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딴청이라도 피운 것처럼 그녀가 말을 하자 아스텔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녀를 바라봤다. 이런 느낌이었던가? 아니. 그렇다고 하기에는 뭔가 정신을 완전 놓아버린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아스텔은 더 빤히 그녀를 바라봤다. 뭔가 어영부영한 목소리도 그렇고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말을 뒤늦게 덧붙이는 모습까지.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그렇게 생각을 하며 아스텔은 두 눈을 깜빡이면서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응. 별개의 임무가 있어서 며칠 정도. 이제 돌아왔으니 또 한동안은 쉴 거라고 생각하지만."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또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기에 그는 확신을 가지는 대답이 아니라 아마 그렇지 않을까 정도의 어투만 그녀에게 내뱉었다. 이내 자신을 가만히 주시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는 괜히 또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면 자신에게 볼일이라도 있었던 것인가. 그렇게 생각을 하며 아스텔은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아니면 나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어?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지만. ...피곤하면 방에 들어가서 쉬는 것이 어때. ...뭔가 지금 정신을 다른 곳에 두고 온 것 같은데."
그러다가 임무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땐 자기 몸 추리기도 힘들 거라고 이야기를 하며 아스텔은 다시 빨대로 주스를 한 입 빨아서 마셨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 앞에서 뭘 먹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조금 애매하지 않나 싶어 차마 샌드위치는 먹지 못한채.
"...딱히 그런 거 없다는 말은 안 믿어. ...방금 전 목소리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고 난 보이는 것만 믿는 주의라서."
멍하니 서있던 레레시아는 아스텔이 대답을 해주자 그제서야 다시 반응했다. 좀 전보다는 자연스러웠지만 그렇게 짜인 프로그램 같은 느낌은 어딘가 남아있었다.
"안 보이는 내내 임무였던 거? 고생은 아스텔 혼자 다 하는 거 같은데. 팀이 하는 거에 비하면."
나나 팀원들이 하는 건 비교도 안 되겠어- 라며 또다시 어영부영 넘어가려던 분위기는 아스텔의 정곡을 콕 집는 말로 인해 그대로 굳었다. 아니, 굳은 건 그녀였다. 말이 굳었다였지 뜨끔한 표정이 되어 눈을 가늘게 좁히고 아스텔을 흘겨보았다. 뭔가 불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으나 곧 짧은 한숨과 함께 슥 풀어져 덤덤해졌다.
"이런거에 눈치 빠른 사람은 영 별로더라. 뭐 내가 티 팍팍 내고 있긴 했겠지만."
예전 같지 않다며 혼잣말 하듯 궁시렁거린 그녀는 괜히 애꿎은 머리카락을 잡고 꾹꾹 당겼다. 그래봤자 아픈 건 그녀의 두피였으니 금방 관둔다. 근질거리는 손을 꾹 쥐어 걸치고 있던 자켓 주머니에 쑤셔넣고는, 별 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일은 무슨. 너랑 마주친 것도 우연이야. 방금 전까지 내가 여길 걷고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뭐. 그냥, 그냥 좀 심란해서 그래. 개인적인 문제, 아니 고민 때문에."
그냥 그거 때문이라고, 곧 정리할 거라고 말하며 슬금 옆으로 물러난다. 서로 볼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갈 길은 가야 하지 않겠는가. 서로 지나갈 수 있게 비켜서선 하나 질문을 더했다.
"너- 낚시 하러 가는 곳 어디야? 위치 대충 알려줘 봐. 가서 물구경이나 하게."
복도가 마침 나가는 길로 향하니 이대로 나가서 산책이나 하고 올까 싶었다. 또 누군가 마주쳐 저런 소리를 듣기 전에 말이다.
"...뭐, 항상 그런 것은 아니야. 그냥 조용히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일도 있어서. ...아니면 하루종일 낚시를 즐긴다던가. ...그리고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다 눈치챌 정도일걸. 그런 수준이면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매일매일 수준으로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며 아스텔은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아무튼 자신만 눈치챈 것은 아닐 거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아스텔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내 그녀가 옆으로 물러섰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앞으로 가거나 하지 않았다. 심란하고 고민이 있다. 대체 무슨 심란한 일이 있고 고민이 있기에 저런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아주 조금의 호기심이 생겼고 그는 이내 입을 열었다.
"낚시? 하긴 생각할 것이 많을 때는 물을 구경하는 것도 좋지. 나도 그럴 때가 많으니까."
그러다가 낚시도 하고. 그런 아무래도 좋은 소리를 하면서 아스텔은 가만히 쭉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켠 후에 그녀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데려다줄까? ...지금 그대로는 걸어가다가 나무에 부딪히거나 벽에 부딪힐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내 세븐스를 사용해서 날아가면 단번에 갈 수도 있고."
대신 낚시대를 가지러 잠깐 방에 갔다오겠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했으나 그녀가 거절한다면 더 말을 하거나 하진 않았을 것이다. 거절하는데 뭘 어쩌겠는가. 억지로 붙어서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여유롭다던가. 전부 거짓일 뿐이었으니까. 나는 너의 말에 대꾸도 하지 못하고 웃을 뿐이었다. 사랑받고 싶다던가- 하는건 분명 사실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랑을 받을 준비조차 되지 못했었지.
그리고 그 반동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찾아와버렸다. 내가... 내가ㅡ 지금 무슨 말을 한거지.
"아....."
예전부터 이랬다. 나는 누구를 좋아할때 무언가 엄청난 사건이 필요한게 아닌.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그냥 가벼운 일상속에서 정말 갑작스레 좋아 미칠거 같이 되버린다. 대체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쉬운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는거 아닐까? 이제 겨우 한 발자국 뗄까 말까한 이야기에서 내가 지금 뭐라고 지껄인거지?
얼굴이 새빨개진거 같았다. 나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있어? 나, 나..
"어?"
그러나 예상외로, 너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아. 역시 내가 너무 정떨어지게 말했나? 하지만 그 후의 행동은 더 예상외였고. 갑자기 구석에 들어가버리더니 쪼그려 앉아서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서 하는 말에. 네가 뭐 때문에 그러는지 알거 같았지만. ........... 알거 같았지만.
'어쩌지'
정말 미안하게도. 내가 지금 너를 보고 느끼는 감정은 그렇게 진지하지 않을거라서. 어쩌지 정말.
나는 지금 네가 너무 사랑스럽고 귀엽게밖에 보이지 않아.
내가 걱정한것은 네가 나에대해 전혀 그럴 감정이 없었을때지. 그 외의 요인은 겁나지 않았다. 있지, 나는 분명히 여유로운 사람은 아니지만. 평소의 행동이 결코 연기인것은 아닌걸.
"뭘, 못해주는데?"
바닥만 훑고있는 너의 뒤에 다가가서는, 아니 같은 선상. 그러니까 너의 옆으로 다가가서는 나는 멀쩡한 손을 뻗었다. 그 손은 그대로 너의 뺨을 매만지는가 싶더니 갑작스레 내 쪽으로 돌리며. 그대로.
"나한테 키스해주는거? 나를 만지는거? 나를 안는거? 어떤걸 못해주는데?"
키스하려 했습니다. 다만 네가 피하든 피하지 못하든. 진짜로 하지는 않고 코앞에서 멈춘뒤 다시 너를. 놓아줬겠지만. 나는 너를 바라보며 아까 네가 해줬던것처럼. 잡아달라는듯 손을 뻗었다.
"네가 나를 여자로 볼 수 없어서 안된다고 한다면.. 포기할 수 있어."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도 여자로서 자존심이 있어. 이대로 물러날 생각도 없고."
그래, 만약에 날 받아줄 수 있는데. 그 외의 문제가 걸리는거라면. 나도 그저 부끄럽다고 넘길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