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팀원들이 사내를 상대하고 본부와 통신을 하는 동안 그녀는 숲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 사이 누가 움직인 것도 같은데. 잘은 모르겠고. 말한대로 구경이나 하러 가듯 가벼운 걸음이었으나 그 앞에 떨어진 무언가로 인해 걸음이 멈췄다. 떨어지며 조각조각 부서진 그것은 분명 사람이었다. 지난 번 임무 때 보았던 것과 같아보이는.
"흠- 너구나-? 와일드팽인지 뭔지- 다 얼려서 부순거어."
레레시아는 몸을 돌려 연신 패배자 패배자 떠들어대는 여자를 보며 말했다. 그 옆이 레이버인가 뭔가겠지. 방금 저 여자가 그렇게 말하기도 했고. 탈주병이나 대원이나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직접 행차해주셨으니 그냥 보내면 섭하지.
"어휴우. 뭐 그렇게 시끄럽게 짖어- 원래 약한 개일수록 요란스럽다던데- 너어 사실 별 거 없는 거 아냐아? 푸풉."
시끄러운 그 여자를 향해 빈정거리고 속 빈 웃음소리를 내고. 명백히 비꼬는 태도를 취하며 슬슬 건드려본다.
선우는 가디언즈 배신자의 멱살을 잡으려고 그에게 다가갔다. 애초에 이상했다. 가디언즈의 탈영병이 내부고발을 하겠다며 우리에게 달려왔다는게..
이 모든 것이 다 함정이었다고 생각한 선우는 주위에 있는 적들이 있는 지 확인했다. 그를 더 추궁하려던 그때, 무엇인가 떨어지며 깨지는 소리가 났다.
인간 형상의 얼음조각, 선우는 직감했다. 이건 은밀부대 인원이며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은 이 빌어먹을 자식들의 짓이다.
"에스티아씨, 기관총 잘 작동 되죠? 수틀리면 쏴주세요. 부탁해요."
깨진 얼음 대원 뒤에 서 있던 여성 두 명, 검은색 빵모자를 쓰고 있는 긴 생머리 금발 벽안의 여성과 무표정한 단발 남색의 여성, 정황상 빵머리가 레이버라는 간부일 것이다. 첫 전투다. 놈은 강하다. 아무리 잠입 요원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버렸다. 뛰어난 실력자들일 것이 분명했다.
남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확실시 된 시점에서부터 봐줄 건 없었다. "개씨**아." 그는 남자의 머리통을 있는 힘껏 갈겨버리고는 새롭게 나타난 두 여자를 주시했다. 속았다는 사실에 열이 받지만 무턱대고 나설 때는 아니다. 하나는 레이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얼음덩이가 되어 처참하게 부서진 누군가를 일별하자 어느 순간의 장면이 머리를 스친다. 로벨리아가 보여주었던 화면 안의 그 광경.
"*. *됐네."
상대방이 무어라고 도발적인 말들을 해댔지만 그는 그것을 귓등으로 흘렸다. 로벨리아가 염려했던 최악의 상황이 닥쳤으니 무얼 할지 재어 볼 필요는 없다. 다행히도 상대는 한껏 여유를 부리느라 공격하지 않고 있으니, 그는 그 틈을 타 주변을 살피며 퇴로를 살피고 있었다. 교전을 피할 수 없다면 싸우되, 그러나 생존을 우선으로. 이곳의 모든 인원이 힘써 잠깐이라도 틈을 만들 수 있다면 그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되니 미리 알아두어야 했다.
대체 뭐가?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챈 건 다행이지만 대체 어떤 부분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아니면 특정한 부분만? 그렇다면 대체 어떤 부분이? 제기랄, 대체 왜 거짓말을 했지? 아니,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야, 도망자가 맞다면, 배신자가 맞다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바닥에 무언가 부딪혀 깨지는 소리... 그러나 유리와 같이 쨍그랑,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저 퍼석, 하고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보이는 것은 산산조각난 얼음덩어리, 익숙한... 그리고 서 있는 두 여성.
"...들켰나."
배신자, 누구? 그? 아니면, 너? 너는 복잡해지는 머리를 애써 진정시키려고 하면서 섣불리 움직이는 대신, 잠시 그 둘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역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 곳에서 너를 포함한 동료들을 기다리던 그들은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만큼은 사실 같았다. 그리고 그들이 자진해서 싸움에 나선 게 아니라, 기습을 당했거나... 혹은 내몰렸다는 것도.
"사실대로 말하십시오, 당신... 대체 뭘 한 겁니까?"
가디언즈의 배반자,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믿는 그 사내를 바라보는 네 시선이 사뭇 싸늘하다. 대답을 잘 해야 할 거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시선. 그건 그거고, 지금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어떻게 봐도 자명했다. 만약 감지되던 두 명의 가디언즈가 저 둘이라면, 아니. 이미 한 명은 짐작이 충분히 갔다. 지난 번 하나의 레지스탕스를 전멸시킨 쪽이겠지. 그렇담 나머지 한 명은... 직접 본 적이라곤 없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 살아 있는 거겠지, 그렇구나. 나는 운이 좋았던 건가.
마리는 주변을 조금 더 탐색하긴 했지만 특별히 보이는 무언가는 없었다. 아무래도 더 이상 거기서 뭔가를 더 찾아내기는 힘들어보이는 듯 했다. 한편 레레시아의 도발을 듣고 있던 검은색 빵모자 여성은 레레시아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와일드팽? 뭐야. 그거. 누군지 기억 안 나는데. 내가 너희같은 패배자 찌그래기들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어야 해? 약한 개일수록 요란스럽다? 그럼 그 약한 개보다 더 약해빠진 존재이자 패배자인 너는 뭐라고 부르면 될까? 정말 패배자들은 하나하나 다른 것이 없어서 재밌다니까. 더 얘기해봐. 더. 잘하는 것이 그런거라면 그런 거라도 해서 네 존재가치를 보여야지. 안 그래?"
"...토끼 깡총 부대?"
"토끼 깡총 부대건 뭐건 그런 것이 뭐가 중요해? 응?"
이내 빵모자 여성을 향해 날아오던 총알은 일제히 땅바닥에 떨어졌ㅇ다. 꽁꽁 얼어붙은 총알은 이내 금이 가더니 일제히 쪼개졌다. 피식 웃는 웃음소리를 내면서 그녀는 선우를 바라보면서 다시 이야기했다.
"중요한 것은 너희 패배자들은 우리에게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이야."
한편 승우는 퇴로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과연 지금 상황에서 무사하게 도망칠 수 있을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계속 싸우는 것은 과연 맞는 일일까? 한편 선우에게 멱살을 잡히고 승우에게 머리를 맞고 쥬데카가 노려보고 있는 사내는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이내 자포자기라도 했는지 키득거리면서 이야기했다.
"내가 뭘 잘못했다는건데? 애초에 너희들이 빨리 눈에 안 띄고 빨리 안와서 이렇게 된 거잖아!! 이대로 있으면 USB는 저기 저 글라키에스와 레이버에게 뺏겼어! 나는 이 USB를 전달해서 가디언즈가 비밀리에 진행중인 그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 뿐이야!! 너희들이 빨리 안 와서 이렇게 된 거라고!! 이대로 가면 전하기도 전에 죽을 것 같아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와 여기서 만난 그 자를 미끼로 써서 시간을 끈 것 뿐이야! 동료 확인을 위해서 대장의 오른팔이라는 사내를 거론해서 반응을 살피는 것으로 파악할 생각이라고 이야기를 한 것이 있어서 이 자를 믿고 기다려도 될까 고민하다가 결국 그 자가 준 가스를 이용해서 힘을 빼놓고 그 자의 수첩으로 너희들이 뭐하는 녀석들인지 알아내서 내 나름대로 아군인지를 파악하려고 한 것 뿐이야!! 뭐,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기 위해서 미끼로 그 작자를 저 숲에 던져놓았지만.. 그 덕분에 시간을 끌어서 너희도 USB를 받을 수..."
"...시끄러워."
이내 레이버라고 불렸던 여성이 손을 휘둘렀고 이내 사내의 뒷편에 있던 호수의 물이 일부 살짝 솟아오르는 듯 하다가 땅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그대로 그 물은 날붙이가 되어 단번에 사내의 심장 부분을 꿰뚫었고 이내 사내는 피를 토하면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그 모습은 아마 모두에게도 보이지 않았을까.
-귀환 지점까지 최단거리... 아까전의 우리가 이동한 포인트대로 이동하면 돼. 하지만 바로 열진 못해. 그러니까 조금만 시간(=5턴)을 끌어줘. 그러면 다시 귀환 포인트를 열테니까.
-교전을 허가한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너무 위험해. 그러니까 만약 가능하다면 쓰러뜨려도 좋지만, 지금은 최대한 워프 포인트를 열 때까지 시간을 끌어라. 알았나? 상대는 아마도 보검 사용자. 모두 보검을 해방해서 교전해라!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죽지 말고 살아남아라. 어떻게든!
열리면 바로 이야기를 하겠다고 로벨리아 쪽에서 통신이 걸려왔다. 물론 그 통신 내용을 알 길은 없었으나 이내 에스티아의 통신 내용이 다시 들어왔다.
-빵모자를 쓰고 있는 여자. 글라키에스를 특히 조심해. 글라키에스는... 정말로 무서운 작자야.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그대로 죽여버릴 수 있는 작자. 그와 동시에... 너무나 잔인한 작자.
"자. 패배자 여러분. 작전타임은 끝났어? 그럼 여기서 제안하나 할게. 그 USB를 넘겨주거나 스스로 부숴준다면 우리도 여기서 손을 떼겠어. 그래. 살려서 보내주겠다는 거야. 승리자인 우리들 입장에선 꽤 많은 자비를 베풀어준 것 같은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