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노을이 지고 있는 저녁시간이었다. 아마 대체로 저녁 식사를 마치거나 혹은 저녁 식사를 하려고 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혹은 밥을 먹지 않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간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참으로 조용했던 단말기가 울리는 것은 바로 그 시간 무렵이었다. 그 내용을 확인했으면 아마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도착한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긴급 미션이다. 다쳐서 못 오는 것이 아니면 전원 참석하도록.] [지하 2층 회의실로 와라. 최대한 빨리.]
당연하지만 그 메시지는 로벨리아가 보낸 것이었다. 아무래도 뭔가 급한 임무가 생긴 것일까? 일단 지하 2층 회의실로 내려와서 들어오면 평소보다 조금 더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로벨리아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브리핑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이 모니터에 띄워져있었고 그 뒤로 에스티아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들어왔나. 그럼 앉도록. 이야기는 전원 다 들어오면 하도록 하지. 말해두는데 이번 미션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으니 제 0 특수부대 활동 전의, 혹은 저번 미션 정도로 생각하지 말도록."
기합이 꽉 들어간 목소리로 보아 아무래도 뭔가 정말로 중요하거나 위험한 임무가 주어질 것이라는 것을 아주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왜 라면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걸까? 물은 종이컵으로 3컵을 냄비에 넣고 불을 켜기 전에 스프와 건더기를 넣고 끓인다. 불순물이 들어가면 끓는 점이 높아져서 더 맛있다고 하는 데 솔직히 잘 모르겠고 그냥 수증기가 뜨거워서다. 불은 강불로 물이 펄펄 끓도록 한다. 물이 끓으면 면을 넣고 기다린다. 면이 조금 풀어지면 파와 계란을 넣는다. 개인적으로 국물의 맛을 최대한 보존하고 싶기에 계란은 젓고 그냥 익힌다.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낸다. 그리고 불을 끄고 라면을 밥상에 옮긴다.
뜨거운 증기와 냄새가 감각을 자극한다.
"잘먹겠습니다!"
첫 한입을 먹기 직전, 참으로 조용했던 단말기가 울렸다. 선우는 아무것도 모른 채 단말기를 확인했다.
"망할.."
한숨을 쉬고는 김치만 냉장고에 넣고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 들어가자 언제나 진지했지만 오늘은 특히 더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로벨리아와 언제나처럼 컴퓨터 앞에서 보고를 준비하기 위해 컴퓨터에 앉아있는 에스티아가 있었다.
단말기에 갑작스레 울린 그 시간. 레레시아는 저녁 대신 빵덩어리를 물고 방에서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마저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어느 생각에 골몰해있었는데. 협탁에 올려놓은 단말기가 울렸다. 상념을 깨우는 소리에 그녀는 먹던 빵을 내려놓고 단말기를 집어들었다.
"긴급 미션이라."
간결하면서도 다급함이 느껴지는 메세지는 어쩐지 범상치 않은 미션일거란 예감이 든다. 레레시아는 조용히 옆구리에 손을 얹고, 그대로 하복부까지 쓸어내렸다. 다쳐서 못 오는 것이 아니라면- 아직은 괜찮다. 징조는 없었으니.
판단을 마친 레레시아는 복장을 갖추고 모조 보검을 챙긴 후 지하 2층의 회의실로 향했다. 방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평소와 똑같이 어딘가 느슨하고 나사 빠진 모습이 된다. 그렇게 설렁설렁 걸어가 회의실로 들어가서 빈 자리 아무 곳이나 잡고 앉았다. 모두가 모이기 전에 로벨리아가 하는 말을 듣고 또 축 늘어져 다리를 꼬며 중얼거린다.
"저-번에도 꽤-나 위험했는데에 이번이라고- 뭐어가 다르려나아."
기대해볼까나- 중얼거리며 꼰 다리의 발을 까딱까딱 흔들고, 조금은 불량한 태도를 취한 것 같을지도. 그 한마디 이후엔 얌전히 모두가 모이고 본론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단말기가 울리면 남성은 곧바로 시선을 그쪽으로 향한다. 조용히 놓여있던 단말기에 쓰여진 메시지를 읽고 나면, 채 비우지 못한 따듯한 그릇을 들곤 일어선다. 잔여물을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대충 쏟고선 온기가 감도는 그릇은 이미 복작복작한 싱크대에 밀어넣는다. 몇 입 건들지도 않은 미트 파이는 그렇게 식고, 버려질 것이다.
그후 회의실까지 걸으며 물병을 하나 비운다. 분리수거였나, 그냥 쓰레기였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몸에 익은 움직임이였는지, 그는 분리수거 통에 물병을 던져 넣는다. 진지한 표정의 로벨리아를 보면 괜히 편해진다. 그런 표정을 걱정을 뜻하고, 걱정도 나름 애정이니. 애정을 싫어할 사람이 있던가. 그런 이상한 스케마를 거치고는 자리를 찾아 앉는다.
목소리를 듣자하니 거의 당연하게도 위험한 일을 시킬것 같다. 그래도 언질 해주니 좋으네. 행여나 미트파이 굽던 기름 내음이 배었을까, 팔 소매 부분을 잡고 조심히 냄새를 맡아본다. 그래봤자 굽던 사람인데 냄새가 맡길 리 있겠냐마는.
제 0 특수부대원들이 하나둘 들어오고 전원이 참석한 것을 확인하자 로벨리아는 에스티아를 바라보다 다시 모니터 쪽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특정 좌표가 찍혀있었는데 그 위치는 U.P.G 건물이 있는 도시와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어느 숲이었다. 지금 자신들이 있는 이곳과는 거리가 조금 있었으며 방향도 반대인 그곳으로 지휘봉으로 가리킨 로벨리아는 말을 이었다.
"조금 전 제 3 은밀부대에서 활동하는 멤버 중 하나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그쪽 부대는 은밀한 임무. 이를테면 같이 뜻을 할 동료를 물색하거나 위험한 세븐스들을 구조해서 안전한 마을로 데려가거나 하는 그런 임무를 하고 있는데 가디언즈를 배신하고 나온 병사와 접촉했다는 모양이다. 이 병사는 딱히 우리와 뜻을 같이 할 생각은 없다고 하니 레지스탕스로 데려오거나 할 생각은 없긴 하지만, 나오기 전. 가디언즈 본부에서 뭔가 중요한 파일을 USB를 이용해 빼냈다는 모양이더군. 꼭 모두가 알아야만 하는 내용이라고 하는데. 어차피 방송국에 뿌려봐야 통제를 당할 뿐이고,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것 같아서 레지스탕스 쪽에 정보를 주기 위해 물색하다가 우리 부대원과 접촉을 했다는 모양이야. 아무튼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냥 가디언즈를 배신한 병사가 내부 정보 하나를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는 이야기야. 하지만..."
이내 로벨리아는 에스티아를 바라봤고 에스티아는 침을 꿀꺽 삼킨 후에 다음 화면으로 넘겼다. 거기에는 가디언즈의 마크가 달려있고 조직도가 그려있었다. 가장 위에 있는 것은 현 U.P.G 의장의 모습이었다. 진한 적색 짧은 머리카락에 누가 봐도 노장의 분위기가 엿보이는 건장한 체격. 그리고 매우 날카로운 붉은 눈동자. 얼핏 봐도 근육이 많아보이고 상당히 냉정해보이는 60대 정도의 사내의 모습이었다. 그 아래로 7개의 텅 비어있는 사각형이 담겨있었다. 이어 로벨리아는 우선 사내의 모습을 가리켰다.
"일단 이 사내가 현 U.P.G의 의장이자 가디언즈를 총지휘하고 있는 사람. '아르센 레베우스'라는 이다. 일단 얼굴과 이름 정도는 기억해두도록. 현재 우리가 가장 적대하고 있는 사내이기도 하니 말이야. 아무튼 이 밑으로 일곱 명이 있는데 이 일곱 명이 보검을 가지고 있는, 그러니까 우리가 사용하는 모조품이 아니라 진품 보검을 사용하고 있는 간부급 클래스야. 이 간부급 클래스 중 하나가 그 병사를 뒤쫓고 있다고 진술했어. 이름은 레이버. 물론 지금 여기서 밝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어. 애초에 가디언즈의 간부 클래스는 정보가 없어도 너무 없으니까. 무슨 세븐스를 사용하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우리 측에선 아는 바가 없어.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 간부 클래스가 움직일 정도의 정보일수도 있다는 이야기야. 혹은 그냥 우리를 끌어내려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어찌되었건 그 정보의 여부를 확인해볼 필요는 있고 아스텔은 현 시점, 다른 일로 임무를 나간 상태이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너희들밖에 없어. 그렇기에 전원 출동해서 그 병사와 접촉하고 USB를 회수해. 경우에 따라서는 그 간부 클래스. 레이버라는 이와도 교전할 수도 있지만 가급적 교전은 피하도록. 어쩔 수 없이 교전을 해야만 한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아남도록."
이내 브리핑을 간략하게 마무리지으면서 로벨리아는 모두를 바라보면서 숨을 돌린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질문 있나? 있다면 대답하도록 하지. 아무튼 준비를 끝내고 좌표를 맞춰뒀으니 워프실로 가서 워프하도록 해."
"아. 이번엔 아스텔이 없으니까 제가 지원해드릴게요. 이거. 작전지까지 가져간 후에 땅에 내려주시면 그 이후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이어 에스티아는 검은색 드론을 하나 안은 후에 대원들에게 내밀었다. 양 날개 부분에 기관총 같은 것이 달려있었고 머리 부분에는 스캔 장치 같은 카메라가 달려있었으며 그 아래 쪽에는 주변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카메라 유리 너머에 달려있었다. 아랫부분엔 작은 안테나 같은 것도 달려있는 것으로 보아 일단 에스티아가 나름대로 만들어낸 무언가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선은 U.P.G 의장의 외관을 담은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스르륵. 눈동자가 로벨리아 쪽으로 굴러간다. 질문 할 건덕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애초에 정보가 별로 없으니. 그 병사가 믿은만한 인물인가, 그런 질문은 대장을 얕잡아보는 질문이기도 하고. 생각은 금새 접힌다.
그는 다른 대원이 드론을 받는걸 가만 보고 (그보다 먹지 않고 가져가겠다고 굳이 말하는건 뭘까. 육성으로 말하면 되려 더 먹을거란 생각이 드는데? 이건 굳이 시비 걸기 싫어 입 밖으로 내진 않은 말이다.)과묵히 자리만 지키고 있다가, 좌표를 맞춰두었다는 말이 나오면 곧바로 일어서 자신의 방으로 향한다. 아마 물감을 쟁여놓으러 가는 것일 거다. 곧 그도 워프실에 도착할 것이다.
가디언즈 병사 였던 사람이 나와서 정보가 담긴 USB가 어쨌던가. 현 U.P.G의 의장은 아르센 레베우스이며 그 밑에 7명의 간부가 있고 그 중 한 명이 탈주한 병사를 쫓고 있다던가. 뭔가 많은 내용이 브리핑으로 지나갔지만 결국 귀에 들어온 내용은 단순하다. 그래서 특수부대의 임무는 탈주병으로부터 USB를 받고 복귀하는게 이번 작전이란 것. 아스텔 대신 에스티아가 서포트 해준다는게 저번과 다른 점이긴 했지만.
"이 참에 하나- 잘라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로벨리아는 간부급과 교전을 가능한 피하라고 했지만 그럴 수록 교전은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런 감을 지울 수 없다면, 교전을 각오하고 나가는게 낫다. 레레시아는 훌쩍 자리에서 일어나 워프실로 갔다. 이미 준비는 다 마치고 왔으니 다시 방에 들릴 필요는 없었다.
"재밌으려나아."
그 작은 중얼거림은 그녀와 비슷하게 워프를 통과한 사람들은 아마 들었을지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워프를 건넌 후 가볍게 몸을 풀 뿐이었지만.
가디언즈에서 도망쳐나온 병사의 이야기가 들려오자 너는 네 귀를 의심했다. 배신자와 접촉을? 그것도 중요한 정보를 손에 쥐고 있는 배신자라... 마음을 가라앉힌 너는 로벨리아의 브리핑을 집중해서 듣는다. 로벨리아의 눈짓에 넘겨진 화면에는 가디언즈의 조직도가 보여지고 있었고, 그 꼭대기에는 그러니까, 가디언즈의 총 지휘자이자 U.P.G의 의장이 있었다. 이름은 아르센 레베우스. 풍채 좋은 사내의 모습에 너는 살짝 몸을 떨었다. 그리고 그 배신자를 붙잡기 위해, 아니, 아마 처분할 생각이겠지. 그러기 위해서 간부가 직접 나선 것일 테고, 로벨리아는 그런 사실을 바탕으로 병사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했으리라. 너는 도저히 좋게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에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USB를 회수해서 확인하려면 돌아와야만 합니까? 아니면 마주친 상황에서 확인할 방법이 있을까요?"
아마 에스티아라면 USB를 획득하는 즉시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너는 답을 기다린다. 그동안 에스티아가 검은색 드론을 하나 건네자, 아마 저 드론으로 지원을 해 주는 거겠지라며 생각한다. 구체적인 건 도착한 뒤에야 알 수 있겠지만.
"그리고... 교전이 발생한다면 아마 따돌리기는 어려울 듯 한데, 혹시 관련된 지침은... 없습니까?"
후퇴를 최소한의 피해로 마무리하는 것은 때론 곧 승리에 준한다. 그러나 상대는 진짜 보검을 지닌 간부, 마주쳐 교전을 시작한다면 아무런 피해 없이 도망칠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누군가... 가로막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