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620093> [1:1/다크 판타지] ℕ𝕀𝔾ℍ𝕋ℝ𝕀𝕊𝕀ℕ𝔾 - #1 :: 527

◆POCYqa2/e6

2022-09-20 01:45:16 - 2022-10-28 20:25:13

0 ◆POCYqa2/e6 (f//PpKMsfU)

2022-09-20 (FIRE!) 01:45:16


“𝙰𝚝 𝚗𝚒𝚐𝚑𝚝 𝚠𝚎 𝚊𝚛𝚎 𝚊𝚕𝚕 𝚜𝚝𝚛𝚊𝚗𝚐𝚎𝚛𝚜, 𝚎𝚟𝚎𝚗 𝚝𝚘 𝚘𝚞𝚛𝚜𝚎𝚕𝚟𝚎𝚜.” ─ᴀʟᴇxᴀɴᴅᴇʀ ᴍᴄᴄᴀʟʟ sᴍɪᴛ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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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엘레나 (sKR3NWOtDc)

2022-09-22 (거의 끝나감) 16:56:09

"좋아요. 저도 바라던 바입니다. 빚을 지운 사람을 계속 데리고 다니는 것도 마음이 불편하니까요."

저는 평소에 웬만해서는 다른 이의 도움을 청하지 않는 편입니다만... 이번만큼은 예외로 둘 수 밖에 없었어요.
아무리 헛된 꿈이라도 잠들지 못하면 꿀 수 없으니까요. 이건 그 초석이라고 해두죠.
그리고는 경박스러운건지 친절한건지 모를 그를 따라서 마차역으로 향했습니다. 잠시 동안 짧은 거래가 오고갔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라고하면 역시나 였을까요.

"잠깐, 기다리세요. 거기의 마부."

'어서 타시죠' 라고요. 말은 잘하는군요. 분명 저희가 처음이 아니었을겁니다. 좌석에 오르는 그를 잠시 멈춰세우고 마부에게 뚜벅뚜벅 걸어갔습니다.

"80은 너무 많지 않나? 은화 60만 받으시죠. 그리고 당신은 이 뻔히 보이는 싸구려 기만에 뭘 흔쾌히 주머니를 여는 건가요?"

이정도 사기는 딱히 제가 심문관 출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누구나 뻔히 알아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이 로라시아의 지리도, 통화의 시세도 알지 못하는 말 그대로의 문외한입니다만 마차가 수도까지 이동하는데 이 정도의 값을 받는다는 건 엄연히 상식 밖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이 마부의 반응으로 봤을 때 60도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 청년분은 현지인임에도 왜 이런 사기에 걸려주는 걸까요. 흔히 말하는 상식이 부족한 백만장자인가요?

"미리 말해두지만 탐욕스러운 인간이 모는 마차에 몸을 맡길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여행길을 초치는 법이거든요. 그러니 당장 값을 깎지 못하겠다면 저희는 다른 마차를 찾아보겠어요."

저는 여기서 확고히 말해둔 뒤에 마부의 답변을 기다렸습니다.
당장 20 은화를 청년분께 돌려주는게 현명할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나머지 60 은화도 무른 뒤에 즉시 다른 마차를 찾아갈 생각이었으니까요.

121 엘레나주 (sKR3NWOtDc)

2022-09-22 (거의 끝나감) 16:57:44

그래서 걸어봤습니다! ㅋㅋㅋㅋㅋ 헤헤~

122 ◆POCYqa2/e6 (IoppecSisw)

2022-09-22 (거의 끝나감) 17:33:25

엘레나가 부르자 마부는 고개를 흘끔 돌립니다. 청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채 좌석에 올라간 발을 내렸습니다.
곧 이어진 엘레나의 말에, 마부는 얼굴을 붉히며 고함을 빽 질렀습니다. "뭐요!?" 제가 받은 돈의 4분의 1을 깎으라는 얼척없는 요구 탓입니다. 그러다 돌연 제게로 날아온 화살에 청년도 당황한 것처럼 보입니다.

"엥? 그야 이런 거 일일히 신경 쓰면 귀찮잖아. 그리고 80은화는 쉽게 벌 수 있다고."

상식이 부족하다기보단 그냥 돈 쓰는 걸 고민하지 않는 쪽에 가까운 것 같네요.

"아니, 이보쇼. 뭘 모르시나 본데..."

한편 어이없다는 듯 잔뜩 격양된 투로 말을 이어나가려는 마부. 하지만 그의 시야에, 무장한 기사가 마차역으로 들어오는 광경이 보입니다. 물론 이 마부가 사기를 치는 걸 알고 오는 건 아닐 겁니다. 단순히 순찰을 돌고 있을 뿐이었죠.

"어휴, 됐다. 그럼 20은화 돌려드리면 되는 거요?"

그는 갑자기 말을 바꾸더니 한숨을 푹 내쉽니다. 60은화면 좀 아쉽긴 하지만, 괜히 소란 피우다 경비병에게 걸려서 벌금을 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마부석에서 내려온 마부가 말들에게 터덜터덜 걸어가더니 안장 가방에서 10이라 쓰인 주머니를 두 개 꺼냅니다. 주머니들은 휙 날아가 청년의 발치에 놓였습니다. 그가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입니다. 그러더니 군말 없이 돈을 챙기는군요.

"이제 진짜 출발할 겁니다. 어서 타쇼."

방금 전의 소란 탓인지 마부의 목소리에 기운이 없습니다.

123 ◆POCYqa2/e6 (IoppecSisw)

2022-09-22 (거의 끝나감) 17:34:00

ㅋㅋㅋㅋㅋㅋ 정의구현 당한 마부씨(이름없는 모브)

124 엘레나 (sKR3NWOtDc)

2022-09-22 (거의 끝나감) 18:25:14

"그런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쉽게 벌었건 어렵게 벌었건 돈은 항상 정당한 거래 아래에서 오고 가야 하는 거예요."

오자마자 이런 부당한 사기를 목격하게 되다니요.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로라시아 대륙은 제 고향보다 많은 면에서 발전한 줄로 알고있었습니다만, 이런 부분은 전혀 개선되지 않은 건가요.
마부는 염치를 모르고 여전히 제게 반론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제일 질색입니다. 자기 자신이 범한 오를 인정하지 못하고 추태를 보이는 인간들이요. 아마 지금도 저의 출신과 겉모습만을 보고 얕보고 있는 거겠죠?
그런 그가 갑자기 꼬리를 만 것도 조금 지나서입니다. 뒤에서는 기사들이 철컹거리며 걷고 있었는데, 아마 저들 덕이겠죠. 저런 양철로봇 같은 사람들은 이럴 때 도움이 되는군요.

"가죠."

은화를 돌려 받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저는 마차에 올라탔습니다. 모든 일은 해결됐지만 저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어요.
마부라는 사람의 언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그런건 아무래도 좋아요.
이런 허접한 사기를 뻔히 알면서도 받아주려고 하는 그랑, 그렇게 하는게 당연하다는듯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는 이 분위기가 저를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도착하자마자 최악의 소식을 접했는데... 열이 받네요!

"당신도 조금은 조심하도록 하세요."

마차에 난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로 그에게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얘기했습니다. 괜한 분풀이였었죠.

125 엘레나주 (sKR3NWOtDc)

2022-09-22 (거의 끝나감) 18:26:05

ㅋㅋㅋㅋㅋㅋ 나이스~ 그럼 원래 마차 가격은 얼마정도 했으려나? (궁금

126 ◆POCYqa2/e6 (IoppecSisw)

2022-09-22 (거의 끝나감) 18:38:20

40~50은화? ㅋㅋㅋㅋㅋ

127 엘레나주 (sKR3NWOtDc)

2022-09-22 (거의 끝나감) 18:40:51

역시 60도 비싼거였나!!!! 캬아아아아악 (하악질

128 ◆POCYqa2/e6 (IoppecSisw)

2022-09-22 (거의 끝나감) 19:29:54

"뭐, 노력은 해볼게."

엘레나를 뒤따라 마차에 올라탄 청년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실실 웃으며 답합니다. 진지함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네요. 그는 엘레나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랴!" 마부의 목소리와 함께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말발굽이 거친 돌바닥을 박차는 소리가 들립니다. 마차의 좌석도 울퉁불퉁한 돌바닥을 지나며 일순 덜컹입니다.
바깥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방으로 온통 암석들과 바위산이 높게 솟은 풍경이 보일 겁니다. 그리고 그 풍경은 마차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여정이 시작된다는 실감이 엘레나에게 잘 느껴질 순간입니다.
그리고 청년도 입을 열었습니다. 엘레나에게 심문관이 무엇인지, 동대륙은 어떤 곳인지를 묻는가 하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제 이야기를 술술 불기도 했습니다. 엘레나가 대꾸하든 대꾸하지 않든간에요. 덕분에 엘레나는 방금 전의 해안 도시가 아타후알파라는 이름이었다는 것도, 이 청년이 대륙 전역을 떠도는 용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 시끄럽게 떠들던 청년은 어느 순간 눈 좀 붙이겠다는 말을 끝으로 조용해졌습니다. 고개를 꾸벅 흔들며 졸고 있는 모습이 퍽이나 편안해 보입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험한 고원을 오래도록 달려나가자 바깥 풍경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합니다. 드높게 세워진 바위산들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지평선이 훤히 보이는 너른 광야가 펼쳐졌습니다. 저 멀리 말을 탄 사람들과 이동식 천막이 움직이는 광경도 보입니다.
마차는 그 후로도 한참을 달렸습니다. 어둑어둑한 밤하늘 아래 놓인 대초원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슬슬 구경이 질릴 때가 되자 새로운 풍경이 나타납니다. 조촐하게 지어진 작은 마을의 모습입니다. 아까 보았던 유목민들과 달리, 이곳에 정착해 생활하는 이들도 있는 모양입니다.
마을과 어느 정도 가까워진 마차는 곧 그 자리에 멈춰섰습니다. 이곳이 마차가 경유하는 마을들 중 하나인 모양입니다. 마차가 완전히 정차하고 마부가 내립니다. 그는 마차에 매달린 수통으로 말들에게 물을 먹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부에게 두 명의 사람이 다가오는 것이 보입니다. 한 명은 이제 막 얼굴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체구가 작은 게 어린아이처럼 보였습니다. 헌데 아이는 온통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자세한 생김새를 알기 어려웠습니다.
여인과 마부의 대화소리는 여과 없이 엘레나에게도 들려옵니다.

"저기, 혹시 수도까지도 가시나요?"
"안 그래도 수도로 가던 참이었수다. 타시려고?"
"아, 네. 돈은 충분하니까... 되도록 빨리 가주셨으면 좋겠어요. 많이 급해서요."
"그럼 타쇼. 40은화요."

둘의 대화는 이상한 구석이 없었습니다. 엘레나가 보아도 저 마부, 아까 전처럼 사기를 치려고 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그녀에게 따끔한 한 소리를 들어서일까요.
곧 여인은 아이를 이끌고 마차에 올라탑니다. "잠깐 실례할게요." 그녀는 아이의 손을 꼭 쥐고서 좌석 한켠에 앉습니다. 이윽고 엘레나와 청년을 쳐다보면 여인이 넉살 좋게 웃으며 말을 건네옵니다. 한편 로브를 쓴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두 분도 수도로 가시는 길인가요?"

말소리에 잠이 깬 건지 청년이 슬쩍 눈꺼풀을 뜹니다. 그의 시선은 여인이 아닌 아이에게 가 있습니다. 아이는 제가 눈길을 받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청년의 눈빛이 일순 날카롭게 빛난 것도 같습니다.

129 엘레나 (sKR3NWOtDc)

2022-09-22 (거의 끝나감) 20:37:49

항구도시 아타후알파를 벗어나자 대평원이 펼쳐졌습니다.
어디까지고 이어질 것 같은 녹지가 밤하늘 아래에 드리워져있는 풍경은 말 그대로 웅장한 것이었습니다. 저기에는 우리와 같이 말을 탄 사람들과 그 뒤를 따르는 커다란 천막들도 보입니다. 이게 유목민이라는 걸까요.
이곳에게는 이곳 나름의 고민과 고충이 있겠죠. 하지만 이런 초원도 유목 생활도 제게는 전부 처음보는 것들 뿐이라 그저 신기하고, 또 더 없이 평화롭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러자 자연히 제 고향도 생각납니다. 저희의 고향도, 이런 평원의 반만이라도 평화로웠다면 좋을텐데.
등대지기들은 바다에서 덮쳐오는 야수들을 잘 막아내고 있을까요. 주민들은 광증을 잘 버텨내고 있을까요.
제가 너무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게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차가 중간에 멈춰서자 두 사람이 올라탔습니다. 여인과... 아이인가요? 마부는 다행히 그들에게서는 돈을 갈취하지 않았던 것 같았어요.
그럼요, 유능한 심문관인 제가 아직 타고 있는 걸요.

"그렇습니다. 수도에 볼 일이 있거든요."

저는 여성분께 화답하듯 살풋 웃으며 대답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주위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의 눈빛이 조금 이상했거든요.
그게 조금 의아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파악한 바로는 그는 워낙에 경박한 인물 같았으니까요. 네, 그건 아마 마차를 모는 마부라도 알 수 있었겠죠.

"자녀분이신가요?"

여성분께는 넌지시 물었습니다. 그건 교류상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확인차 하는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130 ◆POCYqa2/e6 (IoppecSisw)

2022-09-22 (거의 끝나감) 21:42:04

다시금 마부의 채찍질과 함께 마차가 출발합니다. 여인이 움직이는 마차 밖을 한 번 바라보고는 엘레나의 물음에 답합니다. 로브를 쓴 아이는 어째선지 몸을 파르르 떨기 시작했습니다.

"네, 저희 딸이에요."

여인은 몸을 떨던 아이의 어깨를 끌어안습니다. "괜찮단다, 우리 아가." 그리고서 아이를 안심시키려는 듯 고개를 돌려 나지막히 속삭입니다. 다시 엘레나에게 시선을 둔 그녀가 환히 웃으며 다시금 입을 열려 했지만.

"아파 보이는데."

청년의 말 한 마디에 여인은 그저 입을 오물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넉살 좋던 미소는 금세 사라지고 불안한 기색만이 그녀의 주름 패인 입가를 맴돕니다.

"...맞아요. 아이가 희귀병을 앓고 있거든요."

그녀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립니다. 엘레나라면 단번에 알 수 있을 겁니다. 이 여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요. 하지만 정확히 뭘 숨기고 있는진 알 수 없습니다. 청년 역시 여인의 거짓말을 어렴풋이 눈치챈 것 같습니다.

"참 착한 아이인데... 어쩌다 이리 된 건지."

여인이 한숨을 내쉽니다. 여전히 초조한 모습입니다. 딸의 병 탓이라기엔 급격히 태도가 변했는 걸요. 청년도 아직 무언가를 확신하지 못한 듯 아이의 모습만을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노려본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의 떨림은 아까부터 멈추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오히려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뭔가 이상해."

청년이 조그맣게 중얼거립니다. "네?" 여인이 근심스런 목소리로 반문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131 엘레나주 (sKR3NWOtDc)

2022-09-22 (거의 끝나감) 22:20:44

광증각이다 광증각!!! 잠깐 밥먹고 와서 이어줄게 캡틴~

132 ◆POCYqa2/e6 (IoppecSisw)

2022-09-22 (거의 끝나감) 22:23:42

다녀와~~

133 엘레나 (sKR3NWOtDc)

2022-09-22 (거의 끝나감) 22:56:46

"―우연이군요."

긴장의 공기가 떠도는 마차 안에 목소리가 차갑게 떨어졌습니다.

"제 고향 사람들도 희귀병을 앓고 있거든요."

'희귀병'이라고요. '뭔가 이상하다'고요.
그런건 말하지 않아도 알고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더 잘 알고있어요. 지금 엄습해오는 아주 익숙하디 익숙한 불안감 말이에요.
그것은 달이 기움에 따라 천천히 덮쳐오는 그림자처럼 사람을 좀먹어오죠. 가장 어두운 밤 중에서도, 더욱 어두운 심연은 있는 법이니까요.

"실례지만 부인, 제가 자녀분의 상태를 잠깐 확인해봐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심문관. 그 실체를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아이의 로브를 걷어보기 위해 한 손을 조심스럽게 뻗고 있었어요. 그러면서도 반대쪽 손으로는,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비하기 위하여 부인이 눈치채지 않도록 조심히 핸드캐논이 걸려있는 홀스터에 손을 얹었습니다.
저라고 이런 상황이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만, 부디 이 부인이나 아이가 저를 공격하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134 ◆POCYqa2/e6 (IoppecSisw)

2022-09-22 (거의 끝나감) 23:45:43

여인은 엘레나의 요청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아아, 죄송해요, 거짓말해서 죄송해요..." 그저 고개를 떨군 채 쉼없이 사과의 말을 되뇌이고 있을 뿐입니다.
엘레나가 로브를 들추자 아이 몸의 달싹거림은 더욱 심해집니다. 그리고 엘레나는, 홍채와 공막까지 온통 검게 물들어버린 아이의 두 눈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뿐이 아니라 아이의 피부도 시체처럼 창백했습니다. 아이의 검은 머리칼들이 뱀마냥 주변을 설설 기는 것도 보입니다. 그 중 한 가닥이 엘레나의 손등을 침범합니다. 거칠고 축축한 촉감이 느껴집니다. 틀림없이 이건 야수화의 전조입니다.

"저희 딸은 광증을... 앓고 있어요. 그런데 아이 아빠가 말하길 제국 수도에 가면 치료약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해서..."

그리 말하는 여인의 목소리가 퍽 불안정합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엘레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정말 이 대륙의 수도에는 광증을 치료하는 약이 어디엔가 있는 걸까요? 하지만 그런 희망이 무색하게도, "헛소리네." 하고 청년이 옆에서 중얼입니다. 수도에 광증의 약이 없다는 건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당신은... 사냥꾼이신가요?"

돌연 고개를 퍼뜩 들어올리는 여인. 그녀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주룩 흘러내립니다. 초점 잃은 시선이 엘레나를 향합니다.
한편 아이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뺨을 타고 흐르는 건 시뻘건 핏방울이었습니다.

"부디 저희 딸만은 해치지 말아주세요, 수도까지만 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부디 저희 딸만은..."

여인은 다시금 같은 말을 반복해댑니다. 억양 없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읊조리는 그 모습이 기이하게까지 느껴집니다.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진 것 같습니다. 그녀에겐 사냥꾼이 그리도 무서운 존재로 느껴지는 걸까요?

"자식의 병을 숨긴 벌은 그 뒤에 받을 테니..."

그러더니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꾹 닫아버립니다. 그녀의 치마자락이 떨어트린 눈물로 흠뻑 젖어들어갑니다.

"언제 변이할 지 모르는 광증 환자랑 같은 마차를 탔다, 라." 그리 말한 청년의 표정은 그닥 밝지 않았습니다. 마부는 좌석의 상황을 알긴 하는 건지, 혹은 알고서도 외면하는 것인지 말을 모는 걸 멈추지 않았습니다.

135 엘레나 (MTKoOlWlzo)

2022-09-23 (불탄다..!) 01:31:02

이성을 놓아버린 것 같은 여인의 반응에 저는 빠르게 아이의 로브를 걷었습니다.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요. 그 안에 있는건 희귀병처럼 구실 좋은 병따위가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흔한 광증을 앓고있는 아이였습니다.
앓는다는 수준이 아니에요. 이 안에있는 건 사람이 아니라 거의 야수입니다.
옆에서는 그가 헛소리라며 무색한 희망에 태클을 겁니다. 아까부터 정말 시끄럽군요. 그 정도는 이미 이 부인도 알고 있어요.

"...마부! 마차를 멈추세요!!"

저는 일단 마차 내부를 주먹으로 두어번 두드려 마부에게 마차를 멈추도록 했습니다. 일단은 거기서부터겠죠.
자, 그러면 이제 타국의 심문관인 저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부인이 보는 앞에서 아이를 이 자리에서 쏴죽여야 할까요? 당신이 찾는 광증의 치료같은건 없다고 알려야 할까요? 눈물을 흘리는 부인을 보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습니다.
광증이라는 건, 어딜가나 사람을 괴롭히는군요.

"부인,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아지무 엘레나. 동쪽 대륙에서 방금 건너온 심문관... 즉, 네. 사냥꾼입니다."

우선 저의 이름과 신분, 그리고 출신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홀스터에 얹어놓았던 손을 움직여 단숨에 핸드캐논을 꺼냈어요.
오로지 강력한 심연의 야수들을 부수기 위해 만들어져서 등대지기들에게 손과 손으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중후한 6연발 개인 화포. 심문관의 보구이자 파트너.
저는 묵빛의 그것을 부인에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가 이단을 처단할때 사용하는 도구죠. 부인, 사람에게 광증이 발병했다면 그건 이미 사람이 아니라 야수입니다. 남녀노소. 그런건 상관 없어요. 저희 심문관의 의무는 이단과 야수를 즉결처단하고 길을 밝힘으로써 밤의 어둠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와 같은 사명에 따라서, 이제 부인의 따님도 제 목표중 하나가 됐죠."

이것이라면 분명 아무런 문제없이, 한 밤중의 악몽에 고통받고 있는 이 아이를 깨워주겠지요.

"...하지만 이번은 못 본 걸로 하겠습니다."

제가 있었던 동쪽 대륙이었다면... 말이에요.
저는 제가 들고 있던 핸드캐논의 포구 끝으로 아이를 겨누는 대신, 마차의 문을 밀어 여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마차를 떠나세요. 그리고 마을로 돌아가도록 하세요.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걸어서 갈 수 있을겁니다. 마을에 도착하는 대로 따님이 아직 인간으로 있을 때 부인의 손으로 안식을 주고 무덤을 만들어 주세요. 못하겠다면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사냥꾼에게 부탁하세요."

제가 지금 실수를 하고있는 걸까요? 괜한 짓을 해서 피해자를 늘리고 있는 걸까요? 부인에게 너무 심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걸까요?
아뇨, 제 머리는 지금 그 세상 어느 것보다 차갑고 냉정했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제가 지금 즉시 해드리겠습니다. 이것이 심문관인 제가 배풀 수 있는 최소한의 자비입니다."

이제 달려 있는 것은 부인의 선택이겠죠. 저는 그녀가 딸을 데리고 떠나길 바라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36 ◆POCYqa2/e6 (JtHww4LMWg)

2022-09-23 (불탄다..!) 01:46:17

크아아 피곤해서 자러갈게...! 좋은밤 보내구 답레는 자고 일어나서 가져올게

137 ◆POCYqa2/e6 (JtHww4LMWg)

2022-09-23 (불탄다..!) 16:21:32

엘레나의 말에 마부는 황급히 말을 세웁니다. 뒤이어 그녀가 꺼내든 육중한 화기를 보고, 여인은 겁에 질려 얼굴을 새파랗게 물들입니다.
엘레나가 말을 이어감에 따라 여인의 표정도 더욱 일그러집니다. 끝내 엘레나가 여인에게 선택권을 넘기자.

"...알겠어요. 사냥꾼 님이 시키시는 대로 할게요."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치고서 그렇게 답합니다. 그녀가 던진 잔인한 말들에 정신이라도 차린 걸까요. 곧 여인은 아이의 손을 잡아끌고 마차에서 내립니다. 미련이 남았는지 여인은 몇 번 마차를 쳐다보다가, 결국 종종걸음으로 그곳을 벗어납니다.

"와, 십년감수했네~"

둘이 자리를 뜨자 청년도 평소의 경박한 태도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다리를 꼬며 피식 웃습니다.

소란이 끝난 뒤 마차는 재빨리 출발합니다. 말들이 초원을 내달립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나아가면 중소규모의 도시가 보일 겁니다. 마차는 그곳에 멈춥니다. 아타후알파보다 작은 규모의 도시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입니다.
줄곧 시끄럽게 떠들던 청년은 이곳에 볼 일이 있다며 먼저 하차했습니다. 그는 떠나기 전 엘레나에게 은화 주머니를 건네주었습니다. 마차가 이삼일은 내리 달릴 테니 돈이 필요할 거라 하면서 말입니다. 주머니에는 총 서른 닢의 은화가 들어있었습니다. 아까 마부한테 떼먹힐 뻔한 거에 덤을 얹었다나요. 엘레나가 거절한다고 해도 받으라며 고집을 부렸을 겁니다. 청년은 그렇게 거리 너머로 사라졌습니다.
이후의 짧은 휴식 시간을 가지고 마차가 다시 달립니다. 새로이 마차에 탑승하는 승객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차는 다시 달려 새로운 마을에 도착합니다. 밤하늘에 뜬 달이 23시를 가리킬 무렵이었습니다. 광활한 평야를 배경으로 초라하게 세워진 민가들이 보입니다. 마을 입구를 지키는 기사들은 흙바닥에 주저앉아서 카드 놀이나 하고 있습니다.
말을 세운 마부가 여관에서 한숨 자고 오겠다고 말합니다. 시간이 늦었으니까요.

"그... 사냥꾼 씨도 좀 쉬고 오시지요."

그가 헤헤 웃으며 엘레나를 쳐다봅니다. 말투가 아까 전과는 딴판입니다. 자신만만한 사기꾼 상이었던 얼굴도 누그러진 모습입니다. 다만 지금은 간신처럼 보인다는 게 문제일까요. 엘레나는 방금의 광증 소란을 완벽하게 해결했으니, 그녀를 대하는 마부의 태도가 바뀌어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엘레나가 텅 빈 마차에서 내리면, 고즈넉한 마을의 풍경이 보일 겁니다. 엮은 볏짚으로 지붕을 올린 흙집이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사이사이 난 오솔길 곁으로는 긴 횃불이 촘촘히 박힌 모습입니다.
엘레나는 쉽게 여관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침대가 그려진 간판을 매단 집이 바로 보였거든요. 여관은 다른 민가들보다 넓었지만 그렇게 널찍한 건 아니었습니다. 후미진 곳에 흔히 있을 법한 여관의 크기였죠.

138 ◆POCYqa2/e6 (JtHww4LMWg)

2022-09-23 (불탄다..!) 16:22:01

(너무 급전개인 거 같아서 걱정되는 캡틴)

139 엘레나 (MTKoOlWlzo)

2022-09-23 (불탄다..!) 17:37:54

부인과 아이는 떠나고, 경박한 용병분도 중간에 마차를 내렸습니다.
그는 떠나면서 또 해프게끔 저에게 은화 주머니를 건넸어요. 괜찮다며 몇번이고 말했지만 끝내 호의를 거절 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내분의 태도가 완강한 것도 있지만. 뭐, 저는 급한 상황에 처해있으니까요. 받을 수 있는 건 감사하며 받아 두어야겠죠.
그렇게 도착한 것이 이 또 다른 마을이었습니다. 하늘에 뜬 달을 보니 벌써 이 밤도 더욱이 깊어져가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달려왔으니 무리도 아니지요.
그런데 저를 대하는 마부의 태도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동행하던 사내분이 떠나면 태도가 돌변할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아까 전에 광증으로부터 마차를 보호했기 때문일까요.
흥, 그렇다고 간신같은 얼굴을 하고있기는요. 정말 알기 쉬운 인간이군요.

"사냥꾼이 아닙니다."

마차에서 내려온 저는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 장비를 확인했습니다. 차가운 빛을 내는 레이피어와 랜턴, 무거운 화포와 탄띠. 이것들은 전부 동쪽에서 등대지기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이제는 몸에 배어든 습관같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저의 분신같은 것들이기도 해요. 이 땅의 사냥꾼들은 과연 밤에 저항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저는 고개를 돌려 마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심문관이에요."

.
.
.

콩콩콩. 문을 노크하자 나무와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가 울렸습니다.

"저기-"

여관을 부러 노크하고 고개를 들이밀 필요는 없겠지만요.
하지만 이곳의 여관이란 보통 민가랑 거의 차이가 없어보여서 왜인지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랬습니다. 절대로, 낯선 곳에 혼자서 왔기 때문에 긴장하고 있는게 아니에요.
그런데 이 여관의 주인 되는 분은 누구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습니다.

"혼자 쓸 방 하나를 빌리고 싶은데요."

배랑 마차를 오랫동안 타고 오기도 했고, 저도 얼른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내일 또 움직이려면 충분한 휴식이 필요할테니까요.

140 엘레나주 (MTKoOlWlzo)

2022-09-23 (불탄다..!) 17:39:27

나도 조금 급하게 넘어간 것 같아서 띠용하기는 했지만 ㅋㅋㅋㅋ 뭐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이 정도로도 좋다고 생각해 음음!!

141 ◆POCYqa2/e6 (eZHo7ro97Q)

2022-09-23 (불탄다..!) 19:07:03

ㅋㅋㅋㅋㅋㅋ 역시 급한 성질을 죽여야겠어... ㅋㅋㅋㅋ
그리고 오늘은 답레 쓰기가 힘들 수도 있어서... 조금 느긋하게 기다려주면 고맙겠어!

142 엘레나주 (MTKoOlWlzo)

2022-09-23 (불탄다..!) 19:15:16

원래는 엘레나한테 용병아저씨랑 왜 쏘지 않았는지 같은거 얘기하면서 200 은화정도 뜯어볼생각 하고 있었거든 ㅋㅋㅋㅋㅋ (
그리고 확인~~~ 천천히 기다린다!!

143 ◆POCYqa2/e6 (niBYJ0p61o)

2022-09-24 (파란날) 15:58:37

엘레나가 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중년의 부부가 구석 테이블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손님 없는 홀에 앉아 엘레나가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아무래도 이들이 여관 주인인 것 같습니다. 그 중 통통한 여성이 잽싸게 일어나 엘레나에게 다가옵니다. 그녀는 푸근하게 웃으며 엘레나를 맞이합니다.

"아이고, 어서오세요! 물론이죠, 이리로 오세요."

여성이 엘레나에게 손짓하며 카운터로 향합니다. 그리고 카운터 아래를 뒤적이더니, 곧 작은 나무 명패가 달린 열쇠를 카운터에 내놓습니다. 명패에는 2호실이라는 글자가 쓰여있습니다.

"아까 그 친구네 마차를 타고 왔나보구먼."

다른 한 명, 건장한 체격의 남성도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 쪽으로 설렁설렁 다가옵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마부도 이 여관에 있는 모양입니다. 당연한 이야기긴 하지만요.

"사실 이 마을에 멈추는 마차가 그리 많진 않아요. 그래서 외지인 보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죠."

여성은 기쁜 듯 그렇게 말합니다. 주인 대 손님뿐만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도 엘레나를 무척 반기는 태도입니다.

"하하, 우리 집사람이 낯선 얼굴 보는 걸 워낙에 좋아한다오."
"아유, 당신도 참. 쓸데없는 말을 하고 그래."

그 말에 응수하듯 그녀가 제 남편의 어깨를 가볍게 때리며 핀잔을 줍니다.

"잠자리랑, 식사 포함해서 딱 3은화만 받을게요."

다시 엘레나에게 시선을 둔 여성이 손가락을 세 개 들어보이며 웃습니다. 방을 하루 빌리는 건 생각보다 저렴했습니다.

144 ◆POCYqa2/e6 (niBYJ0p61o)

2022-09-24 (파란날) 16:00:18

200은화 ㅋㅋㅋㅋㅋㅋㅋ(이 참치 대단하다) 다음부턴 좀 천천히 해보는걸루
아무튼 기다려줘서 고마워!

145 엘레나 (8enb4l29jk)

2022-09-24 (파란날) 16:52:42

"맞습니다. 항구도시에서부터 먼 길을 떠나고 있는 중이거든요."

아까 그 친구라는 건 마부를 말하는 거겠죠.
하긴, 이 작은 마을에 대놓고 보이는 여관은 여기밖에 없는 것 같았으니까요. 이런 곳에선 마부와 같은 여관을 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게다가 이 여관 뿐 아니라 마을 자체가 타지 사람의 방문이 드문 모양이니까요. 그런 상황 탓에 저라는 사람이 반갑게 느껴지는 건지, 마치 만담이라도 하는 듯한 두 주인의 모습을 보고 저는 '아하하.' 소리내며 가볍게 웃는 시늉을 했습니다. 이건 또 금슬이 좋은 부부네요...

"3 은화요. 좋아요."

5 은화도 받지 않는다니. 저렴하군요. 저로서는 더 없이 좋은 가격입니다.
경박한 용병에게서 받은 주머니를 쓸 때가 왔어요. 저는 지체없이 주머니를 뒤적여 은화 세 닢을 건넸습니다.

"식사는 어떻게 준비되어 나오나요?"

그러고보면 타국에 온 이래로 처음 맛보는 로라시아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껏 바다 건너에서만 있었던 동 대륙 사람에게는 기념비적이죠. 솔직히 말하면 흥미가 생겼기에 이 두 분께 물었어요.
부디 맛 좋은 밥이었으면 좋겠습니다만.

146 엘레나주 (8enb4l29jk)

2022-09-24 (파란날) 16:53:57

용병아저씨가 먼저 돈을 해프게 쓰고 있었으니까!!! ㅋㅋㅋㅋㅋ 캡틴 어서와~ 좋은 주말이야~~~

147 엘레나주 (8enb4l29jk)

2022-09-24 (파란날) 17:02:10

그런데 엘레나는 어때? 캡틴이 보기엔 잘 하고 있는 것 같나!!!

148 ◆POCYqa2/e6 (niBYJ0p61o)

2022-09-24 (파란날) 17:25:33

안녕~ 엘레나주도 좋은 주말!
당연히 잘 하고 있지 ㅋㅋㅋㅋ

149 ◆POCYqa2/e6 (niBYJ0p61o)

2022-09-24 (파란날) 19:25:48

"항구도시라면... 참 먼 길 오셨구만요."

여성이 눈웃음지으며 은화를 받아듭니다. 받은 은화를 카운터의 수납장에 넣어두고, 명패 달린 열쇠를 엘레나 쪽으로 내밉니다.
엘레나가 식사에 대한 것을 묻자 남성이 대답합니다.

"아침 식사라면 그때그때 다르지만, 보통 간단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요리들로 준비하는 편이오. 수프나 샌드위치 같은 것들."
"원하신다면 후식으로 달콤한 디저트도 드린답니다."

그녀도 남편의 말에 사족을 덧붙입니다. 썩 쾌활한 목소리입니다. 뒤이어 남성이 제 수염을 쓰다듬으며 껄껄 웃습니다. 아무래도 요리 준비는 그의 몫인 것 같습니다.

"그보다 손님, 저녁은 드시고 오셨나요?"

여성이 물어봅니다. 저녁 먹는 시간이라기엔 너무 늦긴 했습니다만, 엘레나는 로라시아 대륙에 도착한 뒤로 제대로 된 식사를 챙기지 않았으니까요. 줄곧 마차를 타고 달려오느라 먹을 틈도 없었죠. 여성은 그걸 또 어찌 기막히게 알았는지 말을 마저 이어갑니다.

"괜찮으시다면 늦은 시간이나마 식사를 내어드릴까 싶어서요."

그녀가 다시 한 번 웃어보입니다.

150 엘레나 (8enb4l29jk)

2022-09-24 (파란날) 20:06:03

식사인가요. 여관 주인의 말을 듣고 나서야 지금껏 내내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놀랍게도 저는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있던 겁니다.
오자마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일까요. 어쩐지 아까부터 힘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분명 이것 때문이겠죠.

"그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 디저트도요."

열쇠를 챙기면서 주인 분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럼요, 식사도 식사이거니와 타국의 디저트는 절대 빼놓을 수 없죠. 좋은 견문이 될 것 같습니다. 달콤한 디저트... 후후후.
...읏, 큰일이군요! 고결한 심문관이 디저트따위에 넋을 놓고 말다니...
하지만 왜일까요, 제가 놓인 상황은 한 없이 절망 그 자체인데 갑자기 행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그보다 일단 입가에 침부터 닦아야겠어요...

"크흠...! 그러면, 제가 다시 홀에 오면 될까요? 아니면 방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됩니까?"

보통 여관은 식사를 위한 공간이 따로 준비되어 있거나 그렇지 않은 곳으로 나뉘기에 여쭤봤습니다.
1박에 은화 세 닢을 받는 여관이니 어느쪽이어도 상관없었어요.

151 ◆POCYqa2/e6 (uw1KFJC5JY)

2022-09-25 (내일 월요일) 00:13:42

"그럼요! 당신, 들었죠? 빨리 가서 준비해요."

그녀가 푸근한 미소로 엘레나에게 화답하더니, 금세 표정을 바꾸어 남편을 재촉합니다. "맛있는 요리를 내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시오." 한 번 호탕하게 웃어보인 남성은 소매를 걷어붙인 뒤 카운터 뒷편 주방으로 향합니다.

"아아, 일단 방으로 올라가 계시다가, 식사가 준비된 후에 홀로 내려오시면 되어요. 물론 식당에서 기다리셔도 되구요."

여성이 한쪽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녀가 가리킨 곳은, 카운터의 바로 오른편에 간소하게나마 차려진 식당입니다. 그렇게 넓은 건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아늑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한편 주방에서는 식기와 재료를 준비하는 듯 분주한 소음이 들려옵니다. 식사가 나오려면 조금 기다려야 할테니, 방에 짐을 풀어놓고 오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홀의 나무 계단을 오르면 일자 복도에 네다섯 개의 문이 붙어있는 게 보입니다. 문들에는 이 방이 몇 호실인지를 알려주는 명패가 크게 붙어있었습니다. 엘레나가 배정받은 2호실은 복도 오른쪽, 1호실과 마주보는 곳입니다.

152 엘레나 (XdDT4ue8cc)

2022-09-25 (내일 월요일) 01:20:05

"그럼 저는 방에 한 번 들렀다 오도록 하죠. 부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방을 찾아 올라갔습니다. 식사는 이제 준비가 시작 되었으니까요. 시간이 걸리겠죠.
방은 생각대로 많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아늑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들어가서 방을 한 번 살피고 짐을 풀고, 창 밖의 전경도 한 번 바라봅니다.
어두운 하늘 아래 어둠이 땅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부분만큼은 제 고향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잔잔하게 들려오는 밤바다의 파도 소리와... 회전하며 지면을 내달리는 등대의 불빛만 빼면 말이에요.
네, 어둠은 어딜 가나 어둠이군요. 어둠은 사람을 야수화에 빠트리는 주된 요인인거죠. 하지만... 어째선지 이럴때 만큼은 정말이지 포근하게 느껴지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슬슬 한 번 내려가 볼까요. 저는 올라왔던 나무 계단을 다시 내려가 홀로 내려갔습니다. 발걸음이 가벼워진게 느껴져요.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요. 후후.

153 ◆POCYqa2/e6 (lp/tiLfX7U)

2022-09-25 (내일 월요일) 19:12:00

딱 있을 것만 차려둔 방은 조금 좁았습니다. 이 좁은 방에는 침대 하나와 낡은 협탁, 그리고 등불 몇 개가 전부였습니다. 묵은 때 붙은 이불이나 쿰쿰한 냄새가 나는 침대를 보면 잠자리도 그리 편안할 것 같진 않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하룻밤 자고 떠나기에 안성맞춤일지도요.
엘레나는 방에서 어느정도 시간을 보낸 뒤 홀로 내려갑니다. 홀에는 온통 맛있는 냄새가 가득 들어차 있었습니다. 주방에서부터 풍겨오는 것이겠죠. 카운터에 앉아있던 여성이 엘레나에게 눈인사를 합니다. 홀 곁의 식당에는 테이블 몇 개와 의자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습니다. 식당도 마찬가지로 좁았지만 대여섯 명이 사용하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그중 한 자리에 앉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요리가 내어졌을 겁니다. 여성이 두꺼운 장갑을 낀 채, 쇠쟁반을 들고 식당으로 들어섰습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갓 잡은 닭으로 만든 훈제 통닭이에요."

쟁반 위에는 통으로 구워진 닭 한 마리가 뉘여져있습니다. 방금 막 화덕에서 꺼냈는지 후끈한 김이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바싹 구워 노릇노릇한 색감이 올라온 게 퍽 아름답습니다. 닭의 속내에도 마찬가지로 잘 구워진 채소와 과일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다만 닭의 크기가 다소 작고 살집이 부실한 게 흠이랄까요. 그래도 값싼 여관에서 이 정도의 식사라면 훌륭한 수준입니다. 일단 맛도 있어 보이고요.

"맛있게 드셔줬으면 좋겠네요."

쟁반이 테이블 위에 놓입니다. 옆에 놓인 나무 포크와 스푼이 보입니다. 그녀가 두 손을 다소곳이 모은 채, 기대에 찬 눈빛으로 엘레나를 바라봅니다.
한 입 먹으면 기름기 없이 담백하고 고소한 풍미가 느껴집니다. 잘 익은 껍질이 바삭한 식감을 자랑합니다. 그 속의 살결도 촉촉하며 부드럽습니다. 최고의 맛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맛있는 요리입니다. 이 정도면 주린 배를 만족스럽게 채울 수 있겠군요.

154 ◆POCYqa2/e6 (lp/tiLfX7U)

2022-09-25 (내일 월요일) 19:14:06

어제는 어디 놀러갔어서 텀이 좀 불규칙했는데 이제 집에 들어왔으니까 바로바로 잇는 거 가능!

155 엘레나 (XdDT4ue8cc)

2022-09-25 (내일 월요일) 21:13:19

홀로 들어서기 전에도 구운 닭의 냄새가 제 코 앞을 스쳤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방도, 식사도 아주 고급진 건 아니었지만 이런 곳에서 그런걸 기대하면 강도나 다름 없는 겁니다. 제가 지불 한 건 고작 3 은화라고요.
게다가, 저희 고향에서는 식문화 대부분이 수산물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닭을 먹을 기회는 그렇게 흔치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로서는 아주 만족이었답니다.
닭은 언제나 옳으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충분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자리에 앉아 여관 주인께 간단히 인사한 뒤에 닭을 천천히 음미해봅니다.
닭은 조금 작지만 여사분의 정성이 그것을 커버하고 있군요.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죠. 아주 괜찮은 식사예요.

"정말 맛이 좋네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사에게 살풋 웃어보이며 말했습니다.
배가 굶주렸기 때문이었을까요. 이 뒤로 저는 말 없이 그릇을 비우는데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156 엘레나주 (XdDT4ue8cc)

2022-09-25 (내일 월요일) 21:18:40

놀고 온 거였어? ㅋㅋㅋㅋㅋ 조금 걱정하고 있었는데.... (오지랖
잘 놀다 왔나 캡틴!!

157 ◆POCYqa2/e6 (lp/tiLfX7U)

2022-09-25 (내일 월요일) 22:12:03

"아유, 아니에요. 맛있게 드시니까 보기 좋네요."

여성이 손에 낀 장갑을 벗어 옆 테이블에 올려두고, 손사래를 치며 웃습니다. 엘레나가 식사하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네요.

"손님은 어디로 가던 길이셨나요?"

그러더니 그녀는 넉살 좋게 말을 붙여봅니다. 아줌마들은 원래 다 이렇게 친화력이 좋은 건가요? 엘레나가 대답하면 당장이라도 수다를 시작할 기세입니다.

158 ◆POCYqa2/e6 (lp/tiLfX7U)

2022-09-25 (내일 월요일) 22:13:08

ㅋㅋㅋㅋㅋㅋㅋ 걱정까지?! 아무튼 잘 놀다 왔어~

159 엘레나 (xdVxMJBmIc)

2022-09-26 (모두 수고..) 00:13:10

여주인이 저의 여행길에 대해서 스스럼 없이 물어오네요. 아줌마들이 원래 다 그런 법이죠. 하물며 인적이 드문 이런 곳이라면요.

"으음. 수도로 가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는 곳곳마다 제 행선지와 목적에 대한 정보를 흘려도 되는 지에 대해서는 슬슬 의구심이 들고 있군요...
...뭐, 상관 없겠죠? 이곳은 그저 후미진 곳의 여관일 뿐인 걸요. 게다가 저는 나쁜 사람도 아닙니다. 주눅이 들 이유따위는 없어요.

"저는 아지무 엘레나. 동쪽 대륙에서 온 심문관입니다. 엘레나라고 불러주세요."

여주인이 저를 계속 손님이라고 부른 것도 조금 그렇기에, 여기서는 살짝 제 이름과 신분을 알려드렸습니다.

160 엘레나주 (xdVxMJBmIc)

2022-09-26 (모두 수고..) 00:14:45

그야 하루동안 답도 없고 하니까 걱정되는걸~~~
암튼 잘 놀다왔다니 다행이구나!

161 ◆POCYqa2/e6 (7G8o346wLc)

2022-09-26 (모두 수고..) 01:01:04

"수도로구만요. 수도가 그렇게 좋은 곳이라 하던데... 우리 아들도 수도에서 살았었답니다."

그 말에 묻지도 않은 사족이 살짝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과거형일까요. 여성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어진 엘레나의 말에는 깜짝 놀란 눈치입니다. 그러다가도 금세 표정을 바꾸어 웃어보입니다.

"알겠어요, 엘레나 양. 그보다 동쪽 대륙이라면... 아이고, 정말 엄청 멀리서 오셨네요."

여성이 감탄하듯이 소리내어 웃습니다. 다른 세계의 이방인에 대한 기대감, 호기심, 설렘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곧 그녀는 엘레나의 자리 맞은편에 의자를 빼고 앉습니다. 본격적으로 수다를 떨기 위함일까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동대륙은 어떤 곳인지 물어보아도 될까요?"

여성은 금세 호기심이 동했는지 눈을 빛내며 경청할 준비를 마칩니다. 하지만 동대륙이 그녀의 생각만큼 평안하지 않다는 사실을 엘레나는 알고 있습니다.

162 ◆POCYqa2/e6 (7G8o346wLc)

2022-09-26 (모두 수고..) 01:02:17

걱정시켜서 미안해지네...!()
슬슬 자러갈게 좋은밤 보내!!

164 엘레나주 (IEI7Mb98hI)

2022-09-26 (모두 수고..) 15:27:12

안히~~ ㅋㅋㅋㅋㅋ 미안해 하지는 않아도 되는걸~
오늘은 나 좀 늦을 것 같은데!!!

165 ◆POCYqa2/e6 (7G8o346wLc)

2022-09-26 (모두 수고..) 15:57:59

ㅋㅋㅋㅋ 알겠어~ 편할 때 이어줘

166 엘레나 (xdVxMJBmIc)

2022-09-26 (모두 수고..) 20:51:08

수도에 살았'었다'라. 왜 과거형인걸까요.
살짝 신경쓰이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부러 묻지는 않으려 했습니다. 괜한 이야기를 해서 이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고 싶지 않을 뿐더러... 뭐, 그냥 별 의미없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동대륙... 말인가요."

그리고 이곳의 여주인, 그녀는 이미 충분히 넉살이 좋은 것 같으니 말입니다.
저는 먹던 닭을 천천히 그릇 위에 올려두고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았습니다. 물론, 여주인이 듣고 싶어하는 동쪽 대륙의 이야기를 해주기 위해서죠.
글쎄요.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잠깐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었습니다.

"제가 온 곳. 그러니까, 동쪽 대륙은 매우 치열한 곳입니다. 땅은 이 로라시아보다 3배는 더 작은데 사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죠. 바닷물이 만조에 이르렀을 때는 해저에 도사리는 야수들이 주민들을 해치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옵니다. 그러면 무릎까지 치밀어오른 파도 안에서 주마등처럼 땅을 맴도는 등대와 랜턴의 불빛에 의존해가며 싸워야 해요. 거기서 곱게 죽으면 운이 좋은 거고, 살아남아 광증에 걸려 그 야수들과 같은 몰골이 되면 운이 나쁜 거죠. 그런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저희 등대지기들. 심문관이 조직 된 겁니다."

이야기를 풀어놓는 제 눈은 흔들림 없고, 얼굴은 여느 때와 비견해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진지했습니다. 결단코 여주인분을 겁주거나 귀찮게 생각하여 떠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랬다면 아예 입을 열지 않았겠죠.
그러니 이것이, 일말의 과장 하나 없는 동대륙의 실태였습니다. 이 땅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제 고향의 모습이요.

"제가 이렇게 떠드는 지금에도 그들은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제가 돌아갔을 때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마치며 먹다가 남은 닭을 마저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이 닭은 정말 맛있네요.

167 엘레나주 (xdVxMJBmIc)

2022-09-26 (모두 수고..) 20:57:26

음음~~~ 이렇게 글로 늘어놓고보니 동쪽 대륙은 생지옥이군~ 큭큭큭

168 ◆POCYqa2/e6 (7G8o346wLc)

2022-09-26 (모두 수고..) 22:13:48

동대륙의 처참한 실상을 엘레나는 여과 없이 드러냅니다. 그러자 여성의 미소도, 빛나던 눈빛도 서서히 사라집니다. 자못 진지한 모습입니다. 엘레나의 말이 끝났을 땐 안타까운 표정마저 지어보였습니다.

"...그랬군요. 동대륙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니..."

여성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가라앉았습니다. 그래도 애써 눈웃음지어보이며 쾌활함을 잃지 않고자 합니다.

"그러면 엘레나 양은, 왜 고향을 떠나면서까지 수도로 가려고 하시는 건가요?"

곧 그녀는 엘레나의 목적에 대해서도 직설적으로 물어봅니다. 상황이 좋지 않은 고향을 등지고 타지에 왔다면, 그만한 이유도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입니다. 엘레나가 찾는 게 다소 허무맹랑한 것이라곤 이 여성도 생각지 못했겠지만요.

"너무 꼬치꼬치 캐묻는 거 같다면 미안해요. 나이를 먹으니 주책바가지가 되어버려서."

그러다 뒤늦게 뒷말을 덧붙입니다. 대답하지 않아도 별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

169 ◆POCYqa2/e6 (7G8o346wLc)

2022-09-26 (모두 수고..) 22:15:22

ㅋㅋㅋㅋㅋㅋㅋ 살아남아라 동대륙인(아무말)

170 엘레나 (xdVxMJBmIc)

2022-09-26 (모두 수고..) 22:41:35

이런, 아무래도 여주인의 기세가 한 풀 꺾인 것 같네요. 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보통은 그렇겠죠.
하지만 저는 제 땅에 대한 이야기를 미화할 생각은 정말 요만큼도 없답니다. 그거야말로 저희가 하고있는 처절한 투쟁에 대한 기만일테니까요. 오히려 말할 거라면 이렇게 확실하게 해두는 편이 좋겠죠.

"그래도 사람들은 점잖고 재치있으며 용맹하답니다. 특산물인 생선요리도 맛있고요. 땅이 좁아서 오히려 관광하기도 편해요. 언제 한 번 방문하시죠, 대접 해드릴테니."

익살스럽게 살짝 입꼬리를 휘어보이며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말해봤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권유라는 걸 압니다. 대체 어느 누가 수생 야수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무의 바다를 건너서 일부러 그런 오지까지 올까요. 정말 대단한 사명을 지니고 있거나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 이상 그런 생각은 하지 못 할 거예요. 그게 지금까지 로라시아와 저희 대륙이 교류가 단절되고 있던 이유이기도 했을테고요.
즉, 농담이라는거죠.

"아뇨, 괜찮습니다. 저도 이곳에 와서는 처음으로 나누는 제대로 된 대화니까요."

닭을 나이프로 썰다보니 뼈에 툭 걸리는 느낌이 납니다. 세상에, 저는 이걸 벌써 다 먹은 걸까요. 아쉽네요. 모처럼 먹는 닭요리였는데.

"사실 제가 하고 있는 이 원정은, 그들을 고통에서부터 해방시킬 방법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겁니다."

마지막 닭고기 한 점을 입 안으로 가져가, 말끔히 뼈 밖에 남지 않은 접시를 옆으로 치웠습니다. 턱을 괴고 창 밖을 바라봅니다. 어두운 심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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