 유루 쩔잖아.....??? 완전 간지 폭풍이잖아???? /유루주가 상대방은 스레 캐들 생각하고 썼다고 하기에 짐리더 유루한테 도전하는 트레이너 마리 느낌으로 적었는데 말도 없이 이어오다니 가만안둬...!하고 생각이 들거나 내용이 불편하면 말해달라구 ㅋㅋ큐ㅠㅠ 포켓몬 보니 5세대 느낌 나서 5세대 포켓몬으로 데려왔는데 나름 마리하고 어울리기도 하고?(네?) /가디언즈에게 부모님을 잃은 마리의 혁명기 같은 느낌이려나....?(아님) /요즘 너무 바빠서 스레 자주 못와서 넘 슬푸고 88 얼른 일 끝내고 돌아올게
일찍부터 훈련이며 할 일을 다 해버리고 잠시 외출을 나갔었다. 특별한 용건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산책 내지는 생필품 쇼핑이었다. 약간의 돈을 소지한 채 여러 가게가 늘어선 거리를 느긋하게 걷다가, 눈에 띄는게 있으면 사거나 먹거나 하며 여가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구하기 힘든 걸 찾으면 두 개를 사서 기지에 돌아가 라라시아에게 나눠주곤 했다. 지금까지는 그게 정해진 루트였다.
"음-"
이래서 습관이라는게 무섭구나. 레레시아는 속으로 생각하며 방금 나온 가게를 돌아보았다. 이 마을에서 가장 인기 좋은 디저트 가게였다. 그런 곳에서 한정판으로 판다고 하니 어떻게 안 살 수가 있을까. 그것도 20피스 봉봉초콜릿 세트를! 평소 버릇처럼 여러 상자 사 버린 걸 보고 한숨이 푹 나온다. 언제나처럼 라라시아에게 나눠주면 되겠지만 지금은...
"에잇."
모르겠다. 일단 돌아가서 생각하자. 종종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곧장 기지로 돌아가니 금방 도착한다. 가자마자 개인실에 들러 대충 침대에 초콜릿 상자들을 놓았다. 으와. 단내. 포장된 상자임에도 초콜릿 특유의 단내가 방안에 스멀스멀 번지는 걸 느끼며 코트를 벗어 의자에 휙 던져놓고 상자 하나를 집어들었다. 일단은 하나 아무나 갖다줘볼까. 그렇게 다시 방에서 나와, 대뜸 찾아간 방은 이스마엘의 방이었다.
"마-엘-?"
보통은 누군가의 방에 찾아간다면 노크부터 하겠지만, 그녀는 어째서인지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문이 열려있다..? 아무런 걸림 없이 스르륵 열리는 문이 있다면, 당연히 들어가줘야지. 그렇게 레레시아는 한 손에 초콜릿 상자를 들고 어째선지 발끝만으로 살금살금 걸어서 이스마엘의 방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여승우: 056 본인의 목소리가 마음에 드는지? 그럭저럭? 좋고 나쁘다를 따지는 감상적인 쪽으로는 아무 생각 없음. 뭐 그냥 자기 목소리구나 싶고... 자기 자신한테 관심이 없는 편이야. 객관적으로 자기 목소리가 듣기 좋은 목소리라는 건 알고 있어. 인간관계에 있어서 목소리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니까... 듣기 싫은 목소리는 아니라서 편하다고 생각 중.
067 밤에 잠이 안온다면 무엇을 하나요? 밖에 나가서 아무 곳이나 산책하다가 돌아와. 발 가는대로 돌아다녀서 엉뚱한 데로도 자주 가고 그럼...
307 그가 무언가 적혀있는 종이를 들고있다면 그것은 무슨 내용일까요? 어... 쓰레기? 방 청소 중이래... ◠‿◠
의무실에서 나오자마자 한것은 치료를 받은 손을 움직여본것. 듣기로도 딱히 후유증이 남을 정도는 아니라고 했고. 치료 한번 받은거지만 많이 좋아졌기에 나는 역시 대단하긴 하네.. 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너의 걱정이 담긴 말에 미소지으며 답했지.
"많이 괜찮아졌네."
관리야 열심히 해야겠지만. 역시 기술력이 달라서 그런지 치료 속도는 빠를거라고 들었다. 다만-, 네가 담배에 관해 언급하자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억지로 잊고 있었던 사실은 이렇게 상기시켜주다니. 너의 그런 모습에, 다소 불만스러운듯 너를 바라보다가 갑작스레 어깨에 기대며 "그러면 남자친구로 대신 충전해야겠어~" 라며 말한것은 농담이자 진담이었지.
"차는 아까 마셨으니 음료로 할까~"
대신 따뜻한걸로. 나는 너에게 기댄채로 자판기에서 적당히 마실거 하나씩 뽑아가자며 답했고. 어느샌가 창밖에서 비춰오는 얼마 없는 별빛을 바라보다가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다시 한번 정리했다.
꿈같다면 꿈같았고. 부끄럽다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날이었지만.. 그로인한 결과가 내 옆의 사람이라면. 그래 뭐 다소 부끄러운것도 나쁘진 않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오늘의 결말이 좋게 끝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이스마엘에게 있어 오늘은 유달리 피곤한 날이었다. 환절기가 되면 유독 그랬다. 어릴 때도 그랬지만 다 커서도 온도차를 이기지 못하는 것 같다. 씻고 나오니 눈꺼풀이 배로 무거웠다. 평소 같으면 책이라도 읽다 잠들었을 텐데, 지금은 활자는커녕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침대에 누운 이스마엘이 골똘히 무언가 생각하듯 천장을 노려봤다. 뭔가 깜빡한 것 같은데, 뭘 깜빡했더라. 뭐더라……. 무의식 깊은 곳에 끌려가듯 잠에 빠지는 일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무거운 눈꺼풀을 뒤로 이스마엘은 깊은 잠에 빠졌다.
이스마엘의 방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노크하지 않고 문을 여는 행동에 인기척이라도 느껴져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다. 당신이 들어온 이스마엘의 방은 지나치게 깔끔하다. 옷은 옷대로 차곡차곡 정리돼 있었고, 책상 위도 필기구의 정렬이 말끔하다. 책상 위에 하나 남아있는 것이라면 오로지 목탄 하나로 전경을 그려놓은 종이 한 장뿐이다. 공터, 당신이 아는 곳이다. 그리고 책상 구석에 뜯지 않은 편지봉투가 여러 장 쌓여있었다. 방의 주인은 없는 건가? 아니다. 빙 둘러보면 침대가 보였고, 그 옆 낡은 상자가 고이 닫혀있는 협탁도 보였을 것이다.
이제 보니 침대 위에 사람의 인영이 보인다. 이스마엘이다. 이불도 덮지 않고 그 위에서 잠든 걸 보니 그럴 겨를도 없이 잠든 것 같다. 깊은 잠에 빠졌는지 숨소리가 고르다. 다가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몰래 놓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석연찮은 점이라면 평소 이스마엘의 주변에 있던 노이즈가 말끔하게 사라져있다는 점이겠다.
이건 당신에게 있어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 그래서 기회를 드렸습니다... 나도 날려서 잠깐 당황스러웠다... ;-; 서로 힘내자구...
그녀도 가끔 그런 일이 있었다. 책을 보느라 집중해서. 명상에 깊게 빠져서. 미처 잠그지 않은 문을 라라시아가 열고 들어오는 걸 몰랐던 일이. 그래도 어느 정도 들어오면 눈치 채곤 했으니 아마 이스마엘도 그렇지 않을까 했다. 아니면 안에 없던가. 없으면 없는대로 초콜릿만 두고 나오려고 했는데.
발톱을 한껏 집어넣고 살금살금 걷는 고양이처럼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그리고 살며시 돌아보자, 방 안의 모습이 천천히 지나간다. 전체적인 인상은 청소와 정리가 잘 되어 깔끔한 방이구나, 정도. 일단 들어오고보니 그냥 두고 나가야지 했던 초기의 목적은 조용히 사라지고 조용히 방 안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책상으로 다가가 기웃기웃, 필기구를 건드려보고 목탄 그림도 빤히 본다. 아. 여기 거기네. 머리 잘라준 곳. 그런데 이거 숯인가?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눈을 돌리다가 책상 구석의 뜯지 않은 편지봉투들을 발견한다. 하나도 아닌 여러개가 쌓인게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손을 대진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 양심은 있- 던가? 에이 몰라. 그렇게 책상을 돌아보고 근처에 협탁이 있길래 거기에 초콜릿 상자를 두려다 무심코, 그제야 침대를 보았다. 그리고 혀를 깨물었다.
"!!...!..."
짜릿한 통증에 튀어나올 뻔한 비명을 삼키며 고통을 참는다. 왜냐하면 없는 줄 알았던 이스마엘이 침대에서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몰랐지? 그가 너무 쥐죽은 듯이 자고 있어서 그랬나? 아니. 사람은 자신이 평소에 알던 것과 조금만 달라져도 인식이 달라진다. 지금 침대에서 자고 있는 이스마엘에겐 노이즈가 없었다. 저번에도, 임무 때도, 늘 얼굴과 머리 전반을 가리던 노이즈가 없는 모습이라 아마 인지가 늦었던 것이다. 그건 그렇지만 혀가 아프다. 젠장! 그녀는 잠시 쪼그려 앉아서 혀의 얼얼함이 가실 때까지 잠시간을 견뎠다. 겨우 아픔이 가시자 스윽 일어나 침대로 다가갔다.
자고 있는 그를 보기 전에 먼저 협탁에 초콜릿 상자를 올려놓았는데, 협탁에도 뭔가 있었다. 딱 봐도 낡아보이는 상자다. 상자... 닫혀 있는... 상자... 이런게 보이면 한 번 열어보는게 인지상정- 은 무슨. 레레시아는 당장이라도 뻗어지려는 손을 참고 침대로 몸을 돌렸다. 그냥 누웠다가 깜빡 잠든건지. 피곤해서 미처 이불을 덮지도 못 하고 잠든건지. 고른 숨을 쉬며 자는 이스마엘을 지그시 내려다본다.
머리 하얀 건 저번에 잘라줬으니까 알았지만. 피부, 색이 짙었구나. 음. 얼굴은 선이 가는 편인건가. 자고 있는 모습으로는 인상이나 표정을 알 수 없으니 조금 아쉽달까. 그래서였는지 왜인지, 그녀는 슬그머니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이스마엘의 얼굴로 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자고 있는 그의 볼을 아주, 아주 살짝 건드려보려고 했다. 그러다가 깨면? 그 땐 그 때고.
호흡은 일정하나 그 소리가 크진 않았다. 침대에 누워 골똘히 생각하던 사람의 자세 그대로 미동도 없이 잠들었기 때문인지 그대로 눈을 떠 재잘거려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당신이 혀를 깨물더라도 그 고통이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몽중 깊은 곳을 헤매고 있었다. 당신이 고통이 가시기까지 기다리는 동안에도 이스마엘은 눈을 뜨지 않았다.
노이즈도, 마스크도 없으니 얼굴이 온전히 드러난 모양새다. 짙은 피부색과 더불어 감긴 눈의 속눈썹은 길다. 모난 곳은 없지만 상처가 좀 있는 편이었다. 가령 뺨은 이제 밴드를 떼고 아물어가는 과정에 있었고, 왼쪽 눈썹을 가로지르는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지만 흉터가 남아있었다. 머리카락은 부채꼴로 길게 퍼져 있었기에 목에 남아있는 희미한 흉터도 볼 수 있었다. 목에서 시작해 옷에 가려졌지만 분명 가슴팍까지 이어질 것이 분명한 흉터까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표정을 보니
그렇게 관찰만 하면 좋을 텐데도. 사람은 지금까지 잘 해왔음에도 작은 실수를 벌이곤 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당신이 그 상황이다.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을 적 희미하게 느껴지는 진동, 그리고 뺨에 닿는 촉감까지. 이스마엘은 잠을 자면 깊게 잠들었지만 작은 충격이나 소리에도 기민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뺨에 손가락이 닿자 이스마엘은 눈을 번쩍 떴다. 눈을 굴리지도 못하고 자신에 뺨에 닿는 손을 우악스러운 손길로 꽉 붙잡으려 하며, 다른 손으로는 잽싸게 베개 밑에 있던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는 택티컬 나이프 하나를 손에 쥐었다.
"누구야, 어디에서 왔지?"
당신이 반항하지 않는 이상 누워있던 자신과 당신, 그 위치를 뒤바꾸려 한 뒤, 당신 위에 올라타듯 하며 목에 칼날을 들이밀려 했을 것이다. 가뜩이나 흉흉하던 눈빛은 잠결에 초점이 맞지 못했으나 어둠 속에서도 번들거렸고, 머리카락은 숙인 고개에 맞춰 우수수 쏟아졌다. 이스마엘의 목에 걸려있던 은색 줄이 덜렁거리며 쏟아졌다. "대답해." 아직 꿈에서 벗어나지 못해 당신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는지 이스마엘이 숨을 한 번 씨근덕댔다.
보는 걸로만 만족하고 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굳이 앉아서 얼굴에 손을 댄 걸까. 찬찬히 들여다 본 이스마엘의 얼굴이 그리 편하게 자는 것 같진 않아서? 혹은 자잘히 상처와 흉터가 보여서일까. 눈썹을 가로지르는 흉터나 목에서 가려진 옷 아래로 이어지는 오래되어 보이는 흉터도 그렇지만, 최근에 생긴 걸로 보이는 뺨의 상처가 가장 눈에 밟혔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뺨을 건드린 손은 아마도.
"오."
그녀의 손이 뺨에 닿자마자 뜨이는 눈을 보고 겨우 작은 소리를 냈다. 결국 깨워버렸나. 이런 이런, 깨워버렸네- 그렇게 능청을 떨려던 그녀의 생각은 콱 잡히는 손에 훅 날아간다. 대신 빠르게 상황을 따라 반응한다.
그의 한 손은 그녀의 손을 잡고, 다른 손은 베개 밑으로 들어가는 기민한 움직임을 보고 레레시아는 몸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잡히지 않은 팔을 등 뒤로 넘기자마자 그녀의 몸이 휙 당겨져 침대 위로 눌렸다. 그 짧은 사이 녹색의 안광이 레이저처럼 어둠 속을 구르는 것을 보았다. 그나저나, 여기가 바닥이었으면 꽤나 아팠겠군. 그 와중에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의 위에 올라타 목에 나이프를 겨눈 이스마엘을 바라보았다.
누구냐고. 어디에서 왔느냐고. 전에 들었던 것과 전혀 다른 날카로움이 담긴 목소리는 갓 깬 사람답게 잠겨있다. 아니, 아직 잠에서 덜 깬 건가? 그녀는 쉬이 입을 열지 않고 그를 잠자코 응시했다. 흉흉한 빛을 발하는 두 눈과 시야를 어지럽히는 단발의 하얀 물결과 목에 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은색 줄의 흔들림과 아주 정확하고 적절하던 그 움직임까지. 대답을 재촉하는 소리에도 당황하지 않고, 눈을 이리 저리 굴리던 레레시아는 금빛이 감도는 눈동자를 살짝 휘었다. 그리고 대답, 아니, 말했다.
"나쁜 꿈이라도 꾸었니. 왜 그리 날이 서 있을까."
그녀로서는 조금 생경하게 들릴 나긋한 목소리를 내며 예민하게 곤두서있을 이스마엘의 신경을 다독여주려 한다. 말 뿐만 아니라, 미리 등 뒤로 넘겨 제압에서 풀어두었던 팔을 들어올려 한 손이나마 그의 얼굴을 감싸 쓰다듬어주려 한다. 괜찮아. 나긋함 속에 다정함이 담긴 목소리가 부드럽게 공기를 울린다.
"천천히, 눈을 감고 숨을 한 번 크게 쉬어. 여기에 널 해할 건 없으니. 괜찮아. 안심하고 천천히 눈을 감고, 다시 뜨고-"
두려워하는 아이의 경계심을 풀어 안정감을 주듯, 심호흡을 유도하고 진정이 될 만한 말들을 들려준다.
"내가 누구인지는 직접 보면 돼. 자. 조금씩 보는 거야. 내가 누구인지. 네가 어디에 있는지."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 조용히 숨을 죽였다. 과연 이 정도로 통할까 아니면 기어코 피를 보게 될까. 가만히 그를 주시하며 반응을 기다린다.
이스마엘이 자신의 눈 초점이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과 상대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목에 칼을 들이민 이후였다. 보이는 실루엣으로 가늠하자면 긴 머리를 가진 사람인 것 같다. 표정을 찡그리자 눈매는 더욱 매서워진다. 대체 얼마나 피곤했길래 이렇게까지 보이지 않는 건지. 제대로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가디언즈인가? 가디언즈다. 분명 가디언즈일 것이다. 분명 자신을 쫓 온 것일 테다. 그렇지 않을 이유는 없다. 자신은 의무를 버리고 도망쳐왔으니까. 그 사람들은 낙원에서도 사람을 사냥했으니 끝까지 자신을 쫓을 것이 자명한데 왜 방심했지?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하나? 아니, 처리해야 한다! 칼을 쥔 손에 힘을 더 주기라도 했는지 금세 핏줄이 돋았다. 잇새를 악물던 찰나, 이스마엘은 몸을 움찔 떨었다. 나긋한 목소리 때문이다.
"지금 무슨 소리를─"
몸이 더 크게 떨렸다. 경계하는 태도가 역력했다. 얼굴을 쓰다듬는 손에 이스마엘의 표정이 조금 더 험악해진다. "장난해?" 짐승이 낮게 울듯 묻는 목소리를 뒤로 한쪽 입술을 우그러뜨린다. 홉뜬 눈으로 쳐다보는 시선이 금방이라도 칼을 내지를 것 같았지만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기 때문인지 참사는 나지 않았다. 다정한 목소리에 이스마엘은 점차 자신의 생각이 이상했는지를 곱씹는 듯싶다. 괜찮다고? 뭐가 괜찮지? 가디언즈가 그런 말을 해도 되는 건가? 그런 짓을 저질러놓고……. 이스마엘은 흐린 눈을 질끈 감더니 몸을 한 번 떨었다. 숨을 쉬는 모습이 순간의 경계와 분을 삭이는 듯이 씨근덕댐에 가깝다. 뜨거웠던 감정이 다시 식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다시금 눈을 치켜뜨듯 하던 이스마엘이 새하얘질 정도로 쥔 손을 천천히 거두는 것도 어려운 일에 속했다. 아직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처럼 한참이고 미간을 찌푸린 뒤에야 이스마엘이 살짝 허리를 숙였다. 익숙한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자 함이었다.
"……레시?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는데. 그 사람이 내 방에 있을 리가 없잖아."
아직은 혼란스럽지만 적어도 당신을 제압한 힘은 줄어든 상태였다. 이스마엘이 다시금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팽팽히 당긴 실을 튕겨본 적이 있는가. 날붙이를 대기만 해도 끊어질 것처럼 당겨진 실은 굳이 날붙이가 아니어도 뭐가 닿던 떨림이 생긴다. 그녀는 지금 이스마엘이 그런 실 같다고 느꼈다. 알 수 없는 무언가에게 아플 정도로 당겨져, 부드러운 깃털이 닿아도 파르르 떨어버리는 것 같다고. 그 모습들을 그녀는 유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눈에 담았다. 귓가로 칼을 쥐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울려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목소리의 나긋함에 긴장을 풀기는 커녕 몸을 떨고, 위협 없는 손길에 숨길 수 없을 만큼 얼굴이 일그러진다. 목을 울리는 경계의 소리가 얼굴을 감싼 손에 울림으로 전해진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까지 몰아넣는 걸까. 의문이 들면서 동시에 긴장된 순간의 연속이었다. 이스마엘이 겨우 눈을 감고, 어렵사리 뜨고, 천천히 손을 거두는 때까지, 그녀는 허투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았다. 숨조차 흐트리지 않고 기다렸다. 그가 허리를 숙여 가까이 하면, 그녀의 노란 눈동자가 깜빡깜빡 쳐다보고 있었지.
그런데, 저 '레시'는 그녀를 말하는게 맞을까?
"꿈인지 아닌지, 그것도 직접 확인해보면 되지 않을까나."
새로운 의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전에 그녀는 일단 이 상황부터 정리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나긋하지만 조금 장난기가 가미된 목소리로 톡 튀듯 말하곤 몸을 움직였다. 제압하던 힘이 슬그머니 줄은게 느껴졌으니까. 기습적으로 허리를 튕겨 이스마엘의 몸에 가벼운 충격을 주고 그녀는 그 반동으로 상체를 일으킨다. 그러면서 해방된 두 팔로 이스마엘을 끌어안으려 한다. 잽싸게 도망가지 않았다면 그녀의 무릎 위에 이스마엘이 마주보는 자세로 앉아서 안겨 있는 모양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 되었다면 아마 시선이 약간 어긋났을 테니, 그녀가 고개를 살짝 들고 마주 보며 웃는- 듯이 눈매를 힌 표정을 짓는다. 그 뒤 재잘대는 목소리는 평소로 돌아왔겠지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주먹을 쥔 손이 새하얗게 물들고 이를 악물어 턱에 핏줄이 돋았다. 낙원을 해하려 온 자를 살려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아니, 그곳은 낙원이 아니다. 이젠 사냥꾼만 도사리는 곳이다. 아니, 그곳이 아닌 이곳인가? 아니. 아니야. 험악한 표정이 누그러지진 못했지만 계속되는 나긋한 다독임에 혼란이 치밀었다. 일각에서는 구슬리다 죽이는 것이 아니겠느냐 부추기고, 다른 일각에서는 본능으로부터 기인한 경고등을 보내온다. 이대로 죽였다간 해를 면치 못하리라는 감이 스산하다. 이스마엘은 잠깐이나마 자신의 감을 믿기로 했고, 덕분에 자신이 꿈속의 경계에 한 발을 걸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진짜 현실이 맞긴 한가? 힘을 푼 손아귀가 아픈 걸 보니 꿈은 아닌 것 같지만 당신이 여기 있다는 사실이 이스마엘에겐 혼란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안면을 트고 생사를 함께한 동료일지언정 방에 들어오는 일이 어디 흔하겠는가. 이스마엘은 허리를 숙여 노란 눈동자를 보고 두 배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왜 레시가 내 방에 있지, 여전히 꿈인가? 그럼 난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거지?
"그게 무슨─"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당신이 기습적으로 허리를 튕기자 이스마엘은 손아귀에 느슨하게 쥐고 있던 칼을 놓치고 말았다. 반동으로 상체를 일으키는 건 둘째치고 품에 턱 안겨버린 꼴이니 이스마엘의 녹색 눈동자가 점차 작아져만 간다. 당신의 얼굴을 마주한 이스마엘은 잠깐 크게 뜬 눈을 인위적으로 한 번 끔뻑이더니 상황을 파악하듯 시선을 굴렸다. 당황스러움이 박차를 가한다. 당신의 무릎, 자신, 칼……. 이스마엘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몽중과 현실을 구분하기 혼란스러움이 아니라, 이 상황이 현실임을 받아들이기에 많은 긍정적인 생각과 틀에 박히지 않은 열린 시선이 필요했다. 이스마엘은 마주 보며 웃듯 눈매 휜 표정에 아직 시간이 필요한지 말도 못 하고 입술만 뻐끔거렸다.
"아, 그, 그게- 이- 레시입니다!"
팔에 주는 힘을 느낄 무렵 이스마엘은 허둥지둥 말을 꺼냈다. 긍정적인 생각과 틀에 박히지 않은 열린 시선이 드디어 현실을 일깨웠기 때문이다. 위협한 것까지 꿈이 아니었다니! 그렇지, 사람이 남의 방에 들어와서 이렇게 칼로 위협 당하다가 위협한 사람을 무릎에 앉힐 수도 있지! 세상이 넓은데 그런 일이 설마 없겠어?
"그러니까, 그게, 미, 미안합니다..! 잠결에 그만.."
……없네? 당연히 없지!! 내가 미쳐. 이스마엘은 시선을 피하듯 했다. 사람을 위협하다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사람이 다칠 수도 있었어! 이 모지리야! 대략 그런 눈빛이 거짓말도 한 번 못하고 그대로 드러나버린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일으킨 반동으로 이스마엘의 손에서 칼이 빠져나가는 것이 시야 바깥으로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사실 긴장이 풀렸어도 갑자기 돌발 행동을 하면 유혈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옆으로 뒹구는 칼을 보니 그럴 걱정은 없어졌다. 그러니 마음 놓고 그를 품에 당겨 제법 단단히 받쳐 안았다.
"그치- 이 레시지- 응- 착각이 아니라서 다행이네-"
레레시아는 장난 같은 물음에 이스마엘이 정신을 차리고 대답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겨우 대답이 나오자 그렇지- 라며 안고 있던 손으로 그의 등을 토닥였다. 그러면서 계속 바라보는데. 그의 얼굴에 황망한 기색과 자책의 빛이 어리는 것을 보고 피식 했다. 이번엔 웃는 것 같은게 아니라 정말로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자세를 가다듬어- 다리를 양반다리로 앉고 그 위로 이스마엘을 누르듯이 완전히 앉혀버린 다음, 등을 토닥이던 손을 위로 올려 이스마엘의 뺨과 턱을 살살 간질이며 말했다.
"내가 몰래 들어와 그렇게 된 건데. 네가 미안할게 뭐가 있어. 괜찮아. 나 안 다쳤고, 혹시 위험했어도 너나 내가 다치게 하는 일은 없었을 거야."
그러니까 진정하자. 착하지. 그녀는 간질임에서 손을 펴 뺨을 감싸거나 그 사이 흐트러진 이스마엘의 단발을 가볍게 정리해주며 당혹스러움과 자책의 기색도 가라앉힐 시간을 주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엔 손을 내려 그의 등을 받치면서 물었겠지.
"그래. 이제 잠은 다 깼어? 무슨 꿈을 꿨길래 그랬대. 그래도 꿈은 꿈이니까 너무 곱씹지 마. 그런 건 얼른 잊을수록 정신건강에 좋아."
군인처럼 각 잡힌 행동이 마냥 꿈 때문만은 아닐 거란 예감도 살짝 있었지만. 쉬이 건드리지 않으며 이스마엘이 안정을 찾는 것에 도움을 주려고 했다. 은근히 붙잡고 있는게 도움이 될까만은.
이스마엘은 혼란스럽다. 지금까지 여러 번 강조했으나 혼란스러움이 아니고서야 이 경악과 당황 그 언저리에서 소용돌이 치는 감정을 설명할 수 없었다. 대체 동료의 품에 안기는 일이 세상 어디에 있느냔 말이다. 이스마엘은 사실 자신이 정교한 환각에 놀아나는 건 아닌가 잠깐 의심을 품었지만, 당신의 대답과 등을 토닥이는 손길에 그 의심마저 간단히 박살났다. 쪽팔린 상황이 환각도, 꿈도 아니라니.
"미안합니다.."
다시금 사과를 하고야 만다. 같은 동료를 구분하지도 못하고 공격했으니 면목이 없는 일이었다. 이스마엘은 자신이 작은 인기척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인정했다. 그렇지만 평소 같으면 상대를 봤을 텐데, 오늘은 상대를 보지도 않고 제압부터 했으니 스스로에게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자신이 깨기 전에 무슨 꿈을 꿨길래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곱씹으려 했으나 사람의 꿈은 눈을 뜨고 얼마 있지 않으면 흐려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요, 당신이 누르듯이 완전히 앉혀버리곤 뺨과 턱을 쓰다듬자 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고장난 듯 생각이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그것보다 몰래 들어왔다고? 겨우 눈을 굴린 이스마엘이지만 인간에겐 물리적인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문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내가 문을.. 잠갔나? 최대한 머리를 쥐어짜고 나온 결론은 참담했다. 안 잠갔다! 차라리 문이 잠겼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이스마엘은 당신의 손길에 자신의 아랫입술의 속 살을 잠깐 자근자근 깨물며 아직 남아있는 감정적인 흥분과 패닉, 그리고 생각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아래로 떨궜던 시선을 느릿하게 올렸다.
"다치지 않아 다행입니다."
흐트러진 단발 사이로 식은땀이 마른다. 등을 받치는 손길에 다시금 시선을 피하던 이스마엘은 눈을 아래로 훅 내리깔았다. "다 깨긴 했습니다." 좋은 위로지만 무슨 꿈이어도 곱씹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스마엘이 견뎌내야 할 일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불온한 사상을 가진 세븐스란 이유로 쫓겼던지라..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그때의 꿈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거짓말쟁이. 이스마엘은 안정을 찾듯 깊게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코로 살포시 내쉬었다. 어깨가 가늘게 떨리며 상승하다 아래로 하강한다. 꿈에서 깨어나 경황이 없었지만 꼴이 말이 아닌 건 알 것 같다. 이스마엘은 겨우 머리를 굴릴 수 있었다. 뭔가 위화감이 들었는데.. 가령 당신의 은근한 손길이 노이즈 너머로 닿았.. 페이시가 켜졌나? 잠깐, 그럼 내 목걸이는? 잠깐, 잠깐, 어라? 이스마엘의 고개가 은색 줄로 향하듯 내려간다. 납작한 은판을 이스마엘은 겨우 손을 들어 쥐어 가리듯 했다.
다시 사과를 하는 이스마엘을 보며 괜찮다니까, 라고 말해준다. 레레시아의 행동으로 인해 어떠한 반응이 나올 것은 침대에 걸터앉아 손을 뻗을 적부터 예상하고 살짝 긴장의 끈을 당겨두었기에 과격한 상황이 일어났어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었다. 반대로 얘기하면 너무 무방비했던게 아닌가 싶지만. 결론적으로 피는 보지 않았고 현재 상황도 그녀에게 꽤 만족스럽게 흘러가고 있었기에 전-혀 그가 미안할 이유가 없었다.
그걸 설명하지 않고 지금처럼 구는 그녀에게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이스마엘이 짜증을 내도 될 정도였지.
몰래 들어왔다 자백하니 그에게서 잠깐은 낭패의 기운이 느껴진 것도 같다. 아하. 문 잠그는 거 깜빡했던 거 구나. 잠든 것도 정신없이 그래보였으니 그럴 법도 하지. 오늘 일을 반면교사 삼아 앞으로는 문 잘 잠그고 자길. 그런 속생각을 담은 시선을 물끄러미 보내다가 다치지 않아 다행이란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도 그렇고."
만약의 얘기긴 하지만, 아까의 돌발상황에서 그녀가 세븐스로 대응을 했다면 절대 조용히는 안 끝났을 것이다. 이야. 아까 긴장을 좀 당겨 둬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조심- 할 지는 좀 두고 보고. 혼자 생각을 주워넘기다가 이스마엘이 시선을 아래로 깔자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그 시선을 따라간다. 붙잡고 있는 것도 모자라 이젠 시선도 안 놓칠 셈인 건가. 레레시아의 금안이 오늘따라 동그랗기도 하다.
"음- 좋은 꿈은 아니었겠다. 쫓기는 꿈은 영 싫긴 해. 도망치는 꿈이라던지."
그녀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렸다. 쫓기고, 도망치는 악몽. 아마 현대의 세븐스라면 한 번씩은 꿀 꿈이다. 그것이 정말로 아까의 반응을 일으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스마엘이 그렇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그녀는 그걸로 납득한 듯이 굴다가, 이스마엘이 은색 줄에 걸린 것을 손으로 쥐자 그 손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노이즈가 없었으니 정확히, 똑바로.
"그럼 잠도 다 깼으니. 초콜릿 먹을래?"
더듬더듬 말을 하려는 아스마엘의 목소리를 그녀의 목소리가 막아섰다. 뜬금없는 말이었다. 그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고개를 돌려 협탁위의 초콜릿 상자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거. 내가 가져온 건데. 원래 저거 주려고 왔어. 그런데 문이 열려있길래 잠깐 실례 좀 했지. 아. 걱정 마. 방 안을 눈으로 조금 보긴 했지만 건드리지는 않았어. 너 말고는."
꽤나 늦은, 그녀의 출입 경위에 대해 설명하고 건드린게 이스마엘 뿐이라고 말할 땐 한쪽 눈을 깜빡이기까지 했다. 그 쾌활한 말투로 그런 말도 했다.
"본의 아니게 이것저것 봐버렸지만. 그래서 궁금한 것도 있긴 한데.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묻지 않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거야. 물론 지금 있었던 일은 절대 함구할 거고. 지금이라도 재머를 켜고 아무것도 없던 것처럼 대해달라면 그럴 수도 있지. 아니면 당장 나가서 다신 상관하지 말라고 해도 되고. 어떻게 해줄까?"
말의 내용에 비해 목소리는 가볍다. 이스마엘이 달리 생각을 할 여유가 있다면, 조금 전부터 그녀의 말투가 '레시'보다 '라라'에 가깝다는 걸 알 수도 있겠지. 그는 쌍둥이를 동시에 만났고, 대화를 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그녀는 그저 그의 대답을 기다리며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고만 있었다.
에공... 매번 갑자기 잠수를 타버려서 일일히 반응 못하는건 너무 미안합니다... 쥬주 확인했고 답레는 천천히 편할때 줘~~ 고생 많았고 푹 쉬어라! 미안할 필요도 없다 상판은 즐겨야징~~~
>>574 장문의 주접으로 넘어가기 전에 예에에엤날부터 들려드리고 싶었지만 동접하던 때가 없다시피해서 미처 못 말한 답을 하겠습니다. 전에 유루가 마리 성씨 듣고 그냥 옛 친구 성이랑 비슷하다는 정도로 생각 할 것이냐 물어보셨던 걸로 기억 하는데요 유루는 친구분 성씨를 지금도 모르고 있습니당 (타란!) 친구분이 성은 말 안해주셔서 그럴걸요. 애초에 과거사 따지면 친구분 이름 아는 것 만으로도 감지덕지 아뉠가요 (실험체 출신) 그렇게 우겨봅니다 반박시 마리 내꺼
세상에 제 혼파망+그뭔씹 의식의 흐름 포켓몬 AU에 이런 장문, 고퀼 반응을 해주다니 마리주는 천사..? 트레이너 마리 글로 읽어도 너무 귀엽고, 캐디 쓰신거 보니까 전형적인 여주인공 쁼이 물씬 나서 너무 반갑고 이기라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잔뜩이야… 마리 펜드라 별명이 마네인거 보니까 마디네때부터 키운거 같아서 정말… 마리의 여정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해준 파트너를 보는것 같아서 글에서부터 왠지 노스탈지아가 느껴져… 마리는 정이든 애들 박스행 안 시키는 타입이구나… 잘 어울리고 매력적이야…흑흑 짱이다 마리의 혁명기. 끝에 엔딩 크레딧 올라오면서 탄압받는 사회 구성원들 인권 되찾아줘서 행복하게 웃는 마리 보고싶어ㅠ (마리주: 아…그뭔씹…;;) 마리와 펜드라 너무 귀여운 콤비잖아~자고로 귀여운 트레이너한텐 흉폭한 포켓몬 붙여줘야 하는 법 (음흠) 마리 다른 파티 멤버도 너무 궁금한데? 쓰읍… 마리주 현생만 아니였어도 탈탈 털었다… 돌아올때 캐묻는다 이거…ㅎr 마리… 목표 다 이루고 여정 끝을 보면 해줄 반응이 궁금하다….
유루주 마리주 썰 읽고 감탄하면서 한 80번은 읽어짜나~~~~그리고 삘 받아서 후일담 뇌절하듯 썼는데 스레 취지와 너무 동떨어져 가는걸 느껴서 차마 올리지는 못하게슴… 맛있는 AU 쪄주셔서 감사합니다, 배불리 먹었습니다…
숨기는 걸로 뭔가 도움이 된다면 모를까 싶지만 뒤늦게 밝혀졌을 때 충격을 생각해 보면 쉽게 결정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더군다나 이미 밝히기로 결심한 만큼 마음의 준비만이 남았을 뿐. 어째서 삶의 끝을 기다리는 듯 살아가는가... 네 질문에 레이면드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다가 짧은 말만을 내뱉었다. 너무 부주의해서.
"...그렇군요."
생각한 바를 전부 입 밖으로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그는 말을 고르고 골랐으리라고 생각하면서 너는 더 물어봐도 좋을까 고민했다. 궁금하긴 하지만 물어본다고 해서 그가 대답해줄지 알 수 없었고. 이 역시 나름의 대답이었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니 고민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부주의함이 때때로 일을 그르친다는 건 알지만... 그럼 삶에 의미를 두지 않는 건 주의 깊은 선택인가요? 부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다치지 않아 다행이지만 하마터면 전투로 이어질 수도 있었으니. 자신도 그렇다는 언급에서 괜히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시선을 아래로 깔자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니 이스마엘의 눈동자가 갈 방향을 잃어버린다. 시선을 굴려도 따라오니 대체,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이스마엘은 당신의 품 안에 있었고, 조금만 시선을 내려도 새하얀 머리카락에 감긴 얼굴이, 더 내리면 자신을 감싸 안은 팔이 보였다. 다시금 눈을 슬쩍 굴리자 금색 눈을 마주쳤다. 연두색 눈동자가 좌우로 슥슥 구르더니 결국 자신의 입술을 앙다물고 작게 헛기침을 했다. 사회는 고사하고 교우관계는 일절 없었다 보니 장난에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겠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반응을 생각하면 좋은 꿈은 아니었을 테다. 그렇게 믿기로 했다. 세븐스라면 누구나 꿀 수도 있는 꿈이고, 이스마엘도 겪은 일이다. 문득 자신의 베개 밑에 숨긴 것이 총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럼 내부에서 잠결에 실수로 격발해 상처를 입었던 날을 떠올리자 등골이 오싹했다. 입으로 담기도 끔찍하다. 더 이쪽 주제로 넘어가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납작한 은색 판을 손으로 쥔 것이 하나의 실수였는지 당신은 손을 바라보다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눈을 마주치기 힘든지 연두색 눈동자는 자꾸만 갈 길을 잃고 헤맨다.
"초콜릿, 말입니까?" 이스마엘의 서두와 함께 당신의 턱짓을 향해 시선을 던져본다. 협탁 위에 놓인 초콜릿 상자가 보인다. 아마 모든 일의 원흉은 저 무시무시할 정도로 맛있어 보이고 달리 보면 얄궂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포장을 한 초콜릿 때문인 것 같다. "아." 짧은 감탄사. 문도 열려있었다는 사실이 명확해지고, 방 안을 구경했단 말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손대봐야 이스마엘이 가진 비밀을 몇 가지 아는 일뿐이다. 편지를 읽는다면 조금 달라졌겠지만. 잠깐 입을 벙긋거리다 대답을 다시 정할 것인지 뜸을 들인다.
"……물어보셔도 괜찮습니다. 나가서 상관하지 말라고 하셔도, 동료지 않습니까."
영원한 비밀은 없다.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함은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무리 함구한다는 맹약이 있다 한들. 그럼에도 이스마엘은 사람을 제법 좋아하고 신뢰하기에 이런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고, 한발 물러설 수도 있었다. 이 상황에서 거절이라는 선택지를 가지기엔 스스로가 궁지에 몰렸다 생각이 든 것이 한몫을 하기도 했다. 이스마엘은 시선을 느릿하게 굴리다 눈을 마주쳐 본다. 동글동글한 금색 눈동자. 이제 보니, 쾌활한 말투에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레시보다 라라 같은 느낌인데.. 쌍둥이는 닮는다는 말이 있으니 그런 건가, 그렇다기엔……. 아니다, 잠이 덜 깼을 수도 있다. 이스마엘은 굳이 묻지 않고 입술을 꾹 닫으며 질문을 기다리기로 했다.
네 말에 긍정해 주면서 미소지는 그를 보니 때때로(사실은 자주) 이해하기 어렵지만서도 그것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의외로 좋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네 얼굴을 유심히 볼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네가 미소를 띄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으리라.
"으음, 네."
특히 주고 싶은 사람들만 추리라는 말에, 손가락을 꼽으며 줄 만한 사람을 생각해 본다. 으음... 역시 전부 줄 수는 없으니 함께 임무에 나서는 사람들에게 주는 걸로 할까. 대충 추려보면 10명 가까이 되는 것 같긴 한데, 그 중에서도 또 추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너는 유루쪽을 보며 입을 열었다.
"유루 씨, 아니... 예전에 이름은 원하는 대로 불러달라고 하셨었죠. 에봇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요?"
갑작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분명히 지난 번 대화에서 생각해보겠다고 했었고 그러니까 개연성은 문제없다. 그렇게까지 생각하면서 꺼낸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유루에게 의견을 묻던 너는 만약 유루가 그걸로 괜찮다고 이야기한다면 아마 계속 그렇게 부를 터다.
"유루 씨는(만약 에봇이라고 부르는 걸 OK했다면 에봇 씨가 되겠다) 특별히 주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뭔가 다른 사람에게 줄 거라면 더 만들겠다. 라는 식의 말이 오갔으니 애초부터 나눠줄 생각이었을까 싶어 묻는 모양이다. 물론 그 직후에 들려온 말에는 조금 멋쩍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졸아드는 사과를 쳐다보았다.
"...누구나 부러워 할 만한 힘과 지위를 손에 쥐고 있으면서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처럼 구는 사람을 보았으니까요."
아마 제가 여기에 서 있지 않았다면 저 역시 그랬겠죠. 네, 실제로도 거의 그랬고요. 라고 덧붙이다가 유루가 다시 블러디 레드에서의 일을 꺼내자 미안한 듯 자신의 뺨을 매만졌다.
"...네, 무모한 행동이었죠,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겠지만... 뭐든 장담할 수는 없으니까요. 앞으로 그럴 일은 없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만 그렇죠,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렇지만 역시 그런 일로 신경쓰이게 되면 문제가 되니까, 찢기지 않는 걸 목표로 하겠다고 덧붙이면서 조금 부드럽게 상황을 넘겨버렸다. 어차피 그가 심각하게 말을 내뱉는 듯한 분위기가 아니기도 하고.
"네, 맡겨만 주세요."
그리곤 그가 말한 대로 밀대와 파이지, 그리고 쿠키 커터도 함께 꺼내 와서 파이의 기반이 될 파이지를 밀대로 적당히 밀어 펼친다.
따로 레스를 올리는 것은 없지만.. 일단 이 미니게임은 딱히 스토리와 연관된 것은 아니고 그냥 어느 순간 어느 시점에서 다 같이 모여서 놀았습니다라는 전개에요. 저번 미션 잘 했다고 또 회식 열어줬다. 그런 거 아니에요! 참고해주세요!
손가락 접기 게임. 이른바 뭐 간단하게 말해서 차례대로 어떤 조건을 이야기하고, 그 조건에 해당하는 이는 손가락을 접으면 되는 게임이에요. 그렇게 해서 손가락 다섯 개를 다 접은 이는 그 턴을 맨 처음 시작한 이에게 진실게임 질문을 받으면 되는 거예요. 만약 두 명 이상이 접게 되었다. 그러면 다이스를 1~100으로 돌려서 더 높은 숫자가 나온 이가 질문을 받는 룰이에요. 그 점 기억해주세요.
순서는 체크 순서대로 해서..
이스마엘->레레시아->쥬데카->츄이->멜피->아스텔/에스티아 순이에요.
아스텔과 에스티아는 제가 게임의 인원을 늘리기 위해서 참가시킨 MPC 2명이며 둘 다 손가락은 별개로 계산되나 저는 조건을 한번만 이야기할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말한 후에는 다시 이스마엘주 차례에요. 사이클 한번 돌려봅시다!
그럼 이스마엘주부터!! 참고로 손가락을 접는 것도 조건을 이야기하는 것도 캐입으로 해주세요!
그리고 초기와는 다르게 지금 사람이 급많아진 관계로 룰을 조금 바꿔서.. 마지막으로 조건을 이야기한 이가 질문을 하는 쪽으로 바꾸도록 할게요. 모두에게 공평하게 조건이 돌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순서도 마지막으로 끊어진 다음 사람부터 시작이에요. 지금 이대로는 질문을 할 기회가 아예 불공평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큰지라. 그러니까 순전히 모든 것은 운으로!
근데 조금 진지하게 이야기해서 상대 캐릭터의 시트 정보를 모두 기억하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캐릭터 성별이나 정말로 간단하고 기본적인 것을 실수하진 않도록 주의를 하도록 합시다. 아무리 그래도 성별을 몰랐다..라고 하면 이건 조금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큰 것은 아니고 작긴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시트조차도 안 읽는 이로 보이기 딱 좋으니 서로서로 오해 생기지 않길 바라며
아무래도 이스마엘에게 질문을 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아스텔은 잠시 생각하다 숨을 약하게 내뱉고 이야기했다.
"...에델바이스에서 가장 같이 임무를 수행하기 어려울 것 같은 이를 한 명만 지목해줘. 아무런 뒷끝도 없고 싫고 좋고가 아니라 그냥 전투 스타일 등이 나랑은 조금 곤란할 것 같다 하는 이 한 명. 다시 말하지만 뒷끝은 없고 좋고 싫고가 아니라 그냥 손발이 잘 안 맞을 것 같은 이야. 세븐스건 뭐건."
일단 인원은 많고.. 엔주는 진실게임에 참여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얘기해주세요! 고양이 잘 놀아주고 오세요! 아무튼 일단 시작할게요.
리스트는..
레레시아 멜피 승우 이스마엘 유루 쥬데카 레이 선우 아스텔 에스티아
이렇게 되며 진실게임 질문은 지목해도 좋고 다이스를 굴려도 상관없어요. 가급적 질문과 답변은 단문으로! 그리고 질문에 답을 한 이가 다음 질문을 하는 이가 되며 그렇게 질문을 한 이는 리스트에서 삭제되는 방식이에요. 그 점을 참고해주세요. 첫 질문자는 답변을 하지 않았으니 리스트에서 삭제되진 않아요.
그럼 처음 시작은..
.dice 1 8. = 3 그리고 다이스를 굴리건 뭘 굴리건 질문을 한 이는 답변을 해야하는 이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얘기해주세요!
"아직 서로에게 발을 맞추는 건 조금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제가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라 그런걸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두 번 전부, 네. 힘으로 밀어붙였다는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라서요. 그렇지만 모든 게 다 딱 딱 맞아 떨어져서는 기계나 마찬가지고, 돌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니까 발전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봅니다, 어쨌거나 지금 우리는 여기에 멀쩡히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