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하다면 시시콜콜할 수 있는, 그다지 깊은 고민 없이 주고받는 듯한 말들이었지만 그런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도 그동안 살아온 게 담겨있는 법, 두 사람의 이야기에 너는 네가 조금 섣부르게 이야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며 대답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러지 않는 사람들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너는 그들이 하는 말에 조금 소극적이지만 반대 의견을 내 본다. 부족하다는 말에는, 뭐가 부족하다는 걸까 싶어 살짝 눈치를 살폈지만, 더 캐묻지 않고서야 구체적인 걸 알아챌 수는 없겠지, 물어봐야 할까? 그런 고민은 곧 자신에게 향하는 두 사람의 시선에 눈 녹듯 사라졌다.
"......"
대신 목표가 되어줄 곳, 아무래도 좋지만 목표가 없는 건 아닌 두 사람. 정말로 원하는 것은 하면 안 되니까 할 수 없다? 하면 안 되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같을 수 있는가? 할 수 없기 때문에 포기했는가, 아니면 하면 안 된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에게 할 수 없다며 끊임없이 설득하고 있는가. 글쎄... 어떠려나.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묻는 건... 실례겠죠, 네.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적어도 그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논리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인간만큼 논리적이지 못한 존재가 또 어디 있겠는가. 어디든 여기저기 가져다 붙이는 게 곧 논리이기도 했으니. 너는 그래도 일단, 한 번 물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질문을 건넸고, 그들이 대답해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표현을 더한 뒤에 자신을 향한 두 사람의 시선에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때는 노을이 지고 있는 저녁시간이었다. 아마 대체로 저녁 식사를 마치거나 혹은 저녁 식사를 하려고 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혹은 밥을 먹지 않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간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참으로 조용했던 단말기가 울리는 것은 바로 그 시간 무렵이었다. 그 내용을 확인했으면 아마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도착한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긴급 미션이다. 다쳐서 못 오는 것이 아니면 전원 참석하도록.] [지하 2층 회의실로 와라. 최대한 빨리.]
당연하지만 그 메시지는 로벨리아가 보낸 것이었다. 아무래도 뭔가 급한 임무가 생긴 것일까? 일단 지하 2층 회의실로 내려와서 들어오면 평소보다 조금 더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로벨리아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브리핑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이 모니터에 띄워져있었고 그 뒤로 에스티아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들어왔나. 그럼 앉도록. 이야기는 전원 다 들어오면 하도록 하지. 말해두는데 이번 미션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으니 제 0 특수부대 활동 전의, 혹은 저번 미션 정도로 생각하지 말도록."
기합이 꽉 들어간 목소리로 보아 아무래도 뭔가 정말로 중요하거나 위험한 임무가 주어질 것이라는 것을 아주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왜 라면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걸까? 물은 종이컵으로 3컵을 냄비에 넣고 불을 켜기 전에 스프와 건더기를 넣고 끓인다. 불순물이 들어가면 끓는 점이 높아져서 더 맛있다고 하는 데 솔직히 잘 모르겠고 그냥 수증기가 뜨거워서다. 불은 강불로 물이 펄펄 끓도록 한다. 물이 끓으면 면을 넣고 기다린다. 면이 조금 풀어지면 파와 계란을 넣는다. 개인적으로 국물의 맛을 최대한 보존하고 싶기에 계란은 젓고 그냥 익힌다.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낸다. 그리고 불을 끄고 라면을 밥상에 옮긴다.
뜨거운 증기와 냄새가 감각을 자극한다.
"잘먹겠습니다!"
첫 한입을 먹기 직전, 참으로 조용했던 단말기가 울렸다. 선우는 아무것도 모른 채 단말기를 확인했다.
"망할.."
한숨을 쉬고는 김치만 냉장고에 넣고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 들어가자 언제나 진지했지만 오늘은 특히 더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로벨리아와 언제나처럼 컴퓨터 앞에서 보고를 준비하기 위해 컴퓨터에 앉아있는 에스티아가 있었다.
단말기에 갑작스레 울린 그 시간. 레레시아는 저녁 대신 빵덩어리를 물고 방에서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마저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어느 생각에 골몰해있었는데. 협탁에 올려놓은 단말기가 울렸다. 상념을 깨우는 소리에 그녀는 먹던 빵을 내려놓고 단말기를 집어들었다.
"긴급 미션이라."
간결하면서도 다급함이 느껴지는 메세지는 어쩐지 범상치 않은 미션일거란 예감이 든다. 레레시아는 조용히 옆구리에 손을 얹고, 그대로 하복부까지 쓸어내렸다. 다쳐서 못 오는 것이 아니라면- 아직은 괜찮다. 징조는 없었으니.
판단을 마친 레레시아는 복장을 갖추고 모조 보검을 챙긴 후 지하 2층의 회의실로 향했다. 방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평소와 똑같이 어딘가 느슨하고 나사 빠진 모습이 된다. 그렇게 설렁설렁 걸어가 회의실로 들어가서 빈 자리 아무 곳이나 잡고 앉았다. 모두가 모이기 전에 로벨리아가 하는 말을 듣고 또 축 늘어져 다리를 꼬며 중얼거린다.
"저-번에도 꽤-나 위험했는데에 이번이라고- 뭐어가 다르려나아."
기대해볼까나- 중얼거리며 꼰 다리의 발을 까딱까딱 흔들고, 조금은 불량한 태도를 취한 것 같을지도. 그 한마디 이후엔 얌전히 모두가 모이고 본론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단말기가 울리면 남성은 곧바로 시선을 그쪽으로 향한다. 조용히 놓여있던 단말기에 쓰여진 메시지를 읽고 나면, 채 비우지 못한 따듯한 그릇을 들곤 일어선다. 잔여물을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대충 쏟고선 온기가 감도는 그릇은 이미 복작복작한 싱크대에 밀어넣는다. 몇 입 건들지도 않은 미트 파이는 그렇게 식고, 버려질 것이다.
그후 회의실까지 걸으며 물병을 하나 비운다. 분리수거였나, 그냥 쓰레기였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몸에 익은 움직임이였는지, 그는 분리수거 통에 물병을 던져 넣는다. 진지한 표정의 로벨리아를 보면 괜히 편해진다. 그런 표정을 걱정을 뜻하고, 걱정도 나름 애정이니. 애정을 싫어할 사람이 있던가. 그런 이상한 스케마를 거치고는 자리를 찾아 앉는다.
목소리를 듣자하니 거의 당연하게도 위험한 일을 시킬것 같다. 그래도 언질 해주니 좋으네. 행여나 미트파이 굽던 기름 내음이 배었을까, 팔 소매 부분을 잡고 조심히 냄새를 맡아본다. 그래봤자 굽던 사람인데 냄새가 맡길 리 있겠냐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