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검의 힘을 해방한 멜피가 낫을 이용해서 글라키에스를 향해 낫을 휘둘렀지만 글라키에스는 피식 웃으면서 아주 살며시 뒤로 유연하게 회피했다. 그 모습은 절대로 약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1:1로 싸운다면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말 그대로 적어도 지금 이 상태에선. 그리고 마찬가지로 엔의 촉수 역시 둘에게 닿는 일 없이 두 여성은 아주 가볍게 회피했다.
"...보검의 힘."
"호오. 보고받은 그대로네."
하나하나 보검을 해방하는 제 0 특수부대원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글라키에스와 레이버는 흥미롭게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모두가 제안을 거절하고 USB를 보란듯이 삼켜버리는 시늉까지 나오자 글라키에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살아날 수 있는 길을 제시를 해도 그 길을 굳이 고르지 않는 것을 보면 역시 패배자는 패배자야."
선우의 도발은 신경조차 쓰지 않으면서 글라키에스는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그리고 상당히 거만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리고 보아하니 진짜 보검은 아니네. 우리가 사용하는 것에 비해서 출력이 꽤 약한 것 같은데. 하기사 그 힘을 패배자인 너희 따위가 사용할 수 있을리 없지. 그러면 제안도 거절했겠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우리들의 일을 해야 할텐데... 어쩔래? 레이버?"
"...혼자라도 충분해. ...무엇보다 죽여야 하는 이 있어."
이어 레이버는 살며시 고개를 돌리더니 쥬데카가 있는 방향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오른손을 살며시 위로 들어올렸다. 마치 아스텔이 보검을 소환할 때와 비슷한 자세였다.
"...너. 알고 있어. ...배신자. 이 세상의 정의를 부정하는 존재. ...유언은 듣지 않을게."
이내 진한 남색 빛이 길다란 검의 형태로 모였고 레이버의 오른손에 진한 남색 보검이 생성되었다. 아스텔이 보여줬던 보검과 비슷한 디자인. 하지만 그 색은 확연하게 달랐다. 이내 레이버는 눈을 감았고 기합을 크게 넣었다. 이내 남색 보검은 강력하게 빛을 보였고 그 빛은 하늘을 뚫을 기세로 강력하게 솟구쳤고 레이버의 몸을 집어삼켰다. 이내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고 하늘에서 땅을 향해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땅을 촉촉하게 적실 정도의 약한 비였으나 그럼에도 모두의 몸을 적시기에는 충분한 정도의 비였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자 보이는 것은 인어와 비슷한 느낌의 남색 지느러미형 장갑이 달려있는 하반신의 모습이었다. 오른손에는 남색 삼지창을 들고 있으며 상반신은 가벼운 파란색 장갑으로 덮여있고 입에 마스크를 하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인어공주와 비슷한 느낌의 형태였다. 또한 주변으로 퍼뜨리는 위압감은 이전 훈련 때 아스텔이 보여줬던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최소한의 자비야. 나는 끼이지 않을게. 하지만 레이버의 집념은 꽤 강하거든? 자. 패배자 여러분. 어디 한 번 열심히 날뛰어봐. 혹시 알아? 어떻게 어떻게 운이 좋으면 살 수 있을지 말이야! 아하하하! 뭐, 정 나와 싸우고 싶다면 싸워줄수야 있지만... 너희들에게 그 정도 여유는 없잖아. 그렇지?"
이어 글라키에스는 자신은 이 싸움에 끼일 생각이 없다는 듯이 살며시 뒤로 빠졌고 근처에 있는 나무를 단단하게 얼려버리면서 그 나무 줄기로 향하는 얼음 계단을 만든 후 천천히 올라섰고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어 레이버는 삼지창을 앞으로 향했다.
"...배신자. 그리고 테러리스트. ...비능력자들에게 있어서, 그리고 이 세상에 있어서 너희들은 필요없어. ...여기서 전부 죽어."
그 내용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쌍둥이의 대답을 얼마나 귀담아듣고 얼마나 흘려들을지는 듣는 사람에게 달려있었다. 그리고 그 대답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것도 들은 이가 하거나 혹은 직접 되묻는 수 밖에 없다. 행여 작은 반박이라도 낸다면 그 나름의 말을 들을 수 있을테니. 지금처럼.
"누구나 할 수도 있다는거지. 정말로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그치- 할 수 있으면 하고- 아님 마는 거지- 관심 없어-"
마치 그녀들 외에는 관심도 없고 신경도 쓰지 않는 듯한 말과 말투다. 그저 그런 투를 낸 것이 아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쌍둥이는 그대로 표정 변화 없이 다음 대답을 읊었고 술을 마셨다. 쌍둥이가- 두 사람이 한 말 중 정말 하고 싶은 걸 물으려다 거두는 쥬데카를 보고 짤막히 덧붙인다.
"대답해주는 건 어렵지 않지만. 알아봤자 불편한 진실은 모르는게 약이야." "그러네에. 그리고 쥬우는 듣기만 하니까아 치사하다구-? 아까-도 대답 얼버무렸으면서어."
그러니까 여기까지. 라며 쌍둥이 중 누군가가 말했다. 아니면 둘이 동시에 대답했거나. 그 뒤 쥬데카가 덧붙인 말에 쌍둥이도 자연스럽게 말머리를 돌렸다.
"그-야 나는 술이 흡수되구- 라라는 해독되니까아. 마셔도 마셔도- 알콜이 몸에 안 남는 걸-" "마신 순간에는 살짝 취하긴 하는데. 잠깐이라서. 마시는 재미는 없지. 대단하다 할 것도 없고." "술값만 너무 많이 나와- 아무트은. 쥬우는? 더 마실래-?"
레레시아는 쥬데카에게 따라주었던 와인병을 들고 더 마시겠냐는 듯 흔들어보였다. 더 마신다면 흔쾌히 따라주겠지만, 라라시아가 앞서 했던 말이 있으니 사양해도 눈치 보일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