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죽이겠다는 선언을 한 레이버는 삼지창을 있는 힘껏 높게 치켜세운 후에 그 삼지창을 땅으로 힘껏 내려찍었다. 이내 삼지창에게서 진한 남색 빛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전원 다 몸이 따끔따끔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뭔가가 정말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듯한 아픔. 그것은 그렇게 큰 것은 아니었지만 묘하게 거슬리기 딱 좋은 느낌이었다.
머리, 어깨. 팔, 어쩌면 다리 부분까지. 그렇게 전신이 따끔거리는 것이 마치 계속 푹푹푹 찌르는 듯한 느낌이 느껴지는 가운데 레이버는 무덤덤한 얼굴,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입을 열었다.
"...글라키에스의 제안을 받았다면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유감이야. ...적어도 지금만이지만."
이어 그녀는 있는 힘껏 높게 뛰어올랐다. 뒤이어 근처의 빗방울들이 빠르게 모여들었고 이내 굵고 높은 물줄기를 생성했다. 그리고 레이버는 그 안으로 들어섰다. 굵고 높은 물줄기 속의 그녀는 마치 동화속에 나올법한 인어공주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물줄기 안에서 모두를 내려다보는 눈빛은 무덤덤하면서도 상당히 차가웠다.
/레이버의 보검 해방. 레이버의 페시브 스킬 발동. 비를 대처하지 못하는 이는 매턴 10의 데미지 부여.
이번 전투의 여러분들의 라이프는 100이에요. 저번은 30이었지만 보검에 익숙해지면서 체력이 조금 더 상승했습니다. 고로 이번 전투는 100! 자. 전투 스타트! 8시 10분까지!
죽음이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그만큼 인간에게 있어 커다란 각오가 필요하다. 이스마엘은 그 사실을 안다. 막상 눈앞에서 죽음을 목격하는 것에서 노이즈 속의 표정은 어땠을지. 이스마엘은 삼지창을 내려찍는 모습과 함께 몸이 따끔거리는 것을 느꼈다. 거슬린다. 죽음이 이렇게 쉽게 다가온다. 필히 죽일 것이다. 안다. 이스마엘은 제안을 가장했던 일방적인 요구를 깨닫고 고개를 기울였다.
불현듯 떠오른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기 전 한가지 확실한 것은 오만과 더불어 각오라. 역시 인간은 오만하지 않나. 글라키에스가 있는 쪽을 흘끔 쳐다본 이스마엘은 덤덤하게 입매를 굳힌다. 노이즈 속에서, 나아가 노이즈 속 개를 형상화 한 마스크 사이에서 굳게 닫힌 입이 뭔가 각오한 듯싶다. 만약 버텨낸다 쳤을 때 글라키에스가 무슨 말을 해도 이제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말의 언급없이 대처해보고자 한다. 발을 천천히 떼며 공중으로 한 걸음 내디뎌본다. 그리고 염력으로 반구 형태의 장을 만들듯 하며 그대로 주변을 굳혀보려 시도했다.
글라키에스라고 했나, 말끝마다 승리자니 패배자니 쓸데없을 정도로 반복해대면 황당해서 외려 우습다. 다만 듣는 사람을 아니꼽게 만드는 게 목적이라면 성공한 셈이다. 나서지 않아준다면 이쪽에서는 고마운 일이고. 단순히 여유를 부리는 것인지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인지는 아직 파악할 수 없지만 당장 협공당하는 것보다야 나았다. 그는 협상을 운운하는 레이버를 향해 가볍게 중지나 들어올린다. 그리고 곧, 척하니 올린 손끝으로부터 단단한 견갑이 그의 몸을 뒤덮기 시작한다. 손목과 팔, 사지를 비롯한 몸 곳곳에 내장형의 총포와 보호구가 덧대어진 형태의 무장이었다.
무장을 두른 채로도 느껴지는 공기가 그 자체로 따가웠다. 비 때문인가? 판단을 마친 그는 가장 간단한 방법부터 시도해보기로 했다. 외장의 표면이 비늘처럼 일어나며 한 차례 뒤집어진다. 이윽고 폭발음과 함께 그의 전신이 불길에 휩싸였다. 퍼져나가는 압력의 충격보다는 연소에 더 중점을 둔 폭발이었다. 물이 문제라면 침투하지 못하도록 몸을 불태워 해결한다는 발상인가,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보검의 힘을 빌린 덕에 이 정도의 충격은 능히 버틸 수 있으리라.
울리듯 퍼져나가는 빛은 짙은 회색. 인어를 닮은 레이버의 외형이나 습도 높은 공기, 그리고 내리 찍히는 듯한 자잘한 고통을 주는 물방울. 이 모든 것을 끼워 맞춰 본다면 아마 빛은 푸른색 계열이 아니였을까. 자신의 주변을 떠다니듯 흐르는 물감보다는 더 검어보이는 빛이였다.
보검으로 무장을 하는것은 한 순간. 그리고선 떠다니던 물감을 반절 떼내어선 공중에 떠올린다. 얇게 발리듯 넓게 퍼진 물감은 여전히 물감 특유의 액체성을 띄며, 빗방울을 막으려는 듯 하다. 적어도 대다수의 부대원들은 지킬수 있을 정도로 넓게 펴진 물감.
분명 충분히 가져왔다 생각했다만, 확 줄어버린 물감. 남아있던 물감은 공명하듯 파동을 일으킨다.
몸이 따끔거린다. 아마데우스는 신경쓰이는 감각에도 나이프을 쥔 손에 힘을 주려했다.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동화적이라기엔 이질적인 모습이군. 그녀는 나이프로 손목을 그어 피를 흘려냈다. "Let It Bleed!(피 흘리게 놔둬)" 흘려보내진 피가 허공에서 형상을 갖추더니 길다란 미늘창으로 변했다. 아마데우스는 창을 빙빙 돌리더니 자세를 잡았다.
창을 던져도 내 몸에서 떨어지면 별 소용이 없다. 접근전만이 허용되지만 저 물줄기가 있는 이상 접근전은 어렵다. 그렇다면 나는 저 물줄기가 사라질때까지 동료들을 서포트하는게 좋겠어. 그녀는 다른 이들이 방어막을 펼치고 공격을 막아내면 행동을 나설 작정인지 잠시 뒤로 물러서 동료들의 방어막 뒤로 몸을 숨기려 했다.
전투가 시작됨과 동시에 땅을 박차오르며 허공으로 떠오른다. 그 순간에 보검을 해방하자 그녀의 살갗에 검고 반투명한 나노코팅이 둘러지며 일체화 된다. 그녀에게는 유달리 취약한 독극물에도 저항을 가지도록 방호처리가 되어 있는 장비다. 이걸로 물줄기들을 흘려 보낼 수 있을지는-
한 편, 공중에 떠올랐던 그녀는 이제 레이버와 동등한 고도에 위치하고 있었다. 눈을 마주치는 즉시 두 손을 마주 쳐 쥐고는 레이버를 향해 내뻗는다. 그러자 두 팔뚝이 일체화되고 팽창하며 우글거리기 시작한다.
「GORE FEAST」
어느새 전철 정도의 크기로 불어난 고깃덩어리. 탐욕스런 거대한 아가리가 달린 그것을 내달리게한다. 쏘아내는 것이다. 레이버를 물어 뜯기 위해 일방통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